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옥에서 돌아온 한대성-119화 (119/180)

#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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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드득-!

캘린 족이 서 있는 지점의 땅이 멈출 기미도 없이 솟구쳤다.

균형 감각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자들은 발밑에서 끊임없이 요동치는 진동을 버텨내지 못하고 그만 아래로 낙하하고 말았다.

“이런 빌어먹을!”

“내 손 절대 놓지 마! 이 높이에서 떨어졌다간 무조건 죽는다!”

“화살을 땅에 박아! 그거라도 붙잡으면서 버텨야만 해!”

틀림없이 자신들의 시대가 왔으리라 철석같이 믿으며 날뛰었던 캘린 족은 울상을 지으며 절규했다.

오랜 시간을 그 씹어 죽여도 모자랄 천상의 봉인 속에서 갇혀왔다.

차가운 빙하 속에 온몸이 꽁꽁 얼어붙었는데 의식만은 멀쩡했다. 정말 뭐라 표현하면 좋을지 모를 정도로 매 순간이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원인은 알 수 없어도 마침내 그 극한의 고통에서 벗어났건만, 이게 대체 무슨 봉변인가!

혼란이 가중되는 와중에도 캘린 족들은 억울한 나머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쿵-!

그 순간, 드디어 부유감이 멎었다.

하지만 차마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릴 겨를이 없었다.

“어, 헉……! 허윽……!”

“컥……, 괴, 괴로…… 워…….”

캘린 족들이 쥐어뜯을 듯이 가슴을 움켜쥐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하늘로 떠오른 지면이 구름을 뚫고 성층권(成層圈)까지 다다름으로써 산소가 급격히 부족해진 탓이다.

“지금 너희들이 있는 이 공중 요새는 살아있는 생명의 절망과 고통을 연료 삼아 움직인다. 참 질 나쁜 설계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

먹먹해지는 고막 사이로 너무나 무감정한 목소리가 파고든다.

수마(睡魔)에 빠지는 것처럼 뿌옇게 변한 캘린 족들의 시야가 이내 대성의 신형을 포착했다.

대체 어느새 모습을 드러낸 건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게다가 온전하게 호흡하는 것도 버거울 정도로 산소가 부족한데, 저 인간은 어찌도 저토록 평온한 얼굴을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어, 끅, 네, 네놈은 누, 누구…….”

“알아서 뭐하게.”

“이, 이 비겁한, 놈……! 다, 당장 그만두지, 못하겠느냐……!”

“어, 못해. 계속 그러고 있어.”

“끄, 으윽……!”

그나마 정신력이 굳건한 편인 캘린 족의 소족장이 게거품을 물며 대성을 원망스레 노려보았다.

그러든가 말든가 대성은 눈앞에 서성이는 시스템 메시지를 태연하게 바라보았다.

[절대자께선 현재 일곱 사도의 신력을 보유하고 계십니다.]

[특정 위업(偉業)을 달성하시어 왜곡된 인과를 바로잡으십시오.]

[현재 지구와 동화된 차원은 ‘캘린 오르하트’입니다. 인과의 회복을 위해 행하셔야 할 위업을 확인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뜬금없이 외차원의 세계가 지구와 통합된다는 시스템의 보고를 들었을 땐 진심으로 다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전지전능에 가까운 시스템의 기능 덕분인지 뭔지는 몰라도.

다행히 돌파구는 존재했다.

이 모든 개판을 수습할 수 있다고, 시스템은 명확히 명시한 것이다.

[위업 달성 조건: ‘캘린 오르하트’의 사방(四方)을 통치하는 네 명의 대족장을 제거하십시오.]

[사방의 대족장: 동방의 헨도, 서방의 고크, 남방의 마렌, 북부의 칸]

[위업을 달성하실 시 보상이 제공됩니다.]

판테온의 퀘스트 시스템이 이제는 현실에서도 나타난 느낌.

시스템은 사방의 대족장을 죽이라고만 언급했을 뿐,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 부분도 문제없다.

