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4화 〉44화. 장작 (44/122)



〈 44화 〉44화. 장작

너무 많은 아이템이 나온 덕분에 기분은 좋아졌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았다.


지금부터 동굴을 빠져나가야 한다.
숲이 보일 때쯤이면 아침이 밝아 올 것이다.


세영은 인벤토리 정리를 마치고, 동굴의 출구를 찾아 나섰다.
타리뮤의 날개 스킬을 사용해 몸을 숨기고, 전투를 최대한 피하며 이동할 작정이다.
더는 치료약을 낭비할 수 없었고, 아기살도 절반이상 소모한 탓이다.


도중에 갑작스레 고블린 정찰병과 맞닥뜨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신규 영웅 등급의 아이템으로 무장한 세영의 적수는 되지 못했다.


*

'숲의 허브가 이쪽에 많구나. 또 뱀의 눈 도움을 받았네.'


갑갑한 동굴을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동굴의 출구 근처에 당도하니, 레이더에 숲의 허브 위치가 표시되기 시작한 덕분이다.

'흐아아~암... 여긴 어디쯤이지?'


기지개를 켰다.
상쾌한 숲의 공기를 폐 깊숙이 들어 마시니 정신이 맑아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딱 맞춰 아침인 모양이네.'


울창한 나무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아침 햇살.
지하 동굴로 추락한 지 딱 6시간이 지났다.
게임  시간으로 정확히 하루가 지난 시간이다.

지도를 펼쳤다.
이곳은 지하로 추락했던 위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소였다.

'동굴 안에서 얼마나 헤맨거야...'

이 짧은 거리를 빠져나오기 위해, 지하 동굴 안에서는 한참을 허비해야 했다.
구불구불 방향을 알 없는 길은 물론, 수 많은 몬스터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야했다.


그래도 이렇게 빠져 나온게 어딘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누라라를 향한 이세영의 제대로 된 반격은.

'기다려라 누라라.'

나무 거인 트렌트와 나무 정령 드라이어드를 찾아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

화르륵~


거목을 베어낼 도끼가 없었다.
그래서 화염 탄을 발사했다.
생나무 임에도, 마른 장작처럼 잘 타올랐다.
화염의 정수가 휘발유 역할이라도 하는가 싶을 정도였다.

'왜 안오지?'

거목이 다 타버릴때까지 누라라는 나타나지 않았다.


 도끼로만 찍어야 나타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럴리는 없었다.

'응? 이 소리는...'

들려오는 소음에 귀를 기울였다.
꽤나먼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하지만 익숙한 소리였다.

'이건 분명 트렌트야.'

세영은 확신했다.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레벨업을 한 뒤, 행운 스텟을 150까지 올리고, 나머지 전부를 체력에만 투자했다.
덕분에 최대 HP도 증가했고, 더불어 스테미나도 다소 늘어났다.
더 오래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엄청난 속도로 숲을 가로질렀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린  아니었다.


"하아, 하아."

겨우 도착.


트렌트의 모습이 보인 순간!
고민이나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여유를  필요도, 시간을  이유도 없었으니까.

쇠뇌가 화염 탄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소중한 친구이자 동료인아이들을 죽게 만든 죄.
절대 용서할 수가 없었다.

철컥.

쉬익-!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화염 탄은, 거대한 트렌트의 신체에 정확히 명중했다.
표적이 저렇게 거대한 상황에, 조금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서 빗나갈리는 없었다.

퍼엉-!


화르르-

[속성 상성에 의해 화염 탄의 데미지가 대폭 증가합니다.]

[타오르는 불꽃 효과의 지속시간이 100배로 증가합니다.]

'좋았어!'


그가 기대했던 게 바로 이거다.


 앞에 있어, 나무란 연료일 뿐이다.
그저 장작에 불과하다.
하물며 외형부터가 빠짝 말라 수분기가 느껴지지 않는 나무 거인 트렌트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의 상대.

'일단, 한 마리씩 테스트!'


