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9화 〉29화. 쇠뇌 (29/122)



〈 29화 〉29화. 쇠뇌

세영은 오랜만에 자신의 밭으로 향했다.
작은 허수아비 밭은 정말 좁아 별로 볼 건 없었지만, 그래도 가끔 찾아가곤 했다.


"씨앗 하나 심었는데 군락이 형성되다니. 참 다행이네요."
"그러니까. 근데 더는  불어나더라."


세영의 밭에는 숲의 허브 군락과 초원 허브 군락이 하나 씩 존재했다.
둘 다  번에 50회 정도의 허브를 채집 가능했다.


이 허브들은 줄기를 잘라 채집해도 시간이 지나면 그 잘린 줄기에서 새로운 허브가 자란다.


"다시 자라는 기간은 8일 인가요?"
"그래. 현실 시간으로 48시간이 평균이야. 옆에서 계속 신경 써 주면 단축되는 모양인데, 이 정도  때문에 다른 걸 못할 수도 없잖냐.  배는 되면 모를까."


세영은 쪼그려 앉아서, 허브를 바라봤다.
눈이 자연스레 가늘게 떠지며, 입꼬리가 부드럽게 올라갔다.


"씨앗을 더 구하면 좋겠네요. 그럼 마치 농사라도 짓는 기분이겠어요."
"그렇긴 한데, 그 양을 어디서 구해. 거래소에 올라오지도 않던데."
"숲에 가서 채집해야죠."
"하아-. 숲에 몬스터만  나오면 좋겠는데."
"음... 쇠뇌 개조하고 같이 채집하러 가요. 허브도 허브지만 씨앗 구하러."


세영은 허브 밭을 크게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쇠뇌를 개조하는 건 그리 난이도가 높은 일은 아니었다.
단, 재료만 충분하다면.


영웅 등급의 쇠뇌를 개조하기 위해선, 영웅 등급의 나무가 필요했다.

'아니... 영웅 등급의 나무를 대체 어디서 구하지?'


거래소를 아무리 뒤져도 보이지 않았다.

"어서 오게. 처음 보는 얼굴인데, 무슨 일로 찾아왔지?"

세영은 쇠뇌를 내밀었다.

"아니, 이것은? 자네가 그 소문으로 들려오는  사람인가?"
"네? 무슨 소문이요?"
"지금 소문이 자자해. 고블린 세력의 일각인 족장 하나가 쓰러졌다고."

세영은 단 하루만에 어떻게 여기까지 소문이 났는지 신기했다.

"그거야 당연히 이 몸이 훌륭해서지.어험. 내가 누구겠는가. 바로 파르도 최고의 목수 아니겠는가? 당연히 나무꾼들과도 친분이 있지. 북쪽 숲의 나무꾼들은 하나 같이 고블린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거든.그런데 자네 같은 사람이나무 요정 마냥 깜짝 등장했으니 얼마나 반갑겠나. 안 그래?"

세영은 고개를 끄덕인 후, 용건을 꺼냈다.

"흐음... 영웅 등급의 나무라... 흔히 구할 수 있는 건 아니지."
"방법이 없을까요?"
"천상, 그 양반을 찾아가야겠군."
"네? 누군데요? 좀 소개 시켜 주시겠습니까?"
"내 웬만해선 그런 간지러운 짓은 하지 않는데, 자네는 족장을 쓰러뜨렸다니 특별히 소개해 줌 세. 그 노인네가 뭐라고 내 욕을 할른지 모르겠네만."


세영은 목수가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 졌다.


[잊혀진 나무꾼 트리얀의 정보를 획득하셨습니다.]

[소개장을 획득하셨습니다.]


"깐깐한 양반이니까 잘 설득해 보라고. 뭐, 고블린을 처리해 준다고 하면 환영하겠지만. 그 양반도 결국은 나무꾼이니까 말이야... 그런데 잠깐! 자네 소개장까지 써줬는데 그냥 갈 생각인가?"
"아? 아... 실례했습니다. 저기, 뭐 뭐 파시나요?"

세영은 쇠뇌용 화살을 강매당했다.

[나무 아기살 1000개를 구입하셨습니다.]

