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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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작대교가 몬스터한테 급습당했다는 소식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특히 헌터 연맹의 총장, 사카이 히로시에겐 말이다.
“……뭐?”
어떻게 보면 이상한 일이다.
아시아의 작은 땅, 그것도 도시 전체가 아니라 강변을 낀 다리 하나에 프렉쳐가 터졌을 뿐이다.
고작 그 정도 규모의 사고는 평소 같았더라면 눈도 깜짝 안 했을 터.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이번 서울의 동작대교 사태에 휘말린 사상자 중엔 헌터 연맹의 ‘실비오 스튜어트’ 대변인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말도 안 돼!”
앵커의 소식을 들은 사카이 총장이 기절초풍함과 동시에, 집무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총장……!”
대변인 사망 소식을 들고 집무실로 들이닥친 보좌관이 텔레비전을 쳐다보았다.
간발의 차이로 뉴스가 더 빨랐음을 깨달은 뒤, 그는 목소리를 죽였다.
망연자실하게 뉴스를 응시하는 사카이 총장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예?”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사카이 총장이 대뜸 입을 열더니 갑자기 그런 질문을 했다.
보좌관이 되묻자, 사카이 총장이 텔레비전을 가리켰다.
“저 뉴스 말이야.”
“아? 아, 예. 저, 그게……. 일단은 실비오 씨의 시신만이라도 회수 가능한지 당장-.”
“의도된 거라는 생각 안 드나? 이 모든 게?”
“예?”
뉴스 속 자료 화면은 동작대교를 부수는 크라켄과 속절없이 짓이겨지는 실비오 대변인의 세단을 비추는 중이었다.
“하필 오늘. 그것도 한대성 그놈의 연행에 실패하고 돌아가는 길에 벌어진 일이야. 이게, 이게 자네가 보기엔 그냥 우연 같나?”
“…….”
“내가 분명 누누이 말했지. 한대성, 그놈은 몬스터와 결탁했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이걸로 의혹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틀림없다.
한대성 그놈이 몬스터에 명령해 실비오 대변인을 죽인 것임이!
“청문회고 뭐고 다 필요 없어! 지금 당장 인터폴에 한대성 그놈 수배시켜!”
“초, 총장님.”
“박정호 협회장한테 연락해. 지금부터 총장 권한으로 한대성의 사냥꾼 라이선스를 박탈하겠다고!”
의혹을 떠나서, 애당초 그는 연맹의 명령에 불복했다.
고작해야 사냥꾼 한 명이.
이는 명백히 총장인 자신에 대한, 그리고 연맹 전체를 향한 도발이다.
그렇다면 연맹도 연맹의 방식대로 응수해줄 뿐.
파격적인 선언에, 진정하라고 말려야 할지 알겠다고 해야 할지 보좌관이 헷갈리던 찰나.
<현장은 지금 한대성 사냥꾼이 출동한 덕에 무사히…… 아, 지금 막 다른 속보가 들어왔네요. 어?>
침착한 표정으로 소식을 전하던 데스크 앵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게이트 프렉쳐가 발생했다는 소식입니다! 현재 총 서른아홉 개의 게이트가 동시다발적으로 프렉쳐를 일으켰으며- 아! 지금 또.>
대성에게 내릴 처분을 떠올리며 분노를 삭이던 사카이 총장이 다시금 텔레비전을 쳐다보았다.
안색이 새하얗게 질린 채 속보를 확인하는 앵커가 보였다.
<속보가 자꾸……. 잠깐, 잠시만요. 아, 그게…….>
“……?”
속보 문자를 확인하려고 데스크 쪽을 자꾸 내려다보던 앵커가 식은땀을 흘리며 앵글 외곽을 쳐다본다.
오디오에는 잡히지 않는 스튜디오의 누군가가 무슨 지령을 내리고 있는지 앵커가 “예, 예.”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짧게 심호흡을 마친 앵커는 듣는 이마저 서늘해질 정도로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현재 캘리포니아, 미네소타, 콜로라도, 뉴욕-.>
그 순간.
폭음이.
뉴스를 노려보던 사카이 총장의 귀를 강타했다.
“……!”
선연한 붉은 빛이 확, 하고 사카이 총장의 옆얼굴을 물들였다.
