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옥에서 돌아온 한대성-173화 (173/180)

# 173

173

[영지에 새로운 종족이 합류해 영민의 수가 급증했습니다!]

[‘하급 영지’가 ‘상급 영지’로 대폭 격상(格上)합니다!]

[‘상급 영지’의 영주가 되신 것을 기념하여 스킬 <10만 전생>이 보상으로 주어집니다!]

네 명의 사도가 쥔 무기가 폭풍처럼 휘몰아치던 가운데.

아슬아슬한 간격으로 그것들을 피해내던 대성의 눈앞에 갑자기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뭐지?’

그러고 보니까, 한창 싸우던 중에 영지에 무슨 일이 생겼다고 메시지가 뜬 것 같기도 한데…….

정신없이 사도들과 싸우느라 내용이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대성은 그러려니 하고 신경을 껐다.

어쨌든 영지의 격이 상승했다는 건 기쁜 소식이 아니겠는가?

“어딜 한눈을 팔아, 이 자식!”

네 번째 사도, 아도니스가 휘두른 육중한 핼버드가 대성의 정수리를 향했다.

쾅-!

쩌렁쩌렁한 폭음이 작렬했다.

하지만 그것은 아도니스가 원했던, 생물체의 정수리가 쪼개지고 살점이 튀는 소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

아도니스는 지면에 깊숙이 박힌 도끼날을 빼내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아무리 힘을 주어도 도끼날은 빠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가 한눈을 판 거로 보였나? 그렇게 보였다면 사과하지.”

꾸구국-!

대성이 <멸염>의 불길로 뒤덮인 발로 지면에 박힌 도끼날을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양팔에 힘줄이 팽팽할 정도로 힘을 써도 핼버드가 꼼짝도 하지 않아 아도니스의 마음이 초조해지던 가운데.

대성의 눈에서 광채가 흘러나왔다.

“지금부터 단 한순간도 네놈들로부터 눈을 떼지 않겠다.”

오싹-.

아도니스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기 무섭게, 살이 꿰뚫리는 소리가 끔찍하게 울려퍼졌다.

푸-욱!

<멸염>이 만들어낸 십자검이 어김없이 아도니스의 배를 관통했다.

“아도니스-!”

남은 사도들의 포효가 이어졌다.

아르마간과 르뮈에, 그리고 에인리히가 동시에 대성에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

화르륵-!

하얀 불꽃에 잠긴 대성의 등 뒤로 진홍의 날개 여섯 장이 불쑥 튀어나왔다.

스킬, <불꽃 거인의 날개>였다.

“큭……!”

“아도니스! 죽으면 안 된다! 정신 차려라, 아도니스-!”

잘게 분열되기 시작한 날개가 불꽃의 깃털을 연이어 난사했다.

끊임없이 짓쳐드는 깃털의 세례가 사도들의 진로를 막았다.

“저놈들이 너보고 정신 차리라고 하는데-.”

콰지직-!

대성이 십자검을 내리그은 순간, 쫙 갈라진 아도니스의 복부 밖으로 내장이 마구잡이로 흘러나왔다.

비명이 이어지는 건 당연지사였다.

“허, 어흐?! 흐, 흐아아아악-!!”

“어때. 이러면 정신이 좀 드나?”

대성은 멈추지 않았다.

아직, 여기서 멈춰버리면 ‘약속’이랑 달라지니까.

콰직-!

하얀 불꽃의 손이 아도니스의 머리통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살과 뇌가 익는 끔찍한 고통에 아도니스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한층 더 날카로운 절규를 내지르는 그의 입이 크게 벌어지고,

“우그읍?!”

대성은 이번에도 일말의 주저 없이 그 쩍 벌려진 입안으로 오장육부를 포악하게 쑤셔넣었다.

꿀렁꿀렁한 감촉이 목구멍을 가득 채우고 기도(氣道)를 콱 막았다.

결국, 과다출혈과 호흡 곤란, 그리고 쇼크 등 여러 이유가 중첩되어 아도니스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으아아아아-!!”

사도들은 미칠 지경이었다.

아르마간은 광분했고, 르뮈에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눈물을 흘렸으며-

“…….”

에인리히는 가늘게 좁힌 눈매로 천상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창공에 드리운 구름 한가운데에.

하얀 악마가 드나들었던 ‘게이트’가 보였다.

***

불과 몇 분 전.

“게이트가 사라져서 이제야 좀 숨통이 트이나 싶었더니…….”

대성이 ‘지배자의 종자’를 심었던 영지, 뉴멕시코의 중심지.

심상찮은 낌새를 느끼고 움막에서 나온 사람들은 먼 곳을 응시하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하루도 마음놓을 수 있는 날이 없냐!”

