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47화. 개조
김만우는 슬슬 조바심이 생겼다.
돈도 돈이지만, 몬스터 사냥을 통해 엄청난 아이템을 들고 돌아온 세영을 보면 부러움이 앞섰다.
'웹 튜브에 어떤 영상을 올려야 할지도 모르겠고...'
엄브렐라 기기를 가지고는, 제대로 된 방송을 하기가 쉽지 않다.
영상 편집 기능도 없어, 가치 있는 정보를 숨기기 위해서는, 편집에만 엄청난 시간을 소모해야만 한다.
문제는 그렇게 올린다고 해도, 갑자기 영상 조회수가 빵- 터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형. 정리는 이 정도로 마치면 될 거 같아요. 어떻게 사용할지 궁금한 아이템도 있었고, 당장 써먹을 만한 것도 있지만, 역시 영웅이나 전설급 장비 아이템 이외에는 당장 돈 될만한 건 없었네요."
"으응... 그래도 경매장에 올린 지팡이 하나만으로 엄청난 돈이니까."
싱글벙글한 이세영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직업이라...'
연금술사 마스터의 위치를 알고 있다.
이세영에게 들은 덕분이다.
연금술사가 되는 건 시간과 의지만 있다면 간단한 일일 것이다.
'여차하면 세영이가 도와줄 테고.'
일반 연금술사 클래스는 이세영처럼 전투가 가능한 히든 클래스가 아니어서, 선택하기에는 뭔가 특별함이 부족해 보였다.
'일단, 웹 튜브에 영상 찍어 올리는 건 미루고, 당장은 전직부터 하자.'
김만우는 클래스 선택을 위해, 정보 수집부터 하기로 결정했다.
"세영아. 형이, 남는 장비는 써도되지?"
"네. 그러세요."
김만우는 세영이 가져온 고블린 시리즈의 일반템과, 마법 등급 아이템 몇 가지를 착용했다.
"형도 이제 전투를 하려고요?"
"아니. 일단 전직부터 해야지. 어차피 채집과 약 제조 만으로도 레벨 10을 넘긴 상태니까."
"어떤 클래스 선택 하게요?"
"몰라. 찾아보려고. 일단 이거랑 이것도 가져갈게."
"지팡이랑 검?"
"말했잖냐. 뭐로 전직할지 모른다고. 그러니까 다 가져가 보려는 거지."
김만우는 겨우 결심이 섰다.
*
배달온 식사를 마치고, 다시 게임에 접속한 둘.
이세영은 2층에서 전투로 소모된 치료약이나, 신규로 얻은 아이템을 가지고 연금술에 열중이었다.
쇠뇌 개조를 위한 재료는, 단순한 목재 뿐 만은 아니었다.
김만우는 아직 1층에서 온라인 게시판을 뒤지고 있었다.
클래스 정보들을 찾고 있었다.
똑. 똑.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김갑부님. 저 BI물약 입니다."
블루 아이템사의 이은표였다.
이미 계약은 결렬되었을 텐데 왜 찾아온 것일까?
김만우는 의아해 하며, 그를 안으로 들였다.
"오늘은 혼자 시네요? 왜, 메시지도 없이 찾아오셨어요?"
"그게..."
그의 표정은 침울해 있었다.
이은표는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셔도..."
"아... 죄송합니다. 뭔가를 요구하기 위해서 찾아온 건 결코 아닙니다. 사과드리려고 찾아온 거예요."
김만우는2층에 올라가 이세영을 불러왔다.
함께 들어야 할 것 같아서였다.
"회사에서 그렇게 요구했는데, 결국 차도아씨는 거절했습니다. 어차피 알파 님을 확보하지 못하면 3일 내로 잘릴 거 같았으니, 거절하는 김에 회사도 미리 그만둔 모양이에요."
차도아는 회사를 그만뒀다.
이세영에게 받은 번호로 전화를 걸어, 친분을 이용해 꼬셔보라는 상사들의 요구를 거절한 거였다.
그녀가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버텼어도, 3일이면 물약 담당 팀은 해체될 예정이었으니 결국 잘렸을 것이니 .
