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옥에서 돌아온 한대성-137화 (137/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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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일본 혼슈 중앙부에 놓인 이 도시는, 헤이안 시대의 잔재와 아름다운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세계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 중 하나였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말이다.

콰직-!

강철로 이뤄진 발이 바닥을 굴러다니는 한 남자의 머리통을 짓밟았다.

“히익!”

“흐윽……!”

등골이 오싹해지고 온몸에 핏기가 싹 가실 듯이 끔찍한 광경.

익숙지 않은 장면을 본 사람들이 토사물을 게워나거나 혼절했다.

비위가 강한 이들이라 해서 멀쩡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새파래진 안색으로 이를 딱딱 부딪치며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이 인간이 너희 중에서 제일 우등한 자였는가? 믿기지 않는군.>

동굴 속에서 흘러나오는 듯이 낮게 울리는 음성.

목소리의 주인이 팔을 뻗어 방금 본인이 으깬 남자의 걸레짝 같은 머리통을 쥐었다.

물론 이족보행 사이보그에게 본‘인(人)’이라 표현을 붙이기에는 어폐가 가득했지만.

기신족.

2차 대격변 발발 이후, 그들은 순식간에 교토를 포함한 일본 시 전역을 점령하였다.

“이럴 수가…….”

“<귀신>이 당하다니…….”

“교토엔 그들밖에 없었는데…….”

50기(機)에 육박하는 기신족 무리에 둘러싸인 교토 거주민들이 지척에 쌓인 산을 쳐다보았다.

시체의 산.

동산을 이루는 저 시뻘건 고깃덩이들이, 전부 사냥꾼의 시체였다.

심지어 일본, 아니,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대형 클랜, <귀신> 단원들의 시체들.

‘평화를 가져다주는 귀신’이라는 캐치프라이즈로 많은 국민의 호감과 존경을 샀던 그들이 지금은 쓰레기장에 파묻힌 폐품 꼴이 된 것이다.

<고장 난 부품은 어디에도 써먹지 못한다. 보아라. 너희가 기뻐해도 될 이유를 우리가 지금부터 알려주지.>

무리를 대표해 일장연설을 하던 기신족이 그리 말하기 무섭게.

화르르르륵-!!

시체의 산을 에워싸고 있던 기신족 무리의 양손에서 세찬 화염이 분출되었다.

살과 뼈가 타는 악취가 자욱하게 퍼지자 사람들의 공포심이 한층 더 짙어졌다.

<봐라. 쓸모없는 ‘부품’은 이렇게 흔적도 없이 소각(燒却) 처리당하지. 하지만 너희는 아니다. 아직 생명 활동이 가능한 너희는 우리들의 ‘생체 연료’로써 유의미한 존재의의를 가지고 있다. 기쁘지 않나?>

끼긱-! 끼긱-!

연설은 거기서 끝이었는지, 나머지 기신족들이 둥근 대열로 모인 사람들과 천천히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섬찟하게 발광하는 사이보그의 붉은 양 눈과 칼로 할퀴는 듯한 발소리가 사람들의 절망감을 자극했다.

“거, 거짓말이야…….”

차라리 이것이 악몽이면 좋겠다고 생각한 누군가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리 중얼거리던 그때였다.

팍-!

부지불식 간에 위에서 떨어진 신형 하나가 잔상을 그려내며 사람들 사이로 나타났다.

오만상을 찌푸리며 눈물짓던 사람들이 휘둥그레 눈을 뜨며 신형의 모습을 살폈다.

하얀 머리의 거한.

오른손에 쥔 불의 칼.

검은 갑옷.

“아……!”

사람들의 입에서 너나 할 것 없이 탄성이 터져 나왔다.

동양에 강림한 구세주라 불리는 남자, 한대성!

그가 교토에 나타난 것이다!

<이건 뭐지?>

<무기를 쥔 걸 보니 우호적인 상태로는 안 보인다. 배제한다.>

이곳 기신족들은 대단히 간단명료한 행동 지침을 따르고 있었다.

