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5화. 뱀 딸기
마치 운명과도 같았다.
그가 좋아하는 채집 퀘스트.
딱히 직업을 정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고, 얼마든지 채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다만, 채집 스킬이 필요하다는 말이 눈에 밟혔다.
"채집 스킬... 튜토리얼을 잘못 선택했나..."
사실, 하나의 튜토리얼을 마치면 다른 것도 진행할 수 있었는데 세영은 아직 눈치채질 못했다.
"스킬이 없으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알려드릴게요. 이거 보이시나요? 이 마을 근처에 자주 보이는 초원 허브에요. 모든 약에 기초 재료 중 하나 이지요. 가장 흔하지만 가장 많이쓰기에 언제나 부족하답니다."
[초원 허브의 정보를 획득하셨습니다]
라나가 보여준 화분에는 녹색의 작은 허브가 보였다.
"자, 이 허브는, 이렇게 뿌리가 다치지 않게, 가위로 잘라내면 돼요. 그럼 잘라낸 부분에서 또 자라거든요. 해보세요."
단검을 사용하는 일에 비하면 너무 쉬운 일이었다.
'마치 부추 같네. 잘라도 죽지 않고 다시 자라난다니'
[기초 채집 스킬을 배우셨습니다. 기초 채집 스킬은 모든 채집의 기본이 되는 스킬로, 숙련도가 상승할수록 모든 채집에 영향을 줍니다]
"와, 처음이신데 잘하시네요. 자, 이건 선물이에요. 그럼 일단은 이 허브를 채집해 주세요. 많을수록 좋지만, 너무 무리하진 마시고, 마을 밖에는 흉악한 몬스터도 나오니 언제나 주의하셔야 해요. 그리고 이걸 사용하세요."
[라나의 허브 채집용 가위를 획득하셨습니다.]
[라나의 허브 채집용 가위]
- 라나가 애용하는 가위로,대장장이가 그녀에게 특별히 제작해 준 고급 품이자 그의 혼이 담긴 최대 역작이다. 장시간 사용해도 될 만큼 매우 튼튼하다.
- 현재의 가치 : E
- 기초 채집 스킬의 숙련도 획득량 X2
- 채집 속도 상승
"라나 씨. 이건 소중한 것아닙니까? 이런 걸 함부로 저에게 주셔도..."
"괜찮아요. 대장장이 아저씨에게 또 부탁하면 되니까."
세영은 조금 미안한 감정이 들었지만, 채집을 끝마치고 돈이 생기면 돌려주자고 마음먹었다.
돈이 생기면, 새로운 걸 살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이왕이면 대장장이를 소개 받아 같은 걸 만들어 달라고 부탁 하자고 생각했다.
'기초 채집 스킬의 숙련도가 두 배라니... 이런 건 사기 아니야?'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세영은 남의 것을 욕심 내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럼 잘 부탁 드려요."
라나의 마지막 인사와 함께, 세영은 건물을 나섰다.
이미 어둠이 찾아온 시간.
그는 도시 밖으로 허브를 찾아 나설 생각에, 자신이 지나왔던 가까운 성벽 문을 찾았다.
"멈춰라!"
"네?"
"멈추라고! 보아 하니 무기도 들고 있지 않은 몸으로 이 시간에 어디를 가려는 것이냐."
"저, 채집을 하러."
"안돼. 튜토리얼을 끝마치지 않은 모험가는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그것이 이 도시의 규칙이자 법. 따르지 않겠다면감옥에 가게 될 것이다."
덩치 큰 병사가 세영을 가로막았다.
이것이 이곳의 법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밤의 도시는 전혀 어둡지 않았다.
마법의 힘으로 빛을 낸다는 가로등이 도시 전체를 밝게 빛내고 있었다.
"초행. 같이 사냥 가실 분~ 튜토리얼 끝내신 분만 오세요. 밤에는 파티 안 하면 몬스터에게 죽기 십상입니다~"
"치료용 붕대 팝니다. 잡화점에 물건 바닥나서 저 아니면 못삽니다. 개당 10코퍼~ CC도 받습니다."
"와 씨발, 바가지 쩌네. 잡화점에서는 6코퍼 였는데."
게임답게 밤이 찾아왔음에도 도시의 활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도시 안에 즐비했다.
"아나 이 똥겜. 밤이라 NPC도 다 퇴근했는데 튜토리얼을 어떻게 하라는 거야. 씨이발!"