가장 먼저 다가온네 마리의 트렌트 들에게, 화염 탄을 한 발씩만 쐈다.
단 한 발만 명중해도 끝없이 타오르는 디버프에 걸릴테니,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불타 쓰러지지 않겠는가.

고가의 탄환을 아낄 수 있으니 1석 2조인 셈.
하지만 그리 간단하진 않았다.


"으어어어어, 뜨겁... 다."

화르르륵.

놈들이 불타며 발버둥 치는 탓에, 괜히 주변 나무에 불이 붙었다.
숲을 싹다 태울 작정도 아니었으니 세영에겐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 화염 탄 아까운데.'

어쩔수 없다.
놈들을 처리한 후에 동굴에 다시가서 채집하면 그만이니까, 그냥 아낌없이 사용하자.

펑! 펑! 펑! 펑!


화염 폭발에, 불타는 트렌트의 거체가 잿더미로 변해갔다.


"하아, 하아. 정말 끝이 없네."


아무리 방어력이 상승했어도, 놈들의 공격은 단 한 번이라도 맞아줄 만한 종류의 것이 아니다.
스쳐도 죽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위력적.
하여, 절대 근접전이 되지 않게끔 계속 달려야 했다.

쇠뇌를 원거리에서 쏠  있다는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쏘고, 쏘고, 달리고, 쏘고, 쏘고, 달리고.
거리를 유지하려면 죽어라 도망치면서 공격해야 했다.
숨이 차 헐떡 거렸다.


[트렌트 '나르갈'을 처치하셨습니다.]

[트렌트 '카일룬'을 처치하셨습니다.]
.
.
.

[레벨이 상승하셨습니다.]

'벌써?'

트렌트는 그의 생각보다 매우 빠르게 쓰러져 버렸다.

걸린 시간은 5분 남짓.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마리를 한꺼번에 잡은걸 생각하면 엄청난 속도였다.

'할만 한데?'


 마리를 처치하고 나서야, 하나의 레벨이 올랐다.
놈들이 네임드 몬스터긴 하나, 트렌트의 레벨과 이세영의 레벨 차를 고려하면 그럴 만 했다.
25레벨의 몬스터였으니까.

이세영은 지금 막, 하나의 레벨이  올라 37레벨이 됐다.

드롭 아이템으로 희귀 등급의 것을 몇 개 얻었지만, 모두 제작 재료용 아이템뿐이었다.
나무라 그런가?
장비류 아이템은 주지 않는 모양이다.


'템 정리는 나중에 하자.'


설명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대충 고대 마족의 주머니에 주워 담았다.
잡아야 할 트렌트는 아직도 수십 마리가 넘으니까.
이런 데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다행히 숲에 불이 붙진 않았다.
안심하고 전투를 벌여도 될 것 같았다.

'자, 다음!'


귀를 기울여 트렌트의 소리를 찾았다.


놈들을 찾아, 서너 마리씩 각개 격파 하는 것이계획이었다.




***


트리얀은 지쳐 있었다.
잠도 제대로  자고 누라라의 거목에 도끼질만 하던 나날들.


거기에 하루 전만 해도 누라라에게 사로잡혀 생사의 기로에 서 있지 않았나.

그의 상처는 알파가 전해준 치료약으로 회복됐지만, 노쇄한 정신력은 구원할 길이 없었다.


"트리얀...?"


타리뮤는그런 트리얀을 안쓰럽게 바라봤다.

얼른 숲 밖으로 빠져나가야 했는데, 트리얀의 발걸음이 멈춰 선 탓이다.

"타리뮤. 이제 혼자 떠나거라. 네가 사는 아스트랄계로 돌아가도 좋겠지."
"트리얀. 왜 갑자기 그런 소리를 하는거야? 내가 너무 오래 잠들어 있었기 때문에 화난거야?"


