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42화. 굳어버린 불꽃
'드디어 채집했다!'
세영은 무언의 만세를 불렀다.
그만큼 기뻤으니까.
처음은 10분 정도 시간이 걸렸지만, 그 뒤 부터는 간단하게 채집 가능했다.
'여긴그냥 보물의 산이나 마찬가지네.'
파르도 섬에서 시작한 플레이어 중, 지금 시점에 굳어버린 불꽃을 채집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사냥을 위해 고블린 지하 동굴에 입성한 파티 역시 소수일 정도니 당연한 이야기다.
물론 다른 섬이나 대륙의 플레이어들은 예외지만.
굳어버린 불꽃은 누구도 채집한 적 없는 만큼, 정말 어마어마한 양이 존재했다
세영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르는건 당연했다.
이곳은 굳어버린불꽃의 밭이나 다름 없었고, 인벤토리가 허락하는 한 전부 자신의 차지일 테니까.
'식물이 아니면 못 찾는구나.'
불꽃은 식물이 아닌 탓에, 뱀의 눈 스킬은 적어도 여기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그러나 문제 없었다.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서너 개의 채집 물이 발에 걸릴 정도로 양이 많았기 때문이다.
"키흑. 인간의 냄새..."
'이크...'
갑자기 두리번거리며 떠들어대는 자이언트 고블린 탓에 세영은 긴장했다.
놈도 정예 몬스터의 일종.
다행히 들키진 않았다.
미친 동굴이다.
이동 할 때마다, 몬스터가 끊임없이 존재했다.
고블린의 개체 수가 지나치게 늘어났다던 시장의 발언을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하아... 더워.'
운이 좋게도 고블린 정찰병은 아직 눈에 띄지 않았다.
그 덕분에들키는 일은 없었지만, 가끔 보이는 정예 고블린들 탓에 심장이 쫄깃쫄깃해졌다.
한껏 더 긴장한 채 채집을 진행해야만 했다.
아무리 들고 있는 무기가 좋아도, 보유한 치료약의 개수가 많아도, 이런 상황에 놈들에게 발견됐다간 죽을게 뻔했다.
다굴엔 장사 없는 법이니.
그만큼 몬스터의 분포가 촘촘했다.
*
'이정도면 만 개는 제작 가능하겠는걸.'
총 천개 가량의 굳어버린 불꽃을 채집했다.
시간도 몇 시간이나 흘렀다.
마족의 주머니 덕분에 공간은 아직 여유 있었지만, 세영은 다른 목적이 있었다.
파티원들의 복수.
미운 드라이어드와, 나무 괴물들을 절대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무모한 일은 아니었다.
분명 수단이 있었고, 세영은 그걸 알고 있었다.
'바로 제작할 수 있게 재료를 준비해 둬서 다행이야.'
그는 출발 전, 간이 연금술 세트를 마족 주머니에 넣어뒀었다.
화염의 정수 재료와 개조 탄의 재료인 빈 탄환 역시 준비해 왔다.
화염 탄의 제작은 화염의 정수를 만들어 빈 탄환에 집어넣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다.
소모품인 만큼 방법이 간단해 다행이었다.
난이도가 높은 굳어버린 불꽃의 채집은 이미 해결된 뒤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안전한 장소로 가자.'
세영은 몬스터가 거의 없는 장소까지 되돌아왔다.
그가 지면에서 추락했던 바로 그 장소다.
'마나수를 담아오길 잘했어'
그는 인벤토리에서 마나수가 든 항아리를 꺼냈다.
[화염의 정수 제작스킬을 사용합니다.]
[제작에 성공하셨습니다.]
제작을 시작했다.
그리고 반복했다.
만들고 만들고 또 만들었다.
그리고 얼마가 지났을까.
그의 인벤토리에는 수천 발의 화염 탄이 들어가 있었다.
일반 연금 기술 Lv. 9인 그에게는 매우 간단한 작업이었다.
'이 정도면 될까?'
