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옥에서 돌아온 한대성-109화 (109/180)

#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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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기억은 방에 들어가 눈을 감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눈앞에는 은하수가 펼쳐져 있었다.

“…….”

우주의 새카만 장막 위로 촘촘히 수놓아진 별들의 띠.

그곳에서 대성은 물질계에 붙들린 육신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의 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붉은 안개로 이뤄진 상태였다.

넘실거리는 진한 연기가 모이고 모여, ‘한대성’이라는 남자의 형상을 이룬 것이다.

‘뭘까.’

연기가 되어 은하수를 유영하는 자신의 모습을 둘러보며, 그는 의아함을 느꼈다.

금세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플레인 게이트로의 접속을 마쳤습니다.]

[권능, <접속>을 발동할 시 헥카르가 창조한 영계(影界)의 육신, ‘에테리얼(Ethereal)’로 거듭납니다.]

[‘에테르’의 기운으로 이뤄진 육신은 다원 우주를 여행할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접속>을 통해 다원 우주에서 최대 체류 가능 시간은 336시간입니다.]

[남은 체류 시간: 335:59:54]

많은 메시지가 눈앞을 채웠으나 대성이 주목한 건 마지막 2개의 글귀뿐이었다.

영계의 육신이니, 에테리얼이니 하는 말은 건너뛰었다.

‘헥카르인지 뭔지 하는 놈들이 만든 비술을 내가 알 필요는 없지.’

실질적으로 주목해야 할 점은 시스템이 알려준 체류 시간이었다.

336시간. 즉, 2주.

‘지구의 시간과 이곳에서의 시간은 똑같이 흐르는 건가?’

아니면 다르게 흐르는 걸까.

그 부분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시스템이 내놓지 않았다.

만일 지구와 이쪽의 시간이 똑같이 흐른다면 조금 곤란해진다.

‘2주 동안 한국이 됐든 어디가 됐든, 미국에서처럼 또 게이트가 안 터진다는 보장은 없지.’

미국도 게이트 진입 불가 사태가 발생한 지 정확히 열흘 만에 그 사달이 벌어지지 않았던가.

물론 유사시를 대비하기 위해 사령 병사들을 오리할콘으로 무장시키고 황준영 일행을 주둔시키긴 했지만.

‘됐다.’

어차피 답도 안 나오는 문제에 골머리를 앓아봤자 뭐하겠는가.

해야 할 것은 주어진 2주 동안 최대한 이곳, 플레인 게이트의 비밀을 파헤치는 것.

그리고,

‘천상에 있는 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내 눈으로 똑똑히 보겠다.’

그간 열심히 천상의 초월자를 죽여도 얻어낼 수 없었던 답을 이곳에서 얻는 것.

그걸 위해 이곳에 온 거니까.

‘다원 우주로의 접속이 가능한 권능이라고 했었지.’

대성은 몸을 움직였다.

다리로 땅을 밟는 것과 날개를 펴고 창공을 누비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감각이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민들레 홀씨처럼 그저 고요히 흘러가는 느낌.

그렇게 몇 시간을 정처 없이 이 아득한 은하수를 방황했을까.

‘저건?’

끝없는 어둠과 좁쌀 크기만 한 별빛만이 전부였던 공간에 광대한 무언가가 있었다.

하얀빛을 발하는 그것은, 은하수의 천장이라도 꿰뚫을 듯이 길쭉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하얀 기둥이라고 생각했건만, 유심히 살펴보니 그것이 나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메시지가 나타났다.

[‘차원수’를 발견했습니다.]

[입장하시려면 ‘뿌리목의 파수꾼’과 접촉하십시오.]

메시지의 내용도 내용이건만 기이한 거목의 형태가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거목은 줄기가 있고 가지가 뻗어 있는 보편적인 나무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다.

‘가지가 전부 줄기를 휘감고 있군.’