‘허공록에 왜 그놈들 위치가 적혀 있나 했더니 이것 때문이었군.’

상점 창에서 무료로 구매했던 정보에, 친절하게도 놈들이 어디에 있는지 지명(地名)까지 대놓고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족칠 일만 남았다.

‘일단 한국에 동방의 대족장이 있다고 했었지.’

동방을 제외한 나머지 세 마리는 각각 일본, 스위스, 중국에 있다.

차라리 한 곳에만 몰려 있으면 좋으련만 번거롭게도 뿔뿔이 흩어졌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럴 때야말로 멀티태스킹(Multi tasking)이 필요한 법.

‘그래도 딱 네 마리로 맞아떨어져서 다행이군.’

동방 대족장 헨도가 있는 일본은 대성이 맡기로 했다.

그리고 나머지 세 마리는 황준영 일행에게 맡겼다. 황준영은 일본, 신초영은 스위스, 박동혁은 중국으로.

대성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는 사이, 발을 딛고 있는 땅이 어느덧 불판처럼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슬슬 됐나.’

공중 요새는 조용했다.

꼬챙이에 꿰인 생선처럼 팔딱팔딱 뛰던 캘린 족들이 산소 결핍으로 모조리 혼절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의 고통을 자양분 삼은 공중 요새는 이제 만전(萬全)의 상태가 되었다.

천공왕의 영지에 분포했던 수백 개의 공중 요새는 말이 ‘요새’지, 사실상 폭격기나 다름없다.

‘한라산 어딘가에 있다고 했나.’

대기권까지 치달은 탓에 저 아래로 한반도 전역이 한눈에 들어왔다.

대성은 그중에서도 남해(南海) 방면에 작달막하게 위치한 제주도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지면 위로 살포시 손바닥을 얹었다. 그러자 시야에 드리운 한반도 전역 위로 붉은 원이 형성됐다.

[‘공중 요새’를 정착시킬 지점을 선택하십시오.]

“제주도 여행이나 해볼까.”

위치를 정하니 반도 전체를 덮었던 원이 이제는 제주도 부근으로만 작게 점으로 응축됐다.

그 순간.

화르륵-!!

메마른 색을 띠고 있던 땅이 거침없이 불타올랐다.

***

울창한 수림과 뒤섞인 한라산 정상. 그곳에서 수백 마리의 캘린 족들이 질서정연하게 도열했다.

식은땀을 흘리며 표정을 굳힌 그들의 앞에, 거구의 존재가 지팡이를 치켜들며 드높이 외쳤다.

“동포들이여! 우리는 기나긴, 정말로 기나긴 시간 동안 냉혹한 얼음 속에서 억압되어 있었다!”

동방의 대족장, 헨도.

그는 원인 모를 현상으로 시공간의 봉인에서 해방돼 부하들과 함께 한라산 꼭대기에서 눈을 떴다.

드디어 자유를 되찾고 복수의 기회를 얻었다는 사실에, 헨도는 감격의 눈물을 글썽이며 연설을 이어갔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지금 우리는 캘린 오르하트가 아닌, 처음 보는 잡것들의 타지(他地)에 당도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우리가 이곳에 있는 자들을 몰아내고 이 땅을 캘린 종족의 새로운 터전으로 삼으면 그만이니!”

쿵! 쿵! 쿵!

연설을 듣는 수백의 캘린 족들이 잔뜩 고양된 얼굴을 하며 손에 쥔 창칼로 땅바닥을 두들겼다.

“동포들이여, 일어나라! 이 세계를 정복한 뒤, 우리를 억압해 온 천족 놈들의 심장에 복수의 칼날을 쑤셔 넣어주자!”

우오오오-!!

헨도의 연설에 깊은 감명을 받은 캘린 족들은 무기를 들어 포효했다.

그들의 흉흉한 기세가 한라산 일대를 찌르르 울렸다.

한편.

사기가 충만해진 병사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헨도의 머릿속에는 거대한 청사진이 그려지고 있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진군(進軍)은 우선 나중으로 미뤄둔다.’

