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12화. 정보는 돈이 된다
사장에게 들은 말 때문에 세영은 고뇌했다.
물론, 게임을 통해 번 천만 원이라는 돈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된다는 건 너무기쁜 일이다.
하지만 금액이 큰 만큼,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들었다.
사장을 속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일단, 통장에 넣고 나중에 말씀드리자.'
토요일에 새로운 사람 면접을 보기로 했으니, 그때 사장을 만나면 사실대로 이야기하기로 결정했다.
돈은 자신이 쓰지만 않으면 통장에 그대로 있을 테니까.
'이 엄브렐라도 사장님 소유고, 그래도 절반 씩 나눠 갖는 게 맞겠지.'
이세영은 그런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
게임에 돌아온 세영.
곧바로 자신의 통장을 등록했다.
[알파 님의 계좌 K뱅크가 등록되었습니다. 계좌에서 곧바로 CC 코인을 1대 1 비율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골드판매'
[판매할 금액을 정해 주세요.]
'90골드'
[현재 판게아 행성의 골드와 CC의 교환 시세는 1골드에 111000 CC 입니다.]
'뭐?'
판게아 행성은 오픈 후부터 꾸준히 화폐의 가치가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끊임 없이 밀려 드는 사용자와, 판게아 행성 전용 접속 기기인 엄브렐라가 500만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보급중이기 때문이다.
'그럼, 나중에 더 오르면 해야 하나?'
하지만 세영은 결국 교환을 선택했다.
시세라는 건 거꾸로 언제 폭락할지도 모르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그에게 게임 안의 돈이 현실의 돈이라는 감각이 희미했다.
현실의 돈을 가지고 있어야만 비로소 자신의 돈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구매자가 대기 중입니다... 거래 중입니다... 골드가 판매되었습니다.]
[잔액 : 1009만 CC]
원래 있던 10만 CC를 더해 무려 천만 이라는 CC가 생겼다.
'환전'
세영은 다시 환전을 선택했다.
[클라우드 코인을 한국의 원화로 환전 합니다. 환전 금액은 알파님의K뱅크 계좌로 입금됩니다. 환전 수수료는 1% 입니다.]
환전은 순식간이었다.
'와아... 정말 입금 됐어...'
세영의 통장에는 환전 수수료를 제외하고도 천 만원 가까운 금액이 입금 돼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50억 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지금 골드 시세가 유지 되어도 이런 속도면 무려 500일이 걸린다.
'시세가 내려가기 전에 서둘러 치료약을 만들자.'
세영은 서둘러 잡화점을 향했다.
의뢰품을 싣고 남아있는 두 개의 마을을 향해야 한다.
서둘러 퀘스트를 완료하고 그 보상으로 마차를 받아, 한번에 대량의 허브를 채집할 생각이었다.
*
프클이라는 가상 현실 세계에 접속하는 기기는 다양하다.
엄브렐라. 콕핏. 레인 등등.
한국에서 구름 방이라는 별칭이 생긴 프로스트 클라우드 전용 카페.
그 많던 PC방은 대부분 사라지고, 몇 몇 가상 현실 전용 카페, 지금은 프클 카페로 변경됐다.
그리고 프클 카페 전용기기인 '레인'.
레인은 한 기에 무려 2억이나 한다.
이는 엄브렐라와는 달리 레인이라는 기기가 단 한 명이 아닌 다수의 사람이 사용 가능하기 때문이다.
[생방송 중계를 시작합니다.]
콕핏은 프클의 접속 기기 중 가장 고가의 기기 중 하나 이다.
"안녕하세요 BJ 포르말린입니다. 여러분의 성원 덕분에고블린 보스 사냥 영상이 조회 수 5억을 돌파했습니다. 성원에 힘입어 내일 이 시간에는 시청자 여러분에게 고블린시리즈를 이벤트로 나눠 드립니다."
BJ 포르말린이 사용 중이라 더 유명해진, 프클 방송 전용기기 '콕핏'.
콕핏의 가격은 무려 20억이나 했다.
[포르말린님 편집을 완료했습니다.]
"오, 땡큐~"
다양한 각도의 영상 촬영은 물론.
인공 지능을 이용해 플레이 화면에 존재하는 민감한 비밀 정보를 알아서 편집해주는 놀라운 기능까지.