한눈에 나무임을 알아보지 못한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심지어 줄기를 감싸 안은 가지들은 전부 생기를 잃고 말라붙었다.

멀리서 보면 아마 하얀 기둥에 거무튀튀한 철사가 휘감긴 모양새이리라.

‘다원 우주로 통하는 것과 차원수 사이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거지?’

아니, 발상을 달리하면.

어쩌면 이 차원수가 다원 우주로 통하는 길, 그 자체가 아닐까?

명확한 확신은 없다. 2주라는 제한 시간까지 걸린 마당에 멍하니 살펴볼 여유도 없다.

‘뿌리목의 파수꾼.’

시스템이 알려준 대로 그놈과 접촉하면 무언가 뾰족한 답이 나올 터.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그놈은 줄기의 맨 아랫부분에 있으리라.

대성은 곧장 아래를 향했다.

그리고,

-이상하군.

메아리처럼 끝 음이 미약하게 울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줄기의 밑동으로 내려가는 대성의 눈에는 얕은 곁뿌리를 의자 삼아 걸터앉은 남자가 보였다.

-이번 해에 ‘승격의 의식’을 치르는 고행자가 있단 말은 못 들었는데 말이지.

남자는 시체처럼 문드러진 전신 위로 검은 사제복과 중절모를 썼다.

사제복은 그 자체만으로도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것처럼 옷자락 끝부분이 짐승의 꼬리 같이 살랑거리고 있었는데, 대성에게는 그 광경이 무척이나 눈에 익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옥의 제사장이 왜 여기에?’

정확히 몇 년 전인지는 기억 안 나지만, 사제복의 남자는 그가 지옥에서 맞닥뜨린 적이 있는 마수였으니까.

제사장, 오디.

절대 군주인 마신을 섬기며, 지옥의 심연에서 유일하게 종교라는 개념을 정착시킨 녀석이다.

‘마신을 섬기면 지구로 돌려보내 준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영혼 없는 인형 병사로 전락할 뻔했지.’

지성조차 없는, 오직 마신과 제사장의 명령에만 따르는 꼭두각시.

당한 기억이 있다 보니 지금도 그 인상을 알아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다만 한 가지 다른 게 있다면,

‘그때보다는 재밌는 꼴을 하고 있군.’

오디의 가슴에는 기다란 장검과 장창이 X자로 교차한 형태로 관통되어 있었다.

가슴에 창칼이 꿰뚫리면 목숨을 잃는 건 마수도 다르지 않다.

-사도들의 허락을 받지 않고 마음대로 의식에 임하려는 고행자가 있는가. 이리 와서 얘기나 들어보지.

상식적으로 당장 죽어야 할 모습이지만 오디의 목소리엔 평온함이 가득했다.

대성은 뿌리목에 당도했다.

[뿌리목의 파수꾼]이라는 글귀가 제사장의 머리에 떠올랐다.

“네가 왜 여기에 있지?”

-파수꾼이 주어진 사명을 다하는 게 이상한 일인가? 그 정도 당연한 상식도 모르면서 어찌 고행자를 자처…….

중절모를 살짝 들어 올린 오디의 눈이 대성의 시선과 얽혔다.

안구 없는 검은 눈두덩이 희미하게 꿈틀거렸다.

-주, 주군이시여?

“…….”

오디는 흐릿한 영체를 하고 있기는 하나, 어쨌든 대성을 알아보았다.

그는 지옥의 절대자를 맞이하는 순간 껄렁하게 걸터앉았던 자세를 올곧게 고쳤다.

뿌리목에서 벌떡 일어난 오디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주군께서 어찌 이곳에…… 아! 새로이 지옥의 권좌를 점하신 주군께 우선 인사부터 올리겠습니다.