사실 헨도가 생각하는 진정한 숙명은 지구를 지배하는 것도, 천족에게 복수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4개 부족의 통일!

그로 인하여 고작 세력 하나를 관장하는 대족장 따위가 아닌.

종족 전체를 관장하는 ‘왕’이 되어 캘린 오르하트를 통치하는 것이다.

지구 정복은 그 숙명을 이루기 위해 잠시 거치는 발판에 불과할 뿐.

‘그러기 위해선 일단 나머지 대족장 놈들이 사라져야 해.’

통일을 이룩하려면 우선 그들이 죽어줘야만 했다.

집단을 이끌어줄 구심점을 상실하면 그만큼 정복도 쉬워질 터.

하지만 헨도는 정공법으로 세 명의 대족장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그들 하나하나가 동족이 봐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호전적인 전사들이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헨도는 그만큼 강하지는 못했다.

‘그럼 놈들이 알아서 자멸(自滅)할 때까지 버텨야지.’

그래서 헨도는 꿍꿍이를 꾸몄다.

다른 지역의 부족들이 인간들과 전쟁을 벌이는 동안, 동방은 절대 움직이지 않겠다고.

이 별에 사는 자들 또한 침범해 온 외적에게 가만히 땅을 내놓을 멍청이는 아니리라.

그렇게 그들끼리 박투(撲鬪)를 나누면 결국 종국엔 어느 한쪽은 반드시 괴멸할 터.

동방은 그때를 노려 살아남은 쪽을 공략한다.

대전쟁을 벌인 참이기에 이겼다 한들 막심한 피해를 보았을 테니, 동방은 손쉽게 승리를 거둘 것이다.

‘완벽한 계획이다.’

어부지리(漁夫之利)!

사실상 캘린 족이 21세기의 인간보다 지성 수준이 떨어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정도도 치밀한 편이다.

꽃길 가득한 미래를 상상하는 헨도는 표정은 근엄하게, 하지만 속으로는 함박웃음을 자아냈다.

“어?”

“대족장님? 저, 저기…….”

“……어, 어어…….”

병사들이 안절부절못하며 그의 어깨너머를 가리키기 전까지는.

의아해진 헨도가 눈썹을 꿈틀대며 병사들이 지목한 방향을 돌아봤다.

-슈우우우웅!

맹렬히 불타는 운석이 한라산 정상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주홍빛 불길이 헨도와 병사들의 군청색 피부를 환하게 물들였다.

“저게 무슨-.”

헨도가 말을 마저 마치기도 전에.

콰아아앙-!!

운석은 시원스레 한라산 정상에 내리꽂혔다.

그렇게, 장엄했던 한라산의 윗동은 흔적도 없이 불타 사라졌다.

헨도의 정열 넘쳤던 야망과 함께.

파스스-. 쉬이익-.

화염을 뚫고 대성이 파편을 밟으며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음, 동방 쪽은 끝났고…….”

그는 숯덩이가 된 캘린 족들을 쭉 둘러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나머지 쪽은 어떻게 됐는지 확인해볼까.”

황준영 일행은 섬멸룡의 해츨링을 태워 각자 나머지 잔당 세력이 있는 삼국(三國)으로 파견시켰다.

해츨링은 웬만한 항공기와는 비교를 불허하는 속력을 지녔으니 이미 몇 분 전에 목적지로 도착했으리라.

대성은 그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보고해.’

***

황준영의 경우…….

오키나와 해변 모래사장.

우두커니 서 있는 그를 기점으로 하여, 세계가 2개로 양분(兩分)되어 있었다.

발화(發火)의 오른팔이 휘저어진 우측은 뜨거운 용암 지대로.

냉각(冷却)의 왼팔이 휘저어진 좌측은 차가운 혹한지대로.

“차라리 지옥에서 나왔던 거미 놈들이 더 강하구먼. 죽어서도 부끄러운 줄 아시게.”

