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옥에서 돌아온 한대성-136화 (136/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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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앙!

허공에서 검은 망혼과 허연 영체가 뒤엉켰다.

난잡한 개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정작 대성은 그 피 터지는 혈전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기에 여유만만할 따름이지만.

팔짱만 낀 채 흥미 어린 눈초리로 저들의 싸움을 구경했다.

‘망혼 쪽이 좀 더 열세군.’

망혼과 영체의 정면대결은 쉽게 표현하자면 벌떼와 사람의 싸움이라 할 수 있었다.

벌떼 또한 만만찮으나 그렇다 하여 사람이 고작 벌떼에 전멸당하는 광경을 상상하긴 어렵듯이.

이대로 가다간 영체 쪽이 망혼들을 압도하리란 사실을 어렵잖게 예상할 수 있었다.

“음?”

하지만 직후, 대성의 예상은 조금 빗나갔다.

쾅-!

영체와 박투(搏鬪)를 벌이던 몇몇 망혼이 폭사했다.

여러 군데에서 발생한 폭발이 영체를 수십 명씩 집어삼켰다.

“저런 것도 할 줄 알았군.”

튀어나와서 미친개처럼 물어뜯는 것밖에 못 할 줄 알았건만.

쾅-! 쾅-! 쾅-!

수세에 몰렸다 싶은 망혼들은 이대로 가만히 죽어줄 순 없다는 듯이, 제 몸을 터뜨려 동귀어진을 감행했다.

망혼이 영체를 공격할 수 있듯, 영체 또한 망혼을 공격할 수 있다.

즉, 망혼 입장에서 눈앞의 영체는 상당한 난적이라는 의미.

여태까지는 자폭을 쓸 필요도 없는 적들만 상대해 왔으나 지금은 상황이 다른 것이다.

“이, 이놈들! 정신 나갔나!”

“흩어져서 이놈들을 상대해라! 뭉쳐 있다간 한꺼번에 폭발에 휘말리고 만다!”

“그보다 자폭하는 놈들을 무슨 수로 상대하라는 거야!”

영체들 또한 우왕좌왕 당황했다.

흩어져서 상대하라는 말에 황급히 거리를 벌렸으나,

콰직-!

“끄아아악! 이 개 같은 새끼들이!”

놈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내버려 둘 망혼들이 아니었다.

망혼들은 끈질기게 영체에 들러붙어 숨을 헐떡이며 이빨을 놀렸다.

자폭 전술이라는 카드가 드러난 순간 형세가 역전된 것이다.

‘더 기를 눌러야 한다.’

지금은 단지 미친개가 떼로 들판에 풀린 정도로만 비칠 터.

그래선 안 된다. 저들로부터 고분고분하게 대답을 얻어내려면 훨씬 더 지독하게 대할 필요가 있었다.

저항을 멈추고, 오직 대화만이 최선책이라는 생각이 들게끔!

대성은 짧게 명했다.

“여길 다 부숴라.”

햐아아아-!

개싸움을 벌이는 와중에도 망혼들은 귀신같이 그 말을 알아들었다.

여길 다 부숴라.

말인즉슨, 이제 영체들과는 그만 놀고 좀 더 본격적으로 난장판을 피우라는 의미.

대성이 더 자세히 말했다.

“자폭이다. 몸을 터뜨려서 여기를 모조리 불지옥으로 만들어버려.”

자살 돌격.

인간이었다면 당연히 불복할 명령이지만…….

햐아아아-!

그들은 인간이 아닌 망혼이었다.

죽어서도 절대자께 충성하는 자들!

휘이잉!

오히려 영광된 순간을 맞이했다는 듯이 신나게 지면으로 몸을 날렸다.

쾅-! 콰과광-!!

망혼들이 지면과 접촉하는 족족 사방에서 폭음이 끊이질 않았다.

검은 불길과 폭연이 솟구쳤다.

“그만! 그만해! 미친놈들아!”

“유계를 무너뜨릴 셈이냐!”

“안 돼! 북쪽 서고만큼은 안 된다! 저게 없으면 우리들의 업적이……!”

사방에서 폭발하는 망혼을 본 영체, 헥카르족이 파리하게 질린 얼굴로 질겁했다.

화산 폭발을 마주한 고대 폼페이의 로마인들이 저런 반응일까.

그러거나 말거나 수십, 수백의 망혼이 폭탄이 되어 땅에 처박혔다.

“아아, 이걸 어찌…… 아! 저놈!”

“저 인간이다! 저놈의 등 뒤에서 망혼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야!”

“저놈을 죽여라! 그러면 소용돌이도 자연스레 닫힐 터!”

무자비한 자폭 세례에 방도를 찾지 못한 영체들은 전략을 바꿨다.

대성을 죽이면 망혼들을 쏟아내는 소용돌이 또한 저절로 닫히리라 생각한 듯했다.

