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4화. 첫 퀘스트
사장의 말을 생각하니 걱정이 들었다.
이전에 하던 게임에서의 기억 때문이다.
이세영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던, 또 그게 무척이나 후회되는 일화이기도 했다.
"이세영 씨, 장비가 그게뭐예요?"
"네?"
"아니, 자동 매칭으로 던전에 입장하려면 최소한의 아이템은 준비하고 오셨어야죠."
"아, 저는 채집 전문가라서..."
"와, 노 매너 쩌네. 채집 전문가는 부 직업이잖아요. 전투 클래스로 변경도 하지 않고, 파티 전용 던전에 왜 와요?"
"그... 여기에만 나오는 채집 물이 있어서 퀘스트에 뜨길래 그냥 클릭했을 뿐인데요."
그때 이세영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참신한 욕을 한 가득 먹어야 했다.
게임 홈페이지의 비 매너 게시판에올라갈 정도였으니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세영은 그 이후, 며칠이나 게임에 접속하지 못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었다.
'다시는 파티 사냥을 하지 말자.'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던 이세영의 결단이었다.
그렇게 혼자서 플레이 하게된 이세영.
그에게 있어 몬스터 사냥은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전투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 갔다.
레벨이 높았음에도, 한참 저 레벨의 몬스터에게도 도망 다니기 바빴으니까.
'아, 전투는 왜 이렇게힘이 든 거야.'
사실 그 이유는 그의 장비가 온통 채집 전용 장비였기 때문이었는데, 세영은 착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정상적인 장비를 착용했어도 그의 전투 실력은 평균 이하였을 테고, 온통 캐시 템 떡칠을 하지 않는 이상 그가 고가의 전투 장비를 마련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전투는 하지 말자. 채집이 재밌지.'
이세영의 당시 전투 직업은 검사였는데, 채집가로 지내는 시간이 1시간이었다면, 검사로 지내는 시간은 1분 이하였다.
그조차도 점점 더 줄어갔다.
그렇게 그는 서버 유일의 채집 왕이 되었던 것이다.
**
'사장님이, 몬스터를 잡아오라고 하면 어쩌지...'
과거의 경험 때문에 그런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일단은 할 수 밖에 없는 일.
시키는 걸 해내야만 한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그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게임도, 전투도, 그리고 돈을 버는 일도.
게임에 다시 접속한 세영은 고민 끝에 과감한 선택을 했다.
[몬스터와의 대전을 선택하셨습니다. 은퇴한 기사 카록을 찾아가세요. 그는 당신에게 다양한 무기들의 사용법을 알려 줄 겁니다. 그와의 인연은 차후 당신이 생명을 지키는데 유용하게 작용할 것입니다.]
프클의 퀘스트는 친절하지 않기로 유명 했다.
정보를 찾는 일 역시하나의 가치가 되고, 그 가치를 필요한 사람들에게 팔아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끔 설계된 까닭이다.
때문에 메인 퀘스트조차 아무런 정보가 없어, 오픈 초기에는 사람들이 불평하기 바빴다.
[황금 늑대 위치 삽니다. 30만 CC]
[정예 고블린 중 홉 고블린 공략 법 20만 CC 팔아요]
하지만 점차 정보가 풀리고, 큰 손들이 나타나 정보를 매입하기 시작하면서 그런 이야기는 쏙들어갔다.
너도, 나도 앞다투어 가치가 높은 정보를 독점해 독식하거나, 비싸게 팔아 돈을 벌 수 있게 된 탓이다.
하지만 튜토리얼 퀘스트는 예외. 당연히 위치 안내 가이드가 작동하고 있었다.
세영은 자신을 인도하는 빛을 따라서 카록이라는 기사를 간단히 찾아갈 수 있었다.
"어서 오시게 모험가여!"
흔한 게임 같은 대사가 들려왔지만, 이야기가 있는 역할극(RPG) 게임에서는 스토리 진행을 위해 모든 NPC에게 완전한 인공지능을 집어넣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 때문에 이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처음에는 놀라더라도, 시스템 적인 제약을 넘어선 발언에는 대답하지 않거나 딴소리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가상현실 초보자인 세영은 떨리는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게두려워할 것 없네. 내가 자네를 잡아먹기라도 하겠는가? 하하하"
세영은 성격 좋아 보이는 남자의 발언에 한층 마음이 놓였다.
머리로는 NPC라는 사실을 알지만, 현실의 인간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자, 좋아하는 무기는 무언가. 나는 모든 무기를 어느 정도는 다룰 줄 알지."
'좋아하는 무기라... 호미를 선택할 수도 없고, 뭐라고 대답하지? 검은 싫은데.'
"다... 단검이요."
단검이라면 채집할 경우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인지 세영은 그런 대답을 입에 담았다.
"이건 또, 보기와는 다르군. 가장 다루기 어려운 걸 선택하다니. 물론, 몰래 누굴 죽일 생각이라면 단검 만한 것도 없지."
세영은 급하게 손을 저었다.
