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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돌아온 한대성-144화 (144/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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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었다.

대현자의 좌(座)에 올라선 뒤로 눈물을 흘린 건 처음이었다.

친아들, 라미쉬가 객지에서 죽었다는 걸 깨달았을 땐 울지 않았다.

눈물은 아들의 복수를 마치고 난 뒤에 흘리기로 했으니까.

분명 그렇게 다짐했을진대, 막상 아들의 목숨을 앗아간 이를 보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피눈물이 끊임없이 눈가를 타고 흘렀다.

“그놈… 그놈이……!”

화가 났고, 수치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자신은 아들을 죽인 원수에게 구해진 꼴이 아닌가?

아들을 죽인 원수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고 병신처럼 실실 웃었던 게 아닌가?

아들을 죽인 원수에게 아카식 레코드를 주고 ‘만상의 샘’까지 앞장을 선 것이 아닌가?

그놈 손아귀에 놀아난 것이다.

뼈를 씹어도 모자랄 놈이 앞에 있었는데도 좋다고 미소 지었다.

놈이 속으로 얼마나 비웃었을까.

그걸 생각하니 오장육부가 뒤틀렸다. 구역질과 피눈물이 멈추지를 않았다. 너무 화가 나고 분했던 나머지 멜카논은 울고 또 울었다.

“…….”

언제까지 울고 있을 수만은 없다.

멜카논은 방금 칼에 맞아 뻥 뚫린 가슴팍을 내려다보았다.

즉사는 피했으나, 얼른 치료하지 않으면 치명적인 상처.

하지만 그는 그걸 주술로 회복하지도, 추스르지도 않고 덤덤히 발걸음을 옮겨 혈(血)을 벗어났다.

“대, 대현자시여!”

“그 상처는 어찌 된……!”

“헉! 서, 설마 그 인간 놈이 한 짓입니까?!”

중상을 입고 모습을 드러낸 멜카논을 보고 헥카르족이 경악했다.

충격받아서 어찌할 줄을 모르는 그들을 둘러보며 멜카논이 말했다.

“나를 좀 도와다오.”

“아, 아아! 예, 옛! 조금만 기다리세요! 금방 치료제를-.”

“말이 조금 헛나왔구나. 나를 좀 이해해다오.”

“네? 무엇을- 흐이이익?!”

직후 헥카르족이 비명을 질렀다.

쫘아악-.

갑자기 멜카논이 가슴팍에 길쭉이 찢어진 상처를 양손으로 잡고 넓게 벌렸기 때문이다.

“나와 하나가 되면…… 너희는 나의 슬픔과 분노에 공감할 것이다.”

그 순간.

멜카논의 가슴팍 안쪽에 무수한 검은 손이 우후죽순 튀어나왔다.

느닷없이 돌출한 손은 유계를 떠도는 영체를 하나둘씩 붙잡더니 멜카논의 흉부 안쪽으로 끌고 갔다.

“으아아악-!?”

“대, 대현자시여! 왜 이러십니까!”

“이, 이거 놔! 놓으라고-!!”

낚싯바늘에 꿰인 생선처럼 영체들이 버둥거렸으나 소용없었다.

그들은 비명만 지를 뿐, 속절없이 멜카논의 몸속으로 흡수되었다.

흡혼술(吸魂術).

대현자 멜카논이 손수 개발한 금단의 주술이었다.

오직 육신이 죽기 직전까지 너덜너덜해져야만 사용할 수 있는 주술.

그렇지 않으면 정순한 영혼을 오롯이 흡수할 수 없었다.

꿀렁-. 꿀렁-.

영체가 멜카논의 체내로 빨려 들어갈 때마다 그의 몸이 요동치며 비대해져 갔다.

외관 또한 괴상망측하게 돌변했다.

말끔한 청년의 모습이 썩어 문드러진 미라처럼 변했다.

거대한 살가죽 곳곳에 썩은 손이 진물을 흩뿌리며 돌출했다.

급기야 꼭대기 부분에 머리로 보이는 부위까지 꿈틀대며 튀어나왔다.

