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21화. 노예 탈출
사장과 면접을 보던 두 남자가 사라지고 난 건물의 5층.
밖은 어느덧 해가 지고어두워졌다.
"밥 시켰냐?"
4층의 작업장에서 종일 모니터링을 하던김만우가 올라왔다.
방금 근무 교대를 한 참이다.
"네. 항상 먹던 데서 시켰어요."
"면접은?"
"글쎄요... 사장님이 맘대로 뽑았어요."
"그런데표정이 왜 그래? 사장 새끼가 뽑은 놈이 마음에 안 들어? 내가말해줄까?"
김만우 역시 어느덧 세영과 정이쌓였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뒤에 구린 게 전혀 없는 세영이 금세 마음에 든 것이다.
"말만 해. 형이 사장이고 나발이고 말해 줄 테니까!"
그때였다.
끼기기긱.
갑자기 쇠로 된 문이 비명을 지르며 열렸다.
이세영과 김만우는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봤다.
특히 김만우는 자신이 방금 한 말을 사장이 들었을까 봐 더크게 쫄았다.
"저... 4층에서... 여기로 가보라고 하셔서..."
웬 처음 보는 여성이 나타났다.
"누구시죠?"
세영의 물음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저기... 오늘면접 보기로 한 사람인데요."
"어? 면접 끝났는데... 혹시 면접이 몇 시인줄 알고 오셨어요?"
여자는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세 기의 엄브렐라를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가 맞구나,.. 다행이야.'
안심한듯한 표정.
"그게... 제가 길을 잘 못 찾아서...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90도로 꾸벅- 인사를 해왔다.
세영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김만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김만우는 얼굴이 벌게져 어버버 거리고 있었다.
"형?"
"으응... 저, 저기, 나... 잠깐 화, 화장실 좀..."
"아, 네."
여자 앞에서는 말을 전혀 못하는 김만우였다.
"설마, 벌써 면접이 끝난 건가요?"
"네. 어쩌죠? 너무 늦게 오셨어요. 사장님도 벌써 퇴근 하셨는데."
"그렇군요..."
시무룩해진 그녀의 표정을 지켜본 세영은, 어쩔 줄 몰라 화장실만 바라봤다.
화장실에 간 김만우가 전혀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 늦으실 것 같았다면 미리 전화라도 하지 그러셨어요."
"죄송합니다. 제가 전화가 없어서..."
"아, 그러시구나.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걸 물었네요."
세영은 정중히 사과했다.
그러자 오히려 그녀가 당황하며 손사래를 쳤다.
"네? 아니에요! 요즘 같은 시대에 스마트폰 하나 없는 제가 나빠요."
"그게 왜 나쁘죠? 형편이 안돼 없을 수도 있고, 필요가 없어서 일부러 소유하지 않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예상치 못한 반문에 그녀는 멀뚱멀뚱 세영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런 말씀을 하시는 분은 처음 봐요."
"그런가요? 참고로 저도 없으니까, 본인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물론 있으면 편리하겠지만."
사실 세영은 스마트폰을 언제 구입할지 고민 중이었다.
얼마 전 병원에 갔을 때, 왜 연락처를 남기지 않았느냐며 간호사와 간병인에게 혼이 난 탓이다.
"감사... 합니다..."
뚝. 뚝.
세영의 말을 듣던 여자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눈물이며 콧물이며 점점 더 쏟아내기 시작한 탓에 세영은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왜... 왜 우시는 거예요? 자요. 여기 휴지."
"훌쩍... 아니에요. 이렇게 제편을 들어준 사람을 오랜만에 봐서... 흑흑..."
세영은 서럽게 울고 있는 그녀를 보며, 그녀도 자신처럼 사정이 있겠구나 싶었다.
자신도 울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
"형, 여기서 안 나오고 뭐해요? 밥 다 식었어요!"
"아, 그래. 그 여자는 갔냐?"
"아니요. 지금 막 울음을 멈추고 진정한 참이에요."
