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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돌아온 한대성-142화 (142/180)

# 142

142

부드러운 노을이 반투명한 계단 위로 천천히 내려앉았다.

멜카논의 부활을 직감한 대성은 여명이 떠오른 방향으로 달려갔다.

그랬더니 빛의 문으로부터 뻗어 내려오는 계단과 마주한 것이다.

또각-. 또각-.

규칙적인 발소리가 문 너머로부터 아련하게 들려온 것도 그때였다.

‘뭐지?’

문득 대성은 형용키 어려운 불쾌감을 느끼고는 뒷덜미를 매만졌다.

정체 모를 한기(寒氣)를 짧게 곱씹은 끝에야, 그는 이 불쾌감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마력이 희석되고 있다.’

달리 말해 약해진다고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마력의 양 자체는 변함이 없으나, 질적으로는 퇴화하고 있다.

진한 액체에 물이라도 탄 것처럼 마력의 농도가 빠르게 옅어진다.

이는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가속화되었는데, 이쯤 되면 원인이 무엇인지는 확실했다.

‘저 빛의 문 너머에 선 존재가 내 힘을 억누르고 있군.’

식은땀 한 방울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렀으나 대성은 내색하지 않았다.

곧이어 문턱을 밟고 멜카논이 드디어 대성의 앞에 나타났다.

탑에서 봤던 것처럼 청년의 모습.

역시 ‘대현자’라는 이름이 주는 선입견과는 어울리지 않는 외견이다.

“평생을 무언가를 깊이 들여다보고 학습하는 것에만 몰두했습니다. 그러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반로환동(返老還童)을 깨우치게 되더군요.”

옥이 굴러가는 것 같은 미성(美聲)이 멜카논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대성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남의 생각도 읽을 줄 아나?”

“공교롭게도 독심술까지는 체득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표정으로 짐작했을 뿐이죠.”

“…….”

“제가 주제넘은 말을 한 거라면 사과하겠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저를 구해주셔서요.”

멜카논이 오른손을 왼쪽 빗장뼈에 올리더니 반듯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가 먼저 행동을 선보이자, 주변을 에워싼 다른 헥카르족도 일제히 허리를 숙여 감사의 뜻을 보였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 이들에게 받고 싶은 건 이따위 허울이 아니다.

이제는 거의 말버릇같이 된 그 질문을 대성이 하려던 찰나였다.

“차원의 근원에 도달하는 방법을 찾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알고 있나?”

“알고 있다기보다는…… 근원과 접선하는 신물(神物)을 만드는 건 저와 제 아들밖에 해내지 못합니다.”

대성은 그제야 안도했다.

멜카논마저 무지하다는 최악의 사태는 피하게 되었으므로.

아들이 있었다는 건 처음 듣는 얘기였으나 별로 중요친 않을 터.

남은 건, 그 신물을 만드는 데 있어서 또 한 번 험난한 길이 존재하는지 아닌지에 관한 문제였다.

그리고 세상엔 쉬운 일 하나 없다는 듯, 예상대로 멜카논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다만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얼마나 걸리지?”

“모릅니다. 해보기 전까진 지금 이 자리에서 확언을 드릴 수가 없군요. 한 달이 걸릴 수도 있고 1년을 꼬박 지새워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한 달이 걸릴 수도 있다는 건, 최소가 한 달이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대성은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최소가 한 달이라니.

아니, 차라리 한 달이면 낫다. ‘최소’라는 건 높은 확률로 그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린다는 의미였으니까.

‘기약도 없이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겨를이 없다.’

헥카르 비전이 그러했으니, 근원에 닿는 방법 또한 어떠한 신물이 동원되리란 것은 얼추 예상했다.

그리고 신물을 이용할 경우, 그것이 하루 이틀 만에 완성되지는 않으리란 것도 예상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토록 오랜 시간을 기다리게 될 거란 것까지 예상하지는 못했다.

안 된다. 최소가 한 달이라니. 죽었다 깨어나도 못 기다린다.

하나라도 긁어모으자는 심정으로 대성이 멜카논을 향해 물었다.

“그 신물이란 거, 어떤 방식으로 만드는 거지?”

“유계의 혈(血)에는 ‘만상의 샘’이라 불리는 영역이 있습니다.”

“만상(萬象)의 샘?”

“유계와 현계를 가로지르는 강줄기입니다. ‘차원의 근원’과 같이 ‘만상의 샘’ 또한 물질의 영역을 벗어난 추상에 가까운 세계. 샘의 도움을 빌리면 근원에 도달하는 것도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게 됩니다.”