저항하는 자는 죽여라.

철컥-!

일대에 산재한 기신족 무리의 양손이 기계적인 변형을 거듭하더니 곧 회전형 포신의 형태를 갖췄다.

미니건(Mini-gun).

두두두-!!

곧 여섯 개의 총열이 맹렬히 회전하며 벼락을 뿜어냈다.

섬광이 번쩍번쩍 점멸하고 땅이 엎어지는 듯한 굉음이 연달아 울리자 사람들이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전쟁통 한복판에 떨어진 것만 같은 순간이었으나 그들은 기뻐했다.

‘죽지 않아도 돼.’

‘한대성이야. 한대성이 왔으니까 우린 다 살 수 있어!’

‘이 눈을 뜨면 분명히 한대성이 이 기계 괴물 새끼들을 다 때려눕히고 있겠지!’

어차피 그들은 대성이 자신들을 구해주리란 걸 알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크고, 무시무시한 몬스터도 단신으로 때려잡은 남자다.

그런데 이까짓 사이보그들한테 패배하겠는가?

곧 폭음이 잠잠해지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

“…….”

“어, 어라?”

그러나 눈을 의심했다.

헛것을 보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과 함께 머릿속이 핑 돌았다.

후광을 등지고 멋지게 나타났던 구세주가 지금은 온몸에 총알구멍이 가득 뚫린 채 나자빠져 있었으니까.

<뭐 하는 인간이었냐. 저항도 안 하고 가만히 죽었다.>

<너희 인간이란 족속들은 농담이라는 걸 참 잘하는군. 애석히도 우린 기계라서 웃어주지는 못하지만.>

기신족도 당황한 눈치였다. 이렇게 회심의 타이밍에 등장해놓고 설마하니 허무하게 죽어버릴 거라곤 그들조차 예상치 못했으므로.

이 세상에서 제일 잔혹한 짓이 줬다 뺏는 것이라고 했던가?

털썩!

절망 속에서 희망을 맛보다, 다시금 절망에 빠진 이들 중에서 몇몇은 그만 버티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으아아악-!!”

“꺄아악-!!”

날카로운 비명이 좌중 사이에서 속출했다.

한대성의 죽음. 그건 <귀신> 클랜의 단원이 전원 몰살당하는 것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충격이었다.

<시끄럽다.>

<질서를 잃었군. 입 다물지 않으면 단체로 소각처리-.>

쿠후웅-!!

돌연 고막이 먹먹해질 만큼 어마어마한 굉음이 하늘을 뒤흔들었다.

사람들은 물론, 기신족도 흠칫 놀라며 소란의 진원지를 올려다보았다.

<순양전함(巡洋戰艦)이……?>

아까부터 상공을 날아다녔던 중형 공중전함 한 대가 지금, 새빨간 불길에 휩싸인 채 도시 외곽 쪽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갑자기 우주에서 운석이라도 떨어지지 않는 한, 지구의 21세기 기술력으로는 장갑(裝甲)에 흠집조차 낼 수 없는 녀석이다.

믿기지 않는 광경을 본 기신족들이 말을 잇지 못하던 찰나.

쿠-웅!

한 번 더, 검은 인영 하나가 방금 공중전함이 허물어지던 방향으로부터 훌쩍 튀어나오더니 사람들 사이에 착지했다.

인영의 정체는 또 대성이었다.

“어, 어어……?”

“내,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지?”

“아, 아까 방금 죽지 않았어?”

영문 모를 상황에 닥친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

기신족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당황했으면, 평소처럼 선제공격도 안 퍼붓고 멀뚱멀뚱 서 있기만 할까.

-슥.

칼자루를 쥔 대성의 손목이 살짝 움직인 그때.

<일단 배제하라!>

기신족의 양손에 달린 총열이 다시금 회전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생각했다.

눈앞의 남자가 진짜 ‘한대성’이면, 저 총알에 맞아도 끄떡없거나 전부 칼로 막아내리라고.