울상을 짖는 타리뮤를 트리얀은 온화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난 이제 오래 살지 못한단다. 이 숲에 있다가는... 아니,이 섬에 있다간 언제 또 드라이어드에게 사로잡힐지 모르지 않니. 그러니 안전한 곳을 향해 떠나거라 타리뮤."


타리뮤는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시러.  고향도 좋지만, 거긴  딸기가 없는걸. 다른곳도 마찬가지야.  딸기가 있는건 오직  섬 뿐이야!"


트리얀과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애둘러 돌려 말했지만, 그것이 본심이었다.

트리얀은 그런 페어리에게 허리에 걸려 있던 주머니에서 작은 씨앗하나를 꺼내 건넸다.


"너를 찾으려, 내가 나무만 벤 것은 아니란다. 이걸 받으련."


작은 씨앗.
페어리 손에 올라가니 제법 크게 느껴졌다.


"이게 뭐야. 트리얀?"
"네가 좋아하는  딸기의 씨앗이란다. 너희 고향에 돌아가서 키워 보렴."


타리뮤는 씨앗을 손에  채,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싫어! 싫다구. 그런건 페어리와 어울리지 않아. 페어리는 식물 가꾸기를 좋아하는 엘프가 아닌걸? 나는 이 섬을 날아다니며, 잘 익은 뱀 딸기를 찾아 따먹는게 좋아! 그러니 안갈꺼야!"

트리얀은 커다란 도끼를 내려두고, 그루터기에 걸터앉았다.

과거... 자신이 베어냈을, 누라라의 거목 그루터기였다.

"고집쟁이인 건 여전하구나."
"흥."


타리뮤는트리얀의 주위를 빙빙 날아다니다가 어깨에 걸터앉았다.


"인간의 수명은 너무 짧아."
"그러니 인간은 열심히 살아가는 거란다."
"흥, 거짓말. 인간 중에도 얼마든지 게으른 사람이 많던걸?"


타리뮤와 이런 대화를 주고받을  있다는 사실에 트리얀은 행복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행복감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싶었다.

"트리얀? 트리얀?"


트리얀은 대답이 없었다.

"트리얀?? 어디 아픈거야?"

그런건 아니었다.
그는 잠이 들었을 뿐이다.

*

오직 나무를 베는 것에 온 시간을 들여왔다.

찍고, 찍고, 또 찍었다.
베고, 베고 또 베어냈다.

도끼의 손잡이는 부러지길 반복했고, 날은 또 얼마나 상했던가.


위대한 나무꾼? 웃기는 소리다.

오직 찾기 위해서였다.

무엇을?

너를...


오직 너를 되찾기 위해서.

쉬지 않고, 잠도자지 않으며 베어 왔다.


마지막으로 잠들었던게 언제였던가.
이제는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하지만 어떠한가.

목표를 이루지 않았는가.

너를... 타리뮤 너를 다시 만나지 않았는가.


네가 곁에 있어 무척 행복 하구나. 타리뮤.

*


트리얀은 그루터기에 누워 깊은 잠에 빠졌다.
그의 거체가 누워도 공간이 남을 만큼, 그루터기는 거대했다.


 끝을 향해오는 나무 특유의 향기는 매우 기분이 좋았다.
그 향기가 비록그 악독한 나무 정령의 그것과 닮았다고는 해도 말이다.

그는 천상 나무꾼 이었으니까.


타리뮤는 긴 시간을 잠들었던 탓에, 졸립지는 않았다.


그저 잠이든 트리얀의 주변을 날아다니다가, 배에 앉았다가, 얼굴 위에 올라 탓다가, 주름을 펴보려 애써보기도 했다.

"흠, 음, 흠~"

콧노래를 불렀다.
 노랫소리를들었는지, 잠든 트리얀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타리뮤은 소리없이 깔깔거렸다.
자신의 목소리가 그의 단잠을 더욱 달게 만들어 주었으리라.
그리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고, 웃음이 나왔다.


쿵. 쿵.

달콤한 시간은 왜 이리 순간인건지.
고막을 울리는 기분 나쁜 소음이 들려왔다.

