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35화. 고대 마족의 주머니
"그게, 저는 전화기도 없고... 친분도 없습니다. 단 두 번 얼굴을 마주했을 뿐 입니다."
그녀의 말을 듣던 김현이 나섰다.
"차도아씨. 그래도 알파의 전화번호가 적힌쪽지를 받지 않았습니까?"
차도아는 얼굴이 새빨개 졌다.
"네..."
웅성웅성.
회의실 내의 모두가 그녀를 두고 이런저런 목소리를 냈다.
"그만-! 우리가 사냥해야 하는 건 연금술사지 차도아씨가 아닙니다!"
"맞습니다. 길드장님. 차도아씨? 당신은 회의실에서 나가도 좋습니다."
차도아는 서둘러 밖을 향했다.
금세라도 눈물이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녀를 이용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겁니까?"
길드장의 목소리에 침묵의 시간이 길어졌다.
김현은 기창현에게 눈치를 줬으나, 그는 눈치채지 못했다.
"기창현씨."
결국 소리 내 불러야만 했다.
김현의 목소리를들은 기창현이 뒤늦게 나섰다.
"길드 장님. 파밍 팀의 클래릭 기창현이라고 합니다. 먼저 마법사 전직 퀘스트 관련실패한 부분에 대해서 사죄 드립니다. 갑자기 족장 고블린이 등장하는 바람에..."
길드장이 귀찮다는 듯, 미간을 좁히며 손을 들어 휘둘렀다.
빨리 본론으로 넘어가란 소리였다.
"아... 네. 그 과정에서 알파와 친구 추가를 해 둔 상태입니다. 언제든 연락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은표가 말을 이어갔다.
"저 또한 김갑부라는 사람과 친구 추가를 해 둔 상태입니다. 그 남자는 알파와는 매우 친한 사이로 보였습니다. 알파와 함께 치료약 전문점도 운영 중인 자입니다. 둘은 가까운 혈연 관계거나, 친한 친구 사이처럼 보였습니다. 동업자 관계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가 말을 마치며 김현의 눈치를 보자, 김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은표는 그제야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안심은 금세 절망으로 변했다.
"3일. 3을 드리겠습니다. 그 시간 안에 알파를 공략하세요. 그게 안되면 포션 팀은 해체하겠습니다. 최근에는 경매장에 치료약이 올라오고 있으니 그냥 사 쓰면 그만이고. 마나 포션이 부족한 건 비단 우리 길드만도 아니니까."
차라리 다른 연금술사를 찾아 길드의 임원으로 모집하는 게 더 이로워 보였다.
포션 팀의 지금까지 성과를 보면, 직접 알아낸 정보가 단 하나도 없었다.
채집 퀘스트의 시작 방법 하나까지 전부 회사의 돈으로 정보 경매에서 구매한 것이니.
블루 아이템 사의 신입 사원들은 인센티브가 발생하는 입사 6개월 차가 되기 전에는 모두 임시 계약직 신세.
포션 팀의 이은표와 차도아 역시 그랬다.
회사 내 그들의 자리가 위협 받고 있었다.
***
이세영은 우선사전 준비에 돌입했다.
종전 보다 훨씬 많은 양의 치료약을 인벤토리에 가득 넣어 둘 생각이었다.
지난 족장과의 전투에서 얻은 교훈이다.
마비 가루 탄과 일반 마비 탄도 충분히 준비해 둬야 했다.
그리고 몇 가지 도움이 될 법한 탄환들 역시 만약을 위해 만들어 둬야 한다.
히부린의 연금 레시피들.
현재 해석 가능한 레시피 중, 재료가 있다면 먼저 제작해 보고, 실험을 끝마쳐 사용법을 파악해 두고자 했다.
그러던 중, 의외의 수확이 있었다.
혼자서 마비약의 재료인 바위 동굴 버섯을 수집하러 나섰을 때, 마나를 머금은 던전 허브 역시 채집해 두고자 했다.
파티원들이 사용할 마나 포션을 제작할 목적이었다.
