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17화. 전직 퀘스트
쇠뇌의 근처에는 발사체로 보이는 탄환 역시 존재했다.
[빈 개조 탄환]
- 내용물이 없는 속이 빈 개조 탄환입니다. 히부린의 개조 쇠뇌 전용으로, 안에 연금술로 만든 약품을 넣어 사용 가능합니다.연금술 발사자 퀘스트 전용 아이템으로, 퀘스트가 없는 사람은사용할 수 없습니다.
[임시 개조 탄환 제조 스킬을 습득하셨습니다.]
간단한 레시피였다.
빈 탄환과 연금술로 만들어진 약품들만 있으면 됐다.
세영은 급히 제작을 시작했다.
[임시 개조 탄환 : 마비 가루]
[임시 개조 탄환 : 마비 독]
마비 가루를 사용하면 가루 탄이 됐고, 마비 독 포션을 사용하면 독 탄이 완성됐다.
'이것 만 가지고 놈들을 쓰러뜨릴 수 있을까?'
의문이 일었지만 더는 시간이없었다.
"문이... 문에 금이 가고 있어요."
"아저씨. 이대로는 시간이 얼마 없어요."
세영은 다급히 쇠뇌를 들고, 문앞에 섰다.
"한번해보자. 다들 마스크를 착용해."
"네!"
세영과 모두는 마스크를 착용했다.
그걸 확인한 세영은, 부서져 가는 문틈 사이로 쇠뇌를 사용해 탄환을 발사했다.
푸쉬쉬-
얼마 날아가지 못한 탄환.
가루 탄은 힘없는 소리를 냈지만, 주변으로 마비 가루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역시, 안되나 봐. 퀘스트가 갱신이 안돼."
"놈들을 완전히 죽여야 하지 않을까요. 제가 한번 해볼게요."
핑쿠햄스터가 앞으로 나서 문을 열었다.
수십 마리의 거미들이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와-. 마비 효과는 정말 엄청 나네요."
"나도! 이럴 때야 말로 나의 차례지!"
노랑 나비가 자신의 커다란 대검을 휘두르며 앞으로 나갔다.
[퀘스트 진행 : 1/100]
"파티원이 처치해도 퀘스트가 진행 되는데?"
"정말요?"
"다행이네요. 그래도 연금술 같이 전투 능력이 거의 없는 직업이라서 그런 것은 아닐까요? 파티원과 함께 클리어 할 수 있게."
일행은 마치 자신들의 일처럼 기뻐했다.
그리고, 이 동굴을 빠져나갈 수 있는 희망 역시 보였기에 의욕이 샘솟았다.
"놈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그래. 아직 탄환은 많으니까!"
가루 탄의마비 유효 시간은 20초 가량.
세영은 또 다시 가루 탄을 발사했다.
거미 학살이 시작됐다.
*
"이거, 너무 쉬운데요?"
벌써 몇십 분 동안 전투가 계속 되고 있다.
"맞아요. 마비만 있다면 거미 뿐 아니라 다른 몬스터들 잡을 때도 껌이겠어요!"
마비되 움직임이 멈춰버린 거미들은, 아주 간단히 처치 가능했다.
미동조차 없으니 무엇보다 안전했고, 또 그 때문에 공격이 빗나가질 않았다.
"이건, 거의 사기 급인데요?"
"아저씨. 꼭 저희랑 같이 다녀요. 저희 버리시면 안 돼요!"
"그래. 당연하지. 다 너희들 덕분이니까."
세영은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자신의 능력이 분명하게 전투에 도움이 되고 있었다.
"아저씨 보니까, 저도 히든 직업 하고싶네요. 정말 말도 안 되는 거 같아요."
"나도. 다른 히든 직업 찾아 볼까?"
"맞아. 전직이 급한 것도 아니니까."
그런 말이 나올 정도로, 세영의 능력은 가히 놀라웠다.
아직 클래스변경이 완료되지도 않았을 뿐인데 이 정도라니.
그러나 한계도 분명 존재했다.
"이거, 끝도 없네요."
"그러게. 대체 몇 마리나 있는 거야."
"아저씨 퀘스트만 완료하면, 놈들을 마비 시키고 그냥 도망가요."
"정말 그래야겠어."