그가 고개를 돌려 집무실 유리창 바깥을 내다보았다.
연맹 본부로부터 멀지 않은 거리에서 폭발이 일어나는 중이었다.
카아아악-!
그르으윽-!
그리고 자욱한 폭연을 뚫고 튀어나온 각양각색의 괴수들이 뉴욕 도심지를 활개 쳤다.
본부 최상층에서 그 전경을 내려다보던 사카이 총장이 본인의 눈을 의심하던 가운데.
<……미국 전역이 몬스터한테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앵커의 침착한 목소리가 선명하게 그의 귀를 파고들었다.
***
“어떡할 거야?”
“저거?”
소식은 사태가 발생한 지 5분도 안 되어 대한민국에도 전달됐다.
현장에 있던 사냥꾼이 출동하고 사람들은 허옇게 질려서 도망친다.
방송용 드론 헬기가 아수라장이 된 시내를 부감하며 화면을 송출했다.
초대형 게이트가 나타난 지 아직 보름도 안 됐는데 벌어진 대재해다.
“세상이 망할 징조네.”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어조로 중얼거린 성찬호가 채널을 돌렸다.
어차피 어딜 돌려도 나오는 건 긴급 뉴스뿐이었지만.
성찬호가 방금 어떡할 거냐고 그랬던 본인의 질문에 자문자답했다.
“그냥 여기 있어라.”
“…….”
“미국에도 너만큼은 아니더라도 걸출한 사냥꾼 많아. 걔들 하는 거 지켜보자고.”
“<컨트리> 놈들 내가 뒤집어놔서 그렇지만도 않을 텐데.”
“하긴 그렇네. 무시무시한 놈.”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히 미국의 S급 사냥꾼을 뒤집어놨다는 그 말이 웃겼는지 성찬호는 실소했다.
물론 마냥 웃을 만한 상황은 아니다. 이내 진지해진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그래도 우리나라보다 S급이 서너 배는 많은 게 미국이야. S급이 뉘 집 개 이름이야? 잘 싸우고, 사람들 잘 구해주니까 S급이지.”
“근데 왜 이렇게 갑자기 설득하는 투로 나한테 말하지?”
“아니, 내 말은 가지 말라는 거지. 막말로 네가 미국에 있는 동안 한국에서 무슨 일 터지면 어쩌려고.”
“그럴 땐 다 방법이 있다.”
자연스레 이어진 대답.
성찬호가 그 대답 속에 숨은 진의를 깨닫더니 물었다.
“너 설마 미국 가려고?”
“어.”
“왜?”
“몬스터가 미국에 있으니까.”
간단명료한 이유에 성찬호의 말문이 막혔다.
성찬호가 아는 한대성이란 인간은 언뜻 보기엔 그 누구보다 게이트를 증오하고 몬스터를 많이 죽인 세간의 영웅이지만.
사실 그 정의감의 뒷면엔 ‘이득이 없으면 되도록 움직이지 않는다.’라는 철칙이 깔려 있음을 성찬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성찬호 본인과도 잘 들어맞는 철칙이라 마음에 든다.
그래서 지금 가봤자 피곤하기만 할 뿐인 미국으로 떠나겠다는 대성의 대답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설마 대성이 너, 드디어 사람들한테 영웅 대접받는 카타르시스를 깨우친 거냐?”
“그럴지도.”
“와……. 지나가는 여고생이 사인해 달라고 부탁해도 가서 공부나 하라며 시크하게 튕기던 그 한대성이? 조만간 해가 동쪽으로 지겠네.”
성찬호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대성은 황준영 일행이랑만 같이 갈 테니 한국에 있으라는 말을 성찬호에게 건넨 뒤, 오피스텔을 나섰다.
‘그럴 리가 있나.’
그리고 영웅 대접받는 걸 즐기게 됐냐는 성찬호의 말을 떠올리곤 옅게 웃었다.
‘당연히 미국에 얻을 게 있으니까 가는 거지.’
오리할콘.
이제는 게이트도 원하는 대로 못 들어가는 판국에, 몬스터의 동체에만 있는 오리할콘을 얻을 방법은 미국으로 건너가는 수밖에 없었다.
‘미국이 금광(金鑛)이다.’
게다가 미국이 지닌 땅덩이의 넓이와 그 땅덩이를 가득 채운 몬스터의 숫자를 생각하면 더더욱.