그리고 가운데에 선 황준영과 정확히 맞은편에 쓰러져 있는 캘린 족은 동상을 입은 건지 화상을 입은 건지 모호한 상태가 되어 죽은 상태였다.

바로 서방의 대족장, 고크였다.

이때, 마침 대성에게서 보고하라는 전음이 들려왔다.

황준영은 팔을 둥글게 돌려 뭉친 어깨를 풀며 답했다.

‘여긴 끝났네.’

박동혁의 경우…….

촤아악-!!

통나무같이 커다란 참마도(斬魔刀)가 사정없이 휘둘러졌다.

검격이 닿는 범위에 존재했던 캘린 족의 목이 피 분수를 뿜어내며 허공을 날았다.

“감히 내 부하들을!”

“어이가 없네. 자기들이 먼저 쳐놓고 왜 시비야?”

스위스의 뮌스터 대성당 내부.

남방의 대족장, 마렌이 부하들의 떼죽음에 분노하며 쇄도했다.

쾅-!

가시가 촘촘히 박힌 철제 건틀릿이 대포알처럼 뻗어지더니 박동혁의 얼굴을 강타했다.

족히 3~4m에 달하는 그의 거체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제단을 무너뜨렸다.

“너 이 새끼, 싸움 좀 한다?”

박동혁은 입가에 묻은 피를 훔쳐내며 흙먼지 사이로 몸을 일으켰다.

그러는 가운데, 목을 썰어버릴 작정인지 마렌이 바닥에 떨어진 참마도를 주워들었다.

치이익-!

“으윽……?!”

하지만 손잡이를 쥐자마자 도신(刀身) 전체가 새빨갛게 달궈졌다.

극심한 뜨거움을 느낀 마렌이 화들짝 놀라며 참마도를 떨어뜨렸다.

그 모습을 본 박동혁이 여섯 개의 눈망울을 작게 좁히며 킬킬 웃었다.

“생긴 대로 논다더니 하는 짓도 거지 같네. 그거 주인 아니시면 제대로 휘두르지도 못해요, 아저씨. 어딜 추하게 남의 물건에 눈독을 들여?”

“닥쳐라-!!”

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한 마렌이 노발대발하며 재차 돌진했다.

거대한 예배당이 금방이라도 붕괴할 듯이 흔들리던 그때.

흡-!

박동혁은 목에 한껏 힘을 실으며 가슴을 크게 부풀렸다.

---!!

그리고 일갈했다.

지옥의 스킬, ‘광기의 포효.’

“……?!”

살벌하게 달려오던 마렌이 황급히 그 자리에서 멈춰 서며 귀를 틀어막았다.

쨍그랑-!

포효에서 뿜어져 나오는 충격파에 뮌스터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산산조각 깨져 나가고, 크게 부릅뜬 박동혁의 여섯 눈에선 붉은 전류가 휘몰아쳤다.

포효를 마친 그는 더운 수증기를 입에서 내뿜으며 말했다.

“후우……. 이게 뭔지 알아? 업계 용어로 스팀팩(Steam pack)이라는 거야. 한번 쓰면 아주 눈에 뵈는 게 없어지지.”

“장님이 되는 건가?”

“그걸 지금 농담이라고 한 거냐? 아니면 너희 종족은 원래부터 좀 빡대가리인 거냐.”

쿠후우웅-!!

박동혁과 마렌이 격돌했다.

“커헉……!”

그리고 튕겨 날아간 쪽은 마렌이었다. 반대쪽 입구까지 날아간 그의 몸이 단단한 외벽을 뚫어냈다.

스릉-.

박동혁은 느긋이 참마도를 든 뒤, 성당을 빠져나가 마렌이 쓰러진 방향으로 다가갔다.

-보고해.

-여긴 끝났네.

때마침 대성과 황준영의 전음이 뇌리에서 전해져 왔다.

그는 새우처럼 허리를 휘며 피를 울컥 쏟아내는 마렌을 향해 참마도를 높이 치켜들었다.

