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옥에서 돌아온 한대성-129화 (129/180)

#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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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왔다고?’

의혹이 확신으로 바뀐 건 대성이 발걸음을 멈추고 10초가 흐른 뒤였다.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던 2만의 병사들도 쭈뼛쭈뼛 선 채 술렁거렸다.

설마 1대1을 바라고 여길 왔을 정도로 저 남자가 멍청할 리는 없을 테고…….

이건 명백히 이상하다고 생각한 부관이 아인프리트에게 속삭였다.

“함정입니다.”

“…….”

“저희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병사들을 매복시키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매복이라니. 이런 장소에서?”

황량한, 풀잎 한 포기조차 찾아볼 수 없는 너무나 황량한 평원이다.

몸을 숨길 수풀은 물론, 위쪽에서 융단 사격을 날릴 협곡이나 절벽도 없다.

항복 선언을 하러 온 건가 싶은 멍청한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저 잔악무도한 남자는 그럴 성정을 지니지도 않았을뿐더러, 무엇보다 무장한 채 이곳을 찾아왔으므로.

‘대체 무슨 생각이지?’

웃기는 꼴이 펼쳐졌다. 고작 한 명의 속내가 두려워서 2만 명이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 촌극을 보다 못해 결국 먼저 입을 연 쪽은 대성이었다.

“올 생각 없으면 내 쪽에서 먼저 가도록 하지.”

첫 발짝이 묵직하게 움직였다.

그러자 갑자기 아인프리트를 태운 전마(戰馬)가 애처롭게 울며 뒷걸음질을 치려고 했다.

말이 느끼는 두려움은 전염병이 퍼지듯이 아인프리트의 목덜미를 섬뜩하게 만들었다.

까득-! 입술을 깨무는 아픔으로 그 감정을 밀어버린 아인프리트가 힘껏 소리 질렀다.

“데저트 이터(Desert eater)-!!”

그 순간, 어마어마한 폭음과 함께 대성의 지척에 있던 지면이 폭발했다.

쿠구구구-!!

분화구가 생겨난 지면 안쪽에서 다섯 마리의 거대 지네가 마구 솟구쳤다.

데저트 이터. 아직 지구의 게이트에선 출몰한 바가 없는, 플로마리아 대륙의 식생에만 존재하는 괴물들.

퀴로로로록-!

머리 높이가 대형 빌딩에 버금가는 녀석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대성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데, 데저트 이터……?”

예기치 못한 지원군의 등장에 같은 편인 부관도 놀랐다.

같은 란도족도 아니고 말도 안 통하는 흉악한 짐승이 아군이랍시고 나섰으니 놀랄 법도 하다.

아인프리트가 해답을 말해줬다.

“어젯밤, 폐하와 함께 힐드 신께 경배를 드리러 갔다. 그리고 신께서 내게 힘을 주셨지.”

“그, 그렇군요.”

힐드 신이 힘을 주었다. 그 한 마디에 모든 궁금증이 해결되었다.

그렇다면 아인프리트의 저 눈에 띄게 거대해진 덩치와 머리에 난 뿔도 힐드 신이 준 힘의 일환일 것이다.

“저놈이 어떤 꿍꿍이를 꾸미고 있든지 간에 상관없다. 근방에 제국과 왕도가 있어도 상관없다. 여기는 우리들의 홈그라운드가 아니던가, 부관. 저놈은 자살이나 다름없는 선택을 한 거야.”

한 달은 굶은 기세로 광분하며 날뛰는 데저트 이터를 흡족하게 바라보며 아인프리트가 말했다.

강산성의 위액이 묻은 송곳니를 번들거리며 다섯 마리의 데저트 이터가 일제히 대성을 포식하려고 입을 벌린 순간.

“아가리에서 냄새난다. 꺼져.”

대성은 한 손에 그러쥔 업화대검을 날파리 쫓듯이 휘저었다.

콰과과과곽-!!

친절히도 검로(劍路) 안에 알아서 들어와 줬던 데저트 이터들의 대가리가 몸체와 깔끔하게 분리되었다.

