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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돌아온 한대성-172화 (172/180)

# 172

172

“막아……. 가서 막아!”

웅-!

천상의 7사도, 라그마온의 외침과 함께 커다란 뱃고동 소리가 창천을 흔들었다.

곧 50척에 달하는 비공함대(飛空艦隊), ‘레퀴엠’이 하늘의 구름을 가르며 나타났다.

“전군, 모든 화력을 저놈에게 쏟아부어라!”

“미쳤어?! 지상엔 아직 영민들이 남아있다고! 이대로 포격을 개시했다간……!”

라그마온의 극단적인 명령을 들은 4사도, 아도니스가 질겁했다.

하지만.

라그마온은 인상을 한껏 찌푸리며 아도니스의 말에 대꾸했다.

어떤 구질구질한 변명도, 긴말도 필요 없었다.

“이거 말고 다른 대책이 또 있나?”

“……!”

아도니스는 눈만 휘둥그레 뜰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 여기서 저 하얀 악마를 처리하지 못하면, 천상은 ‘오늘’ 멸망하리라.

라그마온이 목에 핏대가 서도록 고함을 질렀다.

“쏴-!”

콰콰콰콰-!!

50척의 레퀴엠에 탑재된 주포들이 지상으로 일제 포화를 가했다.

광속으로 쏘아진 푸른 기탄은 단숨에 지상을 강타해 폭음을 흩뿌렸다.

“꺄아아악-!”

“엉엉-!”

“살려줘!”

아직 지상에 남아있던 수천 명의 시민이 그 폭격에 휘말렸다.

불바다가 된 지상은 그야말로 비명과 죽음이 범벅된 아비규환으로 변모하였다.

무수히 스러져가는 생명을 본 사도들은 동공을 부르르 떨며 신음했다.

주신이시여. 저희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영지의 평화를 수호하고 축복을 가져다줄 사도들이 할 짓이 아니다.

적을 죽이겠다고 영민을 희생시키다니. 본말전도가 아니던가!

‘무의미한 희생은 여기서 끝나야 해. 무조건!’

포격 명령을 내린 당사자인 라그마온은 피가 비어져 나올 정도로 세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화마(火魔)에 잠긴 지상을 내려다보며 사도들이 초조해하길 잠시.

“오, 이런 미친.”

제일 먼저 욕지거리를 뱉은 사도는 오르키엘이었다.

일렁이며 솟구치는 불길 안쪽으로 검은 인영이 점점 선명히 드러났다.

이어서 하얀 악마가 유유한 걸음으로 화염을 뚫고 나오는 게 아닌가.

“……!”

눈앞이 새하얘졌다. 망치로 정수리를 맞은 듯 머릿속이 멍해졌다.

불길 밖으로 빠져나온 하얀 악마, 대성은 어깨에 들러붙은 불티를 심드렁하게 흘겨보았다.

이윽고.

탁, 탁.

그것을 손으로 먼지 털듯 털어낸 다음, 곧 하나의 창을 소환했다.

찬란한 금빛에 휘감긴 성창을.

“궁니르!”

사도들이 이구동성으로 절규하는 것과 함께, 대성의 허리가 활처럼 휘며 창대가 뒤로 당겨졌다.

마력이 실린 대성의 중얼거림이 똑똑히 사도들의 귀에 박혔다.

“이제 내 차례군.”

파-앙!

대성의 손을 떠난 궁니르가 창천을 가로지르며 비공함대를 향해 번개처럼 나아갔다.

궁니르의 특수 스킬, [요격].

절대 빗나가지 않는 필살의 투창(投槍)이 전함에 작렬했다.

투콰-앙!

궁니르는 선두에 섰던 전함 세 척을 한꺼번에 침몰시킨 것도 모자라, 그대로 후방에 있던 다섯 척까지 추가로 요격시켰다.

“아무리 궁니르라지만 저런 것까지 해낼 수는 없다! 저놈, 대체 창에다 무슨 짓을 한 거지?!”