대체 얼마나 시간을 보냈는지, 동굴 밖은 재차 어둠이 깔렸다.
세영은 추락할 때 뚫린 천장의 구멍을 통해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직이야. 밤에는 놈들이 더 강해지니까 해가 뜰 때까지 채집을 더 하고, 제작도 더 하자.'
세영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기로 했다.
밖에서 기다리는 트렌트가 한두 마리가 아니니까.
거기다 자신은 지금 혼자뿐이지 않은가.
투두둑.
'응?'
세영의 뒤에서 돌멩이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키흑, 크킄. 쥐새끼 같은 인간"
이어 비릿한 웃음소리와 함께, 고블린의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블린 대족장의 수하. 정찰 대장 '케르니'가 등장했습니다.]
[케르니가 스킬 '간파'를 발동했습니다.]
'이런... 방심했어.'
갑자기 들려오는 시스템 메시지.
무려, 30레벨이 넘는 네임드 몬스터가 나타났다.
[케르니가 스킬 '표적의 살'을 사용했습니다]
쒜에엑-
푹!
"으윽."
순간이었다.
세영이 태새를 갖추기도 전,놈이 쏘아낸 화살에 당했다.
[상태이상 표적 1단계에 빠지셨습니다.]
- 적의 투사체를 회피할 확률이 감소합니다.
- 은신의 발동이 불가합니다.
케르니는 네임드 몬스터이자, 보스 몬스터였지만, 정찰병다운 스킬을 사용했다.
애초에 세영이 발견된 이유도, 놈이 지하 동굴을 순회하며 이동했기 때문이다.
'어쩌지. 도망쳐야 하나? 은신 없이 동굴을 빠져나려 시도하는건 너무 위험한데.'
동굴의 출구위치도 모르고, 안다고 해도 이동하는 동안 수백 마리의 고블린에게 시선을 끌 것이다.
이미 시선이 끌린 상태에서는 은신 스킬을 사용하지 못한다.
거기에 표적 디버프 상태.
줄행랑은 오히려 죽음의 시간만 앞당기는 꼴이 아니겠는가.
주먹을 쥐고 각오를 다졌다.
"여기서 또 죽을 수는 없지."
그도 반격을 시작했다.
정찰 대장 케르니는 세영과 비슷한 쇠뇌를 착용중이었다.
겉보기에는 차이가 거의 없었으니, 최소한 희귀등급, 혹은 영웅등급 이상의 무기로 보였다.
[케르니의 화살에 공격 받았습니다.]
[케르니의 화살에 공격 받았습니다.]
[케르니의 화살에 크리티컬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고통과 함께 체력이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받는 데미지는 종전의 고블린 창병과 비슷했다.
한 발 맞을 때마다 10%의 체력이 깍여 나갔다.
문제는크리티컬 데미지.
가끔가다 들어오는 치명적인 공격은 체력을 무려 15%나 앗아갔다.
꿀꺽. 꿀꺽.
치료약을 쉼 없이 마셔야만 했다.
데미지도 데미지지만, 엄청난 연사속도.
'쇠뇌를 착용해서 그런가? 뭐 저리 빨라?'
세영은 좀 전 새로운 희귀 등급 방어구를 추가로 착용해 방어력이 증가했다.
그덕에 놈의 공격력이 높음에도, 고블린 창병 정도의 데미지만 받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말 말도 안되는 크리티컬 확률.
족장이 광역 공격에 특화되었다면,놈은 단일 대상에 대한 공격이 특화된 보스 몬스터였다.
'그래도 어떻게든 버틸만 해. 그때 체력을 투자해 둬서 다행이야.'
고블린 족장을 쓰러뜨린 후, 스텟을 일부 체력에 투자한 덕분에 그나마 견딜 수 있었다.
세영은이를 악물고 반격을 시작했다.
파르도 섬에서 파는 쇠뇌용 화살 중 가장 최고급 화살인 아기살.
거기에 영웅 등급의 쇠뇌도 가지고 있다.
치료약도 천개 이상 보유 중.
