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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돌아온 한대성-149화 (149/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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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아악-!”

거대 독수리의 우렁찬 포효가 하늘을 흉흉하게 뒤흔들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마른하늘엔 시퍼런 낙뢰(落雷)가 휘몰아쳤다.

“젠장, 이 죽일 놈의 엘프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다짜고짜 우리들의 영역에 쳐들어와?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군!”

“날파리 같은 것들!”

예기치 않은 침공을 받은 타이탄들이 격분하며 허겁지겁 맞섰다.

어떤 타이탄의 말대로 정말 날파리처럼 창공을 휘젓는 거대 독수리의 등엔 은색 갑옷을 입은 엘프가 탑승한 채였다.

그들은 활시위에 걸린 화살을 쉼 없이 퍼부으며 서서히 타이탄들을 압박해갔다.

쐐애액-! 파지직-!

엘프들이 쏘아낸 화살촉은 전류에 휩싸이더니 대기를 찢어발기며 타이탄의 급소로 날아들었다.

얼핏 벼락으로 보였던 전격 세례는 사실 특수한 마법으로 가공 처리된 화살이었다.

“꺼져라! 썩 저리 꺼지지 못해! 이 날파리 놈들아!”

거대한 몸집 곳곳에 벼락의 화살이 꽂힌 타이탄들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욕지거리를 터뜨렸다.

아무리 잘 단련된 격투기 선수도 벌떼 앞에선 손 쓸 도리가 없듯, 지금의 타이탄들도 마찬가지였다.

적정 거리를 계속 유지하며 사방팔방에서 벼락의 화살을 쏟아내는 엘프들은 대단히 까다로운 상대였다.

“몽둥이로는 소용없다! 바위라도 던져라! 투석(投石)으로 저 날파리를 떨어뜨리는 거다!”

산양처럼 굽은 뿔이 머리 위로 솟은 타이탄이 그리 외쳤다.

그는 이 동쪽 벌판을 담당하는 대장, ‘반소르’라는 자였다.

반소르의 명을 들은 타이탄들이 지척에 세워진 암석이나 말라빠진 나무들을 뽑아 허공으로 내던졌다.

하지만 거대 독수리들은 깃털과도 같은 움직임으로 날아오는 것들을 가뿐하게 회피했다.

“이 지독한 것들이!”

반소르는 짜증이 솟구치는 한편 조급함을 느꼈다.

위대한 혼돈의 거신을 되살리는 부활제, ‘티타노마키아’가 머지않았다.

그리고 그 영광스러운 축제의 주역은 다름 아닌 자신이 될 터였다.

하지만 부활제를 얼마 앞두지 않은 시기에 이런 날벼락이 떨어질 줄은!

만일 여기서 패배했다간 ‘대리자’께서 대단히 실망하시리라.

그렇게 되면 주역이 될 기회는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궁지에 몰린 반소르가 핏발 선 눈을 부릅뜨며 분투하던 그때였다.

콰-직!

살과 뼈가 짓뭉개지는 소리와 함께 거대 독수리 몇 마리가 추락했다.

무시무시한 기세로 휘둘러진 몽둥이가 날파리 떼를 후려친 것이다.

처음으로 타이탄의 발악이 성공적으로 먹혀든 순간이기도 했다.

“카아악-!”

“맙소사! 키리에!”

“소르토! 아, 안 돼!”

처참하기 짝이 없는 아군의 죽음을 본 엘프들이 경악성을 내질렀다.

너덜너덜해진 거대 독수리와 엘프들이 속절없이 지상으로 떨어졌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콰-직! 콰-직! 콰-직!

연신 이어지는 어떤 타이탄의 무두질이 공중의 엘프들을 유린했다.

당황한 엘프들이 독수리를 몰아 맹공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무두질은 마치 인력(引力)처럼, 도망치는 독수리와 엘프의 뒤꽁무니를 정확히 가격했다.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엘프들을 격멸하는 타이탄은 같은 동족들조차 처음 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누구지? 북쪽 구역의 동포는 아닌 것 같다만…….’

활약상을 펼치는 정체불명의 타이탄을 바라보며 반소르가 의문을 표했다.

정체불명의 타이탄은 전신에 벼락의 화살이 꽂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싸워나갔다.

