# 96
096
“악!”
게이트를 넘기 무섭게 <컨트리>의 팀원 중 하나가 소리를 질렀다.
-착!
그들은 동료의 안위를 걱정하기 보다도 일단 제 위치에 서서 전투태세부터 갖췄다.
냉정하지만 현명한 판단이다.
‘생 멍청이들은 아니었군.’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유일하게 여유가 넘쳤던 대성은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수풀이 무성하고, 나무가 우거진 숲이 배경이었다.
다만,
“검림(劍林)지옥에 들어왔나.”
그랜트의 표현은 정확했다.
수풀을 이루는 풀 한 포기, 바람에 날려 휘날리는 나뭇잎 하나하나가 전부 잘 벼려진 칼이었으니까.
사전 조사에 따르면 이곳 생존형의 출구가 열리는 때는 10시간 뒤.
사방팔방이 예리한 칼로 이뤄진 숲에서 반나절에 가까운 시간을 버텨야 한다는 의미였다.
“빌어먹을.”
하지만 산전수전 겪은 역전의 사냥꾼인 그들은 절망하지 않았다.
그 대신, 초입부터 자상을 입은 한 A급 사냥꾼이 짜증을 냈다.
“운도 지지리도 없지. 아니, 왜 하필 내가 지나가는 자리만 나뭇가지가 이따위로 뻗어 있는 거야?”
A급 사냥꾼은 유달리 톡 튀어나온 나뭇가지를 쏘아보았다.
그리고 뺨에 흐르는 핏줄기를 손으로 훔치려던 그때.
콰드득-!
“……?!”
돌연 A급의 얼굴에 상처를 새겼던 나무가 기둥을 비틀며 줄기를 뻗어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그냥 줄기가 아니다.
사로잡히는 즉시, 줄기 표면에 돌출된 칼날에 의해 온몸이 난자당할 것이다.
“어, 어어!”
대비하지 못한 A급이 두 눈에 절망을 떠올리려던 찰나.
서걱!
사선에서 불어 닥친 은빛 횡선이 그에게 짓쳐오던 줄기를 가뿐히 잘라냈다.
“얼추 이곳 생리를 알겠군요.”
심드렁하게 소도(小刀)를 한 바퀴 돌리며 그리 말한 자는 대성이였다.
마력 아깝게 업화대검을 꺼낼 필요도 없다. 그는 이 아득한 도산검림을 ‘심판의 단검’ 한 자루로만 헤쳐 갈 작정이었다.
대성의 말을 받은 그랜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얼굴에 피가 흐르자마자 나무가 공격을 가해 왔어.”
“인간의 혈액에 반응한다는 의미겠죠. 눈이 좋으십니다.”
그 말대로, 이곳의 나무는 파리지옥처럼 먹잇감을 보며 득달같이 달려든다. 문제는 식충(食蟲)이 아니라 식인(食人) 식물이라는 거지만.
눈치 좋은 대원 하나가 치유의 오러로 A급의 상처를 치료하는 사이, 그랜트가 전면에 나서며 말했다.
“나무에 베이지 않도록 조심해라. 조금이라도 피가 흐르는 순간 밑도 끝도 없는 수렁에 빠진다고 생각하고 움직여. 베여도 상처를 안 입는, 아머를 걸친 부위에만 베일 수 있도록 해.”
단장의 리드에 팀원들이 힘차게 대답했고,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
대성은 앞서나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후방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조용히.
그들을 에워싼 칼날의 숲과,
허공에서 살랑거리는 열여섯 개의 거미 문양을 곁눈질하며.
***
그 후로 약 한 시간가량을 내리 걸어야만 했다.
생존형은 몬스터를 얼마나 잡고, 보스 몬스터를 공략하고 말고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최대한 몬스터의 발길이 닿지 않는 안전한 장소에서 시간을 죽이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할당된 시간만 전부 소비하면 그만인 곳이 바로 생존형 게이트였으니까.
물론 그 안전지대를 찾는 게 쉬울 리는 만무할 터.
부스럭!
칵-!
케엑-!
지척의 수풀을 뚫고, 양팔에 낫처럼 휜 곡도(曲刀)가 박힌 몬스터 무리가 기습을 가했다.
블레이드 트롤(Blade troll)이었다.
“교전 준비-!”
우렁찬 그랜트의 기합과 함께, <컨트리>의 팀원이 행동에 나섰다.