탄환수의 제약.
한 발, 한 발의 탄환을 일일이 제작해야 하는 만큼, 철저한 준비 없이는 장시간 사냥이 불가능했다.
[퀘스트 진행 : 100/100]
[퀘스트를 완수했습니다.]
"끝났어. 이제 가루 탄도 얼마 없으니 밖으로 도망치자!"
"네!"
"모두 달려~"
세영과 파티원들은 페어리들을 데리고 동굴 밖을 향했다.
거미의 수가 워낙 많아, 가루 탄을 최대한 아껴가며 써야 했다.
달리는 와중에도 세영의 귀에는 시스템 메시지가 쉴 새 없이 들려왔다.
[연금술 발사자로 클래스가 변경되셨습니다.]
[기초 연금술 스킬(lv. 5)이 일반 연금술 스킬(lv. 1)로 변경됩니다.]
[신규 스킬 '개조 탄환 제작'을 습득하셨습니다.]
[마법 방어력이 10 증가합니다.]
[쇠뇌개조 법을 터득하셨습니다.]
[기초적인 연금술의 제작 속도가 증가합니다.]
[개조 쇠뇌를 사용한 공격 시 연금 약품의 효과가 10% 증가합니다.]
.
.
.
세영은 너무 많고, 다양한 정보량에 나중에다시 확인 하기로 결정했다.
일단은 탈출이 먼저니까.
"갈림길이다."
"와, 이제 반 남았어."
쿠구구구궁.
갈림길을 지날 때였다.
엄청난 소음이 들렸다.
그리고 동굴 전체가 강하게 흔들렸다.
"뭐... 뭐야?"
"거미들이 다 물러나는데?"
"저... 건 대체, 뭐야?"
유난히 심하게 흔들리는 커다란 바위.
투웅. 투웅.
몇 개의 부서진 바위 조각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먼지를 날렸다.
"케헥. 콜록. 이... 이건..."
모두 경악에 입을 벌렸다.
눈 앞의 바위가 움직이고 있던 것.
"설마..."
쿠웅!
어두운 동굴 안에 갑자기 여섯 개의 붉은 빛이 나타났다.
단순한 빛이 아니었다.
그건 포식자의 눈이었다.
끼에에에엑-.
[바위 동굴의 가디언 '스피노자'가 등장했습니다.]
일행의 앞을 가로막는 존재.
거대 바위인 줄만 알았던 것이, 사실은 보스였던 모양이다.
그것도 몸통이 단단한 바위 같은 모습을 한 거미의 보스였다.
"보... 보스?"
"네임드 몬스터네요!"
몬스터가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건, 그만큼 강력한 존재라는 증명.
찍-!
촤악-!
"꺅- 뭐야... 으히익. 싫어~~!!"
스피노자가 쏘아 낸 흰색 덩어리.
까만 곰의 몸에 적중한 그건 흡사 거미줄과 비슷했다.
"몸이... 안 움직여."
"기다려봐. 내가 잘라줄게."
노랑나비가 대검을 사용해, 까만 곰을 감싼 거미줄을 열심히걷어냈다.
시간이 걸렸지만, 다행히 불가능 한 건 아니었다.
"저 공격을 받으면 단번에 체력이 30%나 깎여요."
"그건, 위험한데."
그나마 작은 거미들이 더는 다가오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웬만한 마차 크기보다도 훨씬 더 큰 스피노자를 향해, 세영은 마비 가루 탄을 쏘았다.
푸스스.
동굴의 천장을 향해 날아간 탄환이 바위에 부딪치며 가루를 뿜어냈다.
스피노자의 몸 전체에 그 가루가 퍼지며 내렸다.
끼이익...
놈의 움직임이 멈췄다.
"통했다. 공격!"
세영을 제외한 모든 파티원이 일제히 공격에 가담했다.
깡-!
"작은 놈들과는 다르게, 이놈의 등 짝은 진짜 바위야. 다른 곳을 공격해."
핑쿠 햄스터가 등을 공격했지만, 돌을 두드리는 듯한 단단함에 손목이 저릴 뿐이었다.
"끼이익-!"
역시나 보스는 보스.
"뭐야, 벌써 풀렸어."
마비 가루의 효과는 채 5초도 가지 않았다.
