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7화 〉37화. 거목 (37/122)



〈 37화 〉37화. 거목

"말도 안되요. 정말."
"혹시 형은 행운을 부르는 사나이 뭐, 그런 건가요?"
"오빠는 정말 퀘스트를 부르는 남자 같아요."

그들의 호들갑에 세영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글쎄... 그냥 행운이 높아서 그런 걸지도."
"아, 그래요? 행운이랑 퀘스트가 등장 하는  관련이 있었나?"


없었다.


파티원의 의견을 경청하고, 결국은 퀘스트를 수락하기로 결정했다.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고.
퀘스트에 시작에 필요한 희귀 버섯도 10개 이상 채집해 뒀으니, 모두가 먹을 양은 충분했다.


그래도 일단은 이세영 혼자만 먼저 사용하기로 했는데, 난해한 퀘스트 때문에 희귀한 버섯을 소모하기 아까웠기 때문이다.

"그럼, 먹어볼게."


기대의 눈빛으로 올려다보는 파티원들 때문에, 먹으면서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버섯을 삼켰다. 아무런 맛도 느낄 수 없었다.
설마 맛보려고 먹었겠나.
받을 것만 제대로 주면 상관은 없었다.

[뱀의 눈 스킬의 레벨이 대폭 상승합니다.]

[카스나의 눈 스킬의 레벨이 대폭 상승합니다.]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신규 퀘스트!!]


[*페어리를 구하라 : 당신은 요정의 날개 가루에서부터 탄생한 버섯을 먹었습니다. 요정의 날개 가루는 작은 요정, 페어리의 것이었습니다. 얼른 위기에 빠진 페어리를 찾아 구해내야 합니다.]


- 주변에서 당신이 먹은 것과 같은 버섯을 찾는다면, 좀 더 수월하게 페어리를 발견할 수 있을것입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서두르세요.


-분류 : 구출
-난이도 :(요정관련 스킬 보유자 한정)
-제한시간 : 1일
-보상 : ??

"보상이 뭔지는 안 알려주네."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이미 페어리와는 친분이 있었고, 보상을 알려주지 않는것이, 왠지 모를 묘한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다.

"이제 저희도 먹어 볼까요?"
"그래. 파티퀘스트는아니지만, 모두 함께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파티 퀘스트가 아니니까 난이도 역시 낮을 테고."

세영의 말이 끝나고, 파티원 모두가 방금 채집한 야생 버섯을 입에 털어 넣었다.
다들 표정이 오묘했다.
맛은 둘째치고 씹는 질감이 그닥 맘에 들지 않는듯이.

"시작부터 난이도 E등급 이네요."
"뭐가 걱정이야. 이제 전직도 했고, 장비도 갖췄고, 레벨도 높아졌는데. 언제까지 F등급 의뢰만  수도 없잖아?"
"누가 뭐래?"


티격태격 대는 노랑나비와 레드문.


장난이겠거니 무시하고서둘러 퀘스트를 진행하기로 했다.


버섯의 버프 효과로 증가한 뱀의 눈 스킬은 엄청난 효과를 보였다.
무려 100미터 까지 스킬의 유효 범위가 증가한 것.

"우와앙. 부러워요, 오빠. 낮인 데다가 동굴도 아니어서 카스나의  스킬은 아무런 효과도 없는데."
"그럼 지금 당장 동굴로 들어가지 그래? 꺅- 무서워요. 오빠아~"


빠악.


레드문의 짓궂은 장난에 몹시 화가  노랑나비는 그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아! 아프다고 멍청아! 아우 씨."


레드문은 꿀밤을 맞은 뒤통수를 빠르게 문질렀다.


가상 현실 임에도 다소의 고통은 전해져 온다.
감도를 개인이 설정할  있긴 하다만.
최소한의 현실감을 위해 0으로 맞추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저기 또 보인다."


요정의 날개 가루 버섯을 탐색했다.
퀘스트답게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스킬 범위 내에 꼭 한 군데는 버섯 위치가 표시됐다.

"맛은 없었지만 먹을 수는있었으니까, 독버섯은 아니겠죠?"
"넌 멍청하게 그런 당연한 걸 묻냐."


빡!


"아프다고! 아오..."

세영은 그들을 보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렇게 평소 행동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게 자신을 진정한 동료로 맞이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음. 설명에는 연금술 재료라고 쓰여 있으니까 어딘가 쓰이긴 하겠지. 하지만 마비 탄처럼 공격용으로 쓰지는 못할 거야."
"근데 요정 스킬은 저희가 배운거 말고 다른 것도 있는 걸까요? 만약 공격용 스킬을 가지고 버섯을 먹어도, 지금 처럼 순간적으로 레벨이 폭증 할까요? 그럼 웬만한 보스 몬스터  쉽게 잡을 수 있는거 아니에요?"

한 번에 질문이 몇개냐.

