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6
166
사흘 전.
“드래곤은 노예를 두지 않는다.”
2차 대격변 이전엔 인천광역시라고 불렸던 곳.
그곳에, 붉은 철갑을 입은 용인(龍人) 한 명이 대뜸 그리 말했다.
“끄, 끄으윽…….”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듯한 남자의 신음이 용인의 발밑에서 들려왔다.
그는 유일하게 아직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인천의 사냥꾼이었다.
사냥꾼 남자는 초점이 흐린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죽은 동료들이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널브러진 광경과,
용인의 기세에 짓눌려 공포에 질린, 힘없는 일반 시민들이 보였다.
“허, 허억…….”
사냥꾼 남자는 그 일반 시민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제발 아무나 나 좀 살려줘.
그런 의미가 담긴 손짓.
하지만…… 콰직-!
“힉……!”
시민들이 움츠러들며 경악했다.
파들파들 떨리던 사냥꾼 남자의 손가락이 일순 뻣뻣해졌다.
이내 남자의 손은 맥없이 바닥에 떨어지고야 말았다.
“우리가 노예를 두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너희 인간들은 이놈처럼 분수도 모르고 날뛴다는 점에서 너무나 어리석어 노예로 쓸 가치도 없기 때문이고…….”
스릉!
용인은 남자의 등판에 깊이 찔러넣은 창날을 거칠게 빼냈다.
“둘째는 나 하나도 어찌 못할 만큼 너희란 족속들은 나약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노예라면 우리들의 꼬리는 닦아줄 수 있을 정도의 힘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용인은 이중 창날이 달린 장창을 빙그르르 회전해 피를 털어냈다.
얼굴을 가린 투구 너머로, 파충류 특유의 쭉 찢어진 동공이 번뜩였다.
“즉, 내 말의 요지는 뭐냐면.”
용인의 잔혹한 선고가 이어졌다.
“네놈들은 그냥 이 자리에서 전부 죽으라는 거다.”
팡-!
지표면을 박찬 용인이 바람과 같이 시민들을 향해 쇄도하였다.
어느덧 코앞까지 닥쳐든 용인의 신형에 시민들이 경악했다.
이중 창날이 서슬 퍼렇게 빛나고, 이내 허공에 횡선을 그으려던 순간.
“……!”
돌연히 용인의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투콰-앙!
이어서 육중한 화물 트럭 한 대가 떨어져 용인을 단숨에 깔아뭉갰다.
어마어마한 굉음이 작렬하고 크레이터가 파인 아스팔트 바닥에서부터 자욱한 흙먼지가 흘러나왔다.
“내 구역에서 날뛰지 마.”
먼지가 서서히 걷혔다.
그러자 거꾸로 뒤집힌 트럭 위에 선 한 남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다부진 체격의 윤곽이 선명히 드러나는 흰색 반소매 티셔츠를 입은 청년이었다.
그가 양손에 낀 검은 오픈 핑거 글러브에선 묵직한 오러가 연기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흙먼지가 완전히 걷히고, 청년의 얼굴을 눈에 담은 시민들이 외쳤다.
“이창식?!”
‘국내 사냥꾼 랭킹 1위’의 타이틀을 거머쥔 남자의 이름을.
한대성이라는 불합리하리만치 막강한 신예가 등장하기 이전엔, 자타가 공인하였던 대한민국 최강의 사냥꾼이자,
세계에 내놓아도 세 손가락 안에는 벗어나지 않는 탁월한 전투 실력으로 국가의 위상을 드높였던 젊은 영웅의 등장이었다.
그래, 영웅.
대성이 시민들 사이로 성서(聖書)에 나올 법한 ‘구세주’와 같은 존재였다면, 이창식은 마치 미국 코믹스에 나올 법한 ‘히어로’라는 인상이 짙었다.
“이창식이다! 이창식이 왔어! 우린 살았다고!”
“우와아아아-!!”
히어로의 등장에 시민들이 열광하는 건 당연지사.
순식간에 대형 트럭으로 악당을 짓뭉개는 이창식의 퍼포먼스에, 사람들은 양팔을 치켜들며 환호했다.
그때.
“……!”
이창식의 미간에 주름이 파였다.
그는 긴말할 것 없이 사람들을 향해 본론부터 꺼냈다.
“다들 도망쳐요. 지금 당장.”
다짜고짜 튀어나온 말에 사람들이 잠시 의문을 느끼기도 잠시.
콱-!
뒤집힌 화물차량의 후방 차체(車體)를 뚫고 창날이 튀어나왔다.
반달 모양의 창날이 한 뼘 차이로 이창식의 얼굴을 스쳤다.
“……?!”
그제야 시민들은 아직 용인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곤 헐레벌떡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서거걱-!
트럭의 몸체 전체가 은빛 섬광에 휘감겼다. 창이 그려낸 잔상이었다.
