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
146
“빌어먹을 하얀 악마!”
활화산 같은 진노(瞋怒)가 성역에 펼쳐진 꽃밭을 뒤흔들었다.
‘계약의 정령’의 허무한 죽음. ‘화신 삼기’ 작업의 실패. 그리고 하얀 악마의 조롱까지. 이 모든 것들이 아도니스를 격분케 한 것이다.
상황은 아도니스뿐만 아니라, 모든 사도가 정령의 시야를 빌려 지켜보고 있었다.
최초의 사도, 아르마간이 뒷짐을 지며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진정해라.”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그놈이 하는 말 들었어요? 뭐? 우리 아가리를 창자로 틀어막겠다고? 능멸도 이런 능멸이 없습니다!”
“아직 기회는 남아있다.”
“네, 두 번밖에 없는 기회였지만요. 당신들이야 남일로 보이겠지만 계약의 정령을 한 마리 잃은 전 피눈물이 흐를 지경입니다!”
사도들은 스스로 지구에 강림하지 못하는 대신, 인류를 자신들의 화신으로 삼아 하얀 악마를 격멸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다른 차원의 존재를 화신으로 삼는 건 그들로서도 처음인 행위.
그렇기에 우선은 시범 타자로 아도니스가 계약의 정령을 보내봤으나…… 결과는 보다시피.
사도라 할지라도 계약의 정령은 두 마리밖에 두지 못한다. 즉, 화신을 만들 수 있는 횟수도 두 번을 넘기는 건 불가능한 셈이다.
제7사도, 라그마온이 분노한 아도니스의 심기를 자극하지 않도록 조심스레 물었다.
“……시범의 의미가 있었습니까? 계약자로 삼은 인간이 화신이 되기도 전에 정령이 죽어버렸어요.”
“젠장, 내 말이! 하다못해 화신의 전력을 대강 확인할 수만 있었어도 이렇게 억울하지는 않았어!”
첫술에 배부를 순 없다고, 고작 한 명의 화신이 하얀 악마를 성공적으로 처단하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시험은 어디까지나 시험. 사도의 힘을 양도받은 화신이 과연 어디까지 저력을 낼 수 있을지 확인만 했어도 충분한 수확일 터였다.
그런데 설마 화신이 되기도 채 전에 계약의 정령을 죽여버릴 줄은.
아르마간의 미간에 선명하고도 깊은 주름이 새겨졌다.
‘그놈은 대체 어디서 아크 리치 같은 존재를 끌어온 거지?’
단순히 싸움만 잘하는 놈이 아니었다. 하얀 악마, 그놈은 주변에 마(魔)를 끌어들이는 재능이 있다.
그리고 그 마성이 이곳까지 닿는 날이, 천상이 멸망하는 날이리라.
이미 화신을 둔다는 행위 자체가 강수(强手)였으나, 그보다 더 극단적인 방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리 판단한 아르마간이 몸을 돌려 어딘가를 향하기 시작했다.
라그마온이 물었다.
“아르마간, 어디 가십니까?”
“신성 창고로 간다.”
“거기는 갑자기 어찌……?”
“궁니르(Gungnir)를 꺼낼 것이다.”
그 순간, 아르마간을 제외한 모든 사도가 소스라치며 경악했다.
예상한 반응이었기에 아르마간은 아도니스를 차분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태양을 꿰뚫는 창이라면 그 하얀 악마도 쉽게 당해내지 못하겠지.”
“그래서 궁니르를 일개 화신에게 쥐여주겠다, 이 말씀 아닙니까? 그건 후원이 아니라 우리 살을 깎아내는 경솔한 짓이에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하얀 악마는 쉽게 쓰러지지 않아.”
“네, 그렇겠죠! 하지만 실패할 경우를 생각하세요! 그러다 놈의 손에 궁니르까지 들어가면 그땐 어떻게 수습하시려고 그럽니까?”
“어차피 사도 수준의 신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면 궁니르는 손에 쥐지도 못해. 그때는 어떻게든 도로 회수하면 그만이다.”
“하, 하얀 악마가 만약에 신력을 지녔으면요? 그놈, 세상이 회귀했는데도 기억이 멀쩡했습니다. 그건 녀석이 신력을 지니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요?”
“그럴 리가 있나. 우리가 모르는 다른 변수가 개입한 거겠지. 하지만 뜬금없이 놈이 신력을 가지고 있을 확률은 절대로 없다.”
차원수의 시련을 통과하고 주신의 은총을 받은 뒤, 신성한 의식을 열흘 동안 치러야만 마침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신력이다.
천사도 아닌 존재가 신력을 지녔다는 건 길을 걷다 갑자기 하늘에서 다이아몬드가 폭우처럼 쏟아지는 경우보다 황당한 사태일 터였다.
