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50 화. 피리 부는 사나이
"형, 축하드려요."
"하하. 그래. 이것도 다네 덕분이야."
김만우는 드디어 직업을 선택했다.
"그런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당연하지. 내 어렸을 적 꿈 중에는 음악가도 있었으니까."
김만우는 어린 시절 가수가 꿈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재능이 없었다.
"음악가요? 와- 멋지네요."
"그래.이쪽 길은 돈이 드니까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 우리 집이 금수저 집안도 아니었고."
재능이 없음을 굳이 떠벌릴 필요는 없는 법.
"너 아니었으면 진짜 어쩔 뻔했냐. 평범한 바드라니 나에게는 좀 부족하지."
김만우는 클래스 정보를 얻기 위해, 도시의 주점을 찾았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가운데, 그의 눈에 띈건 당연 바드였다.
정보 수집을 하려던 계획도 뒤로 미루고, 바드의 연주와 노랫소리를 한참 감상했다.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른다.
그 장면을 눈에 담는 순간, 자신도 하고 싶어진 것이다.
어렸을 적 꿈을 떠올리며.
김만우는 술을 한 잔 사는 대가로, 그 바드가 속한 악단을 소개받았다.
"소개받은 장소에 갔는데, 돈을 달라는 거야. 돈이야 충분했지만 이게 클래스 전직 퀘스트인지, 아님 그냥 뺑뺑이돌리는 퀘인지 내가 알 리가 없잖냐. 그래도 네 말처럼 눈 딱 감고 이퀘스트 저 퀘스트 다 깨려고 했다 이거야. 친해지면 클래스 전직 퀘스트를 줄테니까. 근데 첫 번째 퀘를 깼더니 10골드 주면 바드의 모든걸 알려주겠다잖아?"
파르도의 악단은 가난하기로 유명했다.
유랑을 다니며 경험하는 다양한 이야기야 말로 음악의 밑거름이 되거늘.
파르도라는 섬에서 태어나, 배 한번 타보지 못한 그들의 노래는 사람들의 눈을 끌기에는 매력이 부족했고, 발전도 전혀 없어 고리타분했다.
"너무 수상하잖냐. 근데 또 퀘스트는 뜨는거야. 바드 클래스의 전직 퀘스트가."
"받지 그랬어요?"
세영이 반쯤 놀리면서 대답하자 김만우는 발끈했다.
"다들 끼니를 제대로 못 먹는지 하나같이 삐쩍 말랐고, 건물은 허름해 금세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곳에 사는 놈들이라니까? 당연히 이건 돈이 안 되겠구나 싶었지."
세영은 깔깔 웃어댔다.
"에이, 그래도 하고 싶은 거 하시지. 어차피 돈은 치료약으로 벌잖아요."
"그렇긴 한데, 맨날 술집 가서 띵까띵까 만 할 순 없잖냐. 명색이 가상 현실 판타지 게임인데. 전투도 잘 해야 할 거 아냐."
김만우는각종 버프 스킬을 사용하는 고전적인 게임의 바드들을 생각했지만, 악단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순수한 음악만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때 떠오른 게 니가 말한 이야기라는 거지."
"찬트요?"
"그래. 엄연히 버프를 주는 노래가 존재하는데, 왜 이 악단의 바드들은 하나같이 못 하느냐 이말이야."
김만우는 바로 세영에게 메시지를 보내, 북쪽의 나무꾼들을 찾아 나섰다.
그때 마침 세영의 무기 개조도 끝나, 마차에 함께 타고 북쪽 마을을 향해 이동했다.
세영은 나무꾼들을 소개해준 뒤, 근처에서 숲의 허브를 채집했고, 김만우는 물어물어 은퇴한 나무꾼들을 찾아다니며 옛날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결국 히든 클래스로 전직하는 데 성공했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그래. 정말 너한테는 여러 번 빚지는 거 같네."
"그래서, 그 피리가 형의 무기라는 건가요?"
김만우의 손에는 매우 오래돼 보이는 피리 하나가 들려있었다.
"무기는 아니고, 일종의 의식을 위한 매개체라고나 할까?"
뭔가 더 멋지게 포장해 자신의 대단함을 칭찬받고 싶은 그였다.
"와우! 어떻게 쓰는데요? 기본 스킬은 배우신거 아니에요?"
"하하. 궁금하냐? 좋아. 너니까 특별히 보여주지."
김만우는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피리의선율은 매우 상쾌했다.
"오~ 대단하시네요. 피리를 그렇게 잘 부는사람 처음봐요."
김만우는 악기를 다루는 재능도, 노래를 잘 부르는 재능도 없었지만, 듣는 귀는 제법 좋았다.
자신이 꿈꾸는 이미지 속의 모습과, 정 반대인 현실의 괴리로 힘들고 좌절했던 어린 시절.
그러나 지금은 가상 현실 세계에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 그대로의 모습을 자신의 캐릭터를 통해 그대로 구현시킬 수 있다.