'승산이 있어!'
[무기의 효과로 인해 체력을 회복합니다.]
+2
+2
+2
.
.
.
[방어구 효과로 인해 체력을 회복합니다.]
+1
+1
+1
.
.
.
케르니는 가끔 공중 제비를 돌거나, 옆으로 굴러댔다.
그럴 때마다 몇 번씩, 세영의 공격이 빗나갔다.
하지만 케르니의 공격 역시 잠시 동안 멈췄다.
그 타이밍에 맞춰, 치료약을 먹고 체력을 가득 회복했다.
'이대로 버티기만 하면 돼!'
좁은 동굴.
어디로 가도 몬스터 천지.
퇴로가 없었지만, 그건 케르니 역시 마찬가지다.
공간이 비좁은 탓에, 제 아무리 구르고 뒤로점프를시도해도, 쇠뇌 사정거리 안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놈이 가끔 강력한 스킬을 사용해 온 것이다.
[케르니가 스킬 '연발 사격 LV. 3'을 사용합니다.]
메시지가 끝나자 마자, 놈의 화살 끝이 빛났다.
투투퉁-!
기존의 공격과 비교하면 수십 배 빠른 속도로 3발의 화살이 날아왔다.
순식간에 30%의 체력이 날아갔다.
[체력이 20% 이하로 감소하였습니다. 빠른 회복이 필요합니다.]
꿀꺽. 꿀꺽.
애꿏은 치료약의 개수만 줄어갔다.
그때부터 불안해졌다.
버틸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세영을 사로 잡았다.
연발 사격에 공격받았을 때, 크리티컬 데미지라도 입는다면?
꿀꺽.
그럼 결코 버틸 수 없으리라.
강도 높은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켰다.
어디 그뿐이랴.
놈이 체력이 30%이하로 떨어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벌써부터 걱정됐다.
다른 몬스터를 단 한 마리라도 불러들이면, 세영에게 승산은 없었다.
그만큼 버티기가 빠듯했다.
더 위력적인 스킬을 사용한다면?
광폭화를 통해 데미지나 공격속도, 혹은 크리티컬 확률이라도 증가하면?
그거야말로 끝이다.
자신은 죽고 말리라.
'단숨에... 순식간에 놈을 죽일 수만 있다면...'
세영은 고민했다.
머리를 쥐어 짜냈다.
'화염 탄만 사용할 수 있었어도... 아?'
사용하면 돼지 않는가.
강력한 무기.
영웅등급의무기에 사로잡혀, 한 가지 사실을 잊고 있었다.
아직 개조하기 전이라면, 기존에 쓰던걸 사용하면그만이라는 사실.
히부린의 개조 쇠뇌가 아직 그의 인벤토리 안에 존재한다는 걸 말이다.
추가 공격력도 별다른 옵션도 없었지만, 화염 탄을 사용할 수 있다.
화염 탄의 공격력은 지난 족장과의 대결에서 증명 돼지 않았던가.
그때 세영이 사용한 쇠뇌 역시, 히부린의 개조 쇠뇌였다.
하지만 문제가 한 가지 있었다.
'무기를 교체하는 동안, 놈의 공격을 버텨낼 수 있을까...'
영웅 쇠뇌의 회복 효과를 받지 않으면, 지금 세영의 체력을 유지하기란 무척 힘든 상황이다.
그만큼 놈의 공격속도는, 초반 지역의 몬스터 치고 매우 빨랐다.
역시 보스는보스답다 해야 할까.
'기회를 보자.'
놈이 큰 스킬을 사용할 때, 타이밍을 잡아야 한다.
인벤토리를 열어서 바닥에 쇠뇌와 화염 탄 하나를 꺼내놨다.
저 개조 된쇠뇌에 화염 탄을 장착하기만 하면, 그다음은 일사천리다.
무려 십 여분 간, 서로 화살을 주고받았다.
긴장감에 이마에 맺힌 식은 땀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끈질긴 인간... 키큭"
놈이 비웃더니 뒤로 멀찌감치 점프했다.
