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8
168
빙그르르!
콱-!
맹렬히 회전하며 허공에 떠오른 미늘창이 이내 떨어져 지면에 박혔다.
“…….”
바닥에 박힌 미늘창 주변으로 음산한 적막이 불어닥쳤다.
발라르크는 그 고요함 속에서, 입을 꾹 다문 채 생각했다.
지금 센티넬이 왜 죽은 거지?
……라고.
거세게 뇌창을 쥔 발라르크의 손이 부르르 떨려왔다.
미지의 힘을 목격함으로써 전신에 이는 전율 때문이었다.
‘센티넬은 요추(腰椎)에 새겨진 각인을 가격하기 전까진 절대로 죽지 않는다.’
아무리 머리를 잘라내고 몸통을 반으로 갈라도, 각인이 지워지거나 부서지지 않는 한.
센티넬은 끊임없이 회복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부활하는 것이다.
분명 그럴 텐데,
“생긴 건 꼭 광전사 같은데 하는 짓은 완전 좀비구먼. 하여간, 한대성 그놈이 불러내는 소환수는 하나같이 전부 기괴하단 말이지.”
저 이창식이라는 인간은 방금, 정석에서 벗어난 방식으로 센티넬을 죽였다.
각인을 공격하지도 않고, 그저 단순무식한 창술로 센티넬의 몸을 처참히 산산조각낸 것이다.
마치.
‘……몸을 가루 내어, 되살아날 여지 자체를 뭉개버린 것처럼.’
휘이잉!
뒤이어 주인을 잃은 미늘창마저 가루로 변해 사라졌다.
그러나 발라르크에겐 전우(戰友)의 죽음에 슬퍼할 겨를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여기서 나가면.”
살기에 차오른 목소리가 발라르크의 투구 사이로 흘러나왔다.
이창식의 귀에는 그 목소리가 마치 중간에 방음벽에 틀어막힌 것처럼 작고도 멀게 들려왔다.
실제로 발라르크는 전투가 개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부터 ‘황금의 벽’ 속에 갇힌 상태였으니까.
‘억압(抑壓)’이라는 명칭을 지닌, 궁니르의 특수 기능 중 하나였다.
“네놈은 절대 편하게 죽지 못할 것이다. 기사도에 맹세코.”
“응, 뭐라고? 잘 안 들리는데.”
이창식이 귀에 손을 가져다 대며 한껏 조롱한 순간.
쾅-!
발라르크가 뇌창을 휘둘러 벽을 힘차게 가격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미 몇 번이나 반복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창으로 찌르고 주먹으로 때려봐도, 벽에는 균열 하나 새겨지지 않았다.
‘특수한 형태의 주술이 걸린 결계다. 물리적인 힘으로는 깨뜨리는 것이 불가능할 테지.’
활화산 같이 타오르는 감정에 사로잡혀 악다구니를 쓰며 난동을 부려봤자 힘만 빠질 뿐.
발라르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벽의 성질을 살폈다.
‘모종의 조건을 충족해야 여기서 빠져나갈 수가-.’
“눈, 팔, 다리. 셋 중 하나를 포기하면 거기서 나올 수 있다.”
그때.
돌연히 이창식의 입에서 튀어나온 조건에 대한 정답이 발라르크의 고민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발라르크는 악마적이기 짝이 없는 해방 조건 내용보다도, 이창식의 꿍꿍이에 더 짙은 불안감을 느꼈다.
“그걸 굳이 왜 말해주지?”
“솔직하게 밝혀야만 발동하는 힘이 있으니까.”
쿠구구-!
그 순간, 결계를 형성하는 사면(四面)이 발라르크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서서히 좁혀지기 시작하는 내부 면적을 본 발라르크는 혀를 찼다.
“이런 거였군.”
“알아서 선택해. 거기서 쥐포처럼 납작해지던가, 아니면 눈이랑 팔이랑 다리 중에 하나 포기하던가.”
신성 무구라고는 볼 수 없는, 악의가 넘치는 설계였다.
일부러 결계를 벗어날 수 있는 조건을 밝혀야만 움직이는 벽.
그렇게 되면, 내부에 갇힌 자는 필연적으로 선택의 기로 앞에 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죽을 것인가, 자를 것인가.
이창식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면서도 속으로는 넌더리를 쳤다.
‘내 쪽에서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진짜 변태 같은 힘이네.’
-감히 천상에 대항하는 악(惡)은 극한의 고통에 처해도 마땅하다.
‘혹시 천상의 사도란 양반들은 전부 사디스트냐?’
아르마간의 목소리를 들은 이창식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한편.
쿠구구-.
벽은 빠르게 발라르크를 압박해오고 있었다.