[나무 아기살]
- 파르도산 나무로 만들어진 아기살입니다. 쇠뇌 전용입니다.
- 공격력 +2

그것도 가장 비싼 거로 천 개나...

'흠... 아기살?'

생각해보니 쇠뇌는 영웅 등급 아이템.
연금술 발사용으로 개조하기 전에는 일반 쇠뇌로 사용하면 그만 아닌가?
여기선 어떤 클래스든지 무기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시험해 보자.'

세영은 그길로 연무장을 향했다.

"아니, 자네는 알파가 아닌가?"
"아! 오랜만에 뵙습니다. 카록님."


그에게 라나를 소개해준 은인.
항상 도시 안을 지나다녔으면서, 왜 한번을 찾아뵙지 못했을까.
세영은 그게 미안했다.

"이제야 찾아뵙습니다. 정말 큰 은혜를 졌어요."
"은혜?그건 무슨 소린가?"
"카록님께 라나님을 소개받은 덕분에 저에게는 삶이 바뀔 정도의 큰 도움이 됐거든요."
"하하, 고작 손수건 한장이 말인가? 뭐, 그래도 도움이 됐다니 정말 다행이야. 그런데 여긴 어쩐일인가."

세영은 목적을 설명했다.

"그런 거라면 내 자네를 우선 지켜 보지. 이쪽에 과녁이 있으니 이리 오시게."


세영은 수십 미터 떨어진 과녁을 향해, 쇠뇌를 발사했다.
아기살은 엄청난 빠르기로 날아갔다.


"하하하. 놀랍군. 엄청나! 단검을 어설프게 휘두르던 때를 떠올리면 정말 놀라운 성취야!"
"감사합니다."

날아간 살은 과녁의 중앙에 정확히 박혔다.
어두운 동굴 안이나, 움직이는 홉 고블린, 강력한 보스 몬스터를 상대해 왔다.
움직이지 않는 과녁 따위는 싱거울 뿐이다.

다음은 연사.


퉁. 퉁. 퉁. 퉁...

쇠뇌의 시위가 튕기는 소리가 경쾌하다.
악기라도 연주하는 것만 같다.

쉬쉬쉬쉬쉭-

공기를 가르는 아기살들은 서로 먼저 가겠다는  날아갔다.


표표표푝...


쇠뇌에 붙은 연사 속도 +2 라는 옵션 덕분에, 과녁에 적중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그러자 주위가 소란스러워 졌다.

"저건 뭐야? 저거 완전 사기 아니야?"
"그러게. 나도 쇠뇌 쓰는 직업 해야겠어."
"여긴 총은 없으니까. 활보다는 쇠뇌가 좋을지도."


연무장 주변이 소란스러워 지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카록에게 미안해진 세영은 서둘러 작별 인사를 나눴다.

"그래. 바쁘다면 어쩔 수 없지. 자주 찾아오라고!"
"네. 또 뵙겠습니다."


세영은 서둘러 인사를 나누고, 북쪽을 향했다.


*


"치료약 판매 시작합니다."


이미 줄을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수십 명.

김만우는 치료약의 판매를 개시했다.


"오늘은 하급 치료약 1만개. 치료약 천  입니다. 하급은 1실버 30코퍼. 치료약은 10실버입니다."

도시 광장의 최신 시세를 즉각 반영했다.
치료약은 거래소보다 오히려 20코퍼 저렴했다.
그러니 너도나도 대량으로 구매하고 싶어 안달일 수밖에.


"하급 치료약100개 치료약 100개 주세요."
"죄송합니다 치료약은 1인당 30개 한정입니다."
"그런 게 어딨어!"
"죄송합니다. 물량이부족한관계로."

이를 지켜보는 건 비단 물약을 구매하려는 플레이어들 만은 아니었다.

TS 미디어는 전용 채널을 통해 프클의 이모저모에 대한 방송을 편성했다.


- 자, 판매 시작했다고 합니다. 바로 생중계 시작하겠습니다.


프로듀서의 목소리를 들은 진행자는 특파원을 불렀다.
파르도섬에서 시작한 기자들이 없어서, 그곳에서 활동하는 웹튜버를 비싼 돈 주고 섭외해야 했다.

