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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화 〉22화. 노예 탈출 (22/122)



〈 22화 〉22화. 노예 탈출

이미 이세영의 통장에는 천만 원이 들어있다.
삼천만 원을 모으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600만 이상의 CC를 보유하고 있었고,


[거래소에 아직 회수하지 않은 금액이 있습니다.]


거래소에 올려 둔 최하급 마나 포션이 70 실버라는 가격에 전부 팔려 있었다.


무려 140골드.

그리고 여관 방에 새로 만들어 둔, 만 개가 넘는 하급치료약들.


세영은 그걸 서둘러 납품했다.
그 모습을 수십 명의 플레이어들이 몰래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세영은 가진 골드 전부를 환전했고, 수수료를 제외하고도 무려 사천만  정도의 돈이 통장에 입금됐다.


'벌써 오천만 원이나 모았네...'


세영은 기쁘지 않았다.
아직도 자신의 통장에 입금된 오천만 원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  거라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만약 고블린 시리즈라고 가정하면, 자신의 몫은 10%인 오백만 원.
사천 오백만 원은 사장의 몫인 셈이다.


'만우 형의 말이 옳아... 이대론 할머니 수술비는 언제가 돼도 마련할 수 없을 거야... 사장님은 너무 욕심이커.'

세영의 결심도 점점 굳어져 갔다.
잡화점의 제이크를 보니 확신이 들었다.
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사장님과 협상을 하자.'

사장님과 얼른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스마트폰이 없다는 것.

'만우 형도 가버렸고, 4층의 찬이 형에게 부탁해야 하나...'

[통화 기능을 사용하시겠습니까.]


'뭐?'


[번호를 입력하면 즉시 통화를 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세영은 사장의 번호를 외우고 있었다.
만우의 번호도 외우고 있었고, 할머니가 입원해 계신 병원의 번호도 외우고 있었다.
그는 요즘 세상에 흔치 않은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세영은 엄브렐라 기기 안에서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장과 마지막 통화를 한지, 불과 2시간도 채 지나기 전이었다.


누구시고?

"저 이세영입니다."

 왜 또?

"드릴 말이 있습니다."


- 아나, 씨이발. 날 잡았어? 너도 그만 두겠다고? 김만우랑 너랑 짰냐?


"네? 그건 아니고..."


- 그럼 대체 넌 왜 전화했어?


화가  나금돈은 말투가 몹시 거칠어져 있었다.
원래 다소 거칠긴 했으나, 방금 전 김만우의 그만두겠다는 전화를 받고 화가 머리 끝까지 난 것이다.
술에 취해 있던  덤.


"저... 근로 계약서를 다시 작성하고 싶은데요."

 이 새끼야?

말도 꺼내기 전부터, 욕설이 튀어나왔다.

너도 결국은 그만두겠다 이거 아니야?

"그건 아닙니다. 저는 월급 안주셔도 되니까,게임으로 번 돈의 70%를 저에게 주실수 없을까요? 대신 엄브렐라 비용은 제가 돈을 벌어 갚겠습니다."


세영은 단도직입적으로 나갔다.
더는 망설일 수 없었다.
김만우의 말이 백 번 옳다.
자신의 목적은 예의를 차리고 오순도순 친목을다지는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일.
가장 첫 번째 목표.
바로 할머니의 수술비를 마련해 건강해지신 모습을 보는 것이다.

 이 새끼야? 이제 고작 일 한 달 한 새끼가 뭐라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러니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시면  될까요. 사장님."

- 씨이발. 미친 새끼를 봤나. 너도 당장 그만둬 이 새끼야! 불쌍해서 데리고 있어 줬더니. 어디서 그지 새끼가 기어오르고 난리야. 당장 엄브렐라 값 청구할 테니까 돈이나 준비해!

뚜... 뚜...

세영은 신기했다.
사장의 폭언을 들었는데, 오히려 답답했던 마음이 개운해졌다.
뭔가 홀가분해진 기분이었다.


