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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싶었던 대성은 재차 게이트로 몸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게이트와 몸을 겹치자 현실의 광경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일 뿐, 이세계로 진입하지는 못했다.
한편, 스마트폰을 확인하던 성찬호가 문득 어떤 사실을 발견하고는 입을 열었다.
“여기뿐만이 아니야. 다른 곳에서도 제보가 들어오고 있어.”
성찬호의 휴대폰에는 KHA 사이트가 떠올라 있었다.
사냥꾼의 민원 접수를 위해 개설한 전용 게시판에서, 글들이 하나둘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예약했던 게이트에 입장이 안 되고 있습니다.」…… 다른 곳도 똑같은 모양인데?”
“…….”
전국적으로 공통된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게이트 진입 불가.
이 갑작스러운 사태가 벌어진 원인이 아예 짚이지 않는 건 아니다.
‘틀림없다. 분명 혼세의 멸망과 무슨 관련이 있어.’
대성은 얼마 전에 보았던 라미쉬의 기억을 떠올렸다.
엄밀히 따져서, 게이트는 진짜로 이세계와 통하는 입구가 아니다.
게이트의 정체는 혼세의 기신 족이 만든 기계 장치, ‘오브’.
그리고 오브 속에 있는 필드는 어디까지나 기신 족이 인위적으로 창조한 가상 공간에 불과하다.
‘오브를 제어하고, 생성 권한을 손에 쥔 건 기신 족이야.’
하지만 혼세가 멸망하면서, 그 권한을 지니고 있던 기신족도 죽음을 맞이했다.
그렇다면.
‘지구에 방치된 오브…… 게이트가 기신 족의 멸망을 말미암아 어떠한 오류가 생긴 게 분명해.’
그것 말고는 달리 떠오르는 가설이 없었다.
아니, 아마 그 예상이 맞으리라.
다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
‘그저께 확인했던 정보에는 이런 게 안 적혀 있었는데?’
어째서 이런 중요한 사실을 상점창의 정보가 알려주지 않았는가. 그게 좀 의문이었다.
이때, 절대자가 혼란에 빠진 모습을 두고 볼 수 없었는지,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플라이가 불쑥 말을 건네왔다.
[아마 4순위쯤으로 중요한 정보라 시스템이 감지하지 못했을 것으로 사료되나이다. 주군이시여.]
‘……그래.’
생각보다 단순한 이유라 대성은 맥이 빠졌다.
참고로 3순위 정보가, 남자친구와 헤어진 지수가 대성에게 애꿎은 화풀이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중요도의 경중(輕重)을 따져보니, 확실히 모으는 데 어려움이 없는 생명석보다 가족에 관한 정보가 더 무겁기는 했다.
‘그럼, 당장 생명석을 모을 방법은 없는 건가?’
아니. 만약 이 오류 현상이 영구적으로 이어지는 거라면 ‘당장’이 아니라 ‘앞으로도’ 생명석을 모으지 못하게 된다.
‘젠장. 그건 좀 곤란한데.’
기껏 절반 넘게 수집했더니 도중이 끊긴다고 하니 짜증이 치밀었다.
왠지 귀찮음을 감수했던 게 수포로 전락하는 기분이었다.
‘대체할 방법이 필요해.’
물론 반드시 <접속>의 권능을 해금할 필요는 어디에도 없었다.
다만 궁금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여기서 멈추는 건 한번 끝장을 보지 않으면 절대 안 풀리는 그의 직성이 용납하지 못했다.
‘방법이 없지는 않아. 통할지 말지는 확인하기 전까진 모르지만.’
게이트가 쓸모없어졌다는 걸 알아차리기 무섭게, 다른 대체 수단이 그의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대성이 생각에 잠기는 사이, 성찬호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하, 이게 대체 뭔 일이람. 대성아, 일단 이렇게 됐으니 낙찰 비용부터 도로 환불받자.”
“환급 처리는 찬호 너한테 맡긴다. 나 먼저 가 볼게.”
“뭐?”
먼저 가 본다니?
그렇게 물으려던 성찬호가 대성 쪽으로 눈길을 돌리던 찰나.
[<한대성의 섬멸룡>이 구현의 인에서 소환됩니다.]
화르륵-!
인(印)이 그려진 대성의 손바닥에서 불꽃이 세차게 뿜어졌다.
이윽고 불꽃이 섬멸룡의 형상으로 굳어지자, 바리케이드 밖의 구경꾼들이 탄성을 터뜨렸다.
“와, 씨.”
“실제로 보니 지리겠다, 야.”
모두가 눈을 빛내며 휴대폰을 꺼내 촬영 버튼을 연타하는 사이, 성찬호가 난색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어, 어딜 가려고?”
