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25화. 파티 퀘스트
이세영은 만약을 대비했다.
마비 탄을 아껴가며 위험한 상황에만 사용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파티의 이동이 매우 순조로운 덕분에 그의 차례는 오지도 않았다.
깡! 깡!
핑쿠햄스터가 손에 쥔 검으로 다른 손의 방패를 두드리자, 그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가까이 있던 고블린이 짜증 난 표정으로 달려들었다.
퉁-
방패를 앞세워 고블린의 공격을 막음과 동시에 밀어냈다.
"이제, 니 차례야!"
부우웅- 부우웅- 촤악!
어느새 고블린의 등 뒤로 이동한 노랑나비가 대검을 휘둘렀다.
그 공격은 완벽하게 성공했다.
푸욱-!
강력한 대검 공격을 받고 휘청이던놈의 몸에 핑쿠햄스터의 검이 꽂혔다.
앞 뒤로 동시에 공격이 들어오자, 고블린은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매우 효율적이고 깔끔한 전투.
군더더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나설 필요도 없겠는 걸?"
세영은이들의 완벽한 호흡에 매우 감탄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했다.
"에이, 한 마리니까 그렇죠. 두 마리 세 마리 되면 아저씨가 짱이잖아요."
"맞아요. 아저씨."
"저기...언제까지 아저씨 소리를 들어야 하는 거야? 나랑 너희는 딱 한 살 차이라며."
세영이 그런 말을 하자, 다들 깔깔대고 웃었다.
"그럼, 편하게 형이라고 부를까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알파형이라고 부를게요."
"알파형."
호칭을 바꾸려니 다들 쑥쓰러웠는지, 콧구멍을 벌름거렸다.
노랑나비는 아무 말도 없이 쭈뼛거리고 섰다.
"저... 저는. 아저씨. 저는 오... 빠... 라고 불러도 되나요?"
"당연하지. 내가 오빠잖아? 아니면, 고3 이지만 설마 나보다 나이가 더많니?"
"아, 아니에요!"
당황하는노랑나비.
다들 시끄럽게 웃는 통에, 그녀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쒜엑-!
갑자기 어딘가에서 날아온 화살이, 세영의 옷 자락을 스치며 지나갔다.
"조심해. 고블린 정찰병이다!"
쒜엑- 텅!
두 번째 화살은 방패를 들어 가까스로 튕겨냈다.
검방 기사의 본보기 같은 모습.
캐릭터가 소년 형인 탓에, 듬직하단 말이 조금 어색할 뿐이다.
캐릭터 명도 핑쿠햄스터였으니까...
"우리 파티도 원거리 딜러 있으면 좋겠네."
"야! 전직 퀘스트하고 있잖냐 지금."
레드문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긴, 마법사도 원거리 딜러지."
"오빠도 사실 원거리 딜러잖아?"
"그런가?"
숲 안으로 깊숙이 들어 갈수록, 고블린의 등장 빈도가 증가했다.
그리고 두 세 마리. 혹은 그 이상의 무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철컥.
쉬익- 푹!
쉬익- 푹!
이세영의 쇠뇌에서 날아간 마비 탄이 고블린 정찰병에 적중했다.
놈들은 쉽사리 마비됐다.
"와, 정말 형 아니면 어쩔 뻔 했을까요. 짱이다 진짜."
마비 탄 덕분에 다수의 공격에도 매우 안정적인 전투가 가능했다.
[퀘스트 공헌도를 얻으셨습니다.]
"와! 공헌도. 드디어 퀘스트 지역에 진입했나 봐요."
"그러게. 아직 고목은 보이지도 않는데, 놈들의 영역이 꽤 넓나 보군."
드디어 본격적인 퀘스트가 시작됐다.
*
"제 1 파티는 검방 기사 4인에 힐러 2명입니다."
파티퀘스트를 진행하는 건 세영의 일행만이 아니었다.
마법사는 가장 인기 직업인 만큼, 전직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항상 많았다.
그것이 지금 막혀있는 상황이니 다들 퀘스트를 클리어하려 안간힘이다.
"제 2 파티는 마법사 6인입니다. 제 3 파티는 가장 레벨이 높고, 희귀 아이템 착용을 많이 하신 분 위주로 참가하세요."
난이도가 높은 퀘스트다.
벌써 사망자도 다수 발생.
결국 퀘스트 격파 용 작은 공격대가 결성됐다.
리더를 맡은 건 BI 길드의 BI기츠.
그는 힐러 클래스 중 하나인 클래릭이였다.
"아직 전직 전이신 분들은 뒤로 빠져서 구경만 해 주세요. 괜히 나대다 죽어도 환불 안 됩니다."
이미 전직을 끝마친 BI 길드에서 굳이 이 퀘스트를 진행하는 이유는 하나다.
돈을 벌기 위해서.
이미 이 퀘스트는 파르도섬 스타트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화제에 올랐다.
마법사 클래스 전직이 불가능해 졌으니 난리가 나는 건 당연한 일.
- BI 길드에서마법사 클래스 전직 버스 운영합니다. 1인 당500만CC 선착순 24명.
