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옥에서 돌아온 한대성-159화 (159/180)

#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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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어둠이 대지를 뒤덮었다.

햇빛을 쏘아내는 태양조차 땅에 드리운 칠흑만큼은 거두지 못했다.

섬뜩한 침묵만이, 종말이 드리운 세계를 관통하고 지나갈 뿐.

[……이것이 내가 원한 거다. 오직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고독.]

불에 타서 거뭇거뭇해진 시체가 길가의 쓰레기처럼 굴러다녔다.

무엇이 타이탄의 시체이고, 무엇이 어인의 시체인지 특정할 수 없다.

[그러나 너희의 죽음은 내게 만족스러운 고독을 주었을지언정, 갈증은 채워주지 못했구나.]

헤카톤케일은 세상의 끝까지 펼쳐진 시체의 길을 유유히 걸었다.

목이 마른 것도 아니건만, 애가 탈 만큼 격한 갈증이 샘솟았다.

파괴를 향한 욕구.

혼돈을 향한 욕망.

[더 필요하다, 더.]

다시 지상에 강림한 혼돈의 거신은 이전의 삶을 떠올렸다.

모든 것들이 생생히 기억난다.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과 싸우다 죽었으며, 어떠한 죽음을 맞게 되었는지. 전부.

천상의 대군들.

자신은 놈들의 공습에 당하여 원통하게도 죽음을 맞이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그들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이 조금도 들지 않는다.

놈들의 낯짝을 생각하면 이가 갈리고 치를 떨어야 정상이건만, 마음은 순풍을 맞는 것처럼 고요하였다.

[더, 더, 더.]

정신이 나간 것처럼 오직 그 말만 반복하는 헤카톤케일의 마음속을 잠식한 욕망은 딱 하나.

바로 파괴다.

눈에 보이는 모든 걸 닥치는 대로 죽이고, 부수고, 으스러뜨리지 않으면 온몸이 말라붙을 것 같았다.

생명체의 본능을 넘어선, 초월적인 미지의 감각이 그를 사로잡았다.

[더-!]

우득-!

헤카톤케일이 소리를 내지른 순간, 금이 간 유리알처럼 대기에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윽고…… 와장창-!

공간이 사정없이 깨져나가며 그 너머로 어둠의 소용돌이가 드러났다.

[…….]

얼른 들어오라는 듯 활짝 열린 소용돌이 안쪽으로, 헤카톤케일이 머리를 들이밀었다.

곧이어 균열 속 어둠이 그의 커다란 신체를 전부 집어삼켰다.

재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쿡-.”

범람하는 홍수처럼 입에서 검붉은 핏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지막한 기침을 토해내며, 대성은 잠깐 날아갔었던 의식을 되찾았다.

발라르크의 갑옷은 산산조각 깨어졌고 등 뒤로 펼쳐진 용의 날개는 이가 잔뜩 나가 너덜거렸다.

부서진 갑옷 너머로 엉망진창이 된 육체가 선연하게 드러났다.

‘이 정도면 뭐…… 지옥의 마신(魔神)보다 조금 더 센 수준인가?’

<카오스>가 섬광을 번뜩인 순간 그야말로 천지가 소멸했다.

지옥의 마신도 이렇게 순식간에 땅과 하늘을 뒤엎지는 못했다.

업화대검의 불길로 방어막을 견고히 두른 덕에 죽지는 않았지만…….

“……거의 죽을 뻔했군.”

미리 낌새를 눈치채고 대비하지 않았더라면 먼지가 되었으리라.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과다 출혈로 목숨에 지장이 생길지도 모른다.

대성은 이런 순간에도 용케 혼자만 멀쩡한 모습을 유지 중인 업화대검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성화’ 모드의 첫 번째 특수 스킬이 발동됩니다.]

[특수 스킬 : <치유>]

[업화대검이 ‘근원의 파편’을 장착했습니다. 모든 특수 스킬이 한 단계 진화합니다.]

[<치유> → <수복(修復)>]

칼날에 따사로운 온기를 품은 초록색 불꽃이 피어올랐다.

이윽고 불꽃이 그의 몸을 감싼 순간, 끔찍하게 새겨진 상처들이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수복.

그 말대로, 새로이 진화한 ‘성화’의 특수 스킬은 상처뿐만 아니라 부서진 갑옷까지 멀쩡히 재생시켰다.

마치 시간을 되돌린 것처럼.

‘시간.’

생각해보니 자신에겐 ‘시간석’이 있지 않았던가.

<카오스>가 섬광을 방출하기 전, 시간석으로 시간의 흐름을 늦췄으면 무슨 수가 생겼을지도 모르는데.