“나는 가장 뛰어난 화신에게 궁그닐을 후원할 것이다.”
아르마간은 간이고 쓸개가 전부 빼주는 한이 있더라도 대성을 죽이고자 결심했다.
***
[인과가 수정되었습니다.]
[허락받지 않은 시공간에 체류한 존재를 해당 차원에서 추방합니다.]
[인과의 틀을 바로잡으신 절대자께는 보상이 제공됩니다.]
[보상을 받으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콘스탄틴을 치료하고 발걸음을 옮기던 도중 돌연 메시지가 나타났다.
‘그러고 보니 멜카논은 헥카르 차원의 수장 격인 자였지.’
차원이 융합된 뒤로 시스템은 ‘위업’이라는 퀘스트를 활성화했다.
그리고 위업의 달성 조건은 해당 차원의 우두머리를 처치하는 것.
엄밀히 말해, 멜카논과 싸우는 건 예기치 못한 일이었기에 이런 게 있다는 걸 잠시 간과하고 있었다.
“받겠다.”
보상이라면 이미 아크 리치를 소환수로 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래도 대성은 마다하지 않았다.
[보상, ‘흑성의 룬석’이 지급되었습니다.]
[보상 정보]
이름 : 흑성(黑星)의 룬석
분류 : 스킬
‘헥카르의 대현자, 멜카논이 창시한 금단의 주술이 담긴 룬석.’
‘룬석에 피를 한 방울 떨어뜨리면 주술이 발동된다.’
‘사용자의 머리 위로 검은 별을 소환한다. 별빛이 비치는 반경에 존재하는 아군은 전투력이 급증하고, 적군은 전투력이 급감한다.’
‘하나 10분 이상 흑성이 떠오르면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않고 별빛을 쬔 모든 존재가 이성을 잃는다.’
대성의 손 위로 흑요석 같은 검은 돌멩이가 나타났다.
흑성의 룬석.
요컨대 아군에겐 버프를, 적에겐 디버프를 주는 결계를 일정 영역 내에 펼치게 하는 스킬인 듯했다.
“흑성의 룬석이군요. 10분 이상 별빛을 받은 존재는 이성을 잃으나, 언데드에겐 통용되지 않습니다.”
대성의 손에 쥔 룬석을 보더니 옆에 있던 아크 리치가 그리 말했다.
룬석의 창시자인 그가 시스템에는 표기되지 않은 숨겨진 사항까지 알려준 것이다.
대성이 치하(致賀)의 의미에서 아크 리치의 어깨를 두드리려던 찰나, 도로 손을 거뒀다.
‘이런 식으로 생명을 포식하는 모양이군.’
아크 리치의 어깨에 있는 목각인형, 생명 포식자를 발견한 것이다.
녀석은 거머리처럼 아크 리치의 어깨에 들러붙은 채 정기(精氣)를 흡수하는 중이었다.
[‘생명 포식자’가 차원을 지배하는 자의 생명을 섭취 중입니다.]
[포식 완료 시, <차원: 헥카르>의 ‘근원’과 이어진 길이 개방됩니다.]
[포식 완료까지 앞으로 48시간 남았습니다.]
다 좋은데 마지막 글귀가 대성의 눈매를 매섭게 했다.
포식 완료까지 이틀이라니. 무슨 식사 시간이 그리도 길단 말인가.
하지만 생명 포식자는 대성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축 늘어진 채 그저 정기만 흡수할 따름이었다.
“크게 불편한 건 아니지만 간지럽군요. 어떻게 할 순 없는 겁니까?”
“없다. 이틀만 참아라.”
아크 리치는 멋쩍게 뺨을 긁적이며 생명 포식자를 흘겨보았다.
마치 피를 빠는 모기를 눈앞에 두고도 방관할 수밖에 없다는 듯한 눈빛을 하며.
***
“감사합니다! 하마터면 출산 예정인 자식도 못 보고 죽을 뻔했어요!”
“엉엉! 엄마 우리 집에 갈 수 있는 거야?”
“할머니… 할머니 저희 살았어요. 저분 덕에 살았다고요……!”
타이탄과 드래곤의 싸움에 휘말렸던 우수리스크의 시민들이 기쁨에 겨워하며 대성을 영웅으로 반겼다.
하지만 환희도 잠시.
이계(異界)로 돌변한 러시아의 길거리를 바라본 그들은 안색을 어둡게 물들였다.
집이 사라졌다. 익숙했던 거리가 파괴되었다. 소중했던 고향이, 이제는 인외마경(人外魔境)이 되었다.
프렉쳐 사태만 진압되면 대피소에서 유유히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가던 시절과는 달라진 것이다.