하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다.

아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대성을 ‘과소평가’한 거다.

스륵-!

순식간이었다.

오른손에 쥔 칼을 가로로 휘두른 순간 불의 창파(滄波)가 선처럼 그려지더니 기신족을 휩쓴 것이다.

일섬(一閃).

돌아가는 총열이 회전을 마치고 불을 뿜기도 전에, 놈들은 죽었다.

‘진짜’는 공격마저 허락지 않았다.

털썩!

목과 상반신이 잘린 기신족 50기가 동시에 쓰러진 순간.

“우와아아아-!!”

“한대성! 진짜 한대성이 왔다-!!”

“사랑해요-!!”

사람들이 양팔을 치켜들며 벌떡 일어나 열렬한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희망이 사람들 곁에 드리운 것이다.

***

‘역시 아직은 약하군.’

멈추지 않는 환호성을 한 귀로 듣고 흘리며 대성은 혀를 찼다.

물론 약하다는 건 본인을 두고 한 말이 아니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 낙엽 잎처럼 스르륵 흩날리는 ‘분신’을 흘겼다.

헥카르족 노인에게 계승 받은 권능, <완성형 분신>.

분신이 실전 경험을 쌓을수록 본신과 가까워진다 하기에 먼저 내보냈건만, 보다시피 결과는 저랬다.

‘지금은 아직 내가 판을 깔아주지 않으면 혼자서 뭘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건가.’

대성은 시스템을 활성화해 권능의 정보를 열람했다.

<분신(완성형)>

* 모델: 한대성

* 본신과의 일치율: 1.66%

처음 힘을 얻었을 때 확인한 바로는 0%였는데, 지금은 1% 정도 미약하게나마 상승했다.

‘분신을 전선에 투입한 행위가 어떠한 영향이 된 게 분명해.’

아무래도 ‘실전 경험’이란 건 단순히 적을 죽이는 것보다 훨씬 더 포괄적인 의미를 지닌 듯싶었다.

전장에 ‘서는 행위’도 ‘실전 경험’의 일부로 인정해준 것이다.

[허수 공간 ‘오브’의 원석, 오리할콘(Orichalcon)을 발견했습니다.]

[‘발견’ 단계를 거친 오리할콘이 ‘저장’ 단계로 넘어갑니다.]

[현재 오리할콘 보유량: 8000]

50기의 기신족과 순양전함 한 대를 격추함으로써 대량의 오리할콘 또한 수중에 들어왔다.

몬스터 한 마리당 오리할콘이 하나씩 나왔던 뉴욕 사태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어마어마한 수집량!

이대로 기신족을 계속 사냥하다 보면, 사령 병사뿐만 아니라 아예 모든 소환수를 오리할콘으로 튜닝하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으리라.

‘나중에.’

물론 지금 해야 할 것은 소환수 꾸미기 놀이 따위가 아니다.

대성은 교토시…… 아니, 이제는 음험한 이계의 땅으로 변모한 주변을 둘러보았다.

기신족의 대륙, 부유 공장.

‘공장’이라는 이름답게 과연 빌딩이 있어야 할 지점에 제철소를 연상케 하는 기계 설비들이 빽빽하게 세워져 있었다.

교토시, 나아가 일본 전체가 안개 도시처럼 매연에 잠겼다.

‘왜 부유 공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모르겠군.’

말 그대로 지면이 하늘에 떠다니는 형태를 생각했으나 전혀 아니었다.

우선은 이 근방을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조사를 이어나가, 대현자 멜카논이 납치된 장소를 찾는 것이 이곳에 온 본래 목적이었으므로.

“음?”

그러다 문득, 대성의 시야에 무언가가 포착되었다.

건물과 건물 틈새에, 성인의 머리 높이 정도 되는 동그란 빛 덩어리 하나가 광채를 쏟아내고 있었다.

빛 덩어리의 테두리는 가시같이 뾰족한 것이 촘촘하게 박힌 회색 갑판으로 장식됐다.

