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
108
헌터 연맹의 총장과 협회장들의 시체가 길거리의 개똥처럼 굴러다녔다.
그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본 대성은 조용히 담뱃불을 태웠다.
‘개똥만도 못한 놈들.’
외로이 초대형 게이트와 싸운 자신을 의심했다는 이유만이면 백번 양보해서 가혹한 처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권력으로 약자를 찍어 눌렀다. 입으로는 본인들이 없으면 세계가 망한다고 외친 주제에.
그런 패악질 하나하나가 지구를 지옥이나 다를 바 없는 곳으로 만드는 법이다.
그래서 단죄했다. 그뿐이다.
“그럼.”
-탁.
오랜만에 달콤하게 피운 담배를 손가락으로 튕긴 대성은 하늘 위에서 뉴욕의 풍경을 내려다봤다.
어둑한 밤이 내려앉은 도시 사이사이로 새빨간 불길이 치솟았다.
마력 레이더를 넓힌 대성은 이 근방 말고도 시내 곳곳에 웜 떼거리가 숨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웜 정도는 그냥 다른 놈들한테 맡길까.’
오리할콘을 수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슬슬 미국 전체에 사령 군단을 소환한 것에 대한 피로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웜 같은 찌꺼기를 일일이 죽여 가며 오리할콘을 긁어모으는 것도 이제는 조금 성가신 기분이 들었다.
가볍게 하품한 대성은 시스템을 활성화해서 보유량을 확인했다.
[현재 오리할콘 보유량: 23993]
보도국이 계산한 몬스터 추산치 2만 5천도 이제 코앞이다.
갑자기 벌어진 미국의 최대 위기도 이제 종국으로 접어든 것이다.
청소를 끝마쳤으니 슬슬 한국으로 돌아가도 상관없으리라.
‘아니야.’
대성은 고개를 저었다.
노곤해진 탓인지 본인이 뭔가 굉장히 잘못된 사고방식을 전개하고 있음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모은 걸 제대로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
미친 듯이 긁어모았으면 이제는 써먹을 차례 아니겠는가.
오리할콘을 모은 이유도, 섬멸룡을 포함해 모든 소환수를 튜닝하기 위함이었으니까.
‘섬멸룡.’
우선은 섬멸룡부터.
-현재 보유 중인 오리할콘의 수량으로 변이 가능한 가장 적당한 물체를 검색 중.
-검색 완료. ‘대형 화포’
-활성화하려면, 선택한 대상을 향해 명령어 “전개” 언급.
대성은 지체하지 않고 명령어를 입에 담았다.
-총 4000개의 오리할콘을 소모합니다.
-오리할콘 활성화 완료.
-활성화 결과: ‘플라스마 캐논(Plasma cannon).’
촤르륵-! 촤촤촤촥-!
주변에서 벌레가 기어오는 듯한 느낌에 대성이 무심코 섬멸룡의 목덜미에 대고 있던 엉덩이를 떼었다.
그리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눈에 담은 그는 흥미롭다는 듯이 팔짱을 꼈다.
오리할콘의 나노 입자가 하얀 도화지에 물감이 더해지는 것처럼 섬멸룡의 몸을 뒤덮어가는 게 아닌가.
검은 비늘 군데군데 푸른색을 띤 철제 갑주가 입혀진 것이다.
앞다리와 뒷다리를 제외하면 거의 신체의 3분의 2가 오리할콘의 갑옷과 결합한 섬멸룡의 몸이 진동했다.
촤르륵-!
날개가 달린 섬멸룡의 어깻죽지에 두 기(機)의 길쭉한 초대형 전차포가 솟아올랐다.
파지직-!
하나하나의 크기가 대전차 라이플에 버금가는 전차포에서 녹색의 플라스마 에너지가 힘차게 타올랐다.
당장 발사할 기세로.
“그럼 발사해야지.”
크르르-!
느닷없이 몸에 생긴 이변에 섬멸룡은 살짝 당황하다가도, 싫지는 않았는지 금방 날개를 활짝 폈다.
-플라스마 캐논의 부가 탑재 기능, ‘스캐닝’을 실시합니다.
-현재 시내에 남은 몬스터는 총 137마리입니다.
-1회의 발사로 137체 모두 요격 가능합니다.
-요격을 원할 시, 명령어 ‘발사’를 언급하십시오.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물론.”
