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옥에서 돌아온 한대성-148화 (148/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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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차원 정보: 아틀라스]

- 대륙의 상위 포식자, ‘타이탄’이 거주 중인 행성.

- 지구의 문명과 비교하면 원시 시대와 가장 비슷하나 서식하는 종족의 지적 수준은 인류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 혼돈의 거신(巨神), ‘헤카톤케일’을 지배자로 두었다.

- 현재 헤카톤케일은 천상과의 전쟁에 패하여 죽음을 맞이한 상태.

- 얼어붙은 시간으로부터 해방된 타이탄들이 지배자를 되살리기 위한 부활제, ‘티타노마키아’를 준비 중.

아틀라스.

높은 격의 근원을 지닌 다섯 개의 차원 명단 중, 분명 그런 이름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어디까지나 어림짐작만 하고 있었으나, 역시 아틀라스는 타이탄이 서식하는 행성이었다.

‘곤란한데.’

시스템을 열어 아틀라스 차원의 정보를 살피던 대성은 혀를 찼다.

차원의 근원과 이어진 길을 열려면 ‘생명 포식자’에게 지배자의 생명을 먹여야만 한다.

하지만,

‘생명 포식자의 먹잇감이 될 지배자가 죽었다니.’

그뿐만이 아니다.

혼돈의 거신, 헤카톤케일.

헤카톤케일이라는 이름 자체는 처음 들으나, 거기에 선행되는 별칭이 몹시 눈에 익었다.

‘라미쉬와 혼세의 세력들이 부활시키려 애썼던 녀석이었지.’

물론, 종국에 가선 대성의 손에 라미쉬는 죽음을 맞이하였고 혼세 또한 멸망했지만.

이로 인해, 혼돈의 거신과의 접점은 영원히 사라진 줄로만 알았건만.

‘언젠간 맞닥뜨리게 될 운명이었다는 거지.’

맞닥뜨리게 될 운명.

그렇다.

헤카톤케일은 현재 사망한 상태임에도, 대성은 녀석과 만나리란 걸 확신하고 있었다.

이유는 한 가지.

‘부활시키게 도와줘야겠군.’

그는 부활제란 걸 준비하는 타이탄들을 도와서, 혼돈의 거신을 되살리기로 이미 마음먹었으니까.

생각해보면 길게 고민할 문제도 아니었고, 다른 선택지가 존재한 것도 아니었으므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반드시 거칠 수밖에 없는 과정이다.’

근원으로 향하는 길을 열려면 아틀라스 차원의 지배자를 사냥하는 수밖에 없다.

사냥감을 죽이기 전에 반드시 충족해야 할 전제 조건이 무엇인가?

그건 바로, 일단 사냥감이 ‘살아있는’ 상태여야 한다는 점이다.

‘죽이려면, 우선 살려야 한다.’

이보다 더 쉽고 간단한 얘기가 또 어디 있겠는가.

***

“와! 이것 좀 봐! 진짜로 손에서 얼음이 나와!”

“나는…… 아무것도 안 나오는데. 실패한 건가? 또 먹을까?”

“두 개 먹으면 죽는다고 하셨잖아.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살아.”

워프 게이트를 타고 뉴멕시코로 넘어온 러시아인들은 대성의 말을 듣고 곧장 혈류석부터 섭취하였다.

그러자 마법을 개화(開華)한 자와 그러지 못한 자가 나뉘었다.

오롯하게 혈류석의 힘을 흡수한 자들은 하루아침에 깨우친 초능력에 신기해하며 들뜬 반응을 보였다.

“…….”

대성은 반쯤 멸망한 세상 속에서도 생기를 잃지 않고 미소를 짓는 저들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아공간에서 아주 작디작은 무언가를 꺼냈다.

씨앗.

사실 대성도 이 씨앗의 정체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아까 선봉에 섰던 타이탄을 죽였을 때, 시스템이 자동으로 씨앗을 획득게 해주더니 이런 글귀를 띄웠다.