"뭐?"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얼굴을 만지작거리던 김만우는 세영의 말을 듣고 충격에 빠졌다.
"이 새끼야. 뭔 짓을 했는데 여자를 울려?"
"네? 제가 뭘 요. 아무것도 안 했어요."
"그럼 대체 왜 울어?"
"그냥 힘든 일이 있나 보더라고요. 오늘 면접도 그렇고."
세영의 표정을 본 김만우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됐고, 빨리 돌려보네."
"그전에, 전화기 좀 빌려주세요."
"뭐? 대체 왜? 전세 냈냐? 너네 할머니 병원비 내역까지 내 폰으로 온다고!"
"그게 아니라 사장에게 전화 좀 하려고요."
김만우는 그렇게 투덜대면서도 결국 전화기를 건넸다.
*
"오래 기다리셨죠. 지금 사장님에게 전화 바꿔드릴 테니까, 하고 싶은 이야기 나누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뭘 요. 지금 걸어도 괜찮죠?"
"아니요, 잠시만... 물 한잔만..."
세영은 그녀가 물을 마시고 목소리를 가다듬는 동안 조용히 옆에서 기다렸다.
그녀가초롱초롱 한 눈을 향해 오며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전화를 걸었다.
- 어, 그래. 왜?
"저기 사장님. 이세영 입니다. 오늘 면접 보실 분이 늦게 오셨는데요. 앞에서 길을 헤매셨다고 해서요."
- 이봐, 세영씨. 그래서 뭐? 그걸 나보고 어쩌라고? 세영씨가 알아서 적당히 돌려보내.
"아니... 그래도 어렵게 찾아 오셨는데, 이야기는 듣는 게 예의잖아요."
- 이 새끼가 장난하나. 야 인마. 나 두 번 말하는 거 싫어한다고 이 새끼야. 귀찮게 굴지 말고 내일부터 고블린 사냥할 준비나 철저히 해. 오늘 뽑은 뭐시기 하는 놈 내일부터 출근하기로 했으니까. 끊어!
뚜-. 뚜-.
전화가 끊겼다.
끊긴 건 비단 전화만이 아니었다.
세영의 마음 속에서 사장에 대한 신뢰의 끈이 끊어지려 하고 있었다.
'원래, 이런 분 이셨나...'
면접 때 들었던 인센티브 이야기와 더불어,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세영은 눈앞에서 기다리던 그녀에게 깊은 사과를 했다.
괜히 기대하게 만들고, 더 큰 고통을 주었으리라.
"정말 죄송해요."
"아니에요. 지각한 제 잘못인 걸 알고 있어요."
세영은 너무 미안했으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는 왜 이리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괜스레 그런 기분이 들었다.
꼬르르르륵.
"응?"
갑자기 지진이라도 일어난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저... 정말... 죄... 송..."
눈앞의 그녀는 온 얼굴이며 목이며 귀 끝까지 빨갛게 달아올랐다.
"혹시, 배고프시면 식사라도 하고 가세요."
"그... 런... 더는, 민폐를..."
세영은 오히려 그녀를 붙잡듯이 말했다.
"꼭 드시고 가세요. 제가 사드릴게요."
"네에...?"
섬에서 자란 세영은 이런 것에서는절대 지는 성격이 아니었다.
꼬르르르륵.
"풋. 사양 말고 드시고 가세요!"
"..."
그녀의 이름은 차도아.
세영이 워낙 막무가내인 바람에, 결국 식사를 끝마치고 나서야 집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심지어 택시비까지 받았다.
'이세영 이랬나... 정말 이상한 남자였어.'
차도아가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세영을 떠올리며 든 생각이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왠지 모를 미소가 띄워져 있었다.
*
김만우는 스마트폰을 돌려주는 세영을 향해 말했다.
"야, 너도 월급 받았으면 폰 하나 사라. 내가 니 비서냐? 그리고 무슨 씨이발, 나는 화장실에서 자라 이거냐? 뭔여자 하나 돌려 보내는데 한 시간이 걸려!"