"이번에는 마비 탄을 사용해 볼 테니까, 공격 준비들 해줘!"
"네, 아저씨!"
쒜에엑-! 푸욱.
"끼이이이이-"
마비 독이 들어있던 탄환은 공기를 가르며 스피노자의 6개의 눈 중 하나를 꿰뚫었다.
발버둥 치던 보스는 서서히 움직임이 멈췄다.
마비 독이 통한 것이다.
"지금이야!"
하지만 마비독 역시 무한정 유지되는 건 아닐 터.
파티원 들은, 온 힘을 다해 공격을 이어갔다.
투웅.
"역시 보스에게는 대검이 짱이야! 이거봐. 내가 다리 하나를 잘라냈어."
노랑 나비의 대검 공격이, 스피노자의 다리 하나를 통째로 잘라냈다.
같은 장소를 여러 번 반복 공격한 덕이다.
콰앙-!
"꺄악-!"
하지만, 그걸로 놈이 쓰러진 건 아니었다.
마비가 풀려버린 스피노자가 고통에 못 견뎌 다른 다리를 휘둘렀다.
그 바람에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게 된 노랑나비는, 수 미터를 날아가 벽에 부닥치고 말았다.
"나비야, 괜찮아?"
"으윽... 네. 아직은 요..."
"정말, 아슬아슬 했네."
노랑나비의 체력은 10%도 채 남지 않아 있었다.
그만큼 강력한 공격.
"마비 독이 풀린 모양이니까 다들 조심해. 다음 마비까지 재 공격 준비! 체력 풀로 회복하고."
핑쿠햄스터의 리드.
그의 리드는 최전 방에서 탱킹 역할을 하는 검 방 캐릭을 선호하는 만큼은 됐다.
"노랑나비의 체력이 가득 차면 다음 마비를 걸게."
"네. 아저씨."
세영은 노랑나비의 체력 게이지만 뚫어져라 지켜봤다.
그리고 가득 차는 걸 확인한 동시에, 곧바로 다음 탄환을 날렸다.
"끼이이익-"
또다시 마비 독에 의해 스피노자의 움직임이 멈췄고, 모두의 공격이 재 시작됐다.
"지금! 뒤로 빠져!"
세영이 소리쳤다.
마비 지속 시간을 이미 알고 있는 만큼, 끝나기 1~2초 전에 미리 신호를 보냈다.
그 덕분에 파티원이 다시 공격 받는 일은 없었고, 다음은 같은 일을 반복할 뿐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탄환을 다 써갈 때였다.
쿠웅-!
[바위 동굴의 가디언 '스피노자'를 처치하셨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셨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셨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셨습니다.]
무려 3번의 레벨 업.
네임드 답게 엄청난 경험치를 선물했다.
[스피노자의 드롭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뿐만 아니었다.
다양한 아이템 또한 얻을 수 있었다.
"분배는 동굴 밖이나 마을에 가서 하자고. 언제 또 작은 거미 녀석들이 몰려올지 모르니까 서두르자!"
"네. 얘들아 달려!"
"오예~ 나 레벨 11 됐어"
"나도! 이제 전직이야!"
동굴 밖을 향해 달리는 파티원들의 얼굴에는 환희의 미소가 가득했다.
*
[퀘스트 보상으로 거미줄 104개를 획득 하셨습니다.]
[퀘스트 보상으로 칭호 '페어리의 친구'를 획득 하셨습니다.]
드디어 밖에 나올 수 있었다.
시야를 확보 했다 하더라도, 동굴 속은 동굴 속.
좁은 공간에서 갑갑했던 마음이, 탁 트인 하늘을 보자 무척 상쾌해졌다.
"와, 벌써 하루가 지나고 아침인 거 같아요."
"그러게. 안에서 정말 오래 있었네."
모두들 기지개를 켜거나 숨을 가득 마셨다.
세영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이곳이 가상현실 게임 속인지, 현실 인지가 헷갈릴 정도였다.
하지만 게임이 확실하다 주장하는 존재가 눈앞에 있었으니.
"고마워, 인간들."
"그래. 고마워!"
"나중에 보자. 우리는 가볼게."
"안녕-!"
바로 페어리들.