당장 수입이 없는 그녀에게 있어서,크나큰 모험이 아닐 수 없는 결정이었다.
지금 그녀는 다시 취업하기 위해, 어딘가에서 고군분투 중일 것이다.
이은표의 이야기를 듣던 이세영은 마음이 심란했다.
번호를 안다면 전화라도 해볼 텐데, 그녀는 아직도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설마, 회사에서 그녀에게 엄브렐라의 기깃값을 요구하고 그러진 않았겠죠?"
이세영의 물음에 이은표가 놀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설마요. 이익이 목적인 집단입니다만, 그래도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습니다. 기기를 초기화하고 다른 사용자를 등록하면 그만이니까요. 엄브렐라를 생각하고 그런 질문을 하셨을까요? 저희 회사가 사용하는 건 엄브렐라 기기보다는 상위의 기종이거든요. 다소 고가이기는 합니다만."
세영은 그 이야기를 듣고, 나금돈을 떠올리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김만우가 물었다.
"그럼, 여긴 왜 오신겁니까? 물약님. 역시 저희를 설득하러 오셨나요?"
"아닙니다. 저도 회사를 그만 둘 예정입니다. 다만, 저 때문에차도아씨가 그렇게 된거 같기도 하고, 두 분께 사과를 드리러..."
조용하던 이세영이 조금 화가난 듯 목소리를 냈다.
"차도아씨에게 먼저 사과는 하셨습니까?"
이은표는 고개를 푹 숙였다.
"아직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도 그녀의 연락처가 없기 때문에... 그래도 입사 당시 남겨 둔 비상 연락처는 회사에 있을 거라서, 접속 종료후 연락을 할 참이었습니다. 그 전에 두 분께 먼저 인사 드리려고 왔습니다. 저도 회사에서 나가면, 두 번 다시 이 캐릭터는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이은표는 오늘 둘에게 사과를 마치고, 비상 연락망에 적힌 차도아에게도 연락한 후 회사를 그만둘 작정이었다.
"저희는 괜찮습니다. 저희가 직업을 잃게 되는것도 아니니..."
김만우가 말할 때 갑자기 이세영이 끼어 들었다.
"저, 비상 연락요?"
"네. 회사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연락이 불가능 한 사람을 직원으로 고용할 수는 없었겠죠. 차도아씨는 휴대 전화가 없지만, 아마 지인이나 아니면 본가의 집 전화번호는 남아있을겁니다. 저도 입사 당시에 적어 뒀으니까요."
이야기를 듣던 세영이, 상체를 앞으로 내밀며 물었다.
"저도, 그 번호 좀 알 수 없을까요?"
이은표는 설마 그런 걸물어올 줄 몰랐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개인 정보는 함부로 유출할 수 없는지라..."
김만우는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야! 넌 뭘 그런 걸 묻고 그러냐. 난처해하시잖아. 애가 상식이 없어요. 물약님 죄송합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김만우는 회사를 그만두는 판에, 자신들의 일 따위는 무시해도 됐을 텐데, 굳이 찾아와서 사과하는 이은표에게 제법 호감을 느꼈다.
"그래서 이은표씨는 일 그만두고 어쩌시려고요? 이런 거물으면 실례이려나?"
세영을 꾸짖어 놓고, 자신도 똑같은 행동을 한다.
이은표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숨겨야 할 일도 아니기에.
"그러게 말입니다. 뭐 어쩔 수 없죠. 아무래도 저는 정보 수집에는 재능이 없는 것 같아서, 다른 쪽의 일을 구해봐야죠. 이 회사에 입사할 당시에도, 설마 물약 제조 담당이었을 줄은 몰랐습니다만. 저는 아직 20대 중반이지만 결혼해 애도 있는지라, 열심히 벌어야 하거든요."
김만우는 대뜸 물었다.
"혹시, 편집할 줄 아세요?"
"네?"
"영상 편집요."
"아니요. 해본 적이 없는데..."
무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김만우.
몹시 궁금해 하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이세영의 목소리를 듣고 겨우 정신을 차렸다.
"형!"
"어?"
"뭐해요. 손님 기다리시게 하고."