생각할 것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설명을 자세히 보면 이 버섯은 채집한 후, 짧은 시간 안에 먹어야만 효과가 있다더라고."
"아, 그런 내용도 있구나. 그럼 혹시 버프 물약의 재료는 아닐까요? 물약으로 만들면시간 제한 패널티가 사라지는 방식!"
"흠... 요정이 죽거나 위급할 때만 만들어지는 거라니까, 아무래도 수급이 불안정 하겠지. 우리는  좋게 퀘스트를 얻었고, 그 덕분에 이렇게 계속 버섯을 찾을  있지만, 평소라면 그러지 못할거야. 그리고 중요한  정확한 레시피 없이는 만들 방법이 없다는 거지. 무턱대고 실험을 반복해서 신규 레시피를 찾아내기에는 버섯 양이 턱없이 부족할 테니까."


세영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파티원들.


"연금술은 엄청 복잡하네요."
"뭐, 딱히 그렇지도 않아. 일단 레시피만 있으면 공장처럼 대량 생산도 가능하니까. 처음 레시피를 얻는게 어려울 뿐이야."
"아...대량생산... 근데 정말 다들 그래요? 형만 그런거 아니고?"


다른 파티원들이 거들었다.

"맞아요. 다들 그랬으면 포션값이 이렇게 비쌀리가 없잖아요. 형이 특별한 걸거에요."
"맞아요. 오빠. 우리 반에 약제사 한다고 해서 돈도  벌고, 학교 전체에 유명한 애가 있는데요. 걔한테 물어보니까 형에 비하면 하루에 치료약을 10분에 1도 못 만들더라고요. 물론 아직 연금술사는 아니었지만, 형 전직 전하고 비교해도 그랬어요."


반복되는 칭찬에 간질간질한 기분이 올라왔다.

'얘들이 갑자기 왜 이러지?'


의문이 들었다.
마치 비행기를 타는  기분이 들떴다.

"걔는 대륙에서시작해서, 섬에서 시작한 우리랑 직접 만난 적은 없는데, 그 애를 중심으로 학교에선 길드도 만들어질 정도에요. 그만큼치료약이 중요하니까요. 걔도 연금술사 전직 퀘스트 받았다던데, 반 애들이 서로 도와주겠다고 난리일 정도에요."

파티원들을 조금 진정시킬 필요가 있어 보였다.

"그야, 나는 전업으로 하는 거니까. 학교 다니면서 했다면, 나도 이 정도로 열심히 못했을 거야. 같이 도와주는 형도 있고."
"에이... 저희 요즘에학교에서 수업 네 시간 밖에 안 하는데 얼마나 차이난다고요. 대학 갈 애들 빼고는 종일 겜하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너희는 대학 안 가려고?"
"당연하죠. 스킬북팔아서  번 거 보시더니, 부모님도 가지 말고 프클에서 돈이나 벌라네요.  덕분에 이렇게 게임할 시간이 늘어서 저는 좋아요."

다행히 화제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에서 대학 이야기로 바뀐 것 같아, 조금 안심한 세영.
그러나 그건 그의 착각이었다.


"그래서 형이 대단해 보이는 거예요. 저희랑  한  차이인데, 수입은 엄청나시잖아요? 진짜 천재 이신거 같아요."
"그러니까."


또 시작이었다.

"저기... 너희들 나한테 갑자기 왜그러는 거니?"

쑥쓰러움에 몸둘바를 몰랐다.

"그... 형은 길드 안 만드세요?"
"길드? 무슨 길드?"
"그냥 길드요. 왜 길드를 만들면 이런 저런 이득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길드 퀘스트 같은 것도 있고, 왠만한 파밍 회사들도 다 길드 만들잖아요. 편이 돈이  잘벌리니까 그런거 아니겠어요?"


그말을 듣던 세영은 생각에 잠겼다.
돈이  잘 벌린다면,  만들 이유가 없었다.

노랑나비가 나섰다.

"멍청아! 오빠 부담스러워하시잖아."
"뭐래. 자기도 거들었으면서."
"난 너처럼 대놓고 말하진 않았어!"

이들의 언성이 높아지는 바람에, 세영은 금새 정신을 차렸다.

"싸우지들 마. 괜찮으니까. 그리고 길드는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걸 내가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고. 일단 같이 하는 형에게 물어는 볼게."
"네. 만약 만드시면 저희도  좀 넣어주세요.형."
"저... 저도요 오빠."
"그래."

만약 자신의 길드가생긴다면 아이들을 먼저넣는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상대가 거부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붙겠지만, 오히려 원하고들 있으니 뭐가 문제겠는가.

세영은 파티원들에게 따스한 미소를 보였다.



*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버섯을 찾아간 곳마다 나무들이베어져 있었다.

"왜, 버섯이 난 나무들은 하나같이 죄다 잘려있을까요?"
"글쎄. 내가 찾는 트리얀이라는 나무꾼의 소행일 거라 생각하는데. 왜 이런 짓을 하는 것인지는..."

그루터기 주변에는 베어져 쓰러진 거대한 나무의 잔해 역시 존재했다.
조금 특이한 점은 죄다 가지가 잘리고, 토막 나 있었다는 점이다.


