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1화 〉31화. 외출 (31/122)



〈 31화 〉31화. 외출

"어?"
"아?"
"이런 곳에서 다시 뵙네요. 안녕하세요. 차도아 씨!"
"이... 이세영 씨? 이세영씨가 여길 어떻게..."


마치 잃어버린 친구라도 다시 만난 것처럼 반가워하는 둘 때문에, 접객실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차도아 씨. 설마 이분들과 아시는 사입니까?"
"아, 팀장님. 아닙니다. 전에면접  곳에서  적이 있을 뿐입니다."


차도아는 아직도 얼어 있었다.
입사한 지 이제 겨우 3일 째니 당연한이야기다.

김현은 차도아의 이야기를 듣고 미간을 좁혔다.

"면접 본 곳이라면?"
"아... 여기와 비슷한 곳이에요. 규모는 작았지만."

그 말을 들은 김현이 김만우에게 되물었다.

"혹시, 저희 말고 다른 파밍 기업에 소속돼 계십니까?"
"아... 아닙니다. 지금은..."

갑자기 말을 더듬는 김만우를  김현은, 수상쩍은 낌새에 대화를 잊지 못했다.

김만우는 단지 여자가 들어와 그랬을 뿐인데.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희가 원하는 건 독점계약입니다. 다른 회사와 계약을 미리 하셨다면 이 이야기는 없던 걸로 부탁드립니다."


김현의 냉정한 말투에, 이은표와 차도아는 차를 내려두고 한발 물러서 조용히 있었다.


이세영은 반가운 마음에 차도아의 얼굴만 바라보다가, 그럴 분위기가 아닌 걸 눈치챘다.

"형 왜 그래요? 또 그거에요? 여자 공포증?"
"야! 여기서 그게 왜나와!"
"왜 저번에도 차도아씨 보고 화장실에 처박혀 있었잖아요."


김만우는 식은땀을 흘리며, 차도아와 이세영을 번갈아 봤다.

"으... 저, 저는 잠시 밖에 나갔다 올게요. 이야기는 이 친구랑 해주세요. 어차피 얘가연금술사니까."

김만우는 급히 밖으로 나갔다.
얼굴이 시뻘게진 상태로.

한동안 정적이 흐른 접객실.
김현이 말을 이었다.


"그쪽이 연금술사 라구요?"
"네. 그런데요?"

김현은 이은표를 향해 고개를돌렸다.


눈빛으로 전해지는  무언의 질책에 이은표는,


"저, 김갑부님은 밖에 계신분이 틀림 없지 않습니까?"

이세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형이 김갑부고, 저는 알파에요. 형은 아직 전직전이고."


이세영을 제외한 세 명은 크게 동요했다.
파밍팀의BI기츠가 말했던 알파.
그 이름이 왜 여기서 나오지?

"알파... 님 이시라면... 혹시 BI기츠를 아십니까."
"네. 제가 보스 잡을 때, 힐 써주신 분이시죠. 그땐 정말 감사했는데, 그 뒤에 부탁하신 이야기는 거절해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혹시 그 분도 여기 계신가요?"


김현은 급히 고개를 돌려 이은표를 바라봤다.
고개를 까딱 하며 신호를 보냈다.


신호를 눈치챈 이은표는 고개를 끄덕이고 아무말 없이 급히 접객실을 나섰다.
BI기츠를 불러와야 했으니까.


"이거, 저희에게 조금 착오가 있었던 모양이군요."
"괜찮아요. 그보다 방금 문자가 왔는데,  번째 안 이라는  거절할게요."


김현의 미간에 주름이 깊어졌다.

"왜, 갑자기..."
"좀 전에 같이 있던 형이 하지 말래요. 뭔가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 저 손해 보게 하는 형은 아니니까요."
"그건 너무 터무니없는..."

김현은 골치가 아파져 왔다.


'이러니까 아직 어린놈들은...'


하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눈앞의 인물이 연금술사라면, 회사의 이익을위해서 절대로 붙잡아야 한다.


