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8화. 하급 치료약
기다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얍!"
"왔어?"
"네. 아저씨 히히."
왠지 신나 보이는 노랑나비.
그녀의 캐릭터는 10대 초반 소녀의 모습이라 몹시 귀여운 느낌이다.
"약은 어디 있어요?"
"인벤토리에. 손수레에 다시 꺼내둬야겠네."
이동이 느려지는 걸 깨달은 세영은, 다시 치료약들을 꺼냈다.
"팔기 전, 일단 손수레를 돌려주러 가야 해. 퀘스트거든."
"네, 같이 가요."
잡화점과 라나의 집은 가까웠기 때문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도착했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 반복된 납품 때는 있던 라나가 보이질 않았다.
문도 잠겨있다.
"자러 간 모양인데요?"
"어쩔 수 없지. 내일 아침까지 기다려야겠어."
"오히려 잘됐어요. 손수레가 있으면 팔기 더 편하죠. 양도 많은데."
도시의 파르도의 중심부.
거대한 광장의 여러 개의 분수대 중, 사람이 적은 곳 앞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서 팔면 되겠지?"
"네. 제가 팔아도 되는 거죠? 저 이런 거 자신 있거든요. 히히."
"근데, 얼마에 팔지?"
"글쎄요. 개당 1실 버는 받아도 될걸요. 잡화점에서 80코퍼 정도 할거에요. 그런데도 항상 매진이거든요."
때마침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짜증 나. 사람이 적은 밤에 사냥을 해야는데, 치료약이나 붕대가 죄다 매진이니..."
"씨발, 사재기꾼 새끼들 다 죽이고 싶다."
그걸듣던 노랑나비는 신이나 목소리를 높혔다.
자기것도 아닌데 왠지 우쭐해 지는 이 기분.
"하급 치료약 팔아요~"
그 목소리와 함께, 주변이 정적에 휩싸였다.
고개를 돌린 수많은 인파.
이윽고 수근거림이물결 처럼 퍼져 나갔다.
"뭐라고?"
"뭘 판다고?"
"씨발, 저거 사재기꾼 아니야?"
"여러분무시합시다. 저거사재기꾼이 틀림 없어요."
그 말에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세영과 노랑나비를 향해 따가운 시선을 보냈다.
세영은 그바람에 조금 위축되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당당한 노랑나비.
잘못을 한 일이없으면 언제나 당당해도 된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사재기 아니거든요! 퀘스트 보상으로 받은 하급 치료약 200개 팝니다. 선착순! 늦으면 못삽니다."
순식간에 주변 공기가 달라졌다.
선착순이라는 말은 사람들을 안달나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 내가 사지. 씨발 사재기건 뭐건 난 빨리 렙업해야 된다고."
눈치를 보던 몇몇이 앞으로 나섰다.
"아니! 내가 전부 다 사지."
"나한테 팔아. 얼마야 대체."
분수대 앞을 향해 삽시간에 수십 명이달려들었다.
노랑 나비는 세영을 한번 처다보며,
"아저씨. 가격, 제가 정해도 될까요?"
"응."
이세영은 당황하며 고개를끄덕였다.
경험해 본적 없는 많은 인파가 자신의 앞에서 떠들어 대는 것에 놀란 탓이다.
"하급 치료약! 가격은 개당 1 실버입니다. 한 사람당 5개 이상은 안 팔아요. 사재기꾼이 되팔지 못하게 하려는 거니까 이해 부탁합니다."
와아아!
그 말에 사람들이 환호성을 외쳤다.
"정말 사재기가 아닌 모양인데? 아까 낮에 누가 개당 2 실버에 파는 것도봤다고."
"나,나부터 살게."
"뭔 소리야. 내가 먼저 왔어."
이런 소란스러움에, 오히려 더 많은 인파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줄 서세요. 줄 안 서시거나 새치기하는 사람에겐 안 팔 거니까."
노랑나비의 목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줄을 서느라우왕좌왕 하기 시작했다.
"이봐 여기 새치기 한다고."
"무슨 소리야. 내가 먼저 왔다니까!"
"거기 두분. 조용히 안하시면 안팔거에요!"
초딩. 끽해야 중딩으로 보일 법 한 어린 소녀가 하는 말에, 우락부락한 근육질 캐릭터나 영화 속에 나올 법한 200살은 돼 보이는 늙은 마법사 외형의 사람들이 고분고분 따르는 모습.
세영은 그걸 바라보며 노랑나비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하급 치료약 200개를 주는 퀘스트라니, 대체 무슨 퀘스트지?"
"아, 기다리는 사람 안보여? 샀으면 저리 비켜!"
도대체 어떤 퀘스트로 치료약을 얻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
하지만, 그걸 이런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할 순 없었다.
"힌트라도 좀 줘, 아니면 팔던가."
"그래. 50 실버 어때. 내 전 재산이야."
문제는 치료약을 전부 판 이후에 벌어졌다.
약을 산 사람들이 하나같이 돌아가질 않고, 퀘스트에 관해 물어 왔기 때문이다.