트리얀이 잠든 탓에, 은신 효과가 사라진게 문제였다.


거기에 하필 누워있는 장소가, 누라라의 거목이 잘린 그루터기 위였으니...

놈들이 찾아오리란건 불 보듯 뻔했는데, 트리얀과 타리뮤만 모르고 있었다.


"일어나! 트리얀! 일어나야 해!"


타리뮤가 열심히 수염을 잡아당겼지만, 얼마나깊이 잠들었는지, 그는 일어날 생각을 안했다.


"우후훗. 이런 곳에 잠들어 있었는가."
"나쁜 나무 정령! 또 우리를 못살게 굴 셈이야?"
"건방진... 페어리여.숲의 맹약에 의해 내 너를 직접 죽이진 못하나, 그 작은 몸뚱이를 꽁꽁 묶어,  지네의 먹이로 주지 못할 것도 없느니라."

타리뮤는 기겁하며 트리얀의 머리카락 속으로 파고들었다.

"트리얀.  아직도 자는 거야. 빨리 일어나래도!"

타리뮤의 애원에도 트리얀은 미동조차 없었다.


"소용없느니라. 후후후."


갑자기 그가 잠들어 있던 그루터기가 울렁이기 시작했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처럼.


"잘했구나. 후후."

그루터기에서 나타난 건, 타리뮤를 붙잡고 있던 나무뿌리 정령. 우디와 비슷한생김새를 한 우티였다.

나무뿌리 정령의 힘으로, 트리얀을 깊은 잠에 빠지게 했다.


누라라가 도착하기 전.
먼저 도착한 우티가 그루터기에 숨어, 몰래 타리얀에게 수면 독을 뿌렸다.


"나쁜 나무 정령. 트리얀을 어쩔 셈이야!"


누라라는 대답 없이 손을 뻗었다.
손끝에서 뻗어 나온 줄기들이, 순식간에타리뮤를 감싸려 시도했다.

하지만 하늘을 나는 작은 페어리를, 그녀의 줄기로 잡기란불가능에 가까웠다.

"트리얀이 어떻게 되더라도좋은 것이냐. 그렇다면 날아가도 좋겠구나."


타리뮤는 망설이지 않았다.
조용히 트리얀의 위로 내려앉았다.

"못된 나무 정령!"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트리얀의  위에 벌러덩 누웠다.
자신도 재우든지 말든지 맘대로 하라는 신호였다.

"어리석구나. 고작 인간때문에."

눈을 가늘게 뜬 누라라.
들어 내진 않았지만 내심 기분이 상했다.
질투의 마녀 답다 해야 할까.

주위를 둘러싼 트렌트 들에게 명령했다.
명령은 잠든 트리얀의 신체를 들고 따라오라는 거였다.

"우티. 날 벌레 같이 시끄러운 페어리를 얼른 재워버리거라."

드라이어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수하들만 부렸다.
숲의 여왕이라도 되는 것 처럼.

"휴우."


짜증이 난 타리뮤.
트리얀의 배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거목이 베어진 자리니 만큼, 숲의 한 복판 임에도, 나뭇가지들의 방해 없이 새파란 하늘이 눈에 확 들어왔다.

저 아름다운 하늘을 보고 있는데, 이렇게 짜증이 나다니.
나무 정령이 정말 싫었다.


자신은 페어리.
이런 말을 입에 담는건 해선 안돼는 일이지만 너무 화가나, 그만 밷어버렸다.

"나쁜 나무 정령들.  다 불타 버렸으면 좋겠네!"

그때였다. 멀리서 폭음이 들려온건.

퍼엉! 퍼엉! 퍼엉!

철컥.

"여기들 모여 있었네."


화르르.

불타는 트렌트.
번지는 연기와 화염 사이로, 마스크를 착용한 한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거목을 불태워도 도무지 나타날 생각을 안하길래, 벌써 다른 사람들에게 사냥 당하기라도    알았네."


이세영이 트렌트들을 불태우며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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