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옥에서 돌아온 한대성-163화 (163/180)

# 163

163

통째로 산산조각이 난 부유 공장의 잔해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렇지 않아도 대지는 불바다에다 하늘에선 붉은 벼락이 휘몰아치는 마신의 영역이다.

그런 가운데 운석 같은 잔해마저 마구 쏟아지니 실로 세기말을 방불케 하는 광경이 아닐 수가 없다.

“한 놈 갔고…….”

그리고 그 일대 장관의 중심에,

“두 놈 남았군.”

메피스토의 육신과 동화한 대성이 위용 넘치는 모습으로 서 있었다.

빠득-.

파프니르가 식은땀 한 방울을 조용히 흘리며 이를 갈았다.

‘구세대호를 저리도 간단하게 없애버리다니……!’

자신 또한 기신족과 안 싸워본 건 아니다. 아니, 오히려 건방진 고철 덩어리들이라 여겨 틈만 나면 시비를 걸어댔다.

그렇기에 알고 있다.

놈들의 존재와 세계를 구성하는 금속, ‘오리할콘’은 드래곤의 숨결로도 쉽게 파괴하지 못한다는 걸.

그런데 저놈은 뭔가.

딱히 주먹을 휘두르거나 기술을 쓴 것도 아니고, 그저 손에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것만으로 부유 공장 전부를 파괴했다.

‘이건…… 만에 하나 내가 질 경우도 상정해둬야겠어.’

압도적인 승리를 쟁취하는 것 외의 결말은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었던 파프니르다.

그런 그가, ‘패배’를 가정할 정도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나는 빠지마.]

이때, 혼자만 끙끙 앓는 파프니르의 귀에 그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파프니르가 고개를 돌려 옆을 보았다.

해신 사가라.

그녀가 지독한 냉기가 어린 한숨을 나지막하게 뱉으며 말했다.

[내 목적은 어디까지나 헤카톤케일을 죽이는 것이었다. 비록 내가 원하던 방향과는 조금 일이 틀어지긴 했다만…… 그렇다고 너희와 목숨 걸고 싸울 이유는 없어 보이는군.]

[지, 지금 와서 그게 무슨 약한 소리야! 복수할 대상을 가로챘다면서 길길이 날뛰었을 땐 언제고!]

갑작스러운 퇴장 선언을 들은 파프니르가 절박한 어조로 외쳤다.

사가라가 눈썹을 슬며시 끌어올리며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흠……? 왜 네놈이 화를 내는 거지, 파프니르? 내가 여기서 빠지든 말든, 너는 너대로 저놈과 볼일을 보면 그만 아닌가? 아까는 새로운 적수를 찾았다면서 기뻐하더니?]

[그, 그건…….]

생각해보니 자신도 왜 방금 목소리를 높였는지 의문이었다.

사가라가 옆에 있든 없든, 자신은 자신대로 평소의 방식을 고수하면 그만일 텐데.

아니면 혹시,

‘빌어먹을! 나도 모르는 사이 저년과 손을 잡겠다고 생각한 건가?’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용족이 다른 종족과 협력할 생각을 하다니!

그건 달리 말해, 혼자서 저 괴물과 싸울 자신이 없다는 의미가 아닌가?

자존심이 구겨진 파프니르는 어깨를 떨며 목에 핏대를 잔뜩 세웠다.

사가라는 코웃음만 칠 따름이지만.

[뭐, 좋을 대로 해라. 둘이서 피 터지게 싸우든 협의를 보든, 나는 여기서 물러날 테니.]

그녀는 붉은 천둥이 쉴 새 없이 내려치는 하늘을 질린다는 듯이 올려다보더니 물었다.

[여기 어떻게 나가는 거지?]

“나가는 길 따윈 없다.”

[…….]

위로 들려 있던 사가라의 고개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휘둥그레진 그녀의 눈이, 냉철한 안광이 서린 대성의 눈과 부딪쳤다.

“아주 그냥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신이 났군. 누가 너를 여기서 내보내 준다고 했지?”

[네, 네놈……!]

“아, 나가는 길? 생각해보니 딱 하나 있기는 하군.”

메피스토의 여섯 개 팔이 동시에 가운뎃손가락을 들었다.

“뒈지면 여기서 나갈 수 있다.”

[어, 어리석은 짓 하지 마라! 지금 우리끼리 싸워봤자 피차 득 될 게 뭐가 있다고-.]

“왜 없지?”

[뭐……?]

바로 그때, 사가라는 물과 얼음으로 뒤덮인 본신에 소름 같은 것이 돋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있을 수 없는 현상.

