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
141
쿠르릉-!
돌처럼 단단한 멜카논의 뇌를 움켜쥐자마자 굉음이 쩌렁쩌렁 울렸다.
그뿐만 아니라, 넓은 공동의 사방에 날카로운 균열마저 생겨났다.
“훌쩍……. 뭐, 뭐예요, 갑자기?!”
대현자의 참변에 통곡하던 알리아가 화들짝 놀라며 그리 외쳤다.
한편, 대성은 퍼뜩 직감했다.
이곳 50층뿐만 아니라, 탑 그 자체가 붕괴하고 있는 것임을.
[50층에 존재하는 탑의 코어에 중대한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코어의 역할을 하는 대현자 멜카논의 생명 활동이 중지되었습니다.]
[진행 중이던 모든 난관과 보상 시스템이 사라집니다.]
[코어를 상실한 ‘발아의 탑’이 무너집니다.]
[가상 차원의 붕괴로 인하여 모든 마력이 봉인됩니다.]
시스템 글귀를 확인한 대성이 문득 인상을 험상궂게 찌푸렸다.
몸속에 납덩이가 앉은 듯 중력이 상승하고 맹렬한 두통이 엄습했다.
공동의 형태를 하였던 필드가 전파 끊긴 화면처럼 노이즈로 뒤덮였다.
끝이 아니다.
[마력의 봉인으로 인해 ‘발라르크의 갑옷’이 구현 해제됩니다.]
[마력의 봉인을 해제하시려면 붕괴하는 탑으로부터 빠져나오십시오.]
그의 거구를 감싸고 있던 칠흑의 갑주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가죽바지 하나만을 걸친 모습이 된 대성은 거칠게 혀를 찼다.
걷는 게 버거우니, 갑옷의 특수 스킬인 <비행>으로라도 날아가겠다는 선택지는 원천 봉쇄된 것이다.
그는 식은땀을 쉴 새 없이 흘리며 정신을 잃지 않도록 집중했다.
자칫 한순간이라도 긴장을 풀다간, 먼지처럼 바스러질 것 같았으므로.
‘여기에 계속 있다간 사라진다.’
이 탑의 본질적인 정체는 오브다. 즉, 탑의 형태를 한 게이트다.
보스 몬스터가 죽고 폐쇄되는 게이트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사냥꾼은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
공교롭게도 그건 아무도 모른다.
이미 죽은 사람에게 죽은 뒤에 어땠냐고 물어보는 거나 마찬가지니.
하지만 대성은, 그 의문에 대한 정답을 알 것만 같았다.
소멸(消滅).
죽음과는 다르다.
생명 활동이 정지하고 사후세계로 접어드는, 그런 단순한 죽음과는 너무나 다른 영역이다.
이때 알리아가 학질에 걸린 것처럼 토하고 경련했다.
“아, 아저씨…….”
“이거 가지고 들어가 있어.”
대성은 알리아에게 멜카논의 뇌를 휙 던진 뒤 아공간을 열었다.
평소였다면 잔뜩 질겁하는 반응을 보였겠으나, 그럴 겨를조차 없었던 알리아는 얌전히 뇌를 받아들곤 헐레벌떡 아공간 안으로 들어갔다.
대성은 젖은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주변을 살폈다.
픽셀이 깨진 컴퓨터 모니터처럼 된 주위엔 출입구 따윈 보이지 않았다.
‘내가 여기서 좌절할 리가 없다.’
영혼이 조각조각 찢겨나가는 순간임에도 대성은 이를 악물었다.
그의 모습이 사막 한복판의 아지랑이처럼 괴기하게 울렁거렸다.
‘빠져나갈 구멍이 하나도 없다는 건 말이 안 돼.’
들어오는 길이 존재했으니 나가는 길 또한 분명히 있으리라.
나에겐 아직 할 일이 많다.
지켜야 할 소중한 이들 또한 많다.
그러니 어떻게든 버티겠다.
독기 어린 집념은 그가 쓰러지지 않도록 지탱해주었다.
덕분에 머지않아, 대성은 작은 ‘틈’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저거다.’
