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6화. 첫 파티
"우와, 이게 뭐야?"
"흥, 멍청이."
"정말 고마워 뱀. 덕분에 채집이 더 수월해질 것 같은데?"
세영이 진심으로 기뻐하며 감사를 표하자, 뱀은 또 간지러운 기분이들었다.
"당연하지."
하지만 그건 매우 짧은 시간이었다.
새로운 스킬이 생긴 세영이, 또 다시 채집에 열중하기 시작한 탓이다.
그 바람에 뱀이 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시간은 흘러, 퀘스트의 제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여기까지 할까."
"왜?"
"약속한 시각이거든."
"흥, 인간이 약속을 지키다니 말도 안 돼."
"난 지키려고 하는 편인데. 그리고 가방도 가득이니까."
채집을 하는 동안, 뱀은 세영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거나, 콧구멍에 뱀 딸기를 집어넣거나 하면서 장난을 쳤다.
하지만 세영은 전혀 화를 내지 않았고, 오히려 그런 장난을 쳐오는 게 몹시 귀엽게 느껴졌다.
그건 마치 애완동물을 기르는 기분이었는데, 그런 말을 꺼낸다면 분명 저 페어리는 화를 낼 테니 꾹 참고 있는 그였다.
"딸기 먹고 싶으면 말해."
"흥."
인벤토리에는 수천 개의 허브는 물론, 오후부터 채집한 수백 개의 뱀 딸기로 가득했다.
뱀 딸기는 단 4일 만 지나면 다시 자란다고 하니까, 열심히 채집해 둔 것이다.
'인벤토리가 너무 좁네'
그의 인벤토리는 채집물로 인해 이미 한계 무게를 10% 초과했다. 덕분에 달리는 게 불가능해졌다.
'이제, 보상을 받으러 가야지.'
세영은 곧장 라나의 집을 향했다.
해가 늬엇늬엇 지는 게 보였다.
보상을 받을 마음에 설레이는가슴은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게임은 몇 시간이나 채집만 계속했는데도, 전혀 지치지를 않네?'
세영은 자신이 피로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이 조금 신기했다.
사실 이 부분은 프로젝트 클라우드가 세계 최고의가상현실 게임인 이유였다.
게임을 하는 동안, 육체에는 휴식 감을 주는 말도 안되는 기술.
게임을 하고 난 후에 오히려 잠을 자고 일어난 것 같은 개운함을 주기 때문에, 세간에서는 인공지능 엔젤은 사실 악마였다 하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였다.
똑. 똑. 똑.
"앗? 알파 님.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라나님, 안녕하세요."
라나의 집에 도착한 세영은 인벤토리에서 허브를 꺼내 늘어놓았다.
"이... 이게 다 뭔가요?"
"네? 초원허브잖아요."
"아니, 그게 아니라 이 많은 양... 알파 님, 당신은 정말 초보 모험가가 맞으신가요?"
"빌려주신 채집 가위의 덕이 아닐까요? 감사해요."
둘의 대화를 듯던 뱀이 세영의 귓볼을 잡아 당겼다.
"멍청아!내가 알려준 스킬 덕분이라고."
"아아아, 아파! 뱀."
"네? 뱀?"
라나는 뱀을 볼 수 없었다. 세영은 그 사실을 금세 눈치챘다.
"아, 아닙니다. 허브는 이걸로 충분하죠?"
"당연하죠. 알파 님 너무 감사해요."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자, 받으세요."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20 실버를 획득하셨습니다.]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20 실버를 획득하셨습니다.]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
.
.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퀘스트가 완료되며 무려 6번이나 보상을 받게 된 것이다.
획득한 금액은 무려 1골드 20실버.
"왜, 이렇게 많이 주세요?"
"알파 님. 그걸 지금 질문이라고 하세요? 제가 원하던 양의 여섯 배나 구해오셨잖아요. 채집을 좋아하시는 분이면 내일도, 다음 날도 부탁 드리려 했는데, 단 하루 만에 이렇게 많이 구해오시다니. 정말 깜짝 놀랐어요."
세영은 마음속으로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이 퀘스트는 한번 클리어 한 이후로, 매일 반복해 수행할 수 있는 퀘스트였던 것이다.
"제가, 이렇게 받아도 될까요?"
"네, 그렇긴 한데..."
라나의 표정이 조금 곤란한 듯하게 변했다.
"흠, 생각해 보니 초원 허브는 채집 후 이틀까지는 괜찮지만, 시간이 지나면 상해버려, 약제로는 쓸 수 없는데..."
"앗, 그럼 어쩌죠? 돈을 다시 돌려 드릴까요?"
라나는 고개를 부드럽게저었다.
"혹시, 알파 님. 약을 제조해 보실 생각 없으세요?"
[!!새로운 퀘스트!!]
'뭐지?'
[약제사 라나의 권유 : 약제사 라나는 초록 허브가 상하기 전에 전부 약으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녀 혼자서 그 많은 양을 감당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라나는 성실한 당신에게 자신을 도와 치료약을 만들 생각이 없는지 물었습니다.]