정체 절명의 순간에만 아껴서 사용하자고 다짐했으면서 왜 시간석의 존재를 망각하고 있었을까.

멍청했다.

‘다음에 만날 때는 잊지 말고 꼭 써주마. 망할 거인 새끼.’

확실히 깨달았다.

정공법으로 헤카톤케일에게 맞서는 건 상당한 모험이란 사실을.

만약 다음에 만날 때도 아까 같은 한방을 사용해 온다면 답이 없다.

지옥의 마신도 그토록 무식한 공격을 해오지는 않았다.

“후우…….”

악다구니에 찬 대성은 상처를 회복하자마자 헤카톤케일을 찾았다.

비척비척 죽음의 세계를 걸으며 놈의 발자취를 추적했다.

그러나 아무리 걸어 나가도 보이는 건 죽은 거인과 어인뿐이었다.

특히 타이탄의 경우, 온통 잿더미가 되어 누가 누군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아마 저 시체 더미 사이에 사방위의 강자들도 섞여 있겠지.

기세등등하게 거성을 압박하였던 베히모스도, 지금은 그냥 통구이가 된 생선 꼴이나 다름없었다.

이 참혹한 광경은 대체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 걸까?

어젯밤 멜카논을 다시 소환계로 돌려보낸 건 올바른 선택이었다. 안 그랬으면 녀석도 꼼짝없이 이 파괴의 현장에 휘말렸을 테니.

“이 빌어먹을 새끼.”

헤카톤케일이 남기고 간 흔적을 둘러보던 대성은 오랜만에 진심으로 분노를 느꼈다.

누군가 자신을 이렇게 만신창이로 만들고 홀라당 튀어버린 경우는 좀처럼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옥 끝까지 따라가 주겠다 다짐하며 핏발을 세운 그의 눈에 곧 무언가가 포착되었다.

“이건…….”

일그러진 공간 안쪽에서 어둠의 소용돌이가 휘돌고 있었다.

언뜻 보기엔 게이트와 흡사한 생김새지만, 과연 함부로 발을 들여도 될지는 미지수였다.

어쩌면 헤카톤케일이 저것을 타고 다른 곳으로 전이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이 스치던 그때.

[판데모니움의 마수들이 헤카톤케일이 소용돌이를 타고 이동하는 걸 똑똑히 목격했다며 보고해 옵니다!]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가 가정이 정답이었음을 알려줬다.

“좋은 정보 고맙다.”

물론 저 소용돌이 포탈이 무조건 안전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악이 차오를 대로 찬 대성은 그따위 사소한 위험성은 가뿐히 무시해버리곤 몸을 날렸다.

***

2차 대격변이 벌어져 차원이 융합되었다 하여도, 그나마 비교적 멀쩡한 지역이 하나 있었다.

바로 과거에 ‘헌터 연맹’ 본부가 자리했던 뉴욕이었다.

달리 말해, 세계 각국의 명망 높은 사냥꾼이 가장 많이 포진한 지역이기도 했다.

“이제야 좀 주변이 깨끗해진 느낌이 드는군요.”

“아주 벅찬 싸움이었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지구가 요지경이 돼서야 겨우 감정의 골을 잊고 힘을 합치다니. 세상사란 게 참 참 얄궂기도 하지.”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대형 클랜들의 단장들이 비지땀을 닦으며 서로의 공(功)을 칭찬했다.

협력 체계를 구축한 각국의 클랜들은 뉴욕에 등장한 이종족 군단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뒀다.

그다지 격(格)이 높은 차원은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차 대격변은 유례없는 대혼돈을 낳음과 동시에, 평소였다면 절대 없었을 화합을 실현하였다.

심지어 거의 원수 관계나 다를 바 없었던 <올림피아>, <둠>, <미드나이트> 클랜마저 서로 손을 잡을 정도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세상엔 아직 희망의 불씨가 남아 있다는 증거겠지요.”

그렇게 말한 남자는 세계 최강의 클랜이라 일컬어지는 <밀레니엄>의 단장, 헨리 글러버였다.

노병(老兵)이라 불리는 그는 성성하게 돋아난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동양의 구세주. 그가 버팀목이 되어주기에 사람들도 필사적으로 이성을 붙잡는 겁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었다.

만약 동양의 구세주, 대성이 없었더라면 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해졌다.

그러나 구세주가 함께 싸워준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겐 이루 말할 수 없이 커다란 희망이 되어줬다.

예전 같으면 이해타산만 따졌을 클랜들이 희망 아래 단합하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동양의 구세주가 함께하는 한.