방화벽!
정신이 아득해지는 혼돈의 구렁텅이 사이에, 광명(光明)이 스며 나오는 틈이 하나 존재했다.
크기는 딱 성인 한 명이 겨우 비집고 오갈 만큼.
이곳에 들어왔을 때 어렴풋이 보았던 방화벽의 형체와 흡사했다.
다만.
쿠궁-! 쿠궁-!
틈이라 하여 형편 좋게 훤히 뚫려 있지는 않았다.
고장이 난 개폐식 철문처럼 틈은 빠르게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했다.
무수한 칼날의 세례가 틈을 메꿨다 다시 물러나기를 거듭하는 것이다.
‘대강 2초에 다섯 번꼴인가.’
칼날이 저 좁은 틈새를 전부 메우기 전에 후다닥 빠져나가면 되는, 지극히 알기 쉬운 상황이다.
만약 현재 대성의 몸이 온전한 상태였다면 어떻게든 했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사지는 중력 때문에 짓눌리고 머릿속은 진창이 되었으며, 영혼은 시시각각 지우개질 당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외줄 타기다.
몸의 중심을 유지한 채 한 발짝 떼는 것도 버거운데, 그런 와중에 2초에 다섯 번씩 열렸다 닫히는 출구를 타이밍 맞춰서 빠져나가라?
제정신으로 할 짓이 아니다.
그러나 대성은 엄살을 피우지 않았다. 그렇다 하여, 한 끗의 실수만 저질러도 절명하는 시련을 근성으로 돌파할 생각 또한 없었다.
‘지연의 시간석.’
대성은 3호기를 죽이고 보상으로 획득한 시간석을 꺼내 들었다.
시간의 흐름을 느리게 만드는 돌.
이거라면 틀림없이 위기를 헤쳐나갈 열쇠가 될 터.
점점 한계에 직면해 가는 대성이 황급히 돌을 사용하려던 그때였다.
[탑의 붕괴가 가속화됩니다.]
[각 층에 구현되었던 가상 필드가 무작위로 뒤섞입니다.]
팟-.
요란스러웠던 굉음이 멈췄다.
언제 그랬냐는 듯, 우주 공간에 접어든 것처럼 사방이 고요해졌다.
악몽에서 깨어난 듯이 얼떨떨해진 대성이 눈을 감았다가 떴다.
“빌어먹을.”
그리고 진심에서 우러나온 욕지거리가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더 멀어졌다.
분명 100m 안쪽에 있었던 틈이.
이제는 눈을 가늘게 좁혀 유심히 바라봐야만 겨우 보일 만큼 먼 거리에 있던 것이다.
오아시스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신기루임을 깨달은 조난객의 기분이 이와 비슷할까.
‘…….’
허탈함과 좌절감이 몰려오자, 대성은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내장이 뒤집혀서 구역질이 치솟았고 근육이 비명을 질렀으나 상관치 않았다.
절망에 빠질 시간에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생각하기로 했다.
얼굴에서 손을 거둔 그가 정면을 바라보았다.
새카맣게 펼쳐진 공간 사이사이로 무언가 덩어리진 것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저게 바로 시스템이 말한, 뒤섞인 가상 필드일까.
아래를 내려다보니, 자신 또한 그 덩어리 중 하나에 선 상태였다.
덩어리들은 전부 푸른 장갑(裝甲)이 덧씌워져 있었는데, 그 질감이 꽤 눈에 익었다.
‘오리할콘이군.’
마력이 봉인된 탓에 <비행>으로 날개를 펼쳐 저 멀리 있는 출구까지 날아가기란 불가능하다.
혹시나 한 마음에 덩어리 외곽을 향해 발을 슬쩍 내밀어 보았다.
발바닥에 뭔가 닿는 감촉은 없었다. 덩어리 외곽의 어둠은, 그냥 텅텅 빈 허공이라 보면 된다.
‘저 덩어리들을 출구까지 가는 발판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그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서로 멀찍이 동떨어진 덩어리들을 어떻게 하나씩 밟고 출구까지 도착할 것인가….
도약을 펼쳐서?