'지금이야!'
급하게 허리를 굽혔다.
[정찰 대장 케르니가 스킬 '광폭화'를 사용합니다.]
세영은 숨도 못쉬고 바닥의 쇠뇌를 들어 올렸다.
화염 탄을 장착하고, 치료약도 마셔야 했다.
꿀꺽. 꿀꺽.
'휴우. 아슬아슬 완료.'
그건 케르니도 마찬가지였다.
[케르니가 광폭화 했습니다. 케르니의 공격속도와 크리티컬 확률이 대폭 상승하...]
시스템 메시지를 들을 생각도 안 했다.
시간이 부족했다.
세영은 죽어라 화염 탄을 갈겨대기 시작했다.
지난날.
고블린 족장에게 쏴 댔던 화염 탄은 총 15발.
'스무발이면 충분해. 제발, 그때까지만 버티기만 하면...'
목이 바짝 타들어 갔다.
쇠뇌는 생각보다 가볍다.
지금 세영은 좀 전까지 사용 중이던 영웅 등급의 쇠뇌를 왼손으로 옮겨 쥐었다.
히부린의 개조 쇠뇌는 오른손잡이 답게 오른 손에 쥐었을 뿐이다.
화염 탄을 쏘며, 문득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왼손으로도 쏴지려나?'
그의 왼손 손가락에힘이 들어갔다.
마법사가 검을 휘두르고 활을 쏴재끼는 세상이다.
안 될건 또 뭐야?
세영은 양 손에 든 쇠뇌를 동시에 쏘기 시작했다.
[신규 스킬 '초급 쌍 쇠뇌 사용 기술'이 스킬 목록에 추가되었습니다.]
[스킬 : 초급 쌍 쇠뇌 사용 기술]
- 왼손을 이용해, 하나의 쇠뇌를 추가로 사용합니다. 주로 사용하는 손이 오른손으로 적용중입니다.
- 오른손사용 쇠뇌의 공격력이 20% 감소합니다. 숙련도에 따라 페널티가 감소합니다.
- 왼손 사용 쇠뇌의 공격력이 50% 감소합니다. 숙련도에 따라 페널티가 감소합니다.
- 왼손 사용 쇠뇌의 명중률이 70%감소합니다. 숙련도에 따라 페널티가 감소합니다.
'뭐야 이건?'
운이 좋았다.
오늘 벌써 몇 번의 행운에 도움받는지 모른다.
이런 숨겨진 스킬이 있었을 줄 꿈에도 몰랐다.
그래도 아슬아슬 했다.
정찰 대장 케르니가 드디어, 광폭화 상태로 공격을 시작했다.
세영은 화염 탄은 물론, 왼손의 쇠뇌를 사용해 아기살을 쏘기 시작했다.
무기 옵션으로 회복되는 체력 양은 아까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었다.
명중되는 화살의 개수가 절반으로 줄어든 탓이다.
믿을건 화염 탄 뿐.
양손을 사용중이니, 치료약도 못마신다.
순식간에 놈을 녹여버려야 한다.
펑! 펑! 펑!...
화르르.
펑!펑! 펑!...
화르르르르륵.
[케르니에게 적용 중인 '타오르는 화염' 디버프가 10단계를 돌파했습니다. 매 초 지속되는 데미지가 2배로 증가합니다.]
'그래. 제발 조금만 더.'
[체력이 20% 이하로 감소했습니다.]
[체력이 10% 이하로 감소했습니다.]
'조금만 버텨!'
[초급 쌍 쇠뇌 사용 기술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간절히 소망했다.
제발 놈이 먼저 쓰러지기를.
체력은 바닥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찔끔 회복되기를 반복했다.
놈은 광폭화를 사용했으니 체력이 바닥일 터.
앞으로 두세 발정도면 죽을 것이다.
이제 조금만 더.
'제발!!'
[체력이 부족합니다. 얼른 회복하지 않으면 사망의 위험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