[‘지배자의 종자’를 적으로부터 탈환하였습니다.]

[마음에 드는 땅에 종자를 심으면 좋은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좋은 일이 벌어질 거라니. 뉘앙스가 마치 얼른 해보라고 종용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지그시 씨앗을 바라보아도 평소처럼 세부 내용이 적힌 아이템 정보가 떠오르지 않았다.

설마 시스템이 대성을 농락하려고 저런 글귀를 보였을 리는 없으니, 한 번쯤 시도해볼 가치는 있을 터.

‘왕성의 뒤뜰에 심는 게 좋겠지.’

딱히 어디에 심으라는 말은 없었으나, 그래도 최대한 중심지에 가까운 지점에 심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대성은 성채를 반 바퀴 돌아 너른 뒤뜰로 이동해 씨앗을 떨어뜨렸다.

그러자 딱딱한 흙바닥이 스펀지처럼 씨앗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시스템 메시지가 해일처럼 몰려들기 시작했다.

[‘지배자의 종자’를 심었습니다.]

[인근에 종자를 심은 자를 향해 반기를 품은 존재를 찾지 못했습니다. 종자가 성공적으로 스며듭니다.]

[종자를 심은 자는 앞으로 영주(英主)로써 영지에 영향력을 행사하실 수 있습니다.]

[앞으로 영지의 주요한 상황이 실시간으로 영주에게 전달됩니다.]

[현재 영지 내에는 3십만의 인간과 5만의 란도족이 거주 중입니다.]

[‘하급 영지’로 거듭날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영주로 올라섰음을 기념하는 보상으로 <영주의 반지>가 주어집니다.]

[영민의 수가 늘어나고 단합이 수월히 이뤄질수록 영지의 격(格)이 한 단계씩 상승합니다!]

뜻하지 않게 영주가 되었다.

뜬금없이 영주라니.

‘누군가를 거느리고 지배하는 건 소환수면 충분한데…….’

지배하거나 통치하는 건 대성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그렇기에 영지라는 호칭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을 수밖에.

하지만 보아하니 호칭은 어디까지나 호칭일 뿐, 영주가 되었다 하여 구태여 지위에 얽매이거나 발이 묶일 필요는 없는 듯했다.

‘그럼 오히려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해도 좋은 건가.’

해야 하는 일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영주가 되었다고 무언가 더 새로운 일거리가 추가된 것도 아니다.

더 많은 사람을 혈류석이 있는 뉴멕시코 주변에 주둔시킨다. 전부터 해오던 일이다. 달라진 건 없었다.

다만 이제부터는 인류에 헌신하는 그 행위에 적절한 보상이 따르게 되었을 뿐.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시스템의 조언도 아예 틀린 말은 아니리라.

‘<영주의 반지>라…….’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대성의 오른손 중지엔 어느덧 먹빛 반지 하나가 끼워져 있었다.

[아이템 정보]

이름: 영주의 반지

분류: 장신구

‘이제 막 영주로 올라선 자에게 봉헌(奉獻)되는 공물. 반지에 서린 기사단의 영혼이 수호자가 되어 영주의 안전을 지킨다.

특수 스킬 [기사단 소환]: 영주의 부름에 응한 5인의 ‘혼백(魂魄) 기사단’을 30초간 소환합니다.

거창한 보상은 아니어도 성능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하급 영지를 일군 것에 대한 보상이 이 정도이니, 앞으로 발전을 거듭할수록 훨씬 더 좋은 아이템이 보상으로 주어질 것이다.

‘반지의 시험은 나중에.’

이만하면 휴식도 충분할 터.

이제는 아틀라스로 떠날 때였다.

***

통찰안을 개안하여 ‘지도’를 열람해본 결과…….

아틀라스는 동북아시아 북쪽에 자리한 만주(滿洲) 벌판에 있었다.