너른 황야 저 끄트머리에서.

각양각색의 종족이 뒤섞인 몬스터 군단이 쳐들어오고 있었으니까.

평상시였다면 결코 뭉칠 리 없는 괴물들이, 지금은 같은 대열에 합류하여 진군해오는 게 아닌가.

“이런 구역질나는 동맹 관계도, 저들을 전부 몰살하는 순간 끝인 줄 알아라, 칸놀.”

“아직 전쟁은 시작도 않았는데 벌써 재수없는 말만 해대는군. 드래곤도, 타이탄도, 마해의 생선 놈들도 없는 지금 득세하는 건 우리 같은 수인족(獸人族)이란 걸 모르나?”

온몸이 검은 털로 뒤덮인 ‘블랙 라이칸’과 초록 비늘 위로 철갑을 덧대어 입은 ‘리자드맨 킹’이 동시에 선봉에 있었다.

그들은 상위 차원이 멸망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급조된 ‘몬스터 동맹’의 대표자였다.

리자드맨 킹, 칸놀이 코모도왕도마뱀처럼 생긴 군마(軍馬)의 고삐를 쥔 채 말했다.

“그리고 우리가 손쉽게 이길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으니 방심하지 마라. 저긴 드래곤과 타이탄도 압살했다던 괴물 같은 인간 놈이 다스리는 영지야.”

“흥, 소문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직접 칼을 맞대보면 알겠지.”

블랙 라이칸이 흉악한 어금니를 씩 드러내며 콧방귀를 꼈다.

만일 상위 차원의 존재들을 멸족시킨 자가 인간이라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그자는 아마 현 상황에서 제일 치명적인 ‘적’일 것이다.

공공의 적 앞에선 어제 혈투를 벌인 자도 오늘 아군이 되는 법.

그들은 드래곤과 타이탄을 이어 새로이 세계를 지배할 패권 다툼을 벌이기에 앞서, 우선 그 소문 속의 인간부터 먼저 죽이기로 한 것이다.

“소문이 사실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하나같이 멍청한 표정들이로군.”

“흠……. 드래곤은커녕 얼간이 고블린한테도 쩔쩔맬 듯한데.”

뭐, 상관없을 터이다. 소문이 사실이어도 좋고, 거짓이어도 상관없다.

어느 쪽이든 동맹군은 유린을 즐기면 그만이니.

블랙 라이칸과 리자드맨 킹이 동시에 병장기를 들어올리며 외쳤다.

“진격하라-!”

크아아아-!

오오오오-!

지평선의 끝에서 끝까지 물들인 대군이 함성을 지르며 질주하기 시작했다.

두두두!

그 기세가 어찌나 흉흉하고 강맹한지 땅이 거세게 뒤흔들렸다.

“제발 우리 좀 가만히 내버려둬라! 이 괴물 새끼들아!”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난데없이 전쟁을 치르게 된 사람들이 울분을 토했다.

스릉-.

영지의 가디언, 아인프리트가 검집에서 칼을 뽑으며 전면에 나섰다.

결국,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마법을 영창했다.

인류와 몬스터 동맹의 진영이 서로 격돌하기 직전.

펄럭-!

“……!”

선두에서 내달리던 블랙 라이칸과 리자드맨 킹은 보았다.

돌연 하늘에서 내려와 시야를 한가득 가리는, 커다란 깃털들을.

“멈춰라!”

단순한 새의 깃털이라기엔 그 크기나 생김새가 예사롭지 않다.

문득 안 좋은 예감이 스친 선봉장들이 급히 후발대를 멈춰 세웠다.

“이건 대체…….”

제일 먼저 고개를 들어 하늘을 확인한 것은 블랙 라이칸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쫙 찢어진 늑대의 동공이 한층 더 가늘게 수축했다.

“맙소사……!”

“저건?!”

블랙 라이칸에 이어서 리자드맨 킹, 그리고 선봉장의 시선을 따라 하늘을 본 나머지 몬스터 병사들도 그만 두 눈을 의심하고야 말았다.

그뿐일까?

“저놈들, 갑자기 멈췄어.”

“그런데 이 깃털은 갑자기 뭐지?”

“어어! 다들 위를 좀 봐!”

인류 또한 하늘에서 떨어지는 깃털의 정체를 보곤 깜짝 놀랐다.

펄럭-! 펄럭-!

그것은 독수리였다.

아니, 과연 태양을 전부 가릴 만큼 커다란 저것을 그냥 ‘독수리’라고만 불러도 되는 걸까?

거대 독수리 떼가 하늘의 구름을 뚫고 내려오고 있는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웨, 웬 갑자기 독수리가…….”

