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옥에서 돌아온 한대성-160화 (160/180)

# 160

160

30초가 지나고.

우르르-!

박살이 난 <카오스>의 잔해가 소나기처럼 창공에서 쏟아졌다.

파편 하나하나가 가히 대형 트럭 한 대에 버금가는 크기.

졸지에 새우 등 터지게 생긴 클랜 동맹의 사냥꾼들이 경악했다.

“우와아악-! 피, 피해-!”

“아직 힘이 남은 자들은 오러로 실드(Shield)를 펼쳐!”

“빌어먹을! 이러다 여기 있는 사람들 다 깔려 죽겠어!”

죽을 위기에 처한 사냥꾼들이 허겁지겁 오러를 방출하려고 날뛰었다.

그러나 다들 막 큰 싸움을 마치고 난 뒤였기에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오러 실드를 두르는 것보다 잔해가 떨어지는 속도가 훨씬 더 빨랐다.

“아……!”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무심코 손을 놓은 헨리가 탄식을 내뱉던 그때.

쿵-! 쿠르릉-!

사정없이 쏟아지던 파편이 낙하를 멈추고 돌연 있을 수 없는 궤도로 주르륵 미끄러졌다.

그래, 그것은 미끄러졌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광경이다.

도심지 일대에 형성된 거대한 반구(半球)가 하늘에서 떨어지던 잔해를 모조리 막아냈으니까.

“저, 저건…….”

“보, 본 적 있어. 기억나.”

“분명 초대형 게이트가 나타났을 때 생겼던…….”

사냥꾼들은 저 커다란 반구의 정체를 똑똑히 기억하였다.

얼마 전 혼세의 적들이 총공습을 해왔을 당시, 대성이 천상의 상점에서 구매한 뒤 전개하였던 《백색 영지의 수호막》이었으니까.

60억 인구의 생명을 지켜주었던 저것을 감히 어떻게 잊겠는가.

[네놈……!]

한편, 하나뿐인 애검인 <카오스>가 완전히 부서지자 헤카톤케일은 분노를 금치 못했다.

수호막이 전개된 반경 외곽 쪽에 있었던 그가 주먹을 휘둘렀다.

이대로 수호막을 깨부술 심산이다.

그리고 헤카톤케일의 주먹이라면 그것을 능히 실현할 수 있을 터.

“그 전에 내 쪽에서 먼저 가주마.”

대성이 섬멸룡의 등을 한 차례 두드리는 것과 동시에.

후-웅!

거칠게 땅을 박찬 섬멸룡이 드높이 비상(飛上)했다.

수호막을 뚫고 나간 섬멸룡의 동체와 헤카톤케일의 주먹이 서로 빠르게 거리를 좁히는 순간.

위이잉!

섬멸룡의 날갯죽지에 탑재된 플라스마 캐논이 기동을 시작했다.

‘이대로 파괴 광선을 발사하여 저놈을 견제해야겠지만…….’

직감이 스쳤다.

플라즈마 캐논만으론, 대기를 찢어내며 쇄도해 오는 저 거대한 주먹을 튕겨내지 못할 거라는.

화르륵-!

대성은 업화대검이 내재한 ‘근원의 파편’의 힘을 발현시켰다.

[‘업화’ 모드의 두 번째 특수 스킬이 발동됩니다.]

[업화대검이 ‘근원의 파편’을 장착했습니다. 모든 특수 스킬이 한 단계 진화합니다.]

[<염왕의 숨결> → <염왕의 포효)>]

바로 그때.

대성과 섬멸룡의 주변에 있는 허공이 어그러지며 균열이 생겨났다.

게이트가 생성될 때처럼 말이다.

그러나 업화대검이 만들어낸 균열이 쏟아낸 건, 몬스터가 아니라 화염으로 이뤄진 사슬이었다.

여덟 개 전부 섬멸룡을 묶는 것도 가능할 정도로 커다란 사슬들.

콰아-앙!

그것들이, 지금 막 플라즈마 캐논이 발사한 파괴 광선과 함께 어우러져 헤카톤케일을 덮쳤다.

--!!

순간 귀가 먹먹해지는 소음이 울려 퍼지며 아득한 폭발이 발생했다.

만약 《백색 영지의 수호막》이 없었더라면, 저 아래에 있는 뉴욕은 지금쯤 폭발의 여파에 휩쓸려 황무지가 되었으리라.

[큭……!]

꽤 치명타로 먹혀들었는지, 헤카톤케일이 인상을 찡그리며 그 커다란 몸을 주춤거렸다.

이로써 놈이 수호막을 파괴하는 건 막았다.

섬멸룡이 입을 쩍 벌렸다.

이대로 헤카톤케일의 얼굴에 광살포를 먹일 작정이었다.

우우웅-!

가공할 에너지가 산소를 불태우며 섬멸룡의 입으로 모여들었다.

[어딜!]

콱-!

헤카톤케일이 주먹을 휘둘렀을 때보다 빠른 속도로 손을 뻗어 섬멸룡의 얼굴을 난폭하게 움켜잡았다.