나금돈이 원하는 대로 기기 값 500만 원을 돌려주면,  기기는 온전히 자신의 것.
그럼 이제 먹고 잘 공간만 있으면 된다.

'만우 형의 말이 맞아.'

사장은 자신의 욕심만 차리는 사람이었다.
절대 구세주 같은 것이 아니다.

통장에 들어있는 오천만 원.
그 돈이면 아무리 서울 집값이 비싸도, 작은 월세 방 정도는 구할 수 있으리라.

이세영은 게임에서 접속을 종료하기 전, 마지막으로 김만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



김만우는 집이 없었다.
그동안은 직장이었던 작업장에서 먹고 자고 살았으니, 별도의 집이 필요했던 것도 아니고.
겨우 스물 한 살인 그가 부모에게 물려받지 않는 이상은 집이 있을 리가 없었다.


'젠장, 괜히 그만뒀나...'


갑자기 막막해 졌다.
모아둔 돈 삼천.
그 돈으로 월세 방도 구하고, 엄브렐라도 구입해야 한다.
빠듯하게 느껴졌다.


이미 밤이 늦었다.
이런 시간에 부동산을 찾아갈 수도 없는 노릇.
하루 밤을 지내고 사전 경험도 할 겸, 일단 프클 카페를 향한 그였다.

"최소 1시간 단위로 요금이 측정 되며 이용 금액은 시간 당 7만 원입니다."


입이  벌어지는 금액.
김만우는 놀라 발걸음을 돌렸다.
10시간이면 70 만원... 차라리 엄브렐라를 사고 말겠단 생각이 들었다.


'씨발, 찜질방이나 가자...'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자신의 발등만바라보며 걸었다.
그래도 이세영의 말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엄브렐라만 구입하면 자신도 돈을 잘 벌 수 있으리라.

'하루에 10시간 이상 같은 자리에 앉아서 모니터링만 하던 나다. 게임에서 채집하고 물약 만드는  뭐 그리 대수 일까.'


그렇게 마음을 다잡을 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왔다.

"여보세요?"


- 형, 저 세영이에요.


"어? 너 폰 샀냐?"

- 아니요. 이거 엄브렐라로 전화한 거에요. 저도 일 그만뒀어요.

"하하, 그래. 잘했다. 형 말이 맞아. 언제까지 사장  개새끼 밑에서 노예처럼살 순 없잖냐."

- ...


"근데, 왜? 그만뒀다며, 엄브렐라는 어떻게 사용하는 거야?"


- 방금 그만뒀거든요. 1분 전에. 사장님과 통화도 엄브렐라로 하고. 아무튼 사장님이 이 엄브렐라 대금 청구한다고 하던데, 그럼 이제 제거나 마찬가지죠?

"그만둔 판에 사장님은 무슨.  새끼가 그럼 그렇지.  입금하기 전에 그 기기부터  받아내라. 내일이라도 사람들 불러서 너네 집으로 옮겨."

- 그래서 말인데요. 제가 집이 어딨어요. 형 집에서 며칠만 지내면 안 돼요?


김만우는 당황했다.
동생 앞에서 당당하게 나왔는데, 집이 없어 찜질방을 향하는 자신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게..."


- 부탁 좀 드려요. 형 말대로5 천 만원 마련했거든요. 그 돈으로  구하고 그래야 엄브렐라를 옮길 수 있거든요.

"뭐? 오천만 원? 천만 원이라며?"

-  말 듣고, 게임에 접속하자마자 가진  다 팔았거든요. 그랬더니 그렇게 됐어요.

김만우는 길 한복판에서 혼자 입을 떡 하니 벌렸다.
이세영이 프클을 시작한 건 고작 4일.
그 짧은 시간에 그 만큼의 돈을 번다는 건 들어본 적도 없었다.

'이놈... 완전 게임 천재 아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무작정 시작한다고, 녀석만큼  수 있을지는 미지수.


"세영아. 형이랑 같이 살래? 우리 돈 모아서, 좀 큰 방 구해서 같이."


저야 좋은데, 형한테 괜히 민폐 끼치는 거 아니에요?

