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45화. 장작
"여기들 모여 있었네."
자신감에 차 있었다.
당연했다. 이미 십 수 마리의 트렌트를 사냥하고 도착했으니.
"그대. 설마 살아있었는가?"
"그래. 덕분에. 근데, 트리얀이 왜 거기 있는 거지?"
세영은 거목의 그루터기 위에 누워있는 트리얀을 발견했다.
"어리석음의 말로가..."
퍼엉-! 펑!
화르르.
"감히 무슨 짓이냐!"
세영은 누라라의 말 도중 다짜고짜, 그루터기 주변의 트렌트를 향해 화염 탄을 발사했다.
"미안. 너의 이야기를 들어 주기에는 시간이 아깝거든."
세영의 말이 끝나자마자, 분노에 찬 누라라가 스킬을발동했다.
[누라라가 스킬 '줄기의 속박'을 사용합니다.]
"같은 스킬에 두 번 당할 순 없지."
퍼엉-!
"끄아아악-!"
뻗어오는 줄기에 화염 탄이 적중했다.
불에 타는 감각을 처음 경험한 누라라는 귀가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질렀다.
"저... 저 인간을 죽여라!!"
어떻게든 불타던 줄기의 불을 끈 누라라는 주변의 트렌트 들에게 명령했다.
숲에 존재하는 트렌트는 아직도 많았지만, 지금 이 장소에있는 건 10마리 정도였다.
"그렇게는 안 되지. 이미 실험하고 왔다고."
세영은 스킬을 발동했다.
[연발 사격을 사용합니다.]
처음으로 마나를 소모하는 스킬을 사용하게 된 세영은, 소모량이나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 이 장소에 도착하기 전 실험을 마쳤다.
그 덕분에 연발 사격의 레벨도 3까지 상승해 있었다.
타다당-!
총이라도 쏘는듯 요란한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세 발의 화염 탄이 발사됐다.
퍼퍼퍼어-엉!
"으으어어어- 뜨... 거... 우..."
타다당-!
퍼퍼퍼어-엉!
쿠웅-.
[트렌트 '레토니'를 처치하셨습니다.]
연발 사격의 쿨 타임은 1초.
연속으로 사용했으니 6발의 화염 탄이 트렌트에게 적중했다.
나무 거인은 순식간에 재로 변해버렸다.
"잘가-!"
그 다음부터는 완전히 그의 페이스였다.
타다당-!
퍼퍼퍼어-엉!
"으어어어- 불... 이..."
내리 뻗는 주먹의 속도는 빨랐지만, 말은 매우 느린 트렌트들이었다.
아주 잘 마른 장작들.
누구든 그게 트렌트라면, 한마리당 2초의 시간만 주워지면 쓰러뜨리는게 가능했다.
"하아, 하아. 이쪽이라고!"
땀을 뻘뻘흘리며 뛰어다녔다.
꿀꺽.
꿀꺽.
"연발 사격!!"
퍼퍼펑-!
그가 다 수의 트렌트가 밀집된 곳으로 자신있게 뛰어든 이유는, 바로 마나 포션의 존재 덕분이다.
그의 풀 마나로 사용가능한 연발 사격의 횟수는 고작 6회.
하지만 마나 포션이 있는 한, 무한에가까웠다.
"크어어... 누... 라라... 님."
이윽고 마지막 트렌트가 불타며 쓰러졌다.
화르르-
화르르-
한번에 너무 많은 트렌트의 시체들이 불타는 바람에, 주변의 나무들까지 불이 옮겨 붙었다.
'빨리 정리하고, 불 꺼야겠네.'
쉬이이이익-!
퍼억!
"큭."
방심했다.
드라이어드의 줄기가 그의 옆구리를 때려왔다.
강한 통증이 전신에 퍼져나갔다.
얼마나 강한 공격이었는지, 한참을 뒤로 내동댕이쳐졌다.
"어리석은 인간이 감히 정령인 나 누라라를..."
퍼엉-!
"끄아아악-!"
얼굴을 부여잡고서 이리저리 난동을 부리는 누라라.
화염 탄이 적중했다.
자세를 바로잡으며 즉시 공격을 시작한 덕이다.
두 번의 방심은 없는 법.
화염 탄은 누라라의 얼굴에 직격했다.
폭발과 함께 그녀의 머리가 불타올랐다.
꿀꺽, 꿀꺽.
치료약을 바로챙겨 먹었다.
마나 포션 역시 마찬가지다.
개조되지 않은 쇠뇌는 인벤에 집어넣어 뒀다.
어차피 누라라를 상대론 별 데미지를 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응을 보면, 누라라도 불에 약한 듯 해.'
곧바로 연발 사격을 사용했다.
회복할 틈 따위는 줄 생각이 없었다.
이미 가득 마나와 체력을 회복한 뒤였으니, 6번을 연속으로 사용할 작정이었다.
퍼퍼펑-!
퍼퍼펑-!
.
.
.
얼굴이 불타오르던 누라라는 비명을 내지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모든 공격을 온전히 받아내야만 했다.
제법 오래 버티긴 했지만, 머지 않았다.