“이 하등 종족이-!”
순식간에 조각이 난 차체를 뚫고 용인이 포효하며 달려들었다.
무시무시한 바람 소리를 자아내며 휘둘러진 창이 이창식에게 날아들었다.
캉-!
이창식은 방패 같은 오러를 두른 양팔로 창날을 막아냈다.
그러나 곧 용인의 강대한 팔 힘에 밀려 저만치 튕겨 날아갔다.
빠르게 날아가는 그의 신형이 뒤에 있던 건물 외벽에 처박히려던 찰나.
빙글.
허공에서 몸을 반 바퀴 회전시킨 이창식의 두 발이 외벽에 찰싹 달라붙었다.
상식적으로는 중력의 법칙에 못 이겨 그대로 추락해야 하는 상황.
그러나 기묘하게도 이창식은 마치 평지(平地) 위에 선 것 마냥, 외벽 위로 꼿꼿이 두 다리를 펴는 게 아닌가.
용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희 족속들도 잔재주 같은 마법 하나쯤은 부릴 수 있나 보군.”
“이거 마법 아니야, 병신아.”
발바닥에 오러를 응집시켜 벽과 신발 밑창 사이의 접착력을 끌어올렸을 뿐이다.
물론 호흡하듯이 능수능란하게 오러를 다룰 줄 모른다면 백날이 지나도 통달할 수 없는 경지일 테지만.
이마 가득히 힘줄을 돌출시킨 이창식이 실소하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잔재주라고?”
우웅-.
그의 양손을 뒤덮은 글러브에서 정순한 오류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네가 보기엔 그럼 이것도 잔재주겠네?”
그 순간.
텅-! 텅-! 텅-! 텅-!
길가에 잔뜩 늘어진 맨홀 속 하수가 역류(逆流)하며 둥그런 뚜껑을 멀리 날려 보냈다.
뒤이어.
위로 높이 솟구친 물줄기가 날카로운 창처럼 변모해 용인을 덮쳤다.
“……!”
사방에서 순식간에 닥쳐오는 물줄기를 피하거나 막을 방법은 없었다.
투콰-앙!
거센 수압(水壓)을 지닌 물대포가 용인의 신형에 직격했다.
“또 잔재주 타령해봐, 이 건방진 파충류 새끼야.”
여전히 건물 외벽에 찰싹 달라붙은 이창식이 살벌하게 빈정거렸다.
염력(念力).
명실공히 오직 이창석만이 가진 ‘재능’이었다.
콰콰콰콰-!
예기(銳氣) 어린 오러에 휘감긴 물대포가 쉬지 않고 용인을 압박했다.
견고한 갑주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하자 용인은 두 눈을 부릅떴다.
‘고작해야 인간이…… 드래곤의 비늘을 뚫어내다니!’
놀랍기 이전에 드래곤으로서의 자존심과 긍지가 일그러졌다.
이대로 가다간 진짜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터.
용인은 일부러 드러내지 않고 있었던 본신(本身)을 해방하였다.
[그만 기어올라라-!]
콰아아아-!
몸집이 크게 부풀려진 용인이 입고 있던 갑주를 파괴하며 진정한 드래곤의 모습으로 현신했다.
도심지를 뒤흔드는 쩌렁쩌렁한 포효가 이창식이 발을 디딘 건물의 유리창을 모조리 깨부쉈다.
맨홀을 뚫고 나온 물줄기도 방금의 일갈에 휩쓸린 탓에 기세가 한풀 꺾여 아래로 허물어졌다.
빌딩 크기에 버금가는 몸체와 날개, 그리고 꼬리까지.
탁!
적룡(赤龍)의 웅장한 위용과 마주한 이창식이 유려한 동작으로 지면에 착지하며 휘파람을 불었다.
“세게 나오네. 하등 종족 상대로 너무 치사한 거 아냐?”
[시건방진 소리를 지껄이는 것도 지금이 마지막일 거다.]
콰직-!
적룡이 대가리를 한껏 앞으로 들이밀어 벌렸던 입을 콱 닫았다.
뒤로 크게 물러나 공격을 피한 이창식이 한 번 더 염력을 발동했다.
쿠구구-.
지축이 진동하며 방금 건물에서 떨어졌던 유리 파편이 허공에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보도에 세워진 전봇대 두 대가 뿌리 뽑혀 날아와 이창식의 양손에 쥐어졌다.
‘생물에게는 염력이 먹히지 않는다는 게 유일한 단점이란 말이지.’
그 단점만 아니었다면 진즉에 몸을 터뜨려 죽였을 텐데.
파파팍-!
바닥에 흩어진 커다란 유리 파편이 총알처럼 난무하며 적룡의 비늘을 파고들었다.
뒤이어, 이창식은 양손에 쥔 전봇대 두 대를 사정없이 휘둘러 적룡을 두들겼다.