‘여기도 끝.’

콰직-!

대성당 앞이 선혈로 얼룩졌다.

마지막으로.

신초영의 경우…….

-신초영은 왜 답이 없지?

-초영아, 대답하거라. 초영아?

-우리 말이 안 들리나? 아닐 텐데. 이 계집애 이거, 중국에서 농땡이 피우고 있는 거 아니야?

-예끼, 박동혁 이 친구야. 초영이는 그럴 애가 아닐세.

-거, 늙은이 더럽게 감싸 도네.

그녀에게 전음을 보내는 이들이 미심쩍다는 듯이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신초영은 일부러 대답을 안 하는 것도, 농땡이를 피우는 것도 아니었다.

정확히 말해선.

“사, 살려…… 살려줘…….”

“엿이나 처먹어.”

머리에 열이 뻗친 나머지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은 것이다.

창사(长沙)의 고층 빌딩 사무실.

북부의 대족장, 칸이 불씨를 만들어낼 기세로 두 손을 빌고 있었다.

사방 천지에는 피바다가 펼쳐졌다.

봉변을 당한 중국인 남자들과 캘린 족들의 시체가 난잡하게 뒤엉켰다.

“흑, 으흑…….”

“흑흑…….”

그리고 사무실 구석에선, 나체로 몸을 웅크린 중국인 여자들이 치아를 딱딱 부딪치며 오열 중이었다.

콰직-!

신초영은 바닥을 나뒹구는 캘린 족의 어떤 ‘신체 부위’를 발로 으깨며 말했다.

“떡을 칠 거면 하다못해 종(種)이 같은 것들끼리 치든가, 이 발정 난 새끼야. 다른 세계까지 건너와서 제일 먼저 한다는 짓이 겁탈이냐? 참 잘하는 짓이다. 덕분에 중국까지 와서 못 볼 꼴 보고 가네.”

“으, 으으…….”

안색이 새하얗게 질린 칸이 신음하며 신초영의 주변에 즐비한 병사들의 시체를 훑어보았다.

절명한 그들 하나하나가 세심하게도 가랑이 부위만 정확히 도려졌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과다 출혈과 쇼크사로 죽은 것이다.

“표정이 왜 그래? 너희 나라엔 X을 X대로 놀리면 X 된다는 격언이 없니?”

“사, 살려줘……. 사, 살려주기만 하면 아, 앞으로 조용히 지낼 테니까……!”

“X까렴. 아, 그냥 해본 욕 아니야. 진짜 까, 이 새끼야. 5초 준다.”

말해놓고 나니 5초를 기다려줄 마음도 싹 사라졌다.

서걱-!

두 자루의 쌍검(雙劍)이 실금한 탓에 축축해진 칸의 사타구니를 할퀴고 지나갔다.

살덩이가 튀어 오르며 핏물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터져 나왔다.

“끄아아아아악-!!”

“아파? 지혈해줄게.”

그렇게 말한 신초영은 입에 꼬나문 담배 끄트머리를 손에 쥐더니 칸의 사타구니 절단면에 마구 비벼댔다.

치이익-!

“……! ……!!”

칸은 눈앞에 별이 폭발하는 듯한 환각을 보았다.

이내 그의 눈이 까뒤집히며 흰자만 고스란히 남게 되었다.

신초영은 아직 목숨이 붙은 칸의 잘린 사타구니에 담뱃불을 지지는 그제야, 대성에게서 전음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뭐 해. 보고하라니까.

‘아직 안 끝났어요.’

-그래? 그럼 빨리 끝내.

‘5분만 더하고요.’

-뭘 한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5분이다. 그 안에 끝내.

교신이 종료됐다.

“그거 알아?”

신초영은 숨이 꺽꺽 넘어가는 칸을 매섭게 노려보더니 말했다.

“우리에게는 아직 5분이란 시간이 남아있어.”

그리고 5분 뒤.

이계의 대륙, 캘린 오르하트의 4개 세력이 멸족(滅族)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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