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7화. 하급 치료약
파티원의 재촉에 세영은 당황했다.
조금 갈등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사냥 경험치도 공짜로 받는 마당에 그럴 수는 없었다.
"아냐, 너희들에게 돈을 받고 팔 수는 없지. 그냥 줄게."
세영은 한 명당 30개씩 뱀 딸기를 건넸다.
옆에 있던 까만 곰에게도 나눠줬다.
"아저씨. 대체 몇 개나 가지고 계신 거예요?"
"뭐 아직 400개 정도 더 있어."
"우와, 아저씨 정말 채집 많이 하셨네요."
"너희들도, 보이면 채집하면 돼. 뱀 딸기는 맨손으로 채집 가능하니까."
하지만 뱀의 눈 스킬을 가지지 않은 이들이 이세영만큼 뱀 딸기를 찾을 수는 없는 일이다.
"정말 감사드려요. 그리고 300개 살게요. 제발 팔아 주세요. 언제나 아저씨가 저희 파티에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세영은 그 말에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키지 않았지만, 자신에겐 돈이 필요하니까. 딸기는 또 따면 그만이고.
"고마워."
"뭘 요. 제가 더 고마워요"
[1 골드 50 실버]
30 실버를 얻어 총 자산이 증가했다.
뱀 딸기 10개에 1 실버나 받다니, 좀 심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저, 혹시 또 구하시면 저희에게 파실 수 있을까요?"
"뭐?"
"더는 채집 안 하세요?"
"아니, 하긴 할 거지만..."
[친구 신청이 들어왔습니다 x4]
파티원들이 갑자기 친구 신청을 걸어왔다. 한 둘이 아니었다.
별거 아닌 상황임에도 왠지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 같았다.
뱀 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녀와 친구가 될 때보다 훨씬 더 큰 설렘.
고민은 필요 없었다.
세영은 기쁜 마음으로 친구 신청을 모두 받아 들였다.
"아저씨, 아무 때나 말 걸어도 돼요?"
"그래."
"야호~"
노랑나비가 환호를 지르며 펄쩍 뛰어올랐다.
"욕쟁아 가만히 있어."
"뒤질래 진짜! 헙."
가상현실 속 캐릭터인데도 감정에 따라 얼굴이 붉어지다니.
세영은 그게 너무 신기해 소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게 되었다.
"저... 아저씨 미안해요. 욕 안쓸게요."
"괜찮아. 편하게 해."
세영은 미소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 혹시 내가 처다 봐서 그래? 그냥 얼굴이 빨게지는 게 신기해서 본거야. 게임 속인데 말야."
그 말에 노랑나비는 얼굴이 터질 듯이 달아올랐다.
"크크크. 그만 놀려요 아저씨. 쟤 얼굴 터지겠어요. 아, 참! 그리고, 이 딸기 말인데요. 저희 말고 다른 사람에게 팔 때는 조심하세요."
"그게 무슨 소리야?"
핑쿠햄스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왜, 잡화점도 어떤 놈들이 싹 사제기 하잖아요. 아저씨 딸기도 그놈들이 사재기 해서 더 비싼 값에 되팔지도 몰라요."
생각해 본적 없던 이야기였다.
"그래, 알려줘서 고마워."
'회복 아이템 수요가 그정도인가?'
그 답지는 않았지만, 왠지 돈의 냄새가 나는 게 어렴풋이 느꼈다.
내일 라나씨에게 치료약 제조법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 점점 기대감이 부풀었다.
"회복했으니까 서둘러 사냥하죠. 해가 뜨면, 여기 사람 미어터져요. 여우가 리젠 하자마자 다들 죽어라 달라붙으니까, 렙업하기 힘들거든요."
일행은 사냥을 다시 시작했다.
*
해가 뜨고 세영은 라나의 집을찾아가려 했다.
그런데 뱀이 날아왔다.
"알파! 딸기 줘."
세영은 딸기를 남겨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면 돼?"
"응."
뱀은 오물오물 딸기를 먹기 시작했다.
"뭐 하고오는 길인데?"
"흥, 위대한 페어리님의 사생활을 묻다니."
"아, 미안."
뱀은 당황하는 세영의 모습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난 지금 라나씨 집에 가는 길이었어."
"그래? 나도 가 주지."
"아, 응. 고마워."
세영은 뱀의 이런 태도마저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저 대화할 상대가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즐거웠다.
*
"오셨네요. 재료 준비 중이었어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라나는 이른 시간부터 매우 분주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가니 제조 실이 나왔다.
"음, 일단 스킬을 배우셔야죠."
"네."
"제가 알려드리는 순서대로 하시면 돼요."
순서는 이랬다.
1. 허브를 끓여 허브 티를 만든다
2. 나머지 재료를 차에 넣고 젓는다.
3. 그 곳에 액체를 한 방울 넣는다.
이 액체는 마나가 포함된 '마나수'라고 하는데, 잡화점에 가면 구할 수 있다고 했다.
"이게 끝인가요?"
"아니요, 여기서 스킬을 사용하는데, 처음이시니 스킬이 없잖아요."