몸을 사리지 않는 그 맹위에, 주변의 다른 타이탄들이 전율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체불명의 타이탄- 대성은 작금에 닥친 전투에만 모든 신경을 집중하였다.

‘이미 죽은 몸이라서 그런지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군.’

그는 처음으로 사령 병사의 입장이 되어 싸워보는 중이었다.

그리고 통각이 없는 몸으로 싸워본다는 건, 굉장히 각별한 경험이었다.

‘이러니까 사령 병사들의 움직임에 거침이 없을 수밖에.’

고통을 느끼지 않으니 망설일 이유 또한 없었다.

전신에 벼락이 마구 꽂히긴 하였으나, 그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시야를 어지럽게 만드는 날파리 떼를 때려잡는 것에만 집중했다.

‘<죽은 자의 기상>으로 되살아난 존재는 살았을 적의 육체보다 훨씬 더 강력해진다.’

아마 저 타이탄들은 모를 것이다.

사실 이 벌판에서 제일 강력한 전사는, 바로 대성이라는 사실을.

하드웨어는 더할 나위 없다.

남은 건, 빙의한 육체에 과연 얼마나 빠르게 적응하냐의 여부지만…… 이 또한 방금 막 해결한 참이다.

‘태생부터가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힘을 지닌 종족이다. 그릇이 뛰어나니 적응하는 것도 간단하군’

물론 처음엔 걸음걸이도 어색하고 여러 애로 사항이 따랐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적응을 마칠 수 있었다.

‘내 본신(本身)과 분리된 몸이라 하여도, 의식은 어디까지나 결국 나의 것.’

즉, 전투와 관련된 전반적인 감각은 몸이 바뀌어도 여전한 셈이다.

뛰어난 육체와 뛰어난 감각!

물 만난 물고기라는 표현은 이럴 때 빗대라고 있는 것이리라.

“물러나…… 빨리 물러나라고!”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마! 전황이 갑자기 불리하게 돌아간다!”

대성의 맹위는 엘프들에게 공포 그 자체로 군림했다.

분위기가 반전되자 엘프들의 겁에 질린 기색이 역력해졌다.

돌변한 전장의 흐름을 놓치지 않은 대성이 다른 타이탄을 향해 말했다.

“날아드는 파리들을 돌멩이로 맞춰 떨어뜨리는 건 무의미한 행동이다. 그럴 시간에 한 번이라도 더 몽둥이를 휘둘러라. 그러는 편이 더 빨리 우리가 우세를 점하는 방법이다.”

처음 보는 동포의 조언을 들은 타이탄들이 잠시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곧 그 말에 신빙성을 느끼고는 손에 든 바위를 내려놓고 다시 몽둥이를 쥐기 시작했다.

“…….”

그 광경을 지켜보던 반소르의 눈가가 매섭게 휘어졌다.

이곳 북쪽 구역의 대장은 자신이다. 그런데 웬 놈이 지휘자 노릇을 하니 심기가 불편해진 것이다.

반소르가 조용히 대성의 곁에 다가와 살벌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명령을 내리고 이끄는 건 나의 역할이다. 공로는 인정하겠지만 너무 기어오르지 않는 편이 좋다고 충고해주지.”

“…….”

대성은 조용히 반소르를 응시했다.

타이탄들 사이엔 서열의 차이는 있어도, 상급자에게 반드시 존댓말을 사용해야 한다는 규율은 없었다.

필수적으로 말을 높여야 할 대상은 저들이 ‘대리자’라고 부르는 타이탄뿐이다.

이 또한 울고릭의 기억을 통해 확인한 아틀라스의 상식.

그렇기에 대성은 서슴없이 짧은 말로 반박을 내밀 수 있었다.

“누가 지휘하던 이 싸움에서 패배하면 그쪽 입지가 불리해질 텐데?”

“뭐, 뭐라고?”

“지금은 사소한 걸 따질 때가 아니다. 뭐, 내 말이 불편했으면 따르지 않아도 상관없다. 피해를 감당하고 책임지는 건 그쪽 몫이니까.”

“…….”

대성과는 달리, 반소르는 반박할 말을 떠올리지 못했다.

한 치의 허점도 파고들 여지가 없는 완벽한 비수였다.