"실례가 안 된다면 정확한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나가신 분을 다시 불러오시죠. 흠... 그럼, 차도아 씨는 잠시 나가서 대기하도록."
"네, 팀장님."


차도아는 정중하게 인사하고 돌아섰다.
이세영은 한껏 미소를 보이며 바라봤지만, 그녀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질 않는 탓에 조금 시무룩해졌다.

김만우가 접객실로 돌아오자 이야기가 계속됐다.


"5억 가지곤 어림도 없죠. 저희 수익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그 정도는 저희 둘이서도 쉽게 벌 거든요."


쉽다는  조금 과장이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치료약의 시세가 유지된다면, 1주일간 죽어라 채집과 제작을 반복하면 못 벌 것도 없었다.

김현은 허풍인지를 가늠하려  젊은이를 한참 지켜봤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


"그럼, 원하시는 금액은 어느 정도이신지..."
"아니요. 정보는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두 번째 안을 들어보고 싶네요."

곁에 여자가 사라지자, 오히려 이전보다 더 당당해진 태도의 김만우.

"흠... 네. 뭐, 어쩔수 없죠. 두 번째 안은 치료약과 포션의 독점 공급에 대한 내용입니다. 납품 가격은 그날 거래소 가격의 평균과 동일하게 드리겠습니다. "

내용을 듣고 고심하던 김만우는 물었다.

"저희 이득은 뭐죠? 그냥 거래소에 올리는 게  편할것 같은데."
"계약인 만큼 안정적인 판매처를 확보하실  있는게 장점 아닐까요. 지금이야수요가 공급을 뛰어넘으니 망정이지, 나중에 역전되면 어쩌시겠습니까."
"단순히 그게 전부인가요?"


김현은 어린놈들 주제에 제법 이라고 생각했다.
5억이라는 거금을 선뜻 거절한 것도 그렇고, 보통 놈들이 아니구나 싶었다.


"저희 포션 담당팀 직원들을 파견하겠습니다. 마음껏 부리셔도 좋습니다. 월급은 당연히 저희가 지급합니다."
"인원은요?"
"아까 보신 명입니다."

김만우는 세영의 눈치를 살폈다.


차도아의 이야기를 가끔가다 꺼냈던 이세영이다.
김만우의 생각에는 세영이 차도아에게 첫눈에 반한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러니 지금 이야기를 들었다면, 가볍게 OK를 하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하지만 그런 반응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안돼요. 거절할게요."
"세영아?"
"싫어요. 차도아씨든 누구든."

이세영은 조금 불쾌했다.
마치  사장 나금돈이 자신들을 이용하던게 떠올랐다.
오직 돈만 생각하는 그 남자.

'부리다니, 노예도 아니고.'

"오늘 이야기는 없었던 걸로 해주세요. 애초에 독점 공급이면, 다른 사람들에게 치료약을 팔고 싶어도 못 팔게 되잖아요. 사재기와 다른 게 뭔지 모르겠네요."


거절할 이유는 생각해 보면 많았지만, 세영의 이유는 그  가지 뿐이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보내주신 500만원도 돌려 드릴게요."


세영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는 누군가의 요구를 맞춰가며 살고 싶지 않았다.
계약에 얽매이는 관계는 거북했다.
모두 나금돈으로부터 배운 교훈이었다.


김만우도 세영을 따라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500만원은 그냥 받았어야지.  멍청한 새끼야.'

블루 아이템에서 제시한 조건은 김만우도 불만이었지만, 내심 500만원이 아까웠다.
오늘 여길 오지않고 게임을 했다면 벌어 들였을 수익 생각이,머리에서 가시질 않았다.

협상은 결렬됐다.
BI기츠가 접객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둘의 외출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세영에게 전혀 소득이 없던 건 아니었다.

"꼭, 연락해주세요. 차도아씨."
"네... 안녕히 가세요."

차도아에게 자신의 번호를 전달했으니까.

번호를받아든 차도아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가는 이세영의 뒷모습을 한참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 *

게임에 접속한 김만우에게는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뮬란 : 김갑부님. 혹시 접속하시면 메시지 부탁해요. 드릴 말씀이 있어요.