하지만 저 괴물의 전신에 솟구치는 어떤 ‘광기’를 마주한 순간, 자신은 틀림없이 오싹함을 느꼈다.

“너희가 지금 여기서 다 죽어버리는 게 나한텐 최고의 이득이다.”

악마의 바다를 다스리는 여제는 깨닫고야 말았다.

진짜 악마는 바다도, 땅도, 하늘도 아닌.

바로 ‘여기’에 있었다고.

화르륵-!

이때 메피스토의 입에서 막대한 불길이 방출되더니, 대성이 화염을 뚫고 나오며 모습을 드러냈다.

마신과의 동화를 해제한 것이다.

‘영역 밖이었다면 메피스토는 형체를 유지하지 못했겠지만…….’

심상 세계 외부는 마력으로 땅과 하늘이 다져지지 않은 지구다.

인간으로 따지면 산소가 없는 세계에 메피스토를 구현하는 꼴.

대성이 육신 내부에 동화하여 마력을 불어넣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마신의 영역 내라면, 굳이 동화를 유지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사방팔방에 정순한 마력이 감도는 이곳이야말로, 메피스토가 날뛰기에 최적의 장소라 할 수 있었다.

적은 두 명.

마침 이쪽도 둘이다.

“나는 파프니르를 맡을 테니-.”

-나는 저 여자를 죽이면 되는 거지? 알았어, 맡겨둬!

메피스토는 재밌는 놀이를 시작하려는 어린아이처럼 신이 났다.

2년 전 처음으로 대면했을 때도 적잖이 놀랬다.

지옥의 마신(魔神)이라는 자리와 안 어울리게, 녀석의 정신 연령은 유아기에 머물렀다는 사실이.

[저 괴물이라면 모를까, 네놈이라면 해볼 만하지!]

대성이 메피스토의 육신과 분리되는 광경을 본 파프니르가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팡-!

파프니르는 등 뒤로 거대한 날개를 활짝 펼친 뒤, 그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력으로 돌진했다.

“나라면 해볼 만하다고?”

대성의 입가가 비틀어졌다.

화륵-.

업화대검을 가볍게 움켜쥐며, 그는 저편에서 쇄도해 오는 파프니르를 향해 조소를 날렸다.

“한때 저놈을 죽인 게 나다.”

***

“거주지도 새로 찾았고, 마법을 배운 것도 좋은데…….”

뉴멕시코의 한 남자가 지평선 먼 곳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인종과 국적을 불문하고 많은 인구가 이곳에 모였다.

동양의 구세주가 공언한 ‘안전지대’인 데다, 먹으면 마법을 각성시켜주는 혈류석이 보급되는 유일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지구상에서 제일 안심할 수 있는 지역이겠지만, 작은 불안감이 사람들의 마음속 한편을 맴돌았다.

“저놈의 망할 게이트는 아직도 사라지질 않으니 원…….”

남자가 못마땅하다는 듯이 혀를 끌끌 찼다.

2차 대격변이 발발한 것과는 별개로, 지구엔 아직 여전히 ‘게이트’가 잔류해 있었다.

오늘날 인류의 처지를 표현하기에 ‘설상가상’보다 더 어울리는 사자성어가 또 있을까?

“막말로 저번 거인들보다 더 위험한 놈들이 게이트에서 튀어나오면 그땐 어떡할 거냐고.”

“어떡하긴 어떡해. 그때가 오면 또 죽을 각오로 싸워야지.”

“미치겠네. 차라리 이쪽에서 먼저 안으로 확 들어가 버릴 수 있다면 좀 나을 텐데, 그것도 아니니…….”

혼세가 멸망한 뒤로, 어째서인지 이전처럼 인류 측에서 먼저 게이트에 입장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인간들은 닭 쫓던 개가 지붕을 쳐다볼 때처럼 가만히 게이트의 잔류를 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 저게 또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떠안은 채 말이다.

“…….”

지금도 똑똑히 보인다.

뉴멕시코 곳곳에 체공해 있는 각양각색의 구체들이.

“안 그래도 신경 쓸 게 한둘이 아닌 데 저런 음침한 걸 계속 봐봤자 마음만 아프지.”

남자는 오늘 하루만 몇 번짼지 모를 한숨을 마지막으로 내쉰 뒤 몸을 돌렸다.

아니, 돌리려고 했다.

쿠구구-.

지면 위에 뜬 게이트들이 돌연히 공진(共振)하기 전까진 말이다.

“어?!”

놀란 건 당연히 남자뿐만이 아니다. 저 갑작스러운 현상을 눈치챈 이들 전부가 하던 일을 멈추고 경악성을 터뜨렸다.