1, 2 파티는 전직을 마친 BI 길드원들이 맡고, 3, 4, 5, 6 파티는 손님인 셈이다.
"6 파티는 1명 뿐인가."
"네. 어쩌죠. 선배님? 생각보다 모집 시간을 너무 짧게 한 거 아닐까요."
"어쩔 수 없지. 다음부터 좀 늘리던지 해야지."
이들은 어차피 아이템 파밍이 주 업무.
그 파밍을 진행 하면서, 퀘스트 클리어란 명목으로 돈까지 추가로 버는 셈이다.
당연히 퀘스트를 진행하는 동안 나오는 아이템 역시, 모두 BI길드의 소유가 된다.
"자, 시작 합니다. 다들 주의 하세요."
1 파티의 기사 둘이 앞으로 돌진하며 검으로 방패를 강하게 때렸다.
시끄러운 소음이 주위로 퍼진다.
"키에엑"
"카큭"
고블린들이 분노하며 몰려들었다.
일대는 이미 고블린의 촌락으로 변모한 상황.
단 번에 수십 마리의 시선이 방패를 든 기사에게 쏠렸다.
"준비!"
BI기츠의 명령에 기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앞으로 나가 도발을 시전 한 기사들이 위치를 잡았다.
모든 움직임이 계획대로.
"제 2 파티 공격 개시!"
화르르륵.
콰, 콰아앙-!
여러 개의 불길이 치솟았다.
기사 앞에 뭉쳐있던 고블린을 향해, 6명의 마법사들이 마법을 시전 한 것.
모두 화염 마법을 사용했는데, 이것 역시 의도한 거였다.
고블린은 불 공격에 약했다.
이미 레벨이 20을 넘긴 마법사도 있었고, 대부분이 희귀 고블린 지팡이를 착용하고 있었기때문에 고블린들은 순식간에 잿더미가 됐다.
"와아-"
"정말, 멋지다!"
퀘스트 버스를 타러 돈을 내고 온 사람들은, 깔끔한 전투와 화려한 마법 공격에 모두가 감탄했다.
남은 건 거리를 벌리고 화살을 쏘아 대던 고블린들.
놈들은 아무리 도발을 해도, 좀처럼 한대뭉치지 않는다.
1 파티에서 대기하던 기사 둘이, 고블린 정찰병을 향해 방패를 앞세우고 나아갔다.
대부분의 화살은 방패 앞에 무용지물이었다.
깡- 깡- !
몬스터가 극도로 싫어하는 방패 울리는 소리에, 고블린 정찰병들은 흥분했다.
시선이 기사들을 향해 고정됐다.
"총 6마리. 어그로 확보 완료!"
기사의 외침에 BI기츠가 마법사들에게 명령했다.
"겹치지 않게 한 사람 씩 돌아가면서 공격하겠습니다. 마나 아끼세요."
화르르- 콰앙!
고블린 정찰병들의 체력은 고블린 전사들과 비교해 매우 약하기 때문에 간단하게 사냥 됐다.
순식간에 약 마흔 마리의 고블린이 아이템만 남기고 사라졌다.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모두 주변 경계하세요."
이런 말을 하더니, BI기츠는 동료 힐러와 몬스터의 사체 주변을 향했다.
그는 파티의 힐러 겸, 아이템 루팅도 담당이었다.
"선배님, 힐 한번 사용하지 않고 끝났네요."
"당연하지, 이런 약한 놈들. 정예 고블린도 아닌데."
이런 몰이 사냥이 가능한 것도, 이들이 원래 정예 고블린을 사냥하며 아이템을 파밍 하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
"하지만 정예가 아닌 만큼, 주는 템도 거지 같군."
"하하... 그래도 19명한테 1억 가까이 벌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하지. 그러니까 이건 우리끼리 얘기지만, 절대 놈들을 전멸 시켜선 안돼. 다 우리 밥줄이니까. 앞으로 이걸로 한 달은 해 먹어야지."
BI 길드의 목적은 파티 퀘스트의 클리어가 아니었다.
마법사 전직을 위한 최소한의 길을 터, 퀘스트 아이템인 고목 나무의 가지만 채집하게 할 생각이었다.
그래야 마법사 클래스 전직은 계속 어려울 테고, 그것이 곧 자신들의 수입이 될 테니까.
"와, 저기 사람들 모여있는데요?"
"그러게."
"저 사람들도 퀘스트 중인 걸까요?"
"그렇지 않으면 여기 모여있을 리가 없지 않아?"
서른 명이 넘는 공격대 옆에, 초라한 4인 파티가 등장했다.
이세영과 그 친구들이다.
아이템 회수를 마친 BI기츠는 이들을 발견하자 마자 그 앞으로 향했다.
"안녕들 하십니까."
"네? 아, 네. 안녕하세요."
일행은 의문이었다.
왜 갑자기 다가온 걸까?
"혹시, 마법사 전직 퀘스트 하러 오셨습니까?"
"뭐 그런 셈이죠."
레드문이 자신의 퀘스트인 만큼 나서서대답했다.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네?"
