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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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죽이고, 돌을 모아라.’
지옥의 군주께서 전음(傳音)을 통해 내리신 명령은 무수한 죽음의 군단 사이로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그것은 대군을 이끄는 군단장, ‘돌프’도 마찬가지였다.
“미친개들이 감히 사령단장인 내 앞을 가로막아?”
텍사스, 엘파소(El Paso).
사령단장 돌프는 백골(白骨)에 뚫린 시커먼 눈두덩 속으로 분노의 감정을 내비쳤다.
크르르-.
선연한 진홍빛 갈기로 뒤덮인 늑대 무리가 돌프의 앞을 가로막았다.
스칼릿 자칼(Scarlet jackal).
한 번 고정한 먹잇감은 뼈까지 통째로 씹어 먹는다고 악명이 자자한 3등급 몬스터.
“이빨을 모조리 뽑은 뒤 도살시켜주마, 냄새나는 것들.”
하지만 돌프의 눈에는 그저 냄새나는 잡견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돌프가 흉흉한 살기로 번들거리는 안광을 쏘아내기 무섭게.
컹-!
제일 가까이 있던 자칼 한 마리가 튀어 오르듯 그를 덮쳤다.
이딴 잡견을 상대하는 데 검집에서 죄악검을 뽑을 필요도 없었다.
흑마에 탑승해 있던 돌프는 머리 높이까지 단숨에 뛰어오른 자칼을 향해 팔을 뻗었다.
콱-!
깽!
어렵지 않게 자칼의 목덜미를 쥐어 잡은 뒤.
우득-!
손목에 힘을 주는 것만으로도 자칼은 목뼈가 부러져 허공에서 사지를 축 늘어뜨렸다.
“내가 직접 상대할 가치도 없는 놈들이다.”
우악스럽게 쥐고 있던 자칼의 목덜미를 손에서 놓으며 돌프가 말했다.
눈두덩의 암흑 속에서 빛나는 두 점의 자색 동공이 자칼 무리를 슬금슬금 물러서게 했다.
사냥개가 똥개로 전락했다.
“개떼는 같은 개떼가 처리해야 하는 법이지.”
그리 말하는 돌프의 등 뒤로 검붉은 화염에 휘감긴 창칼이 마구잡이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의 뒤에 섰던 사령 군단이 각자 손에 쥔 무기를 세우며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너희들도 주군의 명령을 들었겠지? 가서 죽이고 돌을 탈취하라.”
그어어-!!
돌프의 불호령이 떨어지자마자 사령 병사들이 화약이 터지는 듯한 기세로 격분하며 전방을 쇄도했다.
사령 군단장의 고유 권능, 광화(狂化)가 발동되어 그들을 싸움에 미친 광전사로 돌변시키는 순간이었다.
콱-!
콰직-!
깨갱!
그야말로 도살장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개처럼 자칼 무리가 참혹히 몰살당하던 가운데.
“…….”
돌프는 말없이, 아까 자신이 직접 목을 꺾어 죽였던 자칼의 사체를 내려다보았다.
-반짝.
붉은 갈기에 어울리지 않는, 너무나 푸른빛을 발하는 돌멩이가 놈의 갈비뼈에서 반짝였다.
“이건가.”
주군께서 말씀하신 ‘돌’이란 것이.
푸른 돌멩이, 오리할콘을 주워 그것을 유심히 구경하던 돌프가 갑자기 어깨를 흠칫 떨었다.
파스스-.
그저 주웠을 뿐인데, 돌멩이가 물속에 녹아드는 얼음처럼 허무하게 사라졌기 때문이다.
“음…….”
살짝 곤혹스러웠던 돌프는 곧장 대성에게 전음을 보냈다.
***
[주군이시여. 송구하오나 말씀하신 그 돌은 저희가 잡으면 신기루처럼 사라집니다만.]
“…….”
전음을 보내는 돌프의 목소리엔 난처한 기색이 드문드문 묻어나왔다.
하지만 대성은 그런 돌프의 보고에 바로 답신을 보내지 않았다.
[‘발견’ 단계를 거친 오리할콘이 ‘저장’ 단계로 넘어갑니다.]
[현재 오리할콘 보유량: 6]
그보단 지금 시스템이 말하는 정보가 그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사령 군단에게 돌을 모으라고 한 까닭은 당연히 나중에 한꺼번에 ‘저장’ 단계를 거쳐 보유량을 늘리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시스템은 대성이 직접 그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곧바로 ‘저장’에 접어들어 보유량을 늘렸다.
‘내가 직접 손에 넣지 않아도 오리할콘이 자동으로 저장되는 건가?’
아니, 되짚을 필요도 없다. 그가 생각한 대로라고 시스템이 지금 말하고 있지 않은가.