처음 보는 광경은 아니다. 이미 인류는 여러 번, 가만히 있던 게이트가 흔들리는 현상을 봐왔으므로.

게이트의 공진.

그건 바로, 곧 ‘프렉쳐’가 일어날 거라는 전조(前兆)였다.

“게, 게이트가 터진다-!”

“하나도 아니고 동시에?! 저것들 갑자기 왜 저러는 거야?”

“빌어먹을!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싸울 준비해! 조금 있으면 몬스터가 쏟아져 나온다!”

“아인프리트를 불러-!”

사람들이 소스라치며 헐레벌떡 무기를 들거나 마법을 영창했다.

하나라면 모를까, 눈에 보이는 모든 게이트가 동시에 터지는 건 2차 대격변 이전에도 없었던 사태였다.

하나만 해도 수많은 몬스터가 나오는데 지금은 수십 개의 게이트가 한꺼번에 프렉쳐를 일으키다니!

“이, 이거 우리만으로 감당할 수는 있는 문제야……?”

조금 있으면 벌어질 참극을 상상한 사람들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이윽고, 게이트의 흔들림이 극에 달하였다. 덜덜덜- 거리는 굉음이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처럼 커졌다.

하지만.

팟-!

“……?”

눈앞에 벌어진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의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몬스터가 쏟아질 거라는 예상과는 다른 상황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팟-. 팟-. 팟-!

연이어 들려오는, TV나 라디오의 전파가 끊어질 때 날법한 소리.

그 소리와 함께.

눈에 보이는 게이트들이 하나둘씩 점멸하면서 사라지고 있었다.

“저, 저것들 왜 저래……?”

틀림없다. 잘못 본 게 아니다.

바늘에 찔린 풍선이 펑-! 하고 터지듯 게이트들이 소멸했다.

잠시 후.

뉴멕시코의 모든 게이트가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

어안이 벙벙해진 사람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이걸 기뻐해도 될지 말지조차 헷갈렸다.

그들은 알고 있을까?

뉴멕시코뿐만 아니라, 같은 시각 이미 모든 게이트들이 지구상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을.

***

[‘지배자의 종자’가 심어진 영지의 상황이 영주에게 전달됩니다.]

[현재 영지에 잔류 중이던 모든 게이트가 사라졌습니다.]

쾅-! 쾅-!

미친 듯이 주먹을 휘두르는 파프니르와 혈투를 벌이던 가운데, 시스템 메시지가 그런 글귀를 띄웠다.

‘모든 게이트가 사라졌다고?’

매섭게 몰아닥치는 파프니르의 연타를 피하며 대성이 눈매를 좁혔다.

느닷없는 게이트의 사라짐은 그로서도 전대미문의 현상이었으니까.

그러나 곧, 대성은 이 사태의 원인을 대충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기신족의 멸망이 어떤 영향을 미친 것이 틀림없어.’

게이트의 진명(眞名)은 오브. 그리고 오브는 기신족의 발명품이다.

부유 공장이 멸망하고 기계의 신이 죽음으로써, 세계의 인과는 다시 한번 크게 틀어졌다.

바로 기신족과 그들의 세계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흐름으로.

즉, 그들에게서 유래한 ‘문명’ 또한 완전히 지구상에서 말소한 것이다.

‘놈들이 사라지면서, 놈들이 만든 오브도 없어진 거군.’

어디까지나 영지의 상황을 전달해줄 뿐인 시스템은 뉴멕시코의 게이트가 사라졌다고 했으나.

사실은 지구 전체에 남아 있던 모든 게이트들이 방금 먼지처럼 사라졌음이 틀림없을 것이다.

[네놈, 왜 갑자기 싸우다 말고 기분 나쁘게 웃는 거냐!]

“골칫덩어리 하나가 사라져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입가에 미소를 그리고 있었나 보다.

물론 집념과 살의가 담긴 공격을 퍼붓던 파프니르는 매우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일 수밖에.

드래곤 로드인 자신이 진심으로 덤비는데도 여유롭게 웃음을 지었던 적수는 지금껏 한 명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파괴적인 위력의 주먹을 능숙하게 피하던 대성이, 한층 더 미소를 비릿하게 만들었다.

“네놈이 발악하는 꼴이 추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다 나왔다.”

[크아아아악-!!]

마지막 자존심마저 흠집이 난 파프니르가 광분하였다.

최대한 잔인하게 때려죽이려고 일부러 주먹으로만 싸우고 있었으나, 이제는 그딴 사소한 목표 따윈 무시해버리기로 했다.

휘오오오-!