김만우는 비로소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 죄송합니다. 잠시 생각 좀 하느라... 저 그런데 혹시, 물약님. 저희랑 일해 보실 생각 없으세요?"
"네?"
이은표는 물론, 이세영도 놀랐다.
"그 회사에서 월급 어느 정도 받으셨죠?"
"그... 그런 건..."
"아? 이런, 실수. 굳이 말씀 안 하셔도 좋습니다. 대충 어느 정도 인지는, 저도 자주 구직 사이트 가서 검색해 봤던 지라."
김만우는 작업장에서 일하던 시절, 매일 매일 구직 사이트를 뒤져 보는 게 일상이었다.
그만큼 희망도 꿈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시죠. 일단 월 천 만원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거기에 보너스 지급. 하루에 10시간만 근무하시면 됩니다."
"네에?"
갑작스러운 상황에 이은표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걱정 마십시오. 고용 계약서는 프클 내에서 제공하는 생체 데이터 인증 계약서로 작성 하겠습니다. 의심 안 하셔도 좋습니다."
"저기... 갑자기 그렇게 말씀하셔도.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데."
김만우는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했다.
"하시게 될 일은 이 게임에 접속하셔서, 저희 치료약 전문점을 운영해주시면 됩니다. 엄브렐라는 무상으로 제공해 드리죠. 가정이 있으시다고 하니까, 재택 근무를 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하루 10시간 이외에는 자유롭게 게임을 하셔도 좋습니다."
이세영이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다.
"형..."
"넌 가만있어."
세영을 가로막으며 그는 한마디를 더했다.
"조건 한 가지가 더 있는데, 가장 중요합니다. 제가... 아니, 저희가 고용하는 건 두 명입니다. 차도아씨도 같이 고용할 생각이니까, 꼭 연락해서 데려와 주세요. 전화번호는 이겁니다. 물론 세영이 번호로 전화하셔도 됩니다."
"형?"
김만우는 자신을 대신할 사람이 있었으면 했다.
이제 클래스 전직을 하고, 몬스터 사냥도 시작 하려고 하는데, 주 수입원이던 치료약 제조를 포기하기란 여간 쉽지 않은 결정이다.
치료약 전문점을 유지해 안정적인 수익을 바탕으로 다른 것도 진행하는 것이, 몸도 마음도 훨씬 편한 건 당연한 이치.
눈앞의 그라면 안심하고 맡겨도 좋지 않을까?
치료약 제조 만으로도 천 만원, 이천 만원은 매일 벌 자신이 있었다.
자신을 대신해 치료약의 제조와 판매를 할 사람이 생긴다면, 사냥을 통한 수입을 더해 훨씬 이득일 것이다.
"우린 고용할 뿐이니까,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이은표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말문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러나 매력적인 제안.
선뜻 거절하기에는 너무나 달콤한 보상이 아닌가.
"왜, 저를..."
"음... 일단은 짧긴 하지만 파밍 기업에서 일하신 경험이 있으시고, 이렇게 쓸데없는 일을 사과까지 하러 오신 걸 보고 신뢰할 만 한 사람이겠다 싶어서요."
그리고 차도아에게 반한 듯 한 동생에게 선물도 할 겸 해서다.
자신이 나서지 않는 이상, 이세영 저 숙맥은 자신의 감정이 뭔지도 모르는 상태일 게 분명했으니까.
자신의 삶을 밑바닥에서 부터 끌어 올려 준 그에게 조금 보답할 기회가 생긴 거 같아, 스스로에게 뿌듯함을 느꼈다.
'역시 난 좋은 사람인 거 같아!'
"형! 차도아씨는 왜 요?"
"왜 기는 왜 야. 요즘 세상에 취업하기 힘드니까 도와주려 하는 거지."
세영은 고용 계약이라는 단어가 걸렸다.
자신이 그녀를 부리는 입장에 서고 싶지 않았다.
김만우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세영이 생각하는 건 불 보듯 뻔했으니까.
"걱정 마. 처음에만 좀 도와주고, 차도아씨가 자립 가능하면 계약이야 해지하면 그만 이니까. 우리만 봐도 그렇잖아? 한 두 달도 안 걸릴걸?"