“아, 아니야. 잘 봐. 독수리에 누군가 타고 있는데?!”

누군가 독수리를 가리키며 그리 외쳤다.

긴 귀와 창백한 피부, 그리고 무기를 쥔, 언뜻 보기엔 인간과 닮은 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정체가 결코 인간은 아니라는 사실이 리자드맨 킹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엘프 놈들까지 왜 인간들의 영지로 찾아온 거지?!”

엘프!

그야말로 신화와 전설, 그리고 판타지에서나 실컷 들어본 공상(空想) 속 존재의 깜짝 등장이었다.

엘프는, 드래곤들과 수차례 전쟁을 거듭해왔음에도 지금껏 꿋꿋이 살아남았을 정도로 전투에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이다.

만약 그들이 전쟁에 난입한다면 몬스터 동맹의 승리는 요원해질 터!

“아니, 잠깐만. 혹시 모르잖아. 저 엘프들도 우리 동맹에 합류해 인간들을 쓸어버릴-.”

쐐애액-! 쾅-!

빙결 폭발 마법으로 강화된 화살 한 발이 블랙 라이칸의 뺨을 스치고 뒤쪽의 병사들에게 작렬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하늘의 엘프들이 쏘아 보낸 화살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블랙 라이칸이 방금 했던 말이 헛된 희망이었음을 나타내는 방증이기도 했다.

“평소에 죽자 살자 싸우던 것들이 이렇게 똘똘 뭉친 것을 보니 결사 항전을 다짐하고 온 모양인데…….”

바로 그때, 하얀 갑주를 입은 엘프 여전사가 앞에 나서서 군단을 대표해 입을 열었다.

가장 고결한 하이 엘프라 불리는 요정 왕국의 여왕, ‘네비아’였다.

“그 죽어도 상관없다는 식의 각오, 우리가 헛되지 않게 해주지.”

“큭……!”

죽여버리겠다는 선언의 완곡한 표현이었다. 두 선봉장의 얼굴이 엉망진창으로 일그러졌다.

어차피 뒤는 없다.

이렇게 된 이상, 부딪칠 뿐!

“계속 진격하라-!”

엘프들의 기백(氣魄)에 짓눌렸던 몬스터 군단들이 아까보다 훨씬 형편없어진 기세로 돌격했다.

반면 엘프라는 든든한 동맹군을 얻은 사람들의 사기는 대단하였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더니!”

“이참에 지구의 주인이 누군지 서열 정리 제대로 해보자고!”

때아닌 대전쟁이 펼쳐졌다.

그리고 대전쟁이라는 그 이름이 무색하게도, 너무나 싱겁게 끝이 났다.

와-.

뉴멕시코에선 기쁨에 찬 사람들의 환호가 끊이질 않았다.

엘프들의 전력은 엄청났다.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사실상 인류 측에선 한 게 없다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말이다.

저벅-.

아직 전쟁의 여운이 전부 가시지 않은 가운데.

승리의 주역인 엘프들의 여왕, 네비아가 사람들을 향해 다가갔다.

“이곳의 영주를 만나고 싶습니다.”

웅성웅성.

‘영주’라는 단어가 튀어나오자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곧 그것이 ‘대표자’를 의미한다는 걸 깨닫곤 일단 아인프리트를 내세웠다.

만약 대성이 여기 있었다면 당연히 그가 나섰겠지만, 지금은 아니니까.

어쩐지 음산한 기운이 물씬 풍기는 아인프리트의 모습을 본 네비아가 일순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애써 표정 관리를 한 다음, 흔쾌한 손짓으로 악수를 청했다.

“당신이 영주 되시는 분입니까?”

그 물음을 들은 아인프리트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다. 나의 주인께선 따로, 계신, 다…….”

“…….”

언데드 특유의 띄엄띄엄 말하는 화법. 네비아는 어색하게 웃었다.

개의치 않았다. 그래도 대화가 성립한다는 게 어디인가.

“저희 엘프족은 최근 드래곤들의 군주를 없애고, 앞으로 세계를 평화로 인도할 구원자가 이곳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네비아는 맞은편에 선 아인프리트, 그리고 뒤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잘 들리도록 큰 목소리로 말했다.

“현재 저희 왕국은 드래곤의 습격을 받아 상당한 피해를 보았습니다. 만약 당신들의 영주가 아니었다면 엘프족은 괴멸했겠죠. 그분은 저희에게 있어서도 ‘구세주’나 다름없습니다!”

사람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어째서일까?

본인이 칭찬을 듣는 것도 아니건만, 대성을 향해 엘프 여왕이 존경의 표현을 보일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전율이 일었다.

그래, 어쩌면 대성이.

자신들과 같은 ‘인간’이기에.

