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
106
리버티섬과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세워진 맨해튼의 대피소엔 지옥이 도래한 중이었다.
커컹-! 컹-!
그르르-!
두 발로 꼿꼿이 선 하이에나 무리가 공포에 질린 사람들 쪽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4등급 몬스터, 놀(Gnoll)이다.
“흑, 흐흑…….”
“어, 엄마…….”
뚝, 뚝.
놀의 쇠도끼에서 흐르는 선홍빛 핏물을 본 사람들이 기겁했다.
주변은 이미 머리가 도끼에 깨지고 사지가 참혹하게 절단된 시체들로 즐비했다.
<코드> 클랜의 시체들이다.
“신이시여, 신이시여…….”
“아아…….”
“이, 이러고 있지만 말고 우리라도 맞서 싸우는 게…….”
“미, 미쳤어?”
놀에게 몰려 점점 구석으로 몰리는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대피소를 지키던 사냥꾼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몰살당했다. 그렇다면 이번에 저 도끼날이 누구를 향하게 될지는 뻔하다.
“비, 비켜! 우리가 암만 각성자가 아니라지만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순 없어!”
그때, 능동적으로 작금의 위기를 타파하려던 한 남자가 악다구니를 내지르며 놀에게 달려갔다.
제일 가까이에 있고, 제일 작은 몸집. 남자는 이놈을 죽이고 쇠도끼를 뺏을 작정이었다.
하지만,
컹-!
콰직-!
유연하게 위로 뛰어올라 남자의 돌진을 피해낸 놀이 그의 정수리에 도끼를 내려찍었다.
허연 것이 섞인 피가 팍, 소리를 내며 튀겼다.
눈을 까뒤집은 남자가 끅끅대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꺄아아아악-!!”
“으아아아악-!!”
남자의 비참한 죽음은 시민들이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을 끊어냈다.
시민들이 혼비백산하며 공황 상태로 돌입했다. 죽음이다. 눈앞에 죽음이 있었다.
킥킥!
몸부림치는 먹잇감들을 본 놀이 섬뜩하게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아직 말도 못 하는 갓난아이가 버둥대는 어른들한테 밀려 어쩌다 인파의 바깥으로 삐져나왔다.
“캐시?! 캐시!! 아아아!”
뒤늦게 그걸 발견한 소녀의 어미는 환장할 지경이었다.
이윽고 갓난아이의 자그마한 체구에 하이에나의 음영이 드리워졌다.
놀이 혀를 날름거리며 쇠도끼를 치켜들었고, 어미가 찢어지는 비명을 내지르던 그 순간.
콰지지직-!!
놀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살육을 자행하기 위해 지었던 추악한 미소를 유지한 채로.
“바~.”
세상 물정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아이는 바로 앞에 괴물이 반 토막이 나고 있음에도 눈만 깜빡거렸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눈동자가 곧 한 남자를 시야에 담았다.
시뻘건 피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쓴, 하얀 머리의 사냥꾼을.
“캐시-!”
모두가 호흡을 멈췄다. 갓난아이의 어미를 제외하면.
헐레벌떡 뛰어온 그녀가 아이를 품에 끌어안더니 오열했다.
일격.
단 일격에 눈앞의 남자는 대피소를 점령한 하이에나 무리를 죽였다.
아이의 등을 쓸어내리며 한껏 울음을 터뜨리던 어미가 이내 고개를 들어 그 남자, 대성을 보았다.
“…….”
말없이 눈길을 보내는 대성의 얼굴은 고요했다.
그 석상 같은 얼굴이 마치, 그녀가 항상 주말마다 예배를 드리던 교회의 신상(神像)을 연상케 했다.
“아, 아아……!”
슬픔과 안도가 아닌, 조금 다른 의미의 눈물이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가 아기를 품에 안은 채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흐느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대성은 달리 무어라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방금 놀을 날려버리면서 손목을 휘감았던 여운에 집중했다.
‘뭔가 이상하군. 그냥 평범한 놀은 아니었다.’
애당초 말이 안 되지 않은가.
놀은 고작 4등급 몬스터에 불과하다. 비유하자면 고블린보다 조금 더 강한 수준이다.