틀린 판단은 아니다.

“업화대검.”

더 어려운 길일 뿐이지.

화르르륵-!!

비스듬히 내뻗어진 대성의 손 위로 불꽃의 칼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수많은 영체가 오직 대성 한 명에게만 일제히 쇄도해 왔다.

근원의 파편을 머금은 칼이다.

‘근원’ 그 자체마저 벨 수 있는 위력을 지녔단 말이다.

그런데 저까짓 밀가루 같은 허연 영체들을 베지 못하겠는가.

[‘업화’ 모드의 첫 번째 특수 스킬이 발동됩니다.]

[특수 스킬 : <격노>]

[업화대검이 ‘근원의 파편’을 장착했습니다. 모든 특수 스킬이 한 단계 진화합니다.]

[<격노> → <대로(大怒)>]

휘둘러진 검이 허공에 선을 긋고,

콰아아아아-!!

가느다란 선은 널찍한 면이 되어 불의 파도를 쏟아낸다.

그런데 <격노>가 그려내는 파도의 형태가 이전과는 좀 달랐다.

‘악마의 얼굴.’

파도가 아니다.

뿔이 달린, 선연한 핏빛의 얼굴을 한 악마가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모든 것을 포식하려 했다.

<격노>에서 한 단계 더 진화한 <대로>란 스킬은, 말 그대로 악마의 분노를 형상화한 것이었다.

“……?!”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악마의 입속에 들어왔음을 자각한 영체들이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화르르르륵-!!

악마가 입을 닫은 순간 영체들은 흔적도 없이 불에 타서 사라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화아아악-.

입을 닫을 때의 여파로 맹렬하고 뜨거운 열풍이 분출되며 범위 밖에 있던 영체들마저 찢어발겼다.

“…….”

가까스로 죽지 않은 영체들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다.

패색이 완연했다.

화르륵-. 타닥-.

쾅-! 쾅-!

불티가 유계에 흩날렸다.

정적을 허락지 않겠다는 듯이 망혼들이 쉴 새 없이 제 몸을 불사르며 땅에 내리꽂혔다.

이 모든 대혼돈, 아수라장의 한 가운데에,

불의 칼을 쥔 하얀 악마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나는 너희 중에 근원에 도달하는 법을 아는 자가 있는지 물었다.”

***

“없다고?”

질 게 뻔한 싸움을 계속 이어갈 만큼 헥카르족은 미련하지 않았다.

결국, 굴복한 그들은 순순히 대화의 장을 마련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대성에게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위로 휘어지는 눈썹과 미간에 그려지는 주름살을 본 헥카르족 노인이 황급히 손을 저었다.

“‘근원으로의 도달법’이란 게 뭘 뜻하는지는 우리도 모르네! 하지만 대현자(大賢者)께선 그쪽이 바라는 답을 알고 계실 수도 있어!”

“대현자…….”

대성은 시스템을 열어 ‘헥카르’의 차원 정보를 확인했다.

[통합 차원 정보: 헥카르]

- ‘흑마도(黑魔道)’를 광적으로 탐구하는 헥카르족이 모인 차원.

- 현세와 유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는 기술력을 보유함.

- 대현자, ‘멜카논’이 통치 중.

이름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중요한 건 ‘대현자’라는 별칭이다.

주술이라는 영역을 그 어떤 종족보다 깊이 파고드는 저들마저 ‘현자’라고 추앙할 정도면, 근원으로 도달하는 방법도 모르진 않을 터.

어쩌면 ‘헥카르 비전’을 제조한 것도 대현자 멜카논이 아닐까, 그런 추측 또한 뒤따랐다.

“근데 내 질문에 답할 자가 없다는 말은, 그 대현자라는 자가 자리를 비웠단 의미인가?”

“…….”

대성과 대면한 노인이 입을 꾹 다물더니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대현자께선 자리를 비우신 게 아니라…… 잡혀가셨네.”

“누구에게 말이지?”

“기신족일세.”

기신족.

그 말이 노인의 입에서 흘러나온 순간 주변이 어수선해졌다.

탄식을 뱉는 자가 있는가 하면, 격렬하게 이를 가는 자도 있었다.

아무래도 헥카르족에 있어서 기신족은 통치자를 납치한 철천지원수임이 자명한 분위기.

그렇다면 눈앞의 노인은 멜카논의 공백을 잠시 메꿀 대행자인 듯했다.

그러나 한 가지, 이해가 안 가는 점이 존재했다.

‘라미쉬의 기억 속에선 분명, 헥카르족과 기신족은 딱히 앙숙으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아무리 ‘천상’이라는 공공의 적을 두었다 하나, 지배자를 납치한 원수들과 함부로 손을 잡진 않았을 터.