"저희는 돈을 받고, 퀘스트에 도움을 드리고 있습니다. 1인 당 500만. 어떠십니까? 때마침 다섯 자리 정도 남았는데."
그러면서 그는 일행의 행색을 둘러봤다.
노랑나비만 일반 등급의 고블린 시리즈를 착용했을 뿐, 대부분 초보 모험가와 다르지 않은 복장.
마음속으로 비웃음을 흘린 그였다.
"어떠십니까. 저희 공격대에참가 하시는 것이. 다시 한번 말씀 드리지만 500만CC입니다."
하지만 레드문은 어깨를 으쓱 하며,
"괜찮아요. 그리고 저 말고여기 셋은 이미 전직 했고요."
"아... 그렇군요."
BI기츠는 또 사망자가 나오겠다고 생각했다.
'흥, 착용 장비 꼴을 보니 돈이 없는 거겠지.'
"그럼 전 이만."
쌩 하니 사라지는 남자.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노랑나비가 말을 꺼냈다.
"돈 받고, 퀘스트 도와주는 사람들도 있나 봐."
"부럽네. 저런데 취업 안 되려나?"
"그러게..."
고삼 인 걸 밝히고 난 후, 이세영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사적인 말들을 해대는 녀석들.
그를 보며 세영은 자신의 경험을 떠올렸다.
"음, 너희들도 돈 벌 수 있을 거야."
웃으며 말하는 세영을 본 노랑나비가 말했다.
"그래서, 아저씨는... 아니, 오...빠는 얼마나 버셨는데요?"
"그래요. 궁금해요. 형."
세영은 자신의수익을 대충 공개했다.
셋은 턱이 빠지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크게 입을 벌리고, 아무런 얘기가 없었다.
"니들 그러고 있으면, 입안에 벌레 들어간다."
그 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말도 안 돼... 진짜예요?"
"설마, 형이 우리한테 거짓말하겠냐."
"사실이야."
"와- 정말부럽다."
"와 씨. 그때 진짜 채집을 시작할걸!"
파티원들의 호들갑에 세영은 정신이 다 없을정도였다.
"여긴, 저 사람들 덕분에 몬스터도 없으니 여기서 밥 먹자."
"네?"
"갑자기요?"
세영은 인벤토리에서 샌드위치를 꺼냈다.
풍차 마을 산 밀을 사용해만든 빵.
그 사이에 뱀 딸기의 잼이 들어있는 단순한 요리였다.
[3시간 동안 체력의 자동 회복 속도가 소폭 증가합니다.]
"헉..."
"와, 아저씨 이건 또 어디서 나셨어요?"
"응... 심심할 때 만든 건데. 왜?"
"요리도 하세요?"
세영을 보며 매번 놀라기만 하는 그들이었다.
"잘, 안되신 모양입니다."
"흥. 꼴을 보니 거지들 이더라고."
"마치 소풍이라도 온 모양입니다. 뭘 저리 먹어 대는지."
BI기츠는 공격대로 돌아왔다.
돈도 안되는 놈들이,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안전 지대에서 음식을 먹어 대는 게 꼴사나웠다.
"확- 몬스터 몰아다 죽여버릴까."
"하하. 왜 그러십니까. 나중에 다 우리 고객일지 모르는데."
자신들이 파밍 한 아이템은 사주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값어치를 한다.
"저런, 거지들이 무슨..."
"그래도엄브렐라 살 돈은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몇 번 죽어 보면 템 사야 한다는 걸 느낄 테고, 그럼 우리 고객이지 않겠습니까?"
"아이고, 거기까지 다 생각하시고. 내가 사장이면 너는 바로 승진이다! 아무튼 우리 일이나 하러 가자."
BI기츠는 식사 중인 일행의 방향을 향해 침을 뱉었다.
*
[홉 고블린]
"저놈 덩치가 뭐 저리 크지?"
"정예 몬스터에요!"
30분 정도 사냥을 했을까.
몸 주변에서 검은 안개가 피어오르는 덩치 큰 고블린이 나타났다.
놈은 매우 크고, 구부러진 검을 들고 있었다.
"어떻게 할래. 마비 써?"
"일단은 보류요. 한번 싸워보고 위험할 때 부탁 드려요."
"그래. 조심해."
덩치가 크다고 느린 것은 아닌지, 놈은 몹시 재빨랐다.
터엉-!
핑쿠햄스터가 방패로 막았음에도 뒤로 휘청 거렸다.
"으윽. 뭐 이리 힘이 세."
부우웅-!
노랑나비가 대검을 등 뒤에서휘둘렀는데, 간단히 피해버렸다.
"이씽-! 뭐야. 너무 빠르잖아!"
당연한 이야기다.
놈은 파티를 사냥이 필수인 정예 몬스터.
쇠뇌를 뽑아 들었다.
철컥-!
마비 탄이 장착됐다.
"나한테 맡겨!"
팅.
쇠뇌의 시위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튕겨졌다.
쒜에엑-! 푸욱!
"그로오오오!"
홉 고블린의 거친 비명이 울리는 것도 잠시.
놈의 시간은 완전히 멈춰 버리고 말았다.
마비탄이 적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