"파르도섬의 풍차 마을에 나와 있는 BJ군만두님 나와주세요."

-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저는 BJ 군만두입니다. 제 웹 튜브 많이 방문해주세요. 구독과 좋아요 부탁 드려요!


"네. 하하. 홍보는 거기까지 해 주시고요. 군만두님은 파르도 섬의 유명 인사 중 한 분이시죠. 오늘은 시청자 여러분에게 소개해  장소가 있다고요?"

- 네 그렇습니다. 제 뒤가 보이십니까? 마치 맛집을 찾아 줄을  사람들을 보는 것 같지 않습니까? 제가 직접 인터뷰해 보겠습니다.

사전에 섭외한 플레이어와 인터뷰를 진행하는 군만두.


안녕하세요.
- 네. 안녕하세요.
여기 왜 이렇게 줄을 서 계신 건가요?
- 뭐겠어요. 당연히 치료약이지.
- 치료약. 저도 항상 치료약이 없어마음껐 전투를 하지 못하는데요. 그 치료약을 여기서 판매하고 있나요?
- 네. 사재기 못하게 1인당 제한을 두고 팔아요. 가격도 제일 저렴하고.

- 들으셨습니까 여러분? 거래소나 잡화 상점이 아닌 플레이어가 직접 운영하는 치료약 판매점. 정말 흥미로운데요. 잠시 후, 주인을 직접 만나 인터뷰 해보겠습니다.

화면이 스튜디오로 전환됐다.

"네. 군만두님. 저도 항상 치료약이 부족한데요. 정말 흥미로운 내용이네요."


진행자가 군만두의 말을 거들었다.

지금 게임 화면을 비추지 않는 건 아직 김만우에게 촬영 허가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BJ군만두가 김만우와 협상하는 동안, 방송의 진행자가 시간을 끌었다.

"꽤 시간이 걸리네요. 사재기가 불가능한 치료약 판매점을 시작하신 분인 만큼 흔쾌히 허가를  주지 않으실까요?"

그때 프로듀서가 손으로 X자를 그렸다.
협상이 결렬됐다.
결국 인터뷰 허가를 받지 못한 것이다.

"여러분 잠시 BJ포르말린의 호쾌한 전투영상을 보고 오시겠습니다. 독점계약을 통해 오직 저희 TS미디어 채널을 통해서 만 보실 수 있답니다."


방송은 급하게 다른 영상으로 넘어갔다.

"아씨. 역시 BJ 말만 믿고 가는 게 아니었어. 어서 가서 출연료 얼마까지지급 가능한지 물어보고 와!"
"치료약 상점 운영할 정도면 돈 많이 벌었을 텐데, 출연료 몇  받는다고 촬영 허가를 할까요?"
"안 하면 어쩔 거야. 언론사 적으로 만들면 자기만 손해지 뭐."


방송의 실시간 게시판은 욕으로 들끓었다.

@실시간 댓글@

- 시발, 지겹지도 않냐 맨날 포르말린.
- 웹 튜브로   걸  또 틀어. 인터뷰나 빨리 내 놓으라고.
-  새끼들은 항상 이런 식이야. 미리 섭외했어야지. 다짜고짜 카메라 들이밀면  되는 줄 아나.
- 지금 약제사 시작해도 돈 벌리나요?
- 관둬라. 이미 연금술 판은 고인 물 판임. 후발 주자는 돈  범.
- 위에 새끼 말 듣지 마라. 저 새끼 연금술사거나사재기꾼 일 확률이 높음. 연금술 지금 시작해도 안 늦었다. 빨리 만들어서 시세 좀 낮춰라. 시발.
.
.
.

이날 방송은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


겨우 판매를 끝마친 김만우는 이제  쉬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인터뷰 요청부터 시작해서 손님이 끊이지 않은 탓이다.


"아, 인터뷰 한 번만 해주세요. 출연료도 드린 다니까요."
"죄송합니다. 그런 취미 없어요."