“…….”

2만 명이 침묵했다.

정적 속에서 대성이 입가에 묻은 데저트 이터의 살점을 퉤, 하고 뱉는 소리만이 나직이 울려 퍼졌다.

“음? 뭐야. 설마 이게 끝이었나?”

“저, 전군! 지금 당장 저놈에게 전격을 퍼부어라!”

아인프리트의 평정심은 거기서 끝이 났다. 그가 주름살이 잔뜩 그려진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

파지직-!!

2만의 군세가 창날을 높이 세우며 전격 마법을 전개했다. 세종로에서 먼지 쓸 듯이 코볼트를 쓸어버렸던 바로 그 전격 마법이었다.

쿠르릉-!!

새벽하늘에 몰려든 먹구름에서 황금빛 섬전(閃電)이 터져 나오더니 무수한 번개의 창살이 지상을 향해 들이닥쳤다.

콰-앙!

대성은 걷는 걸 멈추고 뛰었다. 뒤꿈치를 박찬 지점이 거센 압력과 함께 다이너마이트 터지듯이 흙가루를 터뜨렸다.

창공에서 쏟아져 내리는 벼락이 흙바닥에 새겨진 대성의 발자국에 작렬했다.

“세상에 어떻게 저럴 수가!”

“미친놈! 저게 가능하다고?!”

낙뢰(落雷)가 떨어지는 속도를 가뿐히 앞지르며 대지를 박차는 스피드에, 병사들은 기절해버릴 지경이었다.

쿵, 쿵, 쿵, 쿵-!

대성이 땅을 밟을 때마다 지하 안쪽에서 거대한 손이 날뛰는 것처럼 지축이 마구잡이로 뒤흔들렸다. 올곧은 자세로 전격 마법을 펼치던 2만의 군세가 어어, 하는 소리를 내며 주춤거렸다.

“저, 저, 전군 돌격-!!”

아인프리트가 눈을 한번 껌뻑일 때마다 대성과의 거리 차가 500m에서 300m, 300m에서 100m로 좁혀졌다.

바로 눈앞에서 폭주 트럭이 쇄도하는 것만 같은 아찔함에, 아인프리트가 뒤로 물러서며 육탄전을 명령했다.

우오오오오오-!!

지휘관의 명령은 절대적. 내키지 않지만 이건 전쟁이다. 병사들이 죽기 살기로 포효하며 대성에게 달려나갔다.

“처음부터 재지 말고 이렇게 나왔으면 얼마나 편했을까.”

대성이 작게 미소를 지음과 동시에 업화대검을 지면에 내려찍었다.

꽈-앙!!

땅거죽 위로 쉼 없이 수놓아지는 균열이 무지막지한 진동을 싣고 전방으로 충격파를 터뜨렸다.

“으아아아아아?!”

지표면에서 솟구치는 풍압을 고스란히 얻어맞은 3천 5백여 명의 전방 병사들이 꼴사납게 그 자리에서 나뒹굴었다.

펑-!

대성이 낮게 굽혔던 무릎을 도로 폈을 땐 이미 50m를 훌쩍 넘는 고도까지 도약을 펼친 상태였다.

경황 따위를 살필 여력이 없었던 병사들의 눈에는 느닷없이 그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진 것으로 보일 따름이다.

유성처럼 하강하는 대성이 칼의 손잡이를 양손으로 견고히 붙들었다.

화륵, 화르륵-!! 침을 흘리는 맹수와 같은 기세로 업화대검의 검신에 불꽃이 헐떡이듯 터져 나왔다.

대성이 지면에 떨어지기 일보 직전의 찰나에 검이 포물선으로 휘둘러졌다.

퍼버버벙-!!

“흐이이익?!”

“흐아아악-?!”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검날이 지표면에 때려 박히는 순간 화염의 폭풍우가 지반 위로 휘몰아쳤다.

그 한 번의 일격만으로 5천여 명의 병사들이 시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불귀의 객이 되어버렸다.