"아! 그런 거라면 찬성이에요."
그제야 겨우 웃는 세영을 보며, 김만우는 어깨를 내려뜨렸다.
기운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이런 놈이 어떻게... 역시 가상 현실 게임에서만 천재인 건가...'
이들의 대화는 간단하게 종료됐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은표는 접속을 종료했다.
접속할 당시의무거웠던 그의 마음은, 어느새 기대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제 이세영과 김만우는, 그가 차도아와 함께 연락해 오기 만을 기다릴 뿐이다.
**
이세영은 도시 파르도에 향했다.
마차를 끌고 느긋하게 나섰다.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오는 걸 보니 마음의 여유가 찾아온 모양이다.
그가 도시를 향한 이유는 쇠뇌를 개조하기 위한 가공을 위해서이다.
고급 목재와 최고급 목재를 모두 마차에 실었다.
개조가 실패할지 모르니, 그 전에 연습을 좀 해두려는 생각도 있었다.
[무기제작술]
상태창에 뜬 항목은 매우 다양했다.
당연히 이세영의 눈에는 활과 쇠뇌 제작술이 가장 먼저 들어왔다.
[활, 쇠뇌 제작술 Lv. 1]
- 활 제작
- 쇠뇌 제작
- *쇠뇌 개조
- 보조 기술 : <목재 가공 기술 Lv. 1>, <금속 가공 기술 Lv. 1>, <뼈 가공 기술 Lv. 1>......
유일하게 그에게만 보이는 쇠뇌의 개조 항목.
그러나 전체 범주에서는 활과 쇠뇌의 제작에 통합되어있었다.
이말은 즉 슨 쇠뇌나 활을 제작하는 기술이 상승해야, 개조의 성공률도 높아진다는 거였다.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할 것이다.
'재밌을 것 같네~'
세영이 여유로운 이유는 이미 현실에서 나무를 다뤄 본 경험 덕분이다.
거창한 건 아니고, 섬에서 물고기를 낚기 위해 나무를 깍아, 낚시대를 만들어본 정도의 사소한 경험이다.
하지만 그 당시 나무를 깎거나 모양을 다듬고 하는 게 너무도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조금 설레는 마음이 드는 이유다.
도시에 도착한 그는 목공소를 찾아갔다.
"알라바님. 안녕하세요."
"오~ 자네 왔는가? 그래 이번에는 또 무슨 일로? 설마 아기살 1만 발을 벌써 다 쓴겐가?"
"그게 아니고요. 저, 활이나 쇠뇌 제작법을 배우고 싶은데, 가능 할까요?"
목공소의 주인인 알라바는 시장에게 추천서도 써준 고마운 인물.
다만 세상에는 공짜란 없는 법이다.
"하하. 그래. 환영하네. 다만 꽤 비싸다고?"
"저... 이걸로 어떻게 안될까요?"
세영은 고급 목재 하나를 꺼내 건넸다.
"이... 이건?"
"네. 누라라의 거목으로 만들어진 고급 목재입니다."
"결국, 트리얀을 만났는가? 그럼, 설마?"
대답하지 않고 씨익 웃었다.
"캬아~ 그거 탐나는구만! 하하하."
세영은 한 술 더 떠, 금화 주머니를 내려놨다.
"돈도 충분하니까 좀 알려 주시죠."
눈을 휘둥그레 뜬 알라바.
"흠... 뭐, 좋네. 활이든 쇠뇌 이던 간에 말만하게. 내 얼마든지 알려 줌세."
[활 제작의 기초를 습득하셨습니다. 연습용 활의 제작법이 추가됩니다.]
[쇠뇌 제작의 기초를 습득하셨습니다. 연습용 쇠뇌의 제작법이 추가됩니다.]
돈 앞에 장사 없는지, 별다른 사전 퀘스트를 해결할 필요조차 없이 제작법을 전수 받았다.
물론 중요한 고급 기술을 얻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여기 있는 나무들을 쇠뇌의 기본 형태로 다듬어 보겠나?"
"네."
세영은 기쁜 마음으로 작업에 돌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