여전히 그녀의 온 몸이 불타오르고 있으니까.
[마나가 부족합니다.]
꿀꺽. 꿀꺽.
"아주 그냥, 돈을 처바르고 사냥을 하네."
세영은 못내 그게 아쉬웠지만, 그래도 비싼 아이템을 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무려 트렌트를 수하로 쓰는 보스 몬스터.
지하 동굴에서 잡았던 고블린 정찰대장보다, 훨씬 많은걸 가져다 주지 않을까?
[누라라가 스킬 '생기 흡수'를 발동합니다.]
"그렇게는 안돼지!"
퍼퍼펑-!
화염이 폭발한 곳은, 누라라가 흡수하려던 거목이었다.
나무는 순식간에 불타오르기 시작했고, 그 열기때문에 누라라는 뻗던 손을 급히 회수했다.
종전의 파티원들과 했던 전투 경험을 통해, 생기 흡수 스킬에 대해 알고 있지 않았다면,지금 누라라의 체력은 가득 회복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화염 탄만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다면, 이렇게 간단한 걸.'
세영은 괜히 저때문에 동료들이 죽게 된 것이 아닌가 싶어 마음이 무거웠다.
온전히 무기 개조를 하기위한 자신을 도와주려 함께 한 거였으니.
"끄아아악- 그만 두거라. 그만 두지 못할까아아아-"
트렌트 소환도 불가.
생기 흡수도 불가한 누라라는, 그저 시끄러울 뿐인 좋은 과녁에 불과했다.
몸을 불태우며 이리저리 발광을 해댈 뿐이었다.
눈부시게 아름답고 야릇하던 그녀의 육체는 이젠 불타버린 식물줄기에 불과했다.
"끄아아악- 안돼... 나는..."
대단한건 체력 뿐인건지, 상성 최악의 화염 공격 임에도 5분 이상을 버텨냈다.
"대체, 너 한 마리 때문에,동료들도잃고, 비싼 포션이랑 화염 탄을 몇 개나쓰는 거야."
이세영은, 마지막 스킬을 날렸다.
퍼퍼펑-!
"끄아아아아아-"
털썩-.
날카롭게 고막을 찌르던 비명이 멎고, 드라이어드 누라라는쓰러졌다.
남아있는 신체가 연소되며 매캐한 연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전투가 끝났다.
[나무 정령. 드라이어드 '누라라'를처치하셨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3번의 레벨업.
트렌트로 얻은 경험치를 포함해 레벨이 42까지상승했다.
레벨 랭킹을 비교하자면, 파르도 섬 플레이어 중에서 무려 상위 100위안에 드는 레벨이었다.
다른 플레이어들에 비해, 플레이 시간이 절반 이하인 그 치고는, 엄청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당신은 위대한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칭호가 주어집니다.]
[칭호 : 방화범]
- 당신은 나무들이 가장 싫어하는 불을 사용해, 나무의 정령들을 다수 처치하셨습니다. 나무의 정령들은 당신에게 알 수 없는 적대감을 가질 것입니다.
- 모든 스텟 +2, 화염 저항 +5
[칭호: 나무꾼들의 은인]
- 당신은 나무꾼들의 고민거리 하나를완전히 해결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나무꾼들은 당신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낄 것입니다.
- 체력 +5, 힘 +5
무려 두개의 칭호를 얻었다.
총 획득하게 된 스텟 포인트만 해도 20이 넘는다.
[전투를 지켜본 인물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명성 획득이 불가능합니다.]
"이번에도... 명성이 늘어야 땅을 개간할 사람들을 모집할 수 있는데..."
[명성을 획득 하기 위해서는 트리얀과 함께 나무꾼들을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뭐?"
그래도 아직보상을 받을 기회는 있는 모양이다.
아직도 저기서 자고있는 저 할배의 말빨이 중요해 보였다.
화르르- 타닥, 탁.
화르르륵. 타다닥.
주변 나무들이 불타며, 불똥을 튀기고 있었다.
점점 숲으로 불씨가 번져가는게 보였다.
그나마 다행인건 바람이 거의 불지 않는 다는 점.
'이걸 어쩌지.'
세영은 급히 드롭된 아이템들을 회수했다.
고대의 마족 주머니를 꺼네, 그 안에 마구 집어넣은 것이다.
주변의 숲이 불타고 있었기에 아이템의 확인은 나중으로 미뤘다.
너무 많은 양의 트렌트들을 잡은 탓에, 확인해야 할 아이템 역시 엄청난수였고, 불타는 숲한가운데서 느긋하게 확인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빨리 불 안끄면, 산불이라도 일어나겠네.'
마음이 급해졌다.
주변이 죄다 불타고 있는데도, 태평하게 자고있는 트리얀에게 향했다.
그때 갑자기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마워 인간."
"타리뮤?"
"응. 맞아."
귀여운 페어리의 실루엣이 세영의 눈에 은은하게 비춰지기 시작했다.
"트리얀은 왜 자고있는거야?"
"뿌리 정령에게 당했어."
"또? 그건 어딨는데?"
"몰라. 도망간 거 같아."