“끼에에엑-.”

생물의 얼굴이라기보단, 거대한 종양이 입을 벌리는 듯한 모습.

괴기하게 생긴 괴물이 이루 셀 수 없이 많은 손을 땅바닥에 짚으며 바퀴벌레처럼 빠르게 기어갔다.

현계로 이어진 문을 향해.

“끼에에엑-.”

괴물이 울부짖었다.

많은 자아가 뒤엉켰으나, 그중 하나의 감정만이 유독 활활 타올랐다.

바로 복수심이었다.

***

[‘타락한 대현자 멜카논’이 출몰했습니다!]

[제한시간 안에 해치우지 못할 시, 유계와 현계가 뒤섞여 대혼돈이 초래될 것입니다!]

[남은 시간: 59분 59초.]

촤르륵-!!

제한시간을 확인하기 무섭게 대성은 만병지왕을 창으로 만들었다.

“끼에엑-!”

하늘의 구덩이 너머로 흉측하게 생긴 괴물이 괴성을 터뜨렸다.

아들을 죽인 원수에게 보내는 격노의 감정이 저릿하게 대성의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꺼져.”

팡-!

대성의 손을 떠나간 장창이 구덩이 속 멜카논을 향해 총탄과 같은 속도로 빠르게 날아갔다.

녀석의 쩍 벌린 아가리 속으로 이중으로 꼬인 창날이 쑤셔 박히기 직전.

콰득-!

놈이 아가리를 도로 닫아 창대를 엉망진창으로 부러뜨렸다.

허망하게 부러져버린 창을 보고 대성이 실망감을 느끼려던 찰나였다.

콰-앙!

“끼에에엑-!!”

부러진 것으로 보였던 창날이 돌연 굉음과 함께 폭발했다.

아가리 속에 폭탄이 터진 멜카논의 머리가 체액을 흩뿌리며 터졌다.

스르륵-.

폭발한 장창의 잔해가 저절로 대성의 손에 다시 모여들더니 온전한 모습으로 복구되었다.

“쓸만하군.”

처음 쥐었을 때 예감했듯이, 만병지왕이 만든 창은 단순히 찌르고 휘두르는 것 이상의 용도를 지녔다.

업화대검은 잠깐 넣어두고, 좀 더 만병지왕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시험해보고픈 욕구가 끓어올랐다.

하지만 멜카논은 머리가 터져 죽었으니 시험은 다른 기회에 미뤄둬야 할 터였다.

……잠깐은 그렇게 생각했다.

멜카논의 살덩이가 구덩이를 벗어나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기 전까진.

“……!”

대성은 밀어내듯이 땅을 걷어차, 뒤로 큼직하게 물러섰다.

쿠후웅-!!

방금 그가 있었던 자리에 멜카논의 거체(巨體)가 작렬했다.

자욱하게 퍼지는 흙먼지 너머로 머리가 다시 재생되는 광경이 보였다.

‘머리를 박살 냈는데도?’

둘 중 하나일 터였다.

목숨이 여러 개거나, 아니면 애초부터 머리가 급소가 아니었던가.

상식에서 벗어난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후자 쪽에 힘이 더 실렸다.

‘급소가 어디에 있든 상관없다.’

대성은 깨달았다. 지금은 만병지왕을 시험할 때가 아니란 것을.

제한시간이 걸렸으니만큼 일단은 1초라도 빨리 저 괴물을 쳐 죽이는 편이 이득이었다.

급소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예 저 몸체 전부를 소멸시켜버리면 그만 아닌가?

대성이 구현의 인(印)을 발동해 섬멸룡을 소환하려던 그때.

“끼에에엑-!!” “끄아아악-!!”

날카롭고 음침한 비명은 기묘하게도 살덩이 여기저기에 튀어나온 정체불명의 팔다리에서 흘러나왔다.

불쾌한 소리를 들은 대성이 눈썹을 찡그리기 무섭게 시스템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타락한 대현자 멜카논’이 무력(無力)의 포효를 내지릅니다!]

[비명을 들은 대상이 보유 중인 이능(異能)이 일정 시간 동안 봉인됩니다!]

