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48화. 개조
자르고 깎고, 대패질부터 다듬기 까지. 다양한 작업이 이루어졌다.
즐거웠다.
무언가 새로운 걸 만든다는 건 언제나 즐거운 법이다.
'룰룰루~'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이걸 온종일 반복하게 된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시장의 의뢰인 파티 퀘스트는, 자신 때문에 죽은 파티원들과 함께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이 사망 페널티가 끝나고 다시 접속하기 전까지,쇠뇌의 개조 작업을 마무리하기로 한 만큼 성실하게 작업을 반복했다.
[목제 가공 기술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목제 가공 기술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목제 가공 기술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이 정도면될까?'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금세 익숙해졌다.
기술 레벨이 오를수록 더욱더 빨라졌고, 반복되던 실패는 점점 줄어가더니 결국 사라졌다.
레벨업이라는 보상이 반복되는 지루함을 조금 덜어줬다.
하지만 이 작업을 언제까지 반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스킬의 레벨업 속도는 점점 느려질 테고, 즐거움은 사라질 게 분명하다.
'4렙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작업이 어느 정도 손에 익었으니, 재료를 바꾼다고 실패만 계속할 리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세영은 어찌 보면 반칙 같은 수단을 쓰기 시작했다.
[목제 가공 기술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목제 가공기술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목제 가공 기술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
.
.
[목제 가공 기술을 마스터 하셨습니다. 목제 가공의 숙련자가 되셨습니다. '목제 가공 기술Lv. 10'이 '숙련 목제 가공기술 Lv. 1'로 변경됩니다.]
순식간에 기초적인 가공 기술을 마스터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사용한 재료가 이름부터 푸른 빛이 맴도는 고급 목재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하나를 가공 할 때마다, 엄청난 양의 기술 경험치를 습득할 수 있었다.
"알라바님. 이정도면 된거 같은데요?"
지켜보던 알라바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놀람과 부러움이 뒤 섞인 표정.
"자네는 뭐하는 사람인가? 그 귀한 누라라의 거목으로 만들어진 고급 목재를 연습용으로 써버리다니... 실패한 것만 계산해도 가격이 얼마나 나가는지 아는가?"
세영을 믿고 시장에게 추천서까지 써준 양반이, 이제와서 의심스러운 표정을 보인다.
"헤헤. 이제 연습용 쇠뇌를 만들어 볼까요?"
어물쩡 넘어가려 웃어봤지만, 알라바는 장인답게 깐깐했다.
"잠깐 기다리게. 그걸로 만드는 건 아까우니까, 일단 일반 목재로 가공된 나무부터 사용하게. 그 귀한 건 손에 좀 익숙해진 다음에 쓰고."
이럴 때는 스승의 말을 조용히 따라야 한다.
세영은 그가 시키는 대로,싸구려 목재를 이용해 연습용 쇠뇌의 제작을 시작했다.
[제작에 실패하셨습니다.]
[제작에 실패하셨습니다.]
[제작에 성공하셨습니다.]
[연습용 쇠뇌를 획득하셨습니다.]
[제작에 실패하셨습니다.]
[제작에 성공하셨습니다.]
[연습용 쇠뇌를 획득하셨습니다.]
[제작에 성공하셨습니다.]
[연습용 쇠뇌를 획득하셨습니다.]
.
.
.
[활, 쇠뇌 제작 기술의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더니, 결국 성공 일변도로 변했다.
그뿐 아니었다.
[제작에 대성공 하셨습니다.]
[연습용 쇠뇌를 획득하셨습니다.]
"응?"
[연습용 쇠뇌]
- 내구도 15/15 <마법 등급>
- 연습용으로 제작된 쇠뇌입니다.
- 물리 공격력 +5
제작 스킬을 사용한순간 녹색 빛이 번쩍이더니, 마법 등급의 쇠뇌가만들어졌다.
"알파. 자네는 대체 뭐 하는 사람인가? 고블린 족장을 사냥했다고 하더니, 목공에도 재주가 있었을 줄이야."
알라바는 놀랐지만, 당연한 일이었다.
그의 현재 행운 스텟은 무려 152. 판게아 행성 전체를 통틀어 행운 스텟 만큼은 가장 높은 게 바로 이세영이었다.
행운 스텟은 채집 시에도 그렇지만, 제작에서도 확률적으로 이득을 가져다줬다.
보통 기술이 숙련자 단계로 넘어가야만 비로소 처음 볼 수 있는 대성공작.
제작을 시도한 아이템보다 한 단계 상위 등급의 아이템이 만들어진 것이다.
'뭔가 기분이 좋은데?'
대 성공작이라는 말은, 그로 하여금 알 수 없는 쾌감을 불러일으켰다.
제작 순간 번쩍하는 시각적 효과 역시 한 몫 거들었다.
"이제부터, 고급 목재를 써도 되나요?"
"미쳤는가? 연습용 쇠뇌를 만드는데, 그 비싼 누라라의거목을 사용한다니."