지이이잉-!
뭔가 조종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음성으로 명령만 내렸을 뿐인데 양측에 달린 캐논이 저절로 몸뚱이를 틀어가며 발사각을 조정했다.
우우우웅-.
몸체에 길쭉하게 뚫린 직선 형태의 화구(火口)에서 에너지가 응집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발사.”
응집되었던 에너지가 일제히 해방되었다.
퍼퍼퍼퍼퍼퍼펑-!!
두 기의 화포에서 터져 나온 백색 광선이 수백 갈래로 분산되며 뉴욕 시내를 휩쓸었다.
유령선 갑판에서 휴식을 취하던 사람들은 천지를 깨부수는 듯한 벽력에 화들짝 놀라며 선상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아…….”
“헉…….”
그리고 전율했다.
본토를 뒤엎은 새하얀 빛이 한 차례 명멸하기도 잠시.
꽈르릉-!!
녹색 번개가 시내를 한가득 잠식하고 있었던 웜을 향해 작렬했다.
그 광경에 놀랐던 사람들은 이내 유령선 근처에 떠오른 기계 갑옷의 드래곤을 보더니 한 번 더 놀랐다.
“아아…….”
모두가 녹색 천둥이 끊임없이 휘몰아치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도시를 아연하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도시의 하늘에 떠오른 드래곤과 대성의 뒷모습까지.
도심지에 들러붙은 불길이 밤하늘을 주홍빛으로 물들이며, 곧 떠오를 여명(黎明)을 대신한다.
“끝났다…….”
누군가 중얼거린 그 혼잣말처럼.
그것은 미국에 닥친 재앙이 막을 내렸음을 알리는 희망의 빛이었다.
***
“맙소사.”
“이런 게 현실일 리가…….”
공식적으로 종전이 선포되자 유령선에서 내린 사람들은 지상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도심지의 모습에 재차 경악했다.
번영과 활기로 가득 찼던 미국의 도시는 아포칼립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폐허로 둔갑했다.
제아무리 사령 군단이 나선다 해도, 몬스터가 날뛰며 주변 건축물이 반파되는 건 불가피했으니까.
미국 정부는 먹통이었던 첨단 장비가 복구되기 무섭게 나라 각지에 복구 및 구호 활동을 시작했다.
비탄이 가득한 거리 위로 구난 헬기와 의료진들이 바삐 오갔다.
“…….”
대성은 유령선을 비롯한 모든 구현화 오브젝트를 해제했다.
그는 당장은 체크포인트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박정호 협회장과 함께 천천히 폐허가 된 길거리를 걸었다.
“전 세계적으로 게이트에 돌입이 안 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드디어 평화가 왔나 싶었습니다.”
매연이 코를 따갑게 하고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귀를 괴롭게 했다.
그 모든 것과 마주한 박정호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한탄했다.
“그런데 제 착각이었습니다. 아직 끝나려면 멀었나 보군요.”
“예.”
“사카이 총장과 각국 협회장의 죽음은 분명 큰 혼돈을 초래할 것입니다, 대성 씨.”
“…….”
“그 작자들이 대성 씨를 의심해서 화가 나셨다는 거, 압니다. 그런데 너무 경솔하셨습니다. 지금 와서 이딴 말을 하는 저도 참, 비겁하다고는 생각합니다만…….”
“가정해보죠.”
대성이 박정호의 말을 끊었다.
“만약 오늘, 제가 나서지 않았을 경우를 말입니다.”
“…….”
“그놈들은 자기들만 안전한 벙커에서 숨었겠죠. 나약한 클랜과 사냥꾼들은 고전했을 겁니다. 건물이 무너지고, 죄 없는 사람들은 마구잡이로 죽어 나갔을 테고요.”
“……그랬겠죠.”
“그럼 돌이켜보면 그 연맹이란 놈들은 결국 뭘 한 겁니까? 쥐새끼처럼 숨은 거?”
당연히 그 질문에 대답할 말은 박정호의 입에서 나오지 못했다.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민간인을 내팽개쳤던 총장과 협회장들의 주장을, 그는 아직도 잊지 못했으므로.
“협회장님.”
그렇게 말하는 대성의 눈은 박정호가 아닌, 복구 작업이 한창 중인 폐허를 보고 있었다.
“제가 이 전쟁을 끝낼 겁니다.”