무리다.
걸음마를 옮기는 것조차 벅찰 지경인데, 못해도 간격이 50m는 족히 넘는 저 덩어리까지 도약하는 건 대단히 무모한 모험이다.
덩어리가 있는 곳까지 닿는 갈고리라도 있다면 모를까.
‘갈고리?’
거기까지 사고가 돌아가자 대성의 눈길이 오른손으로 옮겨졌다.
팔찌.
100층의 거신룡을 죽이고 얻은 ‘만병지왕’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내가 원하는 어떤 무기로든 변이 가능하다고 했지.’
갈고리 또한 무기의 범주에는 충분히 속할 터.
‘사슬이 달린 갈고리’를 바란다고 의식하자 팔찌가 빠르게 변이했다.
곧 그의 손에 끝이 ‘ㄱ’자로 휘어진 검은 사슬 갈고리가 생겨났다.
‘십만에 가까운 오리할콘을 갈아 넣어 만든 무기다. 저 덩어리를 덮은 장갑 정도는 파고들 수 있겠지.’
오리할콘 찌꺼기가 동그랗게 뭉친 저 덩어리의 겉에는 갈고리가 걸릴 수 있는 턱 부분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억지로 뚫어야만 한다.
뚜둑!
대성은 무거운 중력에 못 이겨 그만 으스러지고 만 어깨뼈를 억지로 틀어잡고 모양새를 맞춘 다음.
훙-. 훙-. 휙!
검은 사슬을 몇 번 빙빙 돌린 뒤 갈고리를 던졌다.
과연 갈고리가 저 멀리 있는 덩어리까지 닿을지는 미지수였으나…….
콰직-!
‘역시 100층 보상은 다르군.’
다행히 사슬은 50m의 거리 차 따윈 거뜬히 메울 만큼 길었고, 갈고리는 오리할콘 장갑을 손쉽게 뚫어낼 만큼 파괴적이었다.
게다가 사슬은 아직도 여유분이 남아돌아 헐겁게 휘어져 있다.
대성은 어깨를 뒤로 당겨 헐거운 사슬을 팽팽한 일자로 만든 뒤 팔에 조금씩 힘을 실었다.
갈고리가 제대로, 그 어떤 경우에도 절대 빠지지 않을 만큼 세게 박혀 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지금 확인한바, 문제는 전혀 없는 듯싶었다.
‘간다.’
쇠밧줄을 하나씩 덩어리에 꽂으며 날아가 저 출구까지 전진한다.
스파이더맨처럼 말이다. 관람했던 기억은 대성에게 없지만,
‘그리고 출구에 가까워질 즈음에 시간석을 사용한다.’
시간석의 힘이 미치는 최대 반경은 불과 10m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리 출구와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덩어리라 하여도 10m보다는 멀리 떨어져 있다.
말인즉슨, 마지막 덩어리에서 출구를 향해 ‘몸을 날리는 도중에’ 시간석을 사용해야 하는 셈.
이조차 타이밍이 조금이라도 맞물리지 못했다간 몸이 갈려서 죽는다.
미친 짓이다.
‘하지만 이 미친 짓이 아니면 출구까지 닿을 방법이 없다.’
대성은 덩어리의 낭떠러지 앞에 섰다. 사슬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무얼 망설이는가.
이미 한번, 지옥의 밑바닥에서부터 아득바득 기어올랐던 적도 있는데.
그러니 이런 건 그를 좌절케 하는 시련이 되지 못한다.
탁-.
대성은 발을 박차 뛰었다.
***
“크르르-.”
후지산 분화구 깊숙한 곳.
섬멸룡은 날개를 펄럭이며 불의 거인을 주시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거인의 가슴팍에 박힌 깨진 보석을 노려보았다.
자신의 위대한 주인께서 방금 저 보석 안으로 들어가셨다.
그런데 그 뒤로 시간이 꽤 지났건만 주인께서는 도통 나타나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크르르-.”
조바심이 일어서인지 섬멸룡은 아까부터 계속 신음을 흘려댔다.
마음 같아선 자신도 저 보석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게 너무 분통이 터졌다.