결국 세영은 제작 스킬의 레벨을 올리는데, 긴 시간을 들여 제작을 반복해야 했다.
"그나저나, 자네는 정말 손이 빠르군."
"그렇습니까?"
"그래. 내 오랜시간 견습들을 가르쳐 왔지만, 자네 같은 사람은 처음이야. 어때? 나의 후계자가 될 생각은 없는가?"
[!!신규 퀘스트!!]
[퀘스트를 진행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이미 클래스를 선택하셨습니다. 새로운 클래스로 전직을 위해서는, 특별한 퀘스트를 수행해야 합니다.]
'깜작이야'
클래스 전직퀘스트가 등장했다.
당연히 진행할 수는 없었다.
전문 생산직종의 클래스를 지금의 이세영이 선택할리도 없었다.
연금술 발사자라는 클래스에 그만큼 만족하고 있었으니까.
"아쉽구만. 아쉬워. 내 평생 자네 같은 사람을 못 찾아 안타까웠는데..."
"하하... 말씀이라도 감사하네요."
도시 유일의 목공소 답게, 찾아오는 플레이어들 역시 많았다.
특히 활이나 쇠뇌계열 직업을 선택한 사람들은, 잡화점이 아니면, 목공소에서 밖에 화살을 구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 활보다 쇠뇌의 사용자 빈도가 월등히 높았다.
이는 지난 날 이세영이 연무장에서 쇠뇌를 쏴 댄 걸지켜본 사람들 때문이다.
쇠뇌야 말로 최고의 무기다! 라면서 온라인 게시판이 논쟁으로 들끓었을 정도.
"알라바님, 저 사람은 누구인가요?"
"응? 알 거 없네. 사려던 화살이나 냉큼 사가시게나."
이세영을 대할 때에 비하면, 다소 쌀쌀맞은 태도.
플레이어들은 슬쩍슬쩍 이세영을 지켜봤다.
"야. 저 사람 뭐 하고 있는 거야?"
"보면 모르냐? 쇠뇌 만들고 있네."
"만들면좋은가?"
"글쎄. 니가 만들어보고 좀 알려줘 보든가."
호기심에 넘치는 사람들은 직접 물어오기도 했다.
불러도 대답이 없자, 직접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저기, 님. 그건 무슨 쇠뇌를 만드시는 건가요?"
"네? 아, 이거요? 자! 직접 보세요."
쇠뇌를 건네받고는.
"아, 뭐야. 연습용 쇠뇌였네."
"크큭. 그럼 뭔 줄 알았는데?"
"난 또, 제작한 아이템이 고블린 시리즈보다 좋은가 싶었지."
"야. 그랬으면 고블린 시리즈가 그렇게 비쌀 리가 있겠냐."
"하긴 그래."
등 뒤에서 시끄럽게 떠들어 댔다.
하지만 이세영은 못 들었다.
그만큼 제작에 집중한 탓이다.
무려 게임 시간으로 하루가 지나도록, 목공소를 통째로 대여해 제작을 반복했다.
주인인 알라바가 자러 간 이후에도 계속됐다.
금화 몇닢에 자신의 일터를 선뜻 빌려주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 높은 집중력과 노력은 결실을 보았다.
[제작에 대 성공하셨습니다.]
[숙련공의 쇠뇌를 획득하셨습니다.]
[숙련공의 쇠뇌]
- 내구도 50/50 <희귀 등급>
- 숙련공이 시간과 열정을 들여 제작한 쇠뇌들 중에서 최고품입니다.
- 물리 공격력 +20
- 거래소및 경매장 등록이 가능합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신이나 펄쩍펄쩍 뛰었을 희귀 등급의 쇠뇌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세영의 눈에는 도무지 차질 않았다.
'아... 이게 뭐야.'
기껏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 대 성공한 아이템.
옵션에 회복 능력도 없고, 연사 속도 증가도 없다.
'연습용 쇠뇌부터 벌써몇백개 짼데, 죄다 버려야 하나...'
그때 알라바가 다가왔다.
"호오, 벌써 그런 훌륭한 물건을 완성하다니. 내가 사람을 잘못본 게 아니었어. 나중에라도생각이 바뀌거든 언제든지 찾아 오게나. 내가 최고의 목수로 만들어 줌 세."
"헤헤... 네."
세영은 연습용 쇠뇌와, 초급자용 쇠뇌는 전부 알라바에게 넘겼다.
어차피 재료를 다 빌린 덕분에 만들었고, 팔아도 얼마하지 않을것 같아서다.
그리고 숙련공의 쇠뇌.
죄다 거래소에 올렸다.
여기부턴 재료인 목재도 제법 비싸지기 시작해, 알라바에게 재료비로 넘긴 돈도 어마어마했다.
그래도 팔려면 시세에 맞춰 올려야한다.
거래소 최저가인 1골드보다 싸게 한꺼번에 올렸다.
'희귀템은 어쩌지?'
