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옥에서 돌아온 한대성-178화 (178/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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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정답인지도 모르는 한심한 놈……!>

머리와 심장이 사슬에 끔찍이 꿰뚫려 죽은 대성을 노려보며 창조주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모멸감. 분노. 허탈함. 아쉬움. 그런 감정들이 소용돌이처럼 뒤엉켜, 힘들지도 않은데 호흡이 가빠진다.

<…….>

그중에서도 제일 뼈저리게 느껴지는 감정은 모멸감이 아니다.

허탈함, 그리고 아쉬움.

한대성, 그는 자신이 만들 신세계에서 유일한 동반자가 될 수 있는 존재였다.

자신과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곳을 바라볼 자격을 갖춘, 가장 신에 가까운 인간이었단 말이다.

하지만 마지막의 마지막에 결국, 그릇된 대답을 내놓았다.

그래서 죽였다.

그것은 오롯이 창조주 자신의 의지에 따른 행동이지만…….

<나답지 않게 너무 감정적으로 군 건가……?>

다시 한 번, 그 어떤 때에도 느끼지 않았던 감정이 솟구쳤다.

바로 ‘후회’였다.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설득’이나 ‘회유’를 시도했더라면, 하는 후회.

<이런 젠장. 네놈, 정말로 죽었나? 눈 좀 떠봐라.>

창조주는 초점이 전부 사라진 눈을 가늘게 뜬 채 굳은 대성의 뺨을 툭툭 건드렸다.

혹여나 싶은 심정에 그의 머리와 심장을 꿰뚫고 사지를 속박했던 사슬도 모조리 제자리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이미 엎지른 물을 다시 그릇에 담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철퍼덕.

사슬에서부터 자유로워진 대성의 육신이, 줄 끊어진 마리오네트처럼 볼품없이 바닥에 엎어졌다.

뚫린 머리와 흉부에서 흘러넘친 핏물이 융단을 한가득 붉게 물들였다.

<…….>

그제야 창조주는 대성이 정말로 죽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말로는 신이니 전지전능한 존재니 실컷 떠들었지만…….

사실 그렇지만도 않다.

진짜 ‘신’이었다면 죽은 자를 되살리는 기적도 가능했을 테니까.

그러나 그녀는, 이미 생명 활동이 정지한 생명을 도로 되살리는 기적은 행할 줄 모른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듯 유기물을 만들어내는 건 가능하지만 죽은 자의 심장을 고치고 부활시키는 방법은 모르는 것이다.

누군가를 되살리고 싶다.

그런 생각을 품었던 적이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얄궂은 일이었다.

<젠장……!>

이제야 자신과 동등한 자리에 설 자를 발견했나 싶더니 이런 식이다.

자신은 이번에도 끝끝내 고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는 사실에 창조주는 무력감을 느꼈다.

무력감은 곧 걷잡을 수 없는 파괴 본능으로 직결되었다.

<그래, 어차피 천상을 세웠을 때도 나는 혼자였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 이렇게 된 이상, 나 좋을 대로 전부 죽여주마, 쓰레기들.>

격정에 가득 찬 본체의 감정에 호응한 걸까, 클론들이 아까보다 한층 더 섬뜩한 살기를 흩뿌렸다.

우선은 이 꼴도 보기 싫은 한대성의 시체를 흔적도 없이 가루로 만들어 버리려던 그때.

끼익-.

복도의 왼편에 있는 문이 슬며시 열렸다.

이내 완전히 젖혀진 문 너머엔, 혼절한 혜정과 얼굴이 온통 눈물로 범벅된 지수가 있었다.

<…….>

창조주는 싸늘하게 번뜩이는 시선으로 둘을 노려보았다.

아아, 그랬었지. 신경 쓸 가치도 없었기에 잠깐 잊고 있었다.

저 둘은 아까부터 문 틈새로 이쪽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말인즉슨, 한대성이 사슬에 뚫려 죽은 장면까지 모조리 봤다는 거다.

그걸 보고 한 명은 새파래진 안색으로 기절했고, 한 명은 미친 듯이 울고 또 울었다.

반응을 보아하니,

<이놈의 혈육(血肉)인가 보군?>

창조주는 입가를 기괴하게 비틀며 둘을 향해 다가갔다.