'뭐지?'

김만우는 곧장 메시지를 보냈다.


김갑부 : 뮬란님. 무슨 일이십니까?

뮬란 : 아, 지금 접속하신 건가요?

김갑부 : 네. 지금 막.


뮬란 : 그러시구나. 그럼 지금 빨리 가게를 열어 주세요. ㅋㅋㅋㅋㅋ 그럼 수고~

'뭐지?'

그 수상한 메시지 이후에 김만우가 보낸 답장은 전달되지 않았다.
뮬란이 김만우의 메시지를 차단한탓이다.
친구 목록에서 삭제된 덤이다.

"왜그래 형?"
"몰라. 단골이던 사람이 가게 문을 빨리 열라는데?"


김만우와 이세영은 외출 전, 풍차 마을의 가게 안에서 게임을 종료했었다.


"왜그러지?"
"밖에 나가보면 알겠지."

오늘은 팔 물건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정문이 아닌 옆의 쪽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문을 열자마자 들려오는 소음.
마치 시장통을 방불케 했다.

"대체 문을 언제 여는거야?"
"그러니까! 치료약을 싸게 팔기로 했으면 약속을 지켜야 할 거 아냐!"
"소문이 사실인거 맞아? 그냥 하급 치료약 시세 올라간 다음에 팔려고 수작부린거 아냐?"
"이새끼들사재기해서 한몫 챙기고 튄거 아님?"


별에 별 소리들이 다 들려왔다.
김만우는 그 소리가 온전히 자신의 가게를 향한 거라는  단숨에 눈치챘다.


"야! 빨리 들어와!"

급히 세영의 캐릭터를 붙잡고, 도망치듯 안으로 들어왔다.


"형 왜 그래요?"
"아무래도, 뭔가가 잘못된 거 같다."
"뭐가요?"
"밖의 사람들. 우리가 치료약을 싸게 팔기로 했다잖아."
"그게 왜요? 우리는 그런 소리 적 없으니까 상관없잖아요."


세영은 자신이 잘못하지 않은 일에는 당당하기로 했다.
노랑나비의 영향을 받아 성격이 조금 변한 것이다.

"니가 아직 어려서 뭘 모르는데... 장사하려면 잘못하지 않은 일에도 죄송합니다라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아야 된다고."

겨우 한살 많은 김만우였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은 장사꾼 같았다.
비록 게임 내라지만,며칠간 치료약 장사를 하며 깨달은 게 있었다.

"그런 게 어딨어요. 전 나갈래요."


이세영이 문을 열려고 하자, 김만우는 급하게 팔을 잡아당겼다.


"알았으니까,조금만 기다려봐.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는 알아야 할 거 아냐."

세영은 어쩔 수 없이 그 말을 따랐다.


김만우는 곧장 인터넷 게시판을 뒤지기 시작했다.
파르도섬의 치료약 전문점이   건, 당사자인 본인이 가장  알고 있었다.
정보를 찾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파르도섬 게시판.


- 님들 치료약 전문점 소문 사실임?

지들이 하치(하급 치료약) 싸진다고 소문내고 다닌다는 거?

- ㅇㅇ 그래놓고 지금 20시간동안 오픈 안했음.

 약제사임. 하치 시세 떨어진다는 소문 듣고 만든거 전부 떠리했는데, 지금 시세 두배 됨.


- 약제사야 다시 만들어서 돈 벌면 그만이지 뭐가 걱정임. 당장 사냥가야는데 치료약 값이 다시 두배로 뛴 사람들이 걱정이지.

- 지켜보면 알겠죠. 하치는 거래소에도 안올라 가니까, 전문점에서 다음에 문 열고 하치를 파는지. 아니면 처음에 뱉은대로 치료약을 싸게 파는지.


너같으면 치료약을 거래소가 버젓이 있는데 그거보다싸게 팔겠냐? 돌아이가 아니고서야. 현금으로 개당 만원이 넘는고만.