그런데 그런 놈들한테 미국이 인정한 대형 클랜이라는 <코드>의 정예 대원들이 당하다니?
대성의 의아함을 느끼던 그때.
끽-.
끼-익.
쥐가 찍찍대는 듯한 소리.
대성을 비롯해 그곳에 있던 모두가 묘하게 불쾌한 그 소리에 인상을 찡그리기 시작했다.
“음?”
그때.
뭔가 작고 검붉은 것들이 놀의 시체를 비집고 우수수 목을 내빼는 것을 대성은 볼 수 있었다.
대성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스펙터(Specter)?”
그는 사냥꾼 전용 도감에서 접했던 정보를 단박에 떠올렸다.
피부가 새빨갛고 머리 위에는 뿔이 돋아난 스펙터는 알기 쉬운 서양 요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쩐지 놀 치고는 묵직하더라.”
2등급 위험종, 스펙터.
녀석은 시체 하나당 수십 마리씩 떼로 들러붙어 숙주를 자신들의 것으로 삼는다.
그렇게 탄생한 또 다른 괴물은 생전의 존재와 비교해 서너 곱절은 강대한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건물 바깥에서 <코드>가 죽였던 놀에 스펙터가 달라붙었나.’
그러다가, 결국 대피소 안쪽까지 그들을 몰아세우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임이 분명하다.
대성이 정황을 유추해보는 사이.
끽!
파르륵-!
숙주를 학살한 대성과 마주한 스펙터들이 소스라치며 펄쩍 뛰었다.
이윽고 허겁지겁 무리를 짓더니 뻥 뚫린 대피소 유리창을 통해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현세의 물리법칙으로부터 자유로운 녀석들의 움직임은 음속에 버금갈 만큼 빨랐다.
“어딜 도망가려고.”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보내줄 순 없는 노릇. 저놈들을 죽여도 오리할콘이 나오는 건 똑같으니까.
화륵-.
업화대검을 고쳐 잡은 대성이 스펙터들의 뒤를 쫓아 대피소를 나서려던 그때였다.
“어?”
“어, 어라?”
몇몇 사람들이 치뜬 눈으로 놀라기 시작했다.
하지만 작금에 펼쳐지고 있는 광경을 눈으로 보고도 놀라지 않는다면 말도 안 될 터.
강물을 사이에 두고 수백 미터 정도 떨어진 리버티섬.
그곳에 오른손엔 횃불을, 왼손에 독립선언서를 든 채 우두커니 선 독립과 미국의 상징.
바로 ‘자유의 여신상’에.
끽-!
끼긱-!
멀리서 보면 마치 검은 구름처럼 보일 정도로 떼를 지은 스펙터들이 전부 달라붙는 게 아닌가.
“설마…….”
누군가 그리 아연하게 중얼댔다.
7개의 뿔이 돌출된 왕관에 스펙터의 떼거리가 모였다.
그리고,
쿠구구-.
“헉……!”
움직였다.
석조 받침대에 고정되어 있던 자유의 여신상이 오른쪽 다리부터 천천히 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아, 아니, 저게 어떻게…….”
“저럴 수가!”
“저게 말이 돼?!”
살아 움직이는 자유의 여신상을 본 시민들이 턱이 빠지도록 크게 입을 벌렸다.
그들만큼은 아니더라도, 얼굴에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건 대성도 마찬가지였다.
‘스펙터가 저런 것도 할 줄 아는 놈들이었던가?’
도감에 따르면 스펙터는 죽은 유해에만 기생한다고 나와 있었다.
하지만 생사를 떠나서 아예 무생물인 조각상을 숙주로 삼는다는 얘기는 듣도 보도 못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
‘도감에 실린 정보가 잘못됐다는 거겠지. 뭐 별거 있나.’
곰곰이 생각에 잠길 여유는 없다.
놈들이 미생물에 달라붙든 무생물에 달라붙든 무슨 상관이랴.
‘파괴하면 그만이다.’
대성은 잠깐 집어넣었던 섬멸룡을 다시 소환했다.
구현의 인이 뿜어낸 거친 불꽃이 이 자리에 드래곤을 강림시켰다.