적어도 뇌창을 휘두를 수 있을 만큼의 빈틈은 있었던 공간이, 이제는 겨우 직립(直立) 정도만이 가능한 수준으로 좁아졌다.
‘눈, 팔, 다리…….’
선택의 여지가 어디 있겠는가.
무겁게 한숨을 내쉰 발라르크가 두 손을 관자놀이에 얹었다.
그리고 투구를 벗었다.
“…….”
발라르크의 민얼굴을 본 이창식의 눈매가 싸늘하게 좁혀졌다.
대성이 평소에 불러내던 사령 병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생김새.
진물이 뚝뚝 떨어지고 썩어 문드러진 살점으로 뒤덮인 얼굴이었다.
본래 그는 돌프 휘하의 죽음의 군단에 속했던 자니까.
“너…….”
하지만 이창식이 주목한 건 발라르크의 썩은 살점 따위가 아니었다.
휑하게 비어있는 왼눈.
굳이 투구를 벗어서 애꾸눈을 드러냈다는 건,
“눈을 포기할 생각인가 보군. 하기야, 아예 팔다리를 뽑아버리는 것보단 차라리 그편이 낫겠지.”
“더한 거다.”
“……뭐?”
“내가 네놈이 하라는 대로 눈이나 팔, 다리를 포기할 순 없지만-.”
텅!
용기사의 투구가 바닥에 떨어졌다.
투구를 벗어 던졌던 두 손이 이번엔 민얼굴을 움켜쥐었다.
그 순간, 좁혀졌던 이창식의 눈이 한순간 휘둥그레졌다.
개의치 않고 발라르크는 말했다.
“내가 모시는 그분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머리 하나쯤은 이 몸뚱이에서 떼어낼 수 있지.”
“야, 너 그게 무슨-.”
푸확-!
선연한 붉은색을 띤 핏물이 분수처럼 솟구쳤다.
손목에 힘을 실은 발라르크가 망설임 없이 머리를 뽑아낸 것이다.
-의도를 모르겠군. 자결인가?
“……모가지도 서슴없이 뽑는 놈이 고작 눈 하나를 포기 못 해서?”
아무리 생각해도 굳이 저런 행동을 취하는 저의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혼란에 사로잡힌 이창식과 아르마간이 가만히 얼어붙은 그때.
“……!”
이창식의 눈에 선명한 경악의 감정이 서렸다. 그건 아마, 천상의 성역에서 현황을 지켜보고 있는 아르마간도 마찬가지이리라.
발라르크는 쓰러지지 않았다.
철갑에 둘러싸인 두 발은 꼿꼿이 지면을 디뎠고, 건틀릿을 착용한 양손엔 놀랍게도 스스로 뽑아냈던 그의 얼굴이 마치 공이라도 든 듯이 태연하게 쥐어져 있었다.
“전(前) 군주가 나를 이런 몸으로 만들었을 당시엔 지독한 저주라고 생각했다.”
목소리는 몸을 떠난 얼굴에서 흘러나오고 있지 않았다.
대기, 그 자체가 살아있는 것처럼 정념(情念)을 흘려보내는 듯했다.
“하지만 이제는 네놈을 죽일 수 있게 되었으니 축복이라고 생각하마.”
화르륵-.
잘린 목의 단면에서 청염(靑炎)이 사나운 화력을 자아내며 타올랐다.
어찌 된 영문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이창식의 머릿속에 아르마간의 외침이 작렬했다.
-듀라한(Dullahan)!
“엉? 그게 뭔데.”
-예로부터 빛을 죽인다고 전해져 오는 사신(死神)이다! 그런데 저놈이 그 피를 이어받았을 줄은!
“아니, 자꾸 뭐라는 건지 아까부터 하나도 이해가-.”
와장창-!
억압의 벽이 한낱 유리창처럼 형편없이 깨졌다.
그 광경을 눈에 담은 이창식이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진지한 건지 아닌지 모를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네가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지 좀 알겠네.”
-지금의 저놈에게는 궁니르의 신력(神力)이 먹히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해.”
-놈의 몸 어딘가에 심장부 역할을 하는 라이프베슬이 있을 것이다. 그걸 노려라.
“아니, 그렇게만 말하면 나보고-.”
짜증이 어린 이창식의 말이 전부 이어지기도 전.
푸르르!
결계를 부수고 나온 발라르크 아래로 어느덧 푸른 화마(火馬)에 휩싸인 말 한 마리가 울부짖었다.
“가자, 유령마.”
두두두-!
불꽃의 콧김을 내뿜으며 유령마가 힘차게 대지를 내달렸다.
형형한 기백에 한순간 압도당할 뻔한 이창식은 잡념을 지워낸 뒤, 궁니르를 치켜들었다.
번쩍-!
창날에서 수십 갈래의 섬광이 방출되어 유령마와 발라르크를 덮쳤다.