"시발, 우리 사이에 그런 게 어딨냐!"

김만우는 조금 솔직해 지기로 했다.


"형이 거기로 갈게. 1층으로 나와라."

같이 하루만 찜질방에서 보내고, 내일 바로 집을 구하는 것.
그리고 같이 돈을 버는 것.
그게 김만우의 지금 생각이었다.


***

풀벌레가 울어 대는 울창한 숲.


"야. 한번에 한 마리씩 이라고 했잖아!"
"미안. 근데 어쩔  없었다고.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서."


쒜엑-!

"야, 씨발 뒤에 더 있잖아!"
"튀어!! 빨리!!"

고블린의 영역이자 헌터 마을의 북쪽 숲.

한 마리를 유인해 잡던 어느 파티가, 다수의 고블린에 의한 동시 공격에 줄행랑을 치고 있었다.

쒜엑- 푹! 푹!

"아, 씨발. 저게  몇 마리야 전부! 게다가 정찰병이라  쏘잖아! 으악!"
"아씨. 하급 치료약으론 버티기 개 빡세네. 일단 헌터 마을까지 튀어!"

고블린 전사 두 마리와, 정찰병 3마리. 총 다섯 마리의 고블린이 쫓아왔다.
파티원들은 모두 죽어라 달렸다.

이윽고 그들이 향하는 방향에 웬 남자의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 앞에 계신 분! 빨리 튀어요."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괜히 옆에서 사냥하던 파티에 까지 피해가 발생하곤 한다.
비 매너로 욕을 먹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서서 죽을 수도 없는 일.

"빨리 튀어요. 죽으셔도 모릅니다!"

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도망치던 파티원들은,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애초에 여기서 혼자 어슬렁거리다니, 레벨이 높은 사람인가 싶었다.

그 남자는 갑자기 무기를 꺼내 들었다.
특이한 모양의 쇠뇌였다.

쇠뇌를 쓰는 직업이 뭐더라?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남자의 쇠뇌가 작동했다.

쉬익- 펑!

"키에엑!"

가장 가깝던 고블린 한 마리가 즉사했다.


쉬익-! 쉬익-!


퍼엉-! 퍼엉-!


판게아 행성에서 쇠뇌는 활보다 공격력이약한 대신, 빠른 속도로 연사가 가능한 무기.


"와,  사람 도대체 뭐야? 엄청난데?"
"근데... 좀 이상한데? 무슨 쇠뇌 한 방에 고블린이 즉사해?"

쉬이익- 퍼엉!

"그러게. 뭔 화살이 고블린 몸에 닿자 마자 죄다 폭발을 하냐고!"
"저거, 내 파이어 볼 하고 비슷한데?"
"말이 돼? 파이어 볼을 무슨 저런 속도로 써."
"그거야 쇠뇌니까 연사가 가능한 거지. 근데 고블린이 타 죽는 거 보라고. 완전 판박이잖아!"

도망치던 파티원 들은, 순식간에 전멸한 고블린을 향해 다가갔다.
새까맣게 타버린 게, 파이어볼에 공격 당한 것과 비슷해 보였다.


그들의 뒤에서 남자가 다가왔다.


"아, 저... 죄송합니다. 저희 때문에."
"에이, 뭘 요.  돕고 사는 거지. 하지만 아이템은 제가 주워도 되겠죠?"
"물론이죠. 다 잡으셨는데... 그런데 직업이 어떻게 되시죠? 헙."

비 매너인 걸 알면서도 무심코 물어보고 말았다.
자신도 놀라 입을 가렸다.


"그건 좀... 아는 형이 남에게 함부로 알려주지 말라고 해서..."
"아, 실례했습니다. 그럼 캐릭터 이름이라도..."
"전, 알파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그의 이름은 알파. 바로 이세영 이었다.

줄행랑을 치던 이들은 알파라는 남자에게 친구 신청을 넣었다.