그런데 바위 동굴의 봉인석이 파괴되면서 더는 마나를 흘려 내보내질 않는지, 주변의 허브들이 죄다말라 죽어있는 게 아닌가.
'이걸 어쩌지...'
고민 끝에 떠올렸다.
여기서 히부린의 비밀 공간을 찾을 때, 바위 벽 안의 공간에서 허브가 자라고 있었음을.
[고대 마족의 주머니를 사용합니다.]
'아니, 열쇠 하나 꺼낼 때마다 왜 메시지가 들리는 거지?'
인벤토리에서 주머니를 꺼낼 때는 아무런 메시지가 없었는데 이상했다.
세영은 열쇠를 사용해 히부린의 비밀 실험실에 다시 들어가고자 했다.
실험실의 출입 문은 바위 거미들 탓에 구멍이 뚫려있었다.
그렇다고 문을 열지않아도 될 만큼은 아니었기 때문에, 열쇠가 필요 없던건 아니었다.
'그때 그대로 인데? 아무도 찾아 온 적 없었나?'
세영은 뱀의 눈 스킬의 효과를 이용해, 실험실 안에서 허브의 위치를 찾기 시작했다.
'더 깊은 곳에?'
이상했다.
허브의 위치는 실험실의벽 안 쪽으로 부터 느껴졌다.
그 방향에 있던, 텅 빈 나무 책장을 옆으로 옮겨보려 했다.
드르르륵.
그런데 순간, 책장이 자기 스스로 옆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책장 뒤 벽에는 또 다른 비밀 통로가 등장했다.
세영은 곧장, 그 좁은 공간 안으로 들어갔다.
통로는 매우 짧아서 금세 끝에 도달할 수 있었다.
"와아-!"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
빛 한줄기 없는 어두운 공간이었지만, 카스나의 눈 스킬을 보유한 이세영에게는 그 공간의 모습이 또렷이 보였다.
"여기는... ?"
덟다란 공간.
세영이 보유한 작은 허수아비 밭의 약 네 배 크기의 공간이었다.
'이게 다 얼마야!'
공간을 가득 채우고있는 마나를 머금고 자란 던전 허브들.
이전에 왔을때는 실험실의 비밀 통로의 바깥에서만 뱀의 눈 스킬을 사용했었다.
스킬의 거리 제한 때문에 이 공간의 일부만 느꼈었던 모양이다..
실험실 안에 들어선 뒤로는, 다른데 정신 팔려 있었으니 식물 탐색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곳에? 봉인석도 없는데...'
그의 눈에는 허브 밭의 중심부에 위치한, 매우 수상쩍은 검은 안개 같은 것이 보였다.
아마도 저기에서 마나가 흘러 나오는 게 아닐까?
세영은 조심해서 그 안개를 향해 다가갔다.
파지지직.
"으윽..."
[차원의 균열을 발견하셨습니다.]
[당신은 현재 균열에서 흘러 나오는 마력을 견딜 수 없습니다. 접근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균열?"
세영은 저릿 한 오른손을 왼손으로 주무르며 검은 안개를 바라봤다.
"여기서 마력이 흘러나오는 모양인데..."
자신의 레벨이 부족한 거라 여긴 세영은, 중심에서 먼 부분의 허브들만 조금 채집했다.
인벤토리가 이미 버섯으로 가득했기 때문에 얼마 채집하지 못했다.
그래도 싱글벙글했다.
이 허브들을 이용해 마나포션을 만들어다 팔면,엄청난 돈이 될 테니까.
'인벤 공간만 조금 더 여유로웠다면, 당장 전부 다 채집했을 텐 데...'
허브의 성장 속도를알 수 없었다..
한번 채집하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야 다시 자라날 것인가.
숲의 허브는 이틀이면됐지만, 그건 밭에 재배했을 때의 이야기.
야생의 허브는 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심지어 눈앞의 허브는 마나가 없다면 시들어 버리는 습성이 있었으니, 재 성장에 시간이 얼마나 필요할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당장 보이는 걸 죄다 채집하고 싶었다.