“오피스텔로 먼저 가는 거야. 천천히 따라와.”
“뭐 급한 일 있냐?”
“빨리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후-웅!
섬멸룡이 날개를 펄럭이며 창공으로 날아올랐다.
응암동에서 목동에 있는 오피스텔까지 도착하는 데는 3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아예 건물 전체가 대성의 소유였기에 보는 눈이 있을 수가 없는 장소.
그는 거리낌 없이 판테온으로 통하는 문을 소환했다.
‘어디…….’
판테온으로 들어온 대성은 지체하지 않고 일지와 마주 섰다.
‘확인해 보자고.’
과연, 판테온이 구현한 지옥의 마수를 죽여도 생명석이 나오는지 말이다.
되도록 한 번에 수집률을 100% 찍을 수 있는 필드면 더할 나위가 없을 터.
그리고 그가 아는 지옥의 필드 중에서 제일 적당한 곳은 하나뿐이다.
‘거미 계곡.’
대성은 곧장 시스템에 명령을 내려 일지를 활성화했다.
[절대자의 명령을 수행합니다.]
[46p: -14년 93일에 입장한 지역에 재 입장 합니다.]
순백의 공간이 변이를 거듭하는 것도 잠시.
음습한 바람이 그의 머리칼을 스침과 동시에 어둠의 협곡이 펼쳐졌다.
화륵-!
업화대검을 구현하면서 대성이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사주 소환.”
[새끼 사주 100마리가 필드에 재현되었습니다.]
아예 100마리쯤 태워 죽이면 남은 수집률도 마저 채워질 터.
물론 지옥의 마수도 죽으면 생명석을 뱉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긴 하지만.
사각-. 사각-.
말 그대로 벌레가 기어 다니는 소리가 협곡의 어둠을 한층 더 음산하게 만들었다.
400쌍의 보랏빛 안광이 밤하늘의 별빛처럼 번뜩였다.
끼이-?
그때.
새끼 사주들이 멈칫거렸다.
자신들이 상대해야 할 적이 충성을 다해 모시는 지옥의 군주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기세등등하게 어둠을 활보하던 다리들이 망설임을 표하듯 경련했다.
“그래. 귀찮게 하지 말고 그렇게 가만히 있어.”
저쪽에서 먼저 주인을 알아보고 공격해오지 않는다면 환영할 만한 일.
100마리의 새끼 사주와 마주한 대성은 머리 위로 대검을 세웠다.
“아플 새도 없이 끝내줄 테니.”
끼이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에 사로잡힌 새끼 사주들이 애달픈 비명을 흘리기 무섭게.
[‘업화’ 모드의 첫 번째 특수 스킬이 발동됩니다.]
[특수 스킬 : <격노>]
잔상을 그리며 떨어진 대검이 일대를 붕괴시킬 기세로 화염의 광풍을 쏘아냈다.
화-악!
그 일격에 휘말린 새끼 사주들은 이미 생을 포기한 참이었는지 비명도 지르지 않고 불타 없어졌다.
새카만 밤의 협곡이 붉은빛으로 달아올랐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대검에서 분출된 불꽃 때문만은 아니었다.
[‘차원 종족의 생명석(x100)’을 획득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재가 된 새끼 사주들의 유해 위로 붉게 발광하는 생명석.
그 에메랄드 모양의 괴석이, 협곡의 짙은 어둠을 환하게 밝혔다.
“진작 이럴 걸.”
판테온이 구현한 마수에도 생명석은 나타났다.
정확히 100개의 생명석을 한꺼번에 수거한 그의 앞에, 보람 넘치는 글귀가 적힌 메시지가 떠올랐다.
[현재 수집률: 100%]
[권능의 정보 해금에 필요한 조건을 모두 달성하셨습니다.]
펄럭-!
대성은 곧바로 <더 북>을 펼쳐 권능의 정보를 확인했다.
<권능 정보>
접속
[아득한 역사를 거쳐 오며 발전해온 헥카르 영적(靈的) 비술(秘術)의 최고 경지.]
[차원 종족의 피와 살로 만들어진 붉은 보석은 곧 은하계의 통로를 여는 열쇠가 되어 사용자를 무수한 갈림길 앞으로 안내할 것입니다.]
[다원 우주(Multi-universe)와 이어진 플레인 포탈(Plane portal)에 접속할 수 있습니다.]
[해당 권능을 사용한 뒤엔 사용자의 영혼에 막대한 부하(負荷)가 가해집니다.]
대성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메시지는 길고 장황했지만, 동시에 난해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다원 우주의 길과 연결된 플레인 포탈로 접속할 수 있다, 정도.
그것을 제외하면, 손에 꼽기도 힘든 나머지 정보에 관한 얘기는 단 한 줄도 나와 있지 않았다.