“소용없다.”
빛에 잠기기 직전, 발라르크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자신의 얼굴을 높이 들어 올렸다.
화륵-!
텅 비어있는 왼쪽 눈두덩이로부터 푸른 불꽃이 피어오른 순간.
둥지 전체를 집어삼킬 듯이 내려오던 광휘가 모조리 소멸하였다.
이창식이 이를 갈며 궁니르를 쥔 손에 힘을 실어 넣기 무섭게.
챙-!
어느새 코앞까지 닥쳐든 발라르크의 뇌창과 궁니르가 충돌했다.
창날과 창날이 맞닿은 지점으로부터 무시무시한 돌풍이 쏟아졌다.
“빌어먹을.”
이대로 교착 상태를 지속했다간 불리해지는 건 이쪽일 터.
빠르게 판단을 내린 이창식의 등 뒤로 황금빛 날개가 펼쳐졌다.
그가 아르마간의 화신이 됨으로써 얻은 능력 중 하나였다.
팍-!
지면을 앞으로 밀어내며 후위로 도약한 이창식의 신형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우선 거리를 벌려 숨통을 틀 작정.
물론 발라르크는 그에게 ‘틈새’ 따위를 줄 마음이 없었지만.
“네놈은 편히 죽지 못할 거라고 했을 텐데.”
화륵-.
뇌창을 쥐지 않은 발라르크의 왼손에 날부터 대까지 전부 잔불로 이뤄진 또 다른 창이 나타났다.
잔불의 창은 뇌창과 똑 닮은 윤곽을 지니고 있었다.
듀라한의 권능 중 하나인, 청염을 이용한 무기 복제였다.
“넝마로 만들어주마.”
쐐애액-!
발라르크는 양손에 그러쥔 두 자루의 창을 동시에 투척했다.
폭격기를 연상케 하는 굉음을 터뜨리며 날아간 두 자루의 창이 허공에서 분열해 무수한 창날을 쏟아냈다.
한 자루만 하여도 백 마리의 와이번을 떨어뜨렸던 파괴적인 투창술이, 이번엔 단순 계산법으로 2배의 위력으로 불어난 것이다.
“젠장.”
폭우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만큼 시야 가득히 날아오는 창날의 세례에, 이창식은 정신을 잃고 기절해버릴 지경이었다.
저게 그냥 통상적인 공격이었다면 궁니르의 빛으로 모조리 지워버리면 그만이겠지만,
이번만큼은 신력조차 무용지물이라고 방금 아르마간이 말했다.
“그냥 일일이 다 쳐내야지, 뭐!”
상식적으로는 못 할 짓이지만 지금은 딱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붕-!
이창식은 궁니르를 풍차처럼 360도로 회전시켜, 그것을 방패막이처럼 사용해 창날을 받아냈다.
수백, 아니 어쩌면 수천에 달할지도 모르는 창날의 폭풍우가 맹렬히 돌아가는 궁니르와 맞닥뜨렸다.
팍-! 콰직-!
“……!!”
당연히 창대를 빙글빙글 돌리는 것만으로, 저 살인적인 수량의 창날을 전부 막아내기란 불가능하다.
궁니르의 회전 반경을 빗겨나간 창날은 어김없이 이창식의 사지를 스치고 지나가거나, 심하면 아예 살점을 뚫고 관통했다.
급소만큼은.
다른 데는 다 좋으니까 급소만큼은 허용치 않겠다. 그 일념만을 되새기는 이창식의 눈에 짐승과 같은 이채가 서렸다.
언뜻 잘 막아내는 것처럼 보였으나 이창식이 입은 하얀 반소매 티셔츠는 어느덧 붉은색으로 잔뜩 덧칠되어 있었다.
창날이 몸을 파고들 때마다 뇌가 끊어질 것만 같은 격통이 솟구쳤다.
“빌어먹을!”
근성으로 견뎌냈다.
하지만 근성 하나만으로 상성의 차이를 극복할 수는 없는 법.
콰직-!
“……!”
황금빛의 날개가 창날에 꿰뚫린 순간, 이창식의 몸이 허공에서 크게 비틀거렸다.
이런 와중에도 푸른 불꽃의 창날은 끊임없이 날아와 날개를 헤집었다.
이윽고.
비행이 불가능할 수준으로 양쪽 날개가 처참히 손상된 이창식이 지면으로 추락했다.
쿵-!
이창식의 머리가 볼품없이 땅바닥에 처박히기 무섭게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다그닥!
발라르크를 태운 유령마의 말발굽 소리가 음산하고도 강렬하게 이창식의 귓전을 파고들었다.
“시X 진짜.”
-정신 차려라! 여기서 죽으면……!