숙련공의 쇠뇌 희귀 아이템은 거래소에서 거래가 된 적이 없는지, 시세를 알 수 없었다.
'희귀 고블린 쇠뇌가 천 만원 정도였으니, 아마 그보단 한참 쌀 테고... 희귀 아이템이 비싼 건 옵션 때문이니까...'
세영은 개당 20골드에 올렸다.
그 정도면 팔리지 않겠나 싶었다.
"알라바님. 이제 고급 목재로 만들어 봐도 될까요?"
"흠... 좋을 대로 하시게. 원래는 장인은 되고 난 후에 사용하는 편이지만, 자네는 내 예상을 한참 뛰어넘는 자이니."
세영은 가공 기술을 올리며 만들어 두었던, 희귀 등급의 쇠뇌용활대를 이용해 제작에 돌입했다.
제작법은 알라바에게 전수받았다.
그에게 건넨 돈만 100골드.
총 20회분의 재료 비용이다.
활시위나, 금속 장치의 가격이 매우 고가였다.
"실패하더라도 너무 낙담하지 말게나. 본래는 장인이라 할지라도 실패를 거듭한 끝에야 겨우 한두 개 만들어 내는 물건이니까"
"넵."
정신을 집중했다.
1회당 5골드의 제작 비용.
그마저도 목재 가격은 제외된 비용이다.
쇠뇌 하나에 들어가는 고급 목재의 가격을 얼핏 듣자니, 무려 10골드가 넘었다.
다 더하면, 하나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만 20골드 가까이했다.
현금으로도 200만원이넘는다.
'완성품이 희귀 아이템이라 그런가.'
일단 제작에 성공만 하면 된다.
그럼 희귀 아이템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대 성공한다면?
무려 영웅등급의 아이템이다.
'아슬아슬한 전투를 하지 않고도, 영웅 등급의 무기가 만들어진다니!'
세영은 재료를 조립했다.
점점 쇠뇌의 형태를 갖춰 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킬 발동!
['장인의 정찰병 쇠뇌' 제작을 시작합니다.]
탁.
어설프게 연결된 이음새가 맞물려 들어갔다.
철컥.
금속 장치가저절로 자리를 찾아갔다.
그리고...
'제발!'
[제작에 실패하셨습니다. 재료가 모두 사라졌습니다.]
재료가 소멸됐다. 티끌 하나 남기지 않고...
'아직이야. 19번 남았어!'
포기할 이유는 없었다.
연습용 쇠뇌 때도 경험한 일이다.
['장인의 정찰병 쇠뇌' 제작을 시작합니다.]
.
.
.
[제작에 성공하셨습니다.]
[숙련 활,쇠뇌 제작 기술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장인의 정찰병 쇠뇌를 획득하셨습니다.]
두 번째의 제작에서 바로 성공!
[장인의 정찰병 쇠뇌]
- 내구도 50/50 <희귀 등급>
- 파르도에서만 자라는 누라라의 거목으로 부터 얻은 나무를 사용해 만들어넨 고급 쇠뇌입니다. 장인의 정성이 느껴집니다. 파르도 섬의 기사들이 애용하는 무기입니다.
- 물리공격력 +25, 연사 속도 +1
- 거래소및 경매장 등록이 가능합니다.
숙련공의 무기보다 공격력이 5 높았다.
거기에 연사 속도 옵션 1까지.
'이건 그냥 재료비 정도겠네.'
실패해 소멸된 재료비까지 생각하면, 아직 손해였다.
그래도 기술 레벨이 점점 상승하면 이득으로 바뀌지 않을까?
단 하나라도 대 성공작이 나온다면, 엄청난 이득이 될 지도 모를 일!
세영은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장인급 무기가 되니, 하나를 제작하는데도 제법 시간이 들었다.
그래도 세영이 즐거웠던 이유는, 분명하게 성장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까닭이다.
거의 모든 재료를 소모했다.
이쯤 되니까, 실패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숙련 쇠뇌 제작기술의 레벨이 5까지 오른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아직 대성공작이 없었다.
'이제 제작 가능한 쇠뇌는 마지막 하나... 제발!'
[장인의 정찰병 쇠뇌의 제작을 시작합니다.]
마치 마법같이 허공의 재료들이 움직인다.
스스로 만들어지는 쇠뇌의 모습은, 참으로 상쾌함을 안겨주었다.
복잡한 퍼즐이 딱딱 제자리를 찾아갈 때 느끼는 그것과 비슷했다.
'제발!!'
세영은완성되는 걸 기다리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귓가로 들려오는 도시의 소음들.
사람들의 발소리, 떠들어대는 소리, 저 멀리에서는 마차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도 들린다.
그 소리가 배경으로 멀어지더니, 전혀 들리지 않게 됐다.
다른 소리에 집중하게 된 까닭이다.
시스템 메시지 알람.
음성으로 안내 되는 시스템 메시지가 귓가에 들려왔다.
[제작에 대성공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