소환수는 대성에게 종속된 존재이기에 벌어질 수 있는 현상일 터.
‘일이 훨씬 빠르게 진행되겠군.’
덕분에 나중에 일일이 하나씩 ‘저장’ 단계를 밟을 필요가 없어졌다.
소환수 군단이 몬스터를 죽이고 돌을 발견할 때마다 족족 보유량이 늘어나게 생겼으니까.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다.
‘그렇다고 놀고 있을 수는 없지.’
물론 소환수가 모든 걸 다 해준다고 해서 이렇게 넋 놓고 하늘 위를 유영할 순 없는 노릇.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소환수가 싸우는 걸 구경하려고 미국까지 날아온 게 아니니까.
‘문제없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돌을 캐내라.’
[알겠습니다.]
뒤늦은 답신을 마친 뒤, 대성은 미국 전역이 내다보이는 하늘에서 기감을 확장했다.
광대한 마력의 레이더가 순식간에 미국의 50개 주를 훑었다.
그리고 발견했다.
가장 몬스터가 많이 몰린 곳을.
“기막힌 우연인데.”
다름 아닌, 헌터 연맹의 본부가 위치한 뉴욕이었다.
물론 거기에 연맹이 있든 없든 대성이 상관할 바는 아니었지만.
중요한 건 지금으로선 뉴욕이, 오리할콘을 캐내기에 가장 적당한 노다지라는 점이다.
“가자.”
크오오오-!!
날개를 펼친 섬멸룡이 번개 같은 속도로 뉴욕을 향했다.
***
인류의 최전선이라 불리는 연맹 본부 주변에 대형 클랜이 밀집한 건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올림피아(Olympia)>, <둠(Doom)>, <미드나이트(Midnight)>.
이렇게 총 세 개의 대형 클랜이 합심하여 뉴욕 시내에 활약을 떨치는 중이었다.
펑-!
풍선처럼 커다랗게 부푼 오러의 덩어리가 폭사함과 동시에 막대한 충격파가 퍼지며 주위에 있던 슬라임을 휩쓸었다.
“하. 슬라임?”
<둠>의 단장, ‘잭슨 린치’가 아수라장이 된 시내를 둘러보며 실소했다.
그 아름답고 찬란했던 도시가 녹색 슬라임의 점액으로 온통 뒤덮여 악취를 뿜어내며 녹아내리고 있었다.
“하필 나와도 슬라임이 나오냐. 큰일 났네.”
게임에서나 약체(弱體)로 나오지, 현실에선 슬라임만큼 무시무시한 몬스터가 또 없다.
보다시피 놈들이 지나는 길목마다 산성을 띤 점액이 모든 걸 부식시키고 녹여버리기 때문이다.
‘기어 다니는 황산’이란 별명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 유명한 폭탄마 잭슨이 고작 슬라임 따위한테 겁이 나서 많이 무서우신가 봐?”
비아냥대는 목소리에 잭슨이 눈썹을 씰룩이며 뒤를 보았다.
한 여자가 짧은 금발을 찰랑거리며 둔기로 슬라임 무리를 내리찍었다.
<올림피아>의 단장, ‘크리스 윈슬렛’은 둔기에 묻은 슬라임의 살점을 조심스레 털어내더니 말했다.
“폭탄마 딱지가 아깝다. 그냥 확 떼버리는 게 어때?”
“어디 그 곱상한 금발이 슬라임 때문에 녹아봐야 정신을 차리나. 안 그래도 이 새끼들 때문에 정신없는 마당에 너까지 왜 시비야?”
“은근슬쩍 나만 싹수없는 년 만드는데 말해두지만 여기 퀸즈 거리는 우리 <올림피아>가 먼저 접수했거든요, 이 싹수없는 새끼야.”
“미국이 몰락하기 5분 전인데 누가 먼저 접수하고 말고가 어디 있어? 이거 완전 탐욕스러운 년이네.”
자부심 높은 대형 클랜 간에 으레 벌어지는 구역 선점 신경전이었다.
그때.
“이 좁은 거리에 대형 클랜이 세 개나 있으니 정신이 하나도 없네. 양심이 있으면 한쪽은 빠져야 하지 않을까?”
능수능란하게 슬라임을 박멸하면서도 서로에게 으르렁거리는 둘의 사이에 클랜 하나가 더 개입했다.
지금 막 퀸즈의 한 영화관을 점령한 슬라임을 퇴치하고 나오던 참인 <미드나이트>의 단장, 스파이크 코먼이 히죽히죽 웃었다.
크리스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제일 마지막에 스리슬쩍 껴든 놈이 양심을 운운하네.”
“퀸즈는 원래 예전부터 우리 클랜 관할 지역이었어.”
