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30화. 외출
세영은 무아지경의 상태에 빠졌다.
오로지 채집에 집중한 탓이다.
나무꾼을 찾아가야 하는 건 이미 잊은 지 오래다.
"크케엑-"
퓨퓨퓩-
가끔 나타나는 떠돌이 고블린이나 멧돼지들은 그의 쇠뇌에서 쏘아지는 아기살에 순식간에 절명했다.
이 정도면 거의 없는 취급이나 마찬가지다.
'앗. 허브 군락이 있네.'
스킬 '뱀의 눈'은 주변 허브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숲의허브 씨앗을 획득하셨습니다.]
벌써 두 개째.
게다가 채집된 숲의 허브는 마차에 가득 찬지 오래다.
세영은 쇠뇌 개조를 다음으로 미룰 정도로 채집에 미쳐있었다.
"이런, 벌써 인벤이 가득이네."
영웅 등급의 쇠뇌와 아기살 덕분에 몬스터의 방해를 전혀 받지 않게 됐다.
이 근처의 몬스터는 3연발이면 죄다 쓰러졌으니.
모처럼 몬스터 걱정 없이 마음껏 채집할 수 있었다.
숲의 허브만 채집할 거라면, 굳이 쇠뇌를 개조할 필요도 없어 보였다.
'일단 풍차 마을로 가자!'
김만우처럼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으나, 하급 치료약의 가격이 내려가 내심 걱정이었다.
얼른 가격이 비싼 일반 치료약을 만들어 팔아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숲의 허브를 마차 가득하게 채집한 건 이번이 처음.
모처럼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
"내일이요?"
"그래."
김만우는 BI물약과 나눈 대화를 자세하게 전했다.
"거기가 블루 아이템이죠?"
"응."
"저도 거기서 오라던데."
"뭐? 너도?"
"네. 보스잡을때 도와준 사람이 오라던데요. 거절했지만."
"미안하다. 난 거절 못했는데."
세영은 마차에 실린 숲의 허브를 가게의 지하실로 옮기며,
"괜찮아요. 형은 돈도 500만원이나 받기로 하셨다면서요."
"그래. 그거 다 니돈이야. 어차피 거기서 원하는건 연금술 정보니까. 난 보호자 역할이라고 해두지."
"에이, 그런게 어딨어요. 절반씩 나눠야지. 그사람들이 찾아온건형이지 제가 아니잖아요."
김만우는 이세영이라면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자신을 배신할 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씨발. 넌 진짜..."
"형은 그 욕좀 줄여요."
"그래..."
거의 울뻔하던 김만우의 눈물이 쏙 들어갔다.
그는 이제 세영이 채집해 온 숲의 허브로, 또 죽어라 치료약을 제작해야 한다.
세영은허브를 마져 옮기고, 자신의 밭을 향했다.
채집한 씨앗을 심을 요량이다.
'씨앗이 많았으면 좋겠는데...'
허브를 마차 가득 채집 할 동안 얻은 씨앗은 겨우 2개. 그마져도 운이 좋았으니 나온것이다.
'대량으로 얻을 방법은 없을까...'
그런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랬다면 치료약의 가격이 이리 비쌀리가 없었다.
세영은 두 개 뿐인 씨앗을 밭에 정성스레 심었다.
*
"하급 치료약을 더는 안 판다고요?"
"네, 당분간은요. 이제 시세도 안정되지 않았습니까? 저희는 이제 상위의 치료약만 팔겠습니다."
치료약 전문점 앞에서 줄 서 있던 사람들은 김만우의 갑작스러운 말에 화가 났다.
"갑자기 그러는 게 어딨어요?"
"죄송합니다. 매번 그런 양을 만들기에는 일손도 부족하고, 이제는 저희 말고도 제작하는 분들이 늘어나지 않았습니까? 파르도 광장의 가격을 보면..."
파는 사람 마음이 아니겠는가?
김만우는 자신이 왜 사과해야 하는지이해할 수가 없었다.
성질 같아서는 욕을 퍼붓고 싶었다.
"치료약은 개당 10 실버. 거래소보다 10코퍼 저렴합니다. 총 1만개. 한 분당 50개씩 팔겠습니다."
불만을 더 듣기 싫어 서둘러 판매를 시작했다.
치료약은 거래소를 통해 파는 게 더 큰 이득.
굳이 직접 판매를 하는 이유는 가게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그래서 이세영과 함께 신상품도 기획 중이었다.
"안 살 거면 나와요. 난 치료약이 더 좋으니까!"
"맞아! 하급 치료약은 파르도 광장에 가면, 서로 팔려고 안달인 초급 약제사들이 널렸으니 거기 가서 사라고."
옹호하는 사람들이 더 다수였기에 판매는 그럭저럭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근데, 치료약 1만개면 얼마냐?"
"천 골드?"
"헉... 그럼 1억? 미쳤네. 저 가게는 그 많은 양을 대체 어디서 난거지?"
"내가 아냐. 자기들만 정보 독점하고 있는 거겠지."
"시발 놈들. 부러워 죽겠네."