"크크크, 저도 어제 그래서 3시간 동안 멍 때렸음."
주변의 소란스러움에도, 세영은 무언가를 찾아 나섰다.
사람들이 거의 찾아오지 않는 마을의 구석구석.
그런 곳에 존재하는 나무와 풀을 찾아 나선 것이다.
가로등조차 비추지 않는 어두운 그림자 속.
'이것도채집해 볼까.'
나무 열매를 따는 순간이었다.
[기나 열매를 획득하셨습니다.]
[기초 채집 스킬의 숙련도가 상승했습니다.]
[맨손 채집 스킬이 추가됩니다.]
들려오는 시스템 음에 세영은 즐거운기분이 되었다.
'밖에 못나가면, 밤새도록 이 도시 안의 모든 것을 채집해 주마'
채집을 시작한 뒤로는 우울한 감정이나 급해졌던 마음도 진정되었다.
여기저기의 신기한 식물들을 찾고 채집해 보는 것이, 모든 근심을 잊게 해 줄만큼 즐거웠던 것이다.
[잡초]
- 쓸모없는 잡초입니다.
물론, 버려야 하는 것도 잔뜩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인벤토리가 점점 채워지기 시작했다.
[뱀 딸기를 채집하셨습니다.]
[뱀 딸기]
- 초원 지대에 등장하는 작은 요정의 열매로 먹으면 미량의 체력이 회복됩니다. 많은 양(최소 열 개 이상)을 복용할 시 체력 회복에 보너스가 적용됩니다.
- 부가 효과 : HP 2 회복. 10개 복용 시 25~30 회복.
'이런 것도 있네.'
세영은 약제사 라나의 말을 떠올렸다.
잡화점에 치료 약의 수요가 넘치고 있다는 이야기. 어쩜 이 열매도 잘 팔리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뱀 딸기 더 없으려나? 도시 안이라서 없겠지... 날이 밝으면 도시 밖에서 찾아보자. 허브도 채집해야 하니까.'
그렇게 몇 시간을 쉬지도 않고 건물의 그림자 사이를 이리저리 찾아다녔다.
그리고 신기한 식물을 발견했다.
왠지 그 식물만이 빛을 내고 있었다.
푸르스름한 그 빛은 바라보는 것 만으로 너무 상쾌한 기분이 느껴지는이상한 풀이었다.
'이건, 뭐지?'
궁금해서 바로 채집을 하지 않고, 이리저리 확인했다.
잔디 만큼의 작은 크기.
투명한 줄기는 주변에서 비추는 가로등 빛에 가려 웬만하면 발견하지 못했을 그런 식물이다.
'운이 좋았어.'
어느덧 아침이 다가와, 가로등이 하나둘 꺼져 가는 덕에 이 식물이 눈에 띈 것이다.
"저 사람 뭐하냐? 크크크"
"동전이라도 흘렸나 보지 뭐."
엎드려 식물을 바라보는 세영을 발견한 사람도 있었는데, 다들 이상한 사람 보듯 했다.
'자르지 말고, 뿌리째 뽑아서 라나 씨에게 보여줄까.'
세영은 조심스레 식물이 상하지 않게 작업을 시작했다.
호미도 삽도 없으니 맨손으로 하기에는 도무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게임인 덕에, 손끝이 상하는 건 별 문제 되지 않을 것이다.
"됐다!"
몇 분이나 걸린 작업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리고 드디어 성공했다.
'어...'
하지만 그 식물은 세영의 손 위에서 힘없이 시들어 버렸다. 이윽고 가루가 되더니 허공으로 흩날려 사라지고 말았다.
'너무, 욕심을 부렸나.'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
그의 손 안에서 눈부신 빛과 함께 무언가가 나타났다.
"어리석은 인간. 한창 단잠을 자던 중이었는데, 누구 맘대로 나를 깨운 거야?"
"넌 뭐지?"
갑작스런 작은 존재의 등장에 조금 당황 했지만, 이것이 판타지 게임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이 몸은 위대한페어리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페어리. 인간에게 자신을 소개할 필요는 느끼지 못해."
"난 이세... 아니, 알파라고 해. 넌?"
세영은 새로운 만남에 기뻐했다.
"난 뱀이야. 하지만 인간에게 알려 줄 이름 따위는 없어."
"반가워 뱀."
"흥. 근데, 너에게서 맛있는 향기가 나는데? 무슨 짓을 한 거지?"