만약 미국에 있을 동안 한국에 무슨 일이 생겨도, 그 부분은 걱정할 게 전혀 없었다.
‘가족이 있는 집에 체크 포인트를 설정해놨으니 문제없겠지.’
원할 때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설정해둔 지점에 바로 워프할 수 있는 체크 포인트.
유사시엔 그걸 이용해 바로 한국에 돌아오면 그만이다.
‘딱 하나, 진지하게 고려해 봐야 할 변수는…….’
고민에 빠진 대성은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를 갱신시켰다.
[플레인 포탈로 접속 중.]
[남은 시간: <91:13:58>]
<접속>의 권능으로 인해 ‘플레인 포탈’이란 장소로 접속하기까지 사흘하고도 더 남았다.
그 <접속>이란 것이 어떤 원리로 이뤄지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확실한 건, 그것이 강제성을 띠는 순간 여러모로 곤란해질 터.
‘황준영 일행은 그냥 한국에 주둔시키는 편이 낫겠군.’
그가 미국에 있거나 플레인 포탈에 접속해 있는 동안.
만일 한국에서 일이 터지면 그땐 황준영 일행이 나서줘야 한다.
“혼자 가야겠다.”
황준영 일행을 데리고 간다는 계획은 전면 철회.
대성은 오피스텔 건물을 완전히 나선 뒤, 구현의 인을 통해 섬멸룡을 소환했다.
화르륵-!
쿵-!
섬멸룡의 육중한 앞발이 오피스텔 앞뜰을 내리찍었다.
가볍게 뛰어올라 녀석의 목덜미에 안착한 대성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목적지는 미국이다. 저번에도 몇 번 많이 가봤지?”
크르르-.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좀 급해. 서둘러야 할 거다.”
그 말이 튀어나오기 무섭게, 섬멸룡의 날개는 이미 힘차게 비상(飛上)할 준비를 끝마쳤다는 듯 요동치기 시작했다.
좋은 태도라고 생각한 대성의 붉은 눈이 마찬가지로 시뻘건 용의 눈과 마주쳤다.
“여기서부터 미국 국경 도착까지 3시간 안에 끊는다.”
크르르-!
그 순간.
비상이 아닌.
도약에 가까운 기세로 섬멸룡의 거체가 순식간에 10km 상공을 훌쩍 날아올랐다.
퍼-엉!
***
리바이브 골렘(Revive Golem)은 상대하기 버거운 몬스터지만 파훼법 자체는 간단했다.
경추(頸椎)에 있는 ‘핵’을 가벼이 타격하는 것만으로도 놈들은 줄 끊어진 인형처럼 허물어지니까.
즉, ‘핵’이 있는 목 부위까지 접근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말이다.
투두두-!
“쏴-! 계속 퍼부어-!”
미주리 어느 농가 한복판.
실전용 아머 슈트를 입은 사냥꾼 부대가 탄환을 퍼부었다.
오러를 머금은 중화기의 기탄(氣彈)이 그들의 지척에 선 리바이브 골렘의 동체에 작렬했다.
팅-! 티팅-!
하지만 티타늄 합금보다 곱절은 단단한 골렘의 피부엔 아무런 위해도 가하지 못했다.
총알이라기보단, 플라스틱 비비탄에 가까운 데미지.
그으으-!
물론 비비탄이라고 해도 상대방의 발을 묶기엔 충분했다.
쉼 없이 쏟아지는 기탄의 세례에, 골렘들은 양팔을 머리 높이로 든 채 찔끔찔끔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 잠깐의 경직이.
“지금입니다!”
팟-!
이곳에 있는 사냥꾼에겐 더할 나위 없는 반격의 찬스로 작용했다.
원거리 사격을 가하던 사냥꾼의 후방에서 또 다른 사냥꾼 무리가 토끼처럼 펄쩍 뛰어올랐다.
“발사-!”
도약한 남자의 신호와 함께, 아머의 손등에서 갈고리가 쏘아졌다.
갈고리는 와이어와 이어졌다.
핑-! 핑-!
갈고리가 주춤대던 골렘의 정수리에 콱, 소리를 내며 박혔다.
와이어가 팽팽히 당겨짐과 동시에 공중에 있던 사냥꾼들이 자석처럼 골렘의 몸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핵을 향해 가격.
