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
114
“저, 저, 정신 나간 놈……!”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는 관용어는 천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제7사도, ‘라그마온’의 머릿속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정확히 그 표현을 떠올리는 중이었다.
그럴 수밖에.
퍼퍼퍼퍼퍼퍼펑-!!
관용어의 문제가 아니라 정말로 천상의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머리가 하얗게 물든, 그런데 천족(天族)은 아닌 어떤 남자가 검은 용을 몰며 하늘을 배회한다.
검은 용의 날갯죽지 안쪽에 장착된 기갑 화포가 끊임없이 벼락을 쏟아낸다.
“꺄아아아악-!!”
“어흑?! 어어억-!!”
“살려줘-!!”
“악마다! 아아! 천상에 악마가 나타났어!”
화포가 토해내는 백색 천둥이 엘리시온의 무고한 거주민들을 불태우고 지형지물을 무너뜨렸다.
방금 누군가 외친 말마따나 악마가 천상에 내려왔다. 아주 지독한, 피도 눈물도 없는 무정한 악마가!
“전 부대! 모든 화력을 저 용에게 집중시켜라!”
지상에서 타오르는 불길 때문에 벌겋게 물든 하늘엔 총합 10기의 공중 군함이 부양(浮揚) 중이었다.
천상의 비공함대(飛空艦隊), ‘레퀴엠(Requiem)’.
함장 라그마온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군함들이 거대한 선체를 뒤틀어 섬멸룡을 표적화한 순간.
“발사!”
퍼퍼퍼퍼펑-!
전면부에 배치된 주포가 목표물을 향해 불꽃을 토했다.
레퀴엠에 탑재된 주포 또한 위력 면에선 절대 섬멸룡의 플라스마 캐논에 뒤처지지 않는다.
스무 갈래의 초고열 기탄(氣彈)이 창공에 푸른 선을 아로새기며 섬멸룡과 대성에게 짓쳐오기 시작했다.
[‘작열’ 모드의 두 번째 특수 스킬이 발동됩니다.]
[특수 스킬 : <화벽(火壁>]
화르륵-!
날아들던 기탄들이 섬멸룡의 몸뚱이를 둘러싼 불꽃의 구체에 가로막히더니 곧 녹아내렸다.
“이럴 수가?!”
단 하나의 목표물에 치중하기 아까울 정도로 막강한 집중포화였다.
그런데 그것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허망하게 사라지다니!
명령을 내린 라그마온은 물론.
다른 전함에 탑승한 전투원들의 안색도 새하얗게 질려가던 찰나.
투투투투-!!
이번엔 머리 크기만 한 불덩어리들이 둥그런 화벽을 뚫고 튀어나와 3시 방향에 있던 전함 2기를 덮쳤다.
‘작열’ 모드의 첫 번째 특수 스킬, 염탄(炎彈).
기관총처럼 쏟아지는 염탄이 전함의 동력원에 작렬했다.
엔진을 상실한 2기의 전함이 날개 잃은 새처럼 지상으로 추락했다.
‘맙소사!’
눈 깜짝할 사이에 전력의 2할을 상실했다. 정신이 아찔해진 라그마온이 초점이 흐릿한 눈을 움직여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안 그래도 불바다였던 지상이, 방금 추락한 전함들에 의해 한층 더 끔찍한 수라장으로 변모하였다.
‘이, 이 상황을 대체 어떻게 해야 타개할 수 있는 거지?’
불타는 아보리아의 산맥으로 진군했던 1군은 지금 막 망혼들의 먹잇감이 되어 전멸하기 일보 직전.
대륙의 중앙을 수호하는 비공함대마저 저 정체 모를 침입자의 상대가 되지 못하고 있다.
그때.
크오오오-!!
화벽을 두른 섬멸룡이 7시 방면에 있는 전함으로 쇄도했다.
이내 잡초라도 뜯듯이 선체에 전개된 방어막을 발톱으로 찢어발겼다.
전함에 있던 전투병이 창칼 따위를 내세우며 섬멸룡의 비늘을 찔렀으나 달걀로 바위를 두드리는 격이다.