“이런 젠장!”
일방적으로 공격을 퍼붓는 이창식의 표정이 점점 찌푸려졌다.
아무리 총공세를 퍼부어도 적룡은 비늘에 흠집 몇 개만 날 뿐, 유효한 타격은 입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왜 그러지? 아까처럼 계속-.]
적룡이 몸을 뒤틀었다.
[기어올라 봐라-!]
“……?!”
붕-!
눈에 전부 담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꼬리가 채찍처럼 휘둘러졌다.
면적으로나 속도로나 거리로나.
피하기엔 너무 늦었다.
콰-앙!
“컥……!”
꼬리에 얻어맞은 이창식의 몸이 저만치 후방으로 붕 날아갔다.
아까처럼 재주 좋게 건물 외벽에 달라붙는 기행은 펼칠 수 없었다.
그는 그대로 건물 기둥을 무려 6개나 무너뜨린 끝에야 날아가는 몸에 제동을 걸 수 있었다.
“커흑……!”
어느 상가 건물 입구에 처박힌 이창식의 입에서 핏물이 터져 나왔다.
어마어마한 충격 탓에 신경 회로가 고장 난 건지 뭔지는 몰라도 사지의 감각이 평소보다 더 옅었다.
‘빌어먹을.’
만약 꼬리와 충돌하기 직전에 오러를 두르지 않았다면, 지금쯤 팔다리도 제대로 달려있지 않았으리라.
물론 살았다 하여 최악의 상황이 잘 풀리게 되는 건 아니었다.
발목과 다리뼈가 박살 난 건지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를 않는다.
[놀랍구나, 놀라워. 아직도 살아 있단 말이냐? 질긴 생명력 하나만큼은 인정해주마.]
반파된 건물 사이를 뚫고 적룡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상황이 이 정도로 최악으로 치달으니 이창식은 도리어 웃음이 나왔다.
꼼짝없이 죽게 생겼다고 생각하자 홀가분한 마음이 스친다.
“개소리 그만 지껄이고 죽일 거면 빨리 죽여.”
[너는 하등 종족이지만 그중에서도 강한 축에 속한다. 강자로 태어났다는 건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지. 목숨이 아깝지도 않나?]
“나는 이 비루먹을 능력을 각성했을 때부터, 죽어도 괴물들이랑 싸우다 죽겠다고 결심했어.”
마침 옆에 부서진 자판기에서 찌그러진 음료 캔이 굴러다녔다.
이창식은 알루미늄 캔을 힘겹게 집은 뒤 적룡의 얼굴에 냅다 던졌다.
깡-.
“그러니까 내가 말했지. 개소리 그만 지껄이고 죽일 거면 빨리 죽이라고.”
[원대로 해주마, 우둔한 것.]
적룡이 발톱을 세웠다.
최후를 받아들이는 이창식의 눈이 평온하게 감기던 순간.
번쩍-!
돌연 창천에서 뿜어져 나온 금빛 광채가 인천광역시를 물들였다.
눈 부신 빛 아래에 놓인 이창식과 적룡이 일순 동시에 눈을 감았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뜬금없이 번개가 칠 리는 없을 텐데?
이창식이 새삼 그런 시답잖은 의문을 느끼던 그때.
-잡아라.
“뭐?”
목소리를 들은 그가 감았던 눈을 퍼뜩 뜨고는 적룡을 쳐다보았다.
지금 잡으라고 말했던 목소리가 적룡의 것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근데 아니었다. 착각이었다.
착각임을 알게 된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보고야 말았으니까.
지면에 박힌.
한 자루의 황금 창을.
-잡는 게 좋을 것이다.
“…….”
적룡은 여전히 빛 때문에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고, 목소리는 아직도 생생히 귓가-.
아니, 머릿속을 맴돈다.
잡으라고? 뭘? 저걸?
그보다 저 창은 뭐지?
머릿속 목소리는 또 뭐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회오리처럼 의식 속에 휘몰아쳤다.
모든 게 의문투성이였고, 모든 게 의심스러웠다.
갑자기 하늘에서 툭 떨어진 창.
그리고 갑자기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믿고 따라야 할 이유가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있지.’
이창식은 손을 내뻗었다.
짓궂게도 황금의 창은 그에게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 박혀 있었다.
‘어차피 죽었다고 생각한 목숨이잖아. 이래 뒈지든 저래 뒈지든 뭔 상관이야.’
그렇다면 차라리.
1%라도 더 살 수 있는 쪽에 목숨을 걸어보고 싶었다.
휘오오-.
창을 향해 뻗은 이창식의 손에 염동력의 오러가 피어올랐다.
드득, 드드득-!
땅에 깊숙이 쑤셔 박힌 황금 창의 창대가 거세게 흔들렸다.