그 순간.

대성의 탄탄한 육체를 감싸던 흑색 갑옷이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구현의 인 또한 빛을 내지 못하고 단순한 문신으로 전락했다.

“얄팍한 짓거리를…….”

설마 하루에 두 번씩이나 마력이 봉인될 줄은 몰랐다.

다행히 봉인된 건 어디까지나 마력에 한정된 건지, 만병지왕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듯했다.

‘권능도 봉인되었군.’

시험 삼아 <중력>의 권능을 써봤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말인즉슨, 순수 피지컬과 만병지왕만으로 싸워야 하는 셈이었다.

“충분하지.”

만병지왕 정도면 웬만한 소환수와 지옥 아이템의 빈자리를 대체하고도 남았다.

촤르륵-!!

입자로 잘게 쪼개진 만병지왕이 핸드 캐논(Hand-Canon) 크기의 개틀링 건으로 변했다.

총신이 맹렬히 회전하더니 탄환이 폭풍우처럼 휘몰아쳤다.

드르르륵-!!

오리할콘의 마탄(魔彈)이 빗발치며 날아가 괴물의 전신을 휘저었다.

한 발, 한 발이 적중할 때마다 작은 폭발이 일어날 만큼 막강한 파괴력임에도 총신엔 반동 하나 없다.

잘 됐다 싶어서 대성은 아예 녀석의 몸체 주위를 뜀박질로 빙빙 돌며 탄환을 쏟아부었다.

‘구석구석 총알을 박아 넣다 보면 급소에도 피해가 가겠지.’

대성의 눈이 차게 가라앉았다.

‘놈이 가장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부위가 급소다.’

전방위에서 총알 세례를 얻어맞는 멜카논이 몸을 움츠렸다.

고통을 아예 안 느끼는 건 아닌 듯했으나, 치명적인 데미지가 되어주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분명 탄환이 급소에 닿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번거로운 새끼군.”

대성은 전략을 바꿨다.

탄알보다 더 넓은 면적을 가격할 수 있는 무기로 녀석을 공격해, 급소를 찾아보기로!

촤르륵-!!

한 번 더 갈라진 만병지왕이 이번엔 3m가 훌쩍 넘는 길이의 워 해머(War-Hammer)로 변하였다.

“끼에에엑-!!”

위기감을 느낀 멜카논이 괴성을 지르며 돌진해 왔다.

살덩이에 달린 무수한 손발이 대성을 찍어누르려던 것과 동시에.

대성의 두꺼운 양팔에 힘줄이 한가득 솟구치면서 워 해머가 녀석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꽈아앙-!!

벼락이 땅거죽을 뒤엎는 듯한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 짧은 한 방에 멜카논의 몸이 저만치 측면으로 튕겨 날아갔다.

콰과과곽-!!

아스팔트 보행로를 사과 껍질처럼 깎아내며 멜카논이 나뒹굴었다.

볼품없이 나가떨어지는 놈의 몸체를 지켜보던 대성이 눈에 형형한 이채를 발하였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똑똑히 보았다.

놈의 동체 아래쪽, 사족보행 짐승으로 비유하자면 ‘복부’ 부분에 무언가 박혀 있었음을.

‘멜카논.’

그가 어미 뱃속의 태아처럼 둥글게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근본 없는 살덩이에서 제일 이질적으로 생긴 부분!

틀림없이 그게 급소이리라.

‘어쩐지 아무리 몸을 헤집어도 치명타가 들어가지 않더라니…….’

급소가 바닥을 향하고 있던 탓에, 전후좌우만 노렸던 공격이 전혀 먹히지 않은 것이다.

쿵, 쿵 쿵-!

완전히 몸을 일으킨 살덩이가 포악한 기세로 쇄도했다.

‘놈이 배를 보이게 만들어야 해.’

가서 손으로 직접 몸체를 움켜잡아 거꾸로 뒤집을까?

아니다. 께름칙하다.

생리적인 문제를 떠나서 저 살덩이에 튀어나온 팔다리를 건드리면 위험한 일이 일어날 거라고 본능이 경고를 보내왔다.