부러움에 시기와 질투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복수를 꿈꾸는 자들도 있었다.
바로 사재기꾼들.
당한게 있어야 복수라 할 수 있겠으나, 이들의 불만이 곪아 터진 이유에는 김만우나 이세영만이 원인이 된 건 아니었다.
연금술이나치료약의 제조 정보가 풀리며 약제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 다수의 사람들.
그들 때문에 하급 치료약의 시세가 점점 하락했고, 재고를 쌓아뒀던사재기꾼들은 그 과정에서 조금 손해를 보기도 했다.
이미 사재기를 통해 엄청난 이득을 봤으면서도, 당장의 작은 손해에 대한 복수를 결심한것이다.
그리고 하필 그 타깃이, 치료약 전문점을 운영하는 김만우가 되었다.
"이제, 200개 남았습니다."
김만우가 오늘 준비한 치료약을 거의 다 팔았을 때 쯤이었다.
"정말 오늘은 하급 치료약을 안파시네요."
"아? 어서오세요 뮬란님."
항상 찾아오던 뮬란.
단골인 만큼 김만우와 어느정도 안면을 트고 있었다.
"치료약 50개 주세요. 그리고 죄송하지만 치료약 팔때 메시지 좀 주실순 없을까요?"
"네?"
"그래도 단골인데, 왜 그런거 있잖아요. 똑같은 브렌드 옷이어도, 단골집에 가서 사는거. 저는 여기서 치료약 팔면 꼭 여기서 사려고요."
"아... 정말 감사해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힘이 납니다. 친구 초대 주세요. 가게 열기 전 메시지 드릴 테니."
김만우는 모처럼 보람을 느꼈지만, 뮬란은 사재기꾼.
실은 모종의 계획을 가지고 접근했다.
*
이세영이 개조는 뒷전으로 미루고, 또 마차 가득 숲의 허브를 채집해 왔다.
사실 목적은 씨앗 확보에 있었지만, 그걸 위해선 채집을 많이 해야 했으니까.
그 덕에 추가로많은 양의 치료약을 제작 가능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마차와 인벤 가득 채집한 숲의 허브로 만들어진 치료약의 개수는 약 1만개.
현금으로 환산해도 1억 가까운 수입이 된다.
김만우와 둘이 나눠도 인당 5천만원.
단 하루 동안 정말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 셈이다.
다만 그 많은 양을 제조하고, 또다시 판매해야 하는김만우는 거의 죽을 맛이었다.
"야. 안 되겠어. 그냥 거래소에 올리자. 1인당 50개면 최소 200명에게 팔아야 해. 10개 20개 사는 사람들도 있어서 팔려면 장장 3시간이나 걸린다고."
"그러게요. 저도 언제까지 채집하고 여기까지 왕복하기에는 너무 멀다고 생각했는데. 마차라도 한 대 더 있었으면 좋겠어요. 운전해 줄 사람 어디 없겠죠?"
둘은 비슷한 생각을 했다.
사람을 더 쓰면 좋을 것 같다는.
"일단은 거래소에 올려요. 1만개 정도로 시세가 하락하고 그러진 않을거에요."
김만우는 세영의 말이 정말 반가웠다.
거래소에 치료약을 올리기 전, 약속대로 뮬란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걸 잊지 않았다.
약속한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으니까.
김갑부 : 오늘은 더는 가게를 열지 않을 것 같아요. 기다리셨다면 죄송합니다.
뮬란 : 어? 왜요?
김갑부 : 너무 바빠서 거래소에 직접 올리려고요. 그리고 내일은 외출할 예정이라 게임을 못하거든요. 다녀와서도 채집하기 전에는 재고도 없고요. 아마 모래는 되야 다시 열거 같아요.
뮬란 : 그러시구나. 메시지 보내주신거 감사드려요.
김만우는 흐믓한 미소를 지으며 만족했다.
*
파르도의 광장에서는 묘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풍차 마을의 치료약 전문점에서 더는 하급 치료약을 안 판다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묘한 정보가더해졌다.
"치료약 값을 대폭 인하 한다고 합니다."
"그말이 사실입니까?"
"네. 틀림 없어요. 그래서 하급 치료약은 잡화점에서 처음에 팔던 75코퍼 까지 싸질거라는 소문입니다."
"와-! 그 말이 사실이라면 안 사고 기다려야 겠네. 돈이나 많이 모아 뒀다가 싸지면 사야지."
돈과 관련한 정보는 삽시간에 번졌다.
특히나 하급 치료약은 거래소 등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섬에서 생산된 건 섬 내에서만 소비된다.
이 소문을 들은 약제사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진짜야? 아씨. 이제 막 제조 시작했는데..."
"안 그래도 자꾸 싸지기만 해서 짜증 났는데, 만들어 둔 것만 팔고 그만해야겠네."
"하급 치료약 210개 싸게 떨이합니다. 사가실 분~"
순식간에 광장 내의 하급 치료약 시세는 1 실버 아래까지 곤두박질쳤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이, 부리나케 그 물량을 싹쓸이하고 있었다.
소문을 퍼트린 당사자며, 사재기로 이득을 본 사람들.