콕핏은 모든 프클 방송 웹튜버들의 워너비 기기였다.
이 외에도 알파 닥터가 연결돼, 플레이 도중에도 신체의 변화를 수시로 체크해 주는 환자 전용 기기.
가상 현실을 통해 트라우마나 우울증 같은 정신 질환을 치료하는 기능이 있는 기기까지.
다양한 기기들이 존재 했고, 더 개발, 출시되고 있었다.
*
[경매가 종료되었습니다.]
[최종 낙찰가 : 1410000CC]
채집가를 구하는 퀘스트의 정보 경매가 종료됐다.
최종 낙찰가는 141만.
'이제, 라나씨도 초원 허브 채집 걱정을 덜겠네.'
세영이 그런 생각을 하며 잡화점 앞에서 마차에 짐을 싣고 있었다.
이제 마차 보상을 받기 위해 남은 건 북부의 마을 뿐이다.
"알파. 잘 부탁하네. 그리고 서둘러 끝내라고. 얼른 치료약 만들어 납품해야지 않겠나? 오늘은 재고가 없어 아예 판매를 못했다니까. 아우성 대는 손님때문에 골치가 아프다고."
제이크는 저렇게 돈을 벌어 어디다 쓸까?
그런 의문이든 세영이었다.
노랑나비: 아저씨, 저희랑 사냥 가요.
그녀에게 또 메시지가 왔다.
"응?"
"아저씨 저희랑 사냥 가요. 이제 초원에서는 레벨도 오르지 않으니까 장소를 옮기려고요."
세영은 고민이었다.
돈을 벌어야 하는데, 생각해 보면 10레벨이 넘는 고블린을 잡기 위해선 자신도 레벨업을 해 둬야 하지 않겠는가.
"나 퀘스트 중인데 어쩌지?"
"무슨 퀘스트 인데요?"
"마차를 타고 북쪽 마을에 가야 해. 물품을 납품하는 의뢰야."
세영이 말하는 도중인데, 영상 속노랑나비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친구들에게 물어봤는지,
"저희도 같이 가도 될까요? 마차도 궁금하고. 히히."
"사냥한다며."
"네. 그런데 어디서 할지 정해진 건 아니거든요. 북쪽에도 몬스터가 있지 않겠어요?"
세영은 그 말을 듣고 흔쾌히 수락했다.
"그래. 마차에 어린이 네 명은 충분히 탈 수 있을 거야."
"오예~ 애들 데리고 갈게요. 잡화점으로 갈까요?"
"응. 기다릴게."
"네. 금방 가요."
세영은 이번 운행이 시끌벅적할 거 같았다.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으니 그 역시 반가웠던 모양이다.
*
"보통 이런 마차를 타면 엉덩이가 아파야 정상인데, 전혀 그런 게 없네."
"너 엉덩이에 살이 많아서 그런 거 아니야?"
"아니거든!"
"하하하하."
즐거운 여행길이었다.
"아저씨 언제까지 가요?"
"다 왔어. 초보 퀘스트라 그다지 멀지 않거든."
"그런데 아저씨는 이런퀘스트를 어떻게 찾아내요? 저희는 기사가 주는 몬스터 사냥퀘 말고는 하나도 안 뜨던데."
"맞아요.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런 거 같던데."
세영은 오히려 반문하고 싶었다.
자신이야말로 몬스터를 잡는 퀘스트는 전혀 안 떴으니 말이다.
"그냥, 대화하고 다녔더니 주던데."
"정말요? 나도 아무나 NPC한테 말 걸면 주려나?"
"아니. 넌 안돼.믿음이 안 가게 생겼잖아. 킥킥."
"뭐? 주글라고!"
세영은 마차를 운전하며 보이는 풍경이 기분 좋았다.
뒤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어린 친구들의 목소리도 듣기 좋았다.
"아저씨! 아저씨는 어떤 직업으로 전직하실 거에요?"
"글쎄, 아직 생각 안 해봤는데."
노랑나비가 물어왔다.
판게아 행성의 모험가들은 10레벨이 되면 첫 번째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일정한 퀘스트를 달성하면 언제든지 변경 가능.
자유도가 높아 검사가 마법을 쓰거나 마법사가 칼질을 하거나 모든 게 가능했다.