"응?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자신에게서 냄새가 난다는 소리에, 세영은 무심코 자신의 옷 냄새를 맡았다. 하지만 별다른 냄새는 나지 않았다.
"인간. 너 설마 딸기를 가지고 있지 않아?"
"딸기? 뱀 딸기라면 가지고 있어."
"그것 봐. 겨우 인간이 내 코를 속일 수는 없지."
작은 요정은 자신의 코를 한껏 치켜세웠다.
세영은 인벤토리에서 아까 채집했던 하급 뱀 딸기 하나를 꺼내 들었다.
"뭘 보여주는 거야. 먹을 걸 준다고 넘어갈 줄 알아!?"
"어? 딱히 널 주려는 건 아닌데. 그냥 보여준 거야. 그런데 이름이 뱀이라고 했지? 그럼 이 뱀 딸기는 너의 이름에서 따온 건가?"
작은 요정의 날개로 빠르게 나의 손바닥 위로 날아온 뱀은, 자신의 머리만 한 열매를 들고 날아올랐다. 그리곤 몹시 먹고 싶었는지 작은 입으로 열매를 오물오물 먹기 시작했다.
"맞아, 내가 좋아하는 열매니까 뱀 딸기. 인간의 딸기에 비하면 천 배는 더 달콤하니까!"
그 말을 들은 세영도 맛을 보고 싶어졌다.
"이건 내 꺼야."
뱀은 세영의 손이 닿지 않는 높이까지 날아오르더니, 그 자리에서 손에 쥔 뱀 딸기를 전부 먹어 치웠다.
"잘 먹네, 그렇게 먹는데도 그 작은 몸에 전혀 티가 안 나는데?"
"당연하지. 나는 최고의 페어리 뱀이라고. 뱀 딸기는 백 개도 먹을 수 있지."
날은 어느새 더 밝아지더니 성벽의 그림자를 치워냈고, 세영의 두 눈에는 태양 빛이 비춰 들었다.
"이제, 아침인 모양이야. 만나서 반가웠어. 뱀. 하지만 난 이제 가봐야 해."
사실, 세영도 뱀과 친구가 되고 싶었다.
동료로 삼을 방법이 있었다면 퀘스트라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1일 시간 제한의 퀘스트가 이미 주어져 있었고, 그렇게 번 돈을 사장에게 보여줘야만 했다.
그래야 전투를 하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설명이 될 테니까.
"또 만나면 친구가 되면 좋겠네."
"흥, 인간 따위와 내가 친구를 할 리 없잖아?"
뱀이 그러거나 말거나 세영의 머릿속은 이미 도시 밖으로 향해 있었다.
'그럼, 본격적인 채집을 시작해 볼까?'
세영은 서둘러 성문을 향했다.
기다릴 수많은 채집 물을 상상하면 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
도시에서 나오자마자, 넓은 초원과 저 멀리 푸른 숲이 눈에 들어왔다. 더먼 곳에 산도 보였지만, 거기까지 가기엔 아직 레벨이 부족할 것 같았다.
'아직 1 레벨 이니까.'
그보다, 자신이 살던 섬에 비해, 여기는 대륙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섬이었다.
'제주도 크기는 될까?'
사실, 이 섬의 크기는 제주도의 절반.
세영이 살던 작은 섬에 비하면, 여긴 도시와 수십 개의 마을이 존재하는 하나의 작은 국가와도 다름 없었다.
하지만 그런 건 이세영에게 전혀 안중에 없는 일.
'와, 벌써 찾았네!'
[초원 허브를 채집하셨습니다.]
[기초 채집 스킬의 숙련도가 상승했습니다.]
세영에게 이것은 너무나 즐거운 일이었다.
섬에서 달래나 냉이를 캐던 일도 즐겁지만, 게임에서는 게임만의 매력이 있었다.
무엇보다 하나하나 새로운 식물을 발견하는 것이 몹시 즐거웠다.
거기에 즉시 보상도 따라오니 무엇이 부족하겠는가.
[레벨이 상승하셨습니다]
드디어 레벨이 2로 올랐다.
[기초채집 스킬의 레벨이 상승하셨습니다]
기초 채집 스킬 역시 2단계로 상승했다.
'이거 너무 신이 나는 걸.'
수십 가지의 게임을 반복하며 이런 부분에 질려버린 또래에비하면, 이제 막 두 번째 게임. 그것도 처음 하는 가상현실 게임에 세영은 모든 게 재미있었다.