세상의 종말과도 같은 광경에, 살아남은 병사들 대다수가 오금을 덜덜 떨며 공포에 사로잡혔다.

용기가 가상했던 자들은 반쯤 혼이 나간 채 소리를 지르며 대성이 있는 방향으로 달음박질쳤다.

콰직-!! 콰지직-!!

물론 풍차처럼 회전하는 불의 칼에 휩쓸려 깡그리 몰살당했지만.

찢겨나가는 팔다리가 허공을 날고 피가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황금색으로 아름답게 빛나던 뉴멕시코주의 평원이 시체와 피의 대지로 변모했다.

무아지경으로 적을 베는 수준을 넘어 사지를 갈가리 찢어버리는 대성의 하얀 머리는 시뻘건 적발(赤髮)로 물들었다.

용기를 내며 저항하는 자들도, 겁에 질려 물러서는 자들도 공평하게 학살당했다.

쿠구구구-.

한쪽이 다른 쪽을 일방적으로 압도하는 일대 난전(亂戰)이 거듭될 때마다 먼지구름이 자욱하게 일어났다.

시야가 뿌옇게 되어버려 사위에 들이차는 모든 것이 흐릿하게 보였으나…….

콰직-! 서걱-! 콰과광-!!

으아악-!! 히이익-!?

학살을 벌이는 남자의 번뜩이는 붉은 안광, 분진 사이로 퍽퍽 터져 나오는 핏물과 살점 덩어리들, 그리고 병사들의 절규만큼은 확실하게 아인프리트와 부관의 시청각을 자극했다.

“…….”

아인프리트는 꿈이라도 꾸는 것만 같은 몽롱한 표정을 지었다.

저 남자는…… 저 괴물은 애당초 계략 따위도 없었고, 매복 같은 것을 준비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냥 혼자 온 거다.

단신으로 2만 명을 거뜬히 죽일 자신이 있었으니까 홀로 나타났을 뿐이다.

“부, 부관. 내,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거겠지?”

“……지휘관님?”

엄격한 기준 아래 추리고 추려서 데려온 정예 병사들이 속절없이 죽어갔다.

미친 광기의 악마가 죽음의 한복판에서 칼을 휘두르며 독무(獨舞)를 췄다.

만약…… 만약에 지옥이란 게 있다면 분명 저런 광경일 테지.

“후, 후퇴-.”

뒤늦게야 승산이 없다는 걸 깨달은 아인프리트가 퇴각령을 내리려다 말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여기서 도망쳐 버리면,

저놈의 마수가 왕도와 제국에 닿는다.

자가당착.

“하, 하하…….”

경외와 두려움에 사로잡힌 아인프리트가 실성한 것처럼 웃음을 흘렸다.

“지휘관님!”

그 모습을 보고 질겁한 부관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치며 아인프리트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정신을 퍼뜩 차린 아인프리트가 부관을 쳐다보았다.

“지휘관님은 여기서 전사하실 분이 아닙니다! 여긴 저와 남은 병사들끼리 막고 있을 테니 그 틈에 지휘관님은 제국으로 돌아가 지원군-.”

퍼버벙-!!

부관의 머리통이 폭발하며 눈, 코, 입이 우스꽝스레 사방으로 흩어졌다.

돌연 후방에서 날아온 불덩이 하나가 그를 덮친 것이다.

“…….”

아인프리트는 불에 타며 낙마하는 부관의 목 없는 시신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건 뭐 땀도 안 흐르는군. 더 없나?”

도깨비불을 뒤통수에 달고 나온 대성이 우스갯소리를 해왔다. 부관을 처참하게 죽인 습격의 정체는 <염탄>이었다.

아인프리트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오는 대성의 후위에는 검은 넝마들이 즐비해 있었다. 한 명도 남김없이 2만의 군세가 절명한 것이다.

휙-! 서걱-!

검신에 묻은 피를 털어내는 김에, 아인프리트를 태운 전마의 대가리를 잘랐다.

우당탕-!

아인프리트가 흙바닥을 뒹굴었다.

