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
100
산중의 계곡에서 가족들과 즐기는 캠핑은 무척이나 즐거웠다.
지구로 귀환한 지 2년.
절대 짧지 않은 그 시간 동안, 대성은 지옥을 벗어난 게 무색하리만치 정말 끊임없이 싸웠다.
가족과 행복을 나눈 시간보다, 아마 판테온을 오가고 혼세의 무리와 싸운 시간이 곱절은 더 많으리라.
그렇기에 가족과 계곡물을 구경하며 맛있는 고기를 먹고, 묵은 이야기를 나누는 그 소소한 시간이 대성은 너무나도 행복했다.
“한대성 씨, 지금이라도 저희랑 함께 연맹 본부로 가시죠.”
“…….”
그리고 그 행복했던 기분은 그의 집 앞에서 진을 치고 대기하고 있던 KHA의 감시과 직원이 자신에게 말을 건 순간 연기처럼 증발해버렸다.
“대, 대성아.”
“오빠…….”
사납고 거대한 풍채에 정장을 입은 사내 무리가 험악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혜정과 지수가 새파래진 낯빛으로 대성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슥.
대성이 태연한 얼굴로 둘의 어깨에 손을 얹더니 말했다.
“엄마, 지수야, 먼저 들어가.”
“대, 대성아. 하지만…….”
“내 일이잖아. 내가 알아서 할게.”
그러나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을 듣고도 쉽사리 발걸음을 뗄 수 있는 부모는 많지 않은 법.
대성이 지수 쪽으로 눈짓을 하자,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혜정의 팔을 잡아끌었다.
“엄마, 우리 먼저 들어가자.”
“아…….”
엉거주춤한 걸음을 옮기면서 혜정은 한 번 더 대성을 돌아보았다.
감시과 직원들은 그 둘이 집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비켜주었다.
이내 타워팰리스의 거대한 부지 앞에는 대성과 십 수 명의 감시과 직원만이 남게 되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팀장, 이채호가 한 발짝 걸어 나오며 말했다.
“한대성 씨, 저희와 같이 뉴욕에 있는 연맹 본부로…….”
철컥! 철컥! 철컥!
무쇠가 무쇠를 올려치는 소리.
하지만 숱한 실전을 거쳐왔던 이채호는 그것이 권총의 슬라이드가 밀려나는 소리임을 단박에 깨달았다.
이채호는 하던 말을 끝맺지도 못한 채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보았다.
“뭐!”
뒤에 선 부하들이, 일제히 허리춤에서 뽑아낸 권총을 자신에게 겨누고 있는 광경을.
이채호가 떨리는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뭐, 뭐 하는 짓이야!”
“티, 팀장님. 그, 그게…….”
총을 쥐고 있는 직원들의 안색은 그다지 좋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조준 당한 이채호보다 더 짙은 당혹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저, 저희가 한 게 아닙니다.”
“뭐? 뭔 소리야, 그…….”
바로 그때.
누군가 자신의 심장을 움켜쥐는 듯한 오싹함이 그의 몸을 지배했다.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거다.”
“…….”
날카로운 목소리가 이채호의 귓전에 선명히 들려왔다.
누군가가 개미 한 마리 못 지나갈 정도로 가까이 접근하여 대성에게 말을 건넨 것이었다.
“지금, 내 약지의 ‘실’이 네 오른손과 저놈들 손가락에 이어져 있어.”
“무, 무슨 소리를…….”
“네가 손 하나 까딱하는 순간 방아쇠에 걸쳐진 저들의 손가락도 함께 움직인다. 그럼 어떻게 될지는 굳이 내가 말 안 해도 알겠지.”
“…….”
얼어붙은 이채호의 머릿속에 문득 어떤 장면 하나가 스치고 지나갔다.
바로, 빗발치는 총성과 함께 벌집이 되어 쓰러지는 본인의 모습이.
“그렇다면 이 경우에 네놈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사람은 누굴까? 나? 너? 아니면 쟤들?”
“윽…….”
“성질대로라면 너희들은 뼛조각 하나 남기지 못하고 죽었을 거다.”
지금 그 말이 그냥 뱉어보는 협박이 아님을 그들은 절감했다.
보이지 않는 힘에 지배당한 와중에 저런 선언이 들려온 이상, 협박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대성이 계속해서 말했다.
“근데 안 그럴 거야. 차분히 생각해보니 성질대로 하기엔 처벌이 너무 가혹하거든. 너희들도 어차피 윗대가리 명령을 받고 온 거잖아?”
“……. 그, 그렇습니다.”