이 비극 또한 언젠간 지나가리라.

문득 그런 감상을 느끼며, 헨리를 비롯한 수많은 사냥꾼이 여명이 떠오르는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어둠이 걷히고 새로운 하루가 밝았음을 상징하는 희망의 빛이 그들의 가슴을 벅차오르게 했다.

쿠구구-.

갑자기 허공이 찢어지며 거대한 균열이 나타나기 전까진 말이다.

“…….”

클랜 동맹이 일제히 침묵했다.

허공에 열린 균열은 여명의 빛을 지워내고 하늘을 다시 오염시켰다.

균열의 존재를 눈에 담긴 무섭게, 사냥꾼들은 뭔지 모를 섬뜩함을 느꼈다.

“헤, 헨리?”

“네, 네?”

“저, 저게 뭘까요.”

“……그걸 저한테 물으셔도?”

균열 밖으로 불길한 기류가 미친 듯이 쏟아졌다.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다.

진짜로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털을 곤두서게 만드는 흉악한 에너지가 저 균열을 통해 방출되고 있었다.

무언가가, 아주 거대하고 강력한 무언가가 곧 저 균열을 타고 나타날 거라는 사실이 사냥꾼들의 직감을 타고 전해져 온다.

뒤이어.

쿵-!

“헉……?!”

지축이 격렬하게 뒤흔들렸다. 사냥꾼들이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시야가 요동치던 그 순간.

사냥꾼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주 마음에 드는 장소군. 부술 맛이 나겠어.]

고개를 아무리 들어도 허리 부근까지밖에 볼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거인이, 균열을 뚫고 등장했다.

헤카톤케일, 그가 소용돌이를 타고 뉴욕으로 전이한 것이다.

동시에, 헨리가 목청이 찢어지도록 고함을 질렀다.

“피해-!”

쿠후웅-!

무슨 특별한 행동을 취한 것도 아니다. 그냥, 헤카톤케일이 발걸음을 1보 앞으로 옮겼을 뿐이다.

단지 그것뿐인데, 도심지 한복판에 원폭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맹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의 발바닥이 지반과 맞닿은 순간 먼지 폭풍이 휘몰아쳤다.

“으아아아아-!!”

사냥꾼들이 일생일대의 오러를 발동하여 잽싸게 반경을 벗어났다.

그러나 다리가 느린 자들은 짓밟히는 개미처럼 압사(壓死)당했다.

“뭐, 무, 무슨……!”

방금까지만 해도 희망에 가득 찼던 헨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를 비롯하여 현장에 있던 모든 사냥꾼이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저 괴물은.

어떻게 맞서 싸운다 한들 승부란 게 성립되는 존재가 아님을.

해일을 보면 적대감보다는 우선 도망쳐야 한다는 절망감이 떠오르듯.

눈앞의 괴물 또한 마찬가지였다.

신.

항거할 수 없는 존재의 등장은 아름답게 불타던 희망의 빛을 깡그리 꺼뜨렸다.

맥없이 주저앉은 사냥꾼 일동이 감히 일어설 생각도 못 한 채 손바닥으로 땅을 짚으며 뒤로 물러섰다.

[너희는 과연 얼마나 나의 갈증을 채워줄지, 두고 보겠다.]

헤카톤케일이 활짝 펼친 손바닥을 위로 높이 쳐들었다.

혼돈의 검, <카오스>를 소환하기 위한 사전 동작이었다.

물론 사냥꾼들은 그런 게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다만 일거에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 뭔가가 날아오리라는 직감만 번개처럼 번뜩일 뿐.

“신이시여…….”

어떤 신을 향한 건지 모를 혼잣말이, 헨리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크오오오-!

그 순간, 너무나 귀에 익은 포효가 균열 밖으로 터져 나왔다.

암흑 속으로 잠기던 사냥꾼들의 의식이 광명을 찾은 것처럼 밝아졌다.

“동양의 구세주……!”

헨리가 눈물을 글썽이며 무심코 그 이름을 외침과 동시에.

콰직-!

균열을 뚫고 등장한 섬멸룡이 헤카톤케일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

예기치 못한 습격을 받은 헤카톤케일이 눈살을 찌푸리며 비틀거렸다.

그럴 때마다 섬멸룡은 더더욱 포악스럽게 이빨을 깊숙이 박아넣었다.

[미개한 드래곤 따위가 감히 내 앞에서 설쳐대느냐-!]

격분한 헤카톤케일이 목덜미 뒤로 손을 움직여 섬멸룡의 정수리를 움켜쥐었다.

