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화 〉2화. 작업장 (2/122)



〈 2화 〉2화. 작업장

언제 지어졌는지 알 수 없는 꽤 오래된 건물이었다.
수십 간 미세 먼지를 받아낸 탓에 희뿌옇게 바래버린 색의 5층 건물이 세영의 눈에 들어왔다.

그 건물의 4층.
이 곳은 이세영이 겨우 찾아낸 마지막 희망이었다.

쾅! 쾅!

"계십니까."


세영은 단단한 문을 무작정 열고 들어갔다. 노크해도 반응이 없었기 때문이다.

문을 열고 들어간 장소에는 섬 마을 출신 세영의 눈에는 한번도 본 적 없던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이게 다 뭐야?'

수백 대의 컴퓨터가 눈에 들어왔다.


모니터 하나에  서른  이상의 컴퓨터 본체가 연결돼 있었다.
그리고 또  곳에는 수십 대의 스마트폰이 이상한 선으로 주렁주렁 연결된 모습.


'여긴 대체 뭐, 하는 곳이지?'


그의 의문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흠? 어떻게 오셨고?"
"아, 전단지 보고 일자리를 구하러..."

이리저리 훑어보며 세영을 가늠하던 남자는 안쪽의 다른 문을 열고 작은 방으로 세영을 안내했다.


방 안에는 밖에서 보던 것 보다는 훨씬 고급의 컴퓨터가있었다.
여러 개의 모니터에는 마치 주식 차트로 보이는 것들로 가득했지만, 이건 주식이 아니라 아이템 거래 사이트의 시세 변환 차트였다.


웬 남자가 통화를 하며, 한창 아이템을 거래 중인 모양이었다.
그러다 인기척에 뒤돌아 봤다.


"아, 형님. 이제 나오셨습니까."
"됐다. 하던 거래나 계속해."
"예"

세영을 안내한 남자도, 이 건물에 이제 막 도착했는지 이런 대화가 오갔다.
이 형님이라 불린 남자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소파에 먼저 앉아 등을 기댔다.


그가 바로  곳의 사장. 나금돈 이었다.

"그렇게  있지 말고 앉으셔. 아, 나이는 어떻게 되시고?"

초면에 차리는 예의 같은 건, 단 1도 느껴지지 않는 남자였다.


"올해 스물 입니다."
"그래? 그럼,  편하게 할게? 대학은 다니고?"
"고졸입니다."


그렇게  번의 대화가 오갔다.

"희한하네, 하긴 요즘 세상에... 뭐든 불가능 하겠어. 그렇게 불안해 할 건 없고. 우린 딱히 불법을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다 돈 벌자고 하는 거니까."
"아... 네. 제가 잘 몰라서 그런데,게임만 하면 돈을 준다는 게 사실인가요?"

세영의 어리숙한 질문에 남자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등받이에 한껏 기대더니 다리를 꼬며 말을 이어갔다.

"뭐, 그렇지. 일단은 알고 있겠지만 우리는 게임 아이템을 팔아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야. 이 산업도 수십 년 지속돼 왔지만 요즘이 제일  하거든. 대한민국은 지금 실업자 5백만 시대니까, 정부도 이제 어쩔 수 없는 거지. 이런 거 허용해서 한 명이라도 백수들 용돈이나 벌라고 법이 느슨해 졌거든."
"네에..."


뭐가 뭔지 모르는 이세영은, 고개만 끄덕이는 기계처럼 행동했다. 일단은 잘 보여서 취업에 성공해야만 했다.


"우리는 딱히 클라이언트 개조하는 게 아니라, 게임 자체에서 제공되는 자동 사냥 시스템을 이용하는 거거든. 요즘 이게 없는  게임이 없어요. 대신 우리는 수백  캐릭터를 동시에 돌리지만. 아까 봤지? 저 컴퓨터 본체  대에 프로그램이 50개  돌아가니까, 모니터 하나에 2500개 정도 캐릭터가 돌아가는 거야. 다하면 5만 개."
"네..."