“누구지? 박정호 협회장인가? 그렇다면 좀 서운한데.”
“저, 저희는 일단 서, 서은미 과장님 지시를 받고…….”
“서은미?”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다.
2년 사이, 대한민국에 새로이 나타난 두 명의 S급 사냥꾼 중 하나이자, S급에서 유일하게 협회에 소속되기를 자처한 여자.
‘제1 감시과 과장을 맡았다고 들었는데, 그럼 여기 있는 놈들은 감시과 세컨드쯤 되는 모양이군.’
사고가 거기까지 전개되는 순간, 어처구니가 없어져서 입가를 살짝 비틀었다.
‘나를 데려오는 데 세컨드를 써?’
얕잡아 보였다는 생각이 들자 화가 난다기보다는 그저 우스웠다.
어린애의 재롱에 진지하게 화를 내는 어른이 어디 있겠는가.
키이잉.
대성이 <염사>의 실이 묶인 약지를 미세하게 까딱거렸다.
나뭇잎이 바닥과 맞닿는 수준의 희미한 진동이 실과 실을 타고 감시과 직원들의 손가락에 전해졌다.
핏! 피빗-!
“엇!”
“윽!”
그러자 그들은 바늘에라도 찔린 듯한 따끔함을 느끼며 손에 쥐고 있던 무기를 떨어뜨렸다.
그와 동시에, 이채호 또한 자신의 심장을 옥죄던 위압감이 모조리 사라졌음을 느꼈다.
털썩.
그대로 맥이 탁 풀린 이채호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가.”
어느샌가 몇 걸음 뒤로 물러선 대성이 그리 말했다.
“그리고 나한테 용무가 있으면 너희 윗대가리한테 직접 오라고 해라. 아, 물론 지금부터 아예 찾아오지 않는 걸 추천하지만.”
그들 중, 지금 대성이 한 말에 토를 다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채호를 비롯한 감시과 무리가 허둥지둥 자리에서 벗어났다.
대성은 땅바닥에 널브러진 권총들을 훑어보더니 넌지시 말했다.
“쓰레기 치우고 가라.”
***
‘진짜 왔군. 거머리 같은 새끼들.’
베란다 난간에 몸을 기댄 채 흡연 타임을 가지던 대성이 나직하게 헛웃음을 흘렸다.
정장 차림을 한 검은 단발의 20대 여성이 선두에 서서 다른 정장 무리를 이끌고 있었다.
S급 사냥꾼, 서은미였다.
이렇게 아득히 높은 곳에서 멀리 내려다보아도 알 수 있었다.
아까 처음 왔던 놈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시커먼 것들이 떼로 몰려다니는 모습이 꼭 바퀴벌레가 따로 없군.’
물론 일반인들이나 그 ‘차원이 다른’ 포스에 겁을 먹겠지.
대성은 그 차원 위의 또 다른 차원에 선 존재였다.
‘귀찮게 뭐하러 내가 직접 불청객을 쫓아내야 하지?’
솔직히 말해서 상대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다.
심드렁하게 담뱃재를 떨어뜨리는 대성의 시선이, 저 아래 1층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서은미와 마주쳤다.
이내 날카롭게 눈썹꼬리를 올린 서은미가 목소리에 오러를 담아 당차게 고성을 내질렀다.
“한대성 사냥꾼! 지금 당장 이리로 나오십시오!”
‘정신 나간 년. 이 벌건 대낮에 사람들 앞에서 고래고래…….’
“KHA의 명령입니다-! 불복할 시, 당신께 책임이 따를…….”
드르륵, 탁.
고성방가가 듣기 싫었던 대성은 베란다 문을 아예 닫아버렸다.
무시는 해도 내버려 둘 생각은 없다. 집에 불청객이 왔으면 내쫓아야 하는 법이니까.
한편,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수는 근심의 감정을 넘어 이젠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혜정이야 아직 두 손을 꼭 모으고 조마조마했지만.
“와, 진짜. 개썅마이웨이 무대뽀도 이만하면 존경스럽다. 오빠, 이거 뒷수습 어떻게 하려고 그래?”
“적어도 엄마랑 너한테는 피해 가는 일 없게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보다.”
대성은 잠시 지수의 손목을 조심스레 잡아당기더니 거기에 채워진 시계를 뺐다.
당황한 지수가 물었다.
“이, 이건 왜?”
“보면 알잖아.”
“……. 뒷수습을 센티넬 아저씨가 하는 거였어?”
1년 전이었던가.
대성은 가족한테 더는, 자신이 선물해준 목걸이와 시계엔 소환수가 깃들어 있다는 비밀을 숨길 수가 없게 되었다.