어마어마한 악력이 실린 손아귀에 사로잡힌 섬멸룡이 괴로워했다.

하지만 뇌가 으스러지고 두개골이 파괴될 것만 같은 격통이 일었음에도, 섬멸룡은 떨어지지 않았다.

하나 그 집념도 오래가지 못했다.

헤카톤케일이 목덜미의 살점이 뜯겨나가는 것도 상관치 않고, 억지로 섬멸룡을 떼어낸 것이다.

쿠후웅-!

나가떨어진 섬멸룡이 처절하게 바닥을 뒹굴었다.

섬멸룡의 등에 올라탄 대성에게도 그 여파가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버텨라. 마지막에 이기는 건 결국 우리일 테니까.”

“크륵-. 크르으윽-!”

존경하는 주인의 다독임을 들은 섬멸룡이 즉시 동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는 힘차게 울부짖었다.

“크오오오오오-!!”

[섬멸룡이 드래곤 피어(Dragon fear)를 사용합니다!]

[피어에 휘말린 대상의 모든 능력치가 30% 감소합니다.]

대기를 타고 일파만파 퍼져나간 공포의 기운이 헤카톤케일을 덮쳤다.

피어에 휘말린 그의 기세가 미세하게나마 약해졌으나.

아직 대성의 패는 끝나지 않았다.

[‘흑성의 룬석’이 활성화됩니다.]

[검은 별빛이 내립니다.]

[10분간 스킬의 사용자가 인식한 아군의 전투력은 상승하고 적군의 전투력은 하락합니다.]

검은빛을 내뿜는 별이 뉴욕의 창공에 나타났다.

검은 별에 실린 사이한 기운이 헤카톤케일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잔재주를 부리기는!]

헤카톤케일이 망설임 없이 필살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혼돈의 검, <카오스>.

모든 걸 잿더미로 만드는 거검(巨劍)이 세찬 광채와 함께 그 위용을 드러냈다.

대성이 비릿하게 웃었다.

“드디어 꺼냈군. 기다렸다.”

[죽고 싶어서 환장한 놈!]

<카오스>가 허공에 장엄한 횡선을 그으려던 순간.

번쩍-.

대성은 아까부터 쭉 왼손에 그러쥐고 있던 돌을 한 번 더 굳세게 쥐었다.

지연의 시간석.

빛살을 뿜어낸 돌이 있을 수 없는 기적을 낳았다.

[30초간 시간의 흐름이 느려지는 고유 결계가 개방됩니다.]

[앞으로 4번 더 시간석의 기적을 행사하실 수 있습니다.]

둥-.

고유 결계에 들어온 세상천지가 단숨에 흑백으로 물들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던 <카오스>가 낙하를 멈추고 그 자리에 고정되었다.

‘남은 시간은 30초.’

그 안에 모든 걸 끝내기로 다짐하며, 대성은 두 눈에 이채를 발했다.

화르륵-!

여섯 장으로 구성된 불꽃 거인의 날개가 등 뒤로 펼쳐졌다.

곧이어 잘게 분열된 날개가 수많은 불의 깃털을 발사했다.

무시무시한 고열이 끓어오르는 깃털이 헤카톤케일에게 작렬했다.

곧 검은 구체, 혼돈기가 벌떼처럼 날아와 대성의 몸에 스며들었다.

화륵-.

10초도 안 되어 막대한 혼돈기를 전부 흡수한 ‘대성의’ <카오스>가 태동을 끝마쳤다.

“가짜가 진짜를 이겨낼 순 없는 법이겠지.”

알고 있다.

자신이 얻은 <카오스>와, 헤카톤케일이 휘두르는 <카오스>엔 천양지차의 차이가 존재함을.

그러니, 가짜가 진짜를 압도하도록 거들어줄 또 하나의 힘이 필요하다.

화르륵-!

바로 업화대검.

화마(火魔)를 토해내는 불의 칼이 현세에 구현되었다.

그렇게 그는 오른손엔 업화대검을, 왼손엔 <카오스>를 움켜쥐었다.

“너는 내가 뿌린 씨앗이니 지금 당장 거둬주마.”

후웅-!

파멸의 권능이 서린 두 자루의 대검이 동시에 휘둘러졌다.

빛과 열기가 폭풍처럼 뒤엉키며 헤카톤케일을 향해 솟구쳤다.

----!

순간적인 폭음이 이어졌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헤카톤케일의 목숨을 앗아가진 못했다.

피부가 뜯겨나가고 뼈가 거멓게 불탔으나, 목숨을 잃은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콰창-!

<카오스>가 산산조각이 났다.

물론 ‘진짜’ 쪽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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