입뿐만 아니라 얼굴 전체가 단단한 손아귀에 틀어박힌 섬멸룡이 고통스럽다는 듯 몸부림쳤다.

“크르르으윽-!”

[브레스를 쏘려고? 쏴봐라! 내 오른손 정도는 앗아갈 수 있겠지만 너는 몸 전체가 먼지가 될 테지만!]

이대로 광살포를 쏘게 되면 섬멸룡은 스스로 자폭하게 되는 셈이다.

그렇게 헤카톤케일이 섬멸룡의 얼굴을 잔인하게 터뜨리려던 찰나.

팟-.

[뭐……?!]

단단히 쥐어진 헤카톤케일의 주먹 틈새로 세찬 빛이 새어 나왔다.

그것이 브레스가 발사될 거라는 전조(前兆)임을 눈치챈 헤카톤케일의 눈이 충격으로 번져갔다.

콰-앙!

[크아아아악-!!]

광살포가 작렬하자,

헤카톤케일은 오른손부터 팔뚝 부근까지 갈가리 찢겨나가는 고통을 맛보았다.

“하나같이 틀린 말만 하는군.”

[크으으윽-!]

“이 녀석이 고작 네놈 오른손 하나만 앗아갈 줄 알았나?”

절반이 사라진 오른팔을 부여잡으며 몸서리치는 헤카톤케일의 귀에, 대성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꽂혔다.

“그리고 이놈이 자기가 쏜 브레스에 자기가 죽는 머저리가 아니다. 무시하지 마라.”

[이 미친놈들이!]

광살포에 휩쓸린 대성의 몸에는 온통 그을음이 가득했다.

발라르크의 갑옷도 대부분이 불타고 부서졌다. 상처로 뒤덮인 상체가 훤히 드러났다.

그러나.

섬멸룡의 모습은 대성이 입은 상처가 애교처럼 보일 정도로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한쪽 날개는 통째로 사라졌고, 폭발에 휘말린 몸 곳곳엔 뼈와 살점이 드문드문 보일 지경이었으니까.

“크르으으…….”

섬멸룡이 전신에서 끈적끈적한 핏물을 뚝뚝 흘리며 울음소리를 냈다.

이런 상태에서도 날개를 접지 않고, 추락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뭐라 형용키 어려운, 그야말로 놀라운 의지와 인내심이었다.

슥-.

대성은 빛나는 투지를 보여준 섬멸룡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너는 제 할 일을 다 했다. 이만 소환계로 돌아가서 멜카논에게 치료를 받아라.”

“크르으…….”

“무리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

화륵-.

빈사에 처한 섬멸룡의 동체가 검은 불꽃이 되어 작게 응축되었다.

소환계로 돌아간 것이다.

구현의 인(印) 속에 섬멸룡을 돌려보낸 대성은 곧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의 등 뒤에는 [비행] 스킬이 만들어낸 날개가 이가 다 빠진 채 너덜거리고 있었다.

발라르크의 갑옷이 파괴되었기에, 해당 아이템의 파생 스킬인 [비행] 또한 오래갈 수 없었으므로.

[드래곤을 돌려보낸 건 실수였다. 하찮은 인간이여. 설마 그 작은 몸을 이끌고 내게 덤빌 생각인가?]

“뭘 단단히 착각하고 있군. 무식하게 덩치만 큰 새끼가.”

[뭐라?]

“드래곤 한 마리도 어찌 못해서 오른팔을 잃은 놈이, 나한테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것 같나?”

[생각보다 제법 웃긴 농담을 할 줄 아는 놈이었군.]

[비행]의 지속시간이 끝나고 용의 날개가 사라진 대성이 아래로 추락하려던 순간.

콱-!

헤카톤케일이 멀쩡히 남은 왼손을 뻗어 그를 붙들었다.

엄지와 중지로만.

마치 인간이 아주 작은 날벌레를 붙잡을 때처럼 말이다.

헤카톤케일은 묘한 호기심이 어린 눈을 가느다랗게 좁히며 대성을 응시하였다.

그의 시점에선 이렇게 눈매 사이를 좁히지 않으면 대성의 이목구비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어때. 이렇게 보니 좀 감이 잡히는가?]

“…….”

[나한테 있어서, 네놈은 고작해야 작고 미개한 벌레에 불과하다. 내가 이대로 손가락에 조금만 힘을 줘도, 네놈의 몸은 정수리가 발바닥에 닿을 정도로 처참하게 으스러지겠지.]

“그렇군. 해볼 테면 해보지 그래.”

[지금 그건 네놈의 유언이었다.]

말이 끝남과 함께 헤카톤케일의 중지와 엄지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나.

[……?!]

헤카톤케일이 원했던, 그리고 예상하였던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목에 핏대를 세운 채 이를 악물며 손가락에 힘을 아무리 줘보아도.

손안에 든 날벌레의 몸이 으스러지는 감각이 좀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정수리가 발바닥에 닿을 때까지 처참하게 으스러뜨려준다며?”

머리 위로 올린 양팔은 중지를.

강대한 힘이 실린 하체는 엄지를.

역기를 들어 올리는 듯한 자세를 취한 대성이, 위아래로 닥쳐오는 헤카톤케일의 손가락을 밀어냈다.