-분류 : 제작
-난이도 : F (기초 약품 제조술 필요)
-제한시간 : 2일
-보상 : 20 실버 ~ 4 골드 (제작량과 성공률에 비례)
세영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채집 퀘스트가 제작 퀘스트로 연계될 줄 몰랐기 때문이다.
"저, 그러려면 저도 약제사가 되어야하나요?"
"아니요. 약제사 동료가 되어 주신다면 저야 더 반갑지만, 아니어도 가능해요."
"그럼 하겠습니다."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세영은 곧바로 수락했다.
최고 보상에 적힌 4골드라는 숫자는 그의 망설임을 희미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감사해요. 그럼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낮에 찾아와 주시겠어요? 약을 제조하는 법을 가르쳐 드릴게요."
지금 당장은 불가능. 판게아 행성에선 NPC도 수면을 취한다.
"네, 알겠습니다."
이세영은 인사를 나누고 밖으로 나왔다.
"아야, 아파 뱀."
"흥!"
"그런데, 뱀. 넌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거야?"
"아니. 그냥 내가 원할 때는 보이지 않게 만들 수 있을 뿐이야."
뱀이 메롱~ 하며 혀를 내밀었다.
하늘에는 노을이 지고 있었다.
'그나저나 지금 몇 시지?'
[한국의 현재 시각 17 : 31 ]
'와, 현실 시간까지 원하면 보여주다니'
별로 놀랍지 않은 기술에도 하나하나 놀라는 세영.
저녁까진 시간이 있음을 확인했으니 게임을 더 즐길 뿐이다.
"일단, 뱀은 어떻게 할 거야? 나는 내일 아침에 라나씨 집에 찾아가기 전에 밖에 나가 채집을 더 할 생각인데."
"뭐? 또 채집을 한다고?"
"응."
"어휴~"
뱀은 세영의 눈동자를 향해 한숨을 쉬었다.
그 바람에 세영은 윙크를 하는 형태가 되고 말았다.
"뭐, 뭐야. 저 사람. 갑자기 나에게 윙크를 하는데?"
"이봐, 형씨! 게임이라고 함부로 남에 여자에게 추파 던지는 게 허락될 줄 알아?"
"아! 죄송합니다. 눈에 먼지가들어가서..."
뱀은 그 모습에 깔깔대고 웃기 시작했다.
당황한 세영은 허리를 숙여 사과하고 겨우 자리를 피할 수 있었다.
*
"안돼!"
"저 이제 3 레벨인데요?"
"그래도 안 된다. 밤에 혼자 나가기에는 너무 위험해. 튜토리얼도 마치지 않은 사람을 내보낼 수는 없다."
세영은 황당했다. 경비병은 오늘도 밖으로 내보내 주질 않았다.
그러니 어쩔 수 없어 성벽 안에 머물며 고민을 시작했다.
'방법이 없을까...'
"파티 사냥 하실 분~ 초보도 괜찮으니까 오세요. 튜토리얼 아직 안 하셨어도 됩니다."
"파티 구해요."
"저요."
사람들의 외침 소리.
사람들은 초면에도 새로운 파티를 꾸려 성문 밖을 향했다.
튜토리얼을 마친 사람이 파티에 한 명만 있으면, 성문을 통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파티를 해야 할까.'
"저기, 아저씨. 우리랑 파티 할래요?"
웬 꼬마들이 말을 걸어왔다.
소년 둘에 소녀도 둘 이었다.
"응? 아, 권유는 고맙지만, 저는 아직 무기도 없고 튜토리얼도 통과하지 못해서..."
"괜찮아요. 사람은 많은 게 즐거우니까."
"맞아요, 아저씨!"
"아저씨. 아저씨! 푸훗."
이들의 외모는 중학생 정도. 전부 외국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정말, 그래도 괜찮겠어요?"
"물론이죠. 그리고 말도 편하게 하세요. 아저씨."
"그래요 아저씨."
세영은 이들의 밝은 행동에 마음이 움직였다.
'아저씨 소리는 조금... 내가 늙어 보이나?'
"네 분 모두 친구인가 보네요."
"맞아요. 근데, 말 놓으세요. 그게 저희가 더 편해요."
"그래."
[파티 권유를 받으셨습니다.]
세영은 이들 파티에 합류했다.
"그럼, 실례할게."
이들은 모두가 아직 직업이 없는 2~4 레벨의 모험가들 이었다.
*
성문 밖으로 나왔다.
현실 세계에선 찾아볼 수 없는 거대한 달.
달빛 덕분에, 초원은 그다지 어둡지 않았다.
"너희들은 사냥을 할 거지? 나는 채집을 할 거니까, 파티에서 나갈게. 경험치 나눠 받으면 손해잖아. 너희들."
"에이, 괜찮아요.다섯 명이 즐겁고, 저희같은 어린아이에게는 보호자가필요하죠."
"맞아요. 아저씨."
"후후."
"옳소!"
죽이 잘 맞는 일행이었다.
덕분에 세영은 원치 않던 사냥 파티에 끼어 그들을 지켜보게 되었다.