“내가 마신을 쓰러뜨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지금은 비록 천상계에 몸을 두고 있으나, 저라는 존재의 뿌리는 어디까지나 지옥과 이어져 있습니다. 고향이었던 차원의 지배자가 뒤바뀌는 격변 정도는,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정중하게 한쪽 무릎을 꿇은 오디가 머리를 깊이 조아렸다.

대성이 됐다는 듯이 손사래를 치자 오디는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대성은 2년 전, 처음으로 업화대검을 얻었을 때 염왕 마그누스가 알려줬던 사실을 떠올렸다.

“지옥에서 죽은 존재는 판데모니움으로 떨어진다고 들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너는 여기서 뭘 하는 거지?”

-주군의 손에 죽음을 맞이했을 당시에는 저 또한 판데모니움에 있었습니다. 다만 시간이 지나 저들의 노역꾼으로 선출되어 차원수를 지키는 경비병이 되었지요.

“노역꾼?”

-판데모니움에 갇힌 이들 중, 쓸모가 있는 자들은 족쇄를 차고 노역꾼이 될 수 있습니다. 운이 나쁜 건지,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족쇄라는 말에 대성의 눈길이 오디의 상체 쪽으로 옮겨졌다.

가슴을 관통한 칼과 창.

쓰라린 미소를 짓듯이 오디의 입가가 위로 비틀렸다.

-제 족쇄입니다. 노역꾼의 사명을 어기는 즉시 제 의지와 상관없이 창칼이 제 심장을 파고들 겁니다.

“사명이 뭐지?”

-제가 할 일은 차원수의 입구를 경계하고 지키는 것과 동시에, 사도들의 허락을 받은 고행자들을 맞이하는 겁니다.

추가적인 질문이 날아오기도 전에 오디는 연이어 설명을 계속했다.

요약하자면,

‘고행자’들이란 천상의 예비 사도로 거듭나기 위해 ‘승격의 의식’이라는 시련을 헤쳐나가는 자들.

그리고 차원수는 그 시련이 행해지는 장(場)의 역할을 하였다.

“차원수에 대해 뭔가 아는 건?”

-저도 제가 지켜야 할 이 거목의 정체를 잘 알지 못합니다.

천상의 존재들은 한낱 노역꾼에게 많은 걸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차원과 차원을 잇는…… 다원 우주 그 자체를 상징하는 신수(神樹)라는 사실 정도만 어렴풋이 알고 있죠.

오디는 몸을 돌려, 우주 끝까지 뻗은 거대한 나무를 가리켰다.

-줄기에서 뻗어 나온 무수한 가지들은 각 차원과 통하는 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지금은 뻗어 나온 게 아니라 줄기에 묶여 있다만?”

-봉인되었기 때문이죠. 본래는 찬란한 광휘를 뿜고 있었다는 가지가 지금은.

빛을 잃고, 무미건조한 검회색을 띤 채 휘어졌다.

오디는 슬프다기보다는 화가 난 얼굴로 가지를 응시했다.

거목의 가지가 다원 우주에 속한 차원들과 이어진 ‘통로’라면, 저 중 어딘가에 ‘지옥’도 포함되어 있다는 말이 되니까.

‘라미쉬와 엘하임의 기억에서 봤던 것들.’

하늘에서 천상의 병사들이 쏟아지고, 거대한 은사슬이 그들의 행성을 잠식했던 장면이 머릿속을 스쳤다.

판테온에서 봤던 지옥도 비슷한 현상을 겪고 있었다.

시공간의 봉인, 그리고 천상의 병사들.

‘그렇게 봉인된 차원들은 색을 잃고 줄기에 묶인다.’

그렇다면.

그 ‘묶는다는’ 개념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그밖에 더 아는 건?”

-이 나무는 외부 차원의 존재가 천상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것 말고는…….

“고행자들이란 자들은 천상에서 온 존재가 아닌 모양이지?”

-그건 아닙니다. 그들 또한 천상에서 나고 자란 존재들. 다만 예비 사도가 되기 위해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할 것을 강요받죠. 그렇기에 ‘시련’이라 불리는 겁니다.