뮬란과 몇 명의 사재기꾼들이었다.
**
김만우는 정말 오랜만에 외출했다.
반면이세영은 이틀 전 사망 페널티로 접속 불가였을 때, 할머니의 병문안을 다녀왔으니 오랜만이라 할 순 없었다.
둘은 택시를 타고 이은표에게 전해 들은 위치를 향해 이동했다.
목적지는 블루 아이템의 사무실이 있는 건물이다.
불과 열흘 전만 해도 폰 게임 작업장 직원이었던 둘인 만큼, 옷차림이 지나치게 후줄근했다.
그 때문에 1층 로비에서부터 가로막혔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아, 블루 아이템 사에서 초대를 받았는데요."
"잠시 확인 좀 하겠습니다."
김만우는 불만을 털어놨다.
"야. 그러니까 가서 옷부터 사 입자고 했잖아."
"에이,뭘 그런데 돈써요. 어차피 한달에 한번 외출할까 말깐데."
"그래도 정장 한벌은 있어야지. 너 병원 갈 때쫙- 빼입고 가면 너네 할머니도 좋아하실걸?"
그말을 듣고서야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세영.
"벌만큼 벌었으니까, 그정도는 과소비는 커녕 소비 축에도 못껴. 우리가 먹는거랑 월세말고 뭐에 돈쓸데가 있겠냐."
"그렇긴 하지만요."
세영은 머리를 긁적였다.
결국 둘은 신분증 확인까지 받고 나서야 블루 아이템의 본사가 있는 12층을 향할 수 있게 됐다.
띵-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그 앞에는 젊은 남성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이은표라고 합니다. BI물약이라는 캐릭터명을 사용중입니다."
"아! 물약님."
"어서오세요. 근데어느 분이... ?"
김만우가 나섰다.
"아, 제가 김갑부입니다."
"반갑습니다.
이은표는 둘의 허름한 차림에도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지나치게 어리다는 것에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결코 표정으로 들어내지 않았다.
"저를 따라 안으로 들어오세요."
이은표를 따라가며 주위를 둘러봤다.
회사의 사무실이라기 보다는, 무슨 실험실에 온것 같은 기분이었다.
수십 대의 엄브렐라가 보였기 때문이다.
"와- 엄청 많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 연금술사가 한명도 없나요?"
"네. 부끄럽습니다만 대부분 아이템 파밍을 위해 전투 클래스를 선택했습니다."
안내받아 도착한 곳은, 접객실인지 꽤나 호화롭게 장식된 공간이었다.
이세영과 김만우에게는 아직 어울리지 않는 그런 공간.
그 장소에 한 남자가 뒤이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블루 아이템 파밍 팀 팀장 김현이라고 합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김-만우입니다."
"이세영입니다."
김현은 30대 중반.
김만우와 이세영은 저절로 고개가숙여졌다.
"이 팀장. 가서 마실 것 좀 부탁해. 아, 차도 아씨도 불러오고."
"네, 팀장님."
이세영의 눈이 커졌다.
'차도아?'
그걸 확인한 김현 팀장은 대화를 시작했다.
"왜 그러십니까? 어디 불편한 부분이라도?"
"아, 아닙니다."
김현은 차분히 대화를 이어나갔다.
손에 쥐고 있던 종이를 김만우의 앞에 내밀었다.
"단도직입적으로 저희 회사와 계약하시는 게 어떠십니까. 김 갑부님. 이건 저희가생각하고 있는 안 중에 두 가지를 정리한 내용입니다. 천천히 살펴보시죠."
이은표에게 이미 언질을 들은 뒤라, 그의 타깃은 김만우가 되었다.
"저기, 정확히 무슨 계약이죠? 여기 쓰여 있는 것 만으로는... 저희는 근로 계약서 써본 거 밖에 경험이 없거든요."
김현은 소파 뒤로 깊게 등을 기댔다.
"일단, 첫 번째가 저희가 무엇보다원하는 안입니다. 일종의 독점 계약으로, 저희가원하는 인물을 연금술사로 전직시켜주시면 됩니다. 인물이라고 해서 좀 이상하시다면, 그냥 저희 직원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독점이라는건..."
"절대 저희 직원들 외에는 해당 정보를 발설 하지 않으시겠다는 보안계약을 해 주시면 됩니다."
김만우는 고개를 돌려 이세영의 얼굴을 바라봤다.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럼, 저희에게 떨어지는 이익은요?"
"5억입니다.물론 저희가 얻은 정보를 이용해 제 2의, 제 3의 연금술사를 만드는것 역시 가능하단 전제로."
한명만 방법을 배워두면, 그 뒤는 얼마든지 양산이 가능할 테니까.
높은 가격을 매긴 이유였다.
하지만.
"겨우 5억이요?"
김만우의 입에서 나온 말에, 김현은 물론 이세영의 눈도 커졌다.
"형? 5억이뉘집 개이름이에요?"
"야. 좀 가만 있어봐."
그때, 접객실의 문이 열리며 이은표와 차도아가 들어왔다.
그들의 손에는 향기로운 차가 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