그러는 사이, 대성은 <비행> 스킬로 날개를 활짝 펼친 채 나머지 전함을 하나둘씩 부쉈다.
대검 한 자루로만.
서걱-! 서걱-!
불꽃의 칼이 휘둘러질 때마다 1km에 육박하는 대형 공중전함이 순두부 잘리듯 쪼개졌다.
멀쩡한 대비를 할 틈도 없이 9기의 선체가 삽시간에 격침당했다.
잠시 후.
“…….”
“…….”
남은 하나.
라그마온이 있는 사령선에 당도한 대성이 땀 한 방울 흐르지 않는 얼굴로 조용히 시선을 보내왔다.
물러설 길 없는 낭떠러지까지 몰린 라그마온은 이를 악물었다.
그 또한 천상의 일곱 번째 사도.
절망감에 허덕이며 겁을 집어먹는 대신 당당히 강적과 마주했다.
“……아보리아에서 모습을 드러낸 걸 보니 차원수에서 올라온 모양이군. 아까 오르키엘이 이변을 깨닫고 직접 파견을 나갔는데.”
“…….”
“그녀를 어떻게 했지?”
질문을 가장한 시간 벌이다. 라그마온은 속으로 안간힘을 쓰며 적의 허점을 살폈다.
그러다 불현듯, 대성의 갑옷 허리춤에 매달린 나비 가면을 보고는 동공을 수축시켰다.
오르키엘의 가면.
그것이 저 남자의 수중에 있다는 게 무얼 의미하는지는 자명했다.
“이 찢어 죽일 놈-!”
전우(戰友)의 죽음에 분노한 그가 가느다란 레이피어(Rapier)를 꺼내 들며 대성에게 달려들려던 찰나.
푹-!
그의 사위가 대성의 얼굴로 채워지며 쇳덩이 같은 대검이 가슴팍을 깊숙이 꿰뚫었다.
눈에 핏발이 바짝 서며 무시무시한 열기와 격통이 오감을 헤집었다.
“이 배, 화력이 썩 괜찮더군.”
“컥……!”
대성은 창백하게 식어가는 라그마온을 잡아끌고 갑판 정중앙으로 걸어갔다.
거기엔 기판(基板) 형태의 조종석이 설치돼 있었다.
아까 라그마온이 이 조종석에 손을 얹으며 전함의 주포를 가동하는 것을 대성은 똑똑히 보았다.
“좀 빌린다.”
“…….”
라그마온은 축 늘어진 밀랍인형처럼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대성이 그의 손을 잡아당겨 조종석을 건드리는 순간에조차도.
라그마온의 지문을 인식한 조종석이 천천히 레퀴엠의 포구를 아래쪽으로 선회시켰다.
그리고,
퍼버버버버벙-!!
주포에서 터져 나온 광선이 지상을 강타했다.
“…….”
라그마온은 다 죽어가는 눈으로 불벼락에 잠기는 대륙을 바라보았다.
엘리시움의 안보를 수호하던 전함이 지금은 지독한 재해가 되어 영토를 집어삼켰다.
“아……. 아, 아아…….”
그제야 깊은 슬픔과 공포를 느낀 라그마온이 힘겹게 흐느꼈다.
“잘 썼다.”
그 말과 함께,
우지끈-!
대성은 눈물 가득한 라그마온의 얼굴을 경추(頸椎)까지 꺾었다.
[죽어간 사도의 신력이 이곳을 맴돌고 있습니다.]
[6계위 치품천사(熾品天使)의 신력을 흡수합니다. 사도가 지닌 고강한 신위를 일부 계승합니다.]
[오류 발생. 물질계의 육신이 아니기에 신력을 수용할 수 없습니다.]
이로써 또 한 명의 사도가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안 나오다니. 슬슬 존경스러워지는데.’
독종이 따로 없는 주신의 행보에 혀라도 내두르고 싶은 심정이다.
결국, 주신이란 놈은 끝까지 먼저 행차할 마음이 없으신 모양이다.
그렇다면 친히 이쪽에서 쳐들어가는 수밖에.