제일 먼저 트롤과 맞선 이는 S급, 데이브 호퍼였다. 190의 덩치를 가진 그는 본인의 신장과 비슷한 길이의 해머를 트롤을 향해 내려찍었다.
콱-!
단숨에 몸이 우그러진 트롤한테서 악취가 고약한 체액이 터져 나왔다.
데이브의 본보기를 기점으로 나머지 팀원들이 용맹함을 뽐냈다.
최소 A급 클래스의 인선으로 이뤄진 그들은 3등급 몬스터의 기습에도 당황하지 않는다.
“데이브 씨를 중심으로 원의 형태로 둘러싸! 이런 필드에서 흩어지면 정황이 불리해진다!”
“여기에 숨을 곳 따윈 없으니까 레인저(Ranger)들은 엄폐하려고 하지 마라! 어태커(Attacker)들이 막아줄 테니 너희는 트롤들이 수풀에서 나오지 못하게 퍼부어!”
전면에 나서야 할 자의 구분, 필드의 특이성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하는 포메이션, 그리고 이 모든 전략 전술을 가능케 하는 전투 역량까지.
좌우가 장해물에 막혀 거의 외길이나 다름없는 지형임에도 그들의 움직임엔 막힘이 없었다.
물론 애로 사항이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악! 잠깐! 나 베였……!”
격전의 중심지다 보니 본의 아니게 포진에서 벗어나 수풀에 살갗이 베이는 이들이 속출했다.
콰드득-!
그 틈을 놓칠세라, 나무들이 귀신같이 칼날의 줄기를 뻗어 왔다.
화륵-!
사납게 휘둘러진 불꽃의 채찍이 순식간에 줄기를 잘라 냈다.
발화(發火) 계통 오러의 보유자, 앤드류였다.
“트롤이 문제가 아니네. 그냥 여기 필드 자체가 전력으로 싸울 만한 환경이 못 됩니다, 그랜트.”
“동감한다.”
앨리스와 그랜트의 의견이 일치했다. 블레이드 트롤의 척살은 어려울 게 없었으나, 움직임에 제한을 거는 주변 환경이 꽤 치명적이다.
그랜트가 신경질적으로 혀를 찼다.
“젠장. 그나마 좀 한적한 곳을 찾았나 했더니 여기도 글렀군.”
“장소를 옮깁시다. 지형의 면적은 제일 넓지만, 그만큼 트롤의 개체 수도 많아요.”
“그래야겠지. 전원 지금 당장 작열탄을 꺼내라!”
곧장 열다섯의 정예 팀원들이 허리춤을 휘감은 합금 벨트로 손을 가져간 순간.
딸깍.
벨트의 한 부분이 따로 분리됨과 동시에 콩알 탄 크기의 폭약이 쥐어졌다. 그들이 버튼을 누르자 폭약에 불빛이 들어왔다.
“투척-!”
그랜트의 고함이 검림을 울리기 무섭게, 팀원들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폭약, 그러니까 작열탄을 던졌다.
펑-! 퍼버버벙-! 콰-앙!
폭발은 크지 않았다. 군용 수류탄의 절반도 안 되는 위력.
하지만 행동을 방해하는 나무와 수풀, 그리고 대여섯 가량의 트롤 무리를 모조리 화마(火魔)에 집어넣기엔 충분했다.
은은하게 어두웠던 검림은 눈 깜짝할 사이에 새빨간 불길에 휩싸였다.
“……3등급치고는 만만치 않은데.”
망막이 따가운 열기에 그랜트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다 문득, 뭔가가 생각난 그랜트가 목소리를 높이며 물었다.
“한대성! 한대성 어딨어?”
안 그래도 이토록 고전한다는 사실이 이상하던 참이다.
지금 자신들이 누구랑 ‘협력’ 중인지 자각한다면 더더욱.
“한대성 어디 있냐고!”
연신 고성을 질러대던 그랜트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그가 애달프게 찾던 대성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앤드류가 난색을 보였다.
“어, 없는데요. 이상하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이 멍청한 새끼, 도중에 딴 길로 샌 거 아니야?”
묘한 적막이 감돌았다.
그때, 뭔가 이상한 사실을 알아차린 데이브가 입을 열었다.
“저, 그랜트?”
“뭐야.”
“……지금 인원수가 한 명 부족합니다.”