"네, 그렇죠."
"그러니까 이제부터 중요해요."
그녀는 세영에게 작은 나무 막대를 건넸다.
"그건 마나를 머금은 나무에요. 흔히 트랜트라 부르는 나무 괴물의 가지에요."
검지 손가락을 펴고 무서운 표정을 해오는 라나.
"네. 그럼 이 다음은 요?"
"놀라지 않으시네요."
"네, 전에도 본 적 있거든요."
세영이 트렌트를 본 건 다른 게임에서였지만.
대답을 듣던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무엇을 찾는지 한동안 눈을 굴렸다.
"아, 여깄다. 그 막대로 아까만들어둔 액체를 저어요. 여기부터 서서히 마나를 흘려보내는 것이 중요해요. 그리고 완성 품에 이 돌멩이를 떨어뜨려서 색에 변화가 없으면 완성이에요."
"변화하면 실패. 다시 처음부터 반복이에요. 그러다 성공하면 스킬이 생기실 거에요."
세영은 마나가 뭔지 알고 있지만, 어떻게 흘려 보내는 건진 몰랐다.
하지만 묻지는 안았다.
상상이 그대로 실행되는 가상 현실 세계니까.
'생각하면 되지 않겠어?'
그렇게 세영의 실험이 시작됐다.
"아, 마나를 너무 많이 흘리셨네요."
첫 번째는 실패.
"이번에는 너무 부족해요."
두 번째도 실패.
"재밌네요. 근데 저, 재능이 없는 걸까요?"
"아니요. 원래 어려워요. 튜토리얼도 진행 안 하셨고, 가공 스킬 역시 없으시니까."
그리고 세 번째.
"흥, 내가 도와주지."
"뜨거우니까 조심해."
갑자기 나타난 뱀이 허브 티가 담긴 잔에 걸터앉았다.
"이 정도 뜨거움이야, 불의 정령에 비하면 미지근한 정도야."
"정령도 있구나."
"당연하지! 바보 알파."
그때 시선이 느껴졌다.
"저... 도대체 어제부터 누구랑 대화하시는 건가요?"
"아, 아니에요. 죄송해요. 집중하겠습니다!"
그리고!
"와, 성공하셨네요. 축하 드려요."
[하급 치료약 제조 법을 습득하셨습니다.]
[기초 연금술 스킬이 추가됩니다.]
[스텟 정보에 행운이추가됩니다.]
[행운 스텟이 1 증가합니다]
세영은 들려오는 메시지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한 번에 몇 가지를 주는 거야? 이 게임은 막 퍼주네.'
놀란 표정을 한 세영의 머리 주위를 열심히 날아다니는 뱀.
칭찬을 받고 싶다는 몸부림이었다.
"아, 정말 고마워 뱀"
세영은 라나의 눈치를 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몹시 부끄러워진 뱀은 어디론 가 날아가 숨어버렸다.
"가, 감사드립니다 라나님."
"아직 인사를 나누기엔 일러요. 제 부탁은 이제 시작인 걸요."
그 다음부터는 매우 간단했다.
1~3단계와, 스킬 사용을 반복 할 뿐이었으니.
[하급 치료약]
- 체력을 20 회복합니다.
세영은 식사도 하지 않고 해가 지는 시간이 다되도록 쉬지 않고 만들었다.
무려, 하급 치료약 4000 개를 만들었다.
허브 티를 끓이는 시간이 가장 오래 걸렸지만, 한번에 대량으로 만들 수 있는 부분이 다행이었다.
"와, 알파님. 정말 대단한 집중력이시네요. 초원 허브를 어떻게 그리 많이 채집해 오셨는지 이제 알겠어요. 심지어 저보다 제조 속도가 빠르시네요."
"그 정돈 아닙니다. 칭찬은 감사하지만."
세영은 그녀에게 밝은 미소를 보여줬다.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2 골드를 획득하셨습니다.]
"제 예상보다 훨씬 잘 해주셨어요. 이걸 받으세요."
[하급 치료약 200개를 획득하셨습니다.]
"이렇게 많이요?"
"물론이죠. 제가 1주일 걸려서 만드는 양을 오늘 전부 만들었는걸요."
"감사합니다."
"에이, 저야말로 고맙죠. 알파님! 아? 그리고 또 하나 부탁이 있는데..."
[!!신규 퀘스트!!]
[약제사 라나의 납품 의뢰 : 약제사 라나는 만들어진 회복약들을 잡화상의 제이크에게 건네주길 부탁했습니다.]
-분류 : 납품 (무역)
-난이도 : F
-제한 시간 : 1일
-보상 : 납품가의 10% (납품량에 따라 보너스)
"수락할게요"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그런데, 마차 없으시죠?"
"네?"
"음, 제 손수레를 빌려드릴게요."
"아, 감사합니다."
[손수레를 획득하셨습니다.]
이미 세영의 육체는 달리지 못할 만큼 무거운 상태였다.
방금, 보상으로 받은 치료약 때문에 인벤토리의 무게가 초과한 것이다.
