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옥에서 돌아온 한대성-102화 (102/180)

# 102

102

한국인 중에 저 검은 용의 정체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우와아아-!

절망의 끝자락까지 떨어졌던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며 두 팔을 치켜들었다.

동작대교 위에 낙오된 수백의 시민들 위로 섬멸룡이 공중을 누볐다.

머리 위에 바로 미사일이 스친 듯한 거친 돌풍이 사람들의 머리칼과 옷자락을 흔드는 한편.

‘한강 밑에 있던 오브에 이상 변동이 생기면서 거기에 투입되었던 놈이 튀어나온 건가.’

섬멸룡의 등에 올라타며 그리 생각하는 대성의 눈은, 아까부터 사어(死魚)와 난투 중인 크라켄에게 고정되었다.

오브, 그러니까 게이트 속 환경은 어디까지나 ‘조형’이지만 그곳에 있는 몬스터는 ‘진짜’다.

그런데 게이트에 오류가 생기면서, 거기 있던 몬스터가 이상을 보이는 가상 공간에서 튕겨 나온 것일 터.

‘한 마디로 저 크라켄은 낙동강 오리 알 신세라는 거군.’

구우우우-!!

사어 떼거지한테 시달리던 크라켄이 애처로운 비명을 흘리며 거체를 마구 뒤틀었다.

벌꿀을 뒤집어쓴 사람에게 벌떼가 한꺼번에 몰려드는 듯한 광경이다.

구우우-!

그 커다란 아가리 속 살덩이가 갈가리 찢기는 고통은 어마어마했다.

격통을 견뎌낼 수가 없었던 크라켄이 바짝 세워두었던 촉수를 힘없이 아래로 떨어뜨렸다.

“헉!”

“엎드려-!”

“으아아악-!”

하지만 힘이 없다는 건 어디까지나 녀석의 관점이지, 교량 위에 있는 사람들한텐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

이대로 촉수가 다리를 강타하다간 진짜로 교량이 전부 붕괴할지도 모른다.

떨어지는 촉수가 사람들의 시야를 폭발적으로 채우는 순간.

“히익-!”

사람들이 머리를 가린 채 바닥에 넙죽 엎어지거나 몸을 숙였다.

하지만.

촉수 다발에 사람들이 짓뭉개지는 참극은 일어나지 않았다.

움찔! 움찔!

사람들을 덮치기 전, 촉수 다발들이 전부 허공에 멈춰 간질이라도 걸린 듯 파들파들 떨고 있었으니까.

의아함도 잠시.

구우우-?!

크라켄이 하늘로 치솟았다.

교량을 둘러싸던 수십 가닥의 촉수들이 본체를 따라 위로 날아올랐다.

[권능, <염사>가 발동됩니다.]

꾸-욱!

열 손가락에서 실을 쏘아내며 크라켄을 들어 올렸던 그의 양팔엔 실핏줄이 잔뜩 불거져 올라왔다.

명주실로 트럭을 잡아끄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기행.

하지만 놈의 커다란 몸뚱이를 잡아 올리려면 낚시를 하듯이 <염사>의 실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문어 대가리 주제에 땀 좀 나게 하는데.”

그리 말하는 대성의 얼굴은 살짝 무거운 아령이라도 든 듯한 표정이었다.

보이지 않는 실에 묶여 옴짝달싹 못 하게 된 크라켄이 있는 힘껏 저항을 시도했다.

그러나.

“흠!”

대성은 짧은 기합과 함께 실과 이어진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부-웅!

크라켄이 더 높은 하늘 위로 공처럼 내던져짐과 동시에.

화르륵-!

빠르게 <염사>를 해제한 대성이 업화대검을 구현했다.

크오오오-!

그를 태운 섬멸룡이 최대 상승 지점을 찍고 떨어지는 크라켄과 거리를 좁혔다.

대성과 크라켄이 가까워질 때마다 업화대검에 타오르는 불길도 폭발하듯이 팽창을 거듭했다.

이내 대성과 섬멸룡의 눈앞까지 크라켄의 몸뚱이가 떨어진 순간.