"아, 갑자기 친구 신청이라니. 고맙습니다."
"아아... 아닙니다. 저희가 훨씬 감사드립니다. 알파님"

혹시나 해서 시도했는데, 남자가 덜컥 수락하자 이들은 매우 기뻤다.


"전, 볼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아, 네. 그럼..."


알파라는 남자는 숲 더 깊은 곳으로 사라졌다.

"뭐였지?"
"저 사람 뭐야 대체?"
"보나마나 30레벨은 넘는 사람이겠지."
"진짜 쩐다. 저 정도 되면, 희귀 고블린 시리즈로 장비도 풀로 도배 됐겠지?"
"아마도."

이들은 모두 알파가 향한 그곳을 멍- 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해주고 감사를 받는 일은, 세영을 매우 기분 좋게 했다.
그리고 친구 신청을 받다니.
오늘은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화염 탄이 너무 아깝네... 위험할 때 아껴 써야하는데.'

세영은 히부린의 연금술 두루마리 중  장을 해독해 몇 개의 신규 레시피를 얻었다.
연금술 스킬의 레벨이 상승해, 해독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중 하나, 화염의 정수 제작 법.
 화염의 정수를 이용한 화염 탄.

이 화염 탄의 위력이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났다.

15레벨 이하의 고블린은 그냥 즉사할 정도였으니,  무슨말이 필요하겠는가.

하지만.

'좀 전에 다섯발 썼으니까... 헉! 55만 원 쓴 거네...'


아직 화염의 정수 재료인 굳어버린 불꽃을 확보하지 못했다.
거래소를 통해 사들이느라, 무려 수백 만 원을 써야 했다.



'이 앞에 있다고 했지...'


하지만 세영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얼른 고블린 지하 동굴에 가, 굳어버린 불꽃을 채집할 생각에.


그에게 새로운 걸 채집하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
동굴의 위치는 정보 경매를 통해 무려 천만 원이나 주고 샀다.
그러니 뽕을 뽑으려면, 굳어버린 불꽃을 인벤 가득히 채집해야 한다.


김만우의 말로는 그만큼 가치가 있을 거라 했다.

900만원이나 주고 구입한 마나 포션 레시피 역시, 지금은  10배 이상의 돈을 벌게 해주고 있으니까.

김갑부 : 세영아.


"네, 형. 왜요?"

김만우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니 밭에 숲의 허브.  자랐다. 내가 채집해도 될까?"
"네... 뭐, 전 많이 채집해 봐서 이제 양보할게요."
"그... 그래. 고맙네."
"헤헤. 그럼 잘 부탁 드려요."

풍차 마을의 어느 작은 밭.
그곳에 가꾸기 시작한 숲의 허브를, 이제 게임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되는 김만우가 대신 기르고 있다.

얼마 채집을  것도아닌데, 운 좋게숲의 허브 씨앗이 나와준 덕분이다.

"참! 형도 퀘스트 좀 하세요."
"왜?"
"형도 칭호 좀 얻어야죠. 행운 10은 넘어야 씨앗이랑 이것저것 나오거든요. 확률은 낮지만."
"그러냐."


김만우는 생각보다 독했다.
오직 세영에게 배운 채집 기술과, 약품 제조 기술을 이용해 끊임없이 하급 치료약만 만들어 댔다.

"이제, 풍차 마을도 엄청 붐비죠?"
"그래. 마차까지 끌고 와 사려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야."
"그래도 한 사람 당 100개 이상은 안돼요. 사재기일지도 모르니까."
"당연하지."


세영은 김만우와 함께 풍차 마을에 건물을 구했다.
도시 파르도에 비하면, 시골 마을인 만큼 저렴했다.
덕분에 2층 나무 집을 통째로 살 수 있었다.

지하는 창고로 쓰고, 2층을 치료약과연금술의 제조실로 썼다.

그리고 1층에는 치료약 판매 전문점을 만든 것이다.


"오늘 판매는 이걸로 종료입니다. 다음에 찾아와 주세요."


김갑부라는 캐릭터명을 사용하는 김만우는 오늘도 치료약을 팔아 두둑이 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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