그것도 아주 가뿐하게.

“넌 역시 덩치만 큰 얼간이였다.”

[이 개자식이……!]

헤카톤케일도 지지 않겠다는 듯 바닥까지 힘을 긁어모았으나,

화륵-!

[……!]

대성은 잠시 넣어두었던 업화대검을 다시 구현하여 헤카톤케일의 중지에 칼날을 쑤셔 박았다.

작고 가느다란 이쑤시개라 할지라도 손가락 살점에 쑤셔 박히면 어마어마하게 아픈 법.

헤카톤케일이 소스라치며 중지를 꼿꼿이 폈다.

압박에서 벗어난 대성이 어검술로 재빠르게 업화대검을 내던졌다.

쐐애액-! 화르륵-!

파공성을 터뜨리며 광속(光速)으로 날아가는 업화대검이 공기와의 마찰로 인해 불에 휘감겼다.

곧이어…… 콰직-!

[크아아악!]

헤카톤케일의 오른쪽 시야가 온통 붉게 물들었다. 업화대검이 놈의 안구를 거칠게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한쪽 눈을 잃은 헤카톤케일이 다시 비틀거리는 틈에.

촤르륵-! 휙!

대성은 손목에 찬 만병지왕으로 만든 길쭉한 사슬 낫을 놈의 인중에 던져서 박아 넣었다.

그대로 진자 운동을 하는 추처럼 흔들리는 사슬을 따라 힘차게 도약하고.

탁-!

그는 무사히 헤카톤케일의 이빨 위로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

‘속에서 헤집어주마.’

대성은 사슬 낫이 된 만병지왕을 회수한 다음 그것을 너클(Knuckle)로 변환시켰다.

이어서 흉악한 무쇠 주먹이 헤카톤케일의 이빨에 사납게 내려 찍혔다.

투콰-앙!

[이런 빌어먹을 놈!]

대성의 속셈을 깨달은 헤카톤케일이 한쪽 눈을 잃은 아픔도 잠시 잊고 왼손을 입에 가져다 댔다. 그를 이빨에서 떼어내기 위함이다.

그 낌새를 눈치챈 대성이 짤막하게 말했다.

“망혼 해방.”

[판데모니움의 마수들이 절대자의 분투에 한 몫 거듭니다!]

[분개한 마수들이 함성을 지르며 몸을 날립니다!]

햐아아아-!

대성의 후위에 열린 판데모니움의 입구에서 망혼들이 쏟아져 나왔다.

미친 듯한 물량의 망혼이 우수수 튀어나왔고, 그 자줏빛 해일을 구성하는 망혼 한 마리, 한 마리가 온 힘을 쥐어 짜내어 헤카톤케일의 왼손을 밀어냈다.

[이놈들……!]

“잘했다.”

망혼들이 시간을 버는 사이, 대성은 우직하게 너클을 휘둘렀다.

쾅-! 쾅-! 쾅-!

연타가 이어질 때마다 헤카톤케일의 이빨에도 조금씩 선명한 금이 새겨졌다.

‘한 방만 더.’

그리 생각하며, 대성은 너클에 고강한 마력을 응집시킨 뒤 최후의 일격을 가하였다.

콰창-!

그러자 헤카톤케일의 어금니 하나가 통째로 부서졌다.

으깨진 이빨 너머로 무저갱같이 시커먼 목구멍과 징그럽게 꿀렁대는 새빨간 목젖이 보였다.

대성은 서슴없이 몸을 던져 혓바닥을 타고 아래로 떨어졌다.

헤카톤케일의 안구에서 뽑힌 업화대검이 낙하하는 그의 뒤를 따랐다.

꿀꺽!

[……!]

헤카톤케일은.

지금 자신이 삼키면 안 될 것을 삼켰음을 자각했다.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오싹함이 밀려오고 식은땀이 흘러나왔다.

[이 벌레 같은 놈. 설-.]

그 순간.

[허, 억……!]

뱃속이 뜨거워졌다.

아니, 내장이 달궈진다는 표현이 훨씬 더 정확하리라.

급속도로 복통이 밀려오고 안에 화재가 번지는 것처럼 뱃가죽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아, 안 돼……!]

그 말과 함께.

콰아아아아-앙!

헤카톤케일의 배가 터졌다. 아니, 폭발했다.

위장 부근까지 내려갔던 대성이 안쪽에서부터 업화대검으로 <대로> 스킬을 터뜨린 것이다.

살점이 흩날리며 터진 뱃가죽 밖으로 내장이 주르륵 튀어나왔다.

[끄아아아악-!]

뇌가 쥐어뜯기는 듯이 무시무시한 고통을 느낀 헤카톤케일이 괴성을 질렀다.

그는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나오는 내장을 주워 담을 생각도 않은 채, 결국 무릎을 꿇었다.

홍수를 방불케 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핏물이 쏟아졌다.

섬뜩하고도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다음은 정수리를 찢고 뇌를 터뜨려주마, 얼간아.”

혼돈의 거신이고 뭐고 뇌가 터졌는데 살아남는 생물은 없는 법.

이제 끝장을 낼 시간이 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