‘확실한 건 단순히 적을 공격하는 데 쓰이는 권능은 아니란 건데.’
직접 사용해보기 전까지는 그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 종류였다.
정보를 해금했다는 사실보다도, 일단 권능의 사용이 가능해졌다는 사실에 의의를 둬야 할 판.
그러나 이 모호한 힘을, 단순히 궁금하다는 이유만으로 사용해도 될지 망설여졌다.
게다가 마지막 메시지.
영혼에 막대한 부하가 걸린다는 경고성 문장도 신경 쓰였다.
‘신중해야 한다.’
애당초 쓰지 않을 거면 생명석을 모을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고생한 게 아깝다고 해서, 영혼에 뭔가 문제가 생긴다는 경고를 가벼이 여길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그는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그때.
상념과 갈등에 짓눌린 그의 앞에서 돌연 메시지가 생성되었다.
[판데모니움의 마수들이 절대자의 결단을 기다립니다.]
언제 한번, 가급적이면 조용히 하고 있으라는 대성의 불호령이 떨어진 뒤로.
정말로 조용히 하고 있었던 판데모니움의 마수들이 오래간만에 침묵을 깨고 그를 향해 신호를 보내 왔다.
‘내 결단을 기다린다고?’
저들이 말하는 결단이란 건 어느 쪽을 말하는 걸까.
사용하는 쪽? 사용하지 않는 쪽?
[판데모니움의 마수들은 절대자께서 그 어떤 결단을 내리시든 존중할 준비가 됐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주체적인 선택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입을 다물고 있겠다는 의미였다.
“그래?”
덕분에 대성은 흔들리지 않고 사고를 전개해 나갈 수 있었다.
장고(長考)가 하염없이 이어지던 그때였다.
[어떤 마수가 절대자의 영혼에 절대 해가 가지 않도록 하겠다며 맹세를 전합니다.]
[다른 마수들이 그 맹세에 동조합니다.]
판데모니움의 마수들은 자신들이 추앙하는 군주의 망설임을 너무나도 잘 헤아렸다.
그렇기에 그들은 저런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너희들이 어떻게 내 영혼을 지켜 주겠다는 거야.”
정체 모를 공간에서 신호만 간간이 보내오는 존재들이 그런 맹세를 해봤자 전혀 신빙성이 없었다.
판데모니움의 마수들 또한 설명할 방법이 마뜩잖았는지 침묵했다.
그들의 맹세, 그들의 신호와는 별개로.
짧지 않은 고민 끝에, 대성은 최종 선택을 내렸다.
‘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권능은 쓰는 편이 좋았다.
설령 영혼에 어떤 위해가 생긴다고 해도 말이다.
‘다원 우주와 이어진 곳으로 갈 수 있다면, 천상에 관한 비밀과 한 걸음 더 가까워질지도 몰라.’
2년간 여러 차례 천상의 초월자를 때려잡았다.
그러나 그들을 협박해 ‘주신’이란 자에 대한 정보를 캐내려고 할 때마다 번번이 실패했다.
협박에 못 이긴 초월자가 정보를 실토하려고 할 때면, 어김없이 ‘사도’란 자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초월자들을 원격으로 터뜨려 죽였기 때문이다.
“…….”
또한.
라미쉬와 엘하임의 기억에서 보았던 풍경들.
그곳에선 천상의 존재들이 거대한 쇠사슬로 우주의 차원들을 하나씩 봉인했다.
그 쇠사슬이 지구로 닥쳐오지 않는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선, ‘천상’에 관한 정보가 필요하다.
그리고 <접속>의 권능은 그 비밀에 다가갈 수 있는 또 하나의 수단이라는 강렬한 직감이 스쳤다.
“……좋아.”
결심을 다진 대성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접속>의 권능을 사용했다.
[권능, <접속>이 발동합니다.]
[플레인 포탈로 접속합니다. 접속엔 14일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플레인 포탈로 접속 중.]
[남은 시간: <336:59:58>]
“뭐?”
‘남은 시간’이란 게 뜨는 것을 확인한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
2주를 기다려야 한다는 설명 때문에, 몸을 지배하던 긴장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허무함 가득한 한숨이 대성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미리 언급하던가.”
괜히 긴장의 끈을 조였다.
더는 이곳에 머무를 이유를 찾지 못했던 대성은 곧 현실로 돌아갔다.
***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뉴욕. 국제 헌터 연맹 본부 앞.
그곳엔 각지, 각국에서 몰려온 방송국의 기자와 사람들로 인해 발 디딜 틈 하나 없었다.
“10분 남았네.”
“스탠바이 시작해! 한대성 사냥꾼의 1초라도 놓쳐선 안 된다!”