사실 이세영은, 눈앞의 남자가 하는 말이 무슨 소리인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했다. 그냥 열심히 듣고, 시키는 걸 해낼 생각이었다.


자신은 지금 누구보다 필사적이니까 못해낼  없다고 생각했다.


*


이세영이 한동안 설명을 듣고 난 후, 처음 시작한 일은 모니터링용 컴퓨터 화면에 신호가 들어오면 확인하는일이었다.

이 신호는,
프로그램 오류로 게임이 작동을 멈추거나.
캐릭터가 게임 내 오브젝트에 껴서 움직이지 않거나.
혹은 몬스터나 플레이어들에게 공격 받아 사망해 제대로 자동 사냥을 수행하지 못할 경우에 발생했다.


모니터링 화면에는 알림과 함께 해당 오류가 어느 컴퓨터의  번째 프로그램에서 발생했는지 알려준다.
그걸 확인하고 해당 게임을 재실행하는 게 세영의 업무였다.


"하아암~"

하품이 나올 정도로 매우 지루하고 반복 적인 작업이었다.


하지만 그걸 제외하면 그리 힘든 일은 아니었다. 세영에게는 그 지루함을 견뎌내야 하는 이유가 충분했기 때문이다.

"지금 하는 일 말인데요. 프로그램 하나만 있으면 간단하게 세영 씨를 대체할 수 있어요. 알고 있습니까?"
"그렇습니까?"

같은 일을 하는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둘 다 모니터링 컴퓨터에 앉아 있을 뿐이라 오류 알람이 없다면 매우 한가했기 때문에 대화는 자연스레 이어졌다.


"네. 하지만, 이게 프로그램을 써서 자동이 돼버리는 순간! 불법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저나 세영 씨가 필요하다는 거죠.법이 참 적당하죠?"
"그렇군요."
"애초에, 이런 식으로 수천 개 캐릭터를 한두 명이 자동으로 돌리는 거 자체를 법으로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이 남자의 이름은 김만우.
이제 스물 한  먹은 그는 아는 체를 하지 않으면 좀이 쑤시는 성격인데, 이런단순 노동을 하고 있으니 항상 스트레스가 가득했다.
그러던 와중 적당한 먹잇감이 들어와 내심 기분이 좋았다.

"사실, 세영씨 오기 전에는 제가 혼자서 다 했거든요. 약 5만개 캐릭터를."
"그건, 정말 대단 하시네요."
"하하, 그렇죠? 오류가 많이 떴을 때는 여기저기 모니터링 화면마다 동시에 알람이 울려 대서 정신이 없다고요. 게임사에서 정기 점검 끝나면 프로그램 전부 다시 실행해야 해서 엄청힘들고."


세영은 오가는 대화의 내용과는 상관없게도, 자신의 나이 또래 남성과 대화하는 자체가 몹시 즐거웠다.


이런 식이라면 이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세영씨는 모르겠지만, 이 캐릭터 하나가 하루에 벌어 들이는 돈이 얼만  아십니까?"
"얼만데요?"
"뭐, 운에 따라 다르긴 한데, 보통 만원에서 5만 원 사이에요."


세영의 눈이동그랗게 커졌다.


"네? 그럼, 5만 개면 최소로만 잡아도 얼마죠? 계산이 안되네..."
"5억."
"헉?"

세영의 눈이 더 커졌다.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하하하. 하지만 그런  5천  정도에요. 제일 잘 나가는 게임이 그렇고, 다른 게임들은  원 버는 게임도 있고 들쑥날쑥 이에요. 그러다 게임 망하면 바로 새로운 게임 찾아야 하고, 캐릭터 육성하는 동안은 돈이  들어오니까. 옛날에 인기 겜은 한 캐릭으로 백만 원도 벌고 그랬어요."
"와아. 그렇지만, 지금도 충분히 엄청나게 버는  아닌가요?"
"여기 전기세랑 임대료랑 우리 월급이랑  컴퓨터들 가격 생각해 보면 아무나 시작할 일은 아니죠. 여기 사장님도 저번 술자리에서 들어보니까 초반에는 돈 좀 깨졌다 하더라고요."