“그 샘이란 놈이 도움을 쉽게 주지는 않나 보군.”

멜카논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였다.

“‘만상의 샘’은 단순히 흐르기만 할 뿐인 강줄기가 아닙니다. 또렷한 의지를 지녔고, 해답을 구하고자 찾아온 이들과 소통할 수 있죠.”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라도 건네나? 그럼 그건 소통이 아니다.”

“아뇨. 그건 아닙니다. 샘은 바로 해답을 제시해줍니다. 다만 듣는 이가 이해하지 못할 뿐이에요.”

“이해하지 못한다고?”

“샘이 쓰는 ‘언어’가 항상 갈 때마다 달라집니다. 생전 처음 듣는 말을 듣게 되는 거죠.”

말인즉슨, 질문에 대답은 하는데 외계어를 지껄인다는 의미였다.

어떻게 보면 몸으로 부딪치는 일보다 훨씬 곤혹스러운 문제였다.

“그럼 저는 샘의 말을 기억하고, 적어둔 다음. 서고에 틀어박혀 온종일 그 문구를 해독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고 한 것이군.”

“샘의 도움을 빌릴 때마다 새로운 언어가 갱신되니, 단서로 쓰일 법한 자료마저 없습니다. 완전히 무(無)에서 유(有)를 끌어내는 작업이죠.”

듣고 나니 왜 그리 멜카논이 난처한 기색을 보였는지 이해하였다.

단순히 몸을 험하게 굴려야만 해결될 문제였다면, 뼈와 살을 깎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머리를 억지로 쥐어 짜내는 일은 다르다. 미지(未知)를 파고드는 건 막무가내로 밀어붙인다 하여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어떡하면 좋을까.’

그래서 더 조급해졌다.

대성은 초조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며 턱을 매만졌다.

그러다 문득, 유계에 처음 발을 들인 뒤로 24시간이 훌쩍 지났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허공록이라도 살펴봐야겠군.’

하루가 지났으니 새로운 정보가 갱신되었을 터.

물론 그는 최근에 이미 허공록에 커다란 실망을 느낀 적이 있었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사락-.

상점 창을 열어 ‘정보 구매’를 택하자 금빛 문서가 손에 내려앉았다.

《1순위 정보》

「텔레포테이션을 타고 뉴멕시코로 넘어간 일본인들은 혈류석을 얻는다.」

「더 많은 마법 능력자의 급증에 위기감을 느낀 변방의 란도족 무리 몇이 쿠데타를 벌인다.」

나름 중대한 소식이긴 하였으나, 여전히 제일 급한 불은 해결해주지 못하는 허공록이었다.

1순위 정보가 이러할진대 나머지 순위의 정보는 말할 필요도 없다.

노골적으로 실망감을 드러낸 대성이 허공록을 접으려던 그때.

“맙소사. 그거 혹시 ‘아카식 레코드’ 아닙니까?”

그간 나긋나긋하였던 멜카논의 목소리가 옅은 흥분을 띠며 급변했다.

표정 또한 어딘가 경악과 기쁨이 반반씩 뒤섞여 있었다.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종잡을 수 없었던 대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아카식 레코드가 아니라 허공록이라는 거다.”

“아뇨. 아닙니다. 뭐, 뜻은 통하지만…… 그래도 그것의 진짜 이름은 아카식 레코드입니다. 제 눈이 틀렸을 리가 없습니다.”

“왜 그렇게 확신하지?”

“제가 만들었으니까요. 자신이 만든 연구물을 다른 것과 착각하는 바보가 세상천지 어디 있겠습니까.”

“…….”

상상도 못 한 이야기에 대성은 잠깐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천상의 상점 창에 떡하니 있는 물건을 본인이 만든 것이라 우기니 갈피를 잡지 못할 만도 했다.

“아카식 레코드는 방대한 지식을 품은 북쪽 서고의 축소판입니다. 하지만 천상에서 온 자들이 저희 세계를 침공하였을 당시 그만 약탈당하고야 말았죠. 그런데 어찌 그것이 당신의 손에…….”

멜카논이 말끝을 흐리며 잠시 대성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저 표정에 떠오른 진의를, 대성은 눈치 빠르게 간파하였다.

의심.

어쩌면 대성이 천상에서 온 자일 수도 있다고 의구심을 품은 것이다.

분명 천상에서 온 자들이 가져갔던 물건이 그의 손아귀에 있으니 미심쩍어할 법도 했다.