휙-!
섬멸룡에 올라탄 대성이 고개를 돌려 먼 곳을 응시했다.
불에 잠긴 광대한 대륙 저 머나먼 끝에, 원뿔 형태의 건축물이 탑처럼 세워져 있었다.
사방 천지가 걷잡을 수 없는 불지옥인데 어째선지 저기만 고고한 안식의 땅이다.
간신히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헐레벌떡 저 원뿔 건물로 달려가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저것이 그린 존(Green zone)의 역할을 하는 모양이군. 달리 말하자면 주신이란 놈이 제 안위를 챙길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일 테고.’
천상을 관장하는 존재라기에 희생정신도 투철할 줄 알았더니, 이래서야 뉴욕 사태에서 추한 꼴을 보였던 사카이 회장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끄집어내겠다!
서슬 퍼런 일념을 마음에 새긴 대성의 등 뒤로 검은 기류가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햐아아아아-!
그아아아아-!
일시적으로 해방된 200마리의 마수가 지상을 향해 떨어졌다.
콰직-! 와그작-!
판데모니움의 마수에게 있어서 천족은 결단코 용서할 수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일 터.
녀석들은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천족을 물어뜯었다.
겨우 목숨을 건져 아등바등 안전지대로 달려들던 자들이 고통 속에서 속절없이 죽어갔다.
“움직여라.”
크오오오-!
그 사이, 대성은 섬멸룡을 몰아 단숨에 원뿔 건물로 쇄도했다.
압도적인 추진력과 비행 속도로 건물의 인근까지 접근하는데 1분이면 충분했으나…….
크으-?!
갑자기 섬멸룡이 힘없이 고꾸라지며 땅으로 추락했다.
쿵-!
녀석의 거체가 땅과 충돌하기 직전, 대성은 유연하게 공중제비를 돌며 지면으로 착지했다.
‘광살포도 안 쏜 놈이 이게 무슨?’
몇 초 전까지만 해도 기세 좋게 공중전함을 이빨로 씹어먹었던 놈이 이유 없이 지칠 리는 없을 테고.
직후, 시스템이 해답을 제시했다.
[‘엘리시움’의 중앙 수도, ‘백색 영지’로 진입했습니다.]
[영지를 맴도는 신력이 허락받지 않은 불길한 기운을 차단합니다.]
아니, 섬멸룡뿐만이 아니다.
말짱했던 대성도 이곳에 들어선 순간 강렬한 현기증을 느꼈다.
급성 몸살이라도 찾아온 것처럼 컨디션이 난조(亂調)를 보였다.
‘이곳 지역 자체가 나와 섬멸룡의 마력을 앗아가고 있다.’
특히나 섬멸룡은 몸집이 큰 만큼 그 영향이 대성과 비교해 몇 배나 크게 작용하는 듯싶었다.
대성은 이마에서 흐르는 식은땀을 슬쩍 훔치며 구현을 해제시켰다.
‘단숨에 간다.’
신력이든 뭐든 알 바 아니다.
힘이 모조리 소진되기 전에 할 일을 마치면 그만 아니겠는가.
육신은 온통 땀범벅이 되어 초췌한데 안광만큼은 형형히 일렁였다.
[‘업화’ 모드의 첫 번째 특수 스킬이 발동됩니다.]
[특수 스킬 : <작염(灼炎)>]
화르르륵-!!
불길 그 자체가 되어 흩어진 업화대검이 대성의 몸을 휘감았다.
그렇게 불의 거인으로 거듭난 그는 얼마 남지 않은 거리에 세워진 원뿔 건물을 향해 내달렸다.
‘누가 이기나 보자.’
작염의 불꽃이 그가 지나가는 모든 길목을 사정없이 태웠다.
이대로 건물을 뚫고 들어가 주신이란 놈의 모가지를 따버리리라!
하지만 대성은 곧 멈출 수밖에 없었다.
차르르릉-!
부지불식 간에 하늘에서 쏟아진 금빛 사슬이 팔다리를 붙들었으니까.
“어딜 가게!”