이제 손에 얻은 영웅 등급의 쇠뇌를 사용하면, 거미들 쯤 간단하게 처리 가능했으니 나중에 다시 와도 되겠지만, 그러기 전 또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이 장소가 눈에 띨지도 모를 일이었다.
'실험실 문의 구멍도 그렇고... 발견되기만 한다면, 다짜고짜 부수고 들어오려는 사람도 있겠지.'
그래서 지금 인벤토리의 공간이 부족한 게 몹시 아쉬웠다.
버섯을 조금 버려야 하는지 고민일 정도였다.
일단은 인벤토리를 정리하기로 한 세영.
열쇠나 마족의 주화는 인벤토리의 한 칸 씩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대 마족의 주머니에 집어 넣으면 필요한 인벤 내의 공간은 주머니를 넣기 위한, 단 한 칸이면 충분했다.
무게에 대한 부분에선 별다른 이득이 없었으나, 공간이라도 깔끔하게 정리하고자한 것이다.
'버섯이나 허브는 천 개 까지 겹쳐지니까 상관없고.'
또 집어 넣을게 없나 찾아보다가,장비 품의 일종인 히부린의 마스크를 꺼냈다.
그걸 고이 접어 넣어봤다.
마스크가 무려 5장이나 있었는데, 장비 품은 각 각 한 칸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뭐지?'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마스크 다섯 장이면 빵빵해 졌어야 할 주머니가 전혀부풀어 오르지 않았다.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 건 아닌가 싶어 다시 꺼내 볼 정도였다.
[고대 마족의 주머니를 사용합니다.]
제대로 마스크가 나왔다.
너무 신기한상황에, 이것저것을 집어넣어 보기로 했다.
채집 가위 역시, 간단하게 들어갔다.
그랬음에도, 주머니의 외형은 변화가 없었다.
'설마?'
혹시나 싶어 쇠뇌를 넣어봤다.
"헉!"
주머니의입구가 스스로로 벌어지며, 쇠뇌를 꿀꺽 삼켰다.
겉 모습은 작은 주머니인 그대로였다.
[고대 마족의 주머니를 사용합니다.]
다시 주머니의 크기보다 한 참 커다란 쇠뇌가 나타났다.
물건을 꺼낼 때는 머리 속으로 떠올린 것 만 자동으로 꺼낼 수 있었다.
주머니 째 뒤집어 털어내면, 들어있는 모든 걸 뱉어내기도 했다.
"마법의 주머니?"
이 주머니는 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아공간 가방의 일종이었다.
세영은 너무 즐거운 나머지 이것저것 실험해 봤다.
인벤토리에 있던 모든 버섯을 꺼냈다.
그리고 주머니에 넣어봤다.
"와아-."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들어가 버렸다.
'이제 마차는 필요 없겠는데?'
곧바로 모든 아이템을 인벤토리 안에 되돌려 넣고, 주머니에는 마나를 머금은 허브만 채집해 쑤셔 넣었다.
눈앞에 모든 허브가 주머니 안을 향했다.
채집하는 내내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
세영은 일단 풍차 마을로 돌아왔다.
"형. 치료약 만들어 둔 것들 아직 안 팔았죠?"
"응. 왜?"
"실험 좀 해보려고요."
세영은 주머니에 있던 허브를 죄다 꺼내 두었다.
"야. 이게 다 뭐야? 난 이름도 물음표로 뜨는데?"
"마나 포션 재료에요."
"와아- 이게 다 허브야 그럼? 이 정도면 엄청난 양 아니냐? 가만있어보자. 거의 5천 병은 만들겠는데?"
"안 그래요. 치료약이랑은 제작 방법이 달라서."
세영은 김만우의 질문을 대충 대답하고, 곧장 치료약을 주머니에 담기 시작했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치료약이 다어디로 사라지는 거야?"
"기다려 보세요. 실험 중이니까."
놀라웠다.
무려 6 천 병이나 되는 치료약이, 주머니에 몽땅 들어가 버렸다.