-…….
한편.
마그누스는 주군의 명에 따라 온 힘을 다하여 불의 거인을 붙들고 있었다.
“크아아아악-!”
불의 거인은 기절했다 깨어나기를 반복할 때마다 괴성을 지르면서 몸을 뒤틀었다.
그런 녀석을 억지로 붙들고 있자니 마그누스 또한 고역이 이만저만이 아닐 수가 없다.
“크르르-!”
불의 거인이 날뛰기 시작하자 섬멸룡까지 덩달아 불안증세를 보였다.
저 안에 자신의 주인이 있다고 생각하니 안달이 난 것이다.
-무엇을 걱정하지, 드래곤? 조급해하지 말고 차분히 기다려라.
마그누스가 섬멸룡에게 말했다.
본래 주인밖에 듣지 못하는 에고(Ego)지만, 섬멸룡과 마그누스는 같은 마력 회로에 묶인 존재들.
그렇기에 마그누스의 목소리는 섬멸룡 또한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아니면 너는 설마하니 여기가 주군의 무덤이 될까 불안한 거냐?
“크르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냥 무의미한 심력 소모는 그만두고 기다리는 게 상책이다.
하지만 사실 이렇게 말하는 마그누스도 불안하긴 매한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환하게 발광하던 보석이 방금 갑자기 빛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대성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다.
주군의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설마’나 ‘혹시’ 같은 생각을 쉽사리 떨쳐낼 수가 없었다.
마그누스마저 저도 모르게 끙끙 앓는 소리를 내려던 그때.
쨍-!
거인의 가슴에 있는 보석, 오브가 파편을 흩뿌리며 폭발했다.
“……!”
흩날리는 파편 사이로 대성의 신형이 훌쩍 튀어나왔다.
바로 아래는 뜨거운 마그마.
“크르-!”
섬멸룡이 기민한 순발력을 발휘하여 대성이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그를 입에 물었다.
대성의 온몸은 식은땀이 비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탈구(脫臼)된 부위도 적지 않았다.
“죽을 뻔했군.”
하지만 짜릿한 성취감이 전신을 휘감았다. 오랜만에 느껴본 스릴감에, 대성은 그답지 않게 피식 웃었다.
폐쇄된 게이트에 휘말린 사냥꾼이 현실로 돌아왔다는 전례는 없다.
그러나 바야흐로 이제는 대성이 최초의 사례가 된 것이다.
-무사히 돌아오셨군요.
주군의 무사 귀환을 본 마그누스가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브가 완전히 박살이 나자 불의 거인 또한 말없이 숨을 거뒀다. 아무래도 오브가 녀석의 또 다른 심장부 역할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대성이 한숨 돌리며 섬멸룡의 혓바닥 위로 털썩 주저앉은 순간.
화륵-.
시스템 글귀가 눈앞에 떠올랐다.
[탑의 붕괴로부터 살아남으셨습니다. 탑에 억류되어 있던 가상의 시공간이 절대자의 몸에 서립니다.]
[‘지연의 시간석(x3)’을 추가로 획득하셨습니다.]
[5만 개의 오리할콘을 추가로 획득하셨습니다.]
지연의 시간석!
그렇지 않아도 다섯 번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시간석을 이미 한 번 소모해서 마음이 불편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시간석 세 개를 추가로 얻었으니 능력 또한 열다섯 번을 추가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거기다 자잘하게…… 아니,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오리할콘까지.
굉장히 만족스러웠으나 놀랍게도 보상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탑을 건설하는데 동원되었던 기신족의 기술력이 전승됩니다.]
[‘탑 설계도’를 획득하셨습니다.]
[‘워프 게이트 설계도’를 획득하셨습니다.]
[眞 용살포 설계도’를 획득하셨습니다.]
[‘봄 설계도’를 획득하셨습니다.]
[설계도의 해석이나 사용엔 따로 지식이 필요 없습니다. 제작에 필요한 오리할콘을 설계도와 조합하면 해당 결과물이 생성됩니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것들이 수중에 들어왔다.