하지만 혼절한 혜정을 부축하는 중인 지수는 창조주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차갑게 식은 몸으로 바닥에 쓰러진 대성만을 응시보고 있었다.

“오, 오빠……. 흑, 오, 오빠. 눈 좀 떠봐, 오빠, 제발 눈 좀……!”

마음 같아선 가서 몸이라도 흔들어 깨워보고 싶은데, 기절한 혜정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저벅-.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오열하는 지수의 앞으로, 어느덧 창조주가 다가섰다.

<저놈과 같은 피를 공유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나약한 놈들이군.>

마침 잘됐다.

아직 한대성에 대한 울분도 다 가시지 않은 참인데.

창조주는 핏발이 선 눈으로 지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저놈을 원망하는 마음이 들 만큼 처참한 꼴로 죽어가게 해주마, 벌레 같은 것들.>

창조주가 허리를 살짝 굽혀, 손바닥을 둘을 향해 천천히 내뻗었다.

그리고.

푸확-!

사방에 튀어 오른 핏물이 중앙복도의 벽과 천장을 낭자하게 적셨다.

지수와 혜정의 것이 아닌.

창조주의 핏물이.

파스스슷-!

잘린 목의 단면에서 검붉은 선혈이 분수처럼 치솟았다.

그것을 망연히 쳐다보는 지수의 귀에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더러운 손으로 군주님의 가족분들을 건드리지 마십쇼.”

부글부글-!

절단된 목의 살점이 거품처럼 들끓었다. 창조주는 수복된 얼굴을 돌려 목소리의 정체를 확인했다.

멜카논.

전이 주술로 단숨에 중앙복도까지 당도한 그가, 대성의 시체 앞에 서서 창조주를 노려보고 있었다.

대성 못지않게 피투성이가 된 몸을 이끌고.

창조주의 관자놀이에 십자 힘줄이 꿈틀거렸다.

<……아직도 안 죽은 거냐?>

“뒤처리 하나 제대로 못 하는 주제에 창조주는 무슨. 양심에 찔리지도 않습니까? 루드라.”

<…….>

“파괴의 근원, 루드라. 예, 저는 그 이름을 알고 있습니다. 강림하는 족족 세계를 허물어뜨리는 존재에 대한 전승을 잠깐 들어본 적이 있거든요.”

창조주, 아니, ‘루드라’는 마음속에서 분노가 끓어오르는 걸 느꼈다.

주제에 창조주냐는 비아냥을 들어서? 아니면 하찮은 것이 함부로 자신의 진명(眞名)을 지껄여서?

아니다.

<내가 좋아서 세계를 부순 게 아니라…….>

그보다 더 건드려선 안 될 부분을, 하찮은 것이 긁어댔으니까.

진노에 잠긴 루드라의 머리칼이 빛살에 휩싸여 불꽃처럼 일렁거렸다.

<세계가 나를 받아들이지 못했단 말이다! 근데 뭐? 파괴의 근원? 웃기지 마라! 전지전능한 신을 무슨 재앙(災殃)이라도 된 양……!>

“재앙 맞지 않습니까. 당신 때문에 우리가 다 죽게 생겼는데.”

<이놈이……!>

루드라가 손수 사지를 찢어 죽일 심산으로 멜카논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긴 순간.

콰-앙!

돌연 바닥을 뚫고 솟구친 대검 한 자루가 루드라의 몸을 불태웠다.

바로 업화대검이었다.

화마(火魔)를 자아낸 업화대검이 멜카논의 손으로 전이했다.

대검에 서린 영령, 마그누스는 기꺼이 멜카논의 손길을 허락했다.

“주인이 잠시 쓰러졌다 하여 멀쩡했던 검이 사라지겠습니까?”

검극을 타고 쏘아져 나간 염탄(炎彈)이 한 번 더 루드라를 집어삼킨 불길 사이로 파고들었다.

콰아아앙-! 콰아아앙-!

고성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난폭한 굉음이 연이어 울려퍼졌다.

주변에 있던 클론들이 일제히 멜카논에게 달려들었다.

서걱-!

검을 쥐지 않은 나머지 한 손에서 칼날의 폭풍이 방출되었다. 예기(銳氣)에 휩쓸린 그림자들이 먼지처럼 사라졌다 재생하기를 반복했다.