“혼자서…… 말입니까?”
“협회장님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저는 누구를 신뢰하고 싶지도, 의지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너무나 무능력한 연맹의 대처를 보며 완전히 믿음을 꺾었다.
군대와 클랜이 제 할 일을 해줘도, 그들을 책임지는 수뇌부의 비겁한 수작을 보면서 질린 것이다.
윗물이 더러운데 아랫물이 멀쩡할 리는 없지 않겠는가.
박정호는 숨을 들이쉰 후, 씁쓸한 웃음을 머금었다.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대성 씨의 말도 틀리진 없으니까요.”
연맹 본부가 주둔한 미국도 이 모양 이 꼴인데.
만약 이와 비슷한 사태가 한국에서 벌어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만 해도 박정호는 눈앞이 아찔해졌다.
‘그렇게 되면 결국, 기댈 만한 존재는 이 남자밖에 없겠지.’
박정호는 문득 자신이 대성을 맹신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리 많은 사냥꾼이 분투해봤자, 최후에 결국 사태를 종식해줄 자는 대성뿐이라며.
이전까지는 단 한 명의 사냥꾼에게 이토록 무한한 신뢰를 보냈던 기억이 없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홀로 모든 걸 짊어진다는 건, 대성 씨라면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겠죠. 다만 굉장히 고될 것입니다. 대성 씨라고 해도 말이죠.”
“뭐, 그럴 수도 있고요.”
“……괜찮으시겠습니까?”
박정호의 눈에는 대성이 위태로운 외길을 걷는 것처럼 보였다.
한편으로는 궁금해지기도 했다.
어째서, 그가 저토록 외로운 늑대를 자처하며 힘든 싸움을 계속해 나가는지.
대성이 입을 열었다.
“<컨트리>가 저를 게이트에서 암살하려고 했을 때.”
“예?”
“그리고 연맹이 저를 의심하고 청문회로 소환하려고 했을 때.”
뜬금없는 대답이 이어지자 박정호는 의아했지만, 일단 잠자코 들었다.
“저는 다 싫었습니다. 아무리 제가 처절하게 싸우고 굴러봤자, 돌아오는 건 멸시와 의혹뿐이었으니까요.”
“…….”
“그래서 그냥 이대로 잠적하거나, 기분대로 전부 때려 부수고픈 충동이 든 게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박정호의 뒷덜미에 섬뜩한 감각이 스쳤다.
만일 대성과 그의 소환수가 인류의 적이 된다면 어떻겠냐는 클로이 협회장의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런데 어느 날, 시애틀에 있는 한 아이가 제게 손수 쓴 감사의 편지를 보내더군요.”
-Thank you! My hero!
“또 동작대교에 크라켄이 나타났을 땐, 한 남자가 가족을 끌어안고 제게 울면서 고맙다고 그랬고…….”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까 맨해튼의 대피소에선, 한 여자가 아직 말도 못 뗀 어린 자식을 품에 안은 채 제게 넙죽 엎드리면서 감사 인사를 전하더군요.”
“…….”
“제가 죽인 놈들도 가족은 있겠죠. 압니다. 그런데 그것까지 고려하며 악당들을 살려두기는 싫습니다.”
대성이 내릴 수 있는 판결은 오로지 죽이느냐 살리느냐의 양자택일뿐이었다.
80년 동안 지옥에서 배운 게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죄가 없는 이들은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죄도 없는 자신이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지옥으로 끌려가 봤기에 하는 말이었다.
“저는 제가 지킨 생명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이때.
의료진들이 크게 다친 노인을 들것에 실은 채 대성의 앞을 지나가던 찰나였다.
슥.
주름 가득한 노인의 손이 그의 손을 스치듯 잠시 붙잡더니,
이내 멀어졌다.
그것은 의식이 희미하던 와중에도, 노인이 사력을 다하며 표한 감사 인사였다.
“…….”
옅은 온기가 남은 손을 말없이 응시하던 대성이 입을 열었다.
“지옥은 하나면 충분하다는 걸 말이죠.”
***
그 후로, 대성은 체크포인트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매스컴에는 이번 대규모 프렉쳐를 비롯해 연맹의 총장과 각국의 협회장이 한꺼번에 사망했다는 보도가 이어져 세상을 충격에 빠뜨렸다.
물론 대성이 신경 쓸 바는 아니다.