“그랬구나. 근데 너희들이 밥그릇 챙기는 게 여간 시원찮아 보여서 우리가 눈독 좀 들였다, 왜?”
“어차피 죽여도 코어도 뭣도 아무것도 안 뱉는 놈들이야. 돈에 환장하는 너한테는 없을 게 아무것도 없는 전투일 텐데. 그냥 가서 발 뻗고 자는 걸 추천한다.”
스파이크의 말대로, 지금은 아무리 몬스터를 죽여도 에테르 코어가 나오지 않았다.
보통 사냥꾼이 몬스터를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코어 채집’이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얻을 게 없다’라는 스파이크의 말엔 틀린 부분이 없었다.
하지만.
“바보야? 얻을 게 없긴 뭐가 없어. 지금 민간인들이 보고 연맹 고관들이 지켜보고 있잖아. 이럴 때일수록 발에 땀 나게 뛰어서 눈도장 제대로 찍어둬야지.”
“꼴에 명예가 중요한 줄은 아나 보군. 영악한 년.”
옆에서 불쑥 낀 잭슨은 비꼬면서도 그 말에 부정은 하지 않았다.
에테르 코어도 없는 지금, 대형 클랜이 챙길 건 오직 명성뿐이었다.
이 모든 싸움이 끝나고, 사람들에게 ‘미국을 구한 영웅 클랜’이라는 칭호가 되어줄 명성 말이다.
대형 클랜 간에 신경전이 이제는 삼파전으로 돌입했다.
아수라장이 된 도시 사이로 명망 높은 클랜의 단장이 네 구역, 내 구역 따져가며 말싸움을 벌이던 와중.
꿀렁-. 꿀렁-.
“응?”
문득 묘한 낌새를 느낀 스파이크가 고개를 돌렸다.
간발의 차이로 크리스와 잭슨도 같은 방향을 바라보았다.
“뭐야?”
“쟤들 왜 저래?”
난잡하게 사방을 활개 치며 날뛰던 슬라임 무리가 갑자기 질서정연하게 어떤 곳을 향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무리를 이루는 구심점 없이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특성이 강하던 슬라임한테선 보기 힘든 모습.
뭔가에 홀린 듯 꾸물꾸물 이동하는 슬라임 무리를 쳐다보는 이들이 의아함을 느끼던 순간.
쿵-!
돌연 커다란 검은 앞발이 한 방향으로 몰려들던 슬라임 무리를 난폭하게 내리찍었다.
“헉.”
그리고 세계 유수(有數)의 사냥꾼 타이틀을 단 그들이 그 검은 앞발의 정체를 모를 리는 없다.
그 유명한 한국의 블랙 드래곤이 퀸즈에 나타났다.
치익-.
크르르-!
슬라임 무리를 짓밟은 앞발에서 산성을 띤 증기가 피어오르자, 섬멸룡이 흠칫하며 몸을 떨었다.
녀석으로선 뜨거운 온천에 발을 잘못 디딘 기분일 터.
“용이라는 놈이 엄살이 심하네.”
섬멸룡의 목덜미에 탄 대성이 한심하다는 듯이 뇌까렸다.
시내에 산재한 슬라임을 <도발>의 권능으로 모은 것까지는 좋다.
그런데 맨몸뚱이로 산성 괴물과 맞서야 하는 상황이 섬멸룡에겐 썩 달갑지 않은 모양이었다.
물론 없애려면 얼마든지 없앨 수 있지만, 사람으로 따지면 몸에 더러운 오물이 묻는 기분이라고 할까.
“됐어. 내가 한다.”
결국, 대성은 거부감을 표시하는 섬멸룡을 대신해 본인이 직접 나서기로 했다.
-슥.
대성이 오른손을 들더니. 파리를 쫓듯이 가볍게 휘저은 순간.
쿵-!!
“뭐……!”
“무슨…….”
크리스와 잭슨, 그리고 스파이크의 눈에는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섬멸룡은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대성이 팔을 휘젓자마자 갑자기 지면이 움푹 파이더니, 해당 반경에 있던 슬라임 무리가 쥐포처럼 우그러지는 게 아닌가.
<중력>의 권능이었다.
물론 그들은 못 알아보겠지만.
“염력을 사용할 줄 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아, 아니. 그보다.”
스파이크는 눈앞에 벌어진 불가사의한 장면보다도, 대성의 등장 자체에 더 묵직한 두려움을 느꼈다.
“다른 도시에 불기둥이 떨어졌다는 얘기를 듣고 나선 설마 했는데 진짜로 한대성이……?”
“그것도 하필 퀸즈에…….”
평소에 자존심 꼿꼿이 세웠던 스파이크와 잭슨조차 대성의 등장 앞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TV로만 접했던 섬멸룡의 위용을 직접 마주하니 더더욱.