"저 사람 저기서 뭐 하는 거야?"
"뭐 찾는 퀘스트 아냐? 아님 채집이나."
"난 저런 사람들이 제일 신기하더라. 졸라노잼일텐데."
"왜, 그래도 제작 스킬 상위 0.1% 안에 들면 돈 좀 될걸?"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렇게 떠들어 댔다.
"씨발 그러느니 전투력 상위 0.1%에 들겠다. 그게 훨씬 돈 많이 벌지."
"크크크 그렇긴 하지. 그래도 저런 사람들은 전쟁 길드에서 꼭 몇 명씩 데리고 있잖아. 아니면 자기들이 부캐로 버스 태워서 키우거나."
"야, 이 겜은 웬만하면 부캐 안 키워. 졸라 빡세서. 그 시간에 본 캐 렙업 시키는 게 돈 되지."
세영은 그들의 말이 전부 들렸다.
그리고 0.1%라는 말이 머리에 맴돌았다.
'정말 그렇게 되면 돈이 될까?'
전에 했던 게임에선 자신이 서버 내에서 유일한 채집 왕이었지만 전혀 돈이 되진 않았다. 그 게임이 망겜 인 탓이라는 사실은 물론 세영도 알고 있다.
"정말, 0.1%에 들면 전투직 만큼 돈이 벌렸으면 좋겠네."
채집을 하는 세영은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깊은 한숨을 내 쉬었다.
다시 허브 채집 시작.
[퀘스트의 최소 조건을 달성하셨습니다.]
하지만 세영은 멈추지 않았다. 해가 지기 직전까지 채집을 할 작정이었다.
"인간, 뭘 그렇게 찾아?"
"뱀? 여긴 무슨 일이야?"
"나야 당연히 딸기를 먹으러 왔지."
뱀은 세영의 뒤를 조용히 미행하며 날아왔다.
하지만 한참을 지켜봐도 세영이 채집만 하기에 지루해진 그녀는 결국 먼저 말을 꺼낸 것이다.
"그래? 맛있게 먹어."
하지만 세영은 뱀을 무시하고 채집 물을 찾아 이리저리 이동했다.
심통이 난 뱀은 그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말을 걸었다.
"인간 주제에 감히 내가 말하는데 어딜 가는 거야!"
"미안, 뱀. 난 지금 바쁘거든."
"뭐 때문에?"
"초원 허브를 채집하는 퀘스트를 진행 중이거든."
뱀은 그 대답에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한심하군. 초원 허브는 저쪽에 널렸잖아."
"그래?"
세영은 뱀의 작은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을 향했다. 그리고 거기엔 초원 허브의 작은 군락이 형성 되어 있었다.
"우와, 고마워 뱀. 이거 내가 캐도 될까?"
"그러라고 알려준 거야! 멍청아!"
"그렇구나, 고마워"
"... 당연하지."
뱀은 인간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는 게 이게 처음이었다. 뭔가 간지러운 기분이 들어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흥, 멍청이."
뱀은 그 길로날아가더니 자신이 좋아하는 뱀 딸기를 하나 들고 돌아와, 세영이채집하는 옆에서 먹기 시작했다.
세영은 채집 삼매경에 그 모습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다.
뱀은 그의 모습을 지켜보며 어떻게 괴롭힐까 고민했다.
사실은 관심을 끌고 싶어 안달이 난 건데, 스스로는 깨닫지도 못했고, 그걸 절대 인정하지 않았을 그녀였다.
"멍청아, 그렇게 채집이 좋으면 내가 좋은 걸 줄까?"
"뭔데?"
세영이 궁금해 하자, 뱀은 기분이 좋아졌다. 더욱더 궁금하게 만들고 싶었다.
"흥, 멍청이니까 불쌍해서 주는 거야. 새벽에 딸기도 받아먹었으니까. 그 보답이야. 인간 따위에게 이 위대한 뱀 님이 빚을 질 수는 없으니까."
"그래, 뭔지는 모르겠지만."
[페어리 뱀이 당신에게 스킬을 전수하려 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세영의 대답은 당연히 예스.
[새로운 스킬 뱀의 눈을 습득하셨습니다.]
[스킬 : 뱀의 눈 - 상시 유지 스킬]
- 페어리 종족은 주변의 식물들을 찾아내는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스킬을 얻은 당신은 스킬의 숙련도에 따라서 일정 범위 내의 자신이 원하는 식물을 찾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