“흠…….”

대성은 턱을 쓸며 나무의 꼭대기를 바라보았다.

너무 아득해서 이쪽에서는 시야에 닿지도 않는다.

-직접 차원수 내부로 진입해 올라가지 않는 이상, 꼭대기에 있는 천상계로 진입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정해진 시련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말이지.”

시련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어떤 난관이 따르더라도 당연하다는 듯이 깨부술 확신과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저 천상에 도달할 길이 확실히 존재한다는 사실만이 대성에게는 기쁨으로 다가올 뿐이었다.

‘길이 있다. 그거면 충분해.’

남은 건 시련에 관한 내용이다.

문답이 오갔다.

차원수 내부는 꼭대기까지 총 100계층으로 이뤄졌다.

그리고 시련은 총 두 가지 양상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단순하게 천상의 존재들을 격퇴하는 시련.

나머지 하나는, 인내의 시련.

-인내의 시련은 적과 싸워서 승리를 쟁취하는 형식과는 다르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송구하오나 제가 직접 시련을 경험해본 건 아닌지라 자세한 건…….

“됐다. 네가 모르는 건 내가 몸으로 겪어보면 그만이니.”

잡설은 이만하면 됐다.

2주라는 시간은 절대 여유롭게 여길 만한 것이 못 된다. 대성은 차원수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갔다.

“들어가겠다.”

-…….

“왜 그러지?”

굳게 닫힌 기둥의 초입을 열어줄 존재는 오로지 오디뿐이다.

그런데 갑자기 물끄러미 시선을 보내는 오디를 보자, 대성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아무리 마음 깊이 복종하는 절대자라 할지라도, 공과 사는 철저히 구분할 생각일까?

-주군이시여, 저는…… 죽음이 두렵습니다. 두려웠기에, 저를 이런 외딴곳에 내몬 원수들의 충견으로 살아가면서 지금껏 아득바득 연명해왔던 겁니다.

“…….”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지옥의 절대자이신 주군을 보니, 이제야 제가 원래 어떤 작자였는지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지옥의 군주인 마신을 섬겼던 자.

마신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불사했던 지옥의 제사장.

그리고 현(現) 지옥의 군주는 마신이 아니라, 이제 눈앞에 있는 남자, 대성이었다.

-저에게 있어서 가장 영광된 죽음은 절대자를 위한 죽음이겠지요.

“…….”

-송구하오나 제 손을 잡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오디가 악수하듯 오른손을 건넸다. 대성은 잠시 그 손을 바라보다, 마주 잡아주었다.

모종의 함정이 아닌, 충신이 군주께 보내는 순수한 호의임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오디의 손을 맞잡은 순간, 메시지가 나타났다.

[‘파수꾼의 인장(印章)’이 새겨졌습니다.]

[이제부터 고행자로서 ‘승격의 의식’에 도전하실 수 있습니다.]

퍼걱-!

맞잡은 손이 크게 움찔거렸다.

바로 눈앞에 있는 오디가 입에서 핏물을 잔뜩 쏟고 있었기 때문이다.

창칼이 깊숙이 파고든 상체에서는 입에서 나오는 것보다 더 많은 피가 쏟아졌다.

-스, 승리를…….

“…….”

-승리의 길…… 만을, 걸으소서……. 위대하신, 분이시여…….

털썩.

손아귀 속에서 손이 스르르 빠져나갔다. 어느덧 숨을 거둔 오디는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제 족쇄입니다. 노역꾼의 사명을 어기는 즉시 제 의지와 상관없이 창칼이 제 심장을 파고들 겁니다.

오디는 허락되지 않은 존재를 멋대로 차원수에 들여보냈다.

노역꾼의 사명을 어겨 족쇄가 그의 심장을 찌른 것이리라.

목에서 이물감이 느껴졌다.