“뭐?”
그랜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당장 이곳에 있는 <컨트리>의 팀원 수를 헤아렸다.
“열둘, 열셋, 열넷. ……열넷?”
자신을 제외하면 열다섯이어야 할 숫자가, 하나 줄어 있었다.
***
“끅, 끄억……! 끅……!”
“아프지 않아. 엄살 피우지 마. 소리 지르지도 말고.”
검림의 어둠 속 어딘가.
대성은 입이 틀어막힌 채 눈물을 흘리는 남자에게 조용히 할 것을 당부했다.
에드워드라는 이름을 가진 <컨트리>의 S급 사냥꾼이었으나, 그딴 사실은 대성에게 있어서 아무래도 좋았다.
에드워드, 그는 엄밀히 말해 입이 틀어 막힌 게 아니다.
가느다란 에테르의 실이, 당장이라도 잘라낼 것처럼 그의 목을 휘감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목울대를 달싹대면 그대로 목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격전이 벌어지기 직전, 외딴곳으로 떨어져서 <염사>의 실로 팀원 중 하나를 낚아채는 건 어렵지 않았다.
“흑……. 흐윽……!”
두려움의 눈물을 쏟아내는 에드워드의 심장 위로, 대성의 우악스러운 손이 포개어졌다.
그 순간, 에드워드의 심장 어림에서 새카만 그림자 같은 것이 흘러나와 대성의 손을 휘감았다.
[<분신>의 권능이 발동됩니다.]
<권능 정보>
분신
[대상과 같은 형상을 한 존재를 수제로 제작합니다.]
[분신의 원본이 될 대상의 심장에 손을 얹고 10초간 ‘복사’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분신체는 최대 3분간 유지 및 조종 가능하며, 최소 300m 반경 내에 권능의 행사자가 상주해야 합니다.]
이른바, ‘도플갱어’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10초가 지나고 ‘복사’를 마친 대성은 검게 물든 손을 옆으로 뻗었다.
그러자 색조가 빠져나가듯 그의 손에서 흘러나간 검은 그림자가 빠르게 인간의 형상을 갖췄다.
에드워드와 똑 닮은 모습.
믿기지 않는 광경을 본 ‘원본’이경악하며 눈을 홉떴다.
성공적으로 ‘도플갱어’가 만들어진 것을 확인한 대성이 <염사>의 실과 이어진 왼손에 힘을 줬다.
“넌 이제 필요 없어.”
냉담한 목소리가 흘러나온 순간.
콱-! 콰득-!
“끄, 읍……?!”
에드워드의 온몸에 휘감긴 <염사>의 실이 한층 더 깊숙하게 그의 피부를 파고들었다.
젖은 걸레를 쥐어짜는 것처럼 그의 전신에서 피가 뿜어졌다. 밀가루를 뒤집어쓴 것처럼 에드워드의 혈색이 창백해졌다.
실핏줄이 터진 두 눈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피가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뇌가 맛이라도 간 건지 비명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콰드득-!
그리고 피 냄새를 맡은 지척의 나무가 촉수 다발 같은 줄기를 뻗어 단숨에 에드워드를 낚아챘다.
콰직-! 콱-! 서걱!
무수한 칼들이 움찔거리는 에드워드의 몸을 난도질했다. 피와 살이 마구 솟구쳤다.
“나 말고 다른 분신체를 조종해 보는 건 처음인데.”
뒤에서 조각조각이 나는 에드워드 쪽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대성이 도플갱어를 보며 중얼거렸다.
화르륵-.
그때,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불길이 퍼져나가는 장면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대성에게는 저것이 마치, 나머지 먹잇감이 이곳에 있다는 걸 알리는 봉화(烽火)처럼 보였다.
***
저벅.
있는 대로 민감해진 <컨트리> 팀원의 귀에는 그 나직한 발소리가 크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누구야!”
기민하게 자세를 잡은 그랜트는 발소리가 울린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이내 측면의 어둑한 숲길 사이로 사람 한 명이 걸어 나왔다.
“저, 접니다, 저. 에드워드라고요.”
에드워드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양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채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식은땀 나는 긴장감이 조금 풀어지는 것도 잠시, 그랜트가 날카로운 어조로 성을 냈다.
“이 새끼가, 인원수 한 명 모자라서 식겁했잖아.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던 거야?”