저새끼 치료약 전문점 주인아님?

- 알바일수도. 그 새끼들 그동안 돈 졸라게 벌었을 텐데.

쭉 읽어 내려가던 김만우는 어이가 없었다.

"이게 다 뭔 개소리야?"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형. 아무래도 누가  소문을퍼뜨리고 다니는거 같은데요."
"넌 그걸 또 어떻게 알아?"


세영은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낸 후, 들려온 정보를 통해 알게된 상황을 김만우에게 전했다.


"누가 이런짓을 했을까요? 설마 블루아이템이라는 회사에서 그런 걸까요? 계약 안해줬다고?"


김만우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한 인물을 떠올렸다.


'뮬란... 이 개새끼가!'

이를 빠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꽉 깨물었다.

*


"하급 치료약 팜니다."


뮬란과 사재기 꾼들은 하급 치료약을 서둘러 되팔기로 했다.
멍청한 놈이 자기 접속했다고 메시지까지 줬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되파는 타이밍을 너무 늦게 잡을 뻔했다.


"잡화점에는 내일까지 물건 안 들어와요. 약제사들이 제작하려고 해도 몇시간은 걸립니다. 급하신 분들만 대기하세요. 곧 있으면 하급 치료약을 실은 마차가 도착합니다."


그동안 사재기로 번 돈을 투자해, 마지막 한탕 장사를 노린 것이다.
무려 마차로 15대 분량.
여관방을 세 칸이나 빌려 2만개 이상의 하급 치료약을 쌓아뒀다.
돈은 돈대로 벌고, 욕은 다른 놈이 대신 먹어주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었다.

뮬란 혼자서는 시장에 풀린 하급 치료약들을 전부 사들이기에 자금이 부족해, 사재기꾼 동료들까지 끌어모았다.

=폰메신저의 비공개 대화방.
치킨런 동맹.


님들 풍차마을 놈들 지금 접속했다고함. 그놈들이 하치(하급 치료약) 만들어 팔려면 최소한 6시간은 걸릴거임.  전에 다 파셈.


- ㅇㅇ 정보 땡큐. 저는 파르도 동문 쪽에서 팔겠음.

- 저는 이미 예약한 길드에 넘기기로 이야기 끝남.

- 아- 근데. 하치는 팔아야겠고, 놈들이 사람들한테 욕먹는 것도 라이브로 보고 싶은데... 시발 ㅋㅋㅋ.


사재기한 물량을 시장에 풀기도 전부터, 아주 신들이 나 있었다.



*

"뭐라고 하죠? 사람들이 우리 말을 믿어주질 않을텐데..."

상황파악이 끝난 이세영은 침울해졌다.


"하급 치료약이라도 만들어다 나눠줘야 할까요?"
"아니. 우리가 손해를 보면서까지 그래야할 이유는 없지. 차라리 가게를 포기하면 모를까."
"그게 더 손해 아니에요?"
"꼭 그렇지도 않아. 어차피 이제 하급 치료약은  생각도 없었고, 치료약이나 포션이야 거래소에 올리면 그만이잖아. 이 건물이야 제작소로 계속 이용하면 되고."

세영은 어깨를 축 내려뜨리고 한숨을 깊게 쉬었다.


"어떤 놈들인지 몰라도, 정말 못됐네요.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다 내잘못이야. 속아 넘어간 내 탓이지. 아마도 뮬란이란 그놈일 거야."

김만우는 꼭 복수를 하겠다 다짐했다.


"일단은 눈앞의 불부터 끄자."
"네? 무슨 방법 있으세요?"
"응... 너랑 대화하다가 좀 전에 떠오른건데. 우리 이제 하급 치료약을 다시 만들어 팔 생각은 없지?"
"네. 비효율적 이잖아요."


김만우는 악당같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럼, 그 정보를 팔아볼까."
"네?"

그는 그길로 곧장 나가, 가게의 문을 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구경꾼을포함한 정말 수많은 인파가 아우성 대고 있었다.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죠. 오늘판매 상품은 바로 하급 치료약의 제조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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