<계속해봐라.>

콰아아앙-! 콰아아앙-!

염탄이 빗발치는 폭음 속에서 루드라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타오르는 화염 너머로, 끊임없이 육신을 수복하며 걸어오는 루드라의 모습이 보였다.

<개미가 아무리 발악해봤자 산을 무너뜨릴 순 없는 법이니.>

알고 있다.

아무리 염탄을 쏘고 칼날의 폭풍을 날려봤자 루드라에겐 유의미한 타격을 입힐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이 발버둥 자체는 절대 무의미하지 않았다.

‘군주님은 한계가 없으신 분이다.’

그가 다시 살아날 것이란 걸 멜카논은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막연한 믿음이 아니다. 억지로 품어보는 희망도 아니다.

멜카논은 대단히 이성적이었다. 최악의 적을 만난 지금일수록, 그 어떤 때보다 냉정해질 수 있었다.

그 냉정함이 내린 결론이다.

자신 또한 대성과 같은 마력 회로로 얽힌 소환수이기에 확신했다.

‘군주님께선 아직 살아 계신다!’

***

그래, 대성은 아직 살아 있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끼인 채.

“…….”

어둠의 망망대해를 떠다니던 대성은 슬며시 눈을 떴다.

풍경 자체는 익숙했으나 느껴지는 감각이 다르다.

여기는 ‘지구의 근원’이 아니다.

그렇다면 여긴 대체 어디일까…….

<어디인지는 우리도 모른다.>

<오늘 막 급조해서 말이지.>

<대충 ‘집결지’라고 부를까. 아니지. 이름이 뭐가 중요해.>

<그래. 이름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이놈이 드디어 눈을 떴다는 거야.>

<기다리느라 지칠 뻔했네.>

목소리들이 마구잡이로 얽히며 어둠의 망망대해에 웅장하게 메아리쳤다.

‘지구의 근원’과 처음 만났을 당시 느꼈듯, 청각이 아닌 ‘오감’ 그 자체를 휘젓는 듯한 목소리들.

‘생물’이 아닌, 그보다 더 아득한 경지를 초월한 존재들이 말을 걸어오는 듯한 감각.

그렇다면,

<정신이 좀 드나?>

대성은 눈을 크게 떴다.

땅과 하늘의 경계조차 없는 어둠 속에서도, 확연히 그 위용이 드러나는 존재들이 보였다.

저것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어떻게 묘사하면 좋을지 감도 안 잡히는 그런 존재들.

추상을 유형화하면 저런 모습일까?

바로 그때.

‘존재들’이 마침내 눈을 뜬 대성을 향해 정체를 밝혔다.

<우리는 네놈이 무너뜨렸던 상위 차원의 근원들이다.>

그 순간.

대성의 심장박동이 크게 뛰었다.

그는 머리로 생각하기 이전에 본능으로 먼저 업화대검을 찾았다.

저 존재들의 정체가 ‘상위 차원의 근원’이라면 죽여서 그 파편을 취해야 할 적들이기 때문이다.

파편은 ‘근원’에게 팔다리와 같았고, 그것을 강탈한다는 건 전쟁 선포나 다름없었다.

하물며 하나도 아니고 다섯이 한꺼번에 나타날 줄은!

칼자루를 쥐고자 하는 대성의 손이 애처롭게 허공을 휘저었다.

하지만,

“…….”

손에는 아무것도 쥐어지지 않았다.

대성이 식은땀을 흘리며 허전한 빈손을 흘겨보는 사이.

다섯 근원이 말을 걸어왔다.

<현세에 검을 놔두고 왔으면서 지금 찾아봤자 그게 무슨 의미지?>

<보고 있기 딱하니까 그만둬라. 그리고 어차피 우린 너랑 싸울 마음이 없다.>

<송장이 된 놈을 이겨보겠답시고 덤비는 것도 자존심에 안 맞지.>

멈칫.

송장이란 말을 들은 순간, 대성의 몸이 경직되었다. 그리고 떠올렸다.

‘그랬었지.’

이곳에서 눈을 뜨기 전, 자신은 창조주에게 죽었다는 사실을.

자신도 모르게 헛숨이 나왔다.

눈앞에 펼쳐진 이 어둠이 너무나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가족. 엄마랑 지수가…….’