중요한 건,
“명하신 대로 핵심 정예병들만 따로 간추렸습니다, 주군이시여.”
“수고했다.”
이번에 열심히 모은 오리할콘을 적재적소에 소비하는 것이었으니까.
대성은 통째로 매입한 오피스텔 건물 안쪽에서 ‘귀왕의 영지’를 구현시켰다.
그리고 돌프를 시켜 100마리 정도, 실력이 썩 나쁘지 않은 사령 병사를 영지에 집결시켰다.
돌프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얼핏 보기엔 특별한 점이 없는 평범한 보병들이다.
‘돌프가 직접 선별했다면 믿을 만하다. 사령 병사에 한해선 나보단 이놈이 더 잘 아니까.’
어쨌든 준비물은 전부 마련됐다.
이젠 실행에 옮기는 일만 남았다.
-형상기억기능을 활성화할 대상을 선택하십시오.
대성은 눈앞에 있는 101마리의 소환수를 한꺼번에 선택했다.
일일이 한 마리씩 신경 썼다가는 날밤을 새워야 할 테니까.
-현재 보유 중인 오리할콘의 수량으로 변이 가능한 가장 적당한 물체를 검색 중.
-검색 완료. ‘방패’
-검색 완료. ‘장창.’
-검색 완료. ‘합금 갑옷.’
-총 18350개의 오리할콘을 소모합니다.
-활성화하려면, 선택한 대상을 향해 명령어 “전개” 언급.
섬멸룡에게 플라스마 캐논을 탑재하는 데 소모한 4000개를 더하면, 수중에 있는 오리할콘 대부분이 사라지는 셈이었다.
물론 아쉬워할 필요도 없고, 아낄 필요도 없다. 부족하면 몬스터를 죽이고 더 모으면 그만이니까.
“전개.”
명령어가 대성의 입에서 나오기 무섭게, 눈앞에서 나노 입자의 물결이 소환수를 먹어치우듯이 집어삼켰다.
촤르륵-!!
-오리할콘 활성화 완료.
-활성화 결과: ‘포스 실드(Force shield).’
-활성화 결과. ‘레일 스피어(Rail spear).’
-활성화 결과. ‘배틀 슈트(Battle suit).’
나노의 물결이 요동치기도 잠시, 변혁의 결과를 지켜보는 대성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보기 좋네.”
중세풍 갑옷과 장병기로 무장한 병사들이 21세기조차 뛰어넘은 미래 기술과 융합하면 이런 모습일까.
특수 합금으로 구성된 ‘배틀 슈트’를 입은 사령 병사는 좀비라기보다는 ‘사이보그 군단’에 가까웠다.
놈들이 저마다 쥔 장창 또한 창날이 평범한 금속이 아닌, 자기장 장치로 형성된 플라스마 에너지였다.
그리고,
“마침 방패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습니다. 성은에 감사드립니다, 주군이시여.”
돌프의 왼손에는 커다란 사각 방패가 잡혀 있었다.
방패 또한 마찬가지로 손잡이가 달린 파츠를 제외하면 전부 고열의 에너지 방어막으로 이루어졌다.
죄악검과 함께 다루면 아마 어마어마한 시너지가 나오리라.
‘낡아빠진 창과 갑옷으로도 웬만한 지구의 사냥꾼을 압도하던 놈들이다.’
그랬던 사령 병사에게 이제는 날개까지 달아준 셈.
웬만한 적수가 아닌 이상에야 그들이 쓰러질 일은 없으리라.
“나는 사흘 뒤에 자리를 비운다.”
튜닝을 마친 소환수 군단을 향해, 대성이 마력을 실은 진중한 목소리로 그들에게 당부했다.
“내가 없는 동안, 한국은 너희들이 지켜야 해.”
황준영 일행 셋이서 한반도 전체를 지키는 건 버거울 터.
그래서 대성은 유사시에 나서줄 핵심 병력 100명만 간추려서 한반도 곳곳에 배치하기로 했다.
“두 번 죽을 기세로 영토를 수호하도록. 알겠나?”
절대자의 명이 떨어지자,
그어어어-!
사령 군단이 레일 스피어를 치켜들며 사기 가득한 함성을 터뜨렸다.
***
그리고 사흘이 지나…….
[남은 시간: <00:00:00>]
[플레인 포탈로 전이합니다.]
대성은 지구에서 자취를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