‘되도록 내 손이 닿지 않는 방식으로 놈을 뒤집어야 한다.’

그러나 마력이 봉인 당해 소환수도 불러오지 못하는 마당에 어떻게 그것을 실현한단 말인가.

멜카논이 대성의 지척까지 들이닥친 순간.

“아.”

번뜩이는 사고가 번개처럼 대성의 머릿속을 스쳤다.

중급 정보!

아카식 레코드에 따르면 분명 서쪽으로 30km 떨어진 곳에 타이탄과 드래곤이 대치 중이라 했다.

‘소환수가 없으면, 소환수처럼 부릴 놈을 만들면 된다.’

탁-!

결심을 마친 대성이 망설이지 않고 뒤돌아 달음박질쳤다.

서쪽으로 달려나가는 그의 뒤를 멜카논이 폭주 트럭처럼 추격했다.

빠르게 질주하던 대성은 문득 제한시간을 확인했다.

[남은 시간: 56분 41초]

56분 안에 30km를 주파한 뒤 작전을 실행해 멜카논을 죽인다?

충분하다. 충분하고도 남았다.

***

“머저리 같은 드래곤! 여긴 내가 먼저 먹잇감들을 사로잡고 점령해둔 땅이다! 행패 그만 부리고 썩 꺼지지 못해!”

“너야말로 꺼져라! 미련한 타이탄! 네놈 같은 돌대가리한테는 과분한 땅덩이다! 네까짓 놈이 지배해봤자 금방 몰락하고 말걸!”

초등학생 같은 유치한 대화였으나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광경은 웅장하고도 흉흉하기 그지없었다.

쾅-! 쾅-!

크기가 거의 중형 건물에 버금가는 타이탄과 드래곤이 치열한 난투전(亂鬪戰)을 벌이고 있었다.

거대한 주먹과 발톱이 상대방에게 오갈 때마다 지축이 뒤흔들리고 일대의 건축물이 무너져 내렸다.

“어, 어떡하지? 여기 계속 있다간 우리가 먼저 휘말려서 죽겠어…….”

“이, 이 틈에 도망칠까?”

“저 난장판을 뚫고 도망친다고? 그게 자살행위지 뭐야.”

그리고 러시아의 남부 도시, 우수리스크의 거주민들이 꼼짝없이 발이 묶인 채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들은 갑작스레 출몰한 타이탄의 협박에 못 이겨 포로가 되었다.

용기 있게 나선 인근의 사냥꾼들은 전부 타이탄의 몽둥이에 얻어맞고 불귀의 객이 되었다.

이젠 다 끝났다 싶었는데 설상가상으로 드래곤까지 난입한 게 아닌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이 이보다 더 적절할 수가 없다.

“얼굴에 브레스를 뒤집어쓰고 싶지 않으면 이쯤에서 물- 꺽?!”

그때, 타이탄을 깔아뭉개어 이제 막 우세를 점하였던 드래곤이 단말마를 토했다.

난데없이 어딘가에서 창이 날아와 녀석의 관자놀이를 관통한 것이다.

퍼-엉!

창이 폭발하자 드래곤의 머리가 터졌다.

“어푸!”

피에 젖은 살점과 뇌수가 안면 위로 쏟아지자 타이탄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젠장, 갑자기 뭐야?”

고개를 흔들어 찌꺼기를 털어낸 타이탄은 방금 창이 날아왔던 방향을 돌아보았다.

거기엔 웬 하얀 머리 인간이 쏜살같이 달려오고 있었다.

고작 인간 따위의 도움을 빌린 건 부끄러운 일이었으나, 그래도 녀석은 입가를 끌어올리며 씩 웃었다.

“호오. 드래곤을 한 방에 죽이다니, 비범한 인간이로군. 혹시 내 편이 되려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얀 머리 인간이 벼락처럼 펄쩍 뛰어올라 타이탄의 목덜미에 안착했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어안이 벙벙해지기도 잠시.

콱-!

“크아아아악-!!”