"더는 안 들어가네요."
"야, 그 주머니 대체 뭐야? 무슨 마차 3대 분량이 들어가. 산타클로스의 선물 주머니냐고 무슨."
세영은 환한 미소로 김만우를 바라봤다.
"이거 너무 좋은데요? 헤헤."
"하나 더 없냐? 나도 좀 줘."
"있으면 그랬죠. 저도 하나 뿐이에요."
세영은 치료약을 모두 꺼내 놓고, 마나 포션과 개조 탄환의 제작을 시작했다.
[일반 연금술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연금술 레벨이 9에 이르자 최하급 마나 포션과 하급 마나 포션의 비율이 거의 1대 1까지 상승했다.
"하급 마나 포션을 경매장에 올려볼까요."
"그래. 지금 거래소에 있는 매물도 씨가 말랐으니까, 경매장에 한 100개 단위로 올려보면 되지 않을까?"
완성된 양은, 하급 마나 포션이 300병. 최하급 마나 포션이 500병 이었다.
"일단 100개만 올려 볼게요. 마나 포션을 만드는 재료는 다시 획득하기 어려울지 모르니까, 일단 어느 정도는 보관해 두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경매장에 하급 마나포션 100개를 묶음 등록하셨습니다. 경매 시간은 24시간 입니다.]
띠링.
[신규 입찰이 존재합니다. 입찰가를 확인하시겠습니까.]
띠링.
[신규 입찰이 존재합니다. 입찰가를 확인하시겠습니까.]
띠링.
[신규 입찰이 존재합니다. 입찰가를 확인하시겠습니까.]
.
.
.
"으으- 시끄러워. 신규 입찰 알림 해제!"
등록하자 마자 엄청난 속도로 입찰이 시작됐다.
[현재 최고 입찰가 : 12,000,000CC]
"왜 그래?"
"벌써 천 2 백 만 CC를 넘겼어요. 열기가 엄청 난데요?"
지난 경매에 참가했던 경험을 떠올리자,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뭐 그렇겠지. 최하급 마나 포션도 개 당 1골드나 한다던 데. 역시 나도 연금술사를 해야할까봐."
"던전 허브는 어디서 구하시게요? 제가 채집했던 동굴의 허브들도, 다시 자라는 데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생각하니 또 그 말이 맞아 보였다.
현재로서는 연금술의 매리트가 없어 보였다.
다른 클래스를 선택해도 치료약은 얼마든지 제조 가능했고, 마나 포션은 재료가 없으면 재아무리 연금술사라도 말짱 꽝이었으니까.
"아... 나도 너처럼 히든 클래스였다면 연금술사를 쉽게 선택했을 텐데. 그 뱀 눈 이라는 스킬도 그렇고."
"뭐 어때요. 형은 천천히 하세요. 지금도 돈은 잘 벌리니까."
"으흐흐. 그렇긴 하지. 한 백 억쯤 모아 두고, 게임은 느긋하게 해도 좋겠지."
김만우의 징그러운 얼굴을 보며 세영도 함께 웃었다.
* * *
김만우가 치료약 판매를 재개한 모습을 지켜보며, 세영은 북쪽으로 출발했다.
시장의 의뢰를 시작하기 이전에, 개조 쇠뇌와 화염 탄을확보하고 싶었다.
그에겐 정예나보스 몬스터 사냥에 있어, 화염 탄과 견줄만한 무기는 없었으니까.
인벤토리와 주머니에 치료약과 마나 포션. 그리고 개조 탄환들도 넉넉히 챙겨뒀다.
'이제 쇠뇌부터 개조하자.'
쇠뇌를 개조해야 마비 탄을 사용할 테고, 그래야 지하 동굴에 가 굳어버린 불꽃을 수집해 화염 탄을 제작 가능할 테니.
우선 순위가 결정 난 이후 그에게 망설임이란 단어는 없었다.
하지만 혼자서는 한계가 분명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동료.
세영은 북쪽 숲에서 사냥 중이라던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