이때, 뒤늦게 후유증에서 벗어난 적룡이 서서히 눈을 떴다.
[젠장, 갑자기 무슨…… 음?!]
고개를 저으며 정신을 차린 적룡이 황금 창을 발견하고는 흠칫했다.
순간 적룡의 눈이 번쩍 커졌다.
[저게 왜 여기에……!]
적룡이 경악성을 터뜨림과 함께.
콰-악!
완전히 지면에서 뽑혀 나온 황금 창이 이창식의 손아귀로 날아왔다.
[안 된다, 이놈-!]
적룡이 질겁하는 반응을 보이며 황급히 발톱을 휘둘렀다.
그리고.
적룡은 자각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오른발을 잃어야만 했다.
[……!]
“이거.”
어느덧 황금 창을 완벽하게 붙잡은 이창식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창날에서 일렁이는 금빛 광휘는 적룡의 선혈마저 환하게 태워냈다.
적룡이 광분하며 몸체를 크게 들어 올려 이창식을 밟아 죽이려고 했다.
콰직-!
황금 창이 자신의 심장을 정확히 찔러넣기 전까진 말이다.
“존X게 끝내주는데?”
[아아, 아아아아아-!]
창날의 끄트머리에서 빗금 모양의 섬광이 수십 줄기씩 퍼져 나왔다.
그렇게 적룡의 몸은 찌꺼기 하나 없이 깔끔하게 산화하였다.
콱-!
창대를 땅에 박아 몸을 지탱한 이창식이 숨을 헐떡였다.
“허억! 허억!”
힘들어서가 아니다. 무리해서도 아니다. 상처가 쑤신 탓도 아니었다.
오히려 어찌 된 요행인지 황금 창을 집은 순간 온몸을 수놓았던 끔찍했던 상처들이 대번에 회복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전에 없던 활기가 힘차게 체내를 내달린다. 심장이 펌프질 당하는 스팀 기관차처럼 펄떡펄떡 뛰었다.
“지금 내 몸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본인의 활력과 생기를 따라가지 못한 나머지 다리에 절로 힘이 풀리려고 했다.
아드레날린 미친 듯이 분비된 탓에, 기분 같아선 두 눈에서 레이저라도 뿜고 싶었다.
크오오오오-!
이때.
지평선 저편에서 난폭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싶어서 고개를 돌려보니, 드래곤들이었다.
지금 막 그가 죽였던 적룡과 똑같이 생긴 드래곤들이 떼를 지어 몰려오고 있었다.
“…….”
절망하는 것이 당연한 상황.
이쯤 했으니 잘 싸웠다고 정당화하며 손을 놓아도 될 타이밍이다.
“이건 꽤…….”
하지만 이창식은,
“해볼 만한데.”
상식을 거부했다.
왜냐하면 ‘비상식’의 힘이 자신의 손에 들어왔으니까.
잠시 뒤.
지평선을 타고 날아왔던 드래곤 십수 마리가 뼈밖에 남지 않은 시체가 되어 길거리를 나뒹굴었다.
털썩!
이창식은 그중 한 마리의 백골에 등을 기대어 주저앉았다.
그는 모든 싸움이 일단락된 끝에야 겨우 물었다.
“누구야, 넌.”
-네가 누군지, 그 부분부터 깨닫는 게 좋을 거다.
“그래? 내가 누군데?”
-너는 나의 대리자요, 내가 임명한 화신체다.
“그렇구나. 대단하네.”
이창식은 지금 현실 감각이 별로 없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게 ‘진짜’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넌 이름이 어떻게 돼.”
-아르마간. 천상의 주신께서 임명하신 첫 번째 사도다.
“흠…….”
어쩌면 자신은 이미 적룡의 꼬리에 얻어맞은 시점부터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것이 개꿈이라고 생각하니 두 손 두 발이 가벼워졌다.
이창식은 한 손에 쥐고 있던 황금 창에 눈길을 주며 물었다.
“이건 네가 준 선물이야?”
-그래.
“그냥 주는 거? 대여 같은 게 아니라?”
-원한다면 영원히 갖게 해주지.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준다면 말이야.
“무지막지하게 센 물건이라는 건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소장 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어쨌든 명칭이라도 좀 알자.”
그러자 자신을 아르마간이라고 소개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궁니르(Gungnir).
이창식이 황금 창, 궁니르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응시하였다.
궁니르라.
북유럽 신화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물론 신화 속 무구가 현실에도 존재한다는 건 다른 문제지만.
‘오크, 고블린, 드래곤이 날뛰는 판국인데 북유럽 신화라고 해서 현실에 존재하지 않으리란 법은 없지.’
그리 생각하며 가벼이 넘긴 이창식이 궁니르를 휘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걸 나한테 준 이유는?”
-그걸로 네가 죽여줬으면 하는 인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