길쭉한 장검 한 자루가 타이탄의 목덜미를 꿰뚫었다.

절묘하게도 칼자루는 동맥(動脈)을 찌르기 직전에 우뚝 멈췄다.

타이탄이 눈에 핏대를 세운 채 팔을 휘저으며 물었다.

“너, 넌 뭐야……?!”

목덜미에 앉은 인간, 대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타이탄이 등으로 팔을 가져가며 마구 몸부림치던 중, 저편에서 빠르게 내달려오는 멜카논을 발견하곤 비명을 질렀다.

“저건 또 뭐야?!”

“잘 들어. 네가 나를 위해 좀 해줘야 할 게 있다.”

“끄, 끄윽…. 뭐, 뭐라……?!”

“저기 달려오는 저놈 보이지. 네가 저놈을 거꾸로 뒤집어라.”

“놈-! 내가 미쳤다고 네 말을 따를 것 같…… 허억?!”

이때 대성이 칼자루를 안쪽으로 슬며시 밀어 넣었다.

날붙이의 끄트머리가 동맥을 건드리려다 말았다.

“지금 느꼈겠지. 여기서 내가 조금만 더 팔을 움직이면 넌 즉사한다.”

“끄, 끄으윽……!”

“하라는 대로만 하면 놔주마.”

머리가 별로 좋지 않은 타이탄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설령 신뢰하지 못한다 한들 선택의 여지 따위는 없었다.

“끼에에엑-!!”

곧이어 코앞까지 다가온 멜카논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질겁한 타이탄이 막무가내로 주먹을 휘둘러 녀석을 가격했다.

쾅-!

치이익-.

“끼에에엑-!!”

“끄아아아악-!! 이런 망할-!!”

그러자 산(酸)에 닿은 것처럼 타이탄의 주먹이 썩어들어갔다.

그걸 본 대성은 역시 자신이 직접 건드리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며 뿌듯함을 느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의 일격 덕에 멜카논이 배를 보인 자세로 우스꽝스레 뒤집혔다.

“하, 하라는 대로 했다! 인제 그만 나를 놔줘라!”

“물론이지.”

콰직-!

목덜미를 깊숙이 파고든 장검이 동맥을 관통하고 지나갔다.

피거품을 문 타이탄은 단말마도 없이 조용히 절명했다.

탁!

대성은 허물어지는 타이탄의 거구를 타고 아래로 뛰어내렸다.

화아악-.

복부에 웅크린 멜카논의 ‘진짜 본체’와 빠르게 거리가 좁혀지고,

대성은 한 번 더 힘차게 장검을 내뻗었다.

푸욱-!!

***

흉측한 살덩이가 조각조각 나뉘어 폭사했다.

깃털처럼 흩날리는 살점 사이로 삐쩍 마른 미라가 바닥을 엉금엉금 기었다.

“…….”

대성은 단번에 깨달았다.

저 미라가 멜카논이란 사실을.

탁-.

천천히 접근해 온 멜카논이 앙상한 손으로 대성의 발목을 붙잡았다.

“끄…. 끄어…. 끄…….”

“내가 원망스럽겠지.”

“끄…. 끄…….”

“근데 나도 어쩔 수 없었다.”

무감정한 목소리였다.

“네 아들을 죽이지 않으면, 내 주변에 있는 이들이 죽었을 테니까.”

“끄…. 끄으…. 끄어어…….”

해골처럼 거뭇하게 파인 멜카논의 눈두덩에서 눈물이 흘러넘쳤다.

대성은 모르겠지만, 사실 멜카논은 지금 슬퍼서 울고 있었다.

이 모든 게, 그냥 슬퍼서 울었다.

“나는 상황이 이 지경까지 오게 만든 놈을 찾아서 죽일 거다.”

대성은 고개를 들었다.

진눈깨비가 사납게 휘몰아쳐서 잿빛 하늘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다시 멜카논을 내려다보았다.

“꼭, 죽일 거다.”

파각-!

대성이 멜카논의 머리를 짓밟았다.

소복이 쌓인 하얀 눈밭 위로, 붉은 발자국이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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