콰가가각-!!

섬멸룡이 그대로 드릴처럼 신형을 회전시키며 크라켄의 피륙을 거칠게 파고들었다.

1초에 다섯 바퀴꼴로 섬멸룡이 폭풍처럼 회전할 때마다, 업화대검이 내뿜는 불꽃이 그 폭풍을 휘감았다.

멀리서 보면 마치 불의 소용돌이가 크라켄을 잡아먹는 것 같았다.

“와…….”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인데, 이랬구나…….”

5분 전까지만 해도 죽기 싫다며 괴성을 내지르던 사람들이 이제는 멈춰 선 채 불구경을 하는 해괴한 장관이 펼쳐졌다.

콰가가각-!

콰직-!

그리고 마침내.

불의 소용돌이를 만들어 내며 크라켄을 살점 하나 남기지 않고 태워버린 대성이 섬멸룡과 함께 다시금 그 찬란한 위용을 드러냈다.

동작대교를 파괴하려던 거대 괴수가 공중분해 되는 순간이었다.

우와아아아아-!!

다시 한번 사람들이 격렬한 함성을 지르며 영웅의 승리를 기뻐했다.

하지만 대성의 눈길은 손을 흔들며 환성을 보내오는 사람들을 향하고 있지 않았다.

“이건…….”

그의 눈이 보고 있는 건, 핏물로 번들거리는 손에 쥐어져 있는 어느 푸른 돌멩이였다.

방금 크라켄의 몸뚱이를 꿰뚫어버리는 도중에 발견하자마자 낚아챈 것이다.

‘에테르 코어는 아닌데.’

코어는 이것보다 훨씬 붉고 표면이 울퉁불퉁하니까.

그런데 이건 에테르 코어와 모든 게 정반대다.

돌멩이라기보다는, 사람에게서 떼어낸 벽안(碧眼) 같다고 할까.

‘이게 뭐지?’

지금까지 몬스터를 잡으면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아이템이다.

이 또한 게이트의 이상 변동에서 비롯된 현상 중 하나일까?

대성의 머리를 잠식한 의문이 3초를 이어지기도 전에 시스템 메시지가 해답을 주었다.

[허수 공간 ‘오브’의 원석, 오리할콘(Orichalcon)을 발견했습니다.]

푸른 돌멩이는 오리할콘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시스템은 이름만 알려줄 뿐, 결론적으로 이 원석의 정체와 용도는 알려주지 않았다.

‘오브의 원석이라면, 기신족과 무슨 관계가 있을 텐데.’

오브를 만든 게 다름 아닌 기신족이었기 때문이다.

직관적으로 해석해보자면, 오리할콘은 오브를 만드는 데 쓰인 주재료일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이걸 얻어봤자 뭐가 좋냐는 거지만.’

기왕 몬스터 잡는 거, 소소한 돈벌이나 하게 에테르 코어를 노렸건만 웬 이상한 게 튀어나온 꼴이다.

대성이 살짝 후회를 느끼던 그때.

스으으-.

“음?”

손에 들린 오리할콘이 가루가 되어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이어서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발견’ 단계를 거친 오리할콘이 ‘저장’ 단계로 넘어갑니다.]

[현재 오리할콘 보유량: 1]

용도를 모르면 그냥 버리려고 했는데 그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저장했다고? 어디로?’

‘소멸’이 아니라 ‘저장’이라고 표현했다면 분명 어딘가 손에 닿는 곳에 있다는 건데.

그러나 몸을 구석구석 뒤져봐도 돌멩이가 들어있는 감각이 느껴지는 부위는 없었다.

아공간에 보관되었나 싶어서 그 부분도 확인해 보았으나, 역시 돌멩이 같은 건 없었다.

‘뭔가 느낌이 오는군.’

그냥 버리는 것보다는 일단 가지고 있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이.

상념에서 벗어난 그제야 대성은 아래쪽에서 보내오는 사람들의 휘파람과 환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우와아아아-!

인산인해를 이룬 동작대교 아래의 강물은 진한 선홍빛을 띠었다.