다만, 전투 효율면에선손해를 볼지도 모른다.
"너희들은 정했니?"
세영이 묻자 서로 먼저 말하려고 작은 다툼이 일었다.
그리고 승자는 노랑나비였다.
"저는 보셔서 아시겠지만 거대한 대검이 좋아요. 멋지잖아요."
"야, 대검 느리고 안좋다니까. 우린 덩치도 작게 만들었잖아."
캐릭터와는 상반된 선택 이었다.
"야, 게임은 하고 싶은 거 해야 재밌는 거야. 그쵸 아저씨?"
"응.그건 나도 공감해."
"그것 봐!"
그러자 소년들이 목소리를 높혔다.
"에이, 그건 아니죠. 처음에는 몰라도 나중 되면 쎈캐릭이 짱이죠. 똑같이 게임했는데 누군 보스 쓸어 버리고 있는데, 나는 근처도 못 가면 얼마나 짜증 나는데요."
"맞아요. 특히 템도 나보다 안 좋은 놈한테 PK당하면 게임 접고 싶잖아요."
그것이 일반적인 생각일 것이다.
그러니 대다수 온라인 게임들이 그 심리를 이용해 강력한 아이템을 팔아먹는 걸 테고.
세영은 이들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그래서 저는, 검방 전사 하려고요. 공격도 되고, 방어도 되는 올라운더 캐릭터가 목표에요."
항상 앞장서 선제공격을 하는 핑쿠햄스터에게 어울리는 선택이었다.
"저는 마법사요. 판타지의 꽃은 마법사죠! 강력한 마법으로 적이 접근하기도 전에 끔 살 시켜버리면 얼마나 통쾌한데요."
레드문이라는 소년은 마법사를.
"그럼 까만 곰은?"
"음... 저는 잘 모르겠어요. 가까이 가는 건 무서우니까 저도 마법사나 아니면 활을 쓰는 헌터나... 힐러도 좋고."
까만 곰은 아직 정하지 못한 모양이다.
"힐러?"
"네. 근데 힐러 전직은 엄청 어렵대요. 전직 퀘스트를 받는 것도 어렵고, 받아도 도움 없이는 클리어도 힘들고."
"그렇구나. 힐러가 많았으면 치료약이이렇게 비쌀 리도 없었겠지?"
세영은 그렇게생각했다.
애초에 힐러가 있었으면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대부분 힐 스킬로 치유가 될 테니까.
"그건 또 달라요. 이야기 들어 보니까 힐러는마나 포션이 엄청 든 데요. 마나 포션은 엔피씨가 팔지도 않는데."
"마나포션?"
"네, 마법사 계열이랑 힐러는 마나가 부족해서 항상 앉아서 회복해야 하는 정도래요. 전투 시간보다 앉아있는시간이 더 많다고들 난리라 던 데."
세영에겐 반가운 소식.
모르는 새로운 식물들을 채집해서, 새로운걸 만들 생각을 하니 몸이 근질근질해졌다.
거기다 가격도 비싸면 금상첨화.
"앗, 저기 마을이 보인다."
세영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마을은 지난 두 개의 마을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마을 주변으로 높은 나무 울타리가 쳐져 있는 것도 이상했다.
"멈춰라!"
히이이잉.
심지어 문을 가로막는 경비병도 있었다.
"어떻게 왔나."
"아, 네. 잡화점 제이크씨에게 부탁 받고 치료약과 붕대를 가져왔습니다."
"그래? 뒤에 탄 아이들은 누구지?"
"아, 그냥 친구들 입니다."
경비병은 마차의 짐칸을 자세히 살폈다.
거기 타고 있던 아이들은 모두 내려 옆에 섰다.
"사실인 모양이군. 통과!"
"저, 그런데 경비병님. 여긴 왜 이렇게 삼엄한가요?"
"응? 여긴 처음인가? 이곳은 헌터 마을. 마을 북쪽으로 펼처진 숲 깊숙한 곳에는 고블린의 거대 세력이 포진해 있다네. 언제 놈들이 습격해 올지 모르니 만전을 기해야지."
아직 준비도 하기 전인데, 벌써 고블린의 이름이 등장했다.
핑쿠햄스터가 질문을 던졌다.