만일 그렇다면 멜카논은 대성을 원수로 보겠지만, 진실은 전혀 그렇지 않으니 걱정할 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천상에 있던 놈들과 이전부터 꾸준히 싸움을 벌여왔다. 네가 아카식 레코드라고 말한 이것은 그에 대한 전리품이지.”

“……그렇습니까?”

“내가 근원에 도달하고자 하는 이유도 천상의 잡것들을 모조리 죽이려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무슨 말인지 잘 알겠습니다.”

오해는 짧았던 만큼 빨리 풀렸다.

오히려 천상의 존재들을 죽이겠다는 말이 멜카논에게는 호감으로 다가왔는지 그가 히죽 웃었다.

“놈들이 수탈한, 그러니까 지금 당신이 들고 있는 그건 완성을 앞둔 미완성작입니다. 지금껏 사용하는 데 불편함은 없으셨습니까?”

“있었다. 아주 많이.”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자 저도 모르게 불평이 튀어나왔다.

어쩐지 미묘한 부분에서 부족하다 싶더니 미완성작이었을 줄이야.

이때 갑자기 멜카논이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다.

설마,

‘돌려달라는 건가?’

당연히 그렇게 해줄 생각은 없다.

하지만 멜카논은 대성이 생각한 것과 다른 의도를 품고 있었다.

“그걸 잠깐 제게 맡겨주십시오. 지금이라면, 아카식 레코드의 채우지 못한 나머지 부분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완성작으로 만들어줄 건가?”

“그렇습니다.”

“……거절은 하지 않겠지만 왜 굳이 날 위해 그런 수고를 들여주지?”

“저를 기신족으로부터 구해주신 것에 대한 보답입니다. 또 천상에서 온 자들을 죽이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다면 저흰 공공의 적을 둔 겁니다. 당신이 좋은 무기를 쥐면 쥘수록 저희에게도 손해 볼 건 없다는 거지요.”

말투를 보아하니 거의 대성을 아군으로 여기는 듯했다.

물론 대성으로선 공감하고픈 마음이 추호도 없었으나, 일단은 알아들은 척 고개 정돈 끄덕여줬다.

멜카논에게 허공록을 건네며 대성이 짧게 덧붙였다.

“어느 정도 걸리지? 너무 오래 걸리면 그냥 거절하겠다.”

“북쪽 서고에 꽂힌 기록물들을 추출하고 더할 뿐인 간단한 작업입니다. 1시간만 기다려주십시오.”

멜카논은 허공록을 품에 넣고는 북쪽으로 향했다.

본래 목적과는 동떨어진 일이 발생하였으나 투자할 가치는 충분했다.

정보는 곧 힘.

그 어떤 아이템, 스킬보다도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만일 허공록이 완성형으로 거듭나, 진정으로 실효성 있는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면 그만한 성취도 없다.

그렇게 대성이 인내를 발휘하여 정확히 1시간을 꼬박 보낸 그 순간.

[‘상점 창’의 <정보 구매> 기능이 대폭 개편되었습니다.]

[‘허공록’에서 ‘아카식 레코드(Akashic Records)’로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정보 구매> 개편으로 인하여 몇 가지 인터페이스에 변화가 생길 예정입니다.]

[‘아카식 레코드’는 앞으로 더욱더 사용자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제공해줄 것입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먼저 뜨고 나서야 멜카논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윽고 그가 완성형 아카식 레코드를 대성에게 건넸다.

겉보기로는 허공록이었던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았으나, 어찌 됐건 중요한 건 내용물이다.

그러다 대성은 문득 궁금한 사항이 하나 떠올라 물었다.

“아카식 레코드로 ‘만상의 샘’이 하는 말을 해석할 순 없나?”

만일 가능하다면, 멜카논은 진즉에 아카식 레코드를 완성하고 샘에 간다는 방법부터 떠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멜카논은 고개를 저었다.

“아카식 레코드의 모체(母體)는 북쪽 서고에요. 북쪽 서고에 없는 정보는 아카식 레코드조차 제공하지 못합니다.”

“흠…….”

“북쪽 서고는 우주 각지에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을 자동으로 기록합니다. 하지만 ‘차원의 근원’과 ‘만상의 샘’은 추상에 걸친 영역. 현계와 유계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규격 외의 문제이기에 아카식 레코드도 뚜렷한 답을 내리지 못합니다.”

“결국, 편법 같은 건 없다는 거군.”