미련 없이 주먹을 거둔 파프니르의 손바닥 위로 강대하기 그지없는 파멸의 기류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멸세파동포(滅世波動砲).]

“그딴 이름 안 궁금하다.”

[네놈을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먼지로 만들어버릴 공격인데, 이름 정돈 알고 죽으라는 나의 배려다.]

자신이 드래곤의 정점에 올라설 수 있었던 이유이자, 환상성의 엘프들이 듣기만 해도 치를 떠는 악몽.

아직 메피스토라 불리는 저 괴물이 남은 마당에 벌써 최대 전력을 개방하는 건 살짝 이르지만…….

[네놈만큼은 꼭, 내 손으로 죽이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릴 것 같다!]

이미 자존심이 곤죽이 된 파프니르는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그가 멸세파동포의 기운이 모여든 팔을 휘저으려는 순간.

둥-.

[……?!]

갑자기.

세상이 흑백으로 물들었다.

멸세파동포를 쏘아내려고 했던 파프니르의 동작이 경직되었다.

‘무슨……!’

끊어낼 수 없는 사슬에 온몸이 칭칭 묶인 듯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 파프니르는 보았다.

옴짝달싹도 못 하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대성의 모습을.

‘다, 다가오지 마라……!’

하지만 다가오지 말라는 목소리조차 목울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곧이어 대성이 파프니르의 바로 코앞에 우뚝 섰다.

석상처럼 무심하고, 악마처럼 무자비한 저 얼굴.

움직일 수 없다는 공포에 사로잡힌 파프니르의 동공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커다래지던 그때.

슥-.

대성이 난데없이 파프니르의 어깨를 붙잡더니 그의 동체를 옆으로 살짝 비틀었다.

칼로 찌르거나 하는 등의 공격을 해올 줄 알았는데, 이 영문 모를 행동은 대체 뭐란 말인가?

[…….]

파프니르가 극한까지 느려진 시간의 흐름 속에 갇힌 채 혼란에 휩싸인 가운데.

몸이 옆으로 틀어진 그의 손에서, 이미 발사된 참이었던 멸세파동포가 느릿느릿하게 멀어지고 있었다.

***

[네 이놈! 대체 몇 번을 말하느냐! 나는 네놈들과 싸울 생각이 전혀 없다니까!]

-나 말고 쟤한테 따져. 난 쟤 명령을 따를 뿐이거든.

한편.

원치도 않은 싸움에 휘말린 사가라가 메피스토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하며 억울하다는 듯이 외쳤다.

-잘도 피하네. 싱거워라. 도망치지만 말고 뭐 좀 해봐. 덩치가 아깝지도 않아?

[큭……!]

반격해서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였다면 진즉에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악마의 바다를 지배하는 여제인 사가라는 바보가 아니다.

미친 싸움광인 파프니르처럼 무모한 성격을 지니지도 않았다.

사가라에겐 물러설 때를 살필 줄 아는 현명함이 있었고, 눈앞의 적을 이길 수 없을지 가늠할 수 있는 판단력이 있었다.

그리고 메피스토는 틀림없이 ‘이길 수 없는 적’이었다.

‘어떻게든 이놈이 만든 심상 세계로부터 도망쳐야 해……!’

그녀는 적어도 오늘 죽을 각오를 하진 않았다.

마해와 이어진 ‘문’을 소환하면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지만 저항력이 강한 이곳에서 함부로 전이의 문을 탔다간 차원과 차원의 틈새에 갇혀버릴지도 모른다.

‘아직 벌어질지 말지도 모르는 일에 고민할 때가 아니다! 이놈과 싸우느니 차라리 도박하는 게 낫지!’

결정했다. 전이의 문을 소환하기로.

고오오-!

메피스토와 충분한 거리를 벌린 사가라가 양팔을 벌려 마해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이내 그녀의 머리 위로 물로 이뤄진 거대한 문이 생겨났다.

-어딜 도망치려고!

적이 도망칠 작정이란 걸 눈치챈 메피스토가 황급히 쇄도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메피스토의 마수가 닿는 것보다 사가라가 저 문으로 돌입하는 게 더 빠를 터.

사가라가 웃었다.

[후후, 다시는 만나지 말-.]

투콰- 앙!

그때.

부지불식 간에 측면에서 날아온 멸세파동포가 사가라에게 작렬했다.

[‘해신 사가라’를 처치하셨습니다!]

[‘생명 포식자’에게 먹일 정순한 생명석 하나를 획득하셨습니다!]

그렇게.

미처 다하지도 못한,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하려고 했었던 그 한마디는 여제의 유언이 되었다.

손 안 대고 코 푼 격이 되어버린 메피스토가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뭔데,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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