"경비병님. 저희는 6레벨인데 여긴 아직 위험할까요?"
"음... 아니다. 북쪽 숲에만 가지 마라. 마을 남부에는 무리에 들지 못한 떠돌이 고블린이나 멧돼지들이 서식하지. 그놈들을 잡고 연습을 쌓도록 해라. 다만 절대 혼자서는 가지 않도록."
"아, 고맙습니다."
파티의 사냥 목표가 정해졌다.
세영은 먼저 헌터 마을의 수장을 찾아가 퀘스트 의뢰품을 전하고 대금을 받았다.
이 마을의 수장은 치료약의 시세에 민감한지 가격이 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때문에 세영은 남쪽 마을에서 일어났었던 귀찮은 일 없이, 쉽게 납품을 마치고 대금을 받을 수 있었다.
"뭐야, 저 사람. 고블린 헌터 대장의 집에서 나오는데?"
"대장이 주는 퀘는 고블린 정예나 보스 퀘스트 아니었어?"
"그러니까. 옷 입은 건 완전 초보 모험가 같은데."
이미 고블린을 며칠 간 사냥해 온 많은 플레이어가 마을에 가득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세영을 보고 놀랐다.
"뭐야? 마차도 있는데?"
"헐. 나도 갖고 싶다."
"야, 니가 가서 마차 어디서 구하는지 물어봐."
"아- 싫어! 니가 물어봐. 그리고 알려 주겠냐? 팔면 몰라도."
그런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뒤로하고 세영은 파티원들과 사냥을 나섰다.
게임 시간으로 이제 막 정오가 되는 시점이었다.
*
헌터 마을에서 가까운 남쪽 길.
마차를 길가에 대고, 사냥 준비를 시작했다.
길가 양옆으로 있는 숲에, 혼자 있는 고블린들이 몇몇 보였다.
"아저씨. 치료약은 얼마나 있어요?"
"지금은 없는데. 그 대신 주스가 있어."
"네?"
"뱀 딸기 주스라고, 하급 치료약보다 회복량이 2배인 주슨데 지금 60개 정도 있어."
세영의 말에 다들 눈이 동그래졌다.
"두 배요?"
"두 배라면 엄청 비쌀 텐 데."
하지만 대량 생산 하기에는 쉽지 않아서 세영은 치료약을 팔고 주스는 마시기로 했다.
"괜찮아, 일단 한 사람 당 열 병 나눠줄게. 다 쓰면 말해."
"정말, 매번 이렇게공짜로 받아도 돼요?"
"당연하지. 난 전투에는 전혀 도움이 안될 테니까."
허리를 숙여 매번 인사를 해오니 세영은 그게 더 미안해졌다.
하지만, 지금까지 건넨 치료약의 가치가 현금으로 환산하면 수십 만원을 호가할 정도니, 이들의 태도는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 세영이었다.
"일단, 안전하게 길가로 한 마리만 데리고 올게."
"응."
핑쿠햄스터가 돌멩이를 던져 떠돌이 고블린 한 마리를 유인했다.
"키익, 크악"
고블린은 나무를 깎아 만들었을 방망이를 휘두르며 달려왔다.
"공격!!"
아직 직업이 없는 탓에, 여우를 잡을 때와 별다를 것 없는 전투가 시작됐다.
고블린이 무기를 휘둘러공격을 해온 탓인지, 아니면 단순히레벨이 높아선 지, 공격을 맞는 횟수가 전보다 늘었다.
"정말, 회복약 없었으면 어쩔 뻔 했어. 아저씨 고마워요."
"아니, 뭘."
"그리고 이거 회복량이 2배라서 엄청 좋아요. 치료약보다 훨씬 비쌀 거 같은데."
핑쿠햄스터가 고블린의 공격을 피하며 말했다.
'그나저나, 이렇게 뒤에서 보고만 있는 건 곤욕인데.'
전투를 지켜보던 세영은, 주변의 식물들을 바라봤다.
혼자 가만히 있기보단 채집이라도 해야 할 거 같았다.
'음, 채집할 거 뭐 없나?'
[파르도 약초 도감을 사용합니다. 주변의 식물을 바라보면, 대상이 약초일 경우에 한해서 자동으로 설명이 나타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