이렇게 이종족마저 존경의 의사를 내비칠 만큼 위대한 자가, 자신들과 같은 ‘인간’이기에.

그렇기에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드는 전율을 느끼는 걸지도 모른다.

엘프 여왕이 빙그레 웃었다.

“저희는 당신들과 공생(共生)하고 싶습니다. 이 넓은 땅에서 당신들과 함께 살아가, 함께 고난과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구세주가 관철하는 길을 함께 걸어가고 싶습니다.”

엘프 여왕이 덧붙였다.

완전히 인류의 편이 되기로 한 엘프족은 현재 세계 각지에 파견되어 시련에 처한 인간들을 돕고 있으며, 아직 잔류한 몬스터를 처리하고 병들고 다친 자들을 철저히 보호하고 있다고.

“아…….”

덤덤하게 이어지는 네비아의 선언을 듣는 사람들의 눈가에, 방울진 눈물이 뚝뚝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평화.

2차 대격변이 도래하고 지구가 지옥이 되어버린 뒤, 절대로 실현되지 않았을 것 같았던 그 단어가.

보였다.

손에 잡힐 듯이 가까워졌다.

그토록 갈망하던 희망을 가슴 깊이 느끼는 사람들의 귓가로, 네비아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흘렀다.

“당신들의 세계는 안전합니다.”

***

천상.

‘놈이 들어온 저 구멍이 바로 놈이 사는 세계와 이어진 통로일 테지!’

<불꽃 거인의 날개>가 흩뿌리는 깃털을 정신없이 쳐내며, 여섯 번째 사도 에인리히는 하늘에 열린 ‘게이트’를 노려보았다.

어차피 이대로 계속 하얀 악마와 전면전을 벌여봤자 승산이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놈이 사는 세계로 넘어가 인질을 사로잡는다!

‘더럽고 치졸한 방식이지만…… 남은 사도들까지 개죽음당하는 것보단 낫지!’

펄럭-!

결심을 마친 에인리히의 등 뒤로 금빛 날개가 찬란하게 돋아났다.

이윽고 땅을 박차고 날아오른 그녀는 빠르게 격전지에서 벗어났다.

“에인리히……?”

난데없이 도주하는 에인리히를 본 아르마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곧 에인리히의 도주 경로가 하늘에 뚫린 구멍임을 알게 된 순간,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군! 저 악마 놈의 세계로 넘어가서 인질을 잡든 뭘 하든 대안을 강구해보겠다는 거지!’

그렇다면 자신과 르뮈에가 할 일은, 에인리히가 무사히 저 너머로 도착할 수 있도록 악마를 붙드는 것일 터!

“내 세계로 넘어갈 작정이로군.”

바로 그때.

무덤덤한 대성의 목소리를 들은 아르마간과 르뮈에가 흠칫 놀랐다.

왜 저렇게 태연하지?

상식적으론 여기서 추격해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그러나 대성은 오히려 팔짱까지 끼며 에인리히를 방관하고 있었다.

대성이 조소를 내비쳤다.

“해볼 테면 해보라지.”

“이런 젠장……!”

상대가 저런 반응을 보인다는 건 무슨 꿍꿍이가 있다는 거다.

아르마간이 다급하게 에인리히의 이름을 부르짖으려 했으나,

“윽……?!”

에인리히는 이미 어느새 하늘에 열린 ‘게이트’를 넘어간 상태였다.

그리고 게이트를 넘어 다른 세계에 도착한 에인리히가 본 것은, 사방팔방이 하얗게 탈색된 괴기스러운 공간이었다.

“무슨-.”

여긴 지구랑 이어진 게 아니었나?

그런 의문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에인리히의 뒤에서,

섬멸룡이 아가리를 커다랗게 벌리고 있었다.

희미하게 흘러나오는 짐승의 울음소리. 이상한 악취. 뜨거운 열기.

결정적으로 자신의 몸을 덮고, 바닥까지 크게 드리우는 그림자.

그 모든 것을 본 에인리히가 동공을 흔들며 뒤를 돌아본 순간.

콰직-!

섬멸룡이 입을 닫았다.

곱상한 얼굴과 잘록한 허리가 한낱 고깃덩이로 전락함과 함께 엄청난 양의 피가 확 뿜어져 나왔다.

우득-! 콰드득-!

섬멸룡은 입속에 들어온 고기를 뼈째로 씹고 또 씹어댔다.

“끄, 끄으윽…….”

아가리가 열리고 닫힐 때마다, 어금니 사이로 슬쩍 삐져나온 에인리히의 손이 움찔움찔 경련했다.

차를 홀짝이며 그 광경을 구경하던 멜카논이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배가 고프다지만 그 더러운 걸…… 지지에요, 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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