음악에 대해 잘 모르는 이세영마저, 단순한 피리 소리에 감동을 할 정도였다.
그리고 감동은 단순한 음악적인 부분에서만 오는 건 아니었다.
피리를 부는 김만우의 주변에 은은한 빛과 함께 마나의 띠가 춤췄다.
그 마나의 띠를 따라서 보이지 않던 존재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일부 바람의 요정들이 피리의 선율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들은 당신의 연주에 맞춰 시를 낭송할 것입니다.]
[산들바람의 시가 낭송되었습니다.]
[당신은 바람의 요정들의 찬트를 감상했습니다. 한 시간 동안 이로운효과를 부여받았습니다.]
- 이동속도 +2,
"와, 합창을 한건 요정들인데, 왜 제가 버프를 받아요?"
"흐흐흐. 야 잠깐 파티해볼래?"
파티를 맺고, 좀 전과 같은 연주와 낭송을 다시 들었다.
그랬더니 버프의 효과가 더 증가하는 게 아닌가.
- 이동속도 +3, 공격속도 +1
"와, 미쳤네요."
"그치? 역쉬 바드는 이래야 할 만하지."
"그래서 클래스 명이 정확히 뭔데요?"
"으흐흐. 영혼의 지휘자! 멋지지않냐?"
이세영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네? 그럼 바드가 아니잖아요."
"야, 바드의 상위 호환인거지. 지휘자라니까? 바드가 병사라면, 나는 장군인 셈 인거야. 알겠냐?"
영혼의 지휘자는 말 그대로 영혼들을 지휘해 곡을 완성시켜 축복을 내리는 직업이다.
영혼 뿐만 아니라 일부 정령이나 요정들도 그의 지휘에 따를것이다.
파티 사냥시에는 전투에 직접 참여하진 않지만, 방금 전 처럼 그들의 노래나 시 낭송을 통해 축복을 내리거나, 적에게 저주를 걸어 전투에도움을 주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멋지네요!"
세영은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당연하지."
김만우는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씨익- 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전투는 어떻게 하시는데요?"
"그건... 못해. 완전 버프 전담 클래스야."
"네에?"
세영은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김만우는 이세영이 없다면, 앞으로도 레벨하나 올리는 것 조차 힘들어 보였다.
***
"오빠! 오래 기다리셨죠?"
"아니. 그보다는 너무 미안해. 나 때문에 다들."
"에이~ 아니에요. 응? 부하 아저씨도 같이 오셨네요?"
"뭐라구 이 꼬맹아!"
정확히 24시간이 지나고, 추가로 5분 정도 지나자 노랑나비가 접속했다.
그녀의 위치는 파르도 북쪽 마을인 헌터 마을.
이세영과 김만우는 근처에 있었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그들을 기다리며 근처의 고블린들을 사냥 중이었다.
김만우의 레벨이 지나치게 낮아, 조금 올려 둘 겸 파티를 맺고 사냥 중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오겠죠. 24시간 내내 접속 못 해서 엄청나게 하고 싶을 테니까."
그건 노랑나비 자신의 이야기였다.
게임하고 싶어 하루종일 안달이 나 있었으니까.
"그런데 오빠는 안 죽으셨어요?"
"응... 미안해. 나 혼자만 살아남아서."
"무슨 소리예요. 다행이다. 오빠라도 살아남아서."
옆에서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김만우는 묘한 분위기에 눈치챘다.
'이세영 이새끼...'
노랑나비가 세영을 바라보는 눈빛이 왠지 수상하게 느껴졌다.
'이녀석 완전 선수 아냐? 생각해서 이은표씨에게 차도아씨까지 데리고 오라 했더니.'
괜히 심술이 났다.
김만우는 내심 부러웠다.
21년간 여자와는 연이 전혀 없었던 그였으니까.
현실에선 여자 근처만 가도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말 조차 재대로 못하는 그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흥. 여자따위 내 인생에 필요없지.'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그는 이세영이나 차도아의 감정을 눈치챈 것과는 다르게, 스스로의 감정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앗! 접속했네요. 둘 다 동시에."
헌터 마을의 안이었기 때문에, 레드문과 핑쿠햄스터의 재시작 위치는 바로코앞이었다.
"형. 안녕하세요."
"그래. 어서들 와. 이 쪽은 나랑 같이 게임하는 형이야. 인사들 나누고."
김만우와 모두 인사를 마치고, 파티에 합류했다.
이제부터 시장에게 받은 파티 퀘스트를 진행할 차례다.
난이도D의 퀘스트.
파르도 섬에서 가장 어려운 퀘스트 중 하나일 것이다.
"김갑부님도 같이 가시는 거예요?"
"그래. 이미 퀘스트 공유도 했어."
"무슨 직업이신데요?"
김갑부. 김만우는 미소지었다.