귀왕의 영지와 통하는 ‘망자의 강’이 한강과 뒤섞인 탓에 벌어진 현상이었다.

‘이만한 크기로 세밀하게 필드의 결계를 전개해본 건 처음이지만…… 좀 별로네.’

일부로 영지의 작은 한 부분인 ‘망자의 강’만 구현시켰다.

그런데 섬세한 마력 조정에 실패한 건지, 지구의 다리와 지옥의 강물이라는 괴상망측한 조합이 탄생해 버렸다.

미관상 좋은 광경은 아닌지라 대성은 곧장 필드 구현을 해제했다.

둥-.

수면 아래를 유영하던 사어들이 사라지고 한강은 원래의 빛깔을 되찾았다.

동작대교 바로 위쪽에 떠오른 검은 만월도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를 환한 태양이 대신했다.

잠깐 해프닝이 벌어졌던 동작대교가 원상복구 됐음을 확인한 대성이 자리를 뜨려던 그때였다.

-꾸벅.

한 남자가, 기절한 아내와 어린 아들을 품에 끌어안은 채, 하늘에 있는 대성에게 연신 고개를 숙였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입으로 무언가를 계속 중얼거렸다. 주변의 소음과 거리 탓에 잘 들려오지는 않았지만,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입 모양과 표정은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

대성은 남자의 그 모습을 한동안 무표정하게 바라보더니.

꾸벅.

똑같이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답하고 창공을 날아올랐다.

펄럭!

***

오피스텔로 복귀한 대성은 살짝 복잡한 심경이 되었다.

단순히 진입만 불가능한 채로 방치되었던 게이트가 이제는 프렉쳐까지 일으켰으니까.

‘염두에 두고는 있었지만…….’

상정 범위에 넣어둔 사태이기는 하나, 알아도 해결할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차라리 ‘문’이 닫힌 거라면, 저번처럼 억지로 칼로 방벽을 부수고 넘어갔겠지만.

이건 아예 근본부터 커다란 오류가 발생한 거니 손 쓸 도리가 없었다.

‘답이 안 나오는군,’

일단 오늘은 동작대교 쪽 게이트가 터져서 수습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한반도 전역의 게이트가 프렉쳐를 일으키는 것도 시간문제일 터.

‘개자식들.’

대성은 이제는 없는 혼세의 종족에게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끝까지 골치 아프게 하는 놈들이 아닐 수가 없다.

‘어쨌든 저 방치된 게이트들을 어떻게든 해야 해. 신경 쓰여서 미칠 지경이다.’

비유하자면, 방구석에 커다란 쓰레기가 굴러다니는 걸 본 느낌이다.

치우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을 터. 딱히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던 대성은 상점창을 열었다.

‘정보를 사면 뭔가 단서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시스템의 힘을 빌리는 것 또한 또 하나의 방법이었다. 짚이는 게 아무것도 없는 마당에 혼자 머리를 싸매는 것보단 그편이 더 현명하므로.

[아이템] [스킬] [정보]

[남은 공적 포인트: 470,000pt]

남은 공적 포인트를 확인한 대성은 아직 괜찮다고 판단한 뒤, 정보란을 선택하려고 했다.

찌-잉.

“……!”

갑자기 쇠줄을 커터칼로 긁는 듯한 어마어마한 이명이 그의 머릿속에서 차오르기 전까진.

달팽이관을 파고드는 불쾌함에 대성이 한쪽 눈을 찌푸렸다.

“뭐야?”

찌잉, 하는 소리는 분명 그의 머릿속에서만 들리는 이명이었다.

소리는 그쳤으나 그 여파가 길고도 끈덕지게 귓전에 달라붙었다.

영문을 몰랐던 대성이 이명이 들렸던 오른쪽 귀를 손바닥으로 탁탁 건드리던 사이.

-해당 차원 종족에게 저장된 ‘오리할콘’이 동기화를 마침.

-해당 차원 종족의 메모리를 분석 중. ‘오리할콘’에 관한 정보가 일절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

고저(高低)가 존재하지 않는 차가운 기계음이 선명히 들려왔다.

“무슨.”