노랑나비는 세영을 한번 힐끗 바라봤다.
'어쩌지, 라나씨 집을 알려줬다가 이들이 죄다 몰려가면 그녀가 곤란할 텐데...'
세영은 고민 끝에 이런 답변을 내놨다.
"제작 퀘스트 입니다. 튜토리얼에서 제작을 선택해 보세요. 힌트는 여기까지입니다."
그 답을 들은 사람들은,
"아, 뭐야. 제작퀘인가."
"그럼 전투직을 포기해야잖아."
"아, 씨발. 요즘 게임에서 누가 제작직을 해. 현실에서도 죄다 로봇들이 하는 판에."
이런 소리를 하거나.
"야, 너 연금술사 해라. 내가 너한테 포션 사먹을게."
"아, 우리 여동생이 이런거 좋아하는데. 엄브렐라 사주는 조건으로 노예로 써먹어 볼까."
"고정 구합니다. 물약 대줄 분. 저희 파티에서 키워드립니다."
자신이 선뜻 나서서 제작직을 선택 하려는 사람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뭐, 조용히 사라진 사람들중 한 두명 있을진 모르겠으나.
사람들이 흩어지고, 분수대 앞에는 다시 세영과 노랑나비만 남았다.
"휴~ 드디어 다 떠났네요. 히히."
"도와줘서 고마워. 너 아니었으면 정말 곤란했을 거야."
"에이 뭘요. 전 원래 이런거 좋아해요. 주목받는 거. 킥킥."
귀엽게 웃어대는 노랑나비.
그녀를 보며 세영은 우연히 만난 친구들 덕을, 크게 받고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녀도 그렇고, 라나씨나 뱀을 포함해서.
"정말 고마워. 자 받아."
세영은 그녀에게 30실버를 건냈다.
"에이, 괜찮아요. 아침에 딸기도 받았고. 제가 좋아서 도와드린 거니까."
"그래도 받아. 나만 도움을 받으면 미안하잖아."
"그럼, 사양하지 않을게요. 감사합니다. 아저씨!"
소녀는 예의 바르게 허리를 90도 굽혀왔다.
"앗, 친구들이 접속한 모양인데, 아저씨도 가실래요?"
고민됐다. 세영은 이미 5레벨.
경비는 아직도 자신을 막아설 것인가?
그런 게 궁금해졌다.
"음, 너희들은 사냥 할거지?"
"뭐, 그렇지 않을까요? 회복용 딸기도 있고!"
"난 채집을 좀 하려는데, 일단 같이 가자."
"아! 저도 채집하시는 거 보고 싶어요. 그래도 되죠?"
"응. 물론이지."
치료약을 파는 데 걸린 시간은 30분 정도.
아침이 밝아 오려면 몇시간은 남아있어, 세영은 노랑나비와 함께 도시 밖을 향하기로 했다.
*
[기초 채집 스킬의 레벨이 상승하셨습니다.]
채집 스킬이 3레벨로 올랐다.
이쯤 되자, 초원 허브는 세영의 손만 스쳐도 채집되는 수준이었다.
"와~ 정말 빠르시네요. 스킬 차이인가요? 저는 11번 채집하니까 한 번 겨우 성공했어요."
"음, 아마 가위가 없어서 아닐까?"
"아... 그 가위 비싼 건가요?"
"엔피씨에게 대여한 거야. 한번 써볼래?"
"그래도 돼요?"
"당연하지. 사실, 이렇게까지 해주는 건 내가 미안할 정도야."
노랑나비는 친구들이 옆에서 사냥 중인데도, 계속 세영의 곁에붙어있었다.
하지만 채집중인 이들역시, 사냥중인 친구들과 모두 파티 중인 상황.
거리가 가까워 채집을 하면서도 사냥하는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었다.
"괜찮아요. 오히려 쟤네들이 훠얼-씬 이득이니까. 회복 못하면 사냥도 못한다구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저기 혹시. 너도 제작에 관심 있는거야?"
"네? 아... 그건 아니에요.그냥 흥미있어서. 히히."
세영은 그녀의 나이가 한창 호기심 많을 때라고 생각했다.
이건 캐릭터의 모습만보고 세영이 한 착각이었지만.
"아저씨는 주로 언제 게임하세요?"
"음, 글쎄. 아마 매일 하긴 할거 같은데..."
"무슨 대답이 그래요."
"아니야. 사정이 좀 있어서 그래."
그녀는 사정이 뭔지를 물으려다가 고개를 저었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는 법.
옆에 계속 붙어있던 노랑나비는 채집중인 이세영을 한참 바라보다가 아침이 돼서야 돌아갔다.
그리고 채집에 집중하던 세영.
그의 작업은 날이 밝고 거기에 더해 오후 늦은 시간까지 계속됐다.
'벌써 해가 지고 있네.'
결국 하늘이 노을지기 시작한 뒤에야 그는 정신을 차리고 라나의 집을 찾아갔다.
"늦으셨네요. 알파님"
"죄송합니다. 채집을 좀 하느라."
"네?"