결국, 반소르는 어깨만 부들부들 떨며 한 발짝 물러서야만 했다.

대성은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이든 상관치 않고 묵묵히 싸워나갔다.

다른 타이탄들 또한 대성의 활약에 피가 들끓는 걸 느끼며 투지를 한껏 불태웠다.

“이 날파리 놈들! 아까는 잘도 덤볐겠다!”

“한 마리도 살려서 돌려보내지 않겠다! 다진 고기로 만들어주지!”

그들은 당한 건 무조건 백배 이상으로 갚아주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성미를 지녔다.

주도권을 완벽히 되찾은 타이탄들이 잔인한 광소(狂笑)를 터뜨리며 엘프 군단을 밀어붙였다.

“큭! 퇴각하라!”

이때, 지휘관으로 보이는 엘프 여전사가 결단을 내렸다.

물이 오른 타이탄을 상대해봤자 피해만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곧, 꼬리를 내린 엘프 군단이 여전사의 명령을 반기며 허공에 열린 구멍 속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텔레포트와 비슷한 모종의 전이 마법인 걸까.

아예 공간을 접으며 사라지는 엘프들을 추적할 방법은 없었다.

“우와아아아-!!”

하지만 역전의 짜릿함에 취한 타이탄들은 개의치 않고 승리의 함성을 내질렀다.

몽둥이를 하늘 높이 쳐들며, 기쁨과 전율을 만끽했다.

이 완승의 주역은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타이탄이였다. 이견의 여지 따위는 없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활약이 대단하더군! 이름이 뭐지?”

“네놈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감동했다!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고!”

주인공 곁은 북적북적해지는 법.

수많은 타이탄이 대성의 주변에 몰려들며 그를 열렬히 반겼다.

“빌어먹을…….”

반면, 유일하게 분위기에 녹아들지 못하는 자가 한 명 있었다.

반소르.

형용키 어려운 위기감을 느낀 그가 주먹을 꾹 쥐었다.

***

반소르는 머지않아 위기감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티타노마키아에 입후보하고 싶다고?”

“어.”

갑자기 튀어나온 정체불명의 타이탄이 부활제에 참여하고 싶다며 면전에 대고 선포한 것이다.

맹랑한 발언을 들은 반소르가 “하!” 소리를 내며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고는 섬뜩한 어조로 물었다.

“왜지?”

“위대하신 혼돈의 거신을 되살리는 축제에 이 한 몸 바치겠다는데, 따로 이유가 필요하나?”

“질문이 늦었군. 네놈, 지금 당장 출신이랑 이름을 밝혀라.”

“남쪽 출신. 이름은 레이.”

폴리모프 탓인지 반소르는 눈앞에 있는 타이탄의 정체가 울고릭이란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차라리 저들이 모르는 얼굴로 행동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대성은 급하게 위조한 거짓 신분을 밝혔다.

짤막한 자기소개를 들은 반소르가 지그시 눈을 감으며 주억였다.

“레이……. 그래, 레이. 혹시 남쪽 지방은 다른 지역보다 분위기가 많이 자유분방 한가?”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군.”

“내 말은, 명성도 뭣도 없는 하룻강아지가 다짜고짜 다른 지역에 기웃거리면서 건방을 떨어도 될 만큼 자유롭냐는 뜻이었다. 남쪽에 있는 그놈, ‘로이먼’은 네놈이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걸 알고 있나?”

“얼어붙은 시간이 끝나고 어째선지 나만 외지에서 눈을 떴다. 우연하게도 제일 가까운 곳이 여기 동쪽 벌판이더군. 그래서 왔을 뿐이다.”

“눈 꼿꼿이 뜨지 마라. 눈알을 뽑아 노예들 먹이로 줘버리기 전에.”

한기 어린 살기가 벌판을 할퀴고 지나갔다. 반소르의 눈에 불티가 솟구치자 타이탄들이 몸을 떨었다.

그는 이 동쪽 벌판의 패권을 쥔 독보적인 존재.

이렇듯, 아틀라스의 동서남북엔 그처럼 암묵적인 인정을 받은 지도자가 하나씩 있었다.

‘혼돈의 거신’과 ‘대리자’ 밑으론 거기서 거기인 아틀라스의 사회 속에서, 동포들의 인정을 받고 우뚝 설 방법은 단 하나.