퀘스트가 끝나자, 페어리들은 모두 떠나려 했다.
새장에 갇혀있던 페어리들은 날개에서 나오는 빛조차 거의 사라지고 없어, 위태로워 보였다.
딸기 주스를 건네 회복 시키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걱정 마 인간. 우리는 아스트랄계로 돌아가면 자연적으로 치료 되니까."
"맞아. 고마웠어. 다음에 보면 뱀 딸기를 준비해 두라고."
"맞아. 그 이상한 주스도 좋아."
일행은 그들과 작별을 고했다.
"흐앙, 귀여웠는데... 펫으로 기르고 싶은데~"
"그니까... 아, 귀요미들 또 볼 수 있겠지?"
그런 소녀들을 보며, 소년들은 고개를 저었다.
"또 보게 되겠지. 그러니 항상 뱀 딸기나 주스를 가지고 다녀. 그럼 반가워할 테니까."
"정말, 그럴까요?아저씨?"
"뭐,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어."
세영은 괜히 멋쩍게 웃었다.
*
아이템 분배가 시작됐다.
"아쉽네요. 장비 완제품은 주질 않았어요."
"그러게. 전부 제작 재료들이네."
"여긴 아저씨가전직하신 그 연금술사 전용 던전이었나 봐요."
스피노자로부터 얻은 아이템들은 하나같이 이런저런 제작에 쓰이는 재료들이었다.
"혹시, 아저씨. 설마 무기나 방어구 제작도 하세요?"
"아니. 이미 전직도 했고, 무기랑 방어구까지 만들기에는 무리이지 않을까 해."
"그건, 아쉽네요. 그랬으면 부탁할 텐데."
"실례야 멍청아. 치료 약 받는 것 만으로도 감사하라고."
"나도 알아! 그냥 해본 소리야."
그 말을 들으며 세영은 생각했다.
'이제 슬슬 새로 온다는 직원이 사용할 장비를 준비해야 하는데...'
자신이 정말 무기나 방어구를 제작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거라도 만들 수 있다면, 그 직원이 선택할 직업에 따라 바꿔 제작하면 그만 이니까.
'하지만... 혼자서 다 하기에는 너무 벅차던데. 방법이 없을까?'
연금 제작은 물론이고 채집까지 혼자서 하는 그가 다른 제작까지 손대기엔 조금 벅찬 일이다.
"아저씨, 서둘러 도시로 돌아가요."
"네. 저희는 이제 나가봐야 할 시간이에요."
"그러자. 나도 퀘스트 완료 해야 하니까."
세영은 파티원들을 마차에 싣고, 도시 파르도를 향했다.
이제 이 마차를 잡화점의 제이크에게 돌려주고, 퀘스트를 완수할 차례다.
그리고 그 보상으로드디어 자신만의 마차를 손에 넣게 될 것이다.
"와-, 벌써 며칠이나 지난 거 같아요."
"맞아. 도시에서 출발했을 때부터 현실 시간은 5시간 지났는데, 며칠이나 지난 것만 같아."
"그게 다, 아저씨 덕분이에요. 생각도 못한 경험을 했어요."
"키킥. 거미 때에 둘러 쌓였을 때는 정말 쫄았지만요."
즐거운 모험이었다.
일행은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 작별의 시간.
"고맙습니다. 아저씨. 다음에 또 뵈요."
"저희 두고 다른 사람들이랑 친해지면 안돼요. 질투나니까!"
"우웩"
노랑 나비의 말에 소년들은 토하는 시늉을 했지만, 다 장난일 뿐.
마지막 순간까지 유쾌한 꼬맹이들이라고 세영은 생각했다.
'얼른 마차를 얻고, 치료약을만들자.'
세영은 히부린의 비밀 연구실에서얻은 수많은 아이템 대부분이 자신의 소유가 된 걸 떠올렸다.
대부분 연금술용 아이템이었기에 당연한 것처럼 느낄 수도 있으나, 그것들을 경매장에 올렸다면 엄청난 돈이 됐을 것이다.
때문에 그는 얼른 치료약을 만들어 나눠주고, 보답하지 않으면 안된다 생각했다.
'덕분에 전직도 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서둘러 잡화점을 향했다.
자신만의 마차를 확보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