그보다 라미쉬의 기억엔 해당 부분과 관련된 내용이 일절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얼어붙은 시간이 끝난 뒤에 벌어진 일이라는 건가.’

하나 이 또한 이상했다.

2차 대격변이 발발한 지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짧은 시간 안에 기신족이 헥카르족을 공습하고 통치자를 납치해간다?

현실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았다.

“기신족, 그놈들은 시간을 제어하는 힘을 가지고 있네.”

“……시간을 제어한다고?”

“우리는 이 땅에 당도하자마자 놈들에게 순식간에 당했지. 이곳…… 푸른 별의 시간으로는 찰나였으나 우리에겐 장장 사흘간 이어진 지옥과도 같은 시간이었어.”

“더 자세히 말해봐라.”

“놈들을 이끄는 자…… 그가 기신족의 왕인지는 모르겠으나, 좌우간 그자의 눈에서 섬광이 빛나는 순간 1초가 한없이 길게 늘어졌네. 그리고 우리는 늘어진 시간 속에서 몸이 경직된 것처럼 느려졌지. 오직 기신족들만이 늘어진 시간 속에서도 자유로운 움직임을 보였네.”

확실히 시간을 제어하는 힘이라면 이 짧은 사이에 멜카논이 적에게 잡혀가는 것도 납득이 됐다.

‘정황상’으론 말이다.

시간을 제어하는 힘이라니.

‘마신조차 시간의 굴레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시간을 제어한다. 그건 필멸의 한계마저 극복할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의미를 지닌 능력이다.

지옥에 군림하던 마신도 영원불멸하지는 않았다. 그가 만약 시간을 다루는 힘을 가졌다면 대성은 결코 마신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천상의 사도들마저 시간을 한 번 되돌리기 위해 ‘차원수의 오류’라는 막대한 대가를 치르지 않았던가.

‘애당초 그런 힘이 있었으면 천상과의 전쟁에서 패배할 리도 없었을 텐데?’

대성마저 가늠이 잘 가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곧,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복잡한 생각은 그냥 털어냈다.

홀로 고민해봤자 답도 안 나오는 의문에 머리를 싸매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지금은 일단 코앞에 닥친 상황에 집중하는 편이 훨씬 현명하다.

“놈들이 너희들의 통치자를 앗아간 이유는 알고 있나?”

“모르네. 아까도 말했지만 모든 게 순식간이었네. 시간이 원상 복구됐을 땐, 주변은 난장판이었고 대현자께선 이미 잡혀가신 뒤였지.”

그제야 대성은 바위 위의 남자가 말한, 중심을 잃었다는 의미를 헤아릴 수 있었다.

중심이란 대현자를 뜻했고, 이끌어줄 지도자를 상실한 헥카르족은 잠시나마 유계에 숨어든 것이다.

이 모든 게 사흘에 걸쳐 벌어진 일이었으나, 대성과 같은 외부의 존재가 느끼기엔 불과 반나절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고.

“대현자께서 나누어주시는 지식은 우리 모두에게 힘이 되지. 그분이 없다면 우린 그저 잔재주밖에 부리지 못하는 허수아비에 불과해.”

“그래서 유계에 숨어든 건가.”

“방도가 없었네.”

노인이 고개를 푹 숙였다. 무력한 자신이 혐오스럽고 원망스러우리라.

물론 저들이 어떤 사정을 지녔다 한들 대성이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중요한 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기신족에 납치된 대현자 멜카논을 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멜카논, 그가 없으면 근원에 도달할 방법은 계속해서 의문점으로 남을 뿐이니.

“너희들의 통치자를 구해주마.”

대성이 양반다리를 하던 무릎을 펴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말했다.

노인은 물론, 주변의 헥카르족도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구, 구한다니……. 그쪽이?”

“그럼 내가 아니면 누가 한다는 말이지?”

“하, 하지만 기신족일세. 그놈들은 시간을 조종해! 만만찮은-.”

“너희가 걱정해야 할 건 내 신변이 아니라 이 두 가지다.”

대성이 검지를 폈다.

“하나는 내가 갔을 때 이미 대현자가 목숨을 잃었을 경우고.”

다음엔 중지가 펴졌다.

“다른 하나는 기껏 힘들게 구해낸 그 대현자마저도 내 질문에 답하지 못할 경우다.”

“……그, 그 두 가지 중 하나라도 해당할 시엔?”

“너희는 내 분풀이의 대상이 되겠지. 나와 기신족 중 누가 더 포악한지는 그때 가면 알게 될 거다.”

“…….”

평소였다면 그 말을 듣고 격분했겠으나, 그들은 이미 대성의 진면목을 목격한 상태다.

그래서 그냥 입 다물고 고개만 끄덕였다.

***

“이 아이를 데려가게.”

대화를 마치고 현계로 돌아가려던 참에 노인이 그리 덧붙였다.