바로 잔혹한 성정과 무력이다.

작은 산맥을 깎아 만든 옥좌에 당당히 궁둥이를 붙인 반소르가 그 좋은 예시라 할 수 있겠다.

“내가 영 마음에 안 든다는 눈치인데. 설마 아까 내가 했던 말을 아직도 마음에 두고 있는 건가? 덩치는 커다란데 속은 좁쌀보다 작군.”

하지만 대성이 알 바는 아니다.

그가 뱉은 패기 어린 발언에 다른 타이탄들이 헛숨을 크게 삼켰다.

꼭 폭발하기 직전의 다이너마이트를 발견한 것처럼 말이다.

“…….”

말문을 잃은 반소르가 조용히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그리고…….

쿠후웅-!

산맥보다도 커다란 몽둥이를 대지에 내리찍으며 옥좌에서 일어섰다.

“티타노마키아에 입후보하고 싶다고 그랬나? 아쉽지만 지역당 오직 한 명의 타이탄만이 그 권리를 쟁취할 수 있다.”

“그럼 내가 지금 여기서 널 쓰러뜨리면 되는 건가?”

“이제야 네놈과 제대로 된 대화가 되는 것 같군.”

반소르가 몇 발짝을 앞으로 옮겨 대성의 코앞까지 다가섰다.

이마가 맞닿을 정도로 거리를 좁혀온 그가 이빨을 빠득거리며 말했다.

“골통을 깨부숴주마, 시건방진 남쪽 촌놈 새끼.”

***

쿠후웅-!

한 번 더, 대지가 진동했다.

“…….”

이건.

믿을 수가 없다.

자존심을 건 대결이 시작된 지 몇 시간…… 아니, 몇 분쯤 지났을까.

10분? 15분?

바닥에 볼품없이 머리를 처박으며 쓰러진 쪽은 반소르였다.

둥글게 포진하여 둘을 에워싼 타이탄들이 침묵에 휩싸였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커다란 경악에 사로잡힌 탓에, 이제는 헛숨조차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끄, 끄흐윽…….”

“번지르르하게 입만 산 놈이었군.”

온몸 구석구석 무두질 당한 반소르가 움찔움찔 경련했다.

대성이 그러쥔 몽둥이에서 시뻘건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 이럴 수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타이탄들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피와 광기의 혈투였다.

한쪽이 압도적으로 밀어붙인 싸움은 아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비등비등한 접전이었다.

대성 또한 적지 않은 횟수로 반소르의 공격을 허용했다. 크고 작은 상처를 여러 번 몸에 새겼다.

그런데.

그는 아무리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도, 나직한 신음조차 내지 않았다.

뚜드려 맞으면 뚜드려 맞는 대로 몽둥이를 휘둘러 반격한 것이다.

보는 쪽이 무심코 눈을 질끈 감을 정도로 맹렬한 일격을 맞아도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았다.

뭐랄까. 애당초 ‘고통’이란 걸 못 느끼는 듯한 모습 같다고 할까…….

도중엔 반소르조차 기가 질려 뒷걸음질을 칠 정도니 말은 다 했다.

그 시점에서 승패는 이미 판가름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주, 죽여라…….”

무거운 정적 속에서, 넝마가 되어 쓰러진 반소르가 힘겹게 목소리를 쥐어 짜냈다.

“모,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이, 이따위 치욕을 받고도… 살아남고 싶지는 않으니…. 차라리 죽여라……!”

“마음에 드는 대답이군. 반소르라고 했나? 내일 아침까지는 네놈 이름을 기억해주지.”

대성의 몽둥이가 하늘로 치솟았다.

그걸 본 타이탄들이 반사적으로 눈을 감거나 고개를 홱 돌렸다.

콰직-!

일말의 망설임 없이 떨어진 몽둥이가 반소르의 상처투성이 얼굴을 아예 곤죽으로 만들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한 타이탄들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대성은 승리의 여운조차 느끼지 않는 듯한 무심한 얼굴로 선언했다.

“이제부턴 내가 동쪽 지방의 패권을 쥐겠다.”

당연히.

토를 다는 자들은 없었다.

다만 모두가 속으로 조용히 받아들일 뿐이다.

미친놈.

아틀라스에 미친놈이 나타났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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