투창 한 번에 도합 여덟 척의 레퀴엠이 파괴되는 걸 목격한 사도들이 경악성을 터뜨렸다.

그들이 어떻게 알까?

방금 던진 궁니르에, 대성이 살상력을 지닌 마력을 둘러쳤다는 걸.

그리고 그것이 마치 가시 폭탄처럼 창날에서 여러 갈래로 방출되었을 뿐인 간단한 기교다.

쐐애액-!

훌륭하게 첫 활약을 선보인 궁니르가 그대로 다시 대성의 손아귀로 회수되었다.

대성은 솔직하게 평가했다.

“네놈들의 유일한 업적은 내게 이 창을 줬다는 점이겠지.”

화르륵-!

방금 여덟 척의 전함을 무너뜨림으로써 충분한 양의 혼돈기가 모여들었다.

대성의 등 뒤로 헤카톤케일의 애검, <카오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콱-!

대성이 재빠른 손놀림으로 등 뒤의 거검(巨劍)을 쥐기 무섭게.

“으아아아-!”

“라그마온!”

돌연 괴성을 지른 라그마온이 금빛 날개를 펼쳐 지상을 향해 질주했다.

어쩔 수 없다.

이대로 계속 비공함대가 전멸하는 광경을 가만히 두고 볼 순 없다!

다음 포격까지는 적어도 3분의 시간이 필요할 터.

‘그때까지만, 딱 3분만 저 하얀 악마로부터 시간을 벌 수밖에!’

촤아앙-!

은빛 레이피어가 라그마온의 허리춤에 달린 검집에서 뽑혀 나왔다.

라그마온이 허공에 잔상을 남길 정도로 민첩하게 쇄도한 순간.

[‘흑성의 룬석’이 활성화됩니다.]

[검은 별빛이 내립니다.]

“허, 억……!”

주홍색으로 물든 창공에 느닷없이 ‘검은 별’ 하나가 나타났다.

작은 성운 하나가 사방으로 암흑을 퍼뜨리기 무섭게, 어마어마한 속력으로 달려들던 라그마온의 몸이 허공에서 비틀거렸다.

흑성(黑星)의 기운이 대성이 적으로 인지한 라그마온의 기세를 한풀 꺾어버린 것이다.

그 시점에서 승부는 판가름났다.

“날 상대로 시간이라도 벌 생각이었나? 멍청한 발상이군.”

고오오-!

무시무시한 기류에 휘감긴 <카오스>가 허공에 궤적을 새김과 함께.

콰아아앙-!

극강의 위력을 품은 한 줄기 섬광이 라그마온을 집어삼키며 하늘의 비공함대를 향해 솟구쳐 올라갔다.

잿빛 회오리가 끊임없이 휘돌고 또 휘돌아 천상 자체를 뒤흔든다.

무수히 뻗쳐나가는 칼날의 폭풍에 휘말린 나머지 47척의 ‘레퀴엠’이 엉망진창으로 반파되어 추락했다.

사도들은 성전 테라스에서 그 광경을 망연히 관망하며 주춤거렸다.

‘비공함대’는 불과 5분도 안 되어 전멸하고야 말았다.

“끄흑, 컥……!”

몸이 거의 반쪽이나 잘려나간 라그마온이 피를 한 움큼 토했다.

그는 <카오스>의 검격을 정통으로 맞았으나 놀랍게도 아직 목숨이 붙어 있었다.

대성이 의도한 바였다.

콱-!

“큭……!”

곁으로 다가온 대성이 난폭하게 라그마온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그리고 나머지 다섯 사도가 있는 성전 쪽으로 눈길을 돌리며 말했다.

이번에도 목소리는 마력이 실려 확성기처럼 웅웅 퍼져나갔다.

“지금부터 너희들이 맞이할 미래를 내가 보여주지.”

미래?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일까.

난데없는 뚱딴지같은 소리를 들은 사도들이 헛숨을 삼키던 가운데.

르뮈에와 오르키엘 등, 비교적 심약한 편에 속하던 사도들은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홱 돌렸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콰드득-!