대성은 섬멸룡을 타고 최대한 높은 고도에서 벌판을 내려다봤다.

‘라미쉬의 기억 속에서 보았던 그대로의 광경이군.’

널찍한 황야 위로 신장이 말 그대로 산에 버금가는 타이탄들이 어슬렁어슬렁 배회하고 있었다.

문명 수준은 지구의 원시 시대와 크게 다를 것 없다는 시스템의 설명대로, 황야 위로는 움막 몇 채 말고는 건축물이랄 게 존재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앞뒤 재지 않고 모조리 뒤엎고 싶지만…….’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렇게 단순무식한 방식을 고수해서는 안 된다.

대성은 최대한 저들의 눈이 닿지 않는 외곽까지 섬멸룡을 몰았다.

이윽고 아무런 인기척도 없는 반(半)사막 지역에 도착했다.

지면으로 착지한 대성은 지체하지 않고 마력을 운용했다.

“나와라.”

‘죽음의 군단’을 부르는 그의 손에 암흑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황야의 돌풍과 뒤섞여 날아오르는 검은 기류가 점점 비대해졌다.

곧이어 대성의 시야로도 전부 담지 못할 만큼 거대한 사령 병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르르르르-!”

눈앞에 나타난 사령 병사는 다름 아닌 타이탄이였다.

아까 뉴멕시코에서 죽였던 무리의 지휘자를 <죽은 자의 기상>으로 되살려낸 것이다.

“그르르르르-!”

“쉿.”

“…….”

언데드가 된 타이탄이 굶주린 야수와 같은 기세로 울부짖자, 대성은 입술에 검지를 갖다 대어 조용히 할 것을 강요했다.

대성은 순식간에 벙어리처럼 조용해진 타이탄, ‘울고릭’의 모습을 응시하며 턱을 매만졌다.

‘어떻게 봐도 이건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모습이군.’

암석 같았던 피부는 흐물흐물 녹아내리고 기세 좋게 전신을 휘감았던 불길은 초롱불처럼 힘이 없다.

물론 <죽은 자의 기상>의 효과를 받아 생전보다 더욱 고강해진 상태겠지만, 좌우지간 겉보기로는 영락없이 언데드다.

‘수월하게 계획을 진행하기 위해선 타이탄인 척 위장해야 한다.’

그의 첫 번째 목적은 일단 혼돈의 거신, 헤카톤케일을 되살리는 것.

그리고 헤카톤케일을 부활시키려면 가장 용맹한 타이탄의 영혼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

‘가장 용맹한 타이탄의 기준은 놈들이 정하지.’

울고릭의 기억을 <귀안>으로 들여다보며 입수한 정보였다.

오롯하게 헤카톤케일을 되살리려면 타이탄인 척 위장하여 놈들 사이로 녹아들 수밖에 없다.

눈앞에 있는 녀석은 그 위장을 위해 입어야 할 코스튬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코스튬이, 이런 좀비 같은 꼬락서니여서야 곤란할 터.

“나와라.”

무언가 마땅한 수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대성은 멜카논을 소환했다.

화르륵-!

구현의 인에서 벗어난 멜카논이 거대한 타이탄을 살피며 감탄했다.

“아주 아름다운 언데드군요!”

“이놈을 언데드처럼 안 보이게 꾸밀 수 있나?”

“외관만 바꾸면 되는 겁니까? 그 정도야 뭐, 간단한 ‘폴리모프 아더(Polymorph other)’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놈의 살았을 적 모습을 재현시켜라.”

“음……. 유감스럽게도 그건 좀 힘듭니다.”

“왜지?”

“잠깐 본 대상을 눈으로 보고 그리지 않고 초상화를 그려내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뭐, 최대한 똑같이 재현해보도록 노력은 해보겠습니다만…….”

“그럼 그렇게 해라.”

언데드처럼 보이지만 않으면 아무래도 상관없으리라.

울고릭과 마주 선 멜카논이 양손을 뻗더니 영창을 외기 시작했다.