대성은 볼 수 없었지만, 그의 목덜미에는 ‘파수꾼의 인장’이 새겨진 상태였다.

쩌저적-.

인장이 한차례 발광하고, 굳게 닫혀 있던 줄기가 좌우로 벌어지며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났다.

“…….”

동정심도, 슬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친 그 헌신과 희생정신만큼은 높이 샀다.

저벅.

공간 너머에서 환하게 쏟아지는 빛으로 다가간 대성은 방금 오디가 쓰러졌던 자리를 돌아보며 덧붙였다.

“죽음을 헛되게 하진 않으마.”

[차원수에 입장합니다.]

[‘승격의 의식’을 시작합니다.]

***

차원수의 내부에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대성이 발을 디딘 땅은 하늘을 부유하는 거대한 원반이었다.

석고를 깎아서 만든 지름 50m가량의 거대 원반.

끄트머리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얼마나 높은 곳에 떠오른 건지 지면의 형체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곳에선 마음대로 공중을 유영할 수 있는 영체의 특성도 발휘되지 않았다.

“업화대검 구현.”

우선, 뭐가 됐든 곧 닥쳐올 사태를 대비해 무장을 갖추기로 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대성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승격의 의식’은 시련이 제공하는 보상 외에는 그 어떤 아이템과 스킬도 이용할 수 없습니다.]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한 대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글귀에 나온 정보대로라면 아이템과 스킬에 의존하지 말고 맨몸뚱이로 돌파하라는 말인가.

[1계층의 시련을 시작합니다.]

[격퇴의 시련.]

[다음 층으로 나아가려면 열 마리의 ‘백색 사냥개’를 격퇴하십시오.]

펑-!

푸른 불덩어리가 부지불식간에 날아와 땅에 작렬했다.

폭연이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불길이 순식간에 원반을 집어삼켰다.

컹! 컹!

화로(火爐)로 보이는 구멍이 점박이처럼 숭숭 뚫린 하얀 개들이 어금니를 번들거리며 짖어댔다.

방금 입에서 쏘아낸 불덩어리로 고행자를 불태워 죽였음을 녀석들이 확신하던 찰나.

-저벅.

발소리와 동시에 폭연 너머로 대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확인이 필요했다.”

포탄에 버금가는 화력과 충돌했으나 그의 몸에는 그을린 상처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빠르게 회복되었다.

“내 순수 피지컬이 어느 정도 수준인가 말이지.”

차원수의 시련은 영체 또한 물질계의 육신처럼 똑같이 사물에 간섭하고, 상처를 입을 수 있게 해준다.

지금 대성이 보여준 방어력과 회복력은 그가 영체인 것과는 전혀 무방하다는 의미다.

“그런데 방금 그건 기준 삼을 가치조차 없는 형편없는 공격이었어.”

대성이 땅을 박찼다.

번개가 번뜩이는 듯한 발재간은 사냥개들의 순발력으로도 따라잡기에 불가능했다.

무수한 잔상 사이로 마수(魔手)가 닥치는 대로 뻗쳐왔다.

깽!

깨갱!

그것이 사냥개들의 몸에 닿을 때마다, 놈들은 목이 꺾이거나 뼈가 우그러지고 팔다리가 찢어졌다.

열 마리의 사냥개들은 순식간에 걸레짝이 되어 죽었다.

[1계층의 조건을 달성하셨습니다.]

[다음 층으로 향하는 포탈이 생성되었습니다.]

원반의 정중앙이 활짝 열리며 빛의 기둥이 솟아올랐다.

대성은 땀 한 방울 흐르지 않는 모습으로 기둥에 발을 들였다.

2층을 넘어, 3층으로.

3층을 넘어, 4층으로.

단순무식하게 격퇴의 시련만이 반복되었다.

몇 마리의 사냥개가 나오든 그가 층 하나를 돌파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균등하게 5초.

9계층에 도달하는 데에는 불과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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