‘어차피 여기에 계속 있다가는 가까운 날에 몰살당할 뿐이다.’
하물며 도시를 수호할 사냥꾼마저 씨가 말렸으니 할 말 다 했다.
이들이 그나마 높은 생존 확률로 안착할 장소는 혈류석과 가디언이 있는 뉴멕시코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러시아에서 거기까지 민족 대이동을 하는 건 현실적이지 못한 이야기일 테고…….’
2차 대격변이 벌어지기 전날, 혈류석의 대규모 공급책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정부의 발표가 있기는 하였으나, 그것도 먼 훗날의 얘기일 터.
애당초 그건 대성이 자필로 적어 보낸 성명문엔 없는 내용이었다. 정부와 협회가 언론의 힘을 빌려, 민중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멋대로 떠들었을 뿐.
대성은 턱을 매만지며 옆에 있던 아크 리치에게 물었다.
“이들을 내가 원하는 지역까지 순간이동 시킬 수 있는 주술은 없나?”
“전이의 포석(鋪石)을 소환하는 주술이 있기는 하나, 술사인 저밖에 이용하지 못합니다.”
아크 리치라 한들, 이 많은 사람을 단번에 어딘가로 보내는 기교를 부리는 건 불가능하다는 말이었다.
어찌 되었건 이들을 내버려 두는 것도 뒷맛이 개운하지 못하다.
그러나 별다른 수가 없다면 깔끔하게 포기하고 제 갈 길을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니.’
이때, 떠나자는 결정에 마음이 기울던 그가 불현듯 뭔가를 떠올렸다.
워프 게이트의 설계도!
그러고 보니 ‘발아의 탑’을 빠져나왔을 때 시스템이 그런 보상을 주었던 적이 있었다.
이것이 어쩌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생각하자, 시스템이 눈치 빠르게도 글귀를 띄웠다.
[‘워프 게이트 설계도’를 소환합니다.]
[제작에 필요한 오리할콘을 소모하시면 설계도에 나온 기계 장치를 건설하실 수 있습니다.]
[‘워프 게이트’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오리할콘은 1기당 총 5000개입니다.]
[오리할콘(x5000)을 소모하여 ‘워프 게이트(x1)’를 건설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설계도라 하여 부품을 구하거나 지식 따위를 수반할 필요는 없었다.
아이템 재료만 준비되면 결과물이 뚝딱 튀어나오는 게임 시스템의 최고 장점이 아닐 수가 없다.
대성은 ‘예’를 선택하였다.
파지직-!
그러자 지척에 전류를 띤 푸른 소용돌이가 생성되었고, 이내 한 번 더 글귀가 떠올랐다.
[‘워프 게이트’를 건설 중입니다. 완성까지 약 5분이 소요됩니다.]
[완성된 워프 게이트는 특정 건축물과 조합하거나, 생명체를 다른 지점으로 전송시키는 텔레포테이션의 용도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역시.
기대했던 대로 워프 게이트는 교토 시민을 뉴멕시코까지 이주시키게 하였던 텔레포테이션의 대체재로 써먹을 수 있었다.
‘완성까지 약 5분이라.’
그 정도 기다릴 인내심은 있다.
남은 5분 동안, 대성은 고향을 잃고 오도 가도 못 하며 방황하는 저들에게 나아갈 길을 제시해주기로 했다.
***
“너희들의 지배자가 자리를 비웠단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봐봐! 소문이 진짜였어! 기회는 지금뿐이야!”
“우리들의 땅을 돌려줘라!”
변방으로 추방되었던 란도족의 몇몇 무리가 뉴멕시코로 쳐들어 왔다.
대성이 현재 공석이라는 소문이 퍼지기 무섭게 영지 탈환의 기회를 노린 것이다.
심지어 일전에 반발하러 왔다가 아인프리트의 검에 명을 달리했던 무리보다 곱절은 더 많은 머릿수다.
플로마리아의 왕성에서 잠시간 평화의 나날을 보냈던 인류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분을 느꼈다.
콱-!
이때 인류를 대표하여 전면에 나선 이가 한 명 있었다.
바로, 뉴멕시코의 가디언이 된 아인프리트였다.
그가 마검 힐드를 지면에 견고히 박으며 기백(幾百)의 란도족과 대치했다.
“내가 여길, 버티고 있는, 한 너희 뜻대로 되지는 않을, 거다.”
살기 어린 아인프리트의 선포에 침략자 무리가 어깨를 벌벌 떨었다.
하지만 압도적인 수적 우세는 곧 그들에게 없던 용기마저 심어줬다.
“동요하지 마! 뭘 무서워해! 저놈은 이제 우리가 알던 그 아인프리트가 아니야!”
“적은 한 명이다! 밀어붙여! 어차피 우린 피를 볼 각오로 여기까지 온 거다!”