“유감스럽게도 그런 듯하군요.”

이렇게 된 이상 직접 부딪쳐본 뒤에 고민하는 수밖에 없었다.

대성은 성능 확인도 해볼 겸 아카식 레코드를 펴들며 말했다.

“일단 ‘만상의 샘’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라.”

“여부가 있겠습니까. 따라오시지요. 그리 먼 곳에 있진 않습니다.”

대성은 멜카논을 따라갔다.

따라가면서 아카식 레코드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이럴 때 제 아들이 있었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말이죠.”

“왜지?”

시선은 여전히 아카식 레코드에 고정한 채 대성은 그리 대꾸했다.

살펴보자니 꽤 일목요연한 변화가 눈에 들어왔다.

“제 아들은 정말 총명한 녀석이었습니다. 녀석이 가진 재능에 비하면 저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죠. 제 아들이야말로 진정으로 ‘대현자’의 이름이 어울린다고 해야 할까요.”

“아들은 ‘만상의 샘’이 하는 말을 잘 이해했나 보군.”

“이해하고 말 것도 없습니다.”

멜카논이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대성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대성은 아카식 레코드의 내용물에 집중하는 중이었기에 멜카논의 표정을 보지 못 했다.

우선, 1순위부터 5순위까지 다섯 개씩 제공되는 정보가 [하급 정보] [중급 정보] [고급 정보] 세 가지로 간략화되었다.

부디 간략화된 만큼 더 값진 정보가 있기를 대성은 기원했다.

이때 멜카논의 말이 이어졌다.

“제 아들 녀석은 신비하고도 강력한 주술을 뚝딱뚝딱 잘도 만들었습니다. 천재 중의 천재였죠.”

“그래서.”

“심지어 녀석이 만든 것 중엔 그 어떤 언어도 단숨에 해석하는 주술도 하나 있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

“옛적에 ‘헥카르 비전’이라고 샘의 말을 해석하고 신물을 하나 얻었던 적이 있습니다. 제 아들이 만든 그 주술이 아주 큰 도움이 된 거죠.”

멜카논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리며, 대성은 우선 고급 정보부터 열람해보았다.

“그러니…… 만약 그 주술이 지금 있었다면 ‘만상의 샘’이 하는 말도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겠죠. 하지만 녀석이 그간 개발해왔던 주술을 총망라한 책은 여기에 없습니다.”

“…….”

고급 정보에 적힌 글귀를 확인한 대성은 잠깐 침묵했다.

그러고는 눈동자만 슬며시 굴려 멜카논을 흘겨보더니 물었다.

“책을 상당히 아꼈나 보군.”

“말도 마세요. 항상 끼고 살았습니다. 아비인 제가 조금만 보여달라고 부탁해도 끝까지 숨기더군요. 하하.”

“아들은 어떻게 됐지?”

“죽었습니다.”

멜카논의 눈가에 음영이 드리웠다.

“얼어붙은 시간이 끝나고 난 뒤에야 전 제 아들의 죽음을 직감했습니다. 곧장 북쪽 서고의 기록물들을 뒤져 하나뿐인 아들을 죽인 원수를 찾으려 했으나…… 아시다시피 제가 그만 기신족에게 된통 당하고야 말았죠.”

“…….”

“당신이 떠나고 나면 저는 일단 제 아들의 복수부터 할 겁니다. 제가 얼어붙은 시간에 갇힌 사이에 누가 감히 내 아들을 죽였는지, 모조리 밝혀낼 겁니다. 가서 세상에서 제일 끔찍한 방법으로 죽여버릴 겁니다.”

반로환동 덕에 젊어졌다던 멜카논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목에 핏대가 마구 솟구치고 피가 연거푸 흐를 만큼 입술을 잘근잘근 물어뜯었다.

“…….”

대성은 고개를 아래로 내려 아카식 레코드에 적힌 고급 정보의 글귀를 다시금 읽어보았다.

[고급 정보]

「권능 집합체, <더 북>의 창시자 ‘라미쉬’는 ‘멜카논’의 친아들이다.」

「대현자 멜카논은 아들을 살해한 자에게 살심(殺心)을 품고 그를 추적하는 중이다.」

「가까운 시일 안에 멜카논을 죽이지 않으면 사용자에게 직접적인 큰 피해가 발생할 예정.」

라미쉬.

2차 대격변 이전, 혼세에 군림해 지구를 위협하였던 남자의 이름.

그리고 대성의 손에 죽임당했던 남자의 이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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