"죄송해요..."
세영의 심란한 얼굴에 오히려 김만우가 미안해졌다.
"야, 농담이야. 뭘 그런 거 가지고 그런 나라 잃은 것 같은 표정을 해."
하지만 이세영의 표정은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사장 나금돈 때문이었다.
그런 세영을 지켜보던 김만우가 아까 하다 만이야기에 대해 물어왔다.
"너 아까부터 왜 그래? 오늘 면접때문도 아니면, 돈 필요하냐? 할머니 병원비? 왜 며칠 전에도 나보고 돈 있나 물어봤지?"
"그런 거 아니에요. 형 돈 있으시면 이엄브렐라 하나 사서 하시라고요. 생각보다 돈이 잘 벌리는 거 같아서."
"그래? 얼마나 벌었길래."
세영은 밥이 다 식어버린 탓에, 식사를 새로 시켰다.
김만우 혼자 먹게 두기가 싫어 함께 먹었다.
차도아와 같이 먹기도 했으니, 벌써 두 번째 식사였다.
김만우와 늦은 식사를 하며, 모든 걸 솔직하게 털어놨다.
게임으로 얼마를 벌었는지.
또, 자신의 지금 감정과 방금 전 사장과 나눈 대화까지 전부를.
어쩌면 이건 김만우를 향한세영의 요구였다.
자신이 느낀 사장에 대한 실망감.
얕아진 신뢰를 회복 시켜 달라는 강요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야기는 정 반대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뭐? 시발 진짜야? 거짓말이면 죽는다."
"네... 진짠데."
"미쳤네... 야, 우리 그만두자. 당장."
입에 든 밥알이 다 튈 정도로 급하게 말을 해 대는 김만우.
세영은 눈앞의 그가,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해 대는지 의아해졌다.
"왜요?"
"너 돌아이냐? 시발 돈이 그렇게 벌리면 지금 당장 때려 쳐야지"
"저 돈 벌어야 해요. 할머니 병원비도 필요하고, 서울에 집도 없고."
김만우는 눈앞에 있는 스무 살 짜리 남자가 하는 말이 현실이 맞는지, 자신의 양 볼을 꼬집으며 확인했다.
"미친 놈아. 벌면 되잖아?"
"직업이 없이어떻게 벌어요."
김만우는 머리가 지끈 거렸다.
차마 대화를 더 이어가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엄브렐라를 가리켰다.
"저건 사장님 거잖아요."
"야, 너 방금 나한테 뭐라고 했어. 하루에 천 만원 벌었다며. 그건 거짓말이냐?"
세영도 아주 바보는 아니다.
김만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았다.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 역시 아니다.
그 돈이면 새로운 엄브렐라를 사서 혼자 해 먹을 수 있다는 걸.
다만 사장을 배신하는 것 같은 죄책감 때문에, 아직 그 돈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 생각지 못한 것이다.
"그래도 은혜를 입었는데, 여기서 갑자기 그만둘 수도 없잖아요. 사장님도 저 믿고 비싼 엄브렐라에 저를 등록 시킨 건데."
하지만섬에살던 이세영은지나치게 순진했다.
"니네 할머니 아프시다며. 니가 그런 착한 척 하다가 할머니 돌아가시면 넌 스스로가 용서가 될 거 같냐?"
칼날 같은 말이, 이세영의 온몸을 베었다.
하지만 김만우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저 어리석은 놈이 너무 답답했다.
저 순진한 새끼에 비하면 자신은 더럽고 비열한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사장은?
다른 부자들은?
다들 자기 이익을 위해 움직이지 않나?
그들은 남들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면 이용하고, 반대면 무너뜨리고, 아무 도움이 안되면 외면한다.
그럼에도 심지어 당당하다.
자신은 그런 놈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저놈이나 나나 이사회의 노예.
처음에는 자신도 이용 당하는 걸 몰랐었다.
그러다 깨닫게 되었다.
자신은 이 부자들의, 더 나아가 거대 자본의 노예라는 사실을.