아인프리트와 란도족이 격돌했다.
마검 힐드가 검광(劍光)을 흩뿌릴 때마다 피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피바람에는 아인프리트의 것도 섞여 있었다.
수백의 무리가 단 한 명만을 집요하게 노리니 당연하다.
애초부터 그들은 아인프리트 하나만 죽일 작정으로 찾아온 듯했다.
“부, 분위기가 좀 이상한데? 저러다 저놈이 먼저 죽는 거 아냐?”
조금씩 지쳐가는 기색이 아인프리트에게서 흘러나오자 사람들은 불안함을 느꼈다.
곧 그들은 주먹을 꾹 쥐었다.
사실 머릿수라면 이쪽이 훨씬 많다. 다만 나서지 않기에, 어쩔 수 없이 아인프리트 혼자 분투할 뿐.
언제까지 무기력하게 방관만 하고, 당하고만 있을 것인가.
“젠장,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싸웁시다! 이제 우리에겐 그럴 만한 힘이 생기지 않았습니까!”
패기롭게 목소리를 드높인 자는 어느 젊은 서양인 청년이었다.
파지직-!
청년의 손에 전류가 휘몰아쳤다. 혈류석을 먹고 깨우친 ‘라이트닝 볼트(Lightning Bolt)’라는 마법이다.
그는 이미 마법의 운용을 수차례 연습한 상태였는지, 능숙한 손길로 전격을 쏟아냈다.
“끄아아악-!”
“저놈들이 왜 우리들의 힘을 쓰는 거야!”
“피해! 서로 뭉쳐 있으면 벼락에 휩쓸리고 말 거야!”
인류가 느닷없이 마법을 부리는 건 란도족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계획엔 없던 변수가 발생하자 란도족의 진영이 조금씩 붕괴했다.
아인프리트와 청년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서로 합세하여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어, 어이…….”
“우, 우리도 할 수 있어. 저것 봐. 쟤들 쪽도 못 쓰잖아.”
“여기 빨간 돌 먹고 초능력 배운 사람들은 나가서 맞서 싸웁시다!”
청년의 용기는 등불이 되어 인류의 마음을 환하게 밝혔다.
곧이어 각양각색의 마법이 난무하며 전장이 펼쳐졌다.
혈류석을 먹고 힘을 얻은 자들은 필사즉생(必死卽生)의 각오로 저항하고, 맞서고, 그리고 나아갔다.
엔베트 로젠을 무릎 꿇렸던 대성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때아닌 인류와 란도족의 전쟁은 자정이 가까워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행위엔 익숙하지 않은지라 사람들의 얼굴엔 피로가 가득했으나, 그래도 희망의 빛 또한 선명하게 아른거렸다.
“조금만 더 힘내자고. 계속 밀어붙이면 우리가 이길 것 같아.”
“아인프리트였나? 저놈 도움이 커. 생긴 건 좀비같이 생겨선 지휘 실력이 장난 아니야.”
“이 멍청한 외계인들아! 시간 낭비 말고 썩 꺼져!”
전황은 명백히 인류의 승리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진지하게 꼬리를 말고 후퇴해야 하나 란도족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쿵-. 쿵-.
“어어. 뭐야, 이거? 웬 지진?”
“저, 점점 커지는데?”
정체불명의 땅 울림이 발생했다.
처음엔 란도족이 무슨 술수를 부린 건가 싶었으나, 저들 또한 당혹스러워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양측의 어안이 벙벙해지던 그때.
“저, 저길 좀 봐.”
“오, 신이시여…….”
어느 한 명이 머나먼 곳을 손으로 가리키자, 사람들이 탄식했다.
거인!
몸집이 산만 한 거인 무리가 지평선 너머로부터 접근해오고 있었다.
“…….”
인류와 란도족 모두가 그 광경을 바라보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
저 덩치를 보라. 이건 이미 싸우고 말고의 수준을 아득히 초월했다.
개와 고양이가 싸우는데 난데없이 사자가 난입한 꼴이다.
‘힘들, 다.’
그 아인프리트마저 저건 힘들다는 판단을 내릴 정도.
가디언의 직을 부여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수호해야 할 영토가 함락당하게 생겼다.
불행히도 소환수가 된 지 얼마 안 된 아인프리트는 군주인 대성에게 전음을 날리는 법도 잘 몰랐다.
그렇게, 모두가 전쟁의 열기마저 싹 잊고 얼어붙은 그때였다.
팟-.
돌연 하늘에 검은 별이 떠올랐다.
뒤이어, 한 남자의 눈에만 보이는 글귀가 허공을 수놓았다.
[‘흑성의 룬석’이 활성화됩니다.]
[검은 별빛이 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