절박한 심정이 담긴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당연히 통로 따윈 보이지 않았고, 억지로 길을 열 수단도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저 ‘근원’들과 맞서 싸워, 어떻게든 이곳을 빠져나가는 수밖에.

각오를 다짐한 대성이 다시 몸을 돌려 근원들을 마주 보며 말했다.

“덤벼.”

<덤비긴 뭘 덤벼. 막 자다 일어나서 정신이 없니? 우린 너랑 싸울 마음이 전혀 없다니까.>

“…….”

느닷없이 튀어나온 평화 선언에, 대성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싸울 마음이 없다니?

‘지구의 근원’은 분명 상위 차원의 근원들이 적대적으로 나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혹시 거짓말을 하는 건가 싶어서, 대성은 ‘사주의 눈’을 발동했다.

하지만 죽었다는 이유 때문인지, 시스템의 대답은 침묵뿐이었다.

대성은 경계심을 풀지 않은 채 조심스레 물었다.

“나랑 싸울 마음이 없다면, 왜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난 거지?”

<도와주고 싶으니까.>

“…….”

<아니, 뭐. 사실 우린 지금도 너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중이야. 우리가 관장하는 별의 지배자를 멋대로 죽이고 그 생명석을 뺏었으니까.>

다섯 근원의 중심에 선 존재가 멋쩍은 목소리로 그리 말했다.

대성은 어렴풋하게 타이탄의 형상을 한 저 근원이 ‘아틀라스’를 관장하는 존재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데 너보다 더 얄미운 놈이 누군지 알아? 루드라, 그 년이야.>

“루드라가 누군데.”

<널 죽인 그 년 말이야. 난동 피우는 것밖에 할 줄 모르면서 자기를 창조주라고 치켜세우는 그 년.>

루드라의 이야기에 근원들이 격분한 걸까. 어둠의 망망대해가 해일을 맞은 육지처럼 요동쳤다.

한순간이라도 정신을 잃었다간 남은 영혼마저 그대로 소멸해버릴 듯한 압도적인 격(格).

대성이 눈살을 찌푸린 채 정신을 다잡는 사이 근원이 말을 이었다.

<우리 같은 상위 차원의 근원뿐만이 아니야. 그 아래, 심지어 티끌보다 작은 차원의 근원들도 루드라를 깊이 원망하고 있어.>

<그 녀석이 차원수를 세운 탓에 우리들의 별은 얼어붙은 시간 속에 갇혀 있어야만 했지.>

<하지만 우리 같은 근원은 추상의 개념에 머무른 존재이기에 현세에 영향을 끼칠 수가 없어. 같은 근원인데도 멋대로 활개치고 다니는 루드라 그 년이 돌연변이인 거지. 대우주가 낳은 돌연변이.>

대성은 보채지 않고 묵묵히 근원들의 한탄을 들어주었다.

지금은 저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편이 ‘최선’으로 향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직감이 스쳤기 때문이다.

<대체 어떻게 하면 루드라를 없앨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우리끼리 결론을 냈다.>

<현세에 머문 존재 중, 그나마 유일하게 루드라와 맞설 수 있는 자는 한대성 너밖에 없어.>

대성과 루드라.

둘 중 누가 더 밉냐고 묻는다면, 근원들은 서슴없이 후자를 택했다.

애당초 이 모든 사태를 초래한 존재가 루드라였으니까.

그리고,

<너는 네가 사는 세계를 지키기 위해 해야만 하는 행동을 선택했을 뿐이야. 네가 밉다고 해서 우리가 그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어.>

“…….”

<좋겠네. 이 별의 근원은. 너처럼 굳건한 녀석을 주민으로 두다니.>

“그래서 요지가 뭐지?”

설마 이런 잡담이나 나누려고 상위 차원의 근원들이 모인 건 아닐 터.

바깥엔 여전히 루드라가 날뛰고 있을 것이다.

슬슬 조급해진 대성이 요지가 뭐냐고 묻자 ‘아틀라스’의 근원이 다른 근원들을 대표하여 말했다.

<네게 우리들의 파편을 하나씩 나눠주마. 그걸 가지고 다시 현세로 돌아가서, 루드라 그 년 면상에 몇 대 꽂아줘. 우리 몫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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