퍽-!
그으으-!
목등뼈에 작렬한 일격은 순식간에 골렘의 동체 전부에 분산되었다.
핵이 쪼개지자마자 골렘들은 조각조각이 나며 허물어졌다.
“후…….”
능숙한 근접전을 펼친 사냥꾼들이 뺨을 부풀리며 숨을 토했다.
얼핏 봐서는 어려움 없이 우세를 점한 것 같으나…….
“세상에.”
“끊임없이 오는군.”
“……이대로 가다간 우리가 먼저 지쳐 쓰러지겠는데?”
속절없이 쓰러지는 골렘의 뒤로, 또 다른 골렘 무리가 밀물처럼 몰려오는 광경이 보였다.
죽여도, 죽여도, 끝이 안 보인다.
“얼른 다음 구역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여기서 발이 묶여버리면……!”
미주리의 S급 사냥꾼, 존 워드가 이를 갈았다.
이 농가에서 골렘 무리와 분전을 펼친 지 3시간이 지났다.
“왜 끝도 없이 몰려오냐고!”
미국 전역에 걸쳐서 몬스터 웨이브가 터진 마당에 이런 농가에만 3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건 대단히 심각한 상황.
존 워드의 입에서 짜증 어린 고함이 튀어나올 만도 했다.
“이 개 같은…….”
욕할 시간에, 욕을 할 힘으로 저 골렘과 싸우자.
그리 다짐한 존 워드가 심신을 추스르고는 자세를 잡았다.
그를 따르는 <제네시스(Genesis)> 클랜의 대원도 굳센 전의를 다졌다.
쿵-! 쿵-!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규모의 골렘들이 몰려왔다.
수세에 몰렸음에도 전술엔 변화가 없다. 제일 먼저 레인저들이 방아쇠를 당기려던 그때.
화아-악!
“윽!”
사막에서나 불어올 법한 뜨거운 열풍이 그들 앞에 들이닥쳤다.
돌연 하늘에서 검은 불기둥이 쏟아져 전면에 있던 골렘들을 모조리 불태웠기 때문이다.
비교적 후미에 섰던 골렘들도 선봉 측에서 벌어진 일에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멈칫했다.
“……뭐지?”
존 워드가 지면을 이글이글 그을리는 불기둥을 멍하니 바라보던 찰나.
쿵-. 쿵-. 쿵-.
방금 불기둥이 내려앉았을 때와 똑같은 폭음이 저 멀리 어딘가에서 들려왔다.
소스라친 사냥꾼들이 폭음이 들려온 방향을 돌아보았다.
“세, 상에…….”
그리고 감전이라도 당한 듯 강렬한 전율을 느꼈다.
불기둥은 이곳 농가에서만 불어닥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농가를 둘러싼 산맥.
그리고 그 산맥 너머에 있는 세인트루이스 도시까지.
어쩌면 미주리 전체가.
그어어-!
“헉!”
불기둥에 휩싸이는 마을과 도시를 망연히 바라보던 이들이 그 오싹한 괴성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
불기둥을 뚫고, 온몸이 검붉은 화염에 휩싸인 좀비들이 창칼을 들고 개떼까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어어-!
그어어-!
이내 골렘을 발견한 좀비들이 야수와 같은 기세로 돌진했다.
“…….”
해일처럼 골렘을 유린하기 시작하는 좀비 군단을 본 존 워드와 그의 대원들은 기시감을 느꼈다.
그럴 수밖에.
저것이 누구의 소환수인지는, 대한민국 반대편 나라에 사는 그들도 잘 알고 있으니까.
***
[죽음의 군단이 절대자의 명령을 따릅니다.]
섬멸룡은 정말로 3시간 만에 대성을 미국까지 데려다주었다.
대양을 넘고 미국 땅이 보이는 즉시 대성은 ‘사령 군단’을 소환했다.
마치 스포트라이트가 무대를 비추듯, 검은 불기둥이 인외마경(人外魔境)이 된 미국에 쏟아져 내렸다.
“시작해볼까.”
맡겨둔 오리할콘의 수거를 말이다.
대성은 미국 땅을 점령한 수천, 수만에 육박하는 죽음의 군단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적을 죽이고, 돌을 모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