타리뮤는 전투가 시작되고,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그러다 전투가 끝나고 세영이 트리얀에게 다가가자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녀의 설명을 들은 세영은, 곧바로 트리얀에게 하급 정화의 포션을 먹였다.
"으음..."
"정신이 드시나요? 아프신데 있으시면, 치료약도 드실래요?"
"아닐세. 그보다... 쿨럭. 쿨럭."
불이 번지며 피어오르던 연기가, 넓게 퍼지면서 주위를 뒤덮기 시작했다.
바짝 마른 트렌트들과는 다르게, 생나무가 불타며 연기가 심해진 탓이다.
"좀 도와주세요. 연기는 제가 드린 히부린 마스크 쓰시면 문제없으니까. 빨리요."
"아, 알겠네. 어떻게 하면 돼지?"
"아직 불이 붙지 않은 지역의 나무들 좀 베어 주세요. 더 번지지 않게."
세영은 설명을 시작했다.
트리얀은 금세 이해할 수 있었다.
"알겠네."
트리얀은 불타는 장소에서 조금 벗어난 지역의 나무들을 베기 시작했다.
엄청난 힘. 그리고 속도였다.
십수 년을 거목만 베어 왔다더니, 인간의 솜씨가 아니었다.
'판타지 세계니까. 뭐...'
도끼가 한 자루 더 있었다면, 자신도 벌목 숙련도를 올릴 겸 함께 했었겠지만, 없으니 구경만 할 뿐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건 아니다.
트리얀이 이미 벌목을 끝마쳐 불이 더 번질 위험이 없는 장소에 이동했다.
안 쪽의 아직 불타고 있는 나무들을 향해서 화염 탄을 발사했다.
순간적인 화력의 힘으로, 나무를 완전 연소시켜 연료 자체를 바닥 낼 작정이었다.
TV나 인터넷 어딘가에서 본 지식이었다.
'그나저나, 괴물이 따로 없네. 저 할배.'
트리얀이 누라라의거목을 베는 건, 또 얼마나 빠를지 궁금해 졌다.
지금 베는 중인 나무들도 거목에 비해 외소할 뿐이지, 두께의 지름이 1미터가 넘는 굵다란 나무들 이었는데, 도끼질 서너 번에 쩍- 하고 넘어가니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벌목 스킬도 배워두면 나중에 써먹을데가 있긴 할텐데.'
나중에, 전설 등급 이상의 쇠뇌를 얻어 또 다시 개조 해야할 시기가 온다면, 벌목 능력은 분명 유용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 그런 먼 미래까지 바라보며 계획을 세우기에는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쿠르르르릉-.
또옥... 똑, 똑.
"어라?"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 지더니, 천둥 소리와 함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자 마자 비가 내린다니, 마치 동화 같은 일이었다.
'뭐, 판타지 세상이니까.'
세영은 머리를 긁적였다.
빗방울이 건드려 간지러웠기 때문이다.
쏴 아아-
빗줄기는 어느새 굵어졌고, 불타던 나무들은 촉촉이 젖어갔다.
불씨는 금세 사그라졌다.
"괜히 고생하셨어요. 트리얀님. 비가 내릴 줄은 몰랐네요."
"뭘. 숲을 지키는 것도 나무꾼이 해야 할 일 중 하나지. 그나저나 그 말은 정말인가? 자네가 그 드라이어드를 처리했다는 소리 말이야."
겸손할 필요는 없었다.
나무꾼들에게 이야기가 퍼져야 명성치를 얻을 수 있으니까.
"네. 저기 있는 불타버린트렌트의 잔해들 보이시죠? 저기 어딘가에 드라이어드의 시체도 있을 거예요."
"내가 봤어. 트리얀. 이 인간은 위험해. 불을 마구 쏘아 대는걸."
쓴웃음을 지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엄청난 일을 해냈다.
파티원들이 모두 당해버렸을 정도로 강력했던 적을 상대해, 결국 홀로 승리를 쟁취했다.
자신이 정말 강해진 건지,아니면 운이 좋을 뿐인 건지 어안이벙벙했다.
'오늘은 운이 좋긴 했어. 파티원들이 죽은 것만 빼고는...'
물론 행운의 도움이 있었지만, 강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럴 만 했다.
정말 엄청나게 강해졌는데, 그건 아주 당연한 이야기였다.
이세영은 이미 억대를 호가하는 장비를 착용 중이다.
전직하기 쉽지 않은 히든 클래스에, 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든 마나 포션까지 마구 사용해 댔다.
스킬북을 통해 습득한 스킬 역시 2억 이상의 가격이었다.
오히려 이만큼탁월하게 강해지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그런 엄청난 비용을 지불할 이유가 없었다.
'아이템을 어디가서 확인하지? 빨리 보고 싶은데.'
세영은 좀이쑤셨다.
이유는 간단했다.
얼핏 봤다.
고대 마족 주머니에 드롭 된 아이템들을 급하게 쑤셔 넣을 때.
정말 얼핏 보고야 말았다.
짙은 붉은색의 빛이도는 아이템을.
그래서 좀이 쑤셨다.
붉은 색은 전설 아이템의 상징 색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