“마, 말도 없이 전열에서 이탈한 건 죄송합니다. 근데 저, 그놈이 먼저 딴 길로 몰래 빠지는 걸 발견해서…….”
“그놈? 그놈이라면 한대성?”
“예. 그래서 따라가 봤더니, 그 새끼. 아예 저희랑 떨어져서 혼자서 사냥할 생각인가 봅니다.”
에드워드의 보고를 들은 그랜트가 있는 힘껏 인상을 찌푸렸다.
건방진 놈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독불장군일 줄은 몰랐다. 혼자서 행동할 거면 애당초 ‘협력’ 요청엔 왜 응한 건지.
‘아니. 오히려 잘 된 걸지도 몰라.’
하지만 그런 돌발 행동이 어떻게 보면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었다.
애초부터 게이트를 공략하려고 여기서 이러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놈 눈치 볼 것 없이 작전을 짤 수 있겠군. 안 그래도 좀처럼 타이밍이 안 보여서 곤란했던 참인데.”
사냥감이 곁에서 사라진 대신, 더 유연하게 암살 기회를 도모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 에드워드가 눈치 빠르게 본인이 모습을 드러냈던 방향으로 손가락을 쭉 뻗었다.
“그놈은 제가 가리키는 방향 숲길 근처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방금까지 계속 확인하고 오는 길이니 아마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겁니다.”
“좋아.”
먹잇감이 어디에 있는지 알았으면 게임 끝. 이제는 숨을 죽인 채 실행에 옮기기만 하면 된다.
다만 한 명을 암살하기 위해 열여섯이 통째로 움직이는 건 들켜버릴 공산이 크다.
“조를 2개로 나눈다. 너부터 너까지는 나랑 숲길의 정면 방향으로 쭉 돌아가서 놈의 경로를 막고. 나머지 인원은 앤드류를 중심으로 해서 놈의 배후를 노리도록. 앞뒤로 놈을 압박하는 거다.”
행여 그놈이 기감으로 알아채지 못하도록, 그랜트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조용히 명령을 내렸다.
팀원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
에드워드의 말대로였다.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향하니 얼마 안 가 대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앤드류 조(組)’는 먹잇감을 눈에 담자마자 일정 간격을 두고 민첩하게 흩어졌다.
그렇게 총 여덟 명의 암살자가 검림에 녹아들어,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대성을 지켜보았다.
‘눈치 못 챘어.’
앤드류는 확신했다. 놈은 멈칫거리거나 귀를 쫑긋거리는 기색도 없이, 똑같은 템포로 자연스럽게 걷고 있었으므로.
슥.
칼날이 적은 기둥 뒤로 엄폐한 앤드류가 양옆에 선 레인저에게 손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앤드류의 손가락이 숫자 ‘3’을 표시했다. 그리고 하나씩 접혔다.
3, 2, 1.
“……!”
세 명의 레인저가 동시에 움직였다. 도합 3기의 크로스보우가 엄폐물 밖으로 몸뚱이를 내밀었다.
퓩-! 퓩-! 퓩-!
오러를 실은 화살촉이 대기를 갈라내며 날아갔다. 세 발 모두 경이롭게도 목표물의 급소를 정확히 파고들었다.
콱! 콰곽-!
완벽한 명중. 먹잇감의 몸에 화살이 꽂히는 걸 눈에 담은 앤드류가 쾌재를 질렀다. 그는 암살이 성공했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스으으-.
화살에 맞고 쓰러진 대성의 몸이 그림자처럼 흩어지기 전까진.
“응?”
앤드류를 비롯한 전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들이 지금 뭘 잘못 본 건가 싶었던 그들이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하던 가운데.
“흡?!”
1초도 안 되는 짧은 비명.
다른 이들이 화들짝 놀라며 비명이 들려온 방향을 일제히 돌아봤다.
또.
한 명 없다.
그 사실을 확인한 이들의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도 잠시.
퍼걱.
후두둑.
갑자기 그런 소리와 함께, 팀원 중 한 명의 머리 위로 끈적거리는 것이 쏟아졌다.
“웃……! 이런 씨, 뭐야……?!”
정체 모를 뭔가를 뒤집어쓴 팀원이 소스라치며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그러자 이상한 게 묻어나왔다.
새빨간 피.
그리고 덩어리진 그것은, 이 어둠 속에서도 확연히 그 형태가 보이는 사람의 잘린 ‘턱’과 ‘귀’였다.