쿵-!
크르르-.
비룡 크기임에도 넓은 대피소가 꽉 찰 만큼 거대한 섬멸룡의 크기에, 사람들이 넋을 잃었다.
“드, 드래곤이다.”
“얼마 전 연맹 대변인과 미군을 쫓아냈던 그…….”
“마, 맙소사.”
생중계를 봤던 사람들은 카메라 화면을 가득히 메웠던 섬멸룡의 위용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모세가 홍해를 가르듯 사람들이 섬멸룡을 중심으로 비켜섰다.
휙.
가뿐하게 점프해 섬멸룡의 목덜미에 탑승한 대성이 짤막하게 명했다.
“가자.”
크오오오오-!!
흉포한 포효와 함께 섬멸룡이 날개를 활짝 펼침과 동시에.
콰-앙!
그대로 대피소의 벽을 들이박았다. 산산이 부서진 벽을 뚫고 비상(飛上)한 섬멸룡이 리버티섬을 향했다.
구석으로 비켜섰던 사람들이 바깥바람이 휑하니 들어오는 무너진 벽에 모여들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공포에 떨었고.
누군가는 순수하게 감탄했으며.
누군가는 가슴에 손을 모으며 간절히 기도했다.
자유의 상징에서 이제는 재앙이 되어버린 여신상을 향해 날아가는.
“부디…….”
용을 탄 하얀 구세주를 바라보며.
***
섬멸룡과 자유의 여신상이 빠르게 거리를 좁히던 도중.
대성이 섬멸룡의 머리를 툭툭 건드리더니 말했다.
“얼른 끝내자.”
고작 조각상 따위한테 할애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
현재 오리할콘의 보유량은 어느덧 1만을 넘었다. 아마 저 여신상을 없애고 스펙터를 박멸하면 수천에 가까운 오리할콘이 추가로 들어올 터.
[폴리모프(polymorph): 비룡(飛龍)이 취소됩니다.]
[<한대성의 섬멸룡>이 원래 모습을 드러냅니다.]
시스템 메시지의 등장과 함께 흑색 기류가 섬멸룡을 감쌌다.
훙-!
이내 그 기류를 찢고 튀어나온 섬멸룡은 자그마치 여신상보다 머리 하나는 더 거대해진 상태였다.
허드슨강에 발을 푹 담근 자유의 여신상이 물살을 거칠게 헤치며 달려드는 순간.
콰-앙!
용과 여신상이 격돌했다.
그저 부딪친 것만으로도 강물이 파도가 되어 사방에 넘실거렸다. 대기를 찌르르 울리는 강렬한 파동이 수백 미터에 떨어진 대피소를 뒤흔들 정도였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섬멸룡의 발톱이 여신상의 얼굴을 내리그었다.
카가각-!
스펙터의 영향을 받아 수십 배는 더 표면이 견고해졌음에도 여신상의 얼굴은 사정없이 갉혔다.
하지만 아무리 얼굴이 부서져도 여신상은 결국 무생물.
여신상은 머리가 반절 이상 사라진 채로 오른손에 든 횃불을 휘둘렀다.
퍽-!
둔중한 타격이 섬멸룡의 검은 비늘을 파고들었다.
바로 옆에서 여객기가 부딪힌 듯한 충격에 섬멸룡이 살짝 주춤거렸다.
하지만 그뿐.
방금의 공격은 섬멸룡에게 있어서 그저 옆구리가 시큰거리게 할 수준에 불과했다.
크오오오-!
오히려 섬멸룡의 화만 더 돋게 했다. 신경질이 뻗친 섬멸룡이 고개를 쳐들며 난폭하게 울부짖었다.
“짓눌러. 이대로 찍어서 죽여라.”
이성을 잃고 날뛰는 섬멸룡을 차분히 다독인 대성이 지시를 내렸다.
눈동자에 초점을 되찾은 섬멸룡이 그 말을 듣고, 이번엔 왼쪽 앞발로 여신상의 어깻죽지를 후려쳤다.
쾅-!