지옥의 시스템 메시지와는 다르다. 일단 눈앞에 떠오르는 UI 창이 아무것도 없다.

살짝 곤혹스러워지는 한편으로도, 대성은 방금 기계음이 한 말을 토씨 하나 놓치지 않고 기억했다.

‘오리할콘이라고?’

아까 크라켄을 죽이고 얻었던 돌멩이다. 정체가 짐작도 가지 않았던 그 돌멩이에 관한 정보를, 머릿속 기계음이 제공해 주었다.

-키워드, ‘오리할콘’ 주입.

-‘오리할콘’은 B-345 행성의 거주민, 기신 종족이 13세대에 걸쳐서 개량한 절대 금속.

-허수 공간, ‘오브’의 제작에 원석으로 사용되다, 대규모 공간 붕괴 및 오류로 인해 해당 필드에 있던 차원 종족에게 흡수.

머릿속에 괴음이 들리는 상황에 당황한 것도 잠시뿐.

대성은 어느새 진중한 표정으로 기계음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현재는 해당 차원 종족에게 ‘발견’되어 ‘저장’ 단계를 거쳐 ‘흡수’가 완료됨.

-현재 오리할콘 보유량: 1개

-원하는 대상에게 오리할콘의 형상기억기능을 활성화 가능.

-단, 오리할콘 하나의 질량을 넘어서는 존재에게는 형상기억기능 활성화 불가능.

‘간단히 말해 한 명당 하나씩만 가능하다는 거군.’

그 가능하다는 ‘형상기억기능’이란 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요약하면 게이트를 발명한 기신 종족의 기술력이 지금 대성에게 넘어온 것이다.

정확히는 게이트에 있던 몬스터한테 흡수된 오리할콘을 대성이 강탈한 것에 가깝지만.

-현재 보유 중인 오리할콘의 수량으로 변이 가능한 가장 적당한 물체를 검색 중.

-검색 완료. ‘방패’

-활성화하려면, 형상기억기능을 전개할 대상을 선택한 뒤 명령어 “전개” 언급.

형상기억기능이라는 게, 아무래도 입맛대로 돌멩이의 형태가 변하는 현상을 의미하는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방패라.’

아직 보유량이 하나뿐이라 고작 방패를 만드는 정도에 그친다.

아니, 어떻게 보면 그 작은 돌멩이 하나로 무려 방패 하나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 놀라워해야 할까.

‘필요 없는데 말이지.’

이미 발라르크의 갑옷이라는 걸출한 방어구를 가진 상태에서 굳이 또 방패를 얻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대성은 기계음의 안내대로 착실히 절차를 밟았다.

‘뭔지 확인만 해보자고.’

우선은 형상기억기능을 활성화할 대상을 본인으로 인식한 다음.

“전개.”

명령어를 언급한 순간.

촤르륵-!

대성은 돌연 왼팔에 내려앉는 육중한 무게를 인지했다.

무게중심이 살짝 옆으로 기운 그가 왼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엔,

-오리할콘 활성화 완료.

-활성화 결과: ‘라운드 실드(Round shield)’

기계음이 보고하는 대로, 오리할콘과 똑같은 푸른색 원형 방해가 장착되어 있었다.

“…….”

아공간을 연 것도, 지옥의 구현화 시스템을 이용한 것도 아니건만 갑자기 나타났다.

대성은 왼팔에 장착된 라운드 실드를 말없이 둘러보았다.

실드에 흥미를 느낀 게 아니다.

‘잘하면…….’

그는 이 기신 종족의 기술력, 그 자체에 감탄했다.

오리할콘이 가진 진가. 그중 아주 작은 조각을 엿보는 그의 머릿속에 문득 어떤 생각이 스쳤다.

대성 본인은 이미 지옥의 아이템으로 완전 무장했기에 더는 거추장스럽게 뭔가를 걸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가 가진 건 본인의 육체만이 전부는 아니지 않던가.

‘이걸로 마수들을 튜닝할 수도 있겠는데?’

오리할콘으로 만들어진 방패를 바라보는 대성의 눈에 형형한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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