“……어?”
놀람도 한순간뿐.
콰드득-!
인간의 피를 본 근처의 나무가 일말의 여지도 없이 날카로운 줄기를 뻗어왔다.
“어? 으? 으아아악-?!”
칼날이 돋친 줄기에 온몸이 휘감긴 팀원의 피부가 뜯겨나갔다.
아연한 상황에 잠깐 굳어있던 앤드류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곤 발화의 채찍을 휘두르려고 했다.
콱-!
“끅……?!”
칠흑을 뚫고 어디선가 날아온 단검이 그의 손목을 꿰뚫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울긋불긋한 힘줄이 잘려나가자 앤드류는 손에서 채찍을 떨어뜨렸다.
“으윽, 크흐윽-?!”
손목이 절단되는 고통을 참지 못했던 앤드류가 환부를 부여잡은 채 무릎을 꿇었다.
지금 그의 머릿속은 혼돈과 절망으로 가득 찼다.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전원! 당황하지 말고 적의 위치를 파악-.”
그래도 어떻게든 이 절망적인 상황을 헤쳐가야만 했다. 두려움을 삼킨 앤드류가 환부에서 시선을 떨어뜨린 뒤 고개를 들며 그리 외쳤다.
“…….”
그리고 그곳은 온통 피바다였다. 암흑에 뒤덮은 검림이 새빨갛게 보일 정도로.
인간의 잘려나간 사지들이 길거리의 쓰레기처럼 데구르르 굴러다니고 있었다.
잠깐 손목의 상처를 확인한 그 짧은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허, 억…….”
앤드류의 호흡이 가파르게 변했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솟구쳤다. 핏기가 쭉 사라진 안색이 새파래졌다.
“부, 부단장님…….”
절박한 목소리가 들렸다. 흐려진 시야로 눈앞의 지옥을 쓸어보던 앤드류가 목소리가 울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딱 한 명 남은 A급 팀원이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사시나무처럼 파들파들 경련하고 있었다.
A급 팀원이 미아가 된 어린애처럼 떨리는 어조로 말했다.
“저, 저, 저 좀 살려 주십-.”
찌이이잉-!
칼로 쇠를 긁는 듯한 소음과 함께 팀원의 몸이 위로 솟구쳤다.
앤드류의 눈길 또한 함께 딸려 나가듯이 위로 향했다.
짧은 찰나.
앤드류는 보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
가느다란 실 같은 것이, 검림을 내리쬐는 월광(月光)을 받아 잠깐 번뜩이는 것을.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엉킨 실들 사이로 팀원의 신형이 파고든 순간.
퍼걱.
그의 몸이 갈기갈기 잘렸다.
조각난 사지와 함께 핏물에 젖은 내장이 땅에 떨어졌다.
“아……. 아……!”
의미 모를 괴성을 흘리는 앤드류의 가랑이에서 물소리가 새어 나왔다. 실금(失禁)한 것이다.
공포로 뒤덮였던 그의 얼굴은 이내 웃음을 그렸다. 입가가 비틀리고, 갈라진 목소리로 실소가 흘러나왔다.
악몽이다.
이건 악몽이야.
이런 게 진짜일 리가 없어.
-슥.
뭔가에 묶인 그의 몸이 천천히 위로 솟기 시작했다.
-저벅. 발소리가 이어졌다.
“그 표정이야.”
나무 꼭대기와 이어진 왼손의 실을 천천히 안쪽으로 끌어당기며, 대성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가 팔을 당길 때마다 앤드류의 몸은 점점 나무 꼭대기 사이로 엉킨 실들의 방진과 가까워졌다.
교수형에 처하는 죄수의 모습이 이랬을까.
“그 표정이 보고 싶었어.”
마지막으로 실을 당긴 순간.
퍼걱.
후두둑.
앤드류 또한, 다른 팀원과 같은 운명을 맞이하였다. 갈가리 분해된 그의 잔해들이 아래로 떨어졌다. 피 분수가 폭우처럼 쏟아져 내렸다.
콰드득-!
사방의 나무들이 바닥에 흩어진 사지 조각들을 한번 더 난도질했다.
토사물을 주워 먹는 비둘기처럼.
“그게 내가 너희들을 한꺼번에 죽이지 않는 이유다.”
절반 끝났고.
절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