라그마온의 잘린 몸통 안으로 대성이 손을 푹 쑤셔 넣고 있었으니까.

이윽고 도로 손을 빼냈을 땐, 분홍색으로 번들거리는 창자가 짐승의 꼬리처럼 줄기차게 뽑혀 나왔다.

성대가 갈리는 듯한 비명과 절규가 라그마온의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콱-!

“쿡……?!”

귀청이 따가웠던 대성은 그대로 라그마온의 입을 지금 막 뽑아낸 창자와 내장으로 틀어막았다.

게거품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눈이 뒤집히며 흰자가 드러난다.

[천상의 제7사도, 라그마온을 무찌르셨습니다.]

시스템의 검증이 이어졌다.

라그마온은 차마 눈에 담기도 버거울 정도로 참혹한 모습으로 사망하였다.

“…….”

너나 할 것 없이 사도 전원이 패닉에 빠졌다.

퍽-!

대성은 오장육부를 입에 문 채 죽은 라그마온의 시신을 발로 뻥 차서 날려 보내며 말했다.

“나는 한다면 하는 놈이야.”

***

안식의 세계.

멜카논은 뒷짐을 쥔 채, 복부가 활짝 열린 석상을 바라보았다.

좌우로 갈라진 복부 너머로는 ‘천상’과 이어진 통로, ‘게이트’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당장 가서 부족한 힘이나마 보태드리고 싶지만…….’

멜카논은 안식의 세계를 떠나지 못했다.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너는 이곳에 남아 섬멸룡과 발라르크, 그리고 내 가족들을 잘 보살피고 있어라.

군주의 명령을.

군말 없이 남긴 하였으나, 솔직한 말로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군주의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다. 다만, 아무리 군주라 하여도 설마 단신으로 천상을 깨부수시겠다니…… 회의적이다.

‘언제든 돌아오실 수 있도록 길은 열어놨으니 최악의 사태는 벌어지지 않겠지만, 힘든 싸움이 되겠지.’

더군다나 아직 마력을 전부 회복하시지 못한 상태에서 출전하셨다.

다른 건 몰라도, 지금의 마력 충전량으로 ‘필드 구현’은 무리일 터.

아무리 판데모니움의 마수들이 마력을 공물로 바친다 하여도, 부족한 마력을 충당하는 건 힘들 것이다.

“크르르-.”

그때.

묵직한 울음소리가 멜카논의 귀에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덧 의식을 되찾은 섬멸룡이 천천히 두 눈을 뜨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오, 몸은 좀 괜찮으신지요?”

“크르르-.”

역시 ‘고대룡의 심장’을 먹인 게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던 걸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의식을 차리니 멜카논은 놀랄 따름이다.

“크르르-.”

섬멸룡이 눈을 뜨자마자 제일 먼저 취한 행동은, 석상에 얼굴을 가져다 대고 코를 벌름거리는 것이었다.

짐승의 감이란 걸까?

섬멸룡은 자신이 모시는 주인이 이 석상 너머에 있다는 걸 눈치챈 건지, 애달픈 울음소리를 연신 흘렸다.

그 처연한 마음에 깊이 공감하며 멜카논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걱정입니다. 부디 크게 다치시지만 않으면 좋으련만…….”

***

[‘업화’ 모드의 첫 번째 특수 스킬이 발동됩니다.]

[특수 스킬 : <작염(灼炎)>]

[업화대검이 ‘근원의 파편’을 장착했습니다. 모든 특수 스킬이 한 단계 진화합니다.]

[<작염> → <멸염(滅炎)>]

화르륵-!!

그것은 붉지도, 푸르지도 않고 그저 새하얗기만 한 화염이었다.

업화대검에서 피어오른 순백의 불길이 대성의 몸을 감싸 안았다.

본래 <작염>은 소유자인 대성을 불의 거인으로 거듭나게 하는 스킬.

그리고 ‘근원’의 힘을 얻어 그로부터 한 단계 더 진화한 <멸염>의 결과물은 ‘거인’ 같은 게 아닌,

악마(惡魔) 그 자체였다.