그래서 세영은 먼저, 자신의 인벤토리에 있는 치료약을 수레에 실었다.
'이것만으로 벌써 절반 가까이 차지하네. 뭐 그래도 10번 정도 왔다 갔다 하면 되겠지.'
"그럼 다녀올게요."
"네. 수고해 주세요."
역시나 위치를 알려주는 가이드가 보이지 않았지만, 가까운 위치였기에 길을 헤매진 않았다.
그런 것 보다 문제는,
"야, 저 사람 뭐하냐?"
"하하, 퀘스트 하는 모양인데?"
"시발. 저런 노가다를 게임 속에 들어와서 까지 해야겠냐."
"근데, 뭐 싣고 가는 거지?"
아마 이들은, 세영이 옮기고 있는 물품이 뭔지 알았다면 수레를 훔치고 싶어졌을 것이다.
"야, 포션이나 뭐 없냐?"
"이 새끼는 맨날, 너 나한테 맡겨 놨어? 그리고 있으면 내가 쓰지."
"아, 이 게임은 뭔 회복하는 게 이리 힘들어. 시발 엔피씨가 파는 포션은 무한으로 있어야지. 아니면캐시로 팔던가."
포션은 캐시 아이템으로 구매하는 게 더 익숙한 세대.
세영은 이들의 목소리를 묵묵히 듣고 잡화점과 라나의 집을 왕복했다.
이미 해가 졌기에 시간을 지체했다가는 잡화점이 문을 닫기 때문이었다.
'정말 치료약이 귀하긴 귀한 모양인데.'
그리고 얼마가지났을까.
여덟 번의 왕복 끝에 납품을 모두 마칠 수 있었다.
"정말 수고했네. 이 돈을 라나양에게 전해 주게. 그런데 자네 정말 힘들어 보이더군."
[!!신규 퀘스트!!]
"감사합니다. 어?"
잡화점 주인인 제이크 씨와 인사를나누던 찰나.
새로운 퀘스트가 등장했다.
[잡화점 제이크의 권유 : 당신의 성실함이나 라나에게 신뢰 받은 점을 높이 산 제이크. 그는 당신에게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때문에 당신이 자신의 일을 도와주기를 원합니다. 제이크와 높은 신뢰 관계를 구축하면 큰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분류 : 납품 (무역)
-난이도 : F (마차 운전술 필요)
-제한 시간 : 1개월
-보상 : 마차.
"마, 마차?"
"그렇다네. 오늘 손수레를 끄는 자네를 보니 안쓰럽더군. 창고에 있는 안 쓰던 마차를 줌세. 안 그래도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마차라니. 마차가 있다면 가방이 가득 차도 마차에 넣으면 되잖아!'
[퀘스트를 수락했습니다.]
의뢰는 세개의 마을을 왕복하며 물품을 나르면 되는 간단한 일이였다.
하지만 이엄청난 보상!
이세영은 쾌재를 불렀다.
'한달이라... 시간에 여유가 있으니, 이건 천천히 하자.'
1개월은 긴 시간이고, 세영은 마차를 운전하는 법부터 배워야 했다.
해가 진 뒤에야 잡화점을 나선 세영은 걸음이 느렸다.
마지막 납품 때, 자신의 치료약 200개를 납품하지 않고 인벤토리로 집어넣은 까닭이다.
그런데 갑자기,
노랑나비: 아저씨. 뭐 하세요? 저녁 먹고 왔는데, 같이 놀아요.
세영의 시야에 메시지가 등장했다.
아침까지 사냥을 함께 했었던 파티원 소녀의 모습을 떠올렸더니 허공에 영상이 나타났다.
"아, 안녕."
"네. 식사는 하셨어요?"
"아니."
"설마, 그럼 아직도 게임 중이셨어요?"
"응, 뭐..."
"우와! 체력 좋으시네요. 아직 친구들은 접속을 안 해서요."
다들 식사를 하러 접속을 끊었던 모양이다.
현실의 시각은 이미 저녁을 지나 밤 10시가 넘었으니까.
"하급 치료약을 팔려고 하는데, 혹시 살 생각 있어?"
"딸기가 아니고 치료약을요?"
"응."
"몇 개나요?"
"200개"
"헉, 설마 아저씨 사재기 하셨어요?"
"아니, 퀘스트 보상으로 받은 건데."
"와, 한 번에 200개나 준 다고요? 그럼 2골드 인데..."
그녀는 아직 이 게임에서 골드 씩이나 되는 거금을 만져보지 못했다.
퀘스트 하나까지 꽁꽁 숨겨진 프클의 세계 안에서는, 초반에 돈을 버는 게 너무 힘든 일이었다.
"저희가 다 사지도 못하겠어요. 애들도 돈 없을 텐데."
"그래. 그럼 다른 사람들에게 팔면 되니까 걱정 마."
"그거, 도와드릴까요?"
"응?"
"제가 도와드릴게요. 할 일도 없었는데. 지금 어디 계세요?"
"지금 잡화점 앞인데."
"바로 갈게요. 1분만 기다려 주세요."
채 1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세영의 눈앞에 노랑나비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