디멘션 테이커는 여러 차례 대성의 가족을 노렸고, 그때마다 발라르크와 센티넬이 튀어나오는 판국에 어떻게 계속 비밀을 유지하겠는가.
처음에는 여러모로 복잡한 심경이던 혜정과 지수였으나, 그들이 소환수에게 익숙해지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특히 지수 같은 경우엔 말도 못 하는 센티넬한테 아저씨라는 호칭까지 붙일 정도로 적응했다. 친화력이 남다른 그녀답달까.
손목시계를 빙글빙글 돌리며 대성이 넌지시 말했다.
“미안. 좀 빌린다.”
“마음대로 하셔.”
드르륵.
대성은 닫아두었던 베란다를 다시금 활짝 열어젖혔다.
“1분 안에 내려오지 않으면! 저희가 직접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놀랍게도 서은미는 지치지도 않고 아직도 소리를 지르는 중이었다. 아니, 신경질이 뻗쳤는지 오히려 아까보다 목소리에 감정이 실렸다.
“가서 쫓아내.”
속삭이듯 말한 뒤, 대성은 베란다 밖으로 호쾌하게 시계를 던졌다.
그 의미 모를 행동을 본 서은미와 감시과 무리가 잠시 눈을 가늘게 떴다.
반짝.
한낮의 햇빛이 허공에 뜬 은색 손목시계를 화려하게 빛낸 순간.
화륵-.
[‘철성의 센티넬’의 로드가 해제됩니다.]
서은미가 휘둥그레 눈을 떴다.
“……. 응?”
헛것을 보는 걸까?
저 위에서 떨어지던 시계가 부지불식간에 커다란 철갑을 입은 거인으로 돌변하기 시작했다.
운석이 대기권을 뚫고 낙하할 때나 일어날 법한 돌풍이 수직으로 불어닥치기도 잠시.
쿠우우우웅!!
착지를 마친 센티넬의 주변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흙먼지가 자욱하게 퍼져나갔다.
단단한 아스팔트 바닥이 쩌적 소리를 내며 갈라지더니 파편이 거침없이 튀어 올랐다.
“…….”
서은미와 감시과 무리가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쿵, 쿵, 쿵.
흙먼지에서 걸어 나온 철성의 센티넬이 3m에 육박하는 거체를 그들 앞에 보였다.
센티넬은 말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맹수가 사람 말을 못 한다고 해서 인간을 압도하지 못하던가?
얼굴을 전부 덮은 검회색 투구 사이로 형형한 이채를 발하는 센티넬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물러서지 않으면 죽이겠다.’라는 매우 간단명료한 메시지를.
“하.”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렇게 나오시겠다?”
서은미에게는 그 메시지가 오롯하게 전달되지 않았다.
당황한 것도 잠시.
그녀는 조금도 주눅 드는 기색 없이 몇 발짝 걸음을 옮겨 센티넬과 간격을 좁혔다.
“한대성 사냥꾼이면 모르겠지만…….”
파지직!
체내에서 맹렬히 솟구친 오러의 광풍이 그녀의 몸을 뒤덮은 검은 정장을 태워냈다.
“그 남자가 부리는 소환수가 ‘한 마리’라면, 못 이길 것도 없지.”
먼지처럼 바스러지는 정장 너머로, 특수 제작된 택티컬 오러 아머가 휘황찬란한 위용을 드러냈다.
서은미가 한쪽 무릎을 살짝 굽히고 왼팔은 뒤로, 오른팔은 앞으로 뻗는 식으로 자세를 취했다.
맹전(猛戰)의 조짐을 느낀 감시과 무리가 허겁지겁 뒤로 물러섰다. 그것이 신호가 되었다.
쉭!
서은미의 신형이 사라지나 싶더니, 거뭇한 잔상이 뱀 꼬리처럼 길게 이어졌다.
‘속도 하나만으로 S급까지 치고 올라온 나다!’
척 보기에도 덩치가 육중한 센티넬은 절대 자신의 움직임을 따라오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 확신은 들어맞았다.
눈 한 번 깜빡일 사이에 센티넬의 뒤를 점한 서은미가 땅을 박차 도약을 펼쳤다.
‘두꺼운 갑주를 걸친 놈한테 맨주먹은 좋지 않겠지.’
어렵지 않게 3m를 뛰어오른 그녀는 센티넬의 어깨 위로 올라탔다.
그리고.
‘한 방에 끝낸다!’
1초도 안 되는 짧은 파공성과 함께 뻗어진 양손이 갈고리처럼 센티넬의 목과 머리를 움켜쥐었다.