하지만 얌전한 고양이가 된 그들 사이에서 여전히 맹수 모드를 유지하는 자가 있었다.
“이봐!”
크리스였다.
그녀는 목청을 한껏 높이며 섬멸룡과 대성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화들짝 놀란 스파이크가 ‘오, 저 미친년.’이라고 중얼거렸다.
괘념치 않고, 크리스는 이제는 아예 옆구리에 양손을 갖다 대며 전력으로 대성을 향해 따졌다.
“미안한데 여기는 <올림피아>가 먹었거든? 당신, 유명하고 대단한 사람인 건 아는데 상도는 좀 지켜야 하지 않겠어, 응? 게다가 연맹 명령도 씹었던 주제에 여길 기웃거리는 건 대체 무슨 깡이야?”
“…….”
아래에서 자꾸 소음이 들리기에 뭔가 싶었던 대성이 눈길을 옮겼다.
모르는 여자다. 슈트에 새겨진 마크는 익숙하지만.
흥미가 떨어진 대성은 곧 시선을 떼어 다른 곳을 쳐다보았다.
“허! 무시?”
어이가 없어진 크리스가 잠시 말문을 잃다가 이내 펄쩍 뛰어올랐다.
“이봐! 사람이 지금 말을 하잖아! 무슨 대꾸라도-.”
“닥쳐.”
“…….”
목젖이 잡아 떼인 듯 크리스가 벙어리가 되어 굳은 가운데.
가늘게 뜨인 대성의 눈은 다른 방향에 있던 슬라임 무리를 응시했다.
“어, 어어…….”
“이, 이게 뭐야!”
스파이크와 잭슨도 대성이 보는 것과 같은 방향을 보더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꿀렁-. 꿀렁-.
한 번도 본 적도, 그리고 보고된 사례도 없는 사태다.
본래 독자적으로 행동해야 할 슬라임이 갑자기 자기들끼리 뭉쳐 ‘합체’를 시도하는 건.
“아니, 씨. 저건 또 뭐야?!”
잠시 멍하니 있었던 크리스도 뒤늦게 사태를 깨닫곤 경악했다.
자기들끼리 한데 뒤엉켜 점점 몸뚱이를 부풀리는 슬라임의 크기가 어느덧 마천루에 버금가기 시작했다.
끄르륵-!
구더기가 들끓는 듯한 소름 끼치는 울음이 퀸즈를 뒤덮었다.
자이언트 슬라임(Giant Slime)의 거체에서 뚝뚝 흘러내리는 액체가 지반을 녹이고 갉아먹었다.
“이 정도 크기면…….”
끔찍한 악취가 코를 괴롭게 했고 보도블록을 녹이는 산성액 소리가 귀를 불쾌하게 했지만.
대성은 비릿하게 웃었다.
“100개분은 충분히 하고도 남겠어.”
화르륵-!
서늘한 미소를 그리는 대성의 손에 업화대검이 나타났다.
꿀렁거리며 거구를 옮기는 자이언트 슬라임이 주위에 있던 빌딩과 건물을 통째로 녹여버렸다.
미국을 주름잡는 세 명의 단장마저 바짝 얼어붙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규격을 뛰어넘는 재앙급 괴수의 등장에, 한순간 정말로 뉴욕이 이대로 망하나 싶었던 순간.
[‘업화’ 모드의 첫 번째 특수 스킬이 발동됩니다.]
[특수 스킬 : <격노>]
투콰-앙!
그런 자이언트 슬라임보다 반 배는 더 커다란 불의 해일이 전방을 휩쓸었다.
슬라임이 상대하기 까다로운 이유는 타격을 가할 때마다 흩날리는 산성의 살점 때문이다.
“오…… 맙소사.”
“세상에.”
“…….”
그런데 업화대검이 쏘아낸 <격노>는 산산이 흩날리던 그 커다란 살점마저 모조리 태워냈다.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화르륵-. 타닥-.
자이언트 슬라임은 어느덧 퀸즈 거리를 가득 메운 불길에 잠겨 형체를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그 힘에 압도당한 세 명의 단장은 헛숨만 삼키며 식은땀만 흘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
크리스는 아까의 그 열혈은 어디로 갔는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분명히 말한다.”
그야말로 불지옥이 따로 없어진 퀸즈의 주홍빛 거리를 배경 삼아.
거대한 불꽃의 칼을 가로로 세워 내뻗은 대성이 경고했다.
“여기 뉴욕에 있는 놈들은 전부 다 내 먹잇감이다. 알겠나?”
살벌한 어조로 그리 선언하는 대성의 주변엔,
“그러니 넘보지 마.”
다른 이들의 눈에는 그 형태조차 구경할 수 없는 푸른빛의 보석이 한밤의 별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