"그럴, 목적은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무기를 선택하면, 직업이 정해지는 건가요?"
"하하, 그럴 리가. 나는 단지 이런 저런 무기의 사용법을 알려 줄 뿐이라네. 젊은 모험가가 아무것도 못해보고 죽는 건 가슴 아픈 일이지 않겠는가. 그리고 세상에는 창을 쓰는 마법사도 있고, 지팡이를 휘두르는 검사도 있는 법이지."
세영은 젊은 모험가의 이야기를 할 때, 카록의 눈가가 왠지 슬퍼지는 걸 느꼈다. 그걸 보며, 할머니의 생각이 떠올랐다.
"저, 혹시 돈을 벌 방법... 아, 아닙니다."
"음?"
일단 단검 사용법을 배우기로 결정한 세영은 열심히 카록의 말을 따랐다.
"단검은 길이가 짧다는 특성 덕분에휴대가 편리하지. 깊은 숲 속이나 외딴 무인도에서 생존하기에 알맞은 무기라 할 수 있지."
카록의 긴 설명을 듣고, 세영은 몇 가지 동작을 배웠다. 그리고 앞의 허수아비를 향해 그 동작을 반복했다.
"자네, 지나치게 어설퍼."
직접 신체를 움직이는 게 아니다.
뇌의 상상력 만으로 움직이는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세영이 어설픈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또래의 친구들이 게임으로 전투를 경험하고,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격투 씬을 볼 때, 그는 산나물을 채집하는 걸 즐겼으니까.
"저 사람, 우리 오기 전부터 계속 같은 행동만 반복하던데, 오토 인가?"
"너, 모르냐? 이 게임은 오토 없어. 생체 데이터로 한 번에 한 캐릭터만 접속할 수 있고, 항상 접속 기기로 확인하는 거 모르냐?"
"그럼 저 사람은 왜 저래?"
"내가 아냐? 옛날 웹 소설 읽고 하루쟁일 패면스텟 주는 줄 아는 얼간이겠지 뭐."
한동안 반복했지만, 발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주변의 허수아비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둘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그들 대부분은 자신의 실제 외모와는 다른 모습으로 접속한 탓에 세영은 알 수 없었지만, 늦게 도착한 어린 나이의 플레이어들조차 이미 다음 단계로 떠났다.
"음... 미안한 소리지만 알파. 자네에게 단검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군."
듣고 싶지 않던 이야기가 들려왔다.
세영은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노력할 수밖에 없는 일이니,이를 악물고 반복할 따름이었다.
"이봐, 알파. 정말 계속 할 생각인가?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걸 하지 그래. 이미 해가 지고 있다네."
프클의 우주 속 수많은 행성들 중에는 현실과 동일하게 시간이 흐르는 행성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지금 이세영이 있는 판게아 행성은 후자였다.
현실보다 시간이 4배 빠른 속도로 흐르는 세상. 밤은 그만큼 금세 찾아왔다.
"벌써... 그래도 더 해야 합니다. 저에게는 노력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카록은 무언가 추억에 젖은 눈빛으로 이세영을 바라봤다.
"무슨 사정이 있는 모양이군. 무엇이 자네를 그리도 괴롭히는 거지?"
"할머니가 편찮으셔서, 치료비가 필요합니다."
"돈인가... 그래. 돈은 중요하지. 돈이 아니면 해결되지 않는 많은 것들이 있으니."
카록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무는 태양을 바라보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무언가 회상에 젖은 듯 했다.
"그래도 이렇게 미련한 짓을 하는 것 보다, 자네의 재능을 서둘러 찾는 것이 어떤가. 세상의 무기는 꼭 단검만이 아니고, 무력을 강화하는 것 만이 돈을 버는 수단은 아니라네."
"네?"
"충분하진 않겠으나, 내 자네에게 돈이 되는 정보를 하나 주겠네. 어떤가."
그제서야, 세영은 손을 멈추고, 눈앞의상처투성이 장년의 몸을 바라봤다.
'그래, 이 사람은 NPC. 이런 경우는 숨겨진 퀘스트를 주는 걸 텐데, 왜 나에게...?"
놀란 눈으로 카록을 바라보던 세영은, 이내 고개를 저으며 지금 자신이 뜨거운 밥 찬 밥 가릴 처지가 아니라 생각했다.
"네, 뭐든 하겠습니다."
카록은 세영을 기특하게 바라봤다. 그리고 가슴팍에서 작은 손수건을 꺼내더니, 세영에게 건넸다.
"이 손수건을 보여주고 내가 소개해줬다고 하면 될 거라네. 늦었으니 더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가보게."
"감사합니다. 카록씨.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현실과 NPC라는 사실을 계속 망각하는 세영이었지만, 그 덕에 카록의 호감도를 높이는결과를 낳았다.
그의 무의식에서 자연스럽게 시작된 이 착각은, 인공지능 '엔젤'이 판게아 행성을 만들면서 짜 넣은 일종의 히든 시스템과 다름없었다.