여신상의 내부에 있던 엘리베이터라도 폭발한 걸까? 빗장뼈 윗부분이 뜯겨나간 여신상에서 돌연 불길이 뒤섞인 폭연이 피어올랐다.
산산조각이 난 내부 지형지물의 잔해가 여신상의 절단면에서 튀어 오르며 허드슨강에 떨어졌다.
싸움의 여파로 인해 높이 일어선 물살이 쓰나미가 되어 리버티섬을 집어삼켰다.
“허…….”
“…….”
대피소에 있던 이들은 인간의 상식을 벗어난 싸움에 눈길을 빼앗겼다.
세상의 종말을 고스란히 구현한 듯한 그 거대하고도 장엄한 전투에 모두가 말없이 헛숨을 삼켰다.
크오오오오-!!
섬멸룡은 찍어눌러서 죽이라는 대성의 명령을 착실하게 이행했다.
놈은 태산만 한 몸집에 무게를 잔뜩 실어 여신상을 짓눌렀다.
쾅-! 쾅-! 쾅-!
여신상은 점점 뒤로 넘어가는 와중에도 왼손에 든 독립선언서를 섬멸룡의 등에 내리찍었다.
‘귀찮게 하기는.’
그리고 섬멸룡의 등을 향하는 모든 공격은 대성에게 직접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대성은 귀청이 따가운 굉음과 함께 사방에 작렬하는 독립선언서의 연타를 불쾌하다는 듯이 흘겼다.
결국, 참다못한 대성이 머리 위에서 바로 떨어지는 독립선언서를 향해 마력을 실은 주먹을 날렸다.
꽈-앙!
작은 주먹과 커다란 선언서가 맞부딪쳤다.
원형의 파동이 일대에 흩어지며 한 번 더 물살을 요동치게 했다.
그러자 이번엔 허드슨강의 밑바닥까지 보일 정도로 수면이 뒤집혔다.
쩌적-.
그리고, 그 맹렬한 격돌 끝에 먼저 무너진 쪽은 독립선언서였다.
자갈처럼 으스러진 독립선언서의 잔해가 섬멸룡의 등가죽 위로 후두둑 떨어졌다.
크오오오-!!
주인의 맹위에 영향이라도 받은 건지 섬멸룡이 더욱더 힘을 끌어올리는 순간.
첨벙-!
앞에서 중심을 실어 찍어 누르는 섬멸룡의 힘에 못 당한 여신상이 완전히 뒤로 넘어졌다.
미국의 상징은 그렇게 물에 침몰했다.
쾅-! 쾅-! 쾅-!
거기서 멈추지 않고, 섬멸룡은 무자비하게 앞발을 연신 휘둘러 여신상을 가격했다.
한 방, 한 방이 여신상에 닿을 때마다 표면을 둘러싼 동판이 우그러지고 내부의 철골까지 찢겨나갔다.
끼익-!
스펙터들이 당황했다.
이대로 가다간 자신들이 기생할 부위까지 온통 부서지고 만다.
그전에 어떻게든 저 드래곤을 죽이지 않으면!
끼익-!
아찔한 위기의식을 느낀 스펙터 무리가 여신상의 몸에 더욱더 방대한 힘을 불어넣자,
첨벙-! 쏴아아-.
얻어맞고만 있던 여신상이 힘차게 섬멸룡을 밀어내고 몸을 일으켰다.
수면 위로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여신상은 거의 하체만 멀쩡했고, 상체는 뼈처럼 앙상한 철골만이 겨우 남아있었다.
섬멸룡이 살짝 물러섰다.
여신상이 그 거리만큼 돌진했다.
그리고,
섬멸룡보다 커다란 ‘범선(帆船)’이 여신상을 덮쳤다.
쿠우우웅-!!
섬멸룡이 전력으로 몸통 박치기를 하면 이만한 위력이 나올까.
철골과 하체만 남아 다 쓰러지기 직전이었던 여신상은 범선의 충격마저 가해지자 더는 남아나지 못했다.
발목만 남기고 모조리 파괴당한 여신상이 작은 파편이 되어 수장(水葬)됐다.
‘집중한 보람이 있는걸.’