거절했다.
TV출연료 보다, 연금술에 대한 내용을 비밀로 하는 것이  큰 이득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때마침 손님이 찾아왔다.

"또 뵙습니다. BI물약입니... 아, 손님이 계셧네요. 앉아서 기다려도 될까요?"

BI물약과 BI포션.
이은표와 차도아가 함께찾아왔다.
물론 캐릭터명 이외에는 알 방법이 없었지만.

"아, 들어오세요 물약님. 이 분들은 이제 가실 겁니다."

BJ군만두는 가게에서 쫓겨나다시피 내보내졌다.

"아 더럽네. 치료약 독점해서 돈 좀 벌었다 이건가. 퉷."

그는 괜한 불만을 토해내며 떠나갔다.

건물 안에서는 소개가 한창이었다.

"옆에 분은?"

BI포션이라는 캐릭터명을 사용하는 차도아.
그녀의 캐릭터는 현실의 그녀와 동일한 외모를 사용 중이다. 마치 이세영처럼.
 때문에 이은표는 깜짝 놀랐었다.


하지만 김만우는 흔한 검은 머리의 동양 미녀 외형을 한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작업장에서 스쳐 지나가듯 한번 본 걸로는 그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다.

원래부터 여성과 눈도 잘 마주치지 못하는 성격 탓이다.

이은표는 그녀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저희 신입 사원 입니다. 캐릭터 명은 BI포션 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BI포션입니다."
"아, 네. 기억하기 편하고 좋네요. 물약 씨랑 포션씨. 근데 여긴 무슨 일로 다시 찾아 오셨습니까?"

게임 내에서 치료약을 판매하며 여성을 상대 하는 것에 이미 익숙해진 김만우.
다만 현실에서도 그럴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김만우의 물음에이은표는 자신들이 찾아온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했다.


"흠... 사정은 알겠지만, 저희도 바빠서 그런 시간을 내기가... 아시겠지만 그럴 시간에 치료약을 만들어 팔면 엄청난 돈이거든요."

만약 그들의 회사에 찾아간다면, 김만우는 이세영과 함께 갈 생각이었다.
둘이 몇 시간이나 게임을 못 할 테니 은근슬쩍  시간에 대한 보상을 요구한 것이다.


"아... 그거라면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회사와 이야기를 해봐야 해서. 저희 신입과 대화를 나누고 계시겠습니까?"
"뭐, 그러죠."


그는 눈치가 빠른 남자였다.
이에 김만우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은표는 엄브렐라의 사생활 보안 모드를 작동했다.
이제 그의 캐릭터는 조용히 앉아 있을 뿐이다.
그가 팀장과 나누는 이야기는 게임 내에선 전혀 들리지 않을 것이다.

"저... 안녕하세요."
"인사는 아까 나누었습니다."
"아, 죄송해요. 저기 저는 이제 막 채집 퀘스트만 마무리했거든요. 저도 앞으로 치료약 제조 법을 배우게  텐데 조언  해주실 수 없나요."


김만우는 채집과 제작 법을 모두 세영에게 배웠기 때문에, 라나가 주는 퀘스트는 전혀 알지 못했다.


"흠. 글쎄요. 그냥 한번 성공하면, 그 뒤는 반복할 뿐이에요. 끈기가 중요하죠."
"아... 네. 감사합니다."

이은표가 입을 열었다.


"이거 기다리게 만들어 죄송합니다. 회사와 이야기 하니 왕복 교통비로 500만 원 정도를 지원해 드린다고 합니다."


김만우는 뭔가 말하려다 멈칫했다.
자신의 하루 수익을 공개할 필요는 없다고 여긴 것이다.

'저 정도면 넘어가자.'

"네 좋습니다. CC로 바로 부탁 드립니다. 저희 인원은 두 명입니다."
"혼자가 아니십니까?"
"네.  입니다."


이야기는 잘 마무리 됐다.

김만우의 가게를 나선 이은표는 한숨이 나왔다.


"우리 월급보다  금액을 얼굴 한번 보자고 주다니..."
"그러게요. 선배님 힘내세요."

차도아의 응원에 눈물이 나올  같아 꾹 참았다.


"그래... 도아씨도 같이  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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