자랑을 하는 건 그에게 가장 큰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니까.
"후후, 영혼의 지휘자라고 들어는 보셨나들."
"그게 뭐예요?"
"히든 클래스라고는 들어보셨고?"
김만우는 코를 높이 치켜세우고 떠벌리기 시작했다.
"형, 그 정도로 해줘요. 마차 하나운전하셔야죠."
"으응. 그래."
김만우가 운전하는 것까지, 마차 2대가 준비되었다.
퀘스트뿐만 아니라 한탕 제대로 할 생각 가득한 이세영이었다.
"너희는 준비 안 해도 괜찮니?"
"네, 뭐. 저희야 몸이 전부인걸요. 형한테 치료약이나 마나포션도 공짜로 받고 있으니..."
도움을 받는 건 피차일반이었는데, 항상 저런 식으로 감사를 표해오는 아이들이 세영의 눈에는 무척 귀엽게 느껴졌다.
"자, 너희들 장비 없는 부위 있으면, 이거라도 가져다 입도록해."
세영은 지하 동굴에서 얻은 수많은 전리품을 꺼내 보였다.
일반 등급과 마법 등급의 고블린 시리즈들이었다.
"그래도 돼요?"
"당연하지. 니들 죽은건 다 나때문인데, 조금이라도 강해지면 좋잖아."
"에이, 죽을만 했으니까 죽은 거에요. 형 아니었으면 저희는 보스 근처에도 못갔어요."
지켜보던 김만우는 답답해하며나섰다.
"가식들 그만 떨고, 빨리 입어. 시간이 다 돈인걸 모르냐?"
"네에~"
김만우가 막 대하는게 오히려 편했는지, 아이들과는 금세 가까워졌다.
"그럼, 이제부터 드라이어드랑 트렌트 사냥하러 가는건가요? 제가 접속 못하는 동안 고민해 봤는데요, 기름을 사 가는 건 어떨까요? 나무니까 불이 약점일거같은데."
핑쿠 햄스터의 발언에 세영은 뭐라 대답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그... 그게 말이야. 트렌트랑 드라이어드는 모두 사냥했어."
"네? 어떻게요?"
"실은..."
세영은 자신이 격은 일들을 설명했다.
"와-! 혼자서요?"
"역시, 형은 천재에요."
"오빠 멋있어요."
세영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보다 못한 김만우가 또다시 껴들었다.
"적당히들 해. 아부해도 나오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이번 전투에서도 죽으면, 아이템은 전부 저놈 독차지니까 절대 죽지들 말라고."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의 표정이, 무언가를 단단히 각오한 다부진 얼굴로 변했다.
"절대 안 죽어요!"
"이번에야 말로 실력을 보여줄 거야!"
"난 왠지 또 죽을 거 같은데..."
레드문만 자신이 없었다.
마법사인 탓에, 원래 방어력과 체력이 낮았고, 아이템도 가장 후줄근했다.
"걱정 마. 이번에는 형도 같이 가니까, 여차할 때 도망치기는 쉬울 거야."
이세영의 말에 파티원들은 김만우를 바라보면서 의아해했다.
그 바람에 김만우는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왜요?"
"으흐흐. 있다가 지켜보라고. 나의 위대함을 알고 찬양하기 시작할 테니까."
"뭐야. 부하 아저씨! 표정이 징그러워."
"이런 꼬맹이가!"
김만우의 허세를 막는 데는 노랑나비의발언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
파티의 이동은 더뎠다.
마차 2대로 울창한 숲을 지나는 건, 매우 힘이든 일이었다.
게다가 가끔 들려오는 고블린의 외침은 말들을 위축시키는 데 충분하고도 넘쳤다.
"세영아. 마차를 어디까지 끌고 가야 하는 거야?"
"고블린 지하동굴의 입구까지요."
파티의 목적지인 지하 동굴은 입구가 여러 개다.
동굴의 크기 역시북쪽 숲 전체를 아우를 정도로 거대하다.
숲의 바로 지하가 전부 동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형. 이 앞은 어떻게 가요?"
"나무들이 너무 촘촘해서, 마차가 지나갈 수가 없겠는데요?"
세영은 곧바로 마차에서 내렸다.
뒤에 실려있던 물품들 중에서 도끼를 하나 꺼내 들었다.
대장간에서 구입한 최고급 벌목용 도끼.
손잡이 부분이 누라라의 거목으로 만들어진 희귀 등급의 도끼다.
"내가 나무를 벨 테니까, 주변 경계 좀 해줘. 고블린이 쏜 화살에 말이다치면 안돼니까."
"네."
세영은 나무를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길을 만들어 가며, 어떻게든 동굴 입구까지 마차들을 끌고 갈 작정이었다.
고블린에게 얻은 전리품과 채집한 굳어버린 불꽃을, 인벤토리는 물론 마차 두 대에 가득 채워 돌아갈 목적이었으니까.