"아저씨는 무기가 없으시니까 뒤에서 지켜보세요. 까만 곰도 무기없으니까 같이."
이들의 캐릭터 명은 유치했다.
핑쿠햄스터, 까만 곰, 노랑나비, 레드문
까만 곰이라는 여자아이가 세영의 옆으로 다가왔다.
"헤헤, 잘부탁 드려요. 아저씨."
"그래"
첫 사냥감은 여우로 정해졌다.
"내가 아까 낮에 사냥해봤는데, 일단 여우를 잡다가 익숙해지면 숲에 들어가서 고블린을 잡으면 될 거 같아."
도시 만큼은 아니었지만, 초원에는 아직도 사냥 중인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 틈에 껴 사냥을 시작했다.
"왔다."
"어, 내가 선빵이지."
핑쿠햄스터라는 소년이 검을 휘둘러 여우를 쳤다.
"다음은 나!"
두 번째는 노랑나비라는 소녀의 공격.
하지만, 가상현실 게임의 전투는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겐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다.
노랑나비의 대검 공격을 간단히 피한 여우가 반격을 해 왔다.
"꺅-"
"그러니까 내가 대검은 별로라니까. 크크크"
그리 위급한 상황은 아니었다.
밤이라 몬스터의 공격력이 강해졌지만, 여우의 공격을 정타로 다섯 번 연속 당하지 않는 이상은 죽을 리가 없었다.
"잡았다!"
[레벨이 상승하셨습니다.]
세영의 레벨이 4까지 올랐다.
'역시, 레벨을 올리는 건 사냥이 최고네.'
"고마워. 덕분에 레벨 업 했어. 근데 너무 미안한걸."
"에이, 괜찮아요."
"나중에 저희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주세요. 헤헤"
세영은 참 좋은 사람들과 파티 했다고 생각했다.
얼마가 지났을까.
[레벨이 상승하셨습니다.]
"이거 파티하니까 더 잘 오르는 거 같지 않아?"
"음, 글쎄. 그 정도는 아니고 비슷한 정도?"
어느덧 레벨은 5가 되었고, 더는 오르지 않게 되었다.
그건 세영 뿐만 아니라, 파티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꺄-"
"아아, 이거 잡고 휴식. 위험해 위험해"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들은 고블린을 잡으러 가자며 자신감이 충만했었다.
하지만 금세 현실의 벽에 가로 막혔다.
"아, 자연 회복 안되는데?"
"이 게임 미쳤네. 잡화 상점은 텅텅 비었던데."
레벨 업을 하면 체력이 가득 회복된다.
그 덕에 괜찮았던 파티의 체력 문제가 갑자기 드러나기 시작했다.
"붕대도 없고, 어떻게 하지?"
"5분 간 앉아 휴식 해야 겨우 1 회복된다고 들었어."
"헐... 미쳤네 진짜."
아이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던 세영이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꺼냈다.
"너희들 이거 먹을래?"
"네? 그게 뭔데요?"
"뭐에요 아저씨?"
[뱀딸기]
세영은 뱀 딸기를 꺼내 파티원들에게 10개 씩 나눠줬다.
전투에 참여한 그와 까만 곰 제외하면 총 30개.
그리고 아직 인벤토리 안에 500개 이상 더 남아있었다.
"뭐야, 이거? 체력이 한 번에 25나 회복되잖아?"
"난 29."
"난 30."
아이들의 놀라는 모습을 보니,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공짜 경험치를 먹는 게 미안했는데, 이걸로 부담감이 줄었다.
"와, 아저씨 채집 한다고 하시더니 굉장하시네요. 잡화점에 붕대를 감아도 10밖에 회복 안 하는데."
"맞아. 그것도 30초나 앉아 있어야 하고."
세영은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 뱀에게 더욱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게 다 그녀 덕분인 걸.
"하급 치료약 얼마였지? 그거랑 비슷하게 회복하는 거 아냐?"
"아니야. 그거 20일걸? 그리고 애초에 사재기꾼들이 잡화점 열자마자 죄다 사는 바람에 구경도 못 했어. 되파는 가격이 개 당 1실버 던 데."
"미쳤네. 시발 사재기꾼들. 아!"
노랑나비는 갑자기 나온 욕설에 내 눈치를 살피며 입을 가렸다.
"괜찮아, 평소 하던 데로 해~"
"맞아, 욕쟁이 나비씨."
"니들 혼날래!"
세영은 이들을 보며 오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건 아마도, 또래 친구들과 터울 없이 지내는 것에 대한 동경이었을 것이다.
"아저씨, 이거 받으세요."
핑쿠햄스터가 세영에게 3 실버를 건넸다.
"아니야. 이건 파티원이니까 준거야. 경험치도 공짜로 얻었는데 당연히 이 정도는 해야지."
"아, 그럼 고맙습니다. 아저씨"
"고맙습니다."
하나같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해오는 파티원들.
예의가 바른 아이들이라 생각했다.
"그럼 혹시, 방금 전 열매. 더 있으신가요? 저희가 살게요."
"살게요.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