과거의 게임들처럼 호감도의 수치를 숫자나 그래프로 보여주진 않았지만,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NPC들과의 유대감을 더 빨리 쌓을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들을 실제의 사람처럼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이 사실을 눈치챈 사람들은 거의 없었으며, 세영처럼 가상 현실의 세계를 현실처럼 받아들이는 소수의 사람만이 이런 보이지 않는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
똑. 똑.
"계십니까."
세영은 나무로 된 문에 노크를 했다.
동화 속에서 나올법한 흰색 벽의 둥그런 형태의 집이었다.
매우 독특해 길 안내 가이드가 없었지만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카록의 자세한 설명도 있었고.
"네, 어떤 일이시죠?"
"저... 연무장의 카록씨에게 소개 받고 왔는데요."
등장한 인물은, 20대 정도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었다.
동그랗고 커다란 눈이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세영은 손에 쥔 카록의 손수건을 그녀에게 정중히 건넸다.
"아, 이건 분명 카록 아저씨에게 드렸던 제 손수건 이군요. 그 아저씨도 참. 가까이 살면서 한번을 찾아오지 않으시네요. 아? 그러고 보니 이거 실례했네요. 어서 안으로 들어오세요."
세영은 건물의 안으로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
안에는 이런 저런 식물이가득했다.
건물의 창이 매우 커, 집 안에서도 충분히 빛을 받았는지 매우 싱싱해 보이는 놈들이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오셨나요? 카록 아저씨가 저에게 누군가 보내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
"제 사정을 들으시더니 도움이 될 거라면서 가보라 하셨어요. 저는 할머니의 치료비가 필요해서..."
아무리 가상현실 세상에 몰입했다고 해도, 세영처럼 선뜻 현실의 사정을 NPC에게 털어놓는 건 극히 소수의 사람들 뿐이었다.
"아, 그러시구나. 저는 허브를 기르며, 약을 만들고 있는 약 제조사 이거든요. 그래서 아저씨가 당신을 저에게 보낸 모양이네요. 하지만 저는 연금술사가 아니라서...이거 어쩌죠. 제가 할 수 있는 건 작은 상처를 치료하고, 배탈을 낫게 하는 정도인데."
세영도 당연히, 이런 가상현실 속에서 할머니의 치료를 받으려는 생각인 건 아니었다.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저 몬스터를 사냥하지 않고도 돈을 벌 방법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방법이야 널렸죠. 요리사며, 대장장이며, 저도 마찬가지로 몬스터를 잡아서 돈을 버는 게 아니니까요"
그 정도는 세영도 안다. 다른 RPG 게임을 한 경험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이 훨씬 빠른 방법이니까요. 제 할머니의 치료비는 정말 엄청나게 필요해서..."
"잘 모르시는군요. 모든 일에는 수요와 공급이 있답니다. 요즘 엄청나게 모험가들이 몰려드는 탓에, 잡화점의 제이크 씨는 제가 납품하는 약으로는 도무지 그 감당이 되지 않는다고 했어요. 더 많이 부탁한다고."
놀라운 일이었다.
예전 게임에서도 비단 이세영만 채집이나 생산직을 선택한 건 아니다.
그러니 수요가 많다면, 이 게임에서도 자연스레 약제사나 연금술사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 게임은 제작이 인기가 없는 걸까?'
사실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수십 년 동안 여타 게임사들이, 게임 내에서 제작한 포션 보다 월등한 성능의 물약을 캐시 아이템으로 팔아 재끼는 탓이었다.
그 때문에 RPG 게임 안에서 연금술을 즐기는 수요가 거의 남아있을리 없는 것이다.
[SSS급 레전더리 무기 랜덤 박스]같은 캐시 아이템이 판치는 세상. 비단 연금술 만이 아니라 무기나 다른 제작 직업들도 사장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예 제작 직업을 게임 내에 만들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였으니...
잊혀지고 있었다.
역할 수행 게임은 다양한 역할과 자유로움이 주어져야 더 재미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이세영이 그런 사실을 깨달았을 리가 없었다.
"그럼, 당신이 더 많은 양의 약을 만들어 파시면 되는일 아닌가요?"
"보통은 그런데, 지금 잡화점에서 원하는 수요는 도무지 저 혼자의 힘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아서요. 혹시 도와주시겠어요?"
[!!새로운 퀘스트!!]
새로운 퀘스트가 나타났다.
세영은 망설임 없이 자연스레 퀘스트를 받았다.
전투를 하지 않아도 돈을 잘 번다면, 사장님도 자신에게 억지로 전투를 시키진 않을 거라는 생각에서 이다.
[약제사 라나의 부탁 : 약제사 라나가 잡화상 제이크에게 부탁 받은 많은 양의 치료약을 혼자 감당하는데 매우 힘들어 합니다. 당신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녀가 필요로 하는 약제와 허브를 채집하세요.]
-분류 : 채집
-난이도 : F (기본 채집 스킬 필요)
-제한 시간 :1일
-보상 :30 코퍼~ 20 실버. (채집량에 따라 변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