하지만 알면서도 그들의 밑을 길 수밖에 없었다.
실업자 500만인 시대.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그런데 눈앞에 이놈은 순진하던 시절의 자신. 아니 그보다 몇 배 더 순진한 멍청한 새끼다.
거기에 지금 빛나는 출구가 눈앞에 보이는데도, 노예이길 자처하고 있지 않은가.
"야, 형 말 들어. 일 그만두자."
흥분했던 김만우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이세영니가 착한 놈이란 건 알겠어. 근데 사장은 니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이세영은 조용히 김만우의이야기를 들었다.
그도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으니까.
"니가 번 돈이 천 만원인 걸 알면, 사장은 어떻게 행동할 거 같냐? 그래도 용돈으로 쓰라고 할까?"
충분히 생각해 본 일이다.
천 만원이란 돈은 사장 정도 되는 사람에게도 큰돈이다.
"아마 20 만원? 30 만원? 그 정도 떼주고 엄청 생색 낼 거다."
"그 정도야... 절반은 무리겠지만 그래도 10분에 1 정도는..."
세영은 고블린 시리즈에 대한 인센티브를 생각해 냈다.
"이 새끼가 아직 사장을 모르네... 지금 전화해 볼래?"
김만우의 말대로 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것이라 생각지 못했던 천 만원이, 사장의 오해로 인해 갑자기 내 것이 되었다.
이 돈이면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기기를 살 수도 있다.
아니, 사장에게 500만 원을 주고 자신의 정보가 등록된 저 기기를 가져갈 수도 있겠지.
하지만 선뜻 그런 행동이 불가능한 건 사장이 정말 고마웠기 때문이다.
서울에 도착해, 태어나 처음 경험해 본 수많은 거절.
아무리 긍정적인 그에게도 그것은 무의식 속에 상처로 남았다.
아니 오히려 그였기 때문에더 큰 상처로 남았을지 모른다.
그 끝. 마지막 희망이 이곳이었다.
이세영에게 사장은 구세주 같은 존재였다.
그 은혜를 쉽게 배신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그였다.
"형 말이 맞을지도 몰라요.하지만 전 제가 먼저 배신하진 못할 것 같아요. 적어도 대화를 나눠보고 결정해야죠. 갑자기 그만 두면 사장님도 곤란하실 거 아니에요."
"너라면 그럴 줄 알았다."
김만우는 이세영의 성격이 쉽사리 바뀌지 않는 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 다 좋다 이거야. 근데, 이건 형 말 들어라. 지금 가진 돈 천 만원. 아니 하루에 벌었다며? 그럼 빨리 3 천은 모아둬라. 그리고 그건 사장에게 말하지말고 니가 가지고 있어. 어차피 사장이 너 용돈으로 쓰라고 했다며? 그러니까 그거 가지고 있다가 언제 여기서 잘리던지쫓겨나도 방 얻고 엄브렐라 구할 수 있게 가지고 있어라."
"형..."
김만우는 마음을 굳혔다.
"형은 지금 이 순간 부로 일 그만둔다. 사장이 나에 대해 뭐라고 하는지 잘 듣고판단하길 바란다. 잘 지내라."
세 번째로 시킨 저녁 식사였던 찌개 마저 차갑게 식어 버렸다.
김만우는 밥 공기 절반도 비우지 않고, 짐을 싸 사라져 버렸다.
세영은 멍 하니 자신의 밥그릇을 보다가, 자리 정리를 시작했다.
'일단 형이 말한 대로 삼천 만원을...'
삼천 만원을 모아 자신의 통장에 넣어두기로 했다.
일단 사장에게 말을 해 보고, 잘 풀리면 돌려주던지 하면 그만 이니까.
자신이 쓰지만 않으면 돈은 그대로 남아있을 테니까.
식사 자리 정리를 마친 세영은 다시게임에 접속했다.
그것이 이곳에서 게임을 접속하는 마지막이 될 거라는 사실도 모른 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