한창 떠들어 대던 김만우는 자신이 한 말에, 왠지 스스로의 처지가 처량하게 느껴져 한숨을 깊이 내셨다.


"그래도, 사장이 타고 다니는 외제 차 보면 벌긴 버는 모양이더라고요. 클라우드사의 최신 모델이던데, 월급이나 좀 올려  것이지."
"하하... 그렇군요."

이세영은, 오늘 들은 충격적인 사실에 놀랐다. 사장은 대체  달에 얼마를 벌까? 아마 억대가 넘을 것이다.


'나도 사장 만큼  수만 있다면 할머니의 수술을 시켜드릴  있을 텐데...'


마음이 갑갑해졌다.

***


"어떻게 세영씨, 일은 익숙해졌고?"
"네, 사장님."
"김우만씨는 어때?"
"아, 네. 이것저것  가르쳐 주십니다."
"하하, 한 살 차이에  그리 예의를 갖추나?"


며칠 간 얼굴을 보이지 않던 사장이 나타났다. 세영이 일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조금 지난 때였다.


세영은 사장이 김만우씨의 이름을 거꾸로 말한 걸 눈치 챘지만, 차마 그걸 입에 담아야 할지 말아야할지 고민이었다.


그런데 사장이 대 뜸, 지금 하는 일을 그만하란다.

"사실, 전단지 봐서 알겠지만 우리가 세영씨에게 시킬 일은 다른 거야."
"네?"
"지금 세영씨가 하는 일은, 세영씨 없을 때도 우만씨랑 야간 알바하는 최찬씨 둘이서 잘만 했거든. 지금도 야간에는 찬이씨 혼자서 하고 있고."

사장의 말을 듣던 이세영의 마음은 불안해져 갔다.

무슨 일을 시키려고 그러는 것일까.
아직 월급을 받기도 전 인데.


"표정이 왜 그래?"


심란한 그의 마음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났는지 사장이 쏘아 댔다.

"아, 아닙니다."
"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놀라기는. 자, 걱정 마시고, 나는 불법적인 일은  한다니까!"
"아, 네."

그때, 뒤에서 사람들이 들어왔다.


"여기에 설치할까요?"
"아니요. 5층에 부탁합시다."

그들이 가져온 건, 일명 '프로젝트 클라우드'라는 가상현실에 접속하는 기계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저렴한 모델인 판타지 게임 전용 접속 기기가 석 대 보였다.


"이제, 세영씨는 가상 현실 게임을 해 줘야겠어."

*

프로젝트 클라우드는 게임이며, 프로그램이며 플렛폼이었다. 또한, 수 없이 많이 등장했던 모든 가상현실 소프트웨어들을 모두 망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엔젤'이라 불리는 인공지능의 존재 덕이었다.


[양자 컴퓨터 기술과 AI의 만남.]

그걸로 탄생한'엔젤'이라는 괴물 인공지능은 개발자 제이슨 김을 일약 스타덤에 올렸고,그가 만든 회사 클라우드 컴퍼니는세계의 정점에 섰다.

['엔젤' 클라우드 컴퍼니의 행운의 여신이 되다.]

초창기 클라우드 컴퍼니는 이 인공지능을 이용해 각국의 주식시장에 투자했다.
엄청난 수익률을 자랑하며 자금을 긁어모았고, 이를 바탕으로 여러 회사를 사들였다.

2040년 전 세계의 자율주행 차 보급률은 45%. 그중 90%가 클라우드의 것이니 더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그리고 그건 비단 자동차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모든 IT기기는 물론, 식품과 유통 역시 세계 점유율을 장악해 갔다.

[클라우드 컴퍼니 매출 미국을 넘어서다.]

2039년 말도  되는 일이 벌어졌다.클라우드 컴퍼니의 매출이, 여전한 세계의 지배자 격인 미국의 GDP를 넘어선 일대의 사건.