중세풍 범선의 갑판 위에서 주군을 향해 허리를 숙이는 ‘뱃사공 보르크’를 보며 대성은 흡족했다.
여신상이 물에 잠겨 허우적대는 사이, 뉴욕의 밤하늘엔 어느덧 검은 만월이 떠올라 있었다.
대성은 이 허드슨강에만 ‘귀왕의 영지’의 고유결계를 펼친 것이다.
얼마 전 크라켄이 나타난 한강처럼, 작금의 허드슨강도 ‘망자의 강’과 뒤섞여 진한 핏빛을 자아냈다.
그리고.
[‘망자의 강’을 지키는 ‘뱃사공 보르크’의 뗏목이 절대자의 격에 맞춰 외관을 바꿉니다!]
[<보르크의 뗏목>이 <한대성의 유령선>으로 대폭 격상합니다!]
‘발라르크의 섬멸룡’이 ‘한대성의 섬멸룡’으로 바뀐 것처럼.
작디작은 ‘보르크의 뗏목’도 이제는 대성만의 전유물이 되어 주인에게 어울리는 모습을 갖췄다.
유령선.
그 표현은 너무나 정확했다.
바다가 아닌, 하늘을 날아다니는 그것은 선체 전부가 음산한 장식으로 무장된 것이 꼭 유령이 따로 없었으니까.
끼이익-!!
그때, 숙주 삼던 여신상마저 파괴당한 스펙터 무리가 허겁지겁 달아나려고 했다.
섬멸룡의 등에서 몸을 벌떡 일으킨 대성이 업화대검에 불꽃을 장전했다.
화르륵-!
“두 번은 안 놓친다.”
그리고 검날을 앞으로 쭉 뻗어 기관총의 방아쇠를 당기듯 손목에 힘을 실었다.
[‘업화’ 모드의 두 번째 특수 스킬이 발동됩니다.]
[특수 스킬 : <염왕의 숨결>]
화아-악!!
불꽃의 광선이 새카만 밤하늘을 불그스름하게 바꾸며 쏘아졌다.
열기가 느껴져 스펙터 무리가 힐끔 뒤돌아본 순간 모든 게 끝났다.
놈들은 일체의 단말마 없이 횃불에 잠긴 불나방처럼 소멸했다.
-반짝.
불에 타는 스펙터 아래로 소나기처럼 떨어지던 오리할콘은 강물에 빠지기도 전에 바스러졌다.
[‘발견’ 단계를 거친 오리할콘이 ‘저장’ 단계로 넘어갑니다.]
[현재 오리할콘 보유량: 16891]
출몰 몬스터 추산치 2만 5천을 따라잡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유종의 미를 거둘 때가 왔다.
‘그 전에 할 일이 있지만.’
현재 보유량을 확인한 대성은 섬멸룡을 이끌고 유령선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갑판 위에 선 꼽추 마수, ‘뱃사공 보르크’에 명령했다.
“넌 가서 사람들을 배에 실어라. 거리엔 몬스터만 남도록.”
“알겠습니다.”
쿠구구-.
공중에 체공해 있던 유령선이 서서히 허드슨강을 지나쳐 맨해튼의 시내로 접어들었다.
“어, 어어! 저, 점점 이쪽으로 다가오는데?”
“사, 사냥꾼님이 해치우지 않는 걸 보니까 우리 편 아닐까?”
“그보다 저 달은 또 뭐야? 강물 색깔은 또 왜 저렇고?”
대피소의 사람들은 웬만한 고층빌딩보다 커다란 유령선이 서서히 다가오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내 한쪽 벽면이 뻥 뚫린 대피소 건물 앞에 유령선이 멈춰 섰다.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이는 찰나.
촤-악!
“히익!?”
갑자기 유령선의 선수(船首)에서 쇠사슬이 뻗어 나와 건물 표면에 콱, 소리를 내며 박혔다.
말이 쇠사슬이지, 폭이 웬만한 교량과 비슷할 정도로 넓었다.
보르크가 쇠사슬을 가리키더니 사람들에게 말했다.
짤막하게.
“타.”
본래는 망자를 인도하던 배가.
이제는 살아 있는 자를 인도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