세영이 가져온 수레에는 한 가득 초원 허브가 쌓여있었다.
그리고 그의 인벤토리에도 가득.
그걸 확인한 라나는 이마에 손을 얹고 고개를 저었다.
"알파님. 초원허브 농장이라도 가지고 계세요?"
그런 대답이 돌아왔다.
*
약제사 라나에게 잡화점 제이크로부터건네받은 납품 대금을 전달했다.
손수레 역시 반납.
"정말 수고하셨어요. 이건 의뢰비예요."
[납품 의뢰를 완수하셨습니다]
[기초 무역 스킬이 생성됐습니다]
[2골드를 획득하셨습니다]
[보유 금액 : 7 골드 20 실버]
세영은 납품 대금의 10%인 2골드를 받았다.
치료약 1개의 납품가가 50코퍼니, 4천개면 20골드.
사실 납품한 개수는 3800개였다.
하지만 부족했던 치료약의 대량 납품 소식에 기뻤는지, 덤이 추가됐다.
'잔액이 벌써 7골드. 이 정도면 대체 현금으로 얼마지?'
[환전소 화면을 띄웁니다.]
세영이 그런 생각을 하자, 환전소의 화면이 자동으로 나타났다.
[환전소와경매장을 처음 사용하시는 고객님에게는 가이드가 제공됩니다.진행하시겠습니까?]
그리고 들려오는목소리.
세영은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었다.
내용은 대강 이랬다.
먼저 게임 내 물품이나 아이템. 가치 있는 정보를 CC(클라우드 코인)으로 사고파는 전용 거래소와 경매장. 그 사용법이 흘러나왔다.
그다음에는 환전소.
세영의 엄브렐라 기기로는 판게아 행성의 화폐인 코퍼, 실버, 골드,플레티넘 골드 등의 환전만 가능. 지금 보유한 금액을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CC를 받고 판매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사는것도 가능하고.
'와, 그럼 지금 시세가 얼마지?'
[현재 시세는 1골드 기준 11만 CC 입니다.]
'헉, 뭐라고? 그럼 7 골드면 77만원?'
CC가한국의 화폐인 원과 1대1 비율로 교환되니까 세영의 계산은 옳았다.
환전 수수료를 제외하고도 70만원 이상.
현재 판게아 행성은 세계에서 몰려드는 수많은 플레이어 수에 비해, 초반 난이도가 지나치게 어려웠다.
오픈 2주가 지났는데, 최고 레벨이 겨우 30 초반.
하지만 그런 부분이 오히려 부자들과 하드코어 게이머들을 자극했고,화폐 시세가 매우 높게 형성 돼 있었다.
"요즘 프클에서 제일 핫한 행성이 어디야?"
이런 질문이 나오면 게이머들은,
"당연히 판게아 행성 아니냐?"
"맞아. 웹튜버나 인터넷에서 겜방송하는 사람 중에도 거기서 방송하는 사람많더라. 시청자 수도 폭발적이고."
"야, 거기 지금 난리야.나 아는 형은 사고 싶은 아이템 있는데가격이 억이라더라.10렙 짜리 아이템인데."
캐시 아이템, 랜덤박스, 오토 봇, 핵 등.
이런 게임의 해악들이 사라진 세계이니 전세계 온라인 RPG게이머들이 열광하는 것 역시 당연했다.
무엇보다 아이템은 물론 골드 같은 인(IN)게임 화폐를 결코 클라우드 컴퍼니에서 만들어 내지 않는다는 사실.
오로지 인공지능 '엔젤'에 의해서만 시스템이 운영된다는 건 프클이라는 가상현실 세계가 소비자에게 신뢰받는 가장 큰 근거였다.
세영은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자신이 벌어들인 액수가.
'지금 얼마나 게임을 한 거지? 12시간?'
[총 14시간 플레이 하셨습니다.]
'뭐? 14시간 플레이하고 77만원이나 벌었다고? 말도 안 돼...'
놀라웠다.
자신은 오늘 처음 게임을 시작했을 뿐이다.
만약 그의 레벨이 더 높았다면?
'그래... 이거야. 이 게임만 잘하면 돈을 벌 수 있어!'
심장이 마구 요동치기 시작했다.
'허브란 허브는 다 채집해서 전부 회복약으로 만들자!'
이세영이 이런 생각을 할 때, 그가 모르는 곳에서는 작은움직임이 있었다.
도시 파르도 중앙 광장.
"야, 잡화점에 있는 애한테 메시지 왔는데 지금 잡화점 하급 치료약 가격이 오른 거 같다는데?"
"뭐? 시발, NPC 주제에 돌았나."
"야. 나 포션 만들러 간다. 연금술 해야지 안 되겠다."
"그런 사람이 한둘이겠냐. 그랬다가 시세 폭망하면 어쩔라고 크크크"
잡화점 NPC 제이크.
그가 하급 치료약의 가격을 인상했다.
제이크가 3800개의 납품에 4천개 가격의 대금을 지불한 이유.
그건 자신이 훨씬 더 남겨먹을 생각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