정수리가 땅에 부딪히면서 가벼운 뇌진탕이 일었다. 그런데 그 고통이 오히려 아인프리트의 정신을 일깨웠다.

“으, 으…….”

두 다리를 딛고 몸을 일으킨 아인프리트가 검집에서 마검 힐드를 뽑았다.

“으아아아-!!”

노호(怒號)를 지르며 덤벼들었으나 대성의 스트레이트 펀치가 그의 복강을 후려갈겼다.

꽝-!!

포탄을 직격으로 받아들여도 금 한번 가지 않을 철제 갑옷이 엉망진창으로 으스러졌다.

“쿠, 훅……?!”

아인프리트가 토사물과 핏물을 한꺼번에 게워내며 다시 넘어졌다.

그러나 곧 마검을 지팡이 삼아 몸을 세운 뒤 재차 쇄도했다.

또 복강을 갈겼다가는 숨이 끊어질까 염려되었던 대성은 이번엔 그의 안면을 한 손에 그러쥔 뒤 냅다 던졌다.

쥐와 고양이…… 아니, 쥐와 용의 싸움이 따로 없었다. 그보다 애초에 이런 걸 싸움이라고 표현해도 되는 걸까?

가망이 없다.

그리 판단 내린 아인프리트가 상처투성이가 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한 번 더…… 한 번 더 가까운 날에 결전을 치르자…….”

“난 이미 어제 한 번 너를 살려줬다.”

“제국에 있는 모든 병사와 조련한 마물 군단을 데려올 테니, 그러니…….”

“웃기지 마라. 내가 호구도 아니고 그딴 부탁을 들어줄 것 같나?”

결전을 요구하는 그 모습이 추해 보이기는 해도, 대성은 마음 한편으로는 아인프리트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검을 들고 다시 싸우자고 부탁할 만큼의 정신력은 남아있나 보군.’

2만의 군세를 통째로 잃고 홀로 살아남았다. 범인(凡人)이라면 이 시점에서 기절하거나 실성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과연 대륙이 인정한 용사일까. 아인프리트는 이런 상황에서도 기어코 손에서 검을 놓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걸 시도하기엔 아직 이르다.’

그래, 차라리 아인프리트가 저렇게 발버둥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덕분에 준비해뒀던 패를 아낌없이 꺼낼 수 있게 되었으니까.

짝짝.

“……?”

뜬금없이 대성이 손뼉을 치자 아인프리트가 가쁜 숨을 토하며 머리 위로 의문 부호를 표했다.

박수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아인프리트의 악착같은 의지력에 대한 대성 나름의 상찬(賞讚).

그리고 다른 하나는…… 신호.

크오오오오오-!!

“……?!”

섬멸룡의 괴성이 새벽녘의 창천을 뒤흔들었다. 부지불식 간에 드래곤의 포효를 들은 아인프리트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위를 쳐다보았다.

후웅-!

아직 섬멸룡은 지평선 저 멀리 있건만, 날갯짓이 자아내는 돌풍은 여기까지 불어닥치고 있었다.

“네놈이 제국을 구하겠느니 뭐니 따위의 사명을 앞세운 탓에 수많은 인간이 소중한 사람을 잃었어야 했지.”

한 줄기 희망조차 없는 절망의 순간에 드래곤까지 보게 된 아인프리트의 귀에는 대성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것이 얼마나 빌어먹도록 끔찍한 아픔인지…… 이제는 너도 느껴봐라.”

이윽고 섬멸룡이 대성의 머리 바로 위에 체공(滯空)했다.

그러자 아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아인프리트의 눈에 들어왔다.

“어……?”

아인프리트의 동공이 작게 수축했다.

섬멸룡의 턱 끝을 타고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그런데 그 피는 섬멸룡의 것이 아니다.

“아, 아…… 인…….”

살짝 아래턱을 내려 좁게 벌어진 섬멸룡의 아가리 속에는, 한 명의 여인이 얼굴과 상체만 내민 채 쓰러져 있었다.

아인프리트가 입술을 달달 경련하며 중얼거렸다.

“소, 소니아……?”