하지만 미국 정부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아니, 취할 수 없었다.

이미 대부분의 미국 국회의원이 클라우드로부터 선거 자금 등 수많은 로비를 받았고, 만약 클라우드 컴퍼니가 미국 내에서 철수한다면, 미국 내 경제가 붕괴할 지경이었기때문이다.


[세계적인 불황, 원인은 클라우드 컴퍼니!?]


하지만 그건 표면적인 부분일 뿐. 미국 정부는 여론전을 시작했다.
한국, 영국, 일본, 호주  미국의 우방들을 이용해 클라우드 컴퍼니에 대한 강력한 우려를 표명하는 한편, 일반 시민들에게 클라우드 컴퍼니가 세계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고 선동한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그다지 틀린 말도 아니었다.

-우리의 일자리를 돌려 달라.


-인류의 생존에 인공지능과 로봇은 필요 없다. 오히려 해악이다.


-인공지능 회사에 강력한 세금을 물려 그 돈을 국민에게 나눠줘라!


당연하게도, 일자리 문제에 고통 받는 수많은 젊은이들은 시위에 나섰다.
일부 국가에서는 폭동과 다름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하지만...

세계 역사에 기록될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사건은 시위자들을 둘로 갈라지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클라우드 컴퍼니. 프로젝트 클라우드란 이름의 가상현실 프로그램 공개. 믿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세상이 만들어 졌다. 인공지능 엔젤의 개발자 제이슨 김의 발언에 의하면 프로젝트 클라우드가 세계의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거라고 단언.]


물론 사람들이 모두  말을 믿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클라우드 컴퍼니가 어떤 곳인가.
한국의세 개의 별을 지게 만들고, 미국의 사과를 썩게 만들었으며, 고글을 깨뜨린 회사가 아닌가.

기대와 우려의 시선을 동시에 받은 프로젝트 클라우드가 테스트를 거쳐 2040년 드디어 서비스를 개시했다.


그리고 1년 후.
제이슨 김의 발언이 점점 현실이 되려 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 세계에서 가장 먼저 가상 현실 세계의 재화를완전한 자산으로 인정. 사실상 클라우드 컴퍼니를 위한 법 개정.]

[정부, 클라우드 뱅크허가. 클라우드 컴퍼니 금융업 진출하다!"]

[무책임한 정부, 대한민국의 금융업계 술렁이다.]


[제이슨 김 내한. 한국에서 최초로 신 정보 공개. 그의 발언과 한국의 행보에 세계가 주목하다.]


[정부 발표 후, 정부 발행 가상 화폐 K 코인 가치 10% 폭락. 무능한 정부]

세계에서 가장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가 된 대한민국.
그 탓 이었는지 가장 먼저 법안이 통과됐다.

하늘을 치솟는 실업률 탓에 모험을 걸 수밖에 없었다고 하나,   국회의원들이 내뱉은 발언은가히 처참했다.

-여당 국회의원 나XX : 제이슨 김은 한국계. 그는 한국의 경제를 한 단계 도약 시킬 것.


-국무총리 김XX : 자신은제이슨 김과  친척 관계. 김 씨는 모두 믿을만 해.

사실  배경에는 클라우드 컴퍼니로부터 받은 대규모의 로비가 포함돼 있었다. 그건 단순한 돈 뿐만이 아니었다.


클라우드는 사실상 세계의 정보 대부분을 지배한 기업이었다. 그들로부터 받은 세계 각국의 비밀스러운 정보와, 특히 자신들의 상대인 야당 국회의원들의 치부가 담긴 파일.

이들은 국민들의 취업 난 보다 다음 선거에서 자신들이 백수가 되지 않는 일에 더욱 혈안이 돼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이기적인 선택이, 몇 년  대한민국을 더는 취업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로 변모 시키게 된다.

프로젝트 클라우드라는 가상현실 세계와 그걸 만들어  장본인 이자 주인인 클라우드 컴퍼니에 의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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