“앵글 끝내주는 거로 잡아! 특히 한대성 사냥꾼이 용 타고 내려오는 거! 그것만 가까이서 잘 찍어도 시청률 폭발한다!”
다른 방송국으로부터 0.1%의 시청률이라도 뺏어 와야 하는 기자들 사이엔 전운이 감돌고.
“사카이 히로시 총장은 지금이라도 청문회를 취소하라!”
“청문회 반대! 청문회 반대!”
“이게 세계를 구한 영웅한테 할 대접이냐!”
구름처럼 몰려든 시민 중 몇몇은 ‘청문회 반대’라고 적힌 피켓을 들며 목청껏 시위 구호를 외쳤다.
대성이 청문회에서 모든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찬동 의견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청문회가 열린다는 사실 자체를 수긍할 수 없다는 반대 여론이 훨씬 압도적이었다.
청문회장.
16개국의 협회 관계자와 대표들, 그리고 사카이 총장이 회장 내에 딱 하나 남은 빈자리를 응시했다.
다름 아닌, 대성이 곧 앉아야 할 증인석이었다.
‘오늘, 그 수상쩍은 민낯이 하나도 남김없이 까발려질 것이야.’
그를 옹호하든, 옹호하지 않든, 추궁할 거리는 많다 못해 넘쳤다.
사카이 총장은 과연 그가 어떤 증언을 해올지, 어떤 그럴싸한 변명을 할지 내심 기대했다.
‘그놈, 몬스터든가 아니면 몬스터와 내통하는 인간이 분명해.’
그리고 최근에 게이트에 진입이 안 되는 이변이 생긴 것도, 분명 대성이 무슨 수작을 벌였을 거라는 막연한 예감이 들었다.
그것까지 포함해 모조리 캐물으리라. 사카이 총장은 생수를 들이켜며 그렇게 다짐했다.
이윽고.
시침이 오후 5시 정각을 찍었다.
예정대로라면 대성이 연맹 본부로 도착해야 할 시간이다.
“…….”
그런데 왤까.
그가 본부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일절 들려오지 않았다.
“뭐야?”
혹시 조금 늦는 건가 싶어서 5분을 더 기다려보았다.
하지만 공석이 채워지기는커녕.
청문회장의 문이 열릴 낌새조차 없었다.
“뭡니까?”
사카이 총장이 왼쪽 사이드에 앉은 박정호 협회장을 노려보며 물었다.
박정호도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공문 확실히 보냈습니까?”
“확실히 보냈습니다.”
“답은요?”
“답은…… 없었습니다.”
“…….”
안 그래도 주름 가득했던 사카이 총장의 얼굴이 험악하게 돌변하며 많은 주름살이 생겨났다.
“……연락해 보시죠.”
“네, 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양해를 구한 박정호가 급히 휴대폰을 꺼냈다.
땀방울에 젖은 손이 대성과 직통하는 번호를 꾹꾹 눌렀다.
***
뚜르르-
대성의 휴대폰 액정에 ‘박정호 협회장’이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뭐해? 받아 봐.”
“…….”
지수가 그리 말했지만, 대성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쉼 없이 벨을 울리는 휴대폰을 잠깐 응시하던 대성의 눈길이 앞으로 향했다.
그곳엔.
“아이고, 공기가 끝내주네.”
“오길 잘했다. 그치, 엄마? 손윤섭 그 개새끼 때문에 쌓였던 스트레스가 확 풀리네. 어우!”
“너, 싸그리 잊겠다면서 일주일째 걔 얘기인 거 아니? 그리고 엄마 앞에선 말 좀 곱게 해라.”
지수와 혜정이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며 삼겹살을 굽고 있었다.
대성네 가족은 공기가 맑은 어느 산중에서 캠핑을 즐기고 있었다.
오랜만에 온가족이 즐기는 나들이는 썩 나쁘지 않았다.
-삑.
대성은 요란스레 울리는 휴대폰의 전원을 아예 꺼 버렸다.
지수가 불판 위에 자글자글 구워지는 삼겹살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문득 물었다.
“무슨 전환데 그래?”
“스팸.”
짤막하게 대답한 그는 지수의 옆에 나란히 쪼그려 앉아 익어가는 삼겹살을 구경했다.
혜정이 집게로 고기를 뒤집으면서, 약간 근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근데 대성아.”
“어.”
“……네가 여기에 있어도 괜찮겠니? 다 좋은데 엄마는 그게 좀 살짝 걱정이…….”
집에 TV가 있다면 절대 모를 수가 없는 청문회 얘기였다.
자기 아들이라면 어련히 알아서 하리라 믿고 나들이에 따라온 혜정이었으나, 그래도 영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괜찮냐고 물어볼 때마다 이어지는 대성의 대답은 너무나 한결같았다.
“내가 거길 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