넘실거리는 새하얀 불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덮인 대성의 모습은 천상의 사도들이 그토록 부르짖던 ‘하얀 악마’가 따로 없었다.

“너희들, 언제까지 거기서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거냐.”

불꽃처럼 타오르는 안광이 매섭게 이글거리며, 상어처럼 삐죽삐죽한 이빨이 드러난 입술이 움직였다.

“내려와라, 이 머저리 새끼들아.”

악마의 오른손에 쥐어진 하얀 불꽃의 십자검(十字劍)이 허공에 횡선을 그은 순간.

콰콰콰콰-!

<멸염>이 자아낸 검기의 충격파가 대지를 갈라내며 다섯 사도가 선 성전을 강타했다.

콰아아앙-!

“……?!”

굉음이 작렬함과 함께 성전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사도들은 날개를 펼칠 생각도 못 하고 그만 지상으로 추락하였다.

이윽고 성전이 완전히 붕괴하고 자욱한 연기가 일대에 흩어진다.

“으, 으으…….”

산더미처럼 쌓인 파편 사이로 사도들이 바닥을 기며 신음했다.

타닥, 타닥-.

주변엔 하얀 불티가 휘날렸다.

“콜록! 콜록!”

잿가루가 입에 들어갔는지 몇몇 사도들이 기침을 뱉었다.

갑자기 너무 많은 일이 벌어져서 머리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했다.

“다들 괜찮-.”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아르마간이 다른 사도들을 보며 입을 연 순간.

섬찟-.

숨이 덜컥 막힐 만큼 오싹한 살의가 아르마간의 어깨를 짓눌렀다.

자신이 아닌,

오르키엘 쪽에서 말이다.

“피해라! 오르키엘!”

“……?”

아르마간이 다급히 외쳤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후-웅!

빛과 같은 속도로 연기를 뚫고 들어온 하얀 악마가 십자검을 뻗었다.

칼날은 정확히 오르키엘의 복부를 겨냥하고 있었고,

“안 돼-!”

푸-욱!

십자검은 악마가 노리고 있던 지점을 예리하게 관통하고 지나갔다.

“걱……!”

아르마간의 외침을 무색하게도, 오르키엘은 많은 양의 핏물을 입에서 게워냈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프고 무서워서.

그 어떤 사도보다 당차고 용맹하다 칭송받던 여전사 오르키엘은 처참하게 뚫린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며 끅끅 눈물을 흘렸다.

“처울지 마.”

“꺄흐으윽……?!”

촤아악-!

하얀 악마가 복부에 깊숙이 욱여넣었던 십자검을 난폭하게 빼냈다.

오르키엘이 뚫린 배를 붙잡으며 쓰러지려던 순간.

“네놈들 때문에 피눈물을 흘린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알아?”

하얀 악마는 그녀가 자신의 상처 부위를 감싸는 걸 하락하지 않았다.

그는 우악스러우리만치 크고 투박한 손을 오르키엘의 구멍 뚫린 배에 쑤셔박았다.

“끄흑, 아, 아아아아악-!!”

흘러넘치는 피가 오르키엘의 의복을 선연한 진홍빛으로 물들였다.

“아악-!! 악-!! 으아아악-!! 흐익?! 흑, 허, 끄그그……?!”

꼴사나운 비명이 터져 나온다.

겪어보지 못한 격통을 느끼는 오르키엘의 동공이 넘어갔다.

투박한 손이 내장을 주무를 때마다 침이 줄줄 흐르고 신음이 잇새로 새어 나왔다.

“이노오오오옴-!!”

이성을 잃고 분노한 사도들이 포효하며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하얀 악마는 오르키엘의 내장을 콰드득 뽑아내며 말했다.

“어느 세월에 너희를 다 족치나 걱정했는데-.”

웃으면서 말이다.

“이렇게 한꺼번에 덤벼주니 고마워서 어쩔 줄을 모르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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