고오오오!
서은미는 가열하게 휘몰아치는 오러를 양손에 응집시켰다.
“흡!”
우득!
기합과 함께, 그대로 센티넬의 목을 180도로 꺾어버렸다.
‘됐어!’
주먹으로 철을 여러 번 두드리기보다는 한 번의 힘으로 비틀어버리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서은미였다.
이 또한 엄밀히 따지면 맨손으로 철을 뒤트는 허무맹랑한 짓.
하지만 S급인 그녀에겐 통용되지 않는 상식이었다.
‘별거 없네.’
인간이든 소환수든 목이 반 바퀴 꺾였는데 살아남을 생물은 없다.
등허리 쪽으로 돌아간 센티넬의 투구를 바라보는 서은미의 얼굴에 승자의 뿌듯함이 떠올랐다.
지잉!
“어?”
침묵해 있던 센티넬이 붉은 안광을 번뜩이기 전까지는.
서은미가 갑주 위에 올라탄 채 아련함에 사로잡혔다.
그 짧은 틈을, 지옥의 고성을 지키던 최강의 파수꾼은 절대 놓치지 않았다.
센티넬은 목이 돌아간 상태 그대로 미늘창을 쥐지 않은 손을 들어 서은미의 정수리를 붙잡았다.
휙, 쾅!
“커헉?!”
그대로 서은미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폐부에 뭉친 숨결이 고통 어린 신음과 함께 그녀의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아까 센티넬이 바닥에 착지했을 때 생겨난 것 말고도 새로운 구덩이가 아스팔트 지면에 푹 파였다.
“쿡, 쿨럭!”
특제 오러가 몸을 감싸줌에도, 지금 충격으로 적어도 뼈가 다섯 개 이상은 금이 갔다.
터져 나온 헛구역질을 한 서은미가 아픔을 억지로 참아내며 대(大)자로 퍼졌던 몸을 다시 바로잡았다.
‘부, 분명 목이 꺾였을 텐데…….’
투구뿐만 아니라 그 속에 있던 것까지 한꺼번에 비틀어버리는 손맛이 확실히 느껴졌다.
하지만.
고작해야 이번 첫 대면 한 번으로, 그녀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센티넬은 등허리 어딘가에 새겨진 ‘핵’을 파괴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젠장. 다시 한 번…….’
신경을 헤집는 아픔보다도 소환수 한 마리한테 내동댕이쳐졌다는 데서 온 분함이 더 컸다.
거칠게 이를 갈던 그녀가 자세를 세우려던 그때.
쿵-!
“어, 헉?!”
다시 한 번, 그녀의 몸이 대자로 퍼질러지기 시작했다.
센티넬이 뭔가를 한 게 아니다. 오히려 그는 가만히 있었다.
서은미는 물론, 이 기현상을 구경하던 감시과 무리 중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뭐, 뭐, 뭐지?!’
위에서부터 무언가가 통째로 그녀를 짓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저벅저벅.
“후회할 짓은 애초부터 하지 말았어야지.”
대성이 1층에서 걸어 나오며 그리 말했다.
뭔지는 몰라도, 이 불가사의한 현상을 일으킨 범인이 저 남자임을 서은미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코끼리한테 짓눌리는 것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던 서은미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다, 다, 당신…… 여, 염력도 쓸 줄…… 아, 아는 겁니까?”
“글쎄.”
사실은 <더 북>을 통해 일시적으로 얻은 <중력>의 권능이지만.
그런 걸 말해줘도 이해할 상식과 지능이 저들에게는 없다.
대성은 찰거머리처럼 바닥에 달라붙은 서은미를 내려다보았다.
“윽, 큭!”
이 굴욕적이기 짝이 없는 구도에 서은미가 벌레 씹은 표정을 했다.
대성은 분해서 못 견디겠다는 게 훤히 보이는 그녀를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청문회 때문에 온 거면 잘 들어라. 나는 거기 갈 마음이 없다.”
“가, 갈 마음이…… 어, 어, 없다고 해……서! 될, 그, 그윽, 문제가…….”
“내가 너희들이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 하는 처지인가? 내가 너희들 새끼냐?”
“여, 여, 연맹 초, 총장의……. 끄윽! 명, 명령입니다…….”
“그럼 그 총장이란 놈을 내 앞으로 데려오던가.”
그렇게 말한 대성은 무릎을 낮게 숙인 뒤, 서은미의 귀에 얼굴을 가까이 댔다.
그리고 아까 처음 왔던 것들에게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아예 나를 찾아오지 않는 게 제일 현명할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