분명 어제 새벽, 그리폰을 태워 하토크 백작령으로 보냈던 그녀가 왜 드래곤의 입속에 있는 걸까?

……같은 의문을 느낄 틈새는, 소니아의 현재 행색을 살펴보자마자 사라졌다.

“아, 아…… 인…….”

하체 부분은 아래에서 위를 보는 각도에선 보이지 않았으나, 훤히 드러난 나머지 상체 부분이 너무나 끔찍했다.

왼쪽 눈두덩이는 아예 통째로 뻥 뚫려 그 너머로 섬멸룡의 시뻘건 목젖이 보일 정도고, 오른팔 한 짝은 잘렸다기보다는 물어뜯긴 수준이었다. 그 때문에 드러난 근육과 뼈 뭉텅이가 너덜거렸다.

목숨이 붙어 있는 게 신기한 건 말할 것도 없거니와, 목소리란 걸 뱉을 수 있다는 건 기적이라는 단어밖엔 표현할 길이 없었다.

아인이 터덜터덜 앞으로 걸어갔다.

“소, 소니, 소니아……?”

“아, 아… 인…. 미, 미안…. 돌아가면… 지, 지원군… 끄, 끝나면… 해안가… 두, 둘이서…….”

섬멸룡이 아가리를 닫았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고 소리가 모조리 사라졌다.

거칠게 튀겨 오는 핏물이 아인프리트의 얼굴을 흠뻑 적셨다.

새하얀 배경 속에서 소니아의 목이 잘려나갔다.

몸을 떠난 얼굴에는 피눈물을 흘리며 찡그린 표정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데구르르…. 툭-.

아인프리트의 발끝에 사랑하는 여자의 머리통이 굴러들어왔다.

“…….”

아인프리트가 창백해진 모습으로 비틀거리더니 곧 엉덩방아를 찧었다.

“히, 히히……. 히히…….”

그리고 어깨를 들썩이며 웃기 시작했다. 실성한 것이다.

꿀꺽!

섬멸룡이 소니아의 몸을 집어삼키는 것과 동시에 대성이 걸음을 옮겼다.

‘드디어 정신이 나갔군.’

그걸 확인한 대성은 바로 <더 북>을 꺼내어 권능 하나를 습득했다.

그러고는 울다가 웃기를 반복하며 알아먹지 못할 소리를 중얼거리는 아인프리트의 이마에 손을 얹어, <지배>의 권능을 발동했다.

‘이 정도로 실성했으면 족히 열흘은 효과가 이어지겠지.’

얼마 전 게이트 안에서 대성을 암살하려고 했던 <컨트리> 클랜의 단장, 그랜트에게 사용했던 적이 있는 권능이다.

이 권능에 사로잡힌 자는 무조건 대성이 하는 말을 따라야 한다. 설령 그게 자결하라는 명령일지라도.

“히, 히히…. 히……. …….”

권능의 효과가 스며들기 무섭게 아인프리트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져갔다.

대성은 성공적으로 세뇌된 그의 모습에 만족해하며 명령을 내렸다.

“너는 지금부터 나와 왕궁으로 간다. 가는 도중 방해하는 자들은 가차 없이 죽여라. 그리고…….”

어떻게 보면 지금부터 할 명령이 핵심이었기에 목소리에 힘을 실어 강조했다.

“엔베트 로젠을 끌어내리고 그녀와 함께 제국의 금역(禁域)이 있는 곳으로 나를 안내해라. 다음 명령은 금역에 도착하면 또 내리도록 하지.”

“명에, 따릅니다.”

아인프리트가 띄엄띄엄 말하며 검을 챙긴 뒤 몸을 일으켰다.

툭.

그러다 발에 뭔가가 차였다. 뭐지 하고 봤더니 처참히 훼손된 소니아의 얼굴이었다.

꽈직.

아인프리트는 그걸 심드렁하게 밟아 으깬 후 왕도로 향하는 길을 걸어갔다.

대성이 그 뒤를 따라갔다.

더 뒤에는 피비린내가 자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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