“알겠으니까 입 닥쳐.”
분노와 짜증 때문에 반쯤 이성을 잃은 이창식이 뇌까리기 무섭게.
발라르크의 뇌창이 일말의 여지조차 남기지도 않겠다는 듯이 그를 향해 창날을 내뻗어왔다.
“이래서 역시 사람은 평소에 잘하던 걸 해야 해.”
창이 이창식의 머리를 뚫기 직전.
쿠구구-!
느닷없이 위로 솟구쳐 오른 지표면의 흙더미가 발라르크의 양팔과 유령마의 다리를 옭아맸다.
“……!”
순간 꼼짝도 할 수 없게 된 발라르크의 어깨가 움찔거림과 함께 이창식이 조소를 보냈다.
“팔자에도 없는 창질을 하니까 뒈질 뻔했잖아, 개 같은.”
염력.
궁니르도, 화신체로서의 힘도 아닌.
‘S급 사냥꾼’으로서 이창식이 지닌 본질적인 힘.
“신체 어딘가에 라이프 뭐시긴가 하는 심장부가 있다고 했지.”
이 정도 속박을 강제적인 힘으로 끊어내는 것쯤은 발라르크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적의 코앞에서 몸이 묶였다.
그 시점에서 승패는 갈라진 법.
쓰러진 몸을 일으킨 이창식이 입가의 피를 닦아내며 말했다.
“그럼 그냥 닥치는 대로 두들기다 보면 언젠간 심장부에도 피해가 가겠지?”
“……!”
이번엔 이창식 쪽에서 궁니르의 창날이 내뻗어졌다.
두두두두두-!
창날이 기관총의 총구에서 쏟아지는 탄환처럼 끝도 없이 발라르크의 몸을 꿰뚫고 지나갔다.
바로 아까 센티넬을 가루로 만들었던, 그 공격이다.
“컥……!”
끊이지 않고 퍼부어지고 또 퍼부어지는 창날에 난도질당한 발라르크가 신음을 터뜨렸다.
쩌적-.
지금 막.
라이프베슬에 균열이 생겨났다.
***
“아……!”
한편.
철성 안쪽에서 외부의 싸움을 지켜보던 지수와 혜정이 날카로운 탄식을 터뜨렸다.
지수는 입을 틀어막으며 눈물을 희미하게 글썽거렸다.
유일한 희망이었던 발라르크가 지금, 전에 보지 못했던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혜정과 지수는, 자신들의 안전보다도 발라르크의 상태를 더 걱정했다.
“저, 저러다 진짜 죽겠어…….”
창날의 폭격을 견디지 못한 유령마가 끔찍하게 훼손되어 쓰러졌다.
낙마(落馬)한 발라르크가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을 나뒹굴었다.
결국, 지수는 더는 두고만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얘! 지수야!”
몸을 홱 돌려 당장 뛰쳐나가려는 지수의 어깨를 혜정이 붙잡았다.
하지만 지수는 그런 혜정의 손길을 뿌리치고는 막무가내로 달려나갔다.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야. 저 사람, 이창식이 틀림없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S급 사냥꾼이다.
처음에는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해서 눈의 착각이라 여겼지만, 이제는 아니다.
저 괴물은, 틀림없이 사람들로부터 ‘영웅’이라고 불렸던 그 남자다.
그 누구보다도 정의감이 투철하다고 명성이 자자했던.
‘내가 저 사람 앞을 막아서면, 그래도 조금은 시간을 벌 수 있을 거야. 다짜고짜 인간인 나를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그러니까……!’
솔직히 말해, 그 뒤의 일은 생각해두지 않았다.
시간을 벌어? 그래서 그다음엔 어쩔 건데? 대신 싸워주기라도 할 거야? 그런 의문이 스스로 들었다.
하지만.
너무 고통스러웠다.
손 놓고 가만히 보고 있기가 구역질이 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오빠도 싸우고, 아저씨도 싸우는데…….’
철성의 입구를 향해 내달리는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나만 이렇게 무기력하게-.’
바로 그때.
턱-.
입구를 열어젖히기 위해 뻗었던 지수의 팔이 허공에서 멈췄다.
뒤에 있는 누군가로부터 어깨가 붙잡혔기 때문이다.
그 누군가가 혜정이라고 생각했던 지수가 고개를 돌리며 외쳤다.
아니, 외치려고 했다.
“어……?”
자신의 어깨를 누가 붙잡았는지 알게 된 순간, 머릿속이 헝클어졌다.
대신 눈물이 나왔다.
“일부러 늦게 왔지, 이 새끼야…….”
원망스럽다는 듯한 어조가 자기도 모르게 입밖에 흘러나왔으나.
사실은 너무나도 보고 싶었던 얼굴이었기에, 지수는 도무지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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