저 가시의 끄트머리에선 전류가 흘렀는데, 아무래도 저것이 빛 덩어리를 형성하고 있는 듯했다.

‘게이트는 아닌데.’

비슷하게 생기긴 했으나 게이트는 테두리에 갑판이 없고 좀 더 소용돌이가 굽이치는 듯한 외관을 하였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려던 참에, 마침 일본인 하나가 말을 꺼냈다.

“저, 저 정체 모를 것의 안쪽에서 기계 괴수들이 쏟아져 나왔어요.”

“저기에서?”

생김새뿐만 아니라 역할 또한 게이트와 매우 흡사했다.

이쯤 되니 저것의 정체가 뭔지 감이 잡혔으나 쐐기가 필요하다.

“나와라.”

대성이 아공간을 열었다.

그러자 곧 어린 남자아이가 낑낑대며 아공간을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힉……. 저, 저게 뭐야. 무서워…….”

“야, 야……. 조용해……. 그냥 그러려니 하자…….”

돌연 허공에 작은 균열이 생기는 것도 모자라 안쪽에서 웬 이종족까지 튀어나오자 그걸 본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다름 아닌, 아까 대성을 따라가겠다고 나섰던 헥카르족 소년이다.

이름은 ‘알리아’라고 했던가.

알리아가 “후아!” 하고 크게 숨을 토해내더니 말했다.

“안쪽은 꽤 넓어서 편한데 들어갈 때랑 나올 때가 곤욕이네요.”

“저게 뭔지 아나?”

대성이 빛 덩어리를 가리켰다.

그러자 알리아가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단박에 대답했다.

“와! 저건 텔레포테이션(Teleportation)이잖아요? 직접 보는 건 처음인데! 짱이다!”

“자세히.”

“서로 다른 장소를 이어주는 기계에요! 아저씨, 저 가서 저거 한 번만 만져봐도…… 아.”

호기심에 찬 표정으로 잔뜩 들떠 있던 알리아가 급하게 정색했다. 대성이 응석 따위를 부려도 될 상대가 아니란 걸 뒤늦게 떠올린 것이다.

“죄, 죄송해요……. 다, 다시는 안 그럴 테니까 한 번만 용서-.”

“허락하지. 가서 한번 만져봐라.”

풀 죽어있던 알리아가 동그랗게 뜬 눈으로 대성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직후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더니 텔레포테이션으로 달려갔다.

‘서로 다른 장소를 이어주는 기계라. 게이트의 하위 호환쯤으로 생각하면 되겠군.’

어디에 써먹는 기계인지 듣자마자 대성은 사용처를 떠올렸다.

알리아가 수족관의 돌고래를 구경하는 것처럼 텔레포테이션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사이, 대성 또한 발길을 옮겨 장치에 가까이 다가섰다.

윙-.

이윽고 텔레포테이션 주변으로 홀로그램 기판이 생성되었다.

기판이라고는 해도 문자부터 해서 구조까지 전부 인간의 관점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형태를 지녔다.

대성이 뭐라 묻기도 전에 알리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여기에 쓰인 건 기신족 언어. 그리고 텔레포테이션을 조작할 수 있는 3차원 조종대에요.”

“읽을 수 있나?”

“읽을 수만 있게요? 저, 이거 조종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대단하군.”

“북쪽 서고엔 없는 책 빼고 다 있으니까요!”

“그럼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장소를 도착 지점으로 설정할 수 있나?”

“물론이죠. 조금만 건드리면 돼요. 별거 아니에요.”

의외로 데려올 가치가 충분한 꼬맹이였다.

대성은 알리아에게 도착 지점을 ‘뉴멕시코’로 설정해두라고 말했다.

바로, 혈류석이 있는 곳이다.

‘거기엔 아인프리트도 있어. 섬멸룡의 둥지를 제외하면 지구상에서 제일 안전한 장소다.’

또한, 혈류석의 보급 속도를 폭발적으로 올릴 기회이기도 했다.