뒤이어 세차게 터져 나온 광채가 울고릭을 휘감았다.

팟-!

잠시 후, 다시 드러난 울고릭의 외견은 확실히 달라진 채였다.

녹아내리고 부식되었던 피부가 단단하게 굳고, 초롱불 같았던 불길도 다시금 활활 타올랐다.

‘원래 놈의 모습과는 사소한 부분에서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언데드로 의심받을 우려는 사라졌다고 보면 되겠지.’

이제 이놈 거죽을 내세워 아틀라스로 잠입하기만 하면 된다.

어떻게 작전을 진행할 건지에 대한 생각은 이미 전부 해둔 상태이다.

대성은 바닥 위로 주저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곧 그의 어깨를 타고 보랏빛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사령단장 돌프’의 고유 권능: <죽음의 동반자>가 발동됩니다.]

[절대자의 영혼이 일시적으로 ‘사령: 울고릭’과 동화(同化)합니다!]

대성의 유체(幽體)가 향처럼 피어올라 울고릭의 머릿속으로 스며들기 무섭게 시스템이 떠올랐다.

[<죽음의 동반자>가 성공적으로 발동되었습니다!]

[동화한 대상의 육신을 자유자재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동화 종료까지 남은 시간: 24시간 59분 59초]

대성은 타이탄이 되었다.

하지만 <죽음의 동반자>엔 명확한 단점도 여럿 있었다.

‘내 몸이 무방비상태가 된다.’

울고릭의 심신을 취한 대성이 뒤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는 자신의 원래 몸을 돌아보았다.

양반다리를 한 채 눈을 감은 모습.

동화가 진행되는 동안엔 옆에서 폭탄이 떨어져도 꿈쩍조차 안 하리라.

즉, 누군가 뒤에서 칼이라도 내려치는 순간 곧바로 황천행이다.

‘아이템과 스킬도 못 쓰고…….’

업화대검과 만병지왕, 그리고 권능.

그것들 없이, 오직 울고릭의 육신에만 의존해야 하는 셈이다.

하지만,

‘하면 그만이지.’

할 만했다.

이 정도 제한조건 따위에 고민할 거면 처음부터 <죽음의 동반자>를 쓰지도 않았다.

부족하면 부족한 채로 움직인다. 어떻게 해도 안 되면, 어떻게든 되게 만든다. 이것이 그의 지론이니까.

대성은 자신의 본체 옆에 우두커니 선 멜카논에게 당부를 건넸다.

“내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내 몸을 네가 지켜주고 있어야 한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제 목숨보다도 군주님의 존체를 더 우선시하겠습니다.”

“믿으마.”

마지막 말을 남긴 뒤, 대성은 육중한 한 발짝을 내디뎠다.

쿵-!

만주벌판이 가볍게 울린 그때였다.

퍼버벙-!!

대성의 발걸음이 자아낸 굉음과는 비교도 안 되는 무시무시한 폭음이 저 멀리서 울려 퍼졌다.

무심코 멈춰선 대성이 가늘게 눈을 좁혀, 폭연(爆煙)이 피어오르는 방향을 노려보았다.

“저건…….”

텅 빈 허공에 게이트 같은 구멍이 우후죽순 뚫리더니, 그 너머로 거대한 독수리 떼가 마구 튀어나왔다.

조금 더 시각을 집중했다. 독수리들의 등에 로브와 갑옷 등을 입은 인영이 탑승해 있는 것을 보았다.

쉴 새 없이 폭음을 터뜨리는 마법 폭격의 세례는 저들이 그러쥔 병구(兵具)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느닷없는 침공을 받은 타이탄들이 포효를 내지르며 공중의 적들과 맞서기 시작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울고릭, 아니, 대성의 입꼬리가 슬며시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결정을 내렸다.

‘활약할 기회군.’

특별히 저 불쌍한 타이탄들의 편이 되어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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