일부는 그 나무가 쓰러질 때, 함께 부러져 버린 주변 나무들의 가지였다

'뭘 만들려고 이랬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팔지도 않을 나무를자르고, 그대로 내버려 둔 채 가버린 것일까?


"나무가 썩지도않은 걸 보면, 얼마 지나지 않은 게 분명해요."
"형이 필요하다는  고급 목재 같은 걸 얻으려고 이나무 저 나무 자르는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설명이 되질 않았다.


여긴 고블린 세력의 중심지는 아니었지만, 다수의 고블린이나 가끔가다 정예 고블린도 나온다. 이런 위험한 숲 안을 대체 무슨 목적을 가지고 혼자 배회하겠는가.


"아니면, 그 사람도 페어리를 찾고 있는 게 아닐까요?"
"에이, 설마. 아무리 가상현실 이라지만 NPC가 퀘스트를 진행한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데?"
"퀘스트가 아니라, 그냥 스토리 진행상 그러고 있는 걸 수도 있잖아."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일단 만나보는 수 밖에.
어차피 그 전에는 전부 상상일 뿐이다.
만나지 않으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다.


"버섯이 있는 나무만 잘려있으니까, 분명 퀘스트랑 관련이 있기는  거야."
"설마 악당은 아니겠죠? 나무꾼이 죽이려고 하는걸, 페어리가 열심히 도망치고 있는  수도 있잖아요. 불쌍해라."

레드문이 한숨을 내쉬었다.

"멍청아. 페어리는 날개가 있는데, 하늘을 날아서 도망치면 그만이지."
"너야말로 멍청이잖아! 그건 모르는거지. 지하 동굴의 페어리들 역시 날 수 있었지만, 결계 때문에 갖혀있었잖아!"


둘은 또 싸우기 시작했다.

"니들 사랑싸움하냐?"
"넌 시끄러!"
"죽고 싶냐?"


핑쿠햄스터가 내뱉은 한 마디에, 둘은 화를 내며 입을 다물었다.


세영은 둘의 모습을 보며 웃음이 나왔다.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서로진심이 아닌 장난치는 거라는 사실을 이제 알게 된 덕이다.


'그나저나 언제까지 숲을 뒤져야 하지.'

퀘스트를 수행하기 위해 내딛는 발걸음은 매우 느렸다.
쓰러져 있는 나무들이 워낙거대한 탓에, 앞길을 막아서는 나무들의 잔해의 양 역시 엄청났다.

이들의 이동에 방해가 되는 건 당연한 노릇이었다.



*

한창 떠들며 버섯을 찾아 이동하다 보니, 어느덧 밤이 찾아왔다.


레벨이 대폭 증가한 카스나의 눈 스킬이 빛을 발했다.
이를 적용 중인 파티원들에게 있어, 퀘스트 진행에 밤낮을 가릴 필요는 없었다.
다만 밤에는 몬스터가 강해지기 때문에 조금 퀘스트의 난이도가 증가했을 뿐이다.

"뭐지? 여긴 그루터기가 아니라 생나무 인데?"

거대한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주변의 나무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제껏 봐왔던 그루터기들 역시, 하나같이 두께가 보통이 아니었다.
 주변에 널브러진 통나무들 역시 그랬다.


하지만 달랐다.
전혀 다른 감상을 느꼈다.
잘리지 않고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나무는 그야말로 웅장하단 말이 어울렸다.

"굳이 버섯을 찾는 게 아니더라도, 이 나무를 찾으면 되는 거 아닌가?"


그 말대로 주변 나무들과의 비교 자체를 거부하는 크기였다.

물론 울창한 숲 안에서,  미터 가까이 떨어진 거목을 쉽사리 발견 가능한 건 아니겠지만.

"두께도 보통이 아니네."

나무의 둘레를 전부 감싸려면 성인 서너 명이 붙어야 할 정도로 두꺼웠다.
그러니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와- 정말 크다. 키가 몇 미터나 되는 걸까요?"
"형. 저기 버섯도 보이네요."
"이 정도면, 동화책 처럼 나무 안에다 집도 짖겠어요."

그말을 들은 세영이 앞장서 나무에 다가갔다.
버섯을 채집할 요량이었다.


그런데.



부웅-

쩌엉!

부웅-


쩌엉!

바로 앞에서 들려오는 엄청난 소음.


그건 마치 거대한 도끼를 휘둘러 나무를 찍을 때 나는 소리와 닮아있었다.

"뭐... 뭐야?"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거목에는 없었던 도끼 자국이 갑자기 늘어났고, 주변에는 그 어떤 사람도 보이질않았으니까.

"히잉... 뭐야. 귀신 싫어!"

노랑나비가 콧소리를 내며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들려오던 소리가 멈췄다.

"보이지 않는... 투명 몬스터?"

레드문의 긴장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판타지 게임이니까 충분히 설득력있는 의견이다.


그때.


"어어... 으윽. "


가장 앞에  세영의 몸이 갑자기 공중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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