이제는 사람들을 모아 대충 사정을 설명한 뒤 텔레포테이션에 태우고 뉴멕시코로 보내기만 하면 된다.

대성이 사람들을 향해 몸을 돌려 목소리를 내려던 그때.

번쩍-!

난데없이 빛이 번뜩였다.

번개가 치거나, 또 다른 차원수의 나뭇가지가 내려온 건 아니었다.

다만,

“젠장! 또야!?”

“미치겠네! 제발 우리 좀 살려달라고, 제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욕지거리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저들은 이 빛이 번뜩이는 현상을 처음 겪어보는 게 아닌 듯했다.

대성은 비교적 침착해 보이는 일본인 여자에게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아, 그게……. 아까부터 계속 이러네요. 아니, 글쎄 갑자기 사방팔방이 번쩍거릴 때마다-.”

이때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이고! 내 아들! 내 아들 어디 갔어!”

“아빠? 아빠-!”

몇몇 사람이 오열을 쏟아내며 제 혈육이나 같이 있던 지인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여자가 안타까운 눈길로 저들을 흘겨보며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자꾸 사람들이 무작위로 사라져요. 땅으로 꺼지거나, 하늘로 솟은 것처럼요. 갑자기.”

“사라진다?”

그 말을 들은 대성은 뭔가 짐작 가는 바가 있냐고 묻는 듯한 눈초리로 알리아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알리아도 고개만 저을 따름이었다.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는군.’

이 또한 기신족의 소행인지 아닌지는 지금 당장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수록 빨리 이곳 사람들을 뉴멕시코로 피신시키는 게 상책일 터.

“다들 여기 주목.”

대성은 혼란에 빠진 사람들을 한데 모아 입을 열었다.

***

사람들을 텔레포테이션 너머로 보낸 뒤, 대성은 섬멸룡을 타고 열도 전역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얼마 안 가 후지산 정상이 깎여나간 것처럼 평탄하게 파여 있음을 발견했다.

깎여나간 부분은 흡사 석문과 같은 거대한 기계 장치로 메꿔져 있었다.

멀리서 보니 모양새가 마치 잘린 산꼭대기에 철제 뚜껑을 덮어놓은 것 같았다.

대성은 바로 아공간에서 알리아를 꺼냈다.

“저게 뭐냐.”

“음…… 저건 월(Wall)이에요. 보통 기신족들이 숨기고 싶은 장소를 숨길 때 쳐놓는 울타리? 가림막? 같은 거라고 보시면 돼요.”

“숨기고 싶은 장소라……. 그렇다면 저 너머에 너희들의 통치자가 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겠군.”

“네, 제 생각도 마찬가지이기는 한데……. 문제는 저거 엄청 딴딴해요! 기신족들이 만든 기계들은 보통 신비의 금속, 오리할콘이라는 걸로 이뤄져 있는데 특히 저 월은 엄청나게 센 오리할콘 무기가 아닌 이상에야 메테오 마법으로도 못 부수는-.”

알리아의 한 가지 특징이라면 관심 주제가 나올 시 말이 급격하게 많아진다는 점이었다.

녀석이 혼자 신나서 떠드는 사이 대성은 섬멸룡의 날갯죽지에 달린 주포를 가동했다.

포신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알리아가 주포의 존재를 발견하곤 말을 더듬었다.

“어……. 아, 아저씨? 설마 이거 오리할콘으로 만든-.”

“발사.”

퍼버버벙-!

수십 갈래로 분열한 백색 광선이 포신 밖으로 뻗어 나가며 후지산을 강타했다.

눈이 멀 것 같은 백광(白光)이 산자락을 아득하게 물들이기를 한참.

찬란한 빛이 가라앉고 난 자리엔, 산꼭대기에 덮여 있던 철판은 이미 화덕에 달궈지는 것처럼 사정없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설명 고맙다. 도로 들어가.”

“…….”

멍하니 넋을 잃은 채 그 광경을 내려다보는 알리아는 입을 다물지를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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