탑, 워프 게이트, 용살포, 봄. 넷 전부 대성의 관심을 끌었다.
특히.
‘탑 설계도라면, 내가 직접 탑을 세울 수 있다는 말인가?’
아니. 탑 설계도란 명칭이니 분명 그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리라.
다만.
탑을 세운다…….
이 짧은 문장이 함유한 스케일이 어느 정도인지를, 대성은 쉽사리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한번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함부로 속단하기에도 뭐 했다.
워프 게이트와 봄도 마찬가지.
마지막으로 용살포.
‘앞에 굳이 진(眞)을 붙였다는 건 99층의 보상인 용살포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군.’
그럼 99층의 용살포는 무슨 하위 기종이라도 된다는 걸까.
만일 그렇다 해도, 용암을 뒤집어써도 멀쩡하다며 너스레를 한껏 떨었던 3호기가 소스라치며 몸을 웅크릴 정도의 위력이었다.
하위 기종이 그러할진대, 앞에 ‘진(眞)’ 표가 붙은 용살포라면 그보다 훨씬 더 막강하다는 뜻 아닌가.
‘분명 언젠간, 용족과도 맞붙을 날이 찾아온다.’
용은 그 어떤 종족들보다 호승심이 강하고 지배 욕구가 투철했으며, 그만큼 포악한 족속들이다.
탐욕스러운 용들이 지구의 육지와 바다를 그냥 내버려 둘 리가 없다.
실제로 2차 대격변이 벌어지자마자 대성이 제일 먼저 상대해야만 했던 자가 적룡이 아니었던가.
용살포. 용을 죽이는 포(砲).
용족과 전쟁을 벌일 날에는, 분명 이것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더 알아보고 싶은 게 많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다.’
보상에 대한 성찰은 여기까지만 하기로 하였다.
지금은 수중에 무엇이 있든, 대현자 멜카논만큼 중요하진 않았으니.
“나가자.”
“크르르-!”
섬멸룡이 분화구를 빠져나갔다.
***
“멀쩡한 뇌만 있다면 너희가 알아서 멜카논을 살릴 수 있다고 이 녀석에게 들었다.”
“아아! 대현자시여……!”
그 후, 대성은 헥카르족이 있는 유계로 복귀했다.
그리고 곧장 아공간을 열어 멜카논의 뇌를 저들에게 건넸다.
알리아가 그랬듯, 저들 또한 목 놓아 엉엉 울었다.
대성은 뇌를 품에 꼭 끌어안으며 오열하는 헥카르 노인에게 말했다.
“되살릴 수 있나?”
“다행히 뇌에는 큰 흠집이 없으니 육체 수복을 비롯한 소생 작업이 불가능하지는 않네. 시간은 좀 오래 걸리겠지만……. 한 반나절 정도.”
“반나절 정도면 상관없다. 그래도 최대한 서둘러라.”
“그, 근데 이걸 어떻게 자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해야…….”
“그런 건 됐고 서두르기나 해라.”
별로 감사 인사 같은 걸 받고픈 족속들은 아니었으므로.
게다가 만일, 기껏 부활한 멜카논이 근원으로 도달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전에 경고했듯이 성대한 분풀이를 할 작정이기도 하고.
노인은 멜카논의 뇌를 조심스레 담요로 덮은 다음, 몇몇 다른 헥카르족을 대동하여 어딘가로 향했다.
소생 작업을 하러 가는 것일 터.
반나절 정도 걸린다 하였으니, 대성은 우직하게 기다렸다.
‘시간이라도 적당히 때울 겸, 여길 둘러볼까.’
고비를 넘기고 돌아온 참이다.
이 정도 휴식 정도는 자신에게 허락해주자는 마음에, 그가 유계를 네 바퀴쯤 순회하던 찰나.
팟-!
밤의 세계였던 유계에 노을빛이 아름다운 여명(黎明)이 떠올랐다.
우와아아아-!!
하늘을 물들이는 여명과 함께 격렬한 함성이 저편에서 메아리친다.
‘부활했나 보군.’
그는 직감했다.
대현자 멜카논이 살아났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