그가 내세운 것은 한참 앳된 헥카르족 소년이었다.

아이를 본 대성이 미간을 찡그렸다. 그리고 자신에게 짐 덩이를 맡기는 거냐고 질책하는 듯한 눈초리로 노인을 노려봤다.

“이 녀석은 유독 기신족에 관심이 많은 아이라네. 글자를 뗐을 때부터 오직 기신족 놈들의 섭리와 지식만 파고들었지. 기신족과 관련해서라면 웬만한 어른들도 이 녀석보다 잘 알지 못할 걸세.”

“즉, 여러모로 도움이 될 터이니 나보고 이놈을 대동하라고?”

“자네가 그놈들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그럴 필요는 없네만…….”

잘 알지는 못한다.

놈들이 시간을 제어할 수 있다는 것도 방금 안 사실이었다.

물론 이보다 더 커다란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이때 헥카르 소년이 쭈뼛쭈뼛 손을 꼼지락대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민폐 안 끼칠게요. 정말이에요. 야, 약속도 할 수 있어요.”

“…….”

대성은 소년의 눈을 응시했다.

눈동자에 서린 두려움. 그러나 더 밝고 커다란, 호기심의 빛이 그 두려움을 희석하고 있었다.

소년 또한 방금 대성이 날뛰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을 터.

그런데도 데려가 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호기심이 공포를 밀어냈기에.

기신족에 대한 호기심!

직접 그들의 세계에 들어가 지식을 탐구할 수 있는 둘도 없는 기회.

그리 생각하면, 소년에게 있어서 대성은 오히려 목숨을 지켜줄 보호자일 수도 있다.

물론,

“난 네놈 보호자 노릇을 자처할 생각이 없다. 네놈이 위기에 빠져도 나는 모른 체할 거다. 또한, 계속해서 걸림돌이 된다면 나는 가차 없이 너를 죽일 거다.”

“…….”

“위기에 처하면 나에게 의지할 생각 말고 그냥 알아서 살아남아라. 옆에서 울고불고 짜도 소용없다. 정녕 내 비호를 받고 싶다면 네놈의 쓸모를 증명해라. 도움이 된다면 나도 너를 적극적으로 지켜주지.”

“…….”

“내가 말한 것들을 이해했다면 따라와도 상관없다.”

비수를 넘어 채찍으로 후려갈기는 듯한 독설이 이어졌다.

소년은 울상이 되었다.

소년을 데려온 노인조차 기가 잔뜩 질려 안색이 파리해질 정도다.

이윽고 소년이 대답했다.

“이, 이해했어요. 그러니 따라가도 되죠?”

노인이 흠칫 놀라며 소년의 뒷모습을 흘겨보았다.

소년은 눈물 한 방울을 흘릴락 말락 하다가 결국 흘리지 않았다.

여기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이 또한 대성의 시선에선 ‘민폐’로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저것이 어린 치기에서 비롯된 허세인지, 아니면 진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확신에 기인한 용기인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하지만, 알아볼 가치는 충분했다.

도움이 되면 좋은 거고, 안 되면 경고한 대로 죽여버리면 그만이니.

대성은 그 이상 뭐라 말하지 않고 조용히 몸을 돌렸다.

소년이 긴장 어린 발걸음을 옮겨 그의 뒤를 따랐다.

“아, 기다리게! 하나만 더…….”

“…….”

“허, 허억…….”

무시무시한 눈빛이 노인의 면전에 꽂혔다.

장난하는 건가?

자꾸 떠나려는 참에 붙잡으니 목적이고 뭐고 살심(殺心)이 솟구쳤다.

그때.

노인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뜬금없이 악수를 청했다.

대성이 더 오해하기 전에 노인은 헐레벌떡 말을 꺼냈다.

“우, 우, 우리는 손과 손의 접촉으로 헥카르의 비술을 다른 이에게 계승할 수 있네.”

“무슨 비술이지?”

“분신술, 그 완성형일세. 기신족은 시간을 늘리는 것 말고도 상당한 물량 공세로 적을 찍어누르지. 이거라도 챙겨가면 분명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네.”

“…….”

대성은 일단 노인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권능을 습득했을 때와 비슷한 감각이 서서히 몸에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얼마 안 있어 시스템이 떠올랐고,

‘화가 가라앉는군.’

글귀를 확인한 대성은 가까스로 살심을 억누를 수 있었다.

<권능 정보>

분신(分身, 완성형)

[사용자의 신체를 복제하는 <분신>의 권능을 정점까지 진화시킨 완성형 비술.]

[생성한 분신은 실전 전투와 살생을 거듭할수록 본신(本身)의 힘에 가까워집니다.]

[분신의 최대 소환 가능 시간이 기존의 1분에서 5분으로 증가합니다.]

[분신의 형체가 유지되는 사용자와의 최대 거리가 10m에서 100m로 증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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