카랑카랑하고 앳된 목소리가 위에서 들려왔다.
사슬에 묶여 양팔을 펼친 모습이 된 대성이 비스듬히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정체를 확인했다.
헐벗은 소년이 빛의 날개 두 쌍을 펄럭이며 조소 가득한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설마 성전(聖殿)에 들어가게? 주제를 알려무나, 이 이단아! 거긴 네가 갈 곳이 아니야! 그러니까 나랑 놀자!”
“…….”
[이단 심판관 히카누]라는 이름표가 킥킥 웃어대는 소년의 머리 위로 생성됐다.
거인이 된 대성을 휘감을 만큼 커다란 금빛 사슬은 저 빛의 날개에서 튀어나오고 있었다.
‘단죄의 사슬.’
라미쉬와 싸울 때 상점 창에서 구매한 적이 있었던 아이템이다.
분명 실내 공간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고 했을 텐데 역시 진품(眞品)엔 그따위 제약이 없는 걸까.
꾸우욱-.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팔다리에 힘을 실었으나 사슬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풀려고? 네가 뭔 수로?! 그냥 힘 빼고 있어! 내가 안 아프게 오른팔부터 뽑아줄 테니! 히히!”
본래 상태였다면 힘으로라도 억지로 풀었을 터. 하지만 백색 영지의 신력이 흡혈하듯이 힘을 앗아갔다.
작염의 불꽃마저 위태롭게 너울거리며 서서히 꺼져가려던 그때.
<판데모니움의 마수들이 절대자께 공물을 바칩니다!>
<공물 목록: 마력x50>
쩔그렁-!
“……?!”
눈매를 호선으로 만들며 연신 조소를 내비치던 히카누가 깜짝 놀랐다.
분명 끄떡도 하지 말아야 할 단죄의 사슬이 태풍이라도 만난 듯이 격렬히 요동쳤기 때문이다.
휘이이잉-!
어느덧 대성의 후위에서 열린 어둠의 소용돌이가 음산한 숨결을 토해내고 있었다.
붉은 빛무리가 반딧불이처럼 흘러나와 사슬에 묶인 그의 몸에 모여들고, 스며들었다.
마력.
자신들에게 있어선 생명력과도 같은 힘을 공물로써 바친 것이다.
위기에 처한 주군을 돕기 위해!
“미친놈들. 진작 이럴 것이지.”
유감스럽게도 대성은 일부러 극적인 순간을 노린 듯한 이 타이밍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좌우지간 허탈하게 새어 나가던 기력이 서서히 체내에서 차올랐다.
신력이 기운을 앗아가는 것보다 마수 50마리분의 마력이 그에게 힘을 불어넣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화르륵-!
소화(消火)되기 직전이었던 작염의 불길이 다시금 타올라 단죄의 사슬을 불태웠다.
“앗 뜨뜨-?!”
히카누가 시뻘겋게 달궈진 사슬에서 황급히 손을 뗐다.
끊임없이 공급되는 마력이 펌프질하듯이 불길의 화력을 키워갔다.
통째로 녹아내리는 사슬과 함께, 연결부였던 빛의 날개까지 남김없이 타들어 갔다.
콱-!
“끄흑-?!”
속박에서 풀려난 대성이 날개를 상실하고 아래로 떨어지던 히카누를 손아귀 안에 붙들었다.
용암이 주르륵 흐르는 망막이 불티를 터뜨리며 히카누를 노려보았다.
“아까 놀자고 그랬지?”
“기, 기다려……. 우, 우, 우리 일단 대화로-.”
“놀아주마. 실컷.”
“꺼허, 허어억-?!”
꽈아악-!
손아귀에 힘이 실릴 때마다 히카누의 눈이 벌겋게 충혈되었다.
프레스기에 짓이겨지는 듯한 압박과 용광로에 빠진 듯한 뜨거움.
콰직-!
이윽고 두개골이 터진 히카누가 희멀건 액체를 줄줄 흘려댔다. 구두에 짓밟힌 모기 꼴이 따로 없다.
<판데모니움의 마수들이 절대자께 공물을 바칩니다!>
<공물 목록: 마력x25>
히카누의 생사를 떠나, 영지에 주둔하는 한 마력은 쉬지 않고 그의 몸에서 빠져나간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판데모니움의 마수들이 빠져나간 만큼의 마력을 공물로 바쳤다.
‘공물이란 게 뭔가 했더니 마력 공급이었군.’
어중간한 ‘망혼 해방’보다 훨씬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있어서 유일한 약점은 유한한 마력이니까.
언뜻 무한해 보여도, 행성 전체에 마수를 구현하고 24시간 내내 필드를 소환하고 있으니 바닥을 드러냈던 전례가 이미 존재하지 않았던가.
‘영지의 제재도 통하지 않는다.’
말인즉슨, 이제 그 누구도 대성의 앞을 가로막을 수 없다는 의미.
‘작염’ 모드에서 벗어나 본래 모습으로 돌아온 그는 마침내 원뿔 건물에 도달했다.
그리고 웅장하게 반겨오는 높이 50m의 석문을 향해 깔끔한 발길질을 날렸다.
쿵-!
견고한 석문이 종잇장처럼 시시하게 쓰러졌다.
건물 내부는 휘황찬란한 외견이 믿기지 않을 만큼 휑한 공동(空洞)이었다. 명백히 이상한 형태.
‘진짜 내부는 감춰져 있나 보군.’
술식이나 마법진 따위로 실물을 허상 뒤로 감추는 이중구역.
지옥, 대표적으로 섬멸룡의 둥지 또한 이중구역이었기에 대성은 이 기이한 구조를 잘 알고 있었다.
“헉!”
“이놈! 기어코 여기까지-!”
황량한 공동을 지키던 은색 갑주의 기사들이 무식하리만치 커다란 검을 앞세우며 돌진해왔다.
상대하기도 귀찮았던 대성은 심드렁하게 망혼 해방을 사용했다.
그아아아악-!!
“끄아아아악-!!”
소용돌이에서 살포된 망혼들이 기사들을 게걸스레 뜯어먹는 사이.
“여기겠군.”
공동 한복판.
하얀 원이 새겨진 바닥을 툭툭 밟으며 대성은 그리 중얼거렸다.
그때.
“…소, 소용없다…. 허, 허락받지 않는… 치, 치품천사 이상의 조, 존재가… 아니면… 서, 성전에 발조차 들이지, 못하니까….”
“……”
빈사 상태가 된 기사가 숨을 헐떡거리며 목소리를 쥐어 짜냈다.
어떻게든 한 방 먹였다고 과시하고 싶은 걸까? 놈은 살점이 뜯어먹히는 와중에도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대성은 반응하지 않았다.
대신, 왼손을 슬며시 뻗었다.
[마법진이 성전에 입장할 수 있는 권한을 확인합니다.]
[확인 완료.]
[5초 뒤, 성전으로 입장합니다.]
판테온의 퀘스트를 완수하면 시스템이 불가사의한 금빛 광채를 추가 보상으로 주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눈앞에 텍스트가 잘린 메시지가 나타났다.
[……전에…… 있는…… 한을…… 득하셨…… 니다. 1 / 3]
[……전에 입장 ……있는 ……한을 획득하셨습니다. 2 / 3]
[성전에 입장할 수 있는 권한을 획득하셨습니다. 3 / 3]
바로 그 메시지.
2년 사이 3개를 다 모으고 나서도 용도를 종잡을 수가 없었는데, 오늘에서야 드디어 알게 됐다.
“…….”
얼굴에서 미소가 싹 사라진 기사는 대성의 손등에서 흘러나오는 금빛 광채를 보며 입을 쩍 벌렸다.
‘왜 네가 거길 들어갈 수 있냐’고 묻는 듯한 표정이다.
“뭘 봐.”
허탈한 눈빛으로 죽어가는 기사를 향해 슬쩍 한 마디 던진 뒤, 대성은 빛 속으로 잠